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에 남은 여인들 - 초보 연애 - 1부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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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은 여인들 - 초보 연애 5장

가을로 접어들고 입사한 지 반 년이 지나가면서
신입사원이라는 이유로 받던 배려와 도움은 이미 없어지고, 업무도 점점 많아지고 복잡해지게 되었다.
나 뿐만 아니라 혜진이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로, 퇴근시간이 늦어지는 일이 잦아서
만날 짬을 내기가 더 어려워졌다.

혜진이나 나나, 서로 만나지 못하는 날에는 꼭 전화통화라도 해야만 편히 잘 수 있었다.
전화를 꼭 해야 한다는 의무감 같은 게 아니라 우리는 목소리라도 듣고 나서야 편안하게 잠이 올 정도로
서로를 보고 싶어했다.

- 여보세요?
- 응...
- 집에 왔어요?
- 지금 막...
- 지금까지 회사에 있었던 거예요?
- 사람들이랑 저녁 먹었어.
- 술 마셨구나?
- 응, 조금...
- 조금만 마셔요.
- 그럴게.
- 내 생각 많이 하구요.
- 혜진이 생각, 많이 해. 지금도 보고 싶어.

혜진이는 갑자기 속삭이는 목소리로 말했다.

- 나도 많이많이 보고 싶어요.
- 누가 옆에 왔어? 그런 거지?
- 네...
- 그래, 빨리 시간내서 만나자.

집에 들어와서 씻기도 전에 혜진이의 전화를 받은 거였다.
혜진이가 보고 싶다는 말을 하면서, 진짜로 더 보고 싶어졌고,
며칠간 만나지 못하면서 욕구도 쌓여서 혜진이의 목소리만 들어도 자지가 발기할 정도였다.

그리고, 에어로빅 강습이 있는 날이면 더 혜진이가 보고 싶었다.
강사는 날씨가 선선해지는데도 나풀거리는 옷만 입고 다녀서, 그 옷차림을 보고 사무실에서 발기하기도 했다.
혜진이가 보고 싶은 건지, 섹스하고 싶은 건지...

혜진이가 장난스런 목소리로 물었다.

- 나 보면 뭐 할 거예요?
- 혜진이 보면? 음... 밥먹고... 차마시고...
- 그리구?
- 놀러 가고...
- 그것만?

혜진이가 은근히 놀리듯 물었다.

- 옆에 누구 있다며...
- 내 방으로 버얼써 왔지요. 헤헤...
- 그래? 흐흐흐...
- 왜 그렇게 웃어요?
- 글쎄...? 告?

혜진이는 또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 먹고, 마시고... 그리고, 뭐 할 건데요?
- 혜진이도 알면서...
- 뭘요~?
- 난 모르지.
- 나두 몰라요.
- 모르면 앞으로는 안 해 줄 거야.
- 나두 안 해줄 거야, 뭐...
- 뭘?
- 몰라요.
- ㅋㅋㅋ
- 헤헤헤...
- 아... 혜진이 안고 싶어.
- 가만히 안아줄 거죠?
- 아니...
- 그럼~?
- 키스도 할 거야.
- 키스만?

그렇게 통화를 하면서 한 손으로는 자지를 주물럭거렸다.

- 키스하고... 벗길 거야...
- 치이... 맨날 야한 생각만...
- 치마 벗기고, 팬티도 벗길 거야....
- 하아....
- 그리고 오빠 건 혜진이가 벗겨야겠지?
- ......
- 오빠 거에 키스해 줄 거지?
- 흐응...

만나면 만날 때마다 섹스를 하면서도 그런 건 부끄럽고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 혜진이, 지금 뭐 입고 있어?
- 지금요? 반바지랑 나시티...
- 속옷은?
- 입었죠. 당연히.
- 브라 뭐 했어?
- 음... 나시티에 붙은 패드만... 아이, 그런 건 왜 물어요~?

요즘 입기 시작한 스포츠브라는 머리 위로 벗겨내야 하는 불편은 있었지만
벗기지 않고 만지기에는 와이어가 들어 있는 보통 브라보다 감촉이 좋았다.
혜진이는 지금 그것조차 안 입고 있다는 얘기였다.
주물럭거리던 자지가 패드가 달린 나시티만 입고 있다는 혜진이 얘기에 불끈 뻗쳐올랐다.

자지를 훑으면서 목소리를 맞추어 속삭였다.

