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사랑 - 8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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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석은 예리의 몸 위에,
예리는 두 팔로 현석의 등을 감싸고, 무릅을 구부린 두 다리가 현석의 허벅지에 닿아있고,
지수는 예리의 목뒤로 한팔을 넣고 다른팔은 젖가슴 아래쪽에 걸쳐있다.
그리고 지수의 한쪽 다리가 현석의 종아리 위에 걸쳐져 있다.
현석의 호흡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듯, 예리의 호흡도 점차 편안해져 갔다.
“하아아… 너무… 하… 기절할 것 같았어…”
예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늘 그래. 어떤 때는 정말 기절 하기도 해, 너무 큰 쾌감이 밀려와서.”
지수가 예리의 뺨을 손으로 만지면서 대답했다.
“으응, 언니. 너무 좋았어. 하아아… 그런데 진짜 기절하기도 했어?”
“응. 여러번 오르가즘을 느끼면, 그땐 정말 잠시 기절하는 것 같기도 해.”
“하아… 나도 한번 그래 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임신한지 한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마음대로 편하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랬던 기억이 별로없어.”
“하아아… 그럼 당분간 그건 내 차지가 되는거야?”
참, 이 두 여자가 대체 무슨말들을 하고 있는거야.
누굴 말려 죽이려 하는거야 뭐야?
하긴 두여자와 이렇게 섹스를 하는 것이 잘한 일이나 아니냐를 떠나서, 힘이 드느냐 아니냐도 떠나서, 현석에게는 첫 경험이지만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두 여인네가, 세사람이 함께 섹스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현석 혼자만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진 것 같다.
“언니, 나, 밑에 흐르는것 같아.”
현석도 느끼고 있었다.
현석의 육봉이 크기가 조금씩 줄으들면서 현석이 쏘아낸 정액이 그녀의 꽃잎의 입구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조금 전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헨리, 예리 안고 샤워하러 갈거죠?”
지수가 예리의 말을 받아서 현석에게 말했다.
그래야지.
“응, 안고 갈께, 그래도 되지?”
“으응. 알았어요.”
현석의 말에 예리의 얼굴에 웃음을 띠고 대답을 했다.
현석은 예리를 안았다.
예리는 한손으로 크기가 조그만 해진 현석의 육봉을 손으로 잡았다.
현석의 움직임을 따라 지수도 현석의 팔을 잡고 욕실로 따라 왔다.
* * *
침대에 세명이 나란히 누웠다.
현석이 가운데 눕고, 지수와 예리가 각각 한쪽에 누웠다.
지수가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현아의 이동식 침대도 침실의 한쪽에 놓았다.
지수는 현석의 한쪽팔을 당겨서 베개와 어깨사이에 넣고 모로 누워서 현석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예리도 모로 누우면서 현석의 몸에 한팔과 한쪽 다리를 얹었고, 예리의 고개 아래에는 꼭같이 현석의 한 팔이 들어갔다.
“언니, 지금 몇 개월이야?”
“응, 7개월째 접어들었어.”
“7개월인데 해도 되는거야? 아기한테 좋지 않은 것 아냐?”
“어떤사람은 출산 예정일에 출산하러 오기 전날 밤에 하고 오는사람도 있대, 출산하면 한두달은 못한다고.”
“우와, 그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근데, 그렇게 해도 괜찮구나.”
“그래도 출산 예정 한달 전부터는 좀 조심해서 하라고 하고, 또 가능하면 콘돔을 쓰래.”
“아무래도 그렇긴 하겠다.”
“응. 그런데, 아빠주사 맞을 때 뱃속 안쪽이 아프면 자궁이 아프다고 느끼는거니까 그땐 하면 안된다고 하더라구, 아니면 아주 살살 하거나.”
“아빠주사?”
“응. 아빠주사. 이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지수는 예리의 손을 잡고 현석의 육봉으로 끌고가서 잡혀 주었다.
“아. 이게 아빠주사구나. 그럼 헨리보고 아빠주사 놔줘요 하면 되겠네.”
“흐흐 정말 그럴려구?”
“언니는 자궁이 아프거나 한적 없어?”
“응, 안아파. 그리고 쾌감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해.”
“그래? 그래서 더 하고 싶은거야?”
“응. 난 임신을 했는데도 자꾸 더 하고싶어서 죽겠어. 어제랑 그제 정말 하고싶어서 혼났는데, 오늘 예리랑 같이 하게되서 지금 너무 좋아.”
“그런데 언니, 셋이서 해 보니까, 더 좋은 것 같기도 해.”
“난, 가능하기만 하다면, 꼭 셋이서 해 보고 싶었거든. 헨리는 그런적 없어요?”
뭐?
셋이서 해 보고 싶었다구?
참, 두 여인네가 함께 어울려 섹스를 하더니 부끄러움이란게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아니, 여자들이 원래 그런가 싶다.
남자들보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남자들의 Y담보다, 에로틱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말을 전해준 사람이 남자이고, 실제 여자에게 듣지는 못했으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두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니, 틀린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
“그런데, 오늘처럼 둘이서 돌아가면서 하는게 아니라, 한꺼번에 같이 하고싶어.”
“훗, 언니 어떻게 그렇게 해?”
“왜? 얼마든지 가능하지.”
“어떻게? 아, 가능하겠다.”
예리가 물어놓고 알겠다고 한다.
무슨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두사람의 이야기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그런데, 현석도 은근히 재미있긴 하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맞장구를 치기도 우습고 못 들은척 할 수도 없다.
“헨리. 자요?”
현석이 두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자 지수가 물었다.
“아직, 근데 너무 졸려.”
“우리 두사람 때문에 힘 많이 썼으니까 푹 자요.”
“그래, 말시키지 마. 졸리니까.”
* * *
현아의 출생신고를 했단다.
올 1월에 태어났는데, 6월에 신고를 하는것이니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의 지연신고에 해당해서 4만원의 벌금을 내야 해서 벌금도 냈단다.
