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여인들 - 남의 여자 - 2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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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여인들 - 남의 여자 상편
연수원 조직의 TO는 일곱 명밖에 안 되었다.
이사급 원장과 부장급 부원장, 그 아래 과장 하나 직원 둘...
물론, 실제 연수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교수진과 교육위원들은
별도로 초빙되거나, 그룹 각 계열사 연구소의 굵직굵직한 박사들이 담당했고,
연수부는 연수 진행과 관련된 지원업무만 담당하는 조직이라 그 인원으로도 부족하지는 않았다.
연수원장과 부원장은 거의 이름만 있는 자리였고,
과장과 선배 직원 하나와 식당 영양사, 그리고 주사님이라고 부르던 건물 관리인,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 수만 평이 넘는 연수원의 관리직원이었다.
그 외에 식당 주방 아주머니들, 청소 용역아저씨들은 말 그대로 용역이었다.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과장이 바뀌었었다.
초보 사랑 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새로 온 과장은 맞추기 힘든 사람이었다.
선배도 과장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 하아... 너도 그러냐?
- 뭐, 다들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요?
- 어쩌겠냐, 그래도 과장인데... 아랫것들이 참아야지...
- 얘기하면 바뀌진 않을까요?
- 얘기? 누가? 한선생이 할래?
- 헉~...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들어나 봤냐?
- ......
- 승진하겠답시고 다른 부서 나온 모양인데... 우리만 갑갑하게 됐지, 뭐...
- 다른 부서라니요?
- 경리부서에만 20년 있던 사람이야. 이제 부장 되려면 한 부서에서만 근무한 경력으로는 안 되거든...
- 아아...
- 그래서 나왔겠지, 뭐... 경리부에서 20 년이면 꿀보직에 만고 땡일 텐데...
- 그렇군요...
- 됐고, 우리는 그냥 일이나 잘 하면 돼. 꼬장부리지 않게...
혜진이와 헤어지자는 통화를 하고 난 후, 나는 진짜로 혜진이를 잊으려 애썼다.
쉽지 않았지만 미친 듯이 업무에만 매달렸다.
할 일이 있으면 퇴근시간이 늦어도 상관없었고,
휴일에도 나가서 일했다. 언젠가는 3일 연휴 내내 출근했던 적도 있었다.
나 스스로도 몰입했었지만 100% 내 뜻이었던 건 아니었다.
연수원 특성상 휴무일에도 한 사람은 당직을 해야 했다.
연수는 불시에 계획될 때도 있었고, 바로 다음날부터 연수를 진행한다고 연락이 올 때도 있었다.
지방 계열사 직원들은 연수 전날부터 올라와서 숙박하는 경우도 있어서
무조건 한 사람은 근무를 해야 했다.
게다가, 3일 연휴 동안 계속 출근한 것도, 사실 내가 자원하기는 했지만
그 중 하루는 선배, 하루는 과장이 당직을 해야 했던 날이었다.
선배의 당직 날에는 둘이서 점심때 짬뽕국물에 소주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회사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연휴 첫날이었던 과장의 당직 날에는 참 어이가 없는 일을 겪었다.
- 저어기... 한선생?
- 예, 과장님.
- 그... 말이우, 내일 내가 당직인데 말이우...
- 예, 말씀하세요.
- 한선생이 내일 나와서 일 할 거라며?
- 예, 아마 계속 나올 거예요.
- 그래서 말이우... 나는 안 나왔으면 해서...
- 예? 당직자는 과장님인데...
- 아, 그러니까 말하는 거 아니우...?
- 예, 뭐 그러셔도 되겠네요. 제가 있을 거니까요...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연휴 내내 출근할 거라고 말했으니까.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웃기지도 않았다.
- 그... 혹시 말이우...
- 예, 무슨 처리할 일이라도...?
-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이우... 혹시나 나 찾는 전화가 올 수도 있잖아...
- 예...
- 전화 오면 얘기 좀 잘 하시우, 응?
- ......
- 아, 화장실 갔다고 하든지 잠시 나갔다고 하든지...
- 예... 예.
- 그리고, 내 휴대 전화로 연락을 줘. 누가 전화했는지... 그러면 내가 전화를 할 거니까 말이우...
- 예... 알겠습니다.
허, 참... 기가 막혔지만 그냥 알았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부탁도 아니고 조금도 망설이거나 미안해 하는 기색 없이 요구할 수 있는
그 뻔뻔함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과장은 주말부부였다. 집은 파주라고 했나, 연천이라고 했나...
출퇴근하기엔 좀 멀어서 연수원 사택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과장은 거의 매일, 퇴근하는 우릴 붙들고 술을 먹자고 했다.
나도 혜진이랑 매일 만나던 게 좀 식어가던 때라 자주 어울렸고
선배는 애인도 없고, 하숙집도 가까운 사람이라 대부분 같이 먹고 마셨다.
그리고 가끔은 2차로 여자 있는 술집에서 마시기도 했다.
그 선배도 나한테 좀 황당한 짓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혜진이와 한참 사귈 때였는데, 어느 날 회식하며 술을 먹다가 막차를 놓쳤다.
하필 주말이라서 선배는 충청도 본가에 다니러 간다며 1차만 마시고 먼저 갔었던 날이었다.
2차로 과장과 둘이서만 맥주를 마셨고, 바늘방석처럼 불편한데도 과장은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결국 밤늦게 끝났고, 과장은 혼자서 냉큼 관사로 들어가 버렸다.
잘 곳이 있느냐는 지나가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 아... 나, 참... 여보세요? 엄마?... 예, 좀 늦어서 막차를 놓쳤어요... 예.... 걱정 마세요. 한데서 자지 않을게요... 예?.... 아니예요, 많이 안 먹었어요... 네.... 네... 주무세요.
어쩔 수 없이, 집에는 못 간다고 전화를 하고 어찌어찌 하다가 선배와 연락이 되었는데,
선배는 자기 하숙하는 집에서 하루 자고 가라고 권했다.
내 사정을 듣고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게 고맙긴 했지만...
- 주인도 없는 방에 어떻게 제가 가요?
- 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집주인한테 말해 놓을게.
- 그래두요...
- 아니라니까. 가서 편히 쉬어.
- 아, 참... 하하, 이걸...
- 그려, 잘 자고 그럼...
나는 어색하게 웃었지만 선배는 그냥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나는 뻘쭘하게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차라리 관사에 같이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했지만, 과장에게 다시 전화하기는 싫었다.
마침 현금도 별로 없었고, 선배 방에서 하루 자고 일찍 집에 가는 게 그나마 낫겠다는 생각에,
선배가 알려준 대로 찾아가 선배가 알려준 번호의 방에 들어갔다.
꽤 많이 마셨던 터라, 대충 씻고 나서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담배냄새가 독했지만, 취한 김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진짜 꿈인 줄 알았다.
혜진이가 안겨 왔다.
예쁘게 품에 안겨 내 가슴을 빨다가 내 위로 올라타고는 내 자지를 잡고 보지에 문질렀다.
귀두가 반쯤 혜진이의 미끄러운 보지 입구에 물리자
자지 끝에 느껴지는 촉촉함이 마치 진짜로 하는 것처럼 생생했다.
애무가 급하고 짧았던 것도 아쉬웠고, 하기 전에 자지를 좀 빨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혜진이의 손목을 잡아 제지하고는 혜진이의 머리를 자지 쪽으로 당겼다.
의외로 혜진이가 뻣뻣하게 저항했다.
- 혜진아... 오빠 거 키스해 줘.
- ......
힘으로 누르는 대신, 혜진이의 머리를 안고 쓰다듬었다.
언제 만져도 좋은 혜진이의 부드럽고 긴 머리. 부드럽고 긴...,
그런데 어째, 부드... 럽지가 않다?
짧고... 거칠고... 게다가 파마 머리다.
짧고 거친... 파마 머리...?
부드럽고 긴 혜진이 머리가 아니네?
