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 그리고 사랑 - 88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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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연지 여사가 현석에게 전화를 해서 일찍 퇴근하고 오란다.
처가로 오라는것일까 생각하는데 집으로 오라고 하는 것으로 봐서 그건 아닌 것 같다.
예리는 아직 오지 않았지만, 지수는 집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지수가 예리를 데리고 친정에 갔던 이야기는 계속 들어 왔다.
예리와의 결혼식을 준비하는동안에도 수시로 예리와 현아를 데리고 친정엘 다녀 왔었다.
그냥 현아와 예리를 데리고 가서 몇시간씩 놀았단다.
장인인 한상운 사장이나 이연지 여사도 현아의 예쁜 모습을 보고는 꼭 내손녀 같다고 하면서 그렇게 예뻐했다고 하셨단다.
그것이, 결혼식 전부터 시작해서 거의 한달을 이어왔다.

현석과 지수 둘이서 처가에 들리면, 현아 이야기를 몇번을 했었다.
지수가 예리와 현아를 데리고, 처가에 다녀올때마다 현석에게 이야기를 했고, 예리도 지수가 왜 그러는지 말을 해주지 않았단다.
짐작은 했었다.
아마 예리도 짐작 했을것이다.
지수는 현아와 예리와 처가의 모든 식구들이 자연스럽게 친숙할 시간을 만들고 있는것이다.

그리고, 어느날 지수는 혼자서 친정을 찾아서는 예리가 시한부의 생을 살고 있다는 말을 했단다.
그 이야기를 현석에게 했었다.
이연지 여사는 그렇게 슬프게 눈물을 흘렸다고 했었다.
병원에서 예리의 부모에게 연락은 했지만, 병원에는 오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마치 자기의 딸이 그런 상황에 처한듯 그렇게 슬퍼했다고 현석에게 전했었다.

그리고 바로 어제, 현석에게 자신과 만나기 전에 만나는 여자가 있었고, 얼마간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그 여자가 현석도 모르게 아기를 낳아서 기르고 있었다는 것을 자신이 알게 되었다고 했단다.
그런데, 그 여자가 예리이고, 현아가 현석의 아이라 이야기를 했단다.
지수의 그 모든 이야기는 한지원도 같이 들었단다.
이연지 여사는 어떻게 그럴수가 있느냐면서 펄펄 뛰었단다.

지수는 먼저, 예리와 현아를 친정의 식구들과 친하게 만들어 놓고, 예뻐하게 만든 뒤에, 예리의 슬픈 이야기로 정말 안아주고 싶게 한 뒤에, 비로소 예리와의 관계를 털어 놓는, 그래서 친정의 모든 식구들이 불쌍하고 가여운 예리를 밀어내지 못하도록, 아니 끌어 안을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현석은 그 이야기를 계속 들어 왔기에 이미 잘 알고 있는 상태이다.

“예리에 대한 지수의 이야기가 사실인가?”
이연지 여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네, 사실입니다.”
현석은 그간에 지수가 다녀온 이야기를 다 들었기에 그대로 대답을 했다.
“자넨, 대체 어떻게 된 사람인가?”
할말 없다.
무슨 말을 할수 있을까?
“죄송합니다.”

유구무언.
예리의 이야기를 지수에게 할때도 그랬지만, 대체 처가에 왜 이리 찍히게 되는것인지.
지수한테도 꼼짝을 못하는데, 이젠 정말 처가식구들 모두에게 아무소리도 못하게 생겼다.
아, 내 신세야.

“죄송? 이게 죄송으로 끝날 이야기인가?”
“…”
“아이야 무슨죄가 있겠나만, 모든것을 자네 마음대로 처리해 놓고, 지수를 쪼르르 보내서 도대체 말도 안되는 변명을 해?”
쪼르르 보낸건 아닙니다. 어머니.
말은 입안에서만 돌았다.

1시간동안 죄송합니다 라는 말을 백번은 더 한 것 같다.
하긴 그정도가 무슨 대수랴.
정상적인 경우라면 처가에서 이혼시키겠다고 달려 들어야 한다.
정말 무슨 말도 안되는 일이 아닌가?