벌금, 그거야 중요하지 않다.
출생신고를 하므로서 이제 제대로 자신의 이름을 가진 존재가 되었으니 현석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로서 가장 기본적인 도리는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도리를 하고도 이렇게 기쁠수가 있는가 보다.
이제부터 예쁜 딸로 잘 키워야 하겠지만, 그건 또 지수의 몫이다.
아버지는 오직 사랑 듬뿍 실어서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예쁜 딸로 자라는데 문제가 없도록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 외에 뭐가 있을까?
아직 애를 키워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가면 될 것이다.
IMF라 다들 힘든다고 해지만, 현석의 회사는 별로 어려움 없이 안정권에 들어가고 있고, 현석이 팔고 남은 주식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현석이 너무 큰 욕심을 부려서 회사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하긴, 낳아준 엄마의 경제력은 어떤지 모르니, 전혀 고려치 않더라도, 이젠 법적으로 엄마가 된, 키워줄 엄마인 지수의 경제력이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으니 그것도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
오직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이기만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아가 엄마 젖을 먹거나 분유를 먹고, 배만 부르면 항상 방긋방긋 웃고, 잘 울지 않아서 그나마 아픈 예리나, 배가 남산만 해진 지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단다.
예리가 낮에 짬짬히 몇시간 정도 피에르체를 다녀오는 동안에 지수가 현아를 보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고, 일하는 아주머니도 있어서 아직은 별 문제가 없지만, 지수의 배가 불러오고 있으니 조만간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긴 하다.
* * *
“헨리, 내일, 예리랑 현아 데리고 친정에 좀 다녀 올께요.”
친정에 예리와 현아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고 했던지가 제법 오래 되었다.
“말씀 드렸어?
“아직요. 아빠는 안봤지만, 엄마랑 언니들은 예리를 이미 잘 알잖아요?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요.”
하긴, 세사람 다 피에르체의 단골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드레스 피팅때 현석이 느끼는것도 서로 잘 아는사이로 보이긴 했었다.
혹시, 그들이 배신감 느끼지 않을까?
“예리야 괜찮지?”
“좀 겁나요.”
현석의 질문에 겁난다고 하지만, 걱정은 안하는 표정이다.
“당분간 우리 관계는 이야기 안하겠지만, 예리랑 현아 데리고 자주자주 친정에 갈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현석은 지수가 무언가 준비를 했겠지 싶어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 * *
양평의 별장에 꽤 여러 사람이 모였다.
여름의 초입이기에 눈앞에 보이는 신록이 눈을 상쾌하게 해 준다.
청평호수가 정원의 한쪽 끝에서 햇빛에 반짝인다.
가족들을 부를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지수의 친구들을 부를 수는 없었지만, 제법 여러 사람이 모였다.
현석과 지수, 예리와 현아.
예리의 세 친구인 정하니, 홍아영, 박인옥.
피에르체의 디자이너 두명과 점원 세명이다.
단촐하지만 현석과 지수와 예리의 관계를 알고있는 사람들이다.
다른사람들은 아마도 현석과 예리의 결혼식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추가된 사람들은, 현석의 친구들 십인회 멤버들 전원이 오고 있을 것이다.
현석은 이들에게 말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름 휴가철이면, 현석이 그동안 참석을 못했을 뿐이지, 휴가 일정이 맞는 몇가족씩 모여서 휴가를 함께 보내왔다.
현석은 그것이 무척이나 부러웠기에, 올 여름에 처가의 별장에서 함께 보내자고 결혼식 전부터 여러 친구들에게 이미 말을 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좋다고 하면서 이번 여름에는 가능하다면 십인회 가족 전부가 휴가를 맞춰 보기로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와서 지내면서 예리를 빼고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예리를 슬프게 할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미리 알려야지.
그리고 이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해야지.
그래서, 지수와 그 이야기를 하고, 얼마전 현석의 요청으로 임시모임을 한번 했다.
회장인 오창기와 이순호, 그리고 오창기의 부인인 서연희를 사전에 먼저 만나서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다.
처음에는 세사람도 이해를 못했다.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결혼한지 3개월만에 또 다른여자와 결혼식이라니.
그것도 석달 전에 결혼한 아내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결혼식이라니.
현석의 기준으로 보면 세번의 결혼식을 하는셈이다.
그런데, 서연희가 먼저 이해를 했다.
지수가 말한, 낳아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결혼식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 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 하지만, 같은 여자이기에 공감하는 부분인듯 하다.
서연희는 복받은 남자인지 불행한 남자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를 위해서, 그 아이의 엄마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결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임시 모임에서 현석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모두에게 이해를 당부했다.
다만, 그녀가 너무 슬퍼할 것이니, 예리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것에 대해서 만큼은 아는체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했다.
그들은 지난해에 현석이 지수에게 프로포즈할 때 장미 한바구니씩 들고 왔었었던 바로 그들이니, 현석의 설명에 수긍을 했다.
그 외에는 야외 결혼식 이벤트회사에서, 청평 별장의 정원에 결혼식장을 꾸미고, 정리하고 할 남자직원 둘과 여자직원 둘이 합쳐서 네명이 왔다.
그들이 현석과 예리가 결혼식을 할, 아치문을 놓고, 그곳에 화려한 꽃단장을 하고 있다.
정원에 의자라고는 아치문 앞쪽으로 오십개쯤 내 놓았지만 여기 있는 인원 전부가 앉아도 남을 만큼의 양이다.
그리고, 참석한 사람이 식사를 하기위해 준비한 출장부페 차량이 지금 막 별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수가 오늘 여기 참석한 사람들의 식사를 위해 부른 출장부페이다.
그 뒤로 친구들의 차량이 한대씩 들어오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예리가 피에르체 디자이너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있을것이다.
피에르체에서 그 웨딩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가 직접 예리에게 드레스를 입혀주고 있을 것이다.