눈을 번쩍 떴다. 짧고 거친 파마 머리를 확 밀쳐내며 벌떡 일어났다.
털썩~ 파마머리가 엉덩방아를 찧은 모양이다.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켰다. 부신 눈을 억지로 뜨고 살펴보니
방 한쪽에 웬 여자 하나가 벌거숭이 몸을 가리지도 않고 나동그라져 있었다.
- 엄마야~, 아야야...
- 누구야?
- 아이구~
- 누구세요? 누구십니까?
여긴 어디지? 순간 당황했다. 거기가 어디인지,
왜 거기에 있는지,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 아유, 참... 좋아할 거라더니만...
- 뭐가요? 누가요?
- 가만히 있어 봐요. 잔뜩 흥분했으면서... 혜진이가 누구야? 애인이야?
여자는 다시 내 자지로 손을 뻗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여자는 누군데 왜 여기서 내 자지를 만지고 있는 거지? 혜진이도 아니면서...
순간 우스웠다. 혜진이도 아니면서...라고? 내 자지는 혜진이만 만지는 거였나?
그랬었구나. ㅋㅋㅋ 피식, 웃음이 났다.
자지는 뻣뻣하게 발기한 채, 꺼떡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러닝만 입고 자지를 드러낸 알몸으로 서서 누구냐고 묻고,
여자는 속옷 차림으로 한쪽 팔을 짚고 앉아 자지로 손을 뻗는 상황...
황당하고 어색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그 전날 일들이 조금씩 생각났다.
술을 먹었고, 막차를 놓쳤고, 그래서 선배 방에 하루 신세지기로 했었고...
그런데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트렁크 팬티를 꿰어 입으며 물었다.
- 그런데, 누구세요?
- 아, 종석씨가 얘기 안 했어요?
- 선배가요? 무슨 얘기요.
- 난 이 집 주인이예요.
- 그런데요?
종석씨는 선배 이름이다.
주인이면? 주인은 세입자 방에 함부로 들어와서 거기서 자는 사람 자지를 만져도 되나?
황당함이 가시질 않았다.
- 어젯밤 늦게 종석씨가 전화를 했어요. 후배가 가서 잘 거라고.
- ......
- 후배한테도 말한 줄 알았어요. 나랑 자라고...
여자는 말끝을 흐렸다.
- 왜 아주머니랑 자라는 거죠?
- 아니, 종석씨가 좋은 밤 보내라고... 나, 그런 여자 아니예요.
좋은 밤? 그런 여자가 아니다? 어떤 여자? 누가 뭐라고 했나?
들을수록 더 황당한 얘기 뿐이었다.
혹시 선배는 집주인 아주머니와 섹스하는 사이였나? 유들유들한 사람이긴 했지만...
- 종석씨가 하나도 말 안 했나 보네...
여자는 자꾸 선배만 들먹였다. 선배를 들먹여 봐야 해결될 건 없는데...
꼬치꼬치 캐물어서 알아낸 얘기는 이랬다.
선배는 막차가 끊어졌다는 내 말에 호의로 방에 가서 자라고 했는데,
전화를 끊고 장난을 계획한 거였다.
평소에 정을 통하며 지내던 집주인 여자에게,
젊은 총각이 가서 잘 테니 한번 먹어라... 뭐 이런 소리를 한 거였고
여자는 그래도 되느냐고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냉큼 내 이불 속으로 기어든 거였다.
얼마나 밝히는 여자였으면...
내막을 알고 났어도 황당함은 가시지 않았고 황당함에 더해서 화가 났다.
남녀를 바꿔서 생각해 보면 이건 범죄다.
반대로, 여자 혼자 자는 방에 남자가 들어와서 옷을 벗기고 보지를 만진 다음 삽입하려 했다면...?
그건 강간이다. 많이 봐줘도 강간미수다.
남자가 그러면 강간이고, 여자가 그러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모순이다.
세상에 남자는 하면 안 되고, 여자는 해도 되는 일은 없다.
똑같은 짓을 하면서 내가 하면 괜찮고, 네가 하면 범죄고...
수준낮은 한국 정치도 아니고, 그래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여자는 방에서 나가려 하지도 않고, 옷을 입으려 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이부자리에 먼저 누우며 그만 자자는 소리를 했다.
아니, 졸린 것도 맞고, 자야 되는 것도 맞는데, 아줌마가 왜 여기 드러눕는 건데?
- 지금 여기서 잔다구요?
- 아니 그럼, 안 자요?
- 예? 아니... 무슨...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 눈도 여자 못지 않게 커졌을 거다.
그러나, 별로 실랑이도 하지 않고 나는 여자를 내보내는 걸 포기했고,
여자는 마치 자기 이부자리라도 되는 듯 자리에 먼저 누워서.
이리 와라, 누워라, 자자, 밤 샐 거냐... 이따금씩 이런 소리를 했고,
나는 속옷바람으로 요 한쪽에 앉아 서너 시간 동안 한숨만 푹푹 쉬어대다가
어슴푸레 동 틀 무렵에 그 집을 나왔다.
잠도 못 자고 피곤했지만 화가 더 났다.
그 다음 주에 출근해서 만난 선배는 재미있다는 듯 실실 웃었고,
나는 기분이 무지 나빴지만 웃사람인 데다가 진짜 악의는 없어 보이는 웃는 얼굴에 화를 낼 수도 없고,
아, 나, 진짜... 만 반복하며 헛웃음만 내뱉었다.
선배는 한번 먹지 그랬느냐고, 먹을 만하다고 계속 킬킬댔다.
물론, 아는 사람과 구멍동서가 될 수도 있다.
나중에 다른 회사 영업부서에 근무할 때에는 룸살롱에도 자주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내 파트너였던 애가 내가 안 가는 다른 날에는 다른 동료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고,
그러다 2차 나가서 섹스도 하고... 그럴 수 있다.
그런 구멍동서가 모르긴 몰라도 꽤 될 거다.
나만 그런가? 읽으시는 분들도 사실 그렇잖아...?
하지만, 업소에서 돈 내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다 아는 사이에 오늘은 나랑 섹스하고, 내일은 너랑 하고...
그건 좀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업소 여자들과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섹스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 여자가 별로 맘에 안 들었던 이유가 제일 컸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였다면
내 이불 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와서 내 자지를 쓰다듬는 여자를 내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는 기억이다. 하, 참, 나...
그 일을 겪은 바로 다음 주에, 회식을 하게 되었었다.
집에서 자는 시간만 빼고 회사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일에 집중하려 애쓰던 그때,
직원 회식을 하던 날이었다.
과장과 선배와 그냥 한잔씩 하는 거 말고, 공식적으로 회식이라고 하는 걸 매달 했는데,
그때는 마침 연수원 식당 영양사가 그만두게 되어서 송별회 핑계로 같이 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간다고 했던가, 어디 무슨 식품연구소로 간다고 했던가, 어쨌든 회사는 그만두기로 했었다.
과장과 선배, 그리고 나, 연수원 관리하는 주사님, 그리고 영양사 이지연 선생...
이렇게 다섯이서 회식을 하려고 연수원 인근 동네 고깃집에 조촐하게 자리를 잡았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술자리에서 모처럼 참석한 영양사 이선생을 위주로 얘기가 돌아갔다.
맨날 남자끼리만 마시다가 예쁘장한 젊은 여자가 끼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러는 와중에 과장이 하는 짓이 눈에 띄게 이상했다.
술자리는 자주 만들어도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자기는 소주 한 잔도 몇 번씩 꺾어 마시면서, 마주 앉은 이선생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권하는 대로 바보같이 넙죽넙죽 받아먹은 이선생은 결국 헤롱거리는 상태가 되었다.
혀가 꼬였고, 말이 늘어졌다.
그러면서도 깔깔거리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과장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맞장구를 치고 어색하게 웃으며 또 술을 붓곤 했다.
시간도 꽤 지났고, 자리를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밥을 먹자고 제의했다.
술자리의 마감은 역시 밥이었다.
