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살 어린 여친 - 4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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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인공 여진이의 사진은 앨범-몸짱-온몸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그녀 사진을 모두 삭제했는데, 딱 한 장만 월간베스트라서 못 지우게 되었던 지라. ㅠ 그리고 절대 영상 공유 안 합니다. 관련 쪽지는 답장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4.
긴 애무,
부드러운 삽입,
마지막에는 밖에다.
여진이는 내 가슴 속에서 얼굴을 들 줄 몰랐다. 무어라 말을 걸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가 진정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여진이와 나는 자연스럽게 길거리를 함께 걷으며 살며시 손을 잡는 사이가 되었다. 시린 1월이었지만 여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 그녀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우리는 ‘명소이지만 자주 가기 힘든 곳’만을 골라가며 걸었다. 고맙게도 서울은 정말이지 큰 도시라 생소한 동네가 널려 있었다.
그렇게 걷고 걷다가 적당히 배가 고플 때면 주변의 맛집을 찾아가 맥주를 나눠 마시며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감탄하곤 하였다.
배가 부르거나 적당한 취기가 돌면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올 때 보다 더 따뜻해진 체온을 서로에게 나눠줄 만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만나서 항상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우린 두 번 걸러 한 번 정도 섹스를 나눴다. 내 욕심 같아서는 언제나 그 아름다운 나신을 안고 싶었지만, 여진이로 하여금 내가 그것 때문에 자신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 다시 한 번 서울에 고마웠던 것은 정말이지 모텔이 곳곳에 널려있다는 것.
1월의 나는 백수였고, 여진이는 방학 중이라 우리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서로를 불러내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여진이와 함께 있을 때면 내가 실직 상태라는 것도,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는 것도 거짓말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우린 1월 한 달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정확하게 우리가 어떤 사이라고 정의내리기 주저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 검은 눈동자에 하트가 걸려있는 것이 확실했고 나 역시 여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애정을 담았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마음을 말로 뱉어내지 않은 채, 오로지 몸으로만 사랑을 표현했다. 아마도 우리는 상대방이 먼저 우리의 사이를 단어로써 표현해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구정 직전, 우리는 의도치 않게 외박을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집에 들어가길 주저하던 여진이가 잠시 전화를 하겠다며 자리를 비우더니,
“엄마한테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어.”라며 싱긋 웃으며 돌아왔다.
그 순간 내가 했던 생각은 ‘나 혼자 좋아서 여진이를 품는 것은 아니 구나’라는 것이다. 여진이 역시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기 때문에 외박까지 하면서 내 옆에 머물러 준다는 생각에 거창한 감동이 밀려왔다.
우린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근처 깨끗해 보이는 모텔로 들어갔다. 제법 비싼 숙박료를 요구해서 의아했지만, 실제로 방에 들어가 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은 복층 구조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bar) 형식의 파티 테이블이 있었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어두운 조명 아래 커다란 욕조와 침대가 보였다.
우린 옷을 벗어 한 쪽에 개어 놓은 후 두툼한 가운을 입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준비된 입욕제 역시 꽤나 고가의 것이었다. 솔가루를 말려 빻은 듯 한 입욕제를 한 움큼 넣으니, 초록색 물감이 퍼지듯 욕조가 푸르게 물들었다. 욕조의 물이 다 받아진 이후에는 나란히 마주 앉는 자세로 몸을 뉘였다. 입욕제의 녹차향이 퍼지자 따스한 기운이 가슴팍에 전해졌다.
서너 명은 충분히 들어갈 만한 욕조였지만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았기에 여진이와 나는 손을 길게 뻗으면 서로의 얼굴을 만질 수 있는 거리에서 속삭이듯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번에도 생각했던 건데, 넌 가슴이 참 예뻐.”
“그런 소리 처음 들어봐.” 여진이는 한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가리며 웃었다.
“꽤나 들어봤을 거 같은데. 가슴 예쁘다는 말.”
“음....... 생각해보니 내 가슴을 본 남자는......”
여친이는 말을 줄였다. 아마 ‘내 가슴을 본 남자는 오빠와 전 남친 뿐이니’라는 말이 잘렸을 것이다. 나는 내가 그녀의 첫 남자가 아니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여자들은? 친구들은 네 가슴 예쁘다는 말 안 해?”
“사실은 어떤 친구가 비슷한 말 한 적 있었어. 내 가슴 예쁘다고. 그런데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지....... 오빠도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나 기분 좋으라고?” 매우 쑥스러워 했지만 그 칭찬이 싫진 않은 눈치였다.