지수의 웨딩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스케치 했던 수많은 디자인들 중에 하나는 지수의 드레스로 만들어졌지만, 나머지는 그냥 남아있었는데, 디자이너 중에 한명이 그것을 보완해서 예리의 드레스로 만들었단다.
현석은 턱시도를 차려입고 정원에 서서 예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배가 더 불러온 지수가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지금 꾸며지고 있는 야외결혼식장을 둘러보면서 결혼식 이벤트 회사에서 온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저사람들은 이 결혼식의 상황을 모를것이다.
알려줄 필요도 없고.
피에르체의 직원들은 놀라는 모습이다.
하객은 예리의 친구들과 자신들 밖에 없을줄 알았는데, 현석의 친구들이 무더기로 오기때문인듯 했다.
* * *
두사람의 보조를 받으면서 예리가 걸어 나오고 있다.
오늘의 결혼식은 주례도 없고, 양가부모의 인사도 없다.
오창기의 사회에 따라 진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유월 말의 조금은 따가운 했살, 한들한들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눈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신록의 푸르름 속에 하얀 드레스의 예리는 천상의 선녀와 다름없다.
현석은 별장의 입구에 기다리고 있다가 예리가 나오자 손을 내 밀었다.
“예리, 정말 아름다워.”
“고마워요. 헨리.”
현석이 돌아서자 예리는 현석의 팔에 팔짱을끼듯 손으로 현석의 팔을 잡았다.
멀리 꽃으로 단장한 아치가 있고, 그 앞쪽으로 하객으로 참석한 친구들과 그의 부인들, 그리고 예리의 친구와 피에르체의 직원들이 두줄로 서서 현석과 예리를 보고 있었다.
그 뒤쪽에는 배가 봉긋하게 나온 지수가 의자에 기대 앉아서 환하게 웃음띤 얼굴로 현석과 예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유모차에 태워진 현아가 함께 있다.
현아는 무었이 그렇게 좋은지 그 조그마한 눈과 입이 연신 웃고있으면서 두 손이 허공에 있는 무언가를 잡으려는듯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지수, 그녀를 혼자있게 하거나, 외롭게 하지 않겠다 하였는데, 혹시 지금 그녀를 외롭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려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어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 하였는데,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아프겠지만, 지금 현석이 다른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 외에 예리에게도 나누어 주고 있으니.
그녀가 현석과 예리를 바라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지만, 지수의 속마음은 부서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한부의 삶이 예고되어 있고, 남편의 딸의 엄마인, 이 이상한 관계의 자매처럼 아끼는 후배를 남편과 결혼을 시키고 있다니.
정상이라고 볼수 없는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지수의 마음 씀이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그래도 그녀는 지금 환하게 웃고있다.
그리고 현석의 팔을 잡고 함께 보조를 맞추어 걷고있는 예리도 환하게 웃고있다.
“예리야, 프로포즈를 못해서 미안하다.”
현석은 지수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예리에게 시선을 돌리며 프로포즈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참, 이 이중적 마음이라니.
그래도 오늘은 기쁘게 보내자.
어차피 이중적 마음이건, 삼중적 마음이건 지수가 제안을 했고, 그것을 받아들인 마당에 자꾸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거렸다.
예리가 현석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하고 있잖아요?”
“…?”
“결혼식과 프로포즈를 한꺼번에.”
그렇게 말하는 예리의 표정이 예쁘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의 표정이다.
“혹시 엘리하고 나 결혼할 때 식장에 왔었어?”
“…”
예리가 대답을 안했다.
“왔었구나.”
“네.”
“…”
“많이 부러웠어요. 그치만 이젠 안부러워요.”
“그래, 그런데 왜 난 못봤을까?”
“안 보이는곳에 숨어 있었거든요.”
하긴 얼마나 가슴이 아팟을까.
예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현석을 사랑하고 있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내 아이의 아빠가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하는것을 바라본다면, 정말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짐작이 간다.
“울진 않았지?”
“…”
그녀가 말이 없다.
“울었구나.”
“네.”
“이젠, 안 울거지?”
“네, 이제 울지 않을께요.”
이순호가 지수가 쓰는것과 같은 카메라를 들고 연신 촬영을 하고 있다.
이순호의 촬영이면 믿을만 하다.
꽃 아치 아래에서 두사람이 돌아섰다.
“지금부터 신랑 김현석군과 신부 이예리양의 결혼식이 거행되겠습니다.
하객 여러분은 착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오늘 결혼식은 주례없이 사회자의 진행으로만 결혼식이 거행됨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창기의 사회가 진행되었다.
“신랑과 신부는 뭐가 그리 급한지, 사회자가 입장하라고 하기도 전에 입장을 해버렸습니다.”
그 말에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두사람은 속성으로 애를 벌써 만들어서, 저기 유모차에 앉아 있습니다. 그럼 정말 급한거 맞죠?”
모두들 현아가 앉아있는 유모차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자, 그렇다고 결혼식을 속성으로 해 치우면 안되겠지요?”
“네. 맞습니다.”
박수를 치고 대답들을 한다.
“그럼 신랑신부 맞절이 있겠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향해 마주 서 주시기 바랍니다.”
예리의 보조를 하고 있는 두사람이 드레스 자락을 방향에 맞게 움직여 주었다.
“신랑신부, 맞절”
현석은 예리에게, 예리는 현석에게 절을 했다.
“자, 다음에는 혼인서약이 있겠습니다.
신랑 김현석군과 신부 이예리양은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둘이 서로 쳐다보며 동시에 대답했다.
“아, 이 맹세는 말로 하면 안됩니다. 서로 키스로 맹세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석은 오창기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손은 예리의 잘록한 허리를 받치고, 한손은 유월의 태양아래서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갸름한 턱을 받치고 입술을 맞추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입술이 빛이 났다.
달콤한 그녀의 입술이 현석의 입술과 포개졌다.
현석은 턱을 받쳤던 한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쌌다.