- 자, 식사들 하셔야죠? 된장찌개 드실 분, 아니면 냉면?
- 고기 먹고는 냉면이지. 난 물냉.
선배가 바로 냉면으로 호응해 왔다.
- 이사람, 먹을 줄 모르네... 난 된장! 밥이 최고지.
과장은 된장찌개에 밥을 먹겠다고 했다.
냉면이다, 밥이다, 과장과 선배가 서로 낫다고 우기며 서로를 음식 먹을 줄 모르는 사람 취급하며 다투었다.
희한한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게 똑같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런 걸로 다투는 인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수긍할 수가 없다.
싸우든 말든, 각자 선택한 대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이선생이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서다가 휘청했다.
- 엄마야... 하아...
신음소리가 야릇하게 들렸다.
이선생 좌우에 앉았던 나와 선배는 서로 마주보며 잠시 고민하는데
밥상 반대편에 있던 과장이 어느 새 이선생에게 달려가 부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에 확 짜증이 났다.
부축하려면 보통 팔을 잡아주거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받쳐주는 게 정상이 아닐까.
게다가 여자라서 나나 선배는 부축할까 말까 그것조차 고민했었는데
과장은 아예 뒤에서 이선생을 껴안고 일으켰다.
이선생은 그 손을 뿌리치지도 않았다.
아니, 뿌리치지 못했다. 아예 축 늘어져 있었으니까.
화장실에 가겠다고 일어설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로 취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다.
그때 이선생은 이미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였다.
그걸 멀리서 보는 나도 알 정도였으니 바로 뒤에서 안고 있는 과장도 알았겠지.
과장은 아예 이선생의 가슴을 두 손으로 덮었다.
아예 뒤에서 꼭 껴안고 가슴을 만지는 모양새였다.
- 자, 이선생. 일어나요. 자, 똑바로 서야지...
이선생은 취해서 정신이 없으니 그런 짓을 당하는 걸 모른다고 해도,
그 자리엔 그 둘만 있는 게 아니잖은가. 나도 있고, 선배도 있고, 주사님도 있고...
그 시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건지 너무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정신 못 차리는 젊은 여자의 가슴을 주물러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추행을 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이선생 옆에 앉았던 선배가 이선생의 한쪽 팔을 잡으며 과장을 말렸다.
- 저, 과장님. 잠깐 앉히는 게...
- 아니야, 화장실 간대잖아. 자, 이선생, 바로 서 보라니까...
선배와 주사 모두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중에 직급이 제일 높은 과장이었지만 나이는 주사와 비슷했다.
하는 짓은 좆같아서 용납하기가 어려운데 웃사람이라서 대놓고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표정...
뭐 하는 짓이냐고 하고 싶었지만, 쉽게 그러지 못하고 주저했다.
선배와 주사가 가만히 있는데 제일 아랫사람인 내가 나서서 그러는 건 왠지 망설여졌다.
과장은 계속 일어나라고 하면서 이선생을 주물러댔는데,
그렇게 소란을 떨고 있으니 주변의 다른 손님들 시선이 집중되는 건 당였했다.
쪽팔린 짓은 과장이 하고 있는데, 내가 다 쪽팔렸다.
아, 진짜 쪽팔렸다. 살면서 그렇게 쪽팔린 적이 또 있었을까?
주변에서 그렇게 쳐다보고 여기저기서 헛기침을 하면서 민망함을 표현하는데도
이 인간은 발정이라도 난 건지, 아예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아, 지금 생각해도 졸라 민망하고 쪽팔리다.
과장은 계속 이선생 가슴만 주물러 댔다.
결국 선배가 귓속말로 과장에게 얘기를 하고 나서야 과장은 주변을 돌아보며 이선생을 놓아 주었다.
그런데도 별로 창피해하거나 민망해하지 않았다.
창피해하고 민망해하는 건 나머지 세 사람이었다. 진짜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더 쪽팔린 건,
한쪽에 이선생이 취해서 누워 있는데, 시켜놓은 된장찌개와 냉면이 나오자
과장과 선배, 주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걸 먹고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십년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해도 내 얼굴이 화끈해지는 그 상황에서
그들은 밥이 넘어 갈 수 있다는 게 황당할 뿐이었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내가 안 먹은 내 몫의 밥까지 알뜰하게 다 긁어먹은 다음에야 과장은 일어섰다.
그리고 또 이선생에게 손을 대려 하기에, 과장과 이선생 사이를 가로막고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 선배님, 제가 업을게, 좀 도와주세요.
- 응, 그래...
이선생을 업고 일어나면서 과장을 흘낏 보니
과장은 마치 자기 걸 남에게 빼앗긴 사람처럼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쓰지 않고 식당을 나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과장이 쫄래쫄래 다가왔다.
- 한선생, 연수원으로 가지.
- 예? 연수원에는 왜요?
- 아, 가서 눕혀야지.
- 집에 보내야지, 왜 연수원에 눕혀요?
- 아, 글쎄, 연수원이 가깝잖아...
- 아니, 과장님... 근데...
- 아, 어서... 응? 과장이 시키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시우, 응?
아, 씨발 진짜.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연수원에 누울 만한 곳이라고는 연수생 숙소 아니면 관사,
또는 우리가 사택이라고 부르던, 관리인인 주사님 가족이 거주하는 사택 뿐인데,
당시 숙소는 연수기간이 아니면 난방을 하지 않아서 추웠고,
사택은 방이 두 개 있었지만 주사님 부부와 아이들이 각각 쓰고 있어서 이선생을 재울 여유공간은 없었다.
결국 과장 얘기는 자기 관사에 데려다 눕히라는 거였다.
여자를 데려다 거기 눕혀 놓고 뭐 하게? 나는 더 물러설 수가 없었다.
- 아뇨, 이선생님 댁도 멀지 않으니까 그쪽으로 가는 게 낫겠습니다.
- 이선생 집? 한선생이 이선생 집을 어떻게 알아?
- 직원 주소록에 있어서 봤죠. 바로 요 아래 동네잖아요?
- 이선생 주소를 왜 한선생이 외우고 있어?
- 아, 일부러 외운 게 아니라 그냥 기억이 나는 거예요.
아, 나, 진짜...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무슨 트집을 잡는 것도 아니고...,
연수원에서 자잘한 업무를 처리하는 게 나였고, 직원 처우나 복지 관련한 일도 내 몫이었다.
명절 선물을 신청할 때 주소를 물어 보았고, 혹시나 잊을까봐 직원 다섯 명의 주소록을 작성해 두었었다.
그랬는데, 주소를 기억하는 게 무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그치고 있으니 짜증이 안 나겠는가 말이다.
대답하는 내 말투가 내가 듣기에도 곱지 않았다.
그러나 과장은 한술 더 떴다.
- 한선생, 혹시 이선생한테 관심 있수?
- 네에? 무슨 말씀이예요, 그게...?
- 아니, 한선생은 애인도 있는 사람이...
- 아, 정말, 여기서 애인이 왜 나와요, 나오길...
아, 씨발, 진짜 가지가지 했다. 점입가경이라고, 과장은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오버했다.
이런 말까지 대답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혜진이와 사귈 때 지나가듯 하는 질문에 애인 있다고 했을 뿐,
헤어졌다는 얘기는 한 적이 없으니 모를 수도 있지만, 과장의 그 말은 진짜 어이가 없었다.
그때 선배가 택시를 잡아서 데려왔다. 그 순간은 진짜 선배가 구세주 같았다.
그렇게 이선생을 부축하고 택시에 탔다.
그러나, 한번 찌질이는 영원한 찌질이였다. 자기가 무슨, 해병도 아니면서...
동사무소 방위병으로 복무했던 과장은 택시 조수석 문에 손을 얹고 놓지 않았다.
- 한선생 말고 박선생이 같이 가시우.
- 네?
- 아니, 한선생은 내리고 박선생이 가라고...
- 전 이선생 집을 모르는데요?
