이별 그리고 사랑 - 7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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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
“놀랐어. 엄마가 어찌 연락도 없이.”
현석과 지수는 이연지여사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가고도 한참이 지날때까지 그자리에 서 있다가, 현석이 놀란가슴을 진정시키고, 한숨을 내쉬자 팔짱을 낀 그녀의 말이다.
이건 암묵적인 인정이라고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느낌이 그렇다.
지수를 데리고 집으로 돌어간 것도 아니고, 현석에게 나가라고도 하지 않았다.
“정말 놀랐어. 물 마시려고 거실로 나오는데, 어머니께서 소파에 앉아 계시잖아.”
“때때로 마른반찬 좀 해서 가져다 주겠다고 하시기에, 현관 비밀번호를 가르쳐 드린게 엊그제인데, 바로 오실줄은 나도 몰랐어, 그것도 하필 오늘.”
“안 놀랐어?”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나저나 우리엄마, 허락하신거 같지?”
그녀는 오히려 생글거리기까지 한다.
“그러게, 날 내 쫏지 않으시고, 엘리를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다녀가거라’ 하시는걸로 봐서 우리 둘이 동거를 인정하시는 것 같은데.”
“동거? 흐흐 정말 동거이네.”
“그렇지?”
“하긴 둘이 발가벗고 자는것까지 보셨는데 뭐.”
그러면서 쾌활하게 웃었다.
“진짜 보셨을까?”
“보셨을 것 같아. 엄마의 표정으로 봐서.”
“보여 드리면 안되는 모습을 보여드렸네.”
사실 그 모습을 보신것이라면, 정말 황망한 경우이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으니 어찌 할 방법은 없다.
“암튼, 아빠는 허락하실거야.”
“왜 그렇게 장담해?”
“여태까지 아빠가 엄마를 이기는걸 본적이 없거든.”
“그래?”
“응.”
“그럼 조만간에 사장님께도 말씀을 드려 두어야겠다.”
“사장님에게?”
“그런 이야기 미리 해야 하는거야?”
“청첩장 돌리면서 말씀드리면 서운하지 않겠어?”
“그렇긴 하겠지만.”
“사장님이 나를 좀 각별해 하시거든. 그러니까 미리 말씀 드려야 해.”
“그건 헨리가 알아서 해.”
“그리고, 허락 떨어지면, 우리 내년 봄, 3~4월쯤에 식 올릴까?”
“흐흥. 나도 그때 좋아.”
이젠 됫다.
가장 어려우리라 생각한 과정들이 너무나 쉽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 * *
지수의 집에 인사를 갔다.
무척 큰 단독주택이다.
올 봄에 지수에게 물었을 때는 아파트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자세히 말하기 그래서 현석이 아파트냐고 묻기에 그냥 그렇다고 대답을 했단다.
그렇지만, 이제 바로잡는다면서 알려주었다.
지수 아버지, 한상운, H사 사장
꽤 잘나가는 좋은회사.
한번쯤 일 해보고 싶은회사.
그게 현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다.
지수의 설명으로는 큰형부가 기획실의 차장으로 있단다. 기획실의 책임자는 아니란다.
사위로서는 직급이 높은 편은 아닌 것 같다.
결혼하면 맏동서가 된다.
둘째 사위는 다른 회사를 다니는데, 제법 규모가 있는 중견기업이었고, 아버지가 그 회사의 사장이라고 했다.
결국, 오너의 아들이란 소리다.
맏동서 될 사람은 현석과 비슷한 처지 인 것 같다.
가진것이란게 튼튼한 몸뚱아리 뿐이란 소리다.
혹시 모르지, 감추어진 무언가가 있을지.
나이들이 어떻게 될까?
지수도 형부들의 나이는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현석보다 나이가 어릴 수도 있다.
그래서 간혹 처가 촌수는 이상한 촌수가 되기도 하지만, 나이가 어찌 되었건 상관없이 처가엘 가면 현석이 막내가 될 것이다.
거기 맞춰서 행동하면 된다.
제법 큰 정원이 있는 집이다.
지수의 아버지 한상운 사장은 강한 카리스마에 호인 풍의 노 신사다.
모두 모이라고 연락을 했는지 지수의 언니들과 형부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대문은 안에서 누군가가 스위치를 눌러서 열어준 것이지만, 현관 문을 열어주러 나온 사람이 지수의 언니인 것 같다.
정말 많이 닮은데다가 같은 여자인 점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거실로 들어갔다.
“언니.”
“언니 부르지 마라.”
지수가 그녀를 불렀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에는 찬바람이 쌩 불었다.
언니들도 거기가 지수와 같은 모양이라고 했었지?
그리고 또 언니들도 지수처럼 섹스에 그렇게 열정적일까?
아니, 이 상황에서 지수의 알몸과 수풀이 생긴 모습이 같다는게 왜 생각 나는거야?
그리고 언니들의 성생활이 왜 궁금한데?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김현석. 너 지금 긴장해야 하는거 아냐?
지금 처가 예정인 곳에 사위 면접보러 온거야.
속으로는 긴장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왜 그런것이 먼저 생각 났는지 알 수가 없다.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웃음만은 참아야 한다.
커다란 거실.
그곳 소파에 지수의 아버지 한상운이 앉아있고, 그 옆으로 지수 어머니 이연지 여사가 보인다.
2주일 전에 이미 만났으니, 구면인 셈이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은 두명의 남자, 이들이 장차 동서가 될 사람들일 것이다.
큰형부가 정병윤, 둘째형부가 박창세라고 했던가?
이연지 여사의 옆에 앉은 여인은 지수의 언니일 것이다.
지수가 설명해준 헤어스타일로 보면 분명 큰언니인 한지원, 방금 문을 열어준 사람이 둘째 언니인 한지혜일 것이다.
한지원, 한지혜, 한지수, 딸만 셋이다.