그녀 기분 좋으라고 한 빈말이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여진이의 가슴은 무척 아름다운 라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단순히 크기만 하다면 예쁘단 생각이 안 들 텐데, 그녀의 가슴은 적당히 봉긋한 사이즈에 매우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단물을 잔뜩 머금은 하얀 복숭아가 그녀의 어깨 아래 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사이즈를 묻자 여진이는 손으로 입술을 살짝 가리며 75B 컵이라고 대답하였다. 초록빛 욕조 안에서 새하얀 그녀의 가슴을 보는 것만으로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진이의 가슴은 흔히 말하는 물방울 가슴이라 한다.
몸이 충분히 덥혀진 후 나는 여진이를 내 쪽으로 당겨 뒤에서 안아주었다. 그녀의 체온인지, 물의 온도인지 모를 포근함이 내 가슴팍에 전해졌다. 자연스럽게 내 손은 그녀의 가슴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봉긋한 가슴을 가볍게 말아 쥐자 손바닥 전체에서 묵직함이 느껴졌다.
이런 걸 가슴에 달고 다니면 꽤나 무겁지 않냐는 말에 “안 그래도 가끔씩 어깨가 아파.”라고 대답하는 여진이. 나는 한참 동안 여진이의 어깨를 매만지듯 주물러 주었다.
욕조에서 나온 우리는 서로의 몸에서 물기를 닦아준 이후 다시 두툼한 가운을 입고 침대로 향했다. 노곤노곤한 기분과 함께 싫지 않은 몽롱함이 밀려왔다. 잠기운을 가득 안은 우리는 빽허그 자세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목욕을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도 여전히 민낯을 안 보이려는 여진이를 놀리기도 하고, 그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고, 이내 우리는 몸을 섞었다.
여진이의 꽃잎 안으로 내 페니스를 밀어 넣으면서 생각해봤다.
‘이번이 몇 번째 섹스더라, 세 번째? 네 번째?’
아마도 나는 여진이를 만나는 동안 다른 여자를 안지 않으리라, 내가 지윤이를 만나면서 그러하였듯.
‘아! 지윤이라니! 여진이를 안고 있는 지금 지윤이를 생각하다니!’
여진이는 내 밑에서 눈도 못 뜬 채 가쁘게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큰 미안함이 몰려왔다. 나는 급히 지윤이에 대한 생각을 걷어내고 더욱 힘껏 여진이를 안아주었다.
사정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그녀에게 안에다 사정해도 되냐고 물으니 그녀는 당황하며,
“아....... 어떡하지?”라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런 여진이가 귀여워 페니스를 빼내어 그녀의 배 위에 길게 사정하였다.
---
욕조에서 덥혀진 몸으로 섹스를 해서인지 땀이 꽤나 많이 흘렀다. 여진이 역시 내 밑에서 몸을 포개고 있었기에 나의 땀으로 그녀의 가슴과 배 역시 젖어버렸다. 여진이는 내 등을 끌어안은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며 “덥지?”라고 물었다.
노곤한 몸을 움직이고나니 꽤나 무거운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여진이에게 내 왼쪽 팔을 내주며 팔베개를 만들어주었고, 그녀는 그 안으로 쏘옥 들어와 잠을 청하려는 듯 새근거렸다.
그러다 문득 여진이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였다. 사실 별 뜻 없이 내뱉은 말인데 여진이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재미난 이야기?”라고 되물었다. 나는 내가 어렸을 적 잠들 때마다 어머니가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셨는데, 그게 생각이 나서 그렇다고 답했다. 여진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는 밤에도 어둡지 않았대. 낮에 해가 떠서 파란 하늘이 있었다면, 낮에는 달과 함께 초록 하늘이었다는 거야. 지금도 가끔씩 달의 바깥 가장자리에 초르스름한 테두리가 보일 때가 있잖아? 그게 그때의 흔적이래.”
나는 가끔 달무리가 질 때의 띠를 생각했다. 그럴 듯 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대. 생각해봐. 낮에는 해가 푸른빛을 내서 덥고, 밤에도 달이 초록빛을 내서 덥고. 게다가 달의 초록빛도 열기를 뿜어내서 만만찮게 더웠다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도 잠에 못 들고 밤도 낮처럼 일을 해야 했던 거야.”
흥미로웠다.
“결국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렸어. 제발 해의 푸른빛과 달의 초록빛 중 하나를 거두어 하루의 절반을 쉴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하느님은 해와 달에게 물었어 너희 중 누가 빛을 포기하겠냐고. 그런데 해도 달도 자신의 빛을 포기하기 싫었던 거야. 결국 하느님은 해와 달에게 씨름을 시켜 진 사람이 빛을 포기하는 걸로 중재를 했대.”
듣는 나만큼이나 여진이도 이야기에 심취해 재미나게 풀어냈다.