주위에서 박수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음, 사회자는 저렇게 진한 키스를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하객들의 볼거리를 만들어 주는군요, 자 여러분 축하의 박수를 쳐 주십시오.”
사회자가 그렇게 말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두사람은 제법 긴 시간동안 입을 맞추었다.
키스가 끝나고 지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두손으로 조그맣게 하트를 그려 보였다.
“자, 이제 신랑 김현석군과 신부 이예리양은 일가 친지는 쏙 빼 놓고, 그래도 친구들은 불러다 놓고,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이 사회자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포합니다.”
또,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들렸다.
“자, 신랑과 신부는 축하케익 절단이 있겠습니다.”
현석은 예리와 손을 맞잡고 축하케익을 잘랐다.
정하니와 홍아영이 축가를 부른단다.
나나나 나 나나나 나
너무나 투명한 너의 하얀 미소에
나는 사랑을 느꼈어
너의 하얀 뺨에 눈물 흐를 때에
나는 네게 사랑을 주고 싶었어
너의 모습 그릴 때마다
넌 항상 내게 웃음을 주었지
내 마음 널 사랑하고 싶은 거야
나의 마음 너에게만 주고 싶어
소중한 너 잊을 수는 없을 꺼야
언제까지나 나의 마음
너만을 그릴께 내 사랑아
너무나 가득한 너의 슬픈 향기에
나는 사랑을 느꼈어
너의 뒷 모습이 슬퍼 보일 때에
나는 네게 사랑을 주고 싶었어
너의 향기 그릴 때마다
넌 항상 내게 눈물 주었지
내 마음 널 사랑하고 싶은 거야
나의 마음 너에게만 주고 싶어
소중한 너 잊을 수는 없을 꺼야
언제까지나 나의 마음
너만을 그릴께 내 사랑아
(소중한 너 - 박선주 조규찬)
현석의 기억에 몇번쯤 들은 기억이 있다.
가수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남녀가 듀엣으로 부른 경쾌한 노래인데, 예리의 두 친구가 듀엣으로 역시 경쾌하게 불렀지만, 두사람의 청아한 목소리가 현석의 마음속으로 아리게 파고들었다.
예리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울면 안되는데, 이 좋은 결혼식에 울면 안되는데.
둘이서 부르는 노랫말이 현석의 가슴을 아리게 파고들듯이 예리의 가슴속으로도 아프게 파고 들어서 그러리라.
현석과 예리의 아픈 러브스토리를 들은 친구 부인들의 심정도 비슷했는지, 몇사람이 눈가에 손을 대고 눈물을 찍어냈다.
‘너만을 그릴께 내 사랑아.’ 하는 그 대목이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아는듯한 노랫말이다.
박수가 한참을 이어졌다.
“자, 그럼 이제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하객을 항하여 돌아서 주시기 바랍니다.”
인사를 하고, 간단하게 행진을 하고, 그렇게 길지 않은 결혼식이 끝났다.
지수는 행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예리의 두 손을 잡았다.
“예리야,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자.”
“응, 언니.”
“자, 여기, 조선시대도 아니고, 삼국시대도 아닌, 현대에 마눌님이 두분이나 있는 새신랑을 우리가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여러분?”
“맞습니다. 큰 벌을 내려야 합니다.”
창기의 외침에 장민수가 거들고 뒤이어 다른 친구들이 연속해서 맞장구를 쳤다.
“신랑은, 오늘 결혼한 새 신부를 업고 정원 한바퀴, 음 그리고 이미 결혼한 박지수 신부를 안고, 정원 한바퀴를 도는 벌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건 안되요.”
김진태의 부인인 이유정이 반대를 했다.
“왜요?”
“임신 7개월인 사람을 안고 돌다가 혹시 실수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새 신부를 업고 세바퀴가 어때요?”
말은 맞는 말인데, 누구 죽일일 있나?
현석은 결국 예리를 업고 세바퀴를 돈다고 출발 했지만, 한바퀴 반을 돌고는 예리에게 깊은 입맞춤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이어진 연회는 이벤트회사 사람들까지 어울려서 모두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은 현석과 예리의 결혼식에 축하를 해 주러 왔지만, 초여름에 접어든 휴일의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것이 보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계속)
예리는 두 팔로 현석의 등을 감싸고, 무릅을 구부린 두 다리가 현석의 허벅지에 닿아있고,
지수는 예리의 목뒤로 한팔을 넣고 다른팔은 젖가슴 아래쪽에 걸쳐있다.
그리고 지수의 한쪽 다리가 현석의 종아리 위에 걸쳐져 있다.
현석의 호흡이 점차 안정을 찾아가듯, 예리의 호흡도 점차 편안해져 갔다.
“하아아… 너무… 하… 기절할 것 같았어…”
예리의 입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늘 그래. 어떤 때는 정말 기절 하기도 해, 너무 큰 쾌감이 밀려와서.”
지수가 예리의 뺨을 손으로 만지면서 대답했다.
“으응, 언니. 너무 좋았어. 하아아… 그런데 진짜 기절하기도 했어?”
“응. 여러번 오르가즘을 느끼면, 그땐 정말 잠시 기절하는 것 같기도 해.”
“하아… 나도 한번 그래 봤으면 좋겠다.”
“그런데, 임신한지 한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마음대로 편하게 할 수가 없어서, 그랬던 기억이 별로없어.”
“하아아… 그럼 당분간 그건 내 차지가 되는거야?”
참, 이 두 여자가 대체 무슨말들을 하고 있는거야.
누굴 말려 죽이려 하는거야 뭐야?
하긴 두여자와 이렇게 섹스를 하는 것이 잘한 일이나 아니냐를 떠나서, 힘이 드느냐 아니냐도 떠나서, 현석에게는 첫 경험이지만 신선한 충격이기도 했다.
두 여인네가, 세사람이 함께 섹스를 했다는 사실에 대해 조금도 부끄러워하거나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지지 않는 것 같다.