- 혜진이 가슴 만져 봐. 내가 만진다고 생각하고.
- 아이잉~ 갑자기 왜 그래요?
- 난 지금 내 거 만지고 있는데. 혜진이가 만져준다고 생각하면서...
- 아이~ 오빠아~
- 어서... 가슴 만지면서 혜진이 숨소리 들려 줘.
- ......

혜진이의 말이 끊기고 아무 소리도 나지 않았다.
귀를 기울여도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혜진이가 옷을 들추고 가슴을 만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잠시 전화기 너머에서 후 혜진이의 숨소리가 들려왔다.

- 하아아~~
- 좋아, 혜진아?
- 잘... 모르겠어요... 히잉~
- 지금, 오빠가 혜진이 가슴 만지고 있는 거야. 어때? 좋아?
- ...... 하아...
- 오빠 손... 어때?
- 하아~, 오빠 손길 부드럽고 좋아요...
- 그렇지, 오빠가 젖꼭지 쓸어 줄게. 혜진이는 오빠 거 만지고 있어.
- ....

첫 폰섹스였다.
나도 처음이었고, 혜진이도 처음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하자고 사전에 정하지도 않았건만, 혜진이는 잘 따라왔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분했지만 조금 더 끈적끈적하게 해보고 싶었다.
아예 트렁크 팬티를 벗어버리고 의자에 눕듯이 기대 앉아 자지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 어때?
- 하아...
- 단단해?
- 네, 단단해요.
- 뭐가 단단해?
- 오빠 거...
- 오빠 거, 뭐?
- 아이, 오빠아~...
- 말해 줘, 듣고 싶어.
- 아잉~ 흐으응~
- 후우~ 오빠랑 혜진이 몸 연결해주는 게 뭐지?
- 하아... 하아...
- 혜진이가 물고 빨다가 혜진이 보지에 넣는 게 뭐야?
- 하아... 자... 자지, 오빠 자지.

혜진이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추어 속삭였다.
내가 먼저 보지라는 말을 꺼내자 혜진이도 드디어 용기를 냈다.
한번이 어렵지, 두 번째는 좀더 쉽고, 그 다음엔 아무렇지도 않게 하게 된다.
그 어려운 처음을 혜진이는 방금 넘어선 것이다.
흥분하면 어떤 선이든 좀더 쉽게 넘어설 수 있게 되는 법이다.

- 잘 했어. 오빠 자지야. 그지?
- 네, 오빠 자지...
- 혜진아, 오빠 자지 빨아 줘.
- 하아~ 어떻게...? 하앙~ 진짜 오빠 거 빨고 싶어요... 어떡해...? 하아...
- 혜진이 손가락을 오빠 자지라고 생각하고 빨아 봐. 빠는 소리 들려 줘.
- 쫍, 쫍,.. 후룹~, 쭙, 쭙...

손가락 빠는 소리가 자극적으로 들려왔다.
자위하듯 자지를 훑기 시작하자 쿠퍼액이 찔끔 나왔다.
그 한 방울을 귀두 끝에 문지르면서 아랫입술을 빨았다.

- 오빠 거 빠는 느낌이 어때?
- 쪼오옵~ 아, 조아요, 헤루룹~ 짜잇하고... 단단해요...

혜진이는 손가락을 문 채 말했다.
짜릿하고 단단한 느낌으로 내 자지를 기억하고 있었다.
사랑스러운 혜진이...

- 하아~ 근데... 오빠 꺼보다, 할짝~ 너우 자가...
- 오빠 자지보다 작아? 손가락 두 개 물어 봐. 그것도 작으면 세 개...
- 하아~ 우극, 쭈웁, 하아아~~
- 아, 좋아 혜진아...

혜진이가 손가락을 깊이 넣은 모양이었다.
그 소리에 흥분이 더해지며 쿠퍼액이 왈칵 나왔다.
귀두 전체에 펴 바르기에 충분한 양이었다.
쿠퍼액으로 미끌미끌해진 귀두를 손가락 끝으로 쓰다듬었다.
귀에서는 혜진이의 신음소리와 할짝거리고 쭙쭙거리는 소리가 머릿속에 울리듯 들려왔다.
혜진이가 점점 더 흥분했다.
혜진이나 나나 처음 하는 폰섹이라고는 도저히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금새 빠져들었다.