“씨름의 승자는 태양이었어. 태양은 달과 한참을 밀고 당기며 씨름을 하다가 결국 달을 번쩍 들어 내던진 거야. 그때 달은 크게 다쳐서 얼굴이 움푹 들어가기도 하고 퉁퉁 붓기도 했나봐.”
나는 여진이의 이야기를 자르며 “아~ 그래서 달의 모양이 바뀌기 시작한 거구나?”라고 끼어들었다.
“응. 그래서 그 이후로 달은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는 거야. 그때 다친 것 때문에.”
“그리고 초록빛도 잃게 된 거고?”
“응. 하느님은 달에게서 초록빛을 거두어들이신 후 어디에 갖다 버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셨대. 그러다가 사람이 살지 않은 북쪽 마을에 초록빛을 풀어놓았는데, 그게 지금의 북극 오로라가 되었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나는 그녀를 꼬옥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 잠들기 전에 해줬던 옛날이야기야.”
“은비 까비 동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였어.”
우린 웃으며 잠이 들었다.
---
여섯 번 정도의 데이트와 서너 번 정도의 섹스를 나눈 후, 여진이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정사를 꺼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여진이의 아버지는 그녀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사고로 돌아가셨고, 이후 어머니 홀로 딸을 키워 오신 것.
어머니의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원래 내가 고등학교 때도 엄마한테 남자친구 있는 거 알았는데, 조심조심 숨기더라. 그러다가 내가 대학가니까 남친 있다고, 그러면서 아저씨랑 밥도 같이 먹고, 아저씨가 용돈도 가끔 주고 그래. 그런데 그런 느낌 있잖아? 나를 좋아해서 예뻐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 엄마한테 잘 보이려고 잘 해주는 그런 거. 딱 그런 느낌이라 별로 정이 안 가. 그래도 엄마 생각하면 나도 아저씨한테 잘 하려고 그러는데, 그게 잘 안 돼.”라며 덤덤하게 이야기 하였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 손으로 입술을 가리며 “엄마도 엄마 인생 살아야지, 나 시집가고 그러면 엄마 혼자 남을 텐데. 사실 난 아직 스무 살 밖에 안 됐으니, 나보다는 엄마가 빨리 시집갔으면 좋겠어.”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가정사를 덤덤하게 말한 여진이였지만, 말을 마치자 조금은 쑥스러운 듯 입을 가리며 말했다.
“이거, 누군가에게 한 적 없는 이야기야. 내가 오빠를 정말 많이 좋아하나봐.”
힘들게 자신을 길러낸 어머니의 희생과 수고를 아는 것일까? 여진이는 스무 살 어린 여자아이답지 않게 의젓한 태도로 이야기 해주었다. 동시에 지윤이가 오버랩 되었다. 내가 지윤이에게 들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용돈을 적게 주었다느니 카드가 한도초과 되었는데 새로 발급 안 해주었다느니 따위의 것뿐이었다. 여진이는 외동딸이었음에도 마음 씀씀이가 7남매 중 맏딸과도 같이 넉넉하고 예뻤다.
실제로 여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평범한 스무 살 여자아이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번화가를 지나다니며 종종 받게 되는 전단지를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이 사람들 이거 다 돌려야 돈 받을 수 있단 말이야. 얼마나 춥겠어? 그러니까 받아 줘야해.”
그러면서도 그 전단지를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손이 시리더라도 꼭꼭 손에 말아 쥐었다가 쓰레기통이 보여야 버리곤 하였다.
수수한 그녀의 차림도 어느 순간부터 기특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여진이를 봤을 때는 배트맨 코스프레 마냥, 검은 재킷에 검은 티, 검은 바지 차림이었는데, 알고 보니 경제사정이 어려운 어머니에게 많은 용돈을 받을 수 없어서 옷차림이 절로 검소해진 것이다. 설혹 그녀가 아르바이트로 꽤나 두둑한 돈을 손에 쥐더라도 일단 어머니에게 대부분을 안겨드리고 남은 돈으로 저가 브랜드를 구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스타일을 중시하는 편이라 처음 그녀의 배트맨 코스프레가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그 속내를 알고 난 이후부터는 그녀의 옷차림이 새로운 패션 경향 중 하나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그녀의 패션을 ‘효도룩’ 혹은 ‘개념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나는 틈날 때 마다 그 또래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의 옷을 선물하곤 하였지만, 여진이는 분별없이 받지 않았다. 너무 고가의 선물은 내가 불쾌하지 않을 말들을 골라가며 거절하였다.
“나 아직 학생인데 청바지에 운동화면 되지, 왜 이런 치마가 필요하고 구두가 필요해? 그냥 이걸로 나 맛난 거 사주라, 응? 아니면 나 책가방 필요한데, 중고나라에 내가 봐둔 거 있거든......”