지수의 이국적인 모습 때문에 전에 프랑스에서 혹시 혼혈?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 모두 전혀 외국인이 아니지만, 그녀의 어머니 이연지 여사를 빼다박은듯이 닮은 세 재매의 모습이, 모두 그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수가 말한, 언니들이 자기보다 훨씬 예쁘다는 말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적어도 현석이 보기에는 지수가 가장 예뻐보인다.
지수는 귀엽고, 온화하면서 부드럽고, 우아한 기품이 있는 그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큰언니인 한지원은 다소곳한 느낌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둘째인 한지혜는 쌀쌀하고 찬바람이 불 것 같은 매서운 느낌의 아름다움이다.
“안녕하십니까. 김현석 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현석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수 아버지를 보고 큰절을 했다.
그리고 지수와 현석이 앉으라는 뜻으로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지수는 한상운에게로 가서 볼에 입을 맞추었다.
한상운은 반갑게 맞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른체 하지도 않았다.
아마 적당하게 받아주는 수준이랄까?
그 사이에 지수는 부지런히 지수의 본가에 드나들었었다.
하루는 휴가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다녀온 이야기 이며, 아버지 한상운사장을 만난 이야기를 현석에게 모두 이야기 했었다.
그래서 지수의 아바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들었다.
바로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는 현석의 말에, 지수가 반대를 했고, 그 사이에 본가에 드나들며, 현석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2주가 흘렀고, 오늘에야 오게 된 것이다.
가족들은 지수와 현석의 관계가 어느정도인지 이미 다 들었을것이다.
설사 마음에 안들어서 반대를 하고싶다고 하더라도 이미 떼어놓기 힘든다는 것을 알고 있을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연지 여사의 그런 방문이 꼭 안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부모는 몰라도 언니들은 충분히 시비를 걸어볼 수가 있다.
“자네, 재혼이라고?”
한상운사장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뭐? 재혼? 그럼 이미 결혼을 했었단 말이야? 지수야 너 그거 맞는말이야?”
한지혜가 거의 고함을 지르듯 펄쩍 뛰면서 지수에게 물었다.
한지원도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았다.
언니들은 거기까지는 못들은 모양이다.
난리가 아니었다.
언니들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들도 모두 한마디씩 했다.
이것이 가장 큰 난제일 줄 알았다.
무었보다 치명적인 결점이 아닌가?
얼마나 주위의 사람들이 소란스러운지 현석이 대답을 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사별했나?”
한상운 사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말소리는 담담했고, 침착했다.
억양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아닙니다. 헤어졌습니다.”
“왜 헤어졌는가?”
헤어진 이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건 무척 중요하다.
아니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현석이 총각이라면 나오지도 않을 이야기 이지만, 이혼을 했기에 어떻게 헤어졌느냐는 매우 중요한 사안 일 수 있다.
“아기를 못가졌습니다. 결혼 몇년 후에도 아기가 안 생겨서 검사를 했었는데, 그 사람의 후천적인 문제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많이 놀란탓에 두사람다 짧은기간의 방황이 있었습니다.
방황은 초기에 수습이 잘 되었고, 그로 인한 불협 화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사람은 자신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매우 높았던가 봅니다.
꽤 여러 번 이혼을 요구했고, 놓아 달라고 사정도 했지만, 제가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따금 가출도 하면서 아내의 자리를 점점 기피하기 시작하더니, 몇 년이 지나서는 완전히 남처럼 대하는 상태에 이르렀고, 제가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이에 모든 정리를 해 놓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제게, 모르는 사람으로 살자면서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이혼서류를 남겨둔 채로 떠나갔습니다.
그게 끝이었습니다.”
현석은 간단하게 요약해서 보고하듯 말했다.
현석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 다른사람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짧은기간의 방황?”
“네, 2주 정도, 그사람도, 저도 각각 따로 살았습니다.”
한상운 사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봐요. 이름이 김현석이라고했죠?”
한지혜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혼남인데, 우리 지수는 아가씨라구요.”
한지혜가 언성을 높혔다.
“내 딸이 자네부서 직원인 것은 알고 있네. 언제부터인가?”
한지혜의 말을 무시하고 한상운사장이 또 물었다.
“프랑스 출장때 였습니다만, 그 전부터 충분한 교감이 있었습니다.”
“그럼, 사귄지 불과 반년만인데, 벌써 동거까지 하게 된건가?”
현석의 대답이 있자말자 이연지여사의 언성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허락도 안 받고, 그런모습부터 보여드리게 되어서.”
“똑똑한 아이인데,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모양을 만든건가? 응?”
이연지 여사의 이말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지수를 향한 책망일 것이다.
이 말에 대해서는 다른 반응이 없는것으로 보아, 동거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아는듯 하다.
동거라는 말이 어감상 그리 썩 좋은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결혼해서 사는것도 동거, 안하고 같이 사는것도 동거 아닌가?
“제가 그런 결점을 달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그것을 감출 수도, 감춰서도 안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따님의 남편으로서, 두분 어르신의 사위로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 어떻게 부끄럽지 않을건데요?”
한지혜가 또 언성을 높혔다.
주로 한지혜가 바르르 하고 달려드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꼬리 잡으면 대책 안선다.
다른사람들은 별 말이 없다.
정병윤이나 박창세는 나중에 어차피 동서가 될 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석이 없는곳에서는 어떤 의견이었는지는 몰라도, 얼굴을 맞댄 상태로는 별 말이 없고, 한지원도 별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석을 노려보는 모습은 눈에 보인다.
“난 이결혼 승낙 못해.”
한지혜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부엌으로 보이는곳으로 사라졌다.
“언니. 왜그래? 현석씨 곤란하게.”
지수가 따라가면서 옷자락을 잡았지만, 한지혜는 눈에 보이지 않는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 * *
현석은 한상운 사장실에 안내되었다.
그날, 집을 방문한 날, 이제 그만 나가보라면서 내 보낼 때, 일간 전화를 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약속이 되어서 회사로 방문을 했다.
“커피 들겠나?”
“네, 주십시오.”
비서가 커피를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자네 골프하나?"
"아직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지수가 골프이야기를 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현석에게 아직 필요한 줄은 모르겠다.