“지수 말대로, 예리가 시한부가 아니어도 결혼을 할려고 했었나?”
이연지 여사의 질문을 보면 모든 것을 현석이 처리한 것처럼 말한다.
지수가 실제 그렇게 말을 했는지 안했는지는 모른다.
적어도 이 일과 관련해서 현석은 처가에 아무말도 하지 않았으니.

그렇다고, ‘그건요 제생각이 아니었구요. 지수의 생각있는데요.’ 이렇게 말 할 수는 없다.
남자가 되어서, 특히 이 상황에서 어울리지 않는 변명은 의미가 없다.
아무리 지수가 권하는 상황이었어도 현석이 반대했으면 안되는 일이었었다.
다만, 잘은 모르지만, 그랬다면, 딸도 포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아니었나 싶다.
“아닙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때, 대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다.
이시간이면, 예리가 퇴근하는 것 아닐까 싶다.
대문 번호키를 아는 사람은 현석과 지수, 예리와 장모인 이연지 여사가 전부이다.
“다녀 왔습니다.”
예리가 쾌활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고 들어 오다가 이연지여사의 맞은편에 현석이 앉아있는 모습을 보았다.

이연지여사의 고개가 돌아가면서 예리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사모님.”
“…”
이연지 여사는 예리의 인사에 대답대신 일어서더니, 조금 놀란 모습으로 엉거주춤 서있는 예리를 꼭 껴안았다.
“아이구. 이 불쌍한 것, 이 불쌍한것.”
예리가 영문을 몰라 하다가 자신의 모든 것을 이제 알게 되었다는 것을 느꼈는지,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맺히더니 주르르 흘러 내렸다.
그리고 그대로 거실 바닥에 주저 앉았다.

“울지마라, 아가야. 이제부터는 너도 내 딸이다. 너도 내 딸이란다.”
이연지 여사는 주저앉는 예리의 몸을 감싸 안았다.
예리는 흐느끼며 자신을 쓰다듬는 이연지 여사의 품에 안겨 통곡을 했다.

* * *

현석은 장인인 한상운 사장에게 불려갔다.
함께 저녁식사를 하는것으로 하고 예약된 별실에서 만났다.
“자네 장모에게서 현아랑, 그 예리 이야기는 다 들었네.”
“죄송합니다.”
“자넨, 이혼남이라는 딱지를 붙이고도, 내가 제일로 사랑하는 셋째딸을 마치 강탈하듯 데리고 가더니, 이젠 뭐, 뭐가 어째?”
“죄송합니다.”
할말 없다.
정말 할말이 없는 사항이다.
따귀라도 한대 때리시려나 했지만, 그러지는 않았다.

* * *

“아빠한테는 혼나지 않았어요?”
“응, 혼은 좀 났지만, 그정도야 뭐 어쩌겠어?”
장인어른을 만나고 온날, 지수의 질문은 비교적 간단했다.
“나 때문에 헨리도 고생하셨네요.”
예리가 커피를 들고 나오면서 싱긋 웃었다.
테이블 위에 커피잔을 내려놓고, 현석의 목에 매달려서는 입맞춤을 했다.
그동안 지수가 하는 것을 많이 본 때문인지, 이젠 예리조차도 자연스럽게 입을 맞추고, 안기기도 한다.
그리고, 종종 안아주세요 소리도 한다.

참, 아무리 한명은 오래지 않아 곁을 떠날 시한부의 생명이지만, 아내가 둘이라니.
그리고 둘은 질투는커녕, 서로 서로 배려하는 모습이라니.

* * *

현석은 지수와 예리, 그리고 현아를 데리고 시골에 계신 어머니께 갔다.
어머니에게도 이 사실은 알려 드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아를 출생신고를 했지만, 호적과 주민등록부에 올라 있지만, 어머니가 호적등본을 떼어 볼 일이 없으니 모르고 계실것이다.
아셨다면 바로 쫓아 올라오셨을 것이다.