이런 식이었다. 그녀의 말에서 틀린 구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예쁜 옷 입히고 싶은 마음에,
“요즘 대학생들 학교 갈 때도 높은 구두에 짧은 치마 입고 작은 핸드백 들고 다니잖아? 너도 하나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여진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오빠! 나 책 많아서 항상 책가방 매고 다녀~ 그리고 나 한 번도 힐 신어 본 적 없는데?”
나는 이런 여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그 자리에서 꼬옥 안아주지 않고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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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구정은 1월 중순이었다. 이른 구정을 실직상태로 보낸 나는, 가족들의 눈이 부담스러워 이틀만 본가에서 보내고 나머지 시간을 여진이와 보냈다. 여진이 역시 딱히 찾아갈 친척이 없어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무료한 명절을 보냈을 것이다. 구정 당일 무엇을 했냐고 묻자 여진이는 어머니와 함께 떡국을 끓여 먹었는데, 어머니 보다 자신이 요리에 능하여 항상 자신이 떡국을 끓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빠는 떡국 챙겨 먹었어?”라며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하자 “조금만 먹어. 그러다가 금방 마흔 살 되겠다.”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여진이는 내 오피스텔까지 따라와서 손수 떡국을 끓여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솜씨는 꽤나 대단한 축이었다. 떡국 육수를 미리 준비한 사골 국물로 냈는데, 그 진득한 깊이가 스무 살 여자아이의 손맛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더불어 자신이 직접 담궜다는 설익은 배추김치를 한 포기 가져왔는데, 이 또한 젓갈이 시원한 것이 평소 사먹는 김치보다 맛이 좋았다.
음식 솜씨를 칭찬하자 그녀는 “우리 엄마 항상 나가서 일하니까 어려서부터 집안일은 내가 했거든. 우리 엄마는 내가 담근 김치 아니면 못 먹겠대.”라며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구직은 생각도 못한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옛 직장동료가 경쟁 연구소로 적을 옮기면서 덩달아 나를 추천한 것이다. 이 친구와는 대학동기이기도 했는데, 마침 그 연구소의 국장님으로 계시던 분이 우리의 대학 은사님이기도 했다.
이튿날 나는 바로 연구소로 찾아가 국장님을 뵙고, 새롭게 손 맞추게 될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수더분한 친구 역시 마치 어제 봤다는 듯 “여어~ 왔어?”하며 아는 체 해주었다. 이전 연구소와는 다르게 연구원 둘이서 넓은 연구실 하나를 쓰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호젓한 자연 속에 위치한 연구소 부지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첫 출근 며칠 전에는 뜻하지 않게 새로운 연구소 회식에도 끼게 되었다. 국장님이 주관하는 회식이었는데, 어차피 같이 일할 사람이니 나를 부르자는 국장님의 의견에 다른 팀원들이 동의하면서 나 역시 호출되어 나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거절해야 했던 자리였다. 그 회식은 유학 때문에 퇴직하는 여자 연구원의 환송회였는데,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색하게 (한 번 보고 말) 여자 연구원과 건배를 했고, 과음한 이 여자 연구원의 술주정을 또한 보게 되었다.
다행히 회식은 그리 깊지 않은 시각에 파하는 분위기였다.
술을 마셔서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성욕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진이를 부르기엔 늦고 먼 시간과 거리였다. 그냥 집에서 혼자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하던 그 순간.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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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에서 계속
4.
긴 애무,
부드러운 삽입,
마지막에는 밖에다.
여진이는 내 가슴 속에서 얼굴을 들 줄 몰랐다. 무어라 말을 걸어보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가로 젓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그녀가 진정하기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이후 여진이와 나는 자연스럽게 길거리를 함께 걷으며 살며시 손을 잡는 사이가 되었다. 시린 1월이었지만 여진이의 손을 잡고 걸으면 그녀의 따뜻한 온기가 전해졌다. 우리는 ‘명소이지만 자주 가기 힘든 곳’만을 골라가며 걸었다. 고맙게도 서울은 정말이지 큰 도시라 생소한 동네가 널려 있었다.
그렇게 걷고 걷다가 적당히 배가 고플 때면 주변의 맛집을 찾아가 맥주를 나눠 마시며 서로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였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그녀의 까만 눈동자에 감탄하곤 하였다.