현석 혼자만 이상하다는 느낌을 가진 것 같다.
“언니, 나, 밑에 흐르는것 같아.”
현석도 느끼고 있었다.
현석의 육봉이 크기가 조금씩 줄으들면서 현석이 쏘아낸 정액이 그녀의 꽃잎의 입구로 흘러나오는 것 같은 느낌이 조금 전부터 들었기 때문이다.
“헨리, 예리 안고 샤워하러 갈거죠?”
지수가 예리의 말을 받아서 현석에게 말했다.
그래야지.
“응, 안고 갈께, 그래도 되지?”
“으응. 알았어요.”
현석의 말에 예리의 얼굴에 웃음을 띠고 대답을 했다.
현석은 예리를 안았다.
예리는 한손으로 크기가 조그만 해진 현석의 육봉을 손으로 잡았다.
현석의 움직임을 따라 지수도 현석의 팔을 잡고 욕실로 따라 왔다.
* * *
침대에 세명이 나란히 누웠다.
현석이 가운데 눕고, 지수와 예리가 각각 한쪽에 누웠다.
지수가 자리를 그렇게 만들었다.
현아의 이동식 침대도 침실의 한쪽에 놓았다.
지수는 현석의 한쪽팔을 당겨서 베개와 어깨사이에 넣고 모로 누워서 현석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예리도 모로 누우면서 현석의 몸에 한팔과 한쪽 다리를 얹었고, 예리의 고개 아래에는 꼭같이 현석의 한 팔이 들어갔다.
“언니, 지금 몇 개월이야?”
“응, 7개월째 접어들었어.”
“7개월인데 해도 되는거야? 아기한테 좋지 않은 것 아냐?”
“어떤사람은 출산 예정일에 출산하러 오기 전날 밤에 하고 오는사람도 있대, 출산하면 한두달은 못한다고.”
“우와, 그사람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근데, 그렇게 해도 괜찮구나.”
“그래도 출산 예정 한달 전부터는 좀 조심해서 하라고 하고, 또 가능하면 콘돔을 쓰래.”
“아무래도 그렇긴 하겠다.”
“응. 그런데, 아빠주사 맞을 때 뱃속 안쪽이 아프면 자궁이 아프다고 느끼는거니까 그땐 하면 안된다고 하더라구, 아니면 아주 살살 하거나.”
“아빠주사?”
“응. 아빠주사. 이거 말이야.”
그렇게 말하면서 지수는 예리의 손을 잡고 현석의 육봉으로 끌고가서 잡혀 주었다.
“아. 이게 아빠주사구나. 그럼 헨리보고 아빠주사 놔줘요 하면 되겠네.”
“흐흐 정말 그럴려구?”
“언니는 자궁이 아프거나 한적 없어?”
“응, 안아파. 그리고 쾌감이 더 좋은 것 같기도 해.”
“그래? 그래서 더 하고 싶은거야?”
“응. 난 임신을 했는데도 자꾸 더 하고싶어서 죽겠어. 어제랑 그제 정말 하고싶어서 혼났는데, 오늘 예리랑 같이 하게되서 지금 너무 좋아.”
“그런데 언니, 셋이서 해 보니까, 더 좋은 것 같기도 해.”
“난, 가능하기만 하다면, 꼭 셋이서 해 보고 싶었거든. 헨리는 그런적 없어요?”
뭐?
셋이서 해 보고 싶었다구?
참, 두 여인네가 함께 어울려 섹스를 하더니 부끄러움이란게 완전히 없어져 버린 것 같다.
아니, 여자들이 원래 그런가 싶다.
남자들보다 여자들끼리 모이면, 남자들의 Y담보다, 에로틱한 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말을 전해준 사람이 남자이고, 실제 여자에게 듣지는 못했으니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지금 두사람의 말을 듣고 있으니, 틀린말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
“그런데, 오늘처럼 둘이서 돌아가면서 하는게 아니라, 한꺼번에 같이 하고싶어.”
“훗, 언니 어떻게 그렇게 해?”
“왜? 얼마든지 가능하지.”
“어떻게? 아, 가능하겠다.”
예리가 물어놓고 알겠다고 한다.
무슨 상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두사람의 이야기가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그런데, 현석도 은근히 재미있긴 하겠다 싶었다.
그렇지만 맞장구를 치기도 우습고 못 들은척 할 수도 없다.
“헨리. 자요?”
현석이 두사람의 대화를 듣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이 없자 지수가 물었다.
“아직, 근데 너무 졸려.”
“우리 두사람 때문에 힘 많이 썼으니까 푹 자요.”
“그래, 말시키지 마. 졸리니까.”
* * *
현아의 출생신고를 했단다.
올 1월에 태어났는데, 6월에 신고를 하는것이니 3개월 이상, 6개월 미만의 지연신고에 해당해서 4만원의 벌금을 내야 해서 벌금도 냈단다.
벌금, 그거야 중요하지 않다.
출생신고를 하므로서 이제 제대로 자신의 이름을 가진 존재가 되었으니 현석도 기분이 좋아졌다.
아버지로서 가장 기본적인 도리는 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아주 기본적인 도리를 하고도 이렇게 기쁠수가 있는가 보다.
이제부터 예쁜 딸로 잘 키워야 하겠지만, 그건 또 지수의 몫이다.
아버지는 오직 사랑 듬뿍 실어서 지켜봐 주는 것, 그리고 예쁜 딸로 자라는데 문제가 없도록 경제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것 외에 뭐가 있을까?
아직 애를 키워 본 적이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제부터 차근차근 알아가면 될 것이다.
IMF라 다들 힘든다고 해지만, 현석의 회사는 별로 어려움 없이 안정권에 들어가고 있고, 현석이 팔고 남은 주식 가격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현석이 너무 큰 욕심을 부려서 회사가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경제적으로도 아무런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된다.