누군지도 모르는 어린 아이를 안고 문을 들어서는 현석을 어머니는 반갑게 맞이 하셨다.
현아를 예뻐하는 것이 현석의 눈에도 보였다.
현아를 안고는 얼르고, 웃으면서 참으로 좋아하신다.
그리고, 어머니는 계속 궁금증이 어린 눈으로 현석을 쳐다보았지만, 현석은 어머니의 눈길을 외면했다.
저녁을 준비하면서 아마 지수에게도 물은 모양이다.
누구냐고.
현석이 말해 줄거라고 하면서 말을 안했단다.

“어머니, 이 아이, 어머니의 손녀 입니다.”
저녁 식사를 다 하고 난 뒤에, 마당에 모깃불을 피워놓고 앉아서 현석이 말을 꺼냈다.
“뭐? 무슨소리냐 그게?”
“이 사람이, 애 엄마인건 알겠죠?”
“그래, 그건 알겠다만, 그게 무슨소리냐니까?”
어머니는 궁금증이 증폭된 상태로 계속 물었다.

“어머니, 이 사람이 현아 엄마이고, 현아는 내 아이 입니다.”
“뭣이라? 무슨 말인지 제대로 해 봐라.”
어머니의 음성에 노기가 실렸다. 그리고 말을 계속했다.
“이게 대체 무슨 경우없는 짖이냐? 그럼 얼마전에 결혼을 한 네 처는 뭐가 되느냐?
이게 지금 말이 되느냐?”
“어머님, 제가 설명 드릴께요.”
지수가 나섰다.
“그래, 아가, 네가 설명해 봐라.”
“네,”
그렇게 대답을 하고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우선 먼저, 예리는 시한부의 생을 살고 있으며, 어쩌면 올 가을을 넘기기 힘들것이라고 말을 했다.
그리고 현아를 남겨두고, 영원히 떠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 설명을 찬찬히 듣던 어머니의 눈가에 눈물이 어리더니, 주름진 얼굴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예리를 끌어 안았다.
왜 그런다니? 이 예쁜 아이를 왜 그런다니? 하늘도 무심하시지, 대체 왜 그런다니? 하면서 한참동안 눈물을 멈추지 않았다.
예리에게 시한부라는 인식을 자꾸 심어 주는 것이 결코 좋은 일은 아니었지만, 예리의 상황을 이보다 다 빨리 이해시킬 방법은 그렇게 말하는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는것도 사실이다.

지수는 설명을 이어갔다.
자신과 남편이 만나기 전에, 예리와 자신의 남편이 잠시 사귀다가 헤어졌는데, 헤어질때까지도, 현아를 가진줄을 몰랐다고 했다.
예리는 아이를 차마 지울 수 없어서, 혼자라도 키우겠다고 현아를 낳았다고 했다.

“야 이놈아, 그래 대체 어쩔 심산이었나? 어쩔 심산으로 그랬어?”
어머니는 현석을 쳐다보고 고함을 치셨다.
어머니가 많이 배우지 못하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고 계셔서 많은 교육을 받은사람들보다 말씀을 조리있게 잘 못하실뿐, 마음은 따뜻하고, 세상을 순리대로 살아오신 분이다.

“어머니, 얼마전에 우연하게 다시 만났는데, 현아를 낳은것도 그때 알았고, 그리고 얼마뒤에는 시한부로 몸이 몹시 아픈것도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지수와 예리를 번갈아 보면서 어쩔줄을 몰라하는 모습이 보였다.
“아이구, 어찌할꼬, 어찌 할꼬?”
“그래서 어머니.”
“그래, 며늘아가 말 해봐라, 이 일을 어찌 할까나?”
“둘이 함께 며느리로 받아주시면 안될까요?”
“둘이 함께?”
“네, 제가 그렇게 하자고 했습니다. 남은 시간동안 만이라도 둘이서 같이 남편으로 알고, 둘이서 같이 아내로 살자구요.”


어머니는 쉽게 수용이 안되는 모양이다.
어찌 이 일이 그리 쉽게 수용이 될 일이던가?
당연한 일이다.
현아도 더 이상 안보고, 한쪽에서 말도 없이 앉아 계셨다.
지수는 예리와 나란히 한쪽에 앉아있고, 현석은 현석대로, 어머니는 어머니 대로 따로 앉아 있었다.

