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여인들 - 초보 연애 - 1부7장
작성자 정보
- AV야동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13,799 조회
-
목록
본문
기억에 남은 여인들 - 초보 연애 7장
혜진이가 위기라고 생각했던 건 맞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 위기를 넘기려 시도했던 혜진이의 방법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만나는 날 수가 줄어들고, 전화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위기를 넘겼다던 날 이후로 섹스하는 일도 없었다.
나는 해외 지사의 직원 교육 프로그램 때문에 2, 3일씩 가는 출장이 잦아졌고,
혜진이는 혜진이대로 바빴지만 이따금 전화를 할 때면 내가 소홀해졌다는 얘기를 언뜻언뜻 비추었다.
10월이었는데 꽤 바람이 차가왔던 날, 오랜만에 혜진이를 만났었다.
그날도 겉도는 대화를 하다가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
혜진이가 집에 가려면 전철을 타야 했는데
혜진이가 갈아타는 역까지 같이 전철을 타고 가서
개찰구로 들어가는 혜진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혜진이와 손을 마주 흔들어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둘이 있다가 헤어지니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옷을 가볍게 입고 나왔다가 찬 바람을 맞으니 저절로 투덜거리게 되었고,
괜히 나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던 생각이 아직도 난다.
혜진이를 만나러 나왔으면서 괜히 나왔다니....
내가 생각해도 혜진이에 대한 내 감정은 예전같지 않았다.
혜진이도 그렇고, 분명히 뭔가 틈이 생겼었다.
혜진이를 생각하지 않은 날도 있을 정도로 일에만 파묻혀 지내던 어느 날,
밤늦게 혜진이가 전화를 걸어 왔다.
일상을 묻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혜진이가 문득 물었다.
- 오빠, 나 보고 싶어요?
- 응...? 그럼~, 보고 싶지.
- 나 사랑해요?
- 응?.... 사랑하지, 그럼...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예전처럼 자신있게 보고 싶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도 의식적으로 해야 나왔다.
그냥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혜진이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한심하게도... 바보같이...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 쉬운 걸 못 했다.
그리고, 그 텀은 혜진이가 눈치챌 만큼 길었다.
- 큭, 역시 정우 오빠야....
- ......
혜진이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혜진이는 술을 마신 상태였다.
많이 취하지는 않았지만, 맨정신은 아니었다.
- 오빠.
- 응?
- 나.... 동아리 모임에 계속 나가도 돼요?
혜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나대로 혼란스러웠는데, 얘는 지금 왜 울고 있지?
- 무슨 말이야?
- 오빤 계속 나올 거잖아요.
- ......
- 거기서 나 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요?
- 혜진아...
- 오빠, 이제 인정해야죠. 우리, 이제 아니잖아요.
- ......
- 오빤 왜 날 못 믿고... 흑~
- 혜진아... 오빠, 너 사랑해,
- 칫, 벌써 늦었어요. 바보...
- 혜진아...
몇 마디 말을 더 했지만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얘기였다.
우리는 그렇게 결정이 났다. 반년쯤 만나다가...
겨우 반년만에?
내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가벼운 거였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잡지도 않았다.
임신하기를 바라면서 혜진이의 몸 안에 사정했던 때와도 또 생각이 달랐다.
왜 좀더 잡지 못했을까? 진짜 끝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길 좀 잡아달라는 말은 아니었을까?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권태기도 있고, 의심스러울 때도 있고 그렇듯,
연애할 때에도 그와 비슷한, 뭐 그런 시기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서로 연애에 서툴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비를 잘 넘기는 것도 연애의 기술이 아닐까.
전화로 얘기하는 건 만나서 얘기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혜진이도 나와 헤어지기 싫었다면 위기라고 생각했을 때처럼 찾아와서 얘기하는 편이 나았다.
전화로 묻고, 전화로 결정하고 통보하고...
그 전화통화를 하기 전에 혜진이는 이미 마음을 정해 놓고 있었던 거였다.