그래서 배우지 않았었다.
또, 너무 비싸기도 하다.
골프가 아직 부자들의 전유물이긴 하지만, 회사의 임원들은 업무상의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것 같고, 언젠가 박일한 사장도 골프를 배워둘 수 있으면 배워두라고 한 적이 있다.
"지수가 아마 자네 만나고부터 골프모임에 빠지기 시작한 거 같아.”
“그건, 몰랐습니다.”
“적당히 준비해서, 적절한 때에 참석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언니들을 자네가 설득하게.”
이건 허락이다.
별로 길게 말 하지 않으면서, 직접적으로 말 하지 않으면서, 현석에게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수와의 관계에 대해 다른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무언가 현석에 대한 조사가 있었으리라.
이미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마음에 안들어도 떼어놓기란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현석도 인생 별로 허투르게 살지 않았고, 나름대로 회사에서 인정 받는 간부이니 뒷조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리 나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저것 회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가 다니는 회사는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계획이 있느냐?
어떤 부분을 맡고 있느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물러났을 때에는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역시 남자들은 업무이야기를 해야 편해지는 모양이다.
* * *
지수의 친구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최고의 미인을 데려가는 행복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다나.
그들 중에 결혼 하지 않은 친구가 몇 있었고, 현석은 그들에게 거하게 식사도 대접했다.
결혼이란게 어차피 이런 복잡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하나하나 거쳐가야 한다.
* * *
그 사이 토요일에 지수를 데리고 고향의 어머니께 다녀 왔다.
하루면 다녀 오지만, 일부러 하룻밤을 묵으면서 예비 며느리와 가까워지는 시간을 만들었다.
시골의 불편한 집이었지만, 지수는 어머니와 함께 한방에서 잠을 자며, 도란도란 몇시간을 이야기를 하는 것을 현석은 잠결에 들었다.
어머니는 쉽게 승낙했다.
어차피 아들이 이혼한 상태이고, 저렇게 예쁜 며느리감을 데려왔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을것이다.
예비 며느리의 볼을 몇번이나 쓰다듬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생겼냐면서, 살갑게 대해 주셨고, 따뜻하게 등을 두드려 주시기도 하고, 떠나올 때는 손을 잡고 한동안 안놓으시기도 했다.
어머니는 지수에게 고마워 하는 것 같았다.
내 아들 구제해 줘서 고마워, 바로 그런 표정이었다.
그렇지, 구제 맞지.
형님과 누나에게 알리면 이제 거의 모든 것이 끝난다.
형님이나 누나는 뭐 반대할 일이 없을것이다.
* * *
지수의 큰 언니인 한지원과 정병윤에게 식사초대를 했다.
아마 한지원에 대한 설득은 지수의 집요함으로 허락을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지원은 친정에 함께 살고 있는 까닭에 현석이 찾아가서 설득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지혜의 집은 하루걸러 한번씩 찾아갔다.
지수는 선물공세와 함께 협박도 하고 설득도 하고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
그렇게 여섯번을 찾아간 날 허락을 받았다.
아마 항복을 받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지수가 언니인 한지혜를 몰아붙혔다.
실제로 현석의 노력보다는 지수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 * *
11월 중순에 지수의 집으로 다시 초대를 받았다.
물론 한지혜의 집을 방문하는 사이에 이미 몇번의 방문이 있었다.
한상운 사장이 뭐라고 했는지, 아니면 이연지 여사와 두 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방문했을때, 그렇게 냉랭한 분위기는 아니었었다.
현석은 장인어른, 장모님 대신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게 한결 더 친근감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우리 왔어요.”
지수는 완전히 친정에 오면서 하는 말투이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현석도 인사를 했다.
하긴 그 사이에 많은 노력을 했고, 가족 개인별로 허락은 받은 상태이니 이제는 움츠려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럴 것이다.
부엌에는 일하는 아주머니가 두분이나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이연지여사와 한지원이 돕고 있고, 한지혜는 옆에서 수다를 떨고있다.
“김서방 어서오게.”
지수와 함께 부엌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니, 이연지 여사가 현석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김서방이라, 이정도면 이제는 완전히 사위가 된 것 같다.
“어서 와요.”
“세상에, 지수 저것 저 뻔뻔한 것 좀 봐. 우리 왔다니. 벌써 결혼한것처럼 말하네.”
한지원은 간단하게 인사를 받았지만, 한지혜는 지수를 나무라것부터 먼저 한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제는 사위로 인정받은 뒤의 초대이니 아무래도 상관 없다.
“언니는 또 왜그래? 언니야. 우리 현석씨 좀 잘 봐줘라.”
“너는 뭐, 제부를 부를 때 헨리라고 부른다면서? 엄마, 제부라고 부르는게 맞아? 김서방 이렇게 불러야 하는거 아닌가?”
한지혜는 지수에게 물어보다가 바로 방향을 바꾸어서 이연지여사에게 물었다.
“둘다 되지만, 제부라고 부르는게 맞는거야.”
이연지 여사가 정리를 해 주었다.
“지수야, 너 정말 헨리라고 부르는게 맞아?”
“으응. 응 그래. 그런데 그건 나만 부르는 이름인데, 설마 언니도 그렇게 부를려구?”
“왜 어때서?”
“안돼 그럼.”
지수가 반대를 했다.
“이것들이 아주 웃기네.”
“제부에게 이것들이 뭐냐? 한지혜. 이젠 말부터 조심하거라.”
이연지 여사가 한지혜의 말에 주의를 주었다.
“아. 미안 쏘리. 그럼, 너를 부를땐 뭐라 부르는데?”
“나?”
“그래 이것아.”
“엘리.”
“엘리?”
“응.”
“못난이가 어찌 엘리가 됫대? 그럼, 제부가 널 부를때, 엘리 사랑해. 그런단 말이지?”
한지혜의 음성이 높아졌다.
“으응. 그렇게 불러.”
“차암, 나, 질투나서 못살겠네, 창세 이 아저씨는 뭐야? 나한테 저런 이쁜 애칭도 하나 안지어주고?”