- 아니, 한선생은 아는데 박선생은 왜 몰라?
- ......
나한테는 왜 주소를 아느냐고 화내던 사람이 이번엔 선배에게 언성을 높이며 왜 모르느냐고 다그치고 있었다.
웃기는 노릇이었다.
드라마에서 이런 캐릭터 등장인물을 봤다면, 세상에 저런 놈이 어디 있느냐고 작가와 연출자를 욕했을 거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들이 난데없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세상은 넓고 희한한 인간은 많다.
그게 그 인간들 잘못도 아니고, 희한한 인간이 희한하게 살든 말든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한테 나타나는 거냐고? 응?
다행히, 구세주가 또 나타났다. 이번엔 택시기사였다.
- 안 갈 겁니까?
- 출발하시죠. 주공아파트로 가 주세요.
박선배가 과장과 얘기하는 사이에 택시를 출발시켰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 숨 돌렸다는 말이 온몸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야릇한 일이 벌어졌다.
나에게 기대어 앉았던 이선생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내 볼에 키스를 해 온 거였다.
볼까지 닿지는 못하고 왼쪽 턱 쪽을 빨기 시작했는데,
갑작스런 키스에 당황하고 또 간지러워서 목을 움츠리는 바람에 이번엔 왼쪽 귀가 이선생 입에 닿게 되었다.
이선생은 내 귀를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고 핥았다.
짜릿하고 소름끼치는 쾌감이었다. 귀를 애무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쪼옵쪼옵 소리와 끈적끈적한 느낌이 귀에서 동시에 일어나며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혜진이의 귀를 빨아주기는 했었지만,
귀를 빨리던 혜진이가 신음할 때에도 내가 귀를 애무받아 볼 생각은 하질 못했었다.
이선생은 내 귀를 녹여먹을 듯이 빨아댔다.
귓불을 빨다가 귓구멍에 혀를 넣어 돌릴 때에는 신음소리를 낼 뻔했는데
바로 그때 택시기사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눈치가 보였다.
이선생이 음음 콧소리를 내면서 쪽쪽거리며 빨아댔기에,
택시기사가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푸른 제복을 입은 초로의 기사님은 점잖은 분이었다.
룸미러로 힐끗거리지도 않고, 헛기침을 하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운전만 하셨다.
이선생이 거친 숨을 뿜을 때마다 귀가 짜릿짜릿했다.
귀에서 느끼는 간지러운 쾌감이 좋아서 그만두게 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하면 소리가 좀 안 나게 애무받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 뿐, 나는 사실 이선생의 애무를 즐기며 느끼고 있었고,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택시는 이선생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선생은 내가 부축해도 제대로 서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그런 여자가 성적인 행위는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선생을 업고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는 동안에도 이선생은 내 귀를 빨아대고 있었다.
어쨌든, 헤매긴 했지만 동호수를 제대로 찾아 벨을 누르자
그 어머님으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 문을 열어 주었다.
- 아이구, 지연아... 이게 웬 일이라니...?
- 죄송하지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네, 네... 이쪽으로... 아이구, 이게...
안쪽의 작은 방까지 업고 들어가서 이선생을 침대에 내려 놓았다.
이선생을 업은 채로 침대에 앉아서 옆으로 눕듯 이선생을 내려 놓았는데
이선생은 좀처럼 나를 놔주지 않았다.
내 목에 매달려 내 귀가 마치 막대사탕이라도 되는 것처럼 헉헉대며 빨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그 부인이 다 보고 있어서 나는 진짜 민망하고 불편했다.
- 후움... 쭈웁... 하앙...
- 휘유~... 이선생님... 이선생님?
그 부인이 이선생을 때리고 두드리며 아이구 아이구를 몇 번이나 부르짖은 후에야 이선생은 나를 놓아 주었고,
나는 겨우 일어나서 옷을 추스르고 그 부인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나중에 다른 여자에게 귀를 애무해 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 택시 안에서만큼 짜릿하지는 않았었다.
혜진이의 머리카락 블로우잡도 그렇고, 왜 두 번째는 첫 번째만큼 짜릿하지 않을 걸까...
어쨌든 내 귀도 훌륭한 성감대라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이선생네 집에서 나오면서 시간을 보니, 또 막차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내가 또 잘 곳이 없다는 얘기였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모텔 아니라 7성급 호텔밖에 없어도 그리로 가야 했지만,
일단은 선배와 과장이 어떻게 헤어졌는지 궁금했다.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 어, 한선생... 데려다 줬어?
- 예, 선배님은요? 과장님 잘 보내셨어요?
- 말도 마라. 왜 니네 둘이 가게 했냐고 아주 쌩 난리를 쳤다.
- 아, 진짜... 왜 그런대요? 과장님은...
- 뭐, 이선생 한번 먹어 보려고 했나부지. 그 나이 처먹고 주책없이...
-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 많은 데서 그게 뭔 짓이랍니까? 창피하게...
- 누가 아니래냐... 씨발, 내 쪽이 다 팔리더라. 아우~... 이제 그 식당 어떻게 가냐? 크크...
- 쪽팔린 사람이 밥을 그렇게 잘 잡숴요? 참, 나...
- 됐고, 막차 떠났지? 이리 올래?
- 뭐, 천상 그래야겠네요.
- 크크크.... 어떻게? 내가 자리 비켜주랴? 킥킥킥...
- 에엑? 아, 이 선배님이 진짜... 나, 모텔로 가요?
- 푸하하.. 가서 아가씨 부르게?
- 푸헐... 아가씨 필요한 건 선배님 아닌가요? 그런 거죠?
- 됐다. 빨리 와라... 크크크
- 옙~
그렇게 통화를 하면서 나는 터덜터덜 선배 하숙방으로 갔고,
선배는 잠들기 전까지 짓궂은 소리로 나를 놀려댔다. 젠장, 그냥 모텔로 갈 걸...
그러나, 새벽에 목이 말라 잠시 깼을 때, 선배는 없었다.
선배는 어디서 잤을까...? 거, 상당히 궁금했다....
뭔가 알 것 같은데도 희한하게 자꾸 궁금했다...
밤에는 선배가 킬킬대며 놀렸지만, 다음날 출근하면서는 내가 낄낄댔다.
어땠어요? 선배님...? ㅋㅋㅋ
연수원 조직의 TO는 일곱 명밖에 안 되었다.
이사급 원장과 부장급 부원장, 그 아래 과장 하나 직원 둘...
물론, 실제 연수에서 교육을 진행하는 교수진과 교육위원들은
별도로 초빙되거나, 그룹 각 계열사 연구소의 굵직굵직한 박사들이 담당했고,
연수부는 연수 진행과 관련된 지원업무만 담당하는 조직이라 그 인원으로도 부족하지는 않았다.
연수원장과 부원장은 거의 이름만 있는 자리였고,
과장과 선배 직원 하나와 식당 영양사, 그리고 주사님이라고 부르던 건물 관리인,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이 수만 평이 넘는 연수원의 관리직원이었다.
그 외에 식당 주방 아주머니들, 청소 용역아저씨들은 말 그대로 용역이었다.
내가 입사한 지 얼마 안 되어서 과장이 바뀌었었다.
초보 사랑 편에서도 잠깐 언급했지만 새로 온 과장은 맞추기 힘든 사람이었다.
선배도 과장 얘기만 나오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였다.
- 하아... 너도 그러냐?
- 뭐, 다들 그러지 않을까 싶은데요?
- 어쩌겠냐, 그래도 과장인데... 아랫것들이 참아야지...
- 얘기하면 바뀌진 않을까요?
- 얘기? 누가? 한선생이 할래?
- 헉~...
-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라고 들어나 봤냐?
- ......
- 승진하겠답시고 다른 부서 나온 모양인데... 우리만 갑갑하게 됐지, 뭐...
- 다른 부서라니요?
- 경리부서에만 20년 있던 사람이야. 이제 부장 되려면 한 부서에서만 근무한 경력으로는 안 되거든...