나나 혜진이나, 사랑에도 서툴렀고, 이별에도 서툴렀다.
혜진이와 나는 왜 그렇게 서로 멀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어린 녀석과 키스?
그래서?라는 충격적인 말?
결혼이라는 얘기에 혜진이가 우습다는 반응을 보였을 때?
그 녀석은 누군지, 왜 그렇게 무시하듯 말했는지, 또 왜 그렇게 웃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물어보려면 그때 진작에 물어봤어야 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돌이키려고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와 혜진이의 헤어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말이고, 또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결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통화한 이후, 우리는 약속하고 만나지도 않았고, 안부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 전화 한 통화로 우리는 헤어졌다.
* * * * * * * * *
그리고 그 다음 해 여름, 동아리 엠티에 놀러 갔다가 혜진이를 만났었다.
거의 일년만이었다.
어색했지만 일부러 더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그 다음엔 혜진이에게 신경쓰지 않고 예전처럼 그냥 선후배들과 어울렸다.
그날 밤,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혜진이와 나는 정말 오랜만에 단 둘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여느 대학 모임 엠티가 그랬듯 술판이 벌어졌을 때,
혼자 밖에 나와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이 많았다. 서울의 밤하늘과 달리, 산정호수에서 바라본 하늘엔 거짓말처럼 별이 많았다.
별빛만으로도 밝게 느껴질 정도로 많았다.
그 별빛이 쏟아지듯 눈에 가득찰 때쯤, 누군가가 뒤에서 불렀다.
언제 들어도 알 수 있는 혜진이의 목소리...
- 정우선배...
돌아보니 혜진이가 특유의 그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다가왔다.
손을 뒤로 뻗어 내밀었다.
혜진이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내 손을 잡아 왔다.
악수하듯 잡은 게 아니라 옆으로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가만히 서서 산 속의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 뭐 해요? 혼자서...
- 응? 그냥...
- 어떻게... 잘 지냈어요?
- 응. 나야 뭐... 혜진이는 어때?
- 나도 뭐...
- ......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일년이라고는 해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시간이었다.
혜진이나 나나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잡고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목아프게 고개를 젖힐 필요는 없었다.
그냥 앞만 바라봐도 밤하늘이 있었고 별들이 가득했다.
별이 밝았다.
- 나, 있잖아요...
- ......
- 다음달에 결혼해요.
- 그래? 축하할 일이네.
- 오빠한테는 진짜 축하 받고 싶었어요.
아까는 선배였는데, 이번엔 오빠라고 불렀다.
혜진이도 호칭의 차이에 신경을 쓰고 있을까?
아니면 나 혼자서만 호칭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는 걸까?
- 그래? 누구랑?
- 선배는 모르는 사람이예요.
호칭이 다시 선배로 바뀌었다.
오빠라고 부를 때보다 조금 더 거리감이 느껴졌다.
- 후훗~
- 나보다 세 살 많구,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이예요.
- 그래? 나랑 동갑이네? 혜진이 많이 사랑해 줄 사람일 거야.
- 큭~, 선배는 여전하네요.
- 뭐가?
- 모범답안 같은 소리만 하잖아요. 이그...
- 그래? 내가 그런가?
- 하긴, 나도 내가 어떤지는 잘 모르죠.
그리고는 또 얼마간 말이 없었다.
혜진이가 손을 놓았다.
힘을 주어 잡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서서 하늘만 바라보는데, 혜진이가 다시 손을 잡아 왔다.
혜진이를 향해 돌아서서 다른 손으로 혜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혜진이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 다가서서 내 품에 기대듯 가만히 안겨 왔다.
잡힌 손을 빼어 혜진이의 어깨를 가볍게 안았다.
쓰다듬던 손도 머리에 가만히 얹어 두었다.
혜진이가 손을 올려 내 허리께를 잡았다.
가슴에서 혜진이가 머리를 드는 게 느껴졌다.
혜진이를 쳐다보자 또 고개를 숙였다.