- 혜진아, 오빠 이제 넣을게.
- 쭙~, 하아~

혜진이는 내 말을 들었는지 못 들었는지, 숨만 몰아 쉬었다.
혜진이가 흥분한 만큼 나도 짜릿한 흥분이 올라왔다.

- 혜진아, 오빠 거 넣어 줘.
- 하아~ 쫍,.. 쭙...
- 아니, 입에 말고...
- 그럼 어디... 허윽~

어디냐고 물으려던 혜진이가 숨을 들이켰다.
보지라고 말을 해주지 않아도 될 듯하다.
자위를 한번도 안 해봤을까?

- 하아... 한 번도... 안 넣어 봤는데...

보지에 손가락을 한 번도 안 넣어 봤다는 얘기였다.
분위기가 확 식어 버릴 것 같았다.
지금 혜진이가 빨고 있던 건 손가락이 아니라 내 자지라야만 했다.
혜진이는 가쁜 숨만 몰아쉬었다.

- 혜진이가 지금까지 물고 빨던 게 뭐지? 오빠 자지지?
- 하아~~ 네...
- 넣어 봤잖아. 자, 오빠가 넣을 때처럼 천천히...
- 하아~
- 전화기 갖다 대 봐. 넣는 소리 들려줘.
- 하아아~

혜진이는 금새 알아들었다. 착하고 똑똑한 학생이었다.
신음소리가 멀어지면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전화기가 혜진이의 음모, 보지털에 스치는 상상을 했다.
그리고 다음 순간, 기대했던 소리가 작게 들려왔다.

- 찔꺽~

자지를 잡은 손이 빨라졌다.
쿠퍼액이 또 찔끔거렸고, 자지를 훑는 손에 묻어 귀두에는 물론, 자지 기둥에까지 충분히 묻어났다.

- 하아~ 들었어요?
- 응. 아~ 좋다. 혜진이 보지...
- 하아~ 오빠, 나... 혜진이 좀...
- 혜진아, 오빠... 자지 좀더 빨리 움직일게? 알았지?

손가락이라고 할 뻔했다.
지금 이 순간, 혜진이의 보지에 들어가 있는 손가락은 내 자지다.
진짜보다는 훨씬 짧고 가늘지만 진짜 못지 않게 박고 있는, 지금은 그게 내 자지다.
내가 자지를 움직인다는 건 혜진이보고 손가락을 움직이라는 소리다.
혜진이는 이번에도 잘 알아들었다.

- 하아~ 오빠, 하아~...
- 아~ 좋아 혜진아... 혜진이 보지, 좋아...

전화기에 대고 신음을 뱉으며 나도 혜진이도 각자 자신의 성기를 애무했다.
전화기를 얼굴에 대고 있는데도 혜진이 보지에서 질꺽거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그렇게 얼마나 했을까...

- 하아아~~~ 아흐~ 하아악~! 하극, 흐으으으~

혜진이의 신음이 가빠지더니 어느 순간 숨을 삼켰다.
그리고는 잠시 꺽꺽거리다가 긴 숨소리가 들려왔다.

- 후우우우우~~

나는 아직 사정하지 않았다.

- 아, 혜진아...
- 오빠...

혜진이가 힘없는 목소리로 불렀다.
오르가즘 직후의 혜진이 모습이 떠올랐다.

- 혜진아, 오빠 자지 다시 빨아 줘.
- 하아~

내 자지, 자기 자신의 애액이 잔뜩 묻은 내 자지를 빨면서 자지에 묻은 애액은 많이 빨아 봤지만
자기가 자위하면서 묻힌 것도 빨 수 있을까?
잠시 흥분이 가라앉으려 했다. 그런데 그 순간,

- 쪼오옵~
- 아, 좋아 혜진아...
- 쪼오옵, 쭙, 헤룹, 쭙...

전화기를 왼손으로 옮겨 귀에 대고 오른손을 정신없이 흔들었다.

- 쪼오옵, 후룹, 쭙...
- 아, 좀더, 혜진아, 좀더 세게, 혜진아, 아, 좋아...
- 쭙쭙쭙, 헤룹~ 쭙쭙쭙
- 아, 혜진아, 아욱~

자위와 폰섹은 달랐다.
섹스할 때처럼 눈앞이 캄캄해지고 빛이 번쩍였다.
쭈욱, 쭈욱... 울컥거리는 느낌이 왔다고 생각할 새도 없이 정액이 뿜어나갔다.
책상 위에, 모니터에, 모니터 너머 벽에까지 정액이 솟구쳤다.