- 아아...
- 그래서 나왔겠지, 뭐... 경리부에서 20 년이면 꿀보직에 만고 땡일 텐데...
- 그렇군요...
- 됐고, 우리는 그냥 일이나 잘 하면 돼. 꼬장부리지 않게...
혜진이와 헤어지자는 통화를 하고 난 후, 나는 진짜로 혜진이를 잊으려 애썼다.
쉽지 않았지만 미친 듯이 업무에만 매달렸다.
할 일이 있으면 퇴근시간이 늦어도 상관없었고,
휴일에도 나가서 일했다. 언젠가는 3일 연휴 내내 출근했던 적도 있었다.
나 스스로도 몰입했었지만 100% 내 뜻이었던 건 아니었다.
연수원 특성상 휴무일에도 한 사람은 당직을 해야 했다.
연수는 불시에 계획될 때도 있었고, 바로 다음날부터 연수를 진행한다고 연락이 올 때도 있었다.
지방 계열사 직원들은 연수 전날부터 올라와서 숙박하는 경우도 있어서
무조건 한 사람은 근무를 해야 했다.
게다가, 3일 연휴 동안 계속 출근한 것도, 사실 내가 자원하기는 했지만
그 중 하루는 선배, 하루는 과장이 당직을 해야 했던 날이었다.
선배의 당직 날에는 둘이서 점심때 짬뽕국물에 소주를 먹으면서 이런저런 회사 얘기를 듣기도 했지만,
연휴 첫날이었던 과장의 당직 날에는 참 어이가 없는 일을 겪었다.
- 저어기... 한선생?
- 예, 과장님.
- 그... 말이우, 내일 내가 당직인데 말이우...
- 예, 말씀하세요.
- 한선생이 내일 나와서 일 할 거라며?
- 예, 아마 계속 나올 거예요.
- 그래서 말이우... 나는 안 나왔으면 해서...
- 예? 당직자는 과장님인데...
- 아, 그러니까 말하는 거 아니우...?
- 예, 뭐 그러셔도 되겠네요. 제가 있을 거니까요...
거기까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내가 먼저 연휴 내내 출근할 거라고 말했으니까.
그런데 그 다음 말이 웃기지도 않았다.
- 그... 혹시 말이우...
- 예, 무슨 처리할 일이라도...?
- 아니, 그게 아니고 말이우... 혹시나 나 찾는 전화가 올 수도 있잖아...
- 예...
- 전화 오면 얘기 좀 잘 하시우, 응?
- ......
- 아, 화장실 갔다고 하든지 잠시 나갔다고 하든지...
- 예... 예.
- 그리고, 내 휴대 전화로 연락을 줘. 누가 전화했는지... 그러면 내가 전화를 할 거니까 말이우...
- 예... 알겠습니다.
허, 참... 기가 막혔지만 그냥 알았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부탁도 아니고 조금도 망설이거나 미안해 하는 기색 없이 요구할 수 있는
그 뻔뻔함이 부러울 때도 있었다.
과장은 주말부부였다. 집은 파주라고 했나, 연천이라고 했나...
출퇴근하기엔 좀 멀어서 연수원 사택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과장은 거의 매일, 퇴근하는 우릴 붙들고 술을 먹자고 했다.
나도 혜진이랑 매일 만나던 게 좀 식어가던 때라 자주 어울렸고
선배는 애인도 없고, 하숙집도 가까운 사람이라 대부분 같이 먹고 마셨다.
그리고 가끔은 2차로 여자 있는 술집에서 마시기도 했다.
그 선배도 나한테 좀 황당한 짓을 한 적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혜진이와 한참 사귈 때였는데, 어느 날 회식하며 술을 먹다가 막차를 놓쳤다.
하필 주말이라서 선배는 충청도 본가에 다니러 간다며 1차만 마시고 먼저 갔었던 날이었다.
2차로 과장과 둘이서만 맥주를 마셨고, 바늘방석처럼 불편한데도 과장은 붙잡고 놓아주지를 않았다.
결국 밤늦게 끝났고, 과장은 혼자서 냉큼 관사로 들어가 버렸다.
잘 곳이 있느냐는 지나가는 질문조차 하지 않고...
- 아... 나, 참... 여보세요? 엄마?... 예, 좀 늦어서 막차를 놓쳤어요... 예.... 걱정 마세요. 한데서 자지 않을게요... 예?.... 아니예요, 많이 안 먹었어요... 네.... 네... 주무세요.
어쩔 수 없이, 집에는 못 간다고 전화를 하고 어찌어찌 하다가 선배와 연락이 되었는데,
선배는 자기 하숙하는 집에서 하루 자고 가라고 권했다.
내 사정을 듣고 편의를 제공해 주는 게 고맙긴 했지만...
- 주인도 없는 방에 어떻게 제가 가요?
- 아, 괜찮다니까 그러네. 집주인한테 말해 놓을게.
- 그래두요...
- 아니라니까. 가서 편히 쉬어.
- 아, 참... 하하, 이걸...
- 그려, 잘 자고 그럼...
나는 어색하게 웃었지만 선배는 그냥 그렇게 전화를 끊었고, 나는 뻘쭘하게 길 한가운데 서 있었다.
차라리 관사에 같이 갔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했지만, 과장에게 다시 전화하기는 싫었다.
마침 현금도 별로 없었고, 선배 방에서 하루 자고 일찍 집에 가는 게 그나마 낫겠다는 생각에,
선배가 알려준 대로 찾아가 선배가 알려준 번호의 방에 들어갔다.
꽤 많이 마셨던 터라, 대충 씻고 나서 이부자리를 펴고 누웠다.
담배냄새가 독했지만, 취한 김에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잤을까...?
꿈이라고만 생각했다. 진짜 꿈인 줄 알았다.
혜진이가 안겨 왔다.
예쁘게 품에 안겨 내 가슴을 빨다가 내 위로 올라타고는 내 자지를 잡고 보지에 문질렀다.
귀두가 반쯤 혜진이의 미끄러운 보지 입구에 물리자
자지 끝에 느껴지는 촉촉함이 마치 진짜로 하는 것처럼 생생했다.
애무가 급하고 짧았던 것도 아쉬웠고, 하기 전에 자지를 좀 빨아 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혜진이의 손목을 잡아 제지하고는 혜진이의 머리를 자지 쪽으로 당겼다.
의외로 혜진이가 뻣뻣하게 저항했다.
- 혜진아... 오빠 거 키스해 줘.
- ......
힘으로 누르는 대신, 혜진이의 머리를 안고 쓰다듬었다.
언제 만져도 좋은 혜진이의 부드럽고 긴 머리. 부드럽고 긴...,
그런데 어째, 부드... 럽지가 않다?
짧고... 거칠고... 게다가 파마 머리다.
짧고 거친... 파마 머리...?
부드럽고 긴 혜진이 머리가 아니네?
눈을 번쩍 떴다. 짧고 거친 파마 머리를 확 밀쳐내며 벌떡 일어났다.
털썩~ 파마머리가 엉덩방아를 찧은 모양이다.
스위치를 찾아서 불을 켰다. 부신 눈을 억지로 뜨고 살펴보니
방 한쪽에 웬 여자 하나가 벌거숭이 몸을 가리지도 않고 나동그라져 있었다.
- 엄마야~, 아야야...
- 누구야?
- 아이구~
- 누구세요? 누구십니까?
여긴 어디지? 순간 당황했다. 거기가 어디인지,
왜 거기에 있는지, 순간적으로 생각이 나지 않았다.
- 아유, 참... 좋아할 거라더니만...
- 뭐가요? 누가요?
- 가만히 있어 봐요. 잔뜩 흥분했으면서... 혜진이가 누구야? 애인이야?
여자는 다시 내 자지로 손을 뻗었다.
환장할 노릇이었다.
이 여자는 누군데 왜 여기서 내 자지를 만지고 있는 거지? 혜진이도 아니면서...