몇시간이 지났을까?
한밤중이 되어서야, 어머니는 몸을 일으키더니 모기장안에서 잠이든 현아를 품에 안았다.
“그래, 그리하자. 그리하자. 작은 애기인들 얼마나 남편의 정이 그리울꼬? 내가 그 심정을 모르면 누가 알겠나. 그리하자. 그리하자.”
“…”
“어이구 불쌍한 내새끼, 돌도 못지나서 에미를 잃고 어찌 살꼬?”
그 말 한마디에 지수도 예리도 현석도 울었다.
그리고 어머니도 울었다.

* * *

“별일 없었어?”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이건, 집에 들어오면서이건, 예리를 보면 지수에게 물어보는 첫번째 질문이 되어버린 말이다.
몇일 전 일요일 오후에는 텔레비전을 보다가 갑자기 토했다.
마침 현석이 있을 때 그랬기에 그 참상을 직접 목격했다.
오래 토하지는 않았지만, 정말 속이 뒤집어 올라올 정도로 극심하게 토했다.
현석도 지수도 눈물이 핑그르 돌 정도로 가슴이 아프다.
이미, 예리는 현아에게 모유를 먹이지 않고, 분유를 먹이기 시작하면서, 매일 매끼니 후에 한 주먹씩의 약을 먹고 있다.
그걸 볼때마다 가슴은 미어지기는 했지만, 방법이 없다.

그런일이 있을 때 마다 병원을 쫓아올 필요는 없다는 것이 의사의 말이다.
병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발생되는 증상일 뿐이지만, 환자가 극심한 고통 때문에 도저히 견딜 수 없어 하거나, 심하게 코피를 쏟으면, 병원으로 와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잠깐동안 그러고 지나간다는 것이다.

현석의 질문에 지수가 대답은 안하고 미소를 지었다.
“작은 사모님이 오늘 잠깐 기절했었어요.”
일하는 아주머니가 지수대신 대답을 했다.
아주머니는 예리가 집으로 들어오고 얼마 뒤부터, 오전에 와서 밤까지 있다가 간다.
그 전에는 낮에 왔다가 저녁때가 되기전에 갔지만, 시간을 많이 늘린 셈이란다.
지수의 배가 자꾸 불러와서 집안 일을 하기가 갈수록 쉽지 않기도 하지만, 예리가 있으니 손이 조금 더 필요해서 급료를 올려주기로 하고 저녁 먹고 치우기까지 한 뒤에 퇴근하는것으로 바뀌어졌다.
상냥한데다가, 성실하고 착해서 지수는 다른사람과 교대를 하는 것 보다 차라리 그 아주머니에게 더 많이 주고 오래 있도록하는 것이 좋겠다고 했다.
“그래요?”
“네.”
“예리야, 이제 괜찮아?”
“네, 이젠 괜찮아요.”
예리가 현석을 보고 작게 미소를 지었다.
현석은 몸을 일으켜서 예리의 입에 입술을 맞추었다.
그리고 어깨를 가볍게 감싸고는 등을 톡톡 두드려 주었다.

처음에 현석이 집 안에서 지수와 자연스럽게 입맞춤을 하거나, 꼭 껴안고 있는 것을 본 아주머니가 깜짝 놀라서 고개를 돌리고 눈도 감고, 소리도 지르고 했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바라본다.
아마, 만성이 되었으리라.
그리고 예리가 집으로 오고난 뒤에는 예리와의 입맞춤이나 뜨겁게 보일만한 포옹도 그러려니 하고 만다.
그리고, 예리의 상황을 그 아주머니도 너무나 잘 안다.
간혹은 측은한 눈으로 예리를 바라보지만, 그것까지야 하지 말라고 할 수가 없다.

“낮에 얼마간 안보이길래 예리방으로 가 봤더니, 현아 침대옆에서 기절해 있었어요.”
“병원에는 연락 해 봤어?”
지수의 말에 현석이 물었다.
“네, 진행되는 증상이지 갑자기 크게 나빠지거나 그런거 아니라고 하네요.”