그러면서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박창세, 이리좀 내려 와봐 봐. 우리 결혼 물르던지, 아니면 다시 생각 좀 해보자.”
이제보니 보통 말괄량이가 아닌가보다.
아무리 지금 친정에 있긴 하지만, 남편에게 저정도 말투이면, 지난번에 현석에게 했던 말들은 아주 얌전한 말에 속한다.
한지원은 그런 한지혜의 뒷모습을 보면서 웃기만 했다.
그때, 정병윤과 박창세가 이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 대체 뭐야. 친정에 와서까지 남편 이름을 뉘집 개 이름 부르듯이 불러 제끼네, 장모님 이거 이래도 되는겁니까?”
박창세가 이연지 여사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마누라 버릇이야 남편이 고쳐야지 왜 장모에게 투덜거려?”
이연지 여사가 손을 수건에 닦고는 박창세를 보고 말하면서 웃었다.
집안이 참 재미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들.”
이연지 여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현석이 인사를 했다.
“어서와요. 김서방.”
맡동서인 정병윤이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아, 이거 형님이라 하지 마시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형님이라 하니까 영 거북살 스러워서 말이야.”
박창세도 악수를 청하고는 머리를 긁었다.
한지원이나 한지혜는 물론 당연히 현석보다 나이가 어리다.
그리고, 맏동서 될 정병윤이 현석보다 1살이 많고, 바로 윗동서가 될 박창세는 2살이 어리다.
그러니, 조금은 어색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라. 맺어진게 그렇게 맺어진 사이인데.
“야, 박창세, 이 인간아. 좀 배워라 배워. 제부는 지 마누라 될 사람에게 애칭도 지어주고, 서로 오글거리게 부르는데, 도대체 넌 뭐하는거냐? 인간아?”
한지혜가 박창세를 향해 주먹을 내 보이면서 말했다.
저 왈가닥과 비교하면 그녀는 참으로 얌전한 편이다.
“내가 왜? 맨날 쫏아다닌 사람이 당신이지 나야? 그래 물르자 물러.”
아까 이층에 대고 한 말을 들은 모양이다.
“이 인간이 뭘 잘했다고.”
“나도 신혼초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걸. 그때 비디오를 좀 찍어놨어야 되는건데 말이야, 이거 억울해서 살겠나, 형님 말씀좀 해 주세요. 내가 신혼초에 어땟는지.”
한지혜의 구박에도 박창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처제, 박서방은 더했지, 내가 옆에서 봐서 잘알지만. 신혼초에도 안그러면 어떡해?”
“형부, 그래도 결혼한지 몇 년이나 됫다고 벌써 저렇게 뺀질거리는지 아세요? 사람이 말이야 초지일관, 변치를 않아야지.”
“어머니, 아버님은 집에 안계십니까?”
그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상운 사장의 느낌이 없어서 현석이 이연지 여사에게 물었다.
“응. 잠시 나가셨네. 점심전에 오실거야.”
“아. 네.”
“저기 가서 서로 이야기나 하고 있게.”
정병윤이 있는 쪽을 보고 하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한쪽에서는 한지혜가 박창세의 볼을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당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박창세가 호인 인것 같다.
아무리 처가에 왔다고 해도 저렇게 일방적으로 양보를 하다니.
“이모부 안녕하세요.”
현석은 정병윤과 박창세가 앉아있는 소파로 자리를 이동하는데 2층에서 한지원의 아이들인 정아정과 정다정이 1층의 작은방에서 나오면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뒤이어 한지혜의 큰아이인 박서윤이 뒤따라 내려오면서 역시 인사를 했다.
둘째는 아장 아장 걷는 정도였기에 방에 있는 모양이다.
이 정도면 이제 지수의 가족은 모두 다 본 것 같다.
다음주에는 형과 누나와 시내에서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되면 가족들은 모두 알게 되는 되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이 끝나는 셈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 쉽다.
이렇게 쉬운것이 맞는건가?
정말 이렇게 쉬운것이 맞는거야?
많은 애를 쓰긴 했지만,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그래도 뭔가모르게 너무쉽게 느껴진다.
쉬우면 좋은거지 뭘?
혹시 지금부터가 어려워 지는건 아니겠지?
설마?
(계속)
“놀랐어. 엄마가 어찌 연락도 없이.”
현석과 지수는 이연지여사의 차가 주차장을 빠져 나가고도 한참이 지날때까지 그자리에 서 있다가, 현석이 놀란가슴을 진정시키고, 한숨을 내쉬자 팔짱을 낀 그녀의 말이다.
이건 암묵적인 인정이라고 받아들여도 될 것 같다.
느낌이 그렇다.
지수를 데리고 집으로 돌어간 것도 아니고, 현석에게 나가라고도 하지 않았다.
“정말 놀랐어. 물 마시려고 거실로 나오는데, 어머니께서 소파에 앉아 계시잖아.”
“때때로 마른반찬 좀 해서 가져다 주겠다고 하시기에, 현관 비밀번호를 가르쳐 드린게 엊그제인데, 바로 오실줄은 나도 몰랐어, 그것도 하필 오늘.”
“안 놀랐어?”
“깜짝 놀라긴 했지만, 그나저나 우리엄마, 허락하신거 같지?”
그녀는 오히려 생글거리기까지 한다.
“그러게, 날 내 쫏지 않으시고, 엘리를 집으로 데리고 가지 않고, ‘다녀가거라’ 하시는걸로 봐서 우리 둘이 동거를 인정하시는 것 같은데.”
“동거? 흐흐 정말 동거이네.”
“그렇지?”
“하긴 둘이 발가벗고 자는것까지 보셨는데 뭐.”
그러면서 쾌활하게 웃었다.
“진짜 보셨을까?”
“보셨을 것 같아. 엄마의 표정으로 봐서.”
“보여 드리면 안되는 모습을 보여드렸네.”
사실 그 모습을 보신것이라면, 정말 황망한 경우이다.
그러나 시간을 되돌릴 수가 없으니 어찌 할 방법은 없다.