- 후우우~~
- 하아, 하아, 하아...

나는 숨을 길게 내쉬었고, 혜진이는 숨을 헐떡거렸다.

- 아, 사랑해, 혜진아...
- 하아~ 좋았어요?
- 응... 오빠 자지가 아직도 꺼떡거려... 보여?
- 하아... 오빠...
- 오빤 무지 좋았어... 혜진이는?
- 하아~ 아직도 거기가 떨리는 거 같아...
- 거기가 어딘데?
- 으응...
- 말해 봐, 혜진아... 떨리는 거기가 어디야?
- 아이이잉~... 그러지 마요... 히잉~...
- 사랑해 혜진아.
- 나도 오빠 사랑해요...

흥분이 좀 가라앉은 모양이었다. 나는 사정한 자지를 계속 만졌다.
움찔거리게 만드는 쾌감의 끈을 놓고 싶지 않았다.
자지를 만지는 동시에 통화하면서 사랑한다고 몇 번씩 말하고,
전화기에 대고 뽀뽀하는 소리를 내는 등,
유치한 짓을 삼사분간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섹스 후에는 혜진이를 안고 키스를 했었다.
그리고 그 나른함에 빠져 바로 잠들면 됐었다.
그리고 혜진이가 콘돔을 치우거나 내 자지를 빨아서 깨끗이 하는 걸 느끼기만 하면 되었는데,
폰섹 후에는 귀찮은 일이 남아 있었다.

책상과 모니터, 벽에서 흘러내리는 정액을 휴지로 먼저 닦고, 걸레를 빨아다 다시 닦았다.
그 와중에도, 키보드 틈이나 모니터 위 환기구에 정액이 떨어지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자위나 폰섹이나 뒤처리가 귀찮은 건 똑같았다.

* * * * * * *

추석이 지나고, 완연한 가을로 접어들면서,
데이트의 마무리는 주로 혜진이의 집 근처 단골 커피숍에서 하게 되었다.
차를 마시고, 이따금은 저녁도 거기서 간단히 해결하면서 그 커피숍에서 지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졌는데,
혜진이는 차를 마시면서 다이어리에 메모도 하고 낙서도 하곤 했었다.

어느 날인가,
그날도 커피숍에서 나란히 앉아 혜진이의 다이어리를 보며 얘기하고 있었는데,
다이어리 포켓에서 웬 남자 증명 사진이 나왔다.
혜진이의 남동생도 아니고, 연예인 사진도 아니었다.
이십대 초반? 아니면 십대 후반? 앳돼 보이는 녀석이었다.

- 이건 누구야? 웬 어린애?
- 얘? 아~ 아는 동생...

혜진이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러나 사진 뒤에는 이름과 생일이 혜진이의 글씨로 쓰여 있었는데,
그 아래에 쓰인 글귀가 거슬렸다.

취미: 키스. 가끔씩만 해줘야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해할 수가 있을까?
아니, 그걸 이해해야 하나?
애인이 있으면서, 다른 남자의 취미를 위해 가끔씩 키스를 해 준다?
그걸 가지고 따지고 들면 속좁은 남자일까?
사진 뒤의 생년월일로 보면 혜진이보다 두 살 어린 녀석.
취미로 키스를 한다? 혼란스럽고, 불쾌했다.

혜진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음악을 따라 흥얼거리며 하던 낙서를 계속했다.
그런 혜진이에게 대고 따져 물을 수도 없고,
알량한 자존심은 질투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 없다고 버티고 있었다.
혜진이가 이리저리 넘기는 다이어리를 보지 않는 척하면서 계속 곁눈질로 훔쳐봤다.
기분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어색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혜진이가 들어가야 하는 시간이 되었고, 그냥 그렇게 헤어졌다.

돌아오는 동안에도 혜진이의 다이어리에 쓰여 있던 글귀가 잊혀지지 않았다.

- 한 사람만 사랑할 자신이 없다.

나랑 데이트하기 전이었을까, 그 다음일까?
그 한 사람이 나일까, 아니면 다른 사람일까...
나와 처음 했던 섹스, 혜진이는 분명히 처음이 아니었다.
나는 혜진이에게 동정을 주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혜진이와 섹스하면서 별로 신경쓰지 않았던 동정과 처녀성에 대해서도 손해본 느낌이 들었다.
혜진이에게 나는 도대체 뭐지?