턱을 받치고 입술을 가져갔다.
그러나 입술에 닿은 건 혜진이의 손가락이었다. 쉿~이라고 하는 듯이.
- 안 돼요.
- ......
- 말했잖아요, 결혼한다고...
- 어, 미안....
- 아니예요. 선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부끄러웠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예전처럼 혜진이를 대했었다.
이미 연인이 아닌 사이에,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다.
얼굴이 계속 화끈거렸다.
- ......
- 나, 그 사람에게만 허락하려구요.
- .....
- 선배도 한 사람만 사랑해 주세요.
-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년에 한참 했던 고민이 다시 생각났다.
어린 놈, 키스, 결혼상대...
나는 혜진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혜진이를 믿지는 못했었다.
혜진이는 이런 아이였는데. 한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여자였는데...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런 바보 같으니...
그때, 혜진이가 발돋움을 하고는 내 목을 안았다.
혜진이의 등을 한두 번 토닥여 주고 바로 손을 내렸다.
혜진이도 이내 팔을 풀고 다시 하늘만 바라봤다.
- 누군지 좋겠다. 선배 애인 될 사람은...
- ......
- 작년에 선배랑 만날 때, 많이 사랑받는 느낌이었거든요.
- ......
- 또 그렇게 사랑받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 그렇게 될 거야.
- 그럴까요?
- 혜진이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많이 사랑하는 건 한계가 있다. 많이 사랑받으려고 해야 많이 사랑해줄 수 있다.
이쁜 짓을 해야 더 사랑받는 거다.
나랑 있을 때 예쁜 짓을 많이 했었던 혜진이는
나한테 했던 것처럼 결혼할 사람에게도 예쁜 짓을 많이 할 것이고 많이 사랑받을 것이다.
단, 좀더 서로 터놓고 말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혜진이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둘이 만들어 가는 거고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오지랖이다.
나와 혜진이의 남녀간의 인연은 거기서 진짜로 끝났다.
혜진이와는 그 후로 거의 7~8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내가 여기저기 지방으로 직장을 옮겨다니며 동아리 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혜진이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영대를 통해 축의금을 전달했을 뿐이다.
영대와는 그런 나에게도 가끔씩 연락을 했고, 영대는 선후배들과 아주 넓게 연락하고 있었던 덕에
결국은 동아리 모임에서 혜진이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다시 보던 날도 혜진이는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그 이후로도 우리는 동아리 동문회에서 일년에 한두 번쯤은 얼굴을 보고,
동아리 카톡방이나 밴드에서 대화도 하고, 서로 안부전화도 가끔씩은 하고 있다.
선후배로서...
그러나, 혜진이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추억을 나누어 가진, 나에게는 특별한 여자다.
혜진이에게 나도 그럴까...
- - - - - - - - -
첫 글이 첫 섹스만큼이나 짧네요...
뭐, 다음 글도 길 거라고 장담은 못 드립니다만...
글이라는 걸 처음 써 보느라 사건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꾸뻑~
혜진이가 위기라고 생각했던 건 맞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그 위기를 넘기려 시도했던 혜진이의 방법은 별로 효과가 없었다.
우리는 점점 만나는 날 수가 줄어들고, 전화하는 횟수도 줄어들었다.
위기를 넘겼다던 날 이후로 섹스하는 일도 없었다.
나는 해외 지사의 직원 교육 프로그램 때문에 2, 3일씩 가는 출장이 잦아졌고,
혜진이는 혜진이대로 바빴지만 이따금 전화를 할 때면 내가 소홀해졌다는 얘기를 언뜻언뜻 비추었다.
10월이었는데 꽤 바람이 차가왔던 날, 오랜만에 혜진이를 만났었다.
그날도 겉도는 대화를 하다가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
혜진이가 집에 가려면 전철을 타야 했는데
혜진이가 갈아타는 역까지 같이 전철을 타고 가서
개찰구로 들어가는 혜진이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서 있다가
마지막으로 돌아보는 혜진이와 손을 마주 흔들어 인사를 하고 돌아섰다.
