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쉬, 조금 더 진한 그레이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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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쉬, 조금 더 진한 그레이 -6부-
꿈은 기억은 짓밟고 더욱 선명해졌다. 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어이 불러내 내 앞에 세웠다. 나는 꿈에서조차 추억이 될 수 없는 것들에 시달려야 했다. 악몽을 가장한 지옥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내 모든 것이 되어갔다. 나의 일부는 전체주의에 묻혀버렸다. 지하 단칸방에서 벌레처럼 기거하던 나의 가족은 해방되지 못한 난민처럼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내야 했다. 나는 곤궁에 빠진 피난민이었다. 난 닥치는대로, 주어지는대로 돈을 갈구했다. 학과 조교, 근로장학생, 편의점 아르바이트.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간식이었고, 전진하지 못하는 경제력은 주식이었다. 나는 기어이 독립해 나와 혼자만의 수용소를 건립했다. 나만의 피난은 오히려, 위로였다. 그러나 그 위로가 나에게 밥을 주지는 못했다. 밥은 멀었고, 나는 그 먼 곳을 항상 더듬어 찾아야 했다. 나는 위로의 지하에 파묻힌 인간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힘이었다. 구원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녀는 나의 학과 사무실로, 편의점으로, PC방으로 찾아와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지탱할 수 없는 것들을 겨우 버티어 냈다. 무거운 짐을 가벼움의 환상으로 버티는 나날들. 나는, 행복했다. 그녀 없는 하루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가 없다면 차라리 하데스의 개가 되어 삶을 감내하는 편이 나았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인간이라는 종種을 증오하며 살아왔던 나는 차츰, 사람이 되어갔다. 그녀를 따라 교회를 나갔으며, 그 곳에서 그녀의 찬란한 노래를 음미했으며, 하늘에 존재한다는 신의 존재와 믿음에도 동화되었다. 그래, 그랬었다. 그녀는 나의 주님이었다. 그녀의 주님은?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에 성공했던 어느 날.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지독하게 사랑했던 그녀에게서 승호 선배라는 사람을 소개받은 것은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난 얼마 후, 또 그녀가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혼자 따로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게 된 뒤의 어느 날이었다.
자기, 나 오늘 팬티 입지 말까?
하늘은 썩은 정액을 뿌려놓은 듯 우중충했다. 비는 내리지 못하고 흩날렸다. 시커먼 새가 전깃줄에 앉았다가 이내 날아가 버렸다. 새의 궤적을 따라 좇아간 내 시선에, 비에 잠긴 도로가 들어왔다. 온갖 오염물을 머금은 물을 떠받치는 도로는 수채통의 하수관 같았다. 멀리서 버스가 달려오더니 다급하게 사람들을 쏟아놓더니 다시 내달렸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버스가 토해낸 토사물 같았다. 우산을 든 몇몇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보였다. 검은 것. 빨간 것.
그 따위로 부르지마.
기분이 좋아 보이는 여자를 향해 낮게 소리를 질렀다. 유리창에 반사된 빛이 빗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 빗물 사이로 네모난 빛이 하나 둘 떠올랐다. 침몰하던 배가 간신히 다시 떠오른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인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삶을 외면했다. 절망에 직면했던 인간들이 당도한 희망 앞에서는 오만한 것처럼. 그들은 황급히 딴청을 피우며 어디론가 사라지려 했다. 자신들을 이끌어준 배를 무시한 채. 마침내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 그 인간들을 녹여버렸다. 검은 어둠이 문어를 뒤덮었다. 그리고 인간들을. 어둠의 신의 언어로 지어진 주문 같았다. 어둠을 품은 유리의 결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럼, 안 입는다.
여자는 낮에 백화점에서 내가 사준, 등이 깊게 파인 검은 슬리브리스를 입었다. 터질듯한 여자의 가슴이 부푼 희망처럼 보였다. 여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짧은 치마 아래로 거뭇거뭇한 음모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난 커튼을 쳤다. 바닥에는 어제 입었던 여자의 팬티가 널브러져 있었다.