순간 우스웠다. 혜진이도 아니면서...라고? 내 자지는 혜진이만 만지는 거였나?
그랬었구나. ㅋㅋㅋ 피식, 웃음이 났다.
자지는 뻣뻣하게 발기한 채, 꺼떡거리고 있었다.
남자는 러닝만 입고 자지를 드러낸 알몸으로 서서 누구냐고 묻고,
여자는 속옷 차림으로 한쪽 팔을 짚고 앉아 자지로 손을 뻗는 상황...
황당하고 어색했다.
그런 생각도 잠시, 그 전날 일들이 조금씩 생각났다.
술을 먹었고, 막차를 놓쳤고, 그래서 선배 방에 하루 신세지기로 했었고...
그런데 이 여자는 도대체 누구지?
트렁크 팬티를 꿰어 입으며 물었다.
- 그런데, 누구세요?
- 아, 종석씨가 얘기 안 했어요?
- 선배가요? 무슨 얘기요.
- 난 이 집 주인이예요.
- 그런데요?
종석씨는 선배 이름이다.
주인이면? 주인은 세입자 방에 함부로 들어와서 거기서 자는 사람 자지를 만져도 되나?
황당함이 가시질 않았다.
- 어젯밤 늦게 종석씨가 전화를 했어요. 후배가 가서 잘 거라고.
- ......
- 후배한테도 말한 줄 알았어요. 나랑 자라고...
여자는 말끝을 흐렸다.
- 왜 아주머니랑 자라는 거죠?
- 아니, 종석씨가 좋은 밤 보내라고... 나, 그런 여자 아니예요.
좋은 밤? 그런 여자가 아니다? 어떤 여자? 누가 뭐라고 했나?
들을수록 더 황당한 얘기 뿐이었다.
혹시 선배는 집주인 아주머니와 섹스하는 사이였나? 유들유들한 사람이긴 했지만...
- 종석씨가 하나도 말 안 했나 보네...
여자는 자꾸 선배만 들먹였다. 선배를 들먹여 봐야 해결될 건 없는데...
꼬치꼬치 캐물어서 알아낸 얘기는 이랬다.
선배는 막차가 끊어졌다는 내 말에 호의로 방에 가서 자라고 했는데,
전화를 끊고 장난을 계획한 거였다.
평소에 정을 통하며 지내던 집주인 여자에게,
젊은 총각이 가서 잘 테니 한번 먹어라... 뭐 이런 소리를 한 거였고
여자는 그래도 되느냐고 나한테는 묻지도 않고 냉큼 내 이불 속으로 기어든 거였다.
얼마나 밝히는 여자였으면...
내막을 알고 났어도 황당함은 가시지 않았고 황당함에 더해서 화가 났다.
남녀를 바꿔서 생각해 보면 이건 범죄다.
반대로, 여자 혼자 자는 방에 남자가 들어와서 옷을 벗기고 보지를 만진 다음 삽입하려 했다면...?
그건 강간이다. 많이 봐줘도 강간미수다.
남자가 그러면 강간이고, 여자가 그러는 건 괜찮다고 생각한다면 모순이다.
세상에 남자는 하면 안 되고, 여자는 해도 되는 일은 없다.
똑같은 짓을 하면서 내가 하면 괜찮고, 네가 하면 범죄고...
수준낮은 한국 정치도 아니고, 그래서는 안 되는 거 아닌가?
여자는 방에서 나가려 하지도 않고, 옷을 입으려 하지도 않았는데
오히려 이부자리에 먼저 누우며 그만 자자는 소리를 했다.
아니, 졸린 것도 맞고, 자야 되는 것도 맞는데, 아줌마가 왜 여기 드러눕는 건데?
- 지금 여기서 잔다구요?
- 아니 그럼, 안 자요?
- 예? 아니... 무슨...
여자는 당연하다는 듯 눈을 똥그랗게 뜨고 쳐다봤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내 눈도 여자 못지 않게 커졌을 거다.
그러나, 별로 실랑이도 하지 않고 나는 여자를 내보내는 걸 포기했고,
여자는 마치 자기 이부자리라도 되는 듯 자리에 먼저 누워서.
이리 와라, 누워라, 자자, 밤 샐 거냐... 이따금씩 이런 소리를 했고,
나는 속옷바람으로 요 한쪽에 앉아 서너 시간 동안 한숨만 푹푹 쉬어대다가
어슴푸레 동 틀 무렵에 그 집을 나왔다.
잠도 못 자고 피곤했지만 화가 더 났다.
그 다음 주에 출근해서 만난 선배는 재미있다는 듯 실실 웃었고,
나는 기분이 무지 나빴지만 웃사람인 데다가 진짜 악의는 없어 보이는 웃는 얼굴에 화를 낼 수도 없고,
아, 나, 진짜... 만 반복하며 헛웃음만 내뱉었다.
선배는 한번 먹지 그랬느냐고, 먹을 만하다고 계속 킬킬댔다.
물론, 아는 사람과 구멍동서가 될 수도 있다.
나중에 다른 회사 영업부서에 근무할 때에는 룸살롱에도 자주 드나들었는데,
어느 날 내 파트너였던 애가 내가 안 가는 다른 날에는 다른 동료의 파트너가 될 수도 있고,
그러다 2차 나가서 섹스도 하고... 그럴 수 있다.
그런 구멍동서가 모르긴 몰라도 꽤 될 거다.
나만 그런가? 읽으시는 분들도 사실 그렇잖아...?
하지만, 업소에서 돈 내고 하는 것도 아니고,
다 아는 사이에 오늘은 나랑 섹스하고, 내일은 너랑 하고...
그건 좀 수긍하기가 어려웠다.
업소 여자들과 뭐가 다르냐고 묻는다면 할 말은 없지만, 그렇게 섹스할 수는 없었다.
사실, 그 여자가 별로 맘에 안 들었던 이유가 제일 컸다.
내가 좋아하는 타입의 여자였다면
내 이불 속으로 스스로 기어들어와서 내 자지를 쓰다듬는 여자를 내칠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말이다.
지금 생각해도 헛웃음이 나는 기억이다. 하, 참, 나...
그 일을 겪은 바로 다음 주에, 회식을 하게 되었었다.
집에서 자는 시간만 빼고 회사 사무실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며 그렇게 일에 집중하려 애쓰던 그때,
직원 회식을 하던 날이었다.
과장과 선배와 그냥 한잔씩 하는 거 말고, 공식적으로 회식이라고 하는 걸 매달 했는데,
그때는 마침 연수원 식당 영양사가 그만두게 되어서 송별회 핑계로 같이 하게 되었다.
대학원을 간다고 했던가, 어디 무슨 식품연구소로 간다고 했던가, 어쨌든 회사는 그만두기로 했었다.
과장과 선배, 그리고 나, 연수원 관리하는 주사님, 그리고 영양사 이지연 선생...
이렇게 다섯이서 회식을 하려고 연수원 인근 동네 고깃집에 조촐하게 자리를 잡았다.
먹고 마시고, 웃고 떠들며...
술자리에서 모처럼 참석한 영양사 이선생을 위주로 얘기가 돌아갔다.
맨날 남자끼리만 마시다가 예쁘장한 젊은 여자가 끼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그러는 와중에 과장이 하는 짓이 눈에 띄게 이상했다.
술자리는 자주 만들어도 술을 많이 마시지 않는 사람이었는데
자기는 소주 한 잔도 몇 번씩 꺾어 마시면서, 마주 앉은 이선생에게 자꾸 술을 권했다.
권하는 대로 바보같이 넙죽넙죽 받아먹은 이선생은 결국 헤롱거리는 상태가 되었다.
혀가 꼬였고, 말이 늘어졌다.
그러면서도 깔깔거리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도 없는 소리를 늘어놓았다.
과장은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맞장구를 치고 어색하게 웃으며 또 술을 붓곤 했다.
시간도 꽤 지났고, 자리를 빨리 끝내야겠다고 생각한 나는 밥을 먹자고 제의했다.