둘이 있다가 헤어지니 바람이 더 차갑게 느껴졌다.
옷을 가볍게 입고 나왔다가 찬 바람을 맞으니 저절로 투덜거리게 되었고,
괜히 나왔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때 나 스스로도 깜짝 놀랐던 생각이 아직도 난다.
혜진이를 만나러 나왔으면서 괜히 나왔다니....
내가 생각해도 혜진이에 대한 내 감정은 예전같지 않았다.
혜진이도 그렇고, 분명히 뭔가 틈이 생겼었다.
혜진이를 생각하지 않은 날도 있을 정도로 일에만 파묻혀 지내던 어느 날,
밤늦게 혜진이가 전화를 걸어 왔다.
일상을 묻고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혜진이가 문득 물었다.
- 오빠, 나 보고 싶어요?
- 응...? 그럼~, 보고 싶지.
- 나 사랑해요?
- 응?.... 사랑하지, 그럼...
쉽게 대답하지 못하고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예전처럼 자신있게 보고 싶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말도 의식적으로 해야 나왔다.
그냥 보고 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면 되는데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내가 혜진이를 사랑하는지 생각해보고 있었다.
한심하게도... 바보같이...
그냥 사랑한다고 말하면 되는데... 그 쉬운 걸 못 했다.
그리고, 그 텀은 혜진이가 눈치챌 만큼 길었다.
- 큭, 역시 정우 오빠야....
- ......
혜진이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그제서야 알았다. 혜진이는 술을 마신 상태였다.
많이 취하지는 않았지만, 맨정신은 아니었다.
- 오빠.
- 응?
- 나.... 동아리 모임에 계속 나가도 돼요?
혜진이의 목소리가 떨렸다. 흐느끼는 소리도 들렸다.
머리를 한 대 맞은 느낌이었다.
나는 나대로 혼란스러웠는데, 얘는 지금 왜 울고 있지?
- 무슨 말이야?
- 오빤 계속 나올 거잖아요.
- ......
- 거기서 나 봐도 아무렇지 않을 수 있어요?
- 혜진아...
- 오빠, 이제 인정해야죠. 우리, 이제 아니잖아요.
- ......
- 오빤 왜 날 못 믿고... 흑~
- 혜진아... 오빠, 너 사랑해,
- 칫, 벌써 늦었어요. 바보...
- 혜진아...
몇 마디 말을 더 했지만 결과적으로 불필요한 얘기였다.
우리는 그렇게 결정이 났다. 반년쯤 만나다가...
겨우 반년만에?
내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가벼운 거였나 하는 생각에 자괴감이 들었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적극적으로 잡지도 않았다.
임신하기를 바라면서 혜진이의 몸 안에 사정했던 때와도 또 생각이 달랐다.
왜 좀더 잡지 못했을까? 진짜 끝이라는 말이 아니라, 자길 좀 잡아달라는 말은 아니었을까?
결혼생활을 하다 보면 권태기도 있고, 의심스러울 때도 있고 그렇듯,
연애할 때에도 그와 비슷한, 뭐 그런 시기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기도 하지만
서로 연애에 서툴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고비를 잘 넘기는 것도 연애의 기술이 아닐까.
전화로 얘기하는 건 만나서 얘기하는 것과는 천지차이다.
혜진이도 나와 헤어지기 싫었다면 위기라고 생각했을 때처럼 찾아와서 얘기하는 편이 나았다.
전화로 묻고, 전화로 결정하고 통보하고...
그 전화통화를 하기 전에 혜진이는 이미 마음을 정해 놓고 있었던 거였다.
나나 혜진이나, 사랑에도 서툴렀고, 이별에도 서툴렀다.
혜진이와 나는 왜 그렇게 서로 멀어졌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했었다.
어린 녀석과 키스?
그래서?라는 충격적인 말?