“암튼, 아빠는 허락하실거야.”
“왜 그렇게 장담해?”
“여태까지 아빠가 엄마를 이기는걸 본적이 없거든.”
“그래?”
“응.”
“그럼 조만간에 사장님께도 말씀을 드려 두어야겠다.”
“사장님에게?”
“그런 이야기 미리 해야 하는거야?”
“청첩장 돌리면서 말씀드리면 서운하지 않겠어?”
“그렇긴 하겠지만.”
“사장님이 나를 좀 각별해 하시거든. 그러니까 미리 말씀 드려야 해.”
“그건 헨리가 알아서 해.”
“그리고, 허락 떨어지면, 우리 내년 봄, 3~4월쯤에 식 올릴까?”
“흐흥. 나도 그때 좋아.”
이젠 됫다.
가장 어려우리라 생각한 과정들이 너무나 쉽게 정리가 되는 것 같다.
* * *
지수의 집에 인사를 갔다.
무척 큰 단독주택이다.
올 봄에 지수에게 물었을 때는 아파트라고 했었다.
그런데, 그때는 자세히 말하기 그래서 현석이 아파트냐고 묻기에 그냥 그렇다고 대답을 했단다.
그렇지만, 이제 바로잡는다면서 알려주었다.
지수 아버지, 한상운, H사 사장
꽤 잘나가는 좋은회사.
한번쯤 일 해보고 싶은회사.
그게 현석이 가지고 있는 정보의 대부분이다.
지수의 설명으로는 큰형부가 기획실의 차장으로 있단다. 기획실의 책임자는 아니란다.
사위로서는 직급이 높은 편은 아닌 것 같다.
결혼하면 맏동서가 된다.
둘째 사위는 다른 회사를 다니는데, 제법 규모가 있는 중견기업이었고, 아버지가 그 회사의 사장이라고 했다.
결국, 오너의 아들이란 소리다.
맏동서 될 사람은 현석과 비슷한 처지 인 것 같다.
가진것이란게 튼튼한 몸뚱아리 뿐이란 소리다.
혹시 모르지, 감추어진 무언가가 있을지.
나이들이 어떻게 될까?
지수도 형부들의 나이는 기억하지 못했다.
아마 현석보다 나이가 어릴 수도 있다.
그래서 간혹 처가 촌수는 이상한 촌수가 되기도 하지만, 나이가 어찌 되었건 상관없이 처가엘 가면 현석이 막내가 될 것이다.
거기 맞춰서 행동하면 된다.
제법 큰 정원이 있는 집이다.
지수의 아버지 한상운 사장은 강한 카리스마에 호인 풍의 노 신사다.
모두 모이라고 연락을 했는지 지수의 언니들과 형부들까지 모두 모여 있었다.
대문은 안에서 누군가가 스위치를 눌러서 열어준 것이지만, 현관 문을 열어주러 나온 사람이 지수의 언니인 것 같다.
정말 많이 닮은데다가 같은 여자인 점이 그렇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거실로 들어갔다.
“언니.”
“언니 부르지 마라.”
지수가 그녀를 불렀지만, 되돌아오는 대답에는 찬바람이 쌩 불었다.
언니들도 거기가 지수와 같은 모양이라고 했었지?
그리고 또 언니들도 지수처럼 섹스에 그렇게 열정적일까?
아니, 이 상황에서 지수의 알몸과 수풀이 생긴 모습이 같다는게 왜 생각 나는거야?
그리고 언니들의 성생활이 왜 궁금한데?
너랑 상관없는 일이잖아?
김현석. 너 지금 긴장해야 하는거 아냐?
지금 처가 예정인 곳에 사위 면접보러 온거야.
속으로는 긴장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왜 그런것이 먼저 생각 났는지 알 수가 없다.
웃음이 나오려 했지만 웃음만은 참아야 한다.
커다란 거실.
그곳 소파에 지수의 아버지 한상운이 앉아있고, 그 옆으로 지수 어머니 이연지 여사가 보인다.
2주일 전에 이미 만났으니, 구면인 셈이다.
그리고 그 맞은편에 앉은 두명의 남자, 이들이 장차 동서가 될 사람들일 것이다.
큰형부가 정병윤, 둘째형부가 박창세라고 했던가?
이연지 여사의 옆에 앉은 여인은 지수의 언니일 것이다.
지수가 설명해준 헤어스타일로 보면 분명 큰언니인 한지원, 방금 문을 열어준 사람이 둘째 언니인 한지혜일 것이다.
한지원, 한지혜, 한지수, 딸만 셋이다.
지수의 이국적인 모습 때문에 전에 프랑스에서 혹시 혼혈? 그렇게 생각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은 완전한 착각이다.
그녀의 아버지, 어머니 모두 전혀 외국인이 아니지만, 그녀의 어머니 이연지 여사를 빼다박은듯이 닮은 세 재매의 모습이, 모두 그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
다만, 지수가 말한, 언니들이 자기보다 훨씬 예쁘다는 말은 조금은 다른 것 같다.
적어도 현석이 보기에는 지수가 가장 예뻐보인다.
지수는 귀엽고, 온화하면서 부드럽고, 우아한 기품이 있는 그런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는데 반해, 큰언니인 한지원은 다소곳한 느낌의 우아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고, 둘째인 한지혜는 쌀쌀하고 찬바람이 불 것 같은 매서운 느낌의 아름다움이다.
“안녕하십니까. 김현석 입니다. 인사드리겠습니다.”
현석은 그들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지수 아버지를 보고 큰절을 했다.
그리고 지수와 현석이 앉으라는 뜻으로 비어있는 자리에 가서 앉았다.
“엄마, 아빠, 저 왔어요.”
지수는 한상운에게로 가서 볼에 입을 맞추었다.
한상운은 반갑게 맞이 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른체 하지도 않았다.
아마 적당하게 받아주는 수준이랄까?
그 사이에 지수는 부지런히 지수의 본가에 드나들었었다.
하루는 휴가를 내기도 했다.