* * *

예리의 남동생인 이예성이 다녀갔다.
어떻게 형제간이 둘다 부모와는 사이가 안좋은 것 같다.
전역 후에 집에는 단 한번 얼굴을 들이 밀었을 뿐, 그 뒤로는 가지 않는단다.
그리고 한참 뒤에 피에르체를 찾아갔었는데, 누나와 잠시 만나는 중에, 하필 그때 극심한 두통이 있어서 점원에게서 이야기를 들었단다.
그리고, 예리와 함께 집으로 왔다.
이예성은 피에르체에서부터 한참을 울었단다.
현석을 만났을 때에는 눈이 퉁퉁 부어 있있다.

그리고도 이예성은 누나를 부둥켜 안고 한참을 울었다.
남자의 울음소리는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슬픔을 가지고 있다.
시한부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리의 소식을 듣던 그날, 현석도 저렇게 울었을까 싶을 정도로 가슴을 후벼파는 슬픔이 가득하다.

이예성은 현석에게 누나를 지켜주어서 고맙다고 했다.
행패나 부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는데, 예상외로 모든 상황을 이해하는 모양이다.
그리고, 조카인 현아를 데리고 한참을 놀았다.
현석이 현아와 처음 봤을때도 약간의 옹알이를 했지만, 그때는 옹알이라고 보기 힘들었는데, 이제 6개월이 넘어서는 중이라 옹알이가 제법 시끄러운 편이다.
아마 거의 하루종일 말을 하는 것 같다.
현석이 현아에게 말을 시키면, 말로 되돌아 오지는 않지만, 옹알이가 제법 대답을 하듯 한다.
그리고, 제법 웃음소리도 내고 하니, 현아를 보는 모습이 재미 있기도 할 것이다.

하긴 현석도 퇴근하고 오면, 현아와 눈을 맞추고, 말은 통하지 않지만, 계속해서 말을 주고 받는 것이 중요한 일과이긴 하다.

이예성은 매형으로 부르겠단다.
비록, 부모님 모시고 모든 사람들이 축복하는 결혼식은 아닌 반쪽짜리 결혼식이어도, 결혼식을 치렀다니 정말 고맙단다.
그리고, 식은 올려도 혼인신고도 하지 못한 아내이지만, 매형의 아내이니, 누나를 잘 보살펴 달란다.
그리고 종종 현아를 보러 오겠단다.
병원에 가기전에 예리의 부모님에게 연락은 했지만, 오지 않았다고 했더니, 부모님에게는 이제 혹시라도 연락하지 말란다.
오히려 부모님이 오면, 누나가 더 힘들어 질거란다.

현석도 처남으로 부르겠다고 했다.
누나가 어찌되건 상관 없이, 우린 처남 매부 사이이니 앞으로 잘 지내자는 말도 했고, 이예성도 그러마고 했다.

* * *

“피에르체를 팔았다고?”
“네.”
저녁 식사자리에서 지수가 예리를 대신해서 피에르체 이야기를 했다.
“그게 맨땅에서 일군 회사일텐데, 아깝다.”
“어차피 제가 운영할 수 없는데, 할수 없죠.”
예리의 말이다.
“팔았다기 보다는, 조금 방향을 바꾸어 주었어요. 직원들이 출자를 해서 주식회사를 만드는것으로 하고, 예리로부터 법인이 인수하는 방식으로 했으니까요.”
지수의 설명이다.