배가 부르거나 적당한 취기가 돌면 우리는 음식점에 들어올 때 보다 더 따뜻해진 체온을 서로에게 나눠줄 만한 곳을 찾아 들어갔다. 만나서 항상 사랑을 나눈 것은 아니었지만, 우린 두 번 걸러 한 번 정도 섹스를 나눴다. 내 욕심 같아서는 언제나 그 아름다운 나신을 안고 싶었지만, 여진이로 하여금 내가 그것 때문에 자신을 만난다는 생각이 들지 않게 하는 게 중요했다. 다시 한 번 서울에 고마웠던 것은 정말이지 모텔이 곳곳에 널려있다는 것.
1월의 나는 백수였고, 여진이는 방학 중이라 우리는 별다른 일이 없으면 서로를 불러내어 시간을 함께 보냈다. 여진이와 함께 있을 때면 내가 실직 상태라는 것도, 나이가 서른이 되었다는 것도 거짓말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우린 1월 한 달 동안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지만 정확하게 우리가 어떤 사이라고 정의내리기 주저했다. 나를 바라보는 그 검은 눈동자에 하트가 걸려있는 것이 확실했고 나 역시 여진이를 어루만지는 손길에 애정을 담았다. 그러나 단 한 번도 그 마음을 말로 뱉어내지 않은 채, 오로지 몸으로만 사랑을 표현했다. 아마도 우리는 상대방이 먼저 우리의 사이를 단어로써 표현해주기를 바랬던 것 같다.
구정 직전, 우리는 의도치 않게 외박을 하게 되었다. 그날따라 집에 들어가길 주저하던 여진이가 잠시 전화를 하겠다며 자리를 비우더니,
“엄마한테 친구 집에서 자고 간다고 했어.”라며 싱긋 웃으며 돌아왔다.
그 순간 내가 했던 생각은 ‘나 혼자 좋아서 여진이를 품는 것은 아니 구나’라는 것이다. 여진이 역시 나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좋기 때문에 외박까지 하면서 내 옆에 머물러 준다는 생각에 거창한 감동이 밀려왔다.
우린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다가 근처 깨끗해 보이는 모텔로 들어갔다. 제법 비싼 숙박료를 요구해서 의아했지만, 실제로 방에 들어가 보니 그럴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방은 복층 구조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가면 바(bar) 형식의 파티 테이블이 있었고, 나선형 계단을 따라 내려가니 어두운 조명 아래 커다란 욕조와 침대가 보였다.
우린 옷을 벗어 한 쪽에 개어 놓은 후 두툼한 가운을 입고 욕조에 물을 받았다. 준비된 입욕제 역시 꽤나 고가의 것이었다. 솔가루를 말려 빻은 듯 한 입욕제를 한 움큼 넣으니, 초록색 물감이 퍼지듯 욕조가 푸르게 물들었다. 욕조의 물이 다 받아진 이후에는 나란히 마주 앉는 자세로 몸을 뉘였다. 입욕제의 녹차향이 퍼지자 따스한 기운이 가슴팍에 전해졌다.
서너 명은 충분히 들어갈 만한 욕조였지만 폭은 그다지 넓지 않았기에 여진이와 나는 손을 길게 뻗으면 서로의 얼굴을 만질 수 있는 거리에서 속삭이듯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지난번에도 생각했던 건데, 넌 가슴이 참 예뻐.”
“그런 소리 처음 들어봐.” 여진이는 한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가슴을 가리며 웃었다.
“꽤나 들어봤을 거 같은데. 가슴 예쁘다는 말.”
“음....... 생각해보니 내 가슴을 본 남자는......”
여친이는 말을 줄였다. 아마 ‘내 가슴을 본 남자는 오빠와 전 남친 뿐이니’라는 말이 잘렸을 것이다. 나는 내가 그녀의 첫 남자가 아니라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었다.
“여자들은? 친구들은 네 가슴 예쁘다는 말 안 해?”
“사실은 어떤 친구가 비슷한 말 한 적 있었어. 내 가슴 예쁘다고. 그런데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지....... 오빠도 그냥 하는 말 아니야? 나 기분 좋으라고?” 매우 쑥스러워 했지만 그 칭찬이 싫진 않은 눈치였다.
그녀 기분 좋으라고 한 빈말이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여진이의 가슴은 무척 아름다운 라인을 자랑하고 있었다. 단순히 크기만 하다면 예쁘단 생각이 안 들 텐데, 그녀의 가슴은 적당히 봉긋한 사이즈에 매우 아름다운 모양을 하고 있다. 단물을 잔뜩 머금은 하얀 복숭아가 그녀의 어깨 아래 달려 있는 느낌이었다. 사이즈를 묻자 여진이는 손으로 입술을 살짝 가리며 75B 컵이라고 대답하였다. 초록빛 욕조 안에서 새하얀 그녀의 가슴을 보는 것만으로 황홀한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여진이의 가슴은 흔히 말하는 물방울 가슴이라 한다.