술자리의 마감은 역시 밥이었다.
- 자, 식사들 하셔야죠? 된장찌개 드실 분, 아니면 냉면?
- 고기 먹고는 냉면이지. 난 물냉.
선배가 바로 냉면으로 호응해 왔다.
- 이사람, 먹을 줄 모르네... 난 된장! 밥이 최고지.
과장은 된장찌개에 밥을 먹겠다고 했다.
냉면이다, 밥이다, 과장과 선배가 서로 낫다고 우기며 서로를 음식 먹을 줄 모르는 사람 취급하며 다투었다.
희한한 사람들이었다. 두 사람이 좋아하는 게 똑같아야 할 이유가 없는데,
그런 걸로 다투는 인간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수긍할 수가 없다.
싸우든 말든, 각자 선택한 대로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데 이선생이 화장실을 간다며 일어서다가 휘청했다.
- 엄마야... 하아...
신음소리가 야릇하게 들렸다.
이선생 좌우에 앉았던 나와 선배는 서로 마주보며 잠시 고민하는데
밥상 반대편에 있던 과장이 어느 새 이선생에게 달려가 부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 모습에 확 짜증이 났다.
부축하려면 보통 팔을 잡아주거나 겨드랑이에 손을 넣어 받쳐주는 게 정상이 아닐까.
게다가 여자라서 나나 선배는 부축할까 말까 그것조차 고민했었는데
과장은 아예 뒤에서 이선생을 껴안고 일으켰다.
이선생은 그 손을 뿌리치지도 않았다.
아니, 뿌리치지 못했다. 아예 축 늘어져 있었으니까.
화장실에 가겠다고 일어설 때까지만 해도 그 정도로 취했을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었다.
그때 이선생은 이미 취해서 정신을 못 차리는 상태였다.
그걸 멀리서 보는 나도 알 정도였으니 바로 뒤에서 안고 있는 과장도 알았겠지.
과장은 아예 이선생의 가슴을 두 손으로 덮었다.
아예 뒤에서 꼭 껴안고 가슴을 만지는 모양새였다.
- 자, 이선생. 일어나요. 자, 똑바로 서야지...
이선생은 취해서 정신이 없으니 그런 짓을 당하는 걸 모른다고 해도,
그 자리엔 그 둘만 있는 게 아니잖은가. 나도 있고, 선배도 있고, 주사님도 있고...
그 시선은 전혀 신경쓰지 않는 건지 너무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정신 못 차리는 젊은 여자의 가슴을 주물러대고 있었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너무도 당당하게 추행을 하고 있었다.
그 꼴을 보다 못한 이선생 옆에 앉았던 선배가 이선생의 한쪽 팔을 잡으며 과장을 말렸다.
- 저, 과장님. 잠깐 앉히는 게...
- 아니야, 화장실 간대잖아. 자, 이선생, 바로 서 보라니까...
선배와 주사 모두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중에 직급이 제일 높은 과장이었지만 나이는 주사와 비슷했다.
하는 짓은 좆같아서 용납하기가 어려운데 웃사람이라서 대놓고 뭐라고 하지도 못하는 표정...
뭐 하는 짓이냐고 하고 싶었지만, 쉽게 그러지 못하고 주저했다.
선배와 주사가 가만히 있는데 제일 아랫사람인 내가 나서서 그러는 건 왠지 망설여졌다.
과장은 계속 일어나라고 하면서 이선생을 주물러댔는데,
그렇게 소란을 떨고 있으니 주변의 다른 손님들 시선이 집중되는 건 당였했다.
쪽팔린 짓은 과장이 하고 있는데, 내가 다 쪽팔렸다.
아, 진짜 쪽팔렸다. 살면서 그렇게 쪽팔린 적이 또 있었을까?
주변에서 그렇게 쳐다보고 여기저기서 헛기침을 하면서 민망함을 표현하는데도
이 인간은 발정이라도 난 건지, 아예 느끼는 듯한 표정으로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다.
아, 지금 생각해도 졸라 민망하고 쪽팔리다.
과장은 계속 이선생 가슴만 주물러 댔다.
결국 선배가 귓속말로 과장에게 얘기를 하고 나서야 과장은 주변을 돌아보며 이선생을 놓아 주었다.
그런데도 별로 창피해하거나 민망해하지 않았다.
창피해하고 민망해하는 건 나머지 세 사람이었다. 진짜로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더 쪽팔린 건,
한쪽에 이선생이 취해서 누워 있는데, 시켜놓은 된장찌개와 냉면이 나오자
과장과 선배, 주사는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그걸 먹고 앉아 있었다는 것이다.
십년도 더 지난 지금 생각해도 내 얼굴이 화끈해지는 그 상황에서
그들은 밥이 넘어 갈 수 있다는 게 황당할 뿐이었다.
그렇게 밥을 다 먹고, 내가 안 먹은 내 몫의 밥까지 알뜰하게 다 긁어먹은 다음에야 과장은 일어섰다.
그리고 또 이선생에게 손을 대려 하기에, 과장과 이선생 사이를 가로막고 선배에게 도움을 청했다.
- 선배님, 제가 업을게, 좀 도와주세요.
- 응, 그래...
이선생을 업고 일어나면서 과장을 흘낏 보니
과장은 마치 자기 걸 남에게 빼앗긴 사람처럼 똥 씹은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신경쓰지 않고 식당을 나와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과장이 쫄래쫄래 다가왔다.
- 한선생, 연수원으로 가지.
- 예? 연수원에는 왜요?
- 아, 가서 눕혀야지.
- 집에 보내야지, 왜 연수원에 눕혀요?
- 아, 글쎄, 연수원이 가깝잖아...
- 아니, 과장님... 근데...
- 아, 어서... 응? 과장이 시키면 그냥 시키는 대로 하시우, 응?
아, 씨발 진짜. 욕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연수원에 누울 만한 곳이라고는 연수생 숙소 아니면 관사,
또는 우리가 사택이라고 부르던, 관리인인 주사님 가족이 거주하는 사택 뿐인데,
당시 숙소는 연수기간이 아니면 난방을 하지 않아서 추웠고,
사택은 방이 두 개 있었지만 주사님 부부와 아이들이 각각 쓰고 있어서 이선생을 재울 여유공간은 없었다.
결국 과장 얘기는 자기 관사에 데려다 눕히라는 거였다.
여자를 데려다 거기 눕혀 놓고 뭐 하게? 나는 더 물러설 수가 없었다.
- 아뇨, 이선생님 댁도 멀지 않으니까 그쪽으로 가는 게 낫겠습니다.
- 이선생 집? 한선생이 이선생 집을 어떻게 알아?
- 직원 주소록에 있어서 봤죠. 바로 요 아래 동네잖아요?
- 이선생 주소를 왜 한선생이 외우고 있어?
- 아, 일부러 외운 게 아니라 그냥 기억이 나는 거예요.
아, 나, 진짜... 그걸 질문이라고 하나? 무슨 트집을 잡는 것도 아니고...,
연수원에서 자잘한 업무를 처리하는 게 나였고, 직원 처우나 복지 관련한 일도 내 몫이었다.
명절 선물을 신청할 때 주소를 물어 보았고, 혹시나 잊을까봐 직원 다섯 명의 주소록을 작성해 두었었다.
그랬는데, 주소를 기억하는 게 무슨 잘못이라도 되는 것처럼 다그치고 있으니 짜증이 안 나겠는가 말이다.
대답하는 내 말투가 내가 듣기에도 곱지 않았다.
그러나 과장은 한술 더 떴다.
- 한선생, 혹시 이선생한테 관심 있수?
- 네에? 무슨 말씀이예요, 그게...?
- 아니, 한선생은 애인도 있는 사람이...
- 아, 정말, 여기서 애인이 왜 나와요, 나오길...
아, 씨발, 진짜 가지가지 했다. 점입가경이라고, 과장은 점점 더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며 오버했다.