파란색 조명이 빨간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어떤 여자를 집중적으로 비추었다. 치마는 너무 짧아 속옷까지 보였다. 이내 빨간색 조명이 배합되어 검은 어둠이 만들어졌다. 암흑 같은 어둠은 빨간색 미니스커트의 여자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여자는 개의치 않아 보였다. 오히려 어둠을 즐기는 듯 싶었다. 주변으로 남자들이 흐느적거리며 다가갔다. 그리고 빨간 미니스커트 여자의 몸 위로 비벼댔다. 빨간 미니스커트 여자는 노예시장에서 노비를 고르는 암플리아투스처럼 남자를 골랐다. 이곳은 카타콤이었고, 저 여자는 코렐리아가 아니었다. 그들은 곧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있던 자리엔 이내 혼란에 도취된 또 다른 여자와 남자들이 들어와 또 다른 몸을 비벼댔다. 나는 여자와 함께 클럽 뒤편의 테이블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자는 내 허벅지 위에 앉아 엉덩이를 비벼대고 있었다. 아래가 휑한 나는 여자의 깊숙한 내면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스테이지의 대형 스크린에서 반라의 여자가 어떤 남자의 바지를 내리고 있었다. 그 앞에 자리잡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온갖 속옷과 콘돔으로 만든 장식을 몸에 두른 채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저 남자 맘에 들어요.
질척거리던 뭔가가 빠졌는지 아래로 시원한 느낌이 불어왔다. 여자는 엉덩이를 살짝 든 후 손으로 나의 성기를 고쳐 잡고는 다시 앉았다. 조금씩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여자가 내게 담배를 건네더니 말했다. 나는 담배를 물고는 소파 뒤로 몸을 젖혔다. 그 때문에 여자가 움찔거렸고, 내 성기는 질 끝에 닿는 느낌이 몰아왔다. 가늠할 수 없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벽이 성기 끝에서 절벽처럼 날아왔다. 더 이상 탁해질 수 없는 공기에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모든 것들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이미 혼탁의 도가니였다. 초라한 내 담배가 할 일은 없어 보였다. 내가 담배 연기를 내뿜자 여자는 또 다시 움찔거렸다. 나는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인 후 여자의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갈 곳 잃은 담배 연기를 여자의 입에 한가득 넣어 주었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연기가 흘러내렸다. 여자는 담배 연기를 후, 불더니 양주를 잔에 따라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양주를 붓고 주저앉고 그것을 마시기 위해 여자가 고개를 들 때마다 음모와 음모가 서로 밀착되어 거칠게 반응했다. 여자가 움직일 때 마다 질은 내 성기를 조여 댔고, 나는 그 마찰로 인해 움찔거렸다. 여자는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더 심하게 몸을 뒤틀었다. 아프고 따가워 긁고 싶었다. 시원한 청량수를 마시고 싶었다. 여자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자신의 입에 담긴 술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난 여자의 뺨을 받쳐주었다. 꺼끌꺼끌한 야주의 텁텁한 맛이 여자의 침액과 범벅이 되어 내 안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여자와 입술을 포갠 채 비벼댔다. 잠시 후 여자는 깎아 놓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과일을 집어 나에게 먹여주었다. 나는 여자를 느끼고 과일을 씹으며 다시 홀을 쳐다보았다.
저기, 스트라이프 정장 입은 남자.