결혼이라는 얘기에 혜진이가 우습다는 반응을 보였을 때?
그 녀석은 누군지, 왜 그렇게 무시하듯 말했는지, 또 왜 그렇게 웃었는지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않았다.
이미 지난 일, 그 이유를 안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었다.
물어보려면 그때 진작에 물어봤어야 했었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돌이키려고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나와 혜진이의 헤어짐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결말이고, 또 어떻게 보면 말도 안 되는 결말이다.
어쨌든, 그렇게 통화한 이후, 우리는 약속하고 만나지도 않았고, 안부전화도 하지 않았다.
그 전화 한 통화로 우리는 헤어졌다.
* * * * * * * * *
그리고 그 다음 해 여름, 동아리 엠티에 놀러 갔다가 혜진이를 만났었다.
거의 일년만이었다.
어색했지만 일부러 더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그 다음엔 혜진이에게 신경쓰지 않고 예전처럼 그냥 선후배들과 어울렸다.
그날 밤, 계획한 건 아니었지만 혜진이와 나는 정말 오랜만에 단 둘이서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저녁을 먹고, 여느 대학 모임 엠티가 그랬듯 술판이 벌어졌을 때,
혼자 밖에 나와서 하늘을 보고 있었다.
별이 많았다. 서울의 밤하늘과 달리, 산정호수에서 바라본 하늘엔 거짓말처럼 별이 많았다.
별빛만으로도 밝게 느껴질 정도로 많았다.
그 별빛이 쏟아지듯 눈에 가득찰 때쯤, 누군가가 뒤에서 불렀다.
언제 들어도 알 수 있는 혜진이의 목소리...
- 정우선배...
돌아보니 혜진이가 특유의 그 긴 머리를 쓸어넘기며 다가왔다.
손을 뒤로 뻗어 내밀었다.
혜진이가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내 손을 잡아 왔다.
악수하듯 잡은 게 아니라 옆으로 나란히 서서 손을 잡고
가만히 서서 산 속의 밤 풍경을 바라보았다.
- 뭐 해요? 혼자서...
- 응? 그냥...
- 어떻게... 잘 지냈어요?
- 응. 나야 뭐... 혜진이는 어때?
- 나도 뭐...
- ......
딱히 할 말이 없었다.
일년이라고는 해도 크게 달라질 것 없는 시간이었다.
혜진이나 나나 잡은 손을 풀지 않았다.
마치 그게 당연한 것처럼 잡고 서서 밤하늘을 바라보았다.
목아프게 고개를 젖힐 필요는 없었다.
그냥 앞만 바라봐도 밤하늘이 있었고 별들이 가득했다.
별이 밝았다.
- 나, 있잖아요...
- ......
- 다음달에 결혼해요.
- 그래? 축하할 일이네.
- 오빠한테는 진짜 축하 받고 싶었어요.
아까는 선배였는데, 이번엔 오빠라고 불렀다.
혜진이도 호칭의 차이에 신경을 쓰고 있을까?
아니면 나 혼자서만 호칭에 대해 특별하게 생각하는 걸까?
- 그래? 누구랑?
- 선배는 모르는 사람이예요.
호칭이 다시 선배로 바뀌었다.
오빠라고 부를 때보다 조금 더 거리감이 느껴졌다.
- 후훗~
- 나보다 세 살 많구, 회사에서 알게 된 사람이예요.
- 그래? 나랑 동갑이네? 혜진이 많이 사랑해 줄 사람일 거야.
- 큭~, 선배는 여전하네요.
- 뭐가?
- 모범답안 같은 소리만 하잖아요. 이그...
- 그래? 내가 그런가?
- 하긴, 나도 내가 어떤지는 잘 모르죠.
그리고는 또 얼마간 말이 없었다.
혜진이가 손을 놓았다.
힘을 주어 잡을까 생각도 해 봤지만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한참을 그렇게 말없이 서서 하늘만 바라보는데, 혜진이가 다시 손을 잡아 왔다.