몸이 충분히 덥혀진 후 나는 여진이를 내 쪽으로 당겨 뒤에서 안아주었다. 그녀의 체온인지, 물의 온도인지 모를 포근함이 내 가슴팍에 전해졌다. 자연스럽게 내 손은 그녀의 가슴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아도 봉긋한 가슴을 가볍게 말아 쥐자 손바닥 전체에서 묵직함이 느껴졌다.
이런 걸 가슴에 달고 다니면 꽤나 무겁지 않냐는 말에 “안 그래도 가끔씩 어깨가 아파.”라고 대답하는 여진이. 나는 한참 동안 여진이의 어깨를 매만지듯 주물러 주었다.
욕조에서 나온 우리는 서로의 몸에서 물기를 닦아준 이후 다시 두툼한 가운을 입고 침대로 향했다. 노곤노곤한 기분과 함께 싫지 않은 몽롱함이 밀려왔다. 잠기운을 가득 안은 우리는 빽허그 자세로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목욕을 하고 침대에 누웠는데도 여전히 민낯을 안 보이려는 여진이를 놀리기도 하고, 그녀의 학교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그러다 자연스럽게 그녀를 끌어안았고, 이내 우리는 몸을 섞었다.
여진이의 꽃잎 안으로 내 페니스를 밀어 넣으면서 생각해봤다.
‘이번이 몇 번째 섹스더라, 세 번째? 네 번째?’
아마도 나는 여진이를 만나는 동안 다른 여자를 안지 않으리라, 내가 지윤이를 만나면서 그러하였듯.
‘아! 지윤이라니! 여진이를 안고 있는 지금 지윤이를 생각하다니!’
여진이는 내 밑에서 눈도 못 뜬 채 가쁘게 신음만 내뱉고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니 큰 미안함이 몰려왔다. 나는 급히 지윤이에 대한 생각을 걷어내고 더욱 힘껏 여진이를 안아주었다.
사정의 순간이 다가오면서 그녀에게 안에다 사정해도 되냐고 물으니 그녀는 당황하며,
“아....... 어떡하지?”라고 어쩔 줄 몰라 했다. 나는 그런 여진이가 귀여워 페니스를 빼내어 그녀의 배 위에 길게 사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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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조에서 덥혀진 몸으로 섹스를 해서인지 땀이 꽤나 많이 흘렀다. 여진이 역시 내 밑에서 몸을 포개고 있었기에 나의 땀으로 그녀의 가슴과 배 역시 젖어버렸다. 여진이는 내 등을 끌어안은 손으로 부채질을 해주며 “덥지?”라고 물었다.
노곤한 몸을 움직이고나니 꽤나 무거운 피로가 몰려왔다. 나는 여진이에게 내 왼쪽 팔을 내주며 팔베개를 만들어주었고, 그녀는 그 안으로 쏘옥 들어와 잠을 청하려는 듯 새근거렸다.
그러다 문득 여진이에게 재미난 이야기를 해달라고 하였다. 사실 별 뜻 없이 내뱉은 말인데 여진이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재미난 이야기?”라고 되물었다. 나는 내가 어렸을 적 잠들 때마다 어머니가 머리맡에서 동화책을 읽어주셨는데, 그게 생각이 나서 그렇다고 답했다. 여진이는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짓더니 이야기를 시작했다.
“옛날에는 밤에도 어둡지 않았대. 낮에 해가 떠서 파란 하늘이 있었다면, 낮에는 달과 함께 초록 하늘이었다는 거야. 지금도 가끔씩 달의 바깥 가장자리에 초르스름한 테두리가 보일 때가 있잖아? 그게 그때의 흔적이래.”
나는 가끔 달무리가 질 때의 띠를 생각했다. 그럴 듯 한 이야기였다.
“그런데 그때 사람들은 죽을 맛이었대. 생각해봐. 낮에는 해가 푸른빛을 내서 덥고, 밤에도 달이 초록빛을 내서 덥고. 게다가 달의 초록빛도 열기를 뿜어내서 만만찮게 더웠다는 거야. 그래서 사람들은 밤에도 잠에 못 들고 밤도 낮처럼 일을 해야 했던 거야.”
흥미로웠다.
“결국 견디다 못한 사람들은 하느님에게 기도를 올렸어. 제발 해의 푸른빛과 달의 초록빛 중 하나를 거두어 하루의 절반을 쉴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하느님은 해와 달에게 물었어 너희 중 누가 빛을 포기하겠냐고. 그런데 해도 달도 자신의 빛을 포기하기 싫었던 거야. 결국 하느님은 해와 달에게 씨름을 시켜 진 사람이 빛을 포기하는 걸로 중재를 했대.”