여자가 고갯짓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연신 아래를 비벼댔다. 여자의 입에서는 간간이 신음이 흘러 내렸다. 나는 뜨거운 것이 아래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감각을 느끼며 여자가 가리킨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조금은 어리숙해 보였다. 혼자였고, 배경은 침식당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있지만 그 일행들이 혼돈 속으로 말려들어가 혼자가 되어 버렸는지에 대해서는, 난 관심이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난 젖고 헝클어진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휘어잡고는 뒤로 잡아 당겼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자의 등을 짓눌러 활처럼 휘게 만들었다. 난 허벅지와 하체에 힘을 주며 여자를 향해 힘을 쳐올렸다. 작은 허리가 들썩거리며 출렁였다. 여자의 가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비슷했으리라. 여자의 등은 이미 축축했다. 신음과 땀이 비벼지며 나의 영혼을 더욱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다. 여자의 온 몸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체액은 여자를 축축히 적시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내 성기 뿌리 주변까지 흘러내렸다. 끈적한 땀은 정액찌꺼기와 뭉개지며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괜찮지?
어느 순간 남자가 이쪽을 쳐다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이쪽을 슬쩍 쳐다보는 남자. 여자가 그 남자를 향해 손을 뻗어 손짓했다. 윙크나 키스를 날려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여자의 그 모습에 남자는 당황을 했는지 아예 스테이지 쪽으로 몸을 돌려버렸다. 아마 그의 머릿속엔 온갖 상상력이 총동원되어 나의 성기를 머금고 있는 이 여자를 자신의 창녀로 만들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가 얼굴이 벌게졌거나, 아니면 온몸의 신경이 아래로 집중되어 쾌락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자신만의 창공으로 날아올라버렸거나. 더러운 족속들이여, 저주와 함께 안녕. 나 역시. 아니지. 나는 이미 저주의 은총을 받았으니 더 받을 것도 없겠지. 나는 이미 지옥에 와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저주의 지하창고까지 쫓겨나 처박혀 버릴지도. 여자의 질이 따뜻하고 미세하게, 그리고 충실히 조여 오는 느낌이 강하게 쳐들어왔다. 엄청나게 큰 소음과 음악이 점차 아득하게 소멸해갔다. 그 속에서 미세한 점 같았던 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려왔다. 땀과 정액이 한데 엉켜 찌걱거리는 소음. 아니 음악. 어쩌면 향연. 지옥에서 연주하는 천국의 오케스트라. 내 무릎을 움켜쥔 여자의 양손이 급격히 경직되어 여자의 상체가 테이블 아래로 점점 내려갔다. 나의 고개도 반동을 따라 경직되기 시작했다. 여자의 발 끝에 걸쳐진 힐이 눈에 들어왔다. 발가락을 휘감고 외로이 뻗어있는 끈은 위태로워 보였다. 검은색 실루엣은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내 정액도 조명을 받으면 반짝거릴까. 지옥의 빛 속에서도 찬란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혹은 예전 그때에는? 모든 것은 끝이 났다. 곧 나는 여자의 허리를 양 손으로 꽉 부여잡은 후 내 속에 존재하는 모든 오물들을 여자의 몸 안으로 쏟아내었다. 여자가 부들부들 떨었다. 잠시 후 여자는 나를 향해 등을 돌려 키스를 해왔다.
어때요, 괜찮죠?
맘대로 해.
금방 올게요. 생긴걸 보니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아요.
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자가 라이터를 쥔 후 나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담배연기가 가득찬 내 입에 얼굴을 밀착시키고 강하게 나의 입술을 빨아댔다. 내 심장이 거센 폭풍을 만나 뿌리마저 뽑혀 버린 나무처럼 빨려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여자는 고개를 쳐들어 승리의 봉화처럼 연기를 후, 뿜어냈다. 잠시 후 여자는 내 뺨을 톡톡 두드리더니 금방 올게요, 보고 싶어도 울지 말고 있어요, 라며 장난스럽게 말하더니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병 속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반쯤 들어찬 맥주 위로 둥둥 뜬 담배가 보였다. 가라앉지 못하고 방랑하는 담배꽁초가 떠나지 못하고 부유하는 내 모습 같았다. 심장에 스미는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맥주병 속에서 잠깐 솟아오른 한 줄기 담배 연기는 곧 희미하게 소멸했다. 저만치 걸어가는 여자의 짧은 치마 아래 허벅지 사이로 정액이 흘러내려 번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땀 일지도. 그것도 아니면 뒤섞인 오물들. 잠시 후, 여자와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남자가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자리를 옮기면서도 연신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스테이지에 남은 공허함만 쳐다보았다. 여자가 나에게 윙크를 하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보냈지만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던 어떤 여자에게로 누군가가 다가가 몸을 비볐다. 스크린 속에서는 남녀가 뒤엉켜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스테이지의 열기가 하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환상이 하루살이처럼 날아올랐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 쾌락에 빠진채 검게 물들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침잠하며 몰락했다. 아멘. 씨발.