이런 말까지 대답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혜진이와 사귈 때 지나가듯 하는 질문에 애인 있다고 했을 뿐,
헤어졌다는 얘기는 한 적이 없으니 모를 수도 있지만, 과장의 그 말은 진짜 어이가 없었다.
그때 선배가 택시를 잡아서 데려왔다. 그 순간은 진짜 선배가 구세주 같았다.
그렇게 이선생을 부축하고 택시에 탔다.
그러나, 한번 찌질이는 영원한 찌질이였다. 자기가 무슨, 해병도 아니면서...
동사무소 방위병으로 복무했던 과장은 택시 조수석 문에 손을 얹고 놓지 않았다.
- 한선생 말고 박선생이 같이 가시우.
- 네?
- 아니, 한선생은 내리고 박선생이 가라고...
- 전 이선생 집을 모르는데요?
- 아니, 한선생은 아는데 박선생은 왜 몰라?
- ......
나한테는 왜 주소를 아느냐고 화내던 사람이 이번엔 선배에게 언성을 높이며 왜 모르느냐고 다그치고 있었다.
웃기는 노릇이었다.
드라마에서 이런 캐릭터 등장인물을 봤다면, 세상에 저런 놈이 어디 있느냐고 작가와 연출자를 욕했을 거다.
그러나, 세상을 살다 보면 진짜 상상을 초월하는 인간들이 난데없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세상은 넓고 희한한 인간은 많다.
그게 그 인간들 잘못도 아니고, 희한한 인간이 희한하게 살든 말든 다 좋다 이거야...
그런데, 하고많은 사람들 중에 왜 하필 나한테 나타나는 거냐고? 응?
다행히, 구세주가 또 나타났다. 이번엔 택시기사였다.
- 안 갈 겁니까?
- 출발하시죠. 주공아파트로 가 주세요.
박선배가 과장과 얘기하는 사이에 택시를 출발시켰다.
저절로 한숨이 나왔다. 한 숨 돌렸다는 말이 온몸으로 이해되었다.
그런데, 야릇한 일이 벌어졌다.
나에게 기대어 앉았던 이선생이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내 볼에 키스를 해 온 거였다.
볼까지 닿지는 못하고 왼쪽 턱 쪽을 빨기 시작했는데,
갑작스런 키스에 당황하고 또 간지러워서 목을 움츠리는 바람에 이번엔 왼쪽 귀가 이선생 입에 닿게 되었다.
이선생은 내 귀를 쪽쪽 소리가 나도록 빨고 핥았다.
짜릿하고 소름끼치는 쾌감이었다. 귀를 애무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쪼옵쪼옵 소리와 끈적끈적한 느낌이 귀에서 동시에 일어나며 정신을 차릴 수 없게 만들었다.
혜진이의 귀를 빨아주기는 했었지만,
귀를 빨리던 혜진이가 신음할 때에도 내가 귀를 애무받아 볼 생각은 하질 못했었다.
이선생은 내 귀를 녹여먹을 듯이 빨아댔다.
귓불을 빨다가 귓구멍에 혀를 넣어 돌릴 때에는 신음소리를 낼 뻔했는데
바로 그때 택시기사가 있다는 걸 깨달았고, 눈치가 보였다.
이선생이 음음 콧소리를 내면서 쪽쪽거리며 빨아댔기에,
택시기사가 귀머거리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없었다.
그러나 푸른 제복을 입은 초로의 기사님은 점잖은 분이었다.
룸미러로 힐끗거리지도 않고, 헛기침을 하지도 않고 그냥 조용히 운전만 하셨다.
이선생이 거친 숨을 뿜을 때마다 귀가 짜릿짜릿했다.
귀에서 느끼는 간지러운 쾌감이 좋아서 그만두게 하지는 못하고,
어떻게 하면 소리가 좀 안 나게 애무받을 수는 없을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생각 뿐, 나는 사실 이선생의 애무를 즐기며 느끼고 있었고,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도 모르게 택시는 이선생 사는 아파트에 도착했다.
이선생은 내가 부축해도 제대로 서지 못할 정도로 취해 있었다.
그런 여자가 성적인 행위는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하기까지 했다.
이선생을 업고 엘리베이터를 올라가는 동안에도 이선생은 내 귀를 빨아대고 있었다.
어쨌든, 헤매긴 했지만 동호수를 제대로 찾아 벨을 누르자
그 어머님으로 보이는 중년 부인이 문을 열어 주었다.
- 아이구, 지연아... 이게 웬 일이라니...?
- 죄송하지만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 네, 네... 이쪽으로... 아이구, 이게...
안쪽의 작은 방까지 업고 들어가서 이선생을 침대에 내려 놓았다.
이선생을 업은 채로 침대에 앉아서 옆으로 눕듯 이선생을 내려 놓았는데
이선생은 좀처럼 나를 놔주지 않았다.
내 목에 매달려 내 귀가 마치 막대사탕이라도 되는 것처럼 헉헉대며 빨아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그 부인이 다 보고 있어서 나는 진짜 민망하고 불편했다.
- 후움... 쭈웁... 하앙...
- 휘유~... 이선생님... 이선생님?
그 부인이 이선생을 때리고 두드리며 아이구 아이구를 몇 번이나 부르짖은 후에야 이선생은 나를 놓아 주었고,
나는 겨우 일어나서 옷을 추스르고 그 부인께 인사를 드리고 나왔다.
나중에 다른 여자에게 귀를 애무해 달라고 요구한 적도 있었지만,
그때 택시 안에서만큼 짜릿하지는 않았었다.
혜진이의 머리카락 블로우잡도 그렇고, 왜 두 번째는 첫 번째만큼 짜릿하지 않을 걸까...
어쨌든 내 귀도 훌륭한 성감대라는 걸 알게 된 계기였다.
이선생네 집에서 나오면서 시간을 보니, 또 막차 시간이 지나 있었다.
내가 또 잘 곳이 없다는 얘기였다.
예전의 기억을 떠올리면 모텔 아니라 7성급 호텔밖에 없어도 그리로 가야 했지만,
일단은 선배와 과장이 어떻게 헤어졌는지 궁금했다.
선배에게 전화를 했다.
- 어, 한선생... 데려다 줬어?
- 예, 선배님은요? 과장님 잘 보내셨어요?
- 말도 마라. 왜 니네 둘이 가게 했냐고 아주 쌩 난리를 쳤다.
- 아, 진짜... 왜 그런대요? 과장님은...
- 뭐, 이선생 한번 먹어 보려고 했나부지. 그 나이 처먹고 주책없이...
- 아무리 그래도 사람들 많은 데서 그게 뭔 짓이랍니까? 창피하게...
- 누가 아니래냐... 씨발, 내 쪽이 다 팔리더라. 아우~... 이제 그 식당 어떻게 가냐? 크크...
- 쪽팔린 사람이 밥을 그렇게 잘 잡숴요? 참, 나...
- 됐고, 막차 떠났지? 이리 올래?
- 뭐, 천상 그래야겠네요.
- 크크크.... 어떻게? 내가 자리 비켜주랴? 킥킥킥...
- 에엑? 아, 이 선배님이 진짜... 나, 모텔로 가요?
- 푸하하.. 가서 아가씨 부르게?
- 푸헐... 아가씨 필요한 건 선배님 아닌가요? 그런 거죠?
- 됐다. 빨리 와라... 크크크
- 옙~
그렇게 통화를 하면서 나는 터덜터덜 선배 하숙방으로 갔고,
선배는 잠들기 전까지 짓궂은 소리로 나를 놀려댔다. 젠장, 그냥 모텔로 갈 걸...
그러나, 새벽에 목이 말라 잠시 깼을 때, 선배는 없었다.
선배는 어디서 잤을까...? 거, 상당히 궁금했다....
뭔가 알 것 같은데도 희한하게 자꾸 궁금했다...
밤에는 선배가 킬킬대며 놀렸지만, 다음날 출근하면서는 내가 낄낄댔다.
어땠어요? 선배님...?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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