내 기준으로 사랑이라는 건, 한 사람에게만 주는 거다.
물론, 평생 한 사람은 아니지만,
동시에 이 사람을 사랑하면서 다른 사람도 사랑하는 건, 가족이나 그런 사랑에서나 가능한 거지,
섹스를 하는 사이에서도 가능할까? 의문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았다.

그러나 회사 일에 집중하면서 그 생각은 오래 가지 않았다.
그리고 그 주에는 나도 혜진이도 회사 업무 때문에 시간이 나지 않으면서 전화통화만 하고, 만나지는 못했다.
게다가 마침 그때부터, 하필이면 그때부터,
거의 매일 만나던 게 일주일에 두어 번, 어떤 주에는 겨우 한 번 만나고,
주말엔 꼬박꼬박 만나서 섹스하던 것을 건너뛰기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자기 전에는 꼭 전화통화를 했다.

그러던 중, 전화통화를 하면서 생각하지도 못했던 일을 겪었다.
대부분 내가 전화를 하고, 혜진이는 건성으로 말하다 끊는 일이 되풀이되었는데
거의 2주 이상, 보지 못하는 날이 계속되던 어느 날이었다.
통화 중에 내가 못 본지 오래 됐다고 말을 했었다.

- 우리, 되게 오랫동안 못 봤다. 그지?

돌아온 혜진이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아니, 충격이었다.

- 그래서?
- ......

그래서? 그래서라니? 그래서?

‘그래서?’ 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상대방이 하는 말에 대해서 다음 말을 재촉할 때 쓰기도 하지만,
하는 말이 중요하지 않거나 하찮게 생각될 때, 또는 어이없을 정도로 우스울 때 쓰는 말이다.
그래서 뭐? 그래서 어쩌라고? 등등
대책이 없다든가, 그게 무슨 상관이냐...는 말...

나로서는 그렇게밖에 해석할 수 없는 말이었다.
혜진이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말을 내뱉고는 말이 없었다.
그래서... 그래서... 우리가 오래 못 만났다는 얘기가, ‘그래서?’ 라고 되물을 만한 것이었나?
그래서 어쩌자고?... 만나자고?... 만나서 뭐 하게?... 이런 뜻이나 다름없었다.
나는 힘없이 전화를 끊었다.
며칠 동안 전화를 할 수가 없었고, 혜진이도 전화하지 않았다.

연애를 하다 보면 갈등이 생길 때가 있다.
이 사람이 과연 내 평생의 인연일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사소한 단점이 눈에 띄어서, 이 사람을 계속 만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부모나 주변 사람이 누구 만나냐고... 확신이 없고 의문이 생길 때,
그 사람을 보는 것조차 불편하고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래서?“ 는 좀 아니지 않은가?

뭐지? 왜지?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뭐가 어떻게 된 거지?
뜬눈으로 밤을 새웠다. 그리고는 넋이 나간 듯 며칠을 지냈다.
업무상 바쁘지 않았다면 무슨 일이 났어도 났을 거였다.
그렇게 전화를 끊고는 다시 전화를 할 생각도 못 했다.

그러던 며칠 후, 3일이 지났었나, 4일이 지났었나?
혜진이가 회사 앞으로 찾아 왔다. 아주 밝은 얼굴로.
머릿속은 복잡했지만 평소처럼 같이 밥을 먹고, 술을 마시고 집까지 바래다 주었다.
골목에서 하던 키스도 없이 혜진이네 집 앞에서 돌아서려고 인사를 하는데
혜진이가 목을 안아 왔다.

- 이제 걱정시키지 않을게요.

나는 무슨 말도 못하고, 대답도 질문도 못하고 그냥 혜진이를 안고 있었다.
혜진이가 입을 맞추어 왔지만 입술을 내주고 혀를 받으면서도 멍하니 서 있었다.
며칠 전 들었던 말도 아직 납득하지 못하고 있는데,
걱정시키지 않겠다는 말도 무슨 말인지 모른 채 그냥 혜진이를 안고 있었다.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이것도 저것도 모르는 상태로 습관적으로 혜진이를 만나고 있었다.
그렇지만 만나도 전처럼 반갑지도 않았고, 같이 있는 게 그저 좋기만 한 건 아니었다.
그렇게 달라져 가는 것도 걱정이 되었고,
그 걱정 때문에 만나는 것 자체가 그리 편하지 않게 되는 악순환이 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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