꿈은 기억은 짓밟고 더욱 선명해졌다. 꿈은 기억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기어이 불러내 내 앞에 세웠다. 나는 꿈에서조차 추억이 될 수 없는 것들에 시달려야 했다. 악몽을 가장한 지옥이었다. 그녀는 시간이 갈수록 내 모든 것이 되어갔다. 나의 일부는 전체주의에 묻혀버렸다. 지하 단칸방에서 벌레처럼 기거하던 나의 가족은 해방되지 못한 난민처럼 평생을 그곳에서 살아내야 했다. 나는 곤궁에 빠진 피난민이었다. 난 닥치는대로, 주어지는대로 돈을 갈구했다. 학과 조교, 근로장학생, 편의점 아르바이트. 불규칙한 생활은 나의 간식이었고, 전진하지 못하는 경제력은 주식이었다. 나는 기어이 독립해 나와 혼자만의 수용소를 건립했다. 나만의 피난은 오히려, 위로였다. 그러나 그 위로가 나에게 밥을 주지는 못했다. 밥은 멀었고, 나는 그 먼 곳을 항상 더듬어 찾아야 했다. 나는 위로의 지하에 파묻힌 인간이었다.
그런 나에게 그녀는 힘이었다. 구원이었고, 희망이었다. 그녀는 나의 학과 사무실로, 편의점으로, PC방으로 찾아와 나를 지탱해 주었다. 나는 지탱할 수 없는 것들을 겨우 버티어 냈다. 무거운 짐을 가벼움의 환상으로 버티는 나날들. 나는, 행복했다. 그녀 없는 하루는 생각할 수 없었다. 그녀가 없다면 차라리 하데스의 개가 되어 삶을 감내하는 편이 나았을 것, 이라고 생각했다. 가족도, 친척도, 친구도, 인간이라는 종種을 증오하며 살아왔던 나는 차츰, 사람이 되어갔다. 그녀를 따라 교회를 나갔으며, 그 곳에서 그녀의 찬란한 노래를 음미했으며, 하늘에 존재한다는 신의 존재와 믿음에도 동화되었다. 그래, 그랬었다. 그녀는 나의 주님이었다. 그녀의 주님은?
나는 학교를 졸업하고, 취직에 성공했던 어느 날. 그녀에게 청혼을 했다.
지독하게 사랑했던 그녀에게서 승호 선배라는 사람을 소개받은 것은 그녀와의 결혼을 결심하고 난 얼마 후, 또 그녀가 부모님의 집에서 나와 혼자 따로 오피스텔에서 자취를 하게 된 뒤의 어느 날이었다.
자기, 나 오늘 팬티 입지 말까?
하늘은 썩은 정액을 뿌려놓은 듯 우중충했다. 비는 내리지 못하고 흩날렸다. 시커먼 새가 전깃줄에 앉았다가 이내 날아가 버렸다. 새의 궤적을 따라 좇아간 내 시선에, 비에 잠긴 도로가 들어왔다. 온갖 오염물을 머금은 물을 떠받치는 도로는 수채통의 하수관 같았다. 멀리서 버스가 달려오더니 다급하게 사람들을 쏟아놓더니 다시 내달렸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은 버스가 토해낸 토사물 같았다. 우산을 든 몇몇 사람들이 바퀴벌레처럼 보였다. 검은 것. 빨간 것.