듣는 나만큼이나 여진이도 이야기에 심취해 재미나게 풀어냈다.
“씨름의 승자는 태양이었어. 태양은 달과 한참을 밀고 당기며 씨름을 하다가 결국 달을 번쩍 들어 내던진 거야. 그때 달은 크게 다쳐서 얼굴이 움푹 들어가기도 하고 퉁퉁 붓기도 했나봐.”
나는 여진이의 이야기를 자르며 “아~ 그래서 달의 모양이 바뀌기 시작한 거구나?”라고 끼어들었다.
“응. 그래서 그 이후로 달은 작아지기도 하고 커지기도 하는 거야. 그때 다친 것 때문에.”
“그리고 초록빛도 잃게 된 거고?”
“응. 하느님은 달에게서 초록빛을 거두어들이신 후 어디에 갖다 버려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셨대. 그러다가 사람이 살지 않은 북쪽 마을에 초록빛을 풀어놓았는데, 그게 지금의 북극 오로라가 되었대.”
나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런 이야기는 어디서 들은 거야?”
나는 그녀를 꼬옥 끌어안으며 물었다. 그녀는 대답했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 잠들기 전에 해줬던 옛날이야기야.”
“은비 까비 동화에 나올 법한 이야기였어.”
우린 웃으며 잠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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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번 정도의 데이트와 서너 번 정도의 섹스를 나눈 후, 여진이는 조심스럽게 자신의 가정사를 꺼냈다. 고등학교 교사였던 여진이의 아버지는 그녀가 일곱 살 되던 해에 사고로 돌아가셨고, 이후 어머니 홀로 딸을 키워 오신 것.
어머니의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원래 내가 고등학교 때도 엄마한테 남자친구 있는 거 알았는데, 조심조심 숨기더라. 그러다가 내가 대학가니까 남친 있다고, 그러면서 아저씨랑 밥도 같이 먹고, 아저씨가 용돈도 가끔 주고 그래. 그런데 그런 느낌 있잖아? 나를 좋아해서 예뻐해주는 게 아니라 우리 엄마한테 잘 보이려고 잘 해주는 그런 거. 딱 그런 느낌이라 별로 정이 안 가. 그래도 엄마 생각하면 나도 아저씨한테 잘 하려고 그러는데, 그게 잘 안 돼.”라며 덤덤하게 이야기 하였다.
거기까지 이야기한 그녀는 한참을 생각하더니 한 손으로 입술을 가리며 “엄마도 엄마 인생 살아야지, 나 시집가고 그러면 엄마 혼자 남을 텐데. 사실 난 아직 스무 살 밖에 안 됐으니, 나보다는 엄마가 빨리 시집갔으면 좋겠어.”라고 덧붙였다.
자신의 가정사를 덤덤하게 말한 여진이였지만, 말을 마치자 조금은 쑥스러운 듯 입을 가리며 말했다.
“이거, 누군가에게 한 적 없는 이야기야. 내가 오빠를 정말 많이 좋아하나봐.”
힘들게 자신을 길러낸 어머니의 희생과 수고를 아는 것일까? 여진이는 스무 살 어린 여자아이답지 않게 의젓한 태도로 이야기 해주었다. 동시에 지윤이가 오버랩 되었다. 내가 지윤이에게 들은 그녀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용돈을 적게 주었다느니 카드가 한도초과 되었는데 새로 발급 안 해주었다느니 따위의 것뿐이었다. 여진이는 외동딸이었음에도 마음 씀씀이가 7남매 중 맏딸과도 같이 넉넉하고 예뻤다.
실제로 여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그녀의 마음씀씀이가 평범한 스무 살 여자아이의 그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여러 번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번화가를 지나다니며 종종 받게 되는 전단지를 한 번도 거절하지 않았던 그녀였다.
“이 사람들 이거 다 돌려야 돈 받을 수 있단 말이야. 얼마나 춥겠어? 그러니까 받아 줘야해.”
그러면서도 그 전단지를 함부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손이 시리더라도 꼭꼭 손에 말아 쥐었다가 쓰레기통이 보여야 버리곤 하였다.