혜진이를 향해 돌아서서 다른 손으로 혜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혜진이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한발 다가서서 내 품에 기대듯 가만히 안겨 왔다.
잡힌 손을 빼어 혜진이의 어깨를 가볍게 안았다.
쓰다듬던 손도 머리에 가만히 얹어 두었다.
혜진이가 손을 올려 내 허리께를 잡았다.
가슴에서 혜진이가 머리를 드는 게 느껴졌다.
혜진이를 쳐다보자 또 고개를 숙였다.
턱을 받치고 입술을 가져갔다.
그러나 입술에 닿은 건 혜진이의 손가락이었다. 쉿~이라고 하는 듯이.
- 안 돼요.
- ......
- 말했잖아요, 결혼한다고...
- 어, 미안....
- 아니예요. 선배...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부끄러웠다.
아무 생각도 없이 예전처럼 혜진이를 대했었다.
이미 연인이 아닌 사이에, 분명히 잘못된 행동이었다.
얼굴이 계속 화끈거렸다.
- ......
- 나, 그 사람에게만 허락하려구요.
- .....
- 선배도 한 사람만 사랑해 주세요.
- ......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작년에 한참 했던 고민이 다시 생각났다.
어린 놈, 키스, 결혼상대...
나는 혜진이를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혜진이를 믿지는 못했었다.
혜진이는 이런 아이였는데. 한 사람에게만 허락하는 여자였는데...
후회와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런 바보 같으니...
그때, 혜진이가 발돋움을 하고는 내 목을 안았다.
혜진이의 등을 한두 번 토닥여 주고 바로 손을 내렸다.
혜진이도 이내 팔을 풀고 다시 하늘만 바라봤다.
- 누군지 좋겠다. 선배 애인 될 사람은...
- ......
- 작년에 선배랑 만날 때, 많이 사랑받는 느낌이었거든요.
- ......
- 또 그렇게 사랑받고 싶은데... 모르겠어요.
- 그렇게 될 거야.
- 그럴까요?
- 혜진이니까.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많이 사랑하는 건 한계가 있다. 많이 사랑받으려고 해야 많이 사랑해줄 수 있다.
이쁜 짓을 해야 더 사랑받는 거다.
나랑 있을 때 예쁜 짓을 많이 했었던 혜진이는
나한테 했던 것처럼 결혼할 사람에게도 예쁜 짓을 많이 할 것이고 많이 사랑받을 것이다.
단, 좀더 서로 터놓고 말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했지만 혜진이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사랑은 둘이 만들어 가는 거고 누가 어떤 말을 하든 오지랖이다.
나와 혜진이의 남녀간의 인연은 거기서 진짜로 끝났다.
혜진이와는 그 후로 거의 7~8년 동안 연락이 닿지 않았는데,
내가 여기저기 지방으로 직장을 옮겨다니며 동아리 모임에도 잘 참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혜진이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했고 영대를 통해 축의금을 전달했을 뿐이다.
영대와는 그런 나에게도 가끔씩 연락을 했고, 영대는 선후배들과 아주 넓게 연락하고 있었던 덕에
결국은 동아리 모임에서 혜진이를 다시 보게 되었는데 다시 보던 날도 혜진이는 반갑게 인사를 했고,
그 이후로도 우리는 동아리 동문회에서 일년에 한두 번쯤은 얼굴을 보고,
동아리 카톡방이나 밴드에서 대화도 하고, 서로 안부전화도 가끔씩은 하고 있다.
선후배로서...
그러나, 혜진이는 남들에게 말할 수 없는 추억을 나누어 가진, 나에게는 특별한 여자다.
혜진이에게 나도 그럴까...
- - - - - - - - -
첫 글이 첫 섹스만큼이나 짧네요...
뭐, 다음 글도 길 거라고 장담은 못 드립니다만...
글이라는 걸 처음 써 보느라 사건을 어떻게 전개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읽어 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꾸뻑~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