하긴, 낳아준 엄마의 경제력은 어떤지 모르니, 전혀 고려치 않더라도, 이젠 법적으로 엄마가 된, 키워줄 엄마인 지수의 경제력이 아버지보다 훨씬 더 나으니 그것도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
오직 딸을 사랑하는 아버지이기만 해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현아가 엄마 젖을 먹거나 분유를 먹고, 배만 부르면 항상 방긋방긋 웃고, 잘 울지 않아서 그나마 아픈 예리나, 배가 남산만 해진 지수를 힘들게 하지 않는단다.
예리가 낮에 짬짬히 몇시간 정도 피에르체를 다녀오는 동안에 지수가 현아를 보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고, 일하는 아주머니도 있어서 아직은 별 문제가 없지만, 지수의 배가 불러오고 있으니 조만간 어려움이 있을 것 같긴 하다.
* * *
“헨리, 내일, 예리랑 현아 데리고 친정에 좀 다녀 올께요.”
친정에 예리와 현아의 존재를 알려야 한다고 했던지가 제법 오래 되었다.
“말씀 드렸어?
“아직요. 아빠는 안봤지만, 엄마랑 언니들은 예리를 이미 잘 알잖아요? 그래서 나름대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요.”
하긴, 세사람 다 피에르체의 단골이라고 했었다.
그리고 드레스 피팅때 현석이 느끼는것도 서로 잘 아는사이로 보이긴 했었다.
혹시, 그들이 배신감 느끼지 않을까?
“예리야 괜찮지?”
“좀 겁나요.”
현석의 질문에 겁난다고 하지만, 걱정은 안하는 표정이다.
“당분간 우리 관계는 이야기 안하겠지만, 예리랑 현아 데리고 자주자주 친정에 갈거니까 그렇게 알고 계세요.”
현석은 지수가 무언가 준비를 했겠지 싶어서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 * *
양평의 별장에 꽤 여러 사람이 모였다.
여름의 초입이기에 눈앞에 보이는 신록이 눈을 상쾌하게 해 준다.
청평호수가 정원의 한쪽 끝에서 햇빛에 반짝인다.
가족들을 부를 수는 없었지만, 그리고 지수의 친구들을 부를 수는 없었지만, 제법 여러 사람이 모였다.
현석과 지수, 예리와 현아.
예리의 세 친구인 정하니, 홍아영, 박인옥.
피에르체의 디자이너 두명과 점원 세명이다.
단촐하지만 현석과 지수와 예리의 관계를 알고있는 사람들이다.
다른사람들은 아마도 현석과 예리의 결혼식을 결코 이해하지 못할것이다.
그리고 추가된 사람들은, 현석의 친구들 십인회 멤버들 전원이 오고 있을 것이다.
현석은 이들에게 말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여름 휴가철이면, 현석이 그동안 참석을 못했을 뿐이지, 휴가 일정이 맞는 몇가족씩 모여서 휴가를 함께 보내왔다.
현석은 그것이 무척이나 부러웠기에, 올 여름에 처가의 별장에서 함께 보내자고 결혼식 전부터 여러 친구들에게 이미 말을 해 둔 상태였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좋다고 하면서 이번 여름에는 가능하다면 십인회 가족 전부가 휴가를 맞춰 보기로 했었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 와서 지내면서 예리를 빼고 지내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은 예리를 슬프게 할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미리 알려야지.
그리고 이 상황을 이해해 달라고 해야지.
그래서, 지수와 그 이야기를 하고, 얼마전 현석의 요청으로 임시모임을 한번 했다.
회장인 오창기와 이순호, 그리고 오창기의 부인인 서연희를 사전에 먼저 만나서 상황을 충분히 설명했다.
처음에는 세사람도 이해를 못했다.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
결혼한지 3개월만에 또 다른여자와 결혼식이라니.
그것도 석달 전에 결혼한 아내가 하라고 해서 하는 결혼식이라니.
현석의 기준으로 보면 세번의 결혼식을 하는셈이다.
그런데, 서연희가 먼저 이해를 했다.
지수가 말한, 낳아준 엄마에 대한 이야기를 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와, 결혼식 사진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공감 했다.
여자의 적은 여자라 하지만, 같은 여자이기에 공감하는 부분인듯 하다.
서연희는 복받은 남자인지 불행한 남자인지는 모르지만, 아이를 위해서, 그 아이의 엄마를 위해서 꼭 필요한 결정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임시 모임에서 현석은 자신의 상황을 설명하고, 모두에게 이해를 당부했다.
다만, 그녀가 너무 슬퍼할 것이니, 예리가 시한부의 삶을 살고 있는것에 대해서 만큼은 아는체 하지 말아달라고 당부를 했다.
그들은 지난해에 현석이 지수에게 프로포즈할 때 장미 한바구니씩 들고 왔었었던 바로 그들이니, 현석의 설명에 수긍을 했다.
그 외에는 야외 결혼식 이벤트회사에서, 청평 별장의 정원에 결혼식장을 꾸미고, 정리하고 할 남자직원 둘과 여자직원 둘이 합쳐서 네명이 왔다.
그들이 현석과 예리가 결혼식을 할, 아치문을 놓고, 그곳에 화려한 꽃단장을 하고 있다.
정원에 의자라고는 아치문 앞쪽으로 오십개쯤 내 놓았지만 여기 있는 인원 전부가 앉아도 남을 만큼의 양이다.
그리고, 참석한 사람이 식사를 하기위해 준비한 출장부페 차량이 지금 막 별장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지수가 오늘 여기 참석한 사람들의 식사를 위해 부른 출장부페이다.
그 뒤로 친구들의 차량이 한대씩 들어오고 있었다.
집 안에서는 예리가 피에르체 디자이너와 직원들의 도움을 받아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있을것이다.
피에르체에서 그 웨딩드레스를 만든 디자이너가 직접 예리에게 드레스를 입혀주고 있을 것이다.