그리고 집에 다녀온 이야기 이며, 아버지 한상운사장을 만난 이야기를 현석에게 모두 이야기 했었다.
그래서 지수의 아바지와 어머니가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이미 충분히 들었다.
바로 인사를 드리러 가겠다는 현석의 말에, 지수가 반대를 했고, 그 사이에 본가에 드나들며, 현석에 대해 설명하고, 이해를 시켰다고 했다.
그리고 그렇게 2주가 흘렀고, 오늘에야 오게 된 것이다.
가족들은 지수와 현석의 관계가 어느정도인지 이미 다 들었을것이다.
설사 마음에 안들어서 반대를 하고싶다고 하더라도 이미 떼어놓기 힘든다는 것을 알고 있을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이연지 여사의 그런 방문이 꼭 안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그러나 부모는 몰라도 언니들은 충분히 시비를 걸어볼 수가 있다.
“자네, 재혼이라고?”
한상운사장의 입에서 나온 첫마디다.
“뭐? 재혼? 그럼 이미 결혼을 했었단 말이야? 지수야 너 그거 맞는말이야?”
한지혜가 거의 고함을 지르듯 펄쩍 뛰면서 지수에게 물었다.
한지원도 놀란 눈으로 현석을 바라보았다.
언니들은 거기까지는 못들은 모양이다.
난리가 아니었다.
언니들뿐만 아니라 그녀의 남편들도 모두 한마디씩 했다.
이것이 가장 큰 난제일 줄 알았다.
무었보다 치명적인 결점이 아닌가?
얼마나 주위의 사람들이 소란스러운지 현석이 대답을 했는지 아닌지도 모르겠다.
“사별했나?”
한상운 사장의 질문이 이어졌다.
말소리는 담담했고, 침착했다.
억양도 그다지 높지 않았다.
“아닙니다. 헤어졌습니다.”
“왜 헤어졌는가?”
헤어진 이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건 무척 중요하다.
아니 가장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다.
현석이 총각이라면 나오지도 않을 이야기 이지만, 이혼을 했기에 어떻게 헤어졌느냐는 매우 중요한 사안 일 수 있다.
“아기를 못가졌습니다. 결혼 몇년 후에도 아기가 안 생겨서 검사를 했었는데, 그 사람의 후천적인 문제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처음에는 많이 놀란탓에 두사람다 짧은기간의 방황이 있었습니다.
방황은 초기에 수습이 잘 되었고, 그로 인한 불협 화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사람은 자신의 문제로 인한 것이라는 피해의식이 매우 높았던가 봅니다.
꽤 여러 번 이혼을 요구했고, 놓아 달라고 사정도 했지만, 제가 반대를 했습니다.
그러자, 이따금 가출도 하면서 아내의 자리를 점점 기피하기 시작하더니, 몇 년이 지나서는 완전히 남처럼 대하는 상태에 이르렀고, 제가 해외 출장을 다녀온 사이에 모든 정리를 해 놓고, 집을 나가버렸습니다.
제게, 모르는 사람으로 살자면서 미안하다는 편지와 함께 이혼서류를 남겨둔 채로 떠나갔습니다.
그게 끝이었습니다.”
현석은 간단하게 요약해서 보고하듯 말했다.
현석이 그렇게 말하는 사이 다른사람들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듣고만 있었다.
“짧은기간의 방황?”
“네, 2주 정도, 그사람도, 저도 각각 따로 살았습니다.”
한상운 사장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봐요. 이름이 김현석이라고했죠?”
한지혜가 물었다.
“네.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 이혼남인데, 우리 지수는 아가씨라구요.”
한지혜가 언성을 높혔다.
“내 딸이 자네부서 직원인 것은 알고 있네. 언제부터인가?”
한지혜의 말을 무시하고 한상운사장이 또 물었다.
“프랑스 출장때 였습니다만, 그 전부터 충분한 교감이 있었습니다.”
“그럼, 사귄지 불과 반년만인데, 벌써 동거까지 하게 된건가?”
현석의 대답이 있자말자 이연지여사의 언성이 들려왔다.
“죄송합니다. 허락도 안 받고, 그런모습부터 보여드리게 되어서.”
“똑똑한 아이인데,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 이모양을 만든건가? 응?”
이연지 여사의 이말은 질문이라기 보다는 지수를 향한 책망일 것이다.
이 말에 대해서는 다른 반응이 없는것으로 보아, 동거하고 있다는 것은 모두 아는듯 하다.
동거라는 말이 어감상 그리 썩 좋은 말이 아니다.
그렇지만, 따지고 보면, 결혼해서 사는것도 동거, 안하고 같이 사는것도 동거 아닌가?
“제가 그런 결점을 달고 있는 것은 분명하고, 그것을 감출 수도, 감춰서도 안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따님의 남편으로서, 두분 어르신의 사위로서 조금도 부끄럽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저희를 믿어주십시오.”
“말은 번지르르하게 잘하네. 어떻게 부끄럽지 않을건데요?”
한지혜가 또 언성을 높혔다.
주로 한지혜가 바르르 하고 달려드는 형국이다.
그리고, 이렇게 말꼬리 잡으면 대책 안선다.
다른사람들은 별 말이 없다.
정병윤이나 박창세는 나중에 어차피 동서가 될 사이다.
그래서 그런지, 현석이 없는곳에서는 어떤 의견이었는지는 몰라도, 얼굴을 맞댄 상태로는 별 말이 없고, 한지원도 별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석을 노려보는 모습은 눈에 보인다.
“난 이결혼 승낙 못해.”
한지혜는 그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그리고 부엌으로 보이는곳으로 사라졌다.
“언니. 왜그래? 현석씨 곤란하게.”
지수가 따라가면서 옷자락을 잡았지만, 한지혜는 눈에 보이지 않는곳으로 사라져 버렸다.
* * *
현석은 한상운 사장실에 안내되었다.
그날, 집을 방문한 날, 이제 그만 나가보라면서 내 보낼 때, 일간 전화를 하라고 했었다.
그리고 약속이 되어서 회사로 방문을 했다.