수수한 그녀의 차림도 어느 순간부터 기특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처음 여진이를 봤을 때는 배트맨 코스프레 마냥, 검은 재킷에 검은 티, 검은 바지 차림이었는데, 알고 보니 경제사정이 어려운 어머니에게 많은 용돈을 받을 수 없어서 옷차림이 절로 검소해진 것이다. 설혹 그녀가 아르바이트로 꽤나 두둑한 돈을 손에 쥐더라도 일단 어머니에게 대부분을 안겨드리고 남은 돈으로 저가 브랜드를 구입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는 스타일을 중시하는 편이라 처음 그녀의 배트맨 코스프레가 조금 우스꽝스럽기도 했지만, 그 속내를 알고 난 이후부터는 그녀의 옷차림이 새로운 패션 경향 중 하나로 보이기도 했다. 나는 속으로 그녀의 패션을 ‘효도룩’ 혹은 ‘개념룩’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이후 나는 틈날 때 마다 그 또래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브랜드의 옷을 선물하곤 하였지만, 여진이는 분별없이 받지 않았다. 너무 고가의 선물은 내가 불쾌하지 않을 말들을 골라가며 거절하였다.
“나 아직 학생인데 청바지에 운동화면 되지, 왜 이런 치마가 필요하고 구두가 필요해? 그냥 이걸로 나 맛난 거 사주라, 응? 아니면 나 책가방 필요한데, 중고나라에 내가 봐둔 거 있거든......”
이런 식이었다. 그녀의 말에서 틀린 구석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예쁜 옷 입히고 싶은 마음에,
“요즘 대학생들 학교 갈 때도 높은 구두에 짧은 치마 입고 작은 핸드백 들고 다니잖아? 너도 하나 정도는 있어야하지 않아?”라고 말하면 여진이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오빠! 나 책 많아서 항상 책가방 매고 다녀~ 그리고 나 한 번도 힐 신어 본 적 없는데?”
나는 이런 여진이가 너무도 사랑스러워 그 자리에서 꼬옥 안아주지 않고 견딜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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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해 구정은 1월 중순이었다. 이른 구정을 실직상태로 보낸 나는, 가족들의 눈이 부담스러워 이틀만 본가에서 보내고 나머지 시간을 여진이와 보냈다. 여진이 역시 딱히 찾아갈 친척이 없어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무료한 명절을 보냈을 것이다. 구정 당일 무엇을 했냐고 묻자 여진이는 어머니와 함께 떡국을 끓여 먹었는데, 어머니 보다 자신이 요리에 능하여 항상 자신이 떡국을 끓인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오빠는 떡국 챙겨 먹었어?”라며 묻길래 그렇다고 대답하자 “조금만 먹어. 그러다가 금방 마흔 살 되겠다.”라며 익살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하지만 여진이는 내 오피스텔까지 따라와서 손수 떡국을 끓여주었다. 그녀의 말대로 그녀의 솜씨는 꽤나 대단한 축이었다. 떡국 육수를 미리 준비한 사골 국물로 냈는데, 그 진득한 깊이가 스무 살 여자아이의 손맛이라는 게 놀라울 정도였다. 더불어 자신이 직접 담궜다는 설익은 배추김치를 한 포기 가져왔는데, 이 또한 젓갈이 시원한 것이 평소 사먹는 김치보다 맛이 좋았다.
음식 솜씨를 칭찬하자 그녀는 “우리 엄마 항상 나가서 일하니까 어려서부터 집안일은 내가 했거든. 우리 엄마는 내가 담근 김치 아니면 못 먹겠대.”라며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구직은 생각도 못한 방법으로 해결되었다. 옛 직장동료가 경쟁 연구소로 적을 옮기면서 덩달아 나를 추천한 것이다. 이 친구와는 대학동기이기도 했는데, 마침 그 연구소의 국장님으로 계시던 분이 우리의 대학 은사님이기도 했다.
이튿날 나는 바로 연구소로 찾아가 국장님을 뵙고, 새롭게 손 맞추게 될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눴다. 수더분한 친구 역시 마치 어제 봤다는 듯 “여어~ 왔어?”하며 아는 체 해주었다. 이전 연구소와는 다르게 연구원 둘이서 넓은 연구실 하나를 쓰는 것이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호젓한 자연 속에 위치한 연구소 부지도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첫 출근 며칠 전에는 뜻하지 않게 새로운 연구소 회식에도 끼게 되었다. 국장님이 주관하는 회식이었는데, 어차피 같이 일할 사람이니 나를 부르자는 국장님의 의견에 다른 팀원들이 동의하면서 나 역시 호출되어 나간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거절해야 했던 자리였다. 그 회식은 유학 때문에 퇴직하는 여자 연구원의 환송회였는데, 그 자리에 내가 들어가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색하게 (한 번 보고 말) 여자 연구원과 건배를 했고, 과음한 이 여자 연구원의 술주정을 또한 보게 되었다.
다행히 회식은 그리 깊지 않은 시각에 파하는 분위기였다.
술을 마셔서일까? 집으로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 나는 성욕이 올라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여진이를 부르기엔 늦고 먼 시간과 거리였다. 그냥 집에서 혼자 해결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방법이라 생각하던 그 순간.
“여보세요?”
그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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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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