지수의 웨딩드레스를 만들기 위해 스케치 했던 수많은 디자인들 중에 하나는 지수의 드레스로 만들어졌지만, 나머지는 그냥 남아있었는데, 디자이너 중에 한명이 그것을 보완해서 예리의 드레스로 만들었단다.
현석은 턱시도를 차려입고 정원에 서서 예리가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쪽에는 배가 더 불러온 지수가 편안한 의자에 앉아서 지금 꾸며지고 있는 야외결혼식장을 둘러보면서 결혼식 이벤트 회사에서 온 책임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결혼식을 준비하는 저사람들은 이 결혼식의 상황을 모를것이다.
알려줄 필요도 없고.
피에르체의 직원들은 놀라는 모습이다.
하객은 예리의 친구들과 자신들 밖에 없을줄 알았는데, 현석의 친구들이 무더기로 오기때문인듯 했다.
* * *
두사람의 보조를 받으면서 예리가 걸어 나오고 있다.
오늘의 결혼식은 주례도 없고, 양가부모의 인사도 없다.
오창기의 사회에 따라 진행하기만 하면 되었다.
유월 말의 조금은 따가운 했살, 한들한들 불어오는 상쾌한 바람, 눈을 상쾌하게 만들어 주는 신록의 푸르름 속에 하얀 드레스의 예리는 천상의 선녀와 다름없다.
현석은 별장의 입구에 기다리고 있다가 예리가 나오자 손을 내 밀었다.
“예리, 정말 아름다워.”
“고마워요. 헨리.”
현석이 돌아서자 예리는 현석의 팔에 팔짱을끼듯 손으로 현석의 팔을 잡았다.
멀리 꽃으로 단장한 아치가 있고, 그 앞쪽으로 하객으로 참석한 친구들과 그의 부인들, 그리고 예리의 친구와 피에르체의 직원들이 두줄로 서서 현석과 예리를 보고 있었다.
그 뒤쪽에는 배가 봉긋하게 나온 지수가 의자에 기대 앉아서 환하게 웃음띤 얼굴로 현석과 예리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옆에는 유모차에 태워진 현아가 함께 있다.
현아는 무었이 그렇게 좋은지 그 조그마한 눈과 입이 연신 웃고있으면서 두 손이 허공에 있는 무언가를 잡으려는듯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다.
지수, 그녀를 혼자있게 하거나, 외롭게 하지 않겠다 하였는데, 혹시 지금 그녀를 외롭게 하고 있는 것은 아니려나?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주어서, 그녀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않겠다 하였는데, 그녀의 마음이 조금은 아프겠지만, 지금 현석이 다른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녀 외에 예리에게도 나누어 주고 있으니.
그녀가 현석과 예리를 바라보면서, 환하게 웃고 있지만, 지수의 속마음은 부서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시한부의 삶이 예고되어 있고, 남편의 딸의 엄마인, 이 이상한 관계의 자매처럼 아끼는 후배를 남편과 결혼을 시키고 있다니.
정상이라고 볼수 없는 이 상황을 만들어 낸 지수의 마음 씀이 정말 고맙고 미안하다.
그래도 그녀는 지금 환하게 웃고있다.
그리고 현석의 팔을 잡고 함께 보조를 맞추어 걷고있는 예리도 환하게 웃고있다.
“예리야, 프로포즈를 못해서 미안하다.”
현석은 지수를 한참동안 물끄러미 바라 보다가 예리에게 시선을 돌리며 프로포즈를 못해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참, 이 이중적 마음이라니.
그래도 오늘은 기쁘게 보내자.
어차피 이중적 마음이건, 삼중적 마음이건 지수가 제안을 했고, 그것을 받아들인 마당에 자꾸 그런 생각은 하지 말자고 스스로 다독거렸다.
예리가 현석을 쳐다 보았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지금, 하고 있잖아요?”
“…?”
“결혼식과 프로포즈를 한꺼번에.”
그렇게 말하는 예리의 표정이 예쁘다.
지금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부의 표정이다.
“혹시 엘리하고 나 결혼할 때 식장에 왔었어?”
“…”
예리가 대답을 안했다.
“왔었구나.”
“네.”
“…”
“많이 부러웠어요. 그치만 이젠 안부러워요.”
“그래, 그런데 왜 난 못봤을까?”
“안 보이는곳에 숨어 있었거든요.”
하긴 얼마나 가슴이 아팟을까.
예리가 그토록 간절하게 현석을 사랑하고 있었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 내 아이의 아빠가 다른 여자와 결혼식을 하는것을 바라본다면, 정말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짐작이 간다.
“울진 않았지?”
“…”
그녀가 말이 없다.
“울었구나.”
“네.”
“이젠, 안 울거지?”
“네, 이제 울지 않을께요.”
이순호가 지수가 쓰는것과 같은 카메라를 들고 연신 촬영을 하고 있다.
이순호의 촬영이면 믿을만 하다.
꽃 아치 아래에서 두사람이 돌아섰다.
“지금부터 신랑 김현석군과 신부 이예리양의 결혼식이 거행되겠습니다.
하객 여러분은 착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오늘 결혼식은 주례없이 사회자의 진행으로만 결혼식이 거행됨을 알아 주시기 바랍니다.”
오창기의 사회가 진행되었다.
“신랑과 신부는 뭐가 그리 급한지, 사회자가 입장하라고 하기도 전에 입장을 해버렸습니다.”
그 말에 좌중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두사람은 속성으로 애를 벌써 만들어서, 저기 유모차에 앉아 있습니다. 그럼 정말 급한거 맞죠?”
모두들 현아가 앉아있는 유모차로 시선이 돌아갔다.
그리고는 박수를 치며 웃었다.
“자, 그렇다고 결혼식을 속성으로 해 치우면 안되겠지요?”
“네. 맞습니다.”
박수를 치고 대답들을 한다.
“그럼 신랑신부 맞절이 있겠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서로를 향해 마주 서 주시기 바랍니다.”