“커피 들겠나?”
“네, 주십시오.”
비서가 커피를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자네 골프하나?"
"아직 아닙니다.”
그러고 보니 언젠가 지수가 골프이야기를 했었던 적이 있다.
그러나, 현석에게 아직 필요한 줄은 모르겠다.
그래서 배우지 않았었다.
또, 너무 비싸기도 하다.
골프가 아직 부자들의 전유물이긴 하지만, 회사의 임원들은 업무상의 필요에 의해서 배우는것 같고, 언젠가 박일한 사장도 골프를 배워둘 수 있으면 배워두라고 한 적이 있다.
"지수가 아마 자네 만나고부터 골프모임에 빠지기 시작한 거 같아.”
“그건, 몰랐습니다.”
“적당히 준비해서, 적절한 때에 참석하게.”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언니들을 자네가 설득하게.”
이건 허락이다.
별로 길게 말 하지 않으면서, 직접적으로 말 하지 않으면서, 현석에게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는 것이다.
그리고 지수와의 관계에 대해 다른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무언가 현석에 대한 조사가 있었으리라.
이미 동거를 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으니, 마음에 안들어도 떼어놓기란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나왔을 수도 있다.
그리고, 현석도 인생 별로 허투르게 살지 않았고, 나름대로 회사에서 인정 받는 간부이니 뒷조사를 했다고 하더라도 그리 나쁜 결과가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것저것 회사 이야기를 나누었다.
자네가 다니는 회사는 다가오는 위기에 대한 계획이 있느냐?
어떤 부분을 맡고 있느냐?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물러났을 때에는 편안한 기분이 되었다.
역시 남자들은 업무이야기를 해야 편해지는 모양이다.
* * *
지수의 친구들을 만나서 인사를 나누었다.
최고의 미인을 데려가는 행복한 남자가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었다나.
그들 중에 결혼 하지 않은 친구가 몇 있었고, 현석은 그들에게 거하게 식사도 대접했다.
결혼이란게 어차피 이런 복잡한 통과의례를 거쳐야 하는것이기에 기쁜 마음으로 하나하나 거쳐가야 한다.
* * *
그 사이 토요일에 지수를 데리고 고향의 어머니께 다녀 왔다.
하루면 다녀 오지만, 일부러 하룻밤을 묵으면서 예비 며느리와 가까워지는 시간을 만들었다.
시골의 불편한 집이었지만, 지수는 어머니와 함께 한방에서 잠을 자며, 도란도란 몇시간을 이야기를 하는 것을 현석은 잠결에 들었다.
어머니는 쉽게 승낙했다.
어차피 아들이 이혼한 상태이고, 저렇게 예쁜 며느리감을 데려왔는데, 반대할 이유는 없을것이다.
예비 며느리의 볼을 몇번이나 쓰다듬으면서 어쩌면 이렇게 예쁘게 생겼냐면서, 살갑게 대해 주셨고, 따뜻하게 등을 두드려 주시기도 하고, 떠나올 때는 손을 잡고 한동안 안놓으시기도 했다.
어머니는 지수에게 고마워 하는 것 같았다.
내 아들 구제해 줘서 고마워, 바로 그런 표정이었다.
그렇지, 구제 맞지.
형님과 누나에게 알리면 이제 거의 모든 것이 끝난다.
형님이나 누나는 뭐 반대할 일이 없을것이다.
* * *
지수의 큰 언니인 한지원과 정병윤에게 식사초대를 했다.
아마 한지원에 대한 설득은 지수의 집요함으로 허락을 받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한지원은 친정에 함께 살고 있는 까닭에 현석이 찾아가서 설득하는 것이 조금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지혜의 집은 하루걸러 한번씩 찾아갔다.
지수는 선물공세와 함께 협박도 하고 설득도 하고 별의별 수단을 다 동원했다.
그렇게 여섯번을 찾아간 날 허락을 받았다.
아마 항복을 받았다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지수가 언니인 한지혜를 몰아붙혔다.
실제로 현석의 노력보다는 지수의 노력이 절대적이었다.
* * *
11월 중순에 지수의 집으로 다시 초대를 받았다.
물론 한지혜의 집을 방문하는 사이에 이미 몇번의 방문이 있었다.
한상운 사장이 뭐라고 했는지, 아니면 이연지 여사와 두 분이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방문했을때, 그렇게 냉랭한 분위기는 아니었었다.
현석은 장인어른, 장모님 대신 아버님, 어머님이라는 호칭을 썼다.
그게 한결 더 친근감이 들 것이기 때문이다.
“엄마, 우리 왔어요.”
지수는 완전히 친정에 오면서 하는 말투이다.
“안녕하세요. 어머니.”
현석도 인사를 했다.
하긴 그 사이에 많은 노력을 했고, 가족 개인별로 허락은 받은 상태이니 이제는 움츠려야 할 필요가 없으니 그럴 것이다.
부엌에는 일하는 아주머니가 두분이나 있다.
그리고 그 옆에서 이연지여사와 한지원이 돕고 있고, 한지혜는 옆에서 수다를 떨고있다.
“김서방 어서오게.”
지수와 함께 부엌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니, 이연지 여사가 현석을 보면서 하는 말이다.
김서방이라, 이정도면 이제는 완전히 사위가 된 것 같다.
“어서 와요.”
“세상에, 지수 저것 저 뻔뻔한 것 좀 봐. 우리 왔다니. 벌써 결혼한것처럼 말하네.”
한지원은 간단하게 인사를 받았지만, 한지혜는 지수를 나무라것부터 먼저 한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이제는 사위로 인정받은 뒤의 초대이니 아무래도 상관 없다.
“언니는 또 왜그래? 언니야. 우리 현석씨 좀 잘 봐줘라.”
“너는 뭐, 제부를 부를 때 헨리라고 부른다면서? 엄마, 제부라고 부르는게 맞아? 김서방 이렇게 불러야 하는거 아닌가?”
한지혜는 지수에게 물어보다가 바로 방향을 바꾸어서 이연지여사에게 물었다.