그 따위로 부르지마.
기분이 좋아 보이는 여자를 향해 낮게 소리를 질렀다. 유리창에 반사된 빛이 빗물을 머금고 있었다. 그 빗물 사이로 네모난 빛이 하나 둘 떠올랐다. 침몰하던 배가 간신히 다시 떠오른 것 같았다. 그 속에서 살려달라고 아우성치던 인간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삶을 외면했다. 절망에 직면했던 인간들이 당도한 희망 앞에서는 오만한 것처럼. 그들은 황급히 딴청을 피우며 어디론가 사라지려 했다. 자신들을 이끌어준 배를 무시한 채. 마침내 거대한 문어가 나타나 그 인간들을 녹여버렸다. 검은 어둠이 문어를 뒤덮었다. 그리고 인간들을. 어둠의 신의 언어로 지어진 주문 같았다. 어둠을 품은 유리의 결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이 끊어질 것 같았다.
그럼, 안 입는다.
여자는 낮에 백화점에서 내가 사준, 등이 깊게 파인 검은 슬리브리스를 입었다. 터질듯한 여자의 가슴이 부푼 희망처럼 보였다. 여자는 콧노래를 흥얼거리고 있었다. 짧은 치마 아래로 거뭇거뭇한 음모가 보이는 것 같았다. 난 커튼을 쳤다. 바닥에는 어제 입었던 여자의 팬티가 널브러져 있었다.
파란색 조명이 빨간색 미니스커트를 입은 어떤 여자를 집중적으로 비추었다. 치마는 너무 짧아 속옷까지 보였다. 이내 빨간색 조명이 배합되어 검은 어둠이 만들어졌다. 암흑 같은 어둠은 빨간색 미니스커트의 여자를 집어삼켰다. 그러나 여자는 개의치 않아 보였다. 오히려 어둠을 즐기는 듯 싶었다. 주변으로 남자들이 흐느적거리며 다가갔다. 그리고 빨간 미니스커트 여자의 몸 위로 비벼댔다. 빨간 미니스커트 여자는 노예시장에서 노비를 고르는 암플리아투스처럼 남자를 골랐다. 이곳은 카타콤이었고, 저 여자는 코렐리아가 아니었다. 그들은 곧 화장실 쪽으로 사라졌다. 그들이 있던 자리엔 이내 혼란에 도취된 또 다른 여자와 남자들이 들어와 또 다른 몸을 비벼댔다. 나는 여자와 함께 클럽 뒤편의 테이블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았다. 여자는 내 허벅지 위에 앉아 엉덩이를 비벼대고 있었다. 아래가 휑한 나는 여자의 깊숙한 내면을 온 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스테이지의 대형 스크린에서 반라의 여자가 어떤 남자의 바지를 내리고 있었다. 그 앞에 자리잡은 크리스마스 트리는 온갖 속옷과 콘돔으로 만든 장식을 몸에 두른 채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저 남자 맘에 들어요.