“그래?”
“네, 나도 지분 30프로 들어갔어요. 그리고 현아 앞으로도 지분을 25프로 만들었구요”
“그럼, 현아의 지분 행사는 엘리가 하는거고?”
“네.”
결국은 지수와 현아의 지분이 55프로이니 지수가 좌지우지 할 수 있는 구조이다.
“언니가 지분 30 프로면, 언니가 대표이사를 해야 하는데, 제 친구 하니에게 대표를 맡기고, 언니는 상근 감사를 맡기로 했어요.”
지수의 지분에 대해서 예리가 보완 설명을 했다.
“아, 하니의 계획이 좋았어요. 내가 늘 갈 수도 없고해서.”
“그건 잘했네.”
배가 볼록한 사람이 거기가서 일한다고 무리하는게 좋을 일이 없다.
어차피 애를 낳으면 또 얼마간 쉬어야 하고.
세 친구가 피에르체 인수에 합류하고 피에르체의 직원들도 출자를 했으니 공동주주 개념이 되었고, 단순히 직원일때와는 다르게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생각에는 IMF를 계기로 패션분야를 포함해서 여러분야에서 국가간의 벽이 무너질 것 같거든요. 그래서 세계를 대상으로 마케팅을 해야 한다는데는 나도 동감을 하고 있었어요, 하니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브랜드를 세가지로 나누어서, 현재와 같은 고급 맞춤복, 그리고 고급 기성복, 캐주얼 복으로 나누고, 고급기성복과 캐주얼 복은 백화점과 유통망을 만들어서, 그곳을 통한 유통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는게 좋겠다고 해서 55프로 주주의 권한으로 하니를 대표로 임명했어요”
지수의 간단한 설명이다.

“음, 괜찮은 아이디어인데. 마케팅만 잘 하면 되겠어.”
“그죠? 나두 평소에 하니랑 그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긴 해도 실행을 할 용기가 없었는데, 언니가 그게 좋겠대요.”
예리는 마치 자기가 한것처럼 좋아했다.

“그런데, 지금 거기 매출은 얼마나 돼?”
“놀라지 마세요. 예리가 무척 부자라는걸 나도 이번 일 진행하면서 알았는데요. 지난해 매출이 57억이나 되요.”
“뭐?”
“많죠?”
“응. 그정도면 웬만한 중소기업을 넘네?”
현석은 정말 깜짝 놀랐다.
설마 그정도 일 줄이야.
“거기다가 하이패션샵은 이익이 재료비개념 보다는 디자인비 개념이라 이익율도 높아요.”
“그럼 자본금을 얼마로 했기에?”
“자본금은 15억으로 했어요. 매장안에 있는것들을 원가에 인수하더라도 약간의 운영자금 여유는 있는 것이 좋을 것 같아서요.”
“음.”
“네, 그리고, 피에르체 건물이 예리거거든요, 건물은 그냥 현아한테 증여하는거로 했어요.”

“증여?”
“네, 변호사와 이야기 해보니, 상속하는 사람이 생존한 상태이면, 상속이 아니고 증여라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현아에게 상속하려면, 현아가 예리의 상속자임을 증명하는 것과, 나중에 현아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알고 상속권 주장을 하거나 하면, 분쟁의 소지가 있다고 하기에, 세금을 조금 더 물더라도 사전에 증여절차를 거치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그러기로 했어요.”
“…”

현아에게 증여하는것으로 처리한건 잘 한 일인 것 같다.
엄마를 일찍 잃는 것이 그런것으로 보상이 되는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것은 엄마의 목숨값이다.

“그리고, 요즘 부동산 값이 많이 내렸다고 하지만, 그걸 회사가 인수하기에는 차입해야할 자금규모가 너무 커서 좀 부담스럽기도 하고, 부동산 가격이 많이 내렸으니, 감정결과에 따라서 증여세가 얼마 안나올 것 같기도 하구요.”
건물값이 얼마나 될런지는 몰라도, 피에르체는 매장도 넓고, 지상주차장도 넓어서 대지면적이 제법 넓을 것 같다.
“그럼, 회사가 현아와 임대차 계약을 해야겠구만.”
“네. 그건, 전에 예리가 그곳을 매입하기 전에 임차로 있었을 때 계약서가 있어서 기준이 있어요.”

예리는 자신이 떠날때를 대비해서 차근 차근 준비를 하는 것 같다.
그런데, 그 준비를 지수가 돕고 있는 것 같다.
지금 말한 이런 형태는 아마 지수의 아이디어 일 것이다.
예리의 디자인 감각은 탁월한 것 같다.
그러나 비즈니스 감각은 지수가 탁월하다.
현석이 생각하기에는 현석보다 나았으면 나았지 조금도 부족하지 않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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