“둘다 되지만, 제부라고 부르는게 맞는거야.”
이연지 여사가 정리를 해 주었다.
“지수야, 너 정말 헨리라고 부르는게 맞아?”
“으응. 응 그래. 그런데 그건 나만 부르는 이름인데, 설마 언니도 그렇게 부를려구?”
“왜 어때서?”
“안돼 그럼.”
지수가 반대를 했다.
“이것들이 아주 웃기네.”
“제부에게 이것들이 뭐냐? 한지혜. 이젠 말부터 조심하거라.”
이연지 여사가 한지혜의 말에 주의를 주었다.
“아. 미안 쏘리. 그럼, 너를 부를땐 뭐라 부르는데?”
“나?”
“그래 이것아.”
“엘리.”
“엘리?”
“응.”
“못난이가 어찌 엘리가 됫대? 그럼, 제부가 널 부를때, 엘리 사랑해. 그런단 말이지?”
한지혜의 음성이 높아졌다.
“으응. 그렇게 불러.”
“차암, 나, 질투나서 못살겠네, 창세 이 아저씨는 뭐야? 나한테 저런 이쁜 애칭도 하나 안지어주고?”
그러면서 그녀는 벌떡 일어나서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앞에서 소리를 질렀다.
“야. 박창세, 이리좀 내려 와봐 봐. 우리 결혼 물르던지, 아니면 다시 생각 좀 해보자.”
이제보니 보통 말괄량이가 아닌가보다.
아무리 지금 친정에 있긴 하지만, 남편에게 저정도 말투이면, 지난번에 현석에게 했던 말들은 아주 얌전한 말에 속한다.
한지원은 그런 한지혜의 뒷모습을 보면서 웃기만 했다.
그때, 정병윤과 박창세가 이층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아, 대체 뭐야. 친정에 와서까지 남편 이름을 뉘집 개 이름 부르듯이 불러 제끼네, 장모님 이거 이래도 되는겁니까?”
박창세가 이연지 여사를 향해 큰소리로 말했다.
“마누라 버릇이야 남편이 고쳐야지 왜 장모에게 투덜거려?”
이연지 여사가 손을 수건에 닦고는 박창세를 보고 말하면서 웃었다.
집안이 참 재미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들.”
이연지 여사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현석이 인사를 했다.
“어서와요. 김서방.”
맡동서인 정병윤이 반갑게 악수를 청했다.
“아, 이거 형님이라 하지 마시오, 나보다 나이 많은 사람이 형님이라 하니까 영 거북살 스러워서 말이야.”
박창세도 악수를 청하고는 머리를 긁었다.
한지원이나 한지혜는 물론 당연히 현석보다 나이가 어리다.
그리고, 맏동서 될 정병윤이 현석보다 1살이 많고, 바로 윗동서가 될 박창세는 2살이 어리다.
그러니, 조금은 어색하긴 할 것이다.
하지만, 어찌하라. 맺어진게 그렇게 맺어진 사이인데.
“야, 박창세, 이 인간아. 좀 배워라 배워. 제부는 지 마누라 될 사람에게 애칭도 지어주고, 서로 오글거리게 부르는데, 도대체 넌 뭐하는거냐? 인간아?”
한지혜가 박창세를 향해 주먹을 내 보이면서 말했다.
저 왈가닥과 비교하면 그녀는 참으로 얌전한 편이다.
“내가 왜? 맨날 쫏아다닌 사람이 당신이지 나야? 그래 물르자 물러.”
아까 이층에 대고 한 말을 들은 모양이다.
“이 인간이 뭘 잘했다고.”
“나도 신혼초엔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았을걸. 그때 비디오를 좀 찍어놨어야 되는건데 말이야, 이거 억울해서 살겠나, 형님 말씀좀 해 주세요. 내가 신혼초에 어땟는지.”
한지혜의 구박에도 박창세는 싱글싱글 웃으면서 말했다.
“처제, 박서방은 더했지, 내가 옆에서 봐서 잘알지만. 신혼초에도 안그러면 어떡해?”
“형부, 그래도 결혼한지 몇 년이나 됫다고 벌써 저렇게 뺀질거리는지 아세요? 사람이 말이야 초지일관, 변치를 않아야지.”
“어머니, 아버님은 집에 안계십니까?”
그 시끄러운 속에서도 한상운 사장의 느낌이 없어서 현석이 이연지 여사에게 물었다.
“응. 잠시 나가셨네. 점심전에 오실거야.”
“아. 네.”
“저기 가서 서로 이야기나 하고 있게.”
정병윤이 있는 쪽을 보고 하는 말이다.
“알겠습니다.”
한쪽에서는 한지혜가 박창세의 볼을 손으로 잡고 이리저리 당기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니 박창세가 호인 인것 같다.
아무리 처가에 왔다고 해도 저렇게 일방적으로 양보를 하다니.
“이모부 안녕하세요.”
현석은 정병윤과 박창세가 앉아있는 소파로 자리를 이동하는데 2층에서 한지원의 아이들인 정아정과 정다정이 1층의 작은방에서 나오면서 인사를 한다.
그리고 뒤이어 한지혜의 큰아이인 박서윤이 뒤따라 내려오면서 역시 인사를 했다.
둘째는 아장 아장 걷는 정도였기에 방에 있는 모양이다.
이 정도면 이제 지수의 가족은 모두 다 본 것 같다.
다음주에는 형과 누나와 시내에서 만나서 함께 식사를 하기로 했으니, 그렇게 되면 가족들은 모두 알게 되는 되었다.
가장 중요한 일들이 끝나는 셈이다.
그런데, 이건 너무 쉽다.
이렇게 쉬운것이 맞는건가?
정말 이렇게 쉬운것이 맞는거야?
많은 애를 쓰긴 했지만, 상당한 어려움이 있으리라 생각 했는데, 그래도 뭔가모르게 너무쉽게 느껴진다.
쉬우면 좋은거지 뭘?
혹시 지금부터가 어려워 지는건 아니겠지?
설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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