질척거리던 뭔가가 빠졌는지 아래로 시원한 느낌이 불어왔다. 여자는 엉덩이를 살짝 든 후 손으로 나의 성기를 고쳐 잡고는 다시 앉았다. 조금씩 가쁜 숨을 몰아쉬던 여자가 내게 담배를 건네더니 말했다. 나는 담배를 물고는 소파 뒤로 몸을 젖혔다. 그 때문에 여자가 움찔거렸고, 내 성기는 질 끝에 닿는 느낌이 몰아왔다. 가늠할 수 없고, 내가 다가갈 수 없는 벽이 성기 끝에서 절벽처럼 날아왔다. 더 이상 탁해질 수 없는 공기에 나는 답답함을 느꼈다. 모든 것들이 나를 짓누르는 것 같았다. 이미 혼탁의 도가니였다. 초라한 내 담배가 할 일은 없어 보였다. 내가 담배 연기를 내뿜자 여자는 또 다시 움찔거렸다. 나는 담배를 깊숙이 빨아들인 후 여자의 고개를 뒤로 돌렸다. 그리고 갈 곳 잃은 담배 연기를 여자의 입에 한가득 넣어 주었다. 입술과 입술 사이로 연기가 흘러내렸다. 여자는 담배 연기를 후, 불더니 양주를 잔에 따라 자신의 입에 털어 넣었다. 양주를 붓고 주저앉고 그것을 마시기 위해 여자가 고개를 들 때마다 음모와 음모가 서로 밀착되어 거칠게 반응했다. 여자가 움직일 때 마다 질은 내 성기를 조여 댔고, 나는 그 마찰로 인해 움찔거렸다. 여자는 그런 내 모습이 재미있는지 더 심하게 몸을 뒤틀었다. 아프고 따가워 긁고 싶었다. 시원한 청량수를 마시고 싶었다. 여자가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자신의 입에 담긴 술을 내 입에 넣어주었다. 난 여자의 뺨을 받쳐주었다. 꺼끌꺼끌한 야주의 텁텁한 맛이 여자의 침액과 범벅이 되어 내 안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한참을 그렇게 여자와 입술을 포갠 채 비벼댔다. 잠시 후 여자는 깎아 놓은 지가 언제인지도 모를 정체불명의 과일을 집어 나에게 먹여주었다. 나는 여자를 느끼고 과일을 씹으며 다시 홀을 쳐다보았다.
저기, 스트라이프 정장 입은 남자.
여자가 고갯짓으로 누군가를 가리켰다. 그러면서도 여자는 연신 아래를 비벼댔다. 여자의 입에서는 간간이 신음이 흘러 내렸다. 나는 뜨거운 것이 아래에서 조금씩 올라오는 감각을 느끼며 여자가 가리킨 남자를 쳐다보았다. 남자는 검은 뿔테 안경을 낀, 조금은 어리숙해 보였다. 혼자였고, 배경은 침식당해 보이지 않았다. 일행이 있지만 그 일행들이 혼돈 속으로 말려들어가 혼자가 되어 버렸는지에 대해서는, 난 관심이 없었다. 그는 혼자였다. 난 젖고 헝클어진 여자의 긴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휘어잡고는 뒤로 잡아 당겼다. 그리고 다른 한 손으로는 여자의 등을 짓눌러 활처럼 휘게 만들었다. 난 허벅지와 하체에 힘을 주며 여자를 향해 힘을 쳐올렸다. 작은 허리가 들썩거리며 출렁였다. 여자의 가슴은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 비슷했으리라. 여자의 등은 이미 축축했다. 신음과 땀이 비벼지며 나의 영혼을 더욱 혼란 속으로 밀어넣었다. 여자의 온 몸에서 흘러내리는 땀과 체액은 여자를 축축히 적시는데 만족하지 못하고 내 성기 뿌리 주변까지 흘러내렸다. 끈적한 땀은 정액찌꺼기와 뭉개지며 아래로, 아래로 추락했다.
괜찮지?