예리의 보조를 하고 있는 두사람이 드레스 자락을 방향에 맞게 움직여 주었다.
“신랑신부, 맞절”
현석은 예리에게, 예리는 현석에게 절을 했다.
“자, 다음에는 혼인서약이 있겠습니다.
신랑 김현석군과 신부 이예리양은 어떠한 경우라도 항상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예.”
둘이 서로 쳐다보며 동시에 대답했다.
“아, 이 맹세는 말로 하면 안됩니다. 서로 키스로 맹세해 주시기 바랍니다.”
현석은 오창기를 한번 쳐다보았다.
그리고, 한손은 예리의 잘록한 허리를 받치고, 한손은 유월의 태양아래서 더욱 아름다워보이는 갸름한 턱을 받치고 입술을 맞추었다.
그녀의 아름다운 입술이 빛이 났다.
달콤한 그녀의 입술이 현석의 입술과 포개졌다.
현석은 턱을 받쳤던 한손으로 그녀의 목을 감쌌다.
주위에서 박수소리와 휘파람 소리가 들렸다.
“음, 사회자는 저렇게 진한 키스를 하라고 하지 않았는데, 알아서 하객들의 볼거리를 만들어 주는군요, 자 여러분 축하의 박수를 쳐 주십시오.”
사회자가 그렇게 말 하거나 말거나 상관없이 두사람은 제법 긴 시간동안 입을 맞추었다.
키스가 끝나고 지수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두손으로 조그맣게 하트를 그려 보였다.
“자, 이제 신랑 김현석군과 신부 이예리양은 일가 친지는 쏙 빼 놓고, 그래도 친구들은 불러다 놓고, 일생동안 고락을 함께 할 부부가 되기를 굳게 맹세하였습니다.
이에 이 사회자는 이 혼인이 원만하게 이루어진 것을 여러분 앞에 엄숙하게 선포합니다.”
또, 웃음소리와 박수소리가 들렸다.
“자, 신랑과 신부는 축하케익 절단이 있겠습니다.”
현석은 예리와 손을 맞잡고 축하케익을 잘랐다.
정하니와 홍아영이 축가를 부른단다.
나나나 나 나나나 나
너무나 투명한 너의 하얀 미소에
나는 사랑을 느꼈어
너의 하얀 뺨에 눈물 흐를 때에
나는 네게 사랑을 주고 싶었어
너의 모습 그릴 때마다
넌 항상 내게 웃음을 주었지
내 마음 널 사랑하고 싶은 거야
나의 마음 너에게만 주고 싶어
소중한 너 잊을 수는 없을 꺼야
언제까지나 나의 마음
너만을 그릴께 내 사랑아
너무나 가득한 너의 슬픈 향기에
나는 사랑을 느꼈어
너의 뒷 모습이 슬퍼 보일 때에
나는 네게 사랑을 주고 싶었어
너의 향기 그릴 때마다
넌 항상 내게 눈물 주었지
내 마음 널 사랑하고 싶은 거야
나의 마음 너에게만 주고 싶어
소중한 너 잊을 수는 없을 꺼야
언제까지나 나의 마음
너만을 그릴께 내 사랑아
(소중한 너 - 박선주 조규찬)
현석의 기억에 몇번쯤 들은 기억이 있다.
가수의 이름은 기억나지 않지만, 남녀가 듀엣으로 부른 경쾌한 노래인데, 예리의 두 친구가 듀엣으로 역시 경쾌하게 불렀지만, 두사람의 청아한 목소리가 현석의 마음속으로 아리게 파고들었다.
예리의 눈에 눈물이 어렸다.
울면 안되는데, 이 좋은 결혼식에 울면 안되는데.
둘이서 부르는 노랫말이 현석의 가슴을 아리게 파고들듯이 예리의 가슴속으로도 아프게 파고 들어서 그러리라.
현석과 예리의 아픈 러브스토리를 들은 친구 부인들의 심정도 비슷했는지, 몇사람이 눈가에 손을 대고 눈물을 찍어냈다.
‘너만을 그릴께 내 사랑아.’ 하는 그 대목이 이별이 예정되어 있는 것을 아는듯한 노랫말이다.
박수가 한참을 이어졌다.
“자, 그럼 이제 신랑 신부가 하객들에게 인사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신랑과 신부는 하객을 항하여 돌아서 주시기 바랍니다.”
인사를 하고, 간단하게 행진을 하고, 그렇게 길지 않은 결혼식이 끝났다.
지수는 행진을 마치고 돌아오는 예리의 두 손을 잡았다.
“예리야, 우리 같이 행복하게 살자.”
“응, 언니.”
“자, 여기, 조선시대도 아니고, 삼국시대도 아닌, 현대에 마눌님이 두분이나 있는 새신랑을 우리가 어찌 용서할 수 있겠습니까? 안그렇습니까 여러분?”
“맞습니다. 큰 벌을 내려야 합니다.”
창기의 외침에 장민수가 거들고 뒤이어 다른 친구들이 연속해서 맞장구를 쳤다.
“신랑은, 오늘 결혼한 새 신부를 업고 정원 한바퀴, 음 그리고 이미 결혼한 박지수 신부를 안고, 정원 한바퀴를 도는 벌을 내리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건 안되요.”
김진태의 부인인 이유정이 반대를 했다.
“왜요?”
“임신 7개월인 사람을 안고 돌다가 혹시 실수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 새 신부를 업고 세바퀴가 어때요?”
말은 맞는 말인데, 누구 죽일일 있나?
현석은 결국 예리를 업고 세바퀴를 돈다고 출발 했지만, 한바퀴 반을 돌고는 예리에게 깊은 입맞춤을 했다.
결혼식이 끝나고 이어진 연회는 이벤트회사 사람들까지 어울려서 모두 함께 즐기는 시간을 가졌다.
친구들은 현석과 예리의 결혼식에 축하를 해 주러 왔지만, 초여름에 접어든 휴일의 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는 것이 보여서 그나마 다행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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