어느 순간 남자가 이쪽을 쳐다보더니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잠시 후. 이쪽을 슬쩍 쳐다보는 남자. 여자가 그 남자를 향해 손을 뻗어 손짓했다. 윙크나 키스를 날려주었는지는 모르겠다. 여자의 그 모습에 남자는 당황을 했는지 아예 스테이지 쪽으로 몸을 돌려버렸다. 아마 그의 머릿속엔 온갖 상상력이 총동원되어 나의 성기를 머금고 있는 이 여자를 자신의 창녀로 만들고 있을 터였다. 나는 그가 얼굴이 벌게졌거나, 아니면 온몸의 신경이 아래로 집중되어 쾌락의 늪으로 서서히 빠져들고 있을지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이미 축축하게 젖어 자신만의 창공으로 날아올라버렸거나. 더러운 족속들이여, 저주와 함께 안녕. 나 역시. 아니지. 나는 이미 저주의 은총을 받았으니 더 받을 것도 없겠지. 나는 이미 지옥에 와있으니까. 아니, 어쩌면 저주의 지하창고까지 쫓겨나 처박혀 버릴지도. 여자의 질이 따뜻하고 미세하게, 그리고 충실히 조여 오는 느낌이 강하게 쳐들어왔다. 엄청나게 큰 소음과 음악이 점차 아득하게 소멸해갔다. 그 속에서 미세한 점 같았던 소리가 조금씩 크게 들려왔다. 땀과 정액이 한데 엉켜 찌걱거리는 소음. 아니 음악. 어쩌면 향연. 지옥에서 연주하는 천국의 오케스트라. 내 무릎을 움켜쥔 여자의 양손이 급격히 경직되어 여자의 상체가 테이블 아래로 점점 내려갔다. 나의 고개도 반동을 따라 경직되기 시작했다. 여자의 발 끝에 걸쳐진 힐이 눈에 들어왔다. 발가락을 휘감고 외로이 뻗어있는 끈은 위태로워 보였다. 검은색 실루엣은 조명을 받아 반짝거렸다. 내 정액도 조명을 받으면 반짝거릴까. 지옥의 빛 속에서도 찬란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혹은 예전 그때에는? 모든 것은 끝이 났다. 곧 나는 여자의 허리를 양 손으로 꽉 부여잡은 후 내 속에 존재하는 모든 오물들을 여자의 몸 안으로 쏟아내었다. 여자가 부들부들 떨었다. 잠시 후 여자는 나를 향해 등을 돌려 키스를 해왔다.
어때요, 괜찮죠?
맘대로 해.
금방 올게요. 생긴걸 보니 오래 걸릴 것 같지는 않아요.
난 담배를 입에 물었다. 여자가 라이터를 쥔 후 나에게 불을 붙여 주었다. 그리고 담배연기가 가득찬 내 입에 얼굴을 밀착시키고 강하게 나의 입술을 빨아댔다. 내 심장이 거센 폭풍을 만나 뿌리마저 뽑혀 버린 나무처럼 빨려 올라가는 느낌이었다. 여자는 고개를 쳐들어 승리의 봉화처럼 연기를 후, 뿜어냈다. 잠시 후 여자는 내 뺨을 톡톡 두드리더니 금방 올게요, 보고 싶어도 울지 말고 있어요, 라며 장난스럽게 말하더니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남자를 향해 걸어갔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맥주병 속에 담배를 집어넣었다. 반쯤 들어찬 맥주 위로 둥둥 뜬 담배가 보였다. 가라앉지 못하고 방랑하는 담배꽁초가 떠나지 못하고 부유하는 내 모습 같았다. 심장에 스미는 차가운 바람이 느껴졌다. 맥주병 속에서 잠깐 솟아오른 한 줄기 담배 연기는 곧 희미하게 소멸했다. 저만치 걸어가는 여자의 짧은 치마 아래 허벅지 사이로 정액이 흘러내려 번들거리는 것이 보였다. 어쩌면 땀 일지도. 그것도 아니면 뒤섞인 오물들. 잠시 후, 여자와 스트라이프 정장을 입은 남자가 화장실 쪽으로 걸어갔다. 남자는 자리를 옮기면서도 연신 나를 힐끔거렸다. 나는 스테이지에 남은 공허함만 쳐다보았다. 여자가 나에게 윙크를 하며 손가락으로 브이 자를 만들어 보냈지만 나는 쳐다보지 않았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스테이지에서 춤을 추던 어떤 여자에게로 누군가가 다가가 몸을 비볐다. 스크린 속에서는 남녀가 뒤엉켜 서로의 몸을 탐하고 있었다. 스테이지의 열기가 하얀 연기처럼 피어오르는 환상이 하루살이처럼 날아올랐다. 크리스마스 이브의 밤이 쾌락에 빠진채 검게 물들어, 주님의 은총 안에서 침잠하며 몰락했다. 아멘. 씨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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