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여자 - 52, 허리띠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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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조용하고 아늑한 숲속의 산책길을 걷고 있다. 어디선가 갑자기 털이 수북한 검은 괴물이 나타나 성큼성큼 나를 뒤쫓고, 나는 숲길로 도망친다. 가파른 산길을 기다시피 올라가 뒤를 돌아봤을 때 털괴물은 커다랗고 빨간 입을 벌리고 나를 향해 하얀 침을 杉쨈? 침들은 포탄이 떨어지듯이 내 주위에 떨어지고 나는 그 사이를 피해 달리고 또 달린다.
어느 순간 가파른 산길이 평지로 바뀌고 거기엔 커다란 나무 한그루와 판자집이 서 있다. 판자집으로 숨기 위해 나는 달린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하얀 포탄이 떨어지고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피빛으로 물든다. 누군가 포탄에 죽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자리는 그렇게 빨갛게 물들어간다.
판자집 안으로 몸을 숨겨 그 속에서 나는 떨고 있다. 창문 사이로 비치던 햇볕은 천천히 사리지고 시커먼 그림자로 드리워진다. 주위가 갑자기 고요하고 적막하다. 갑자기 문이 덜컹거리기 시작하고 문이 곧 부서질 듯 흔들거린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악몽..
언제부터인가 잠이 들면 꿈속에는 괴물이 등장했다. 어느때는 커다란 뱀으로, 어느때는 시커먼 털괴물로, 어떤때는 얼굴이 없는 어린아이로 나타나기도 했다. 어린아이는 갑자기 쑥쑥 자라고 빨갛게 변해 나를 쫓아왔다.
이런 꿈을 꿀 때면 이상하게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갈기갈기 찢겨져서 하늘에 뿌려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죽이지 못했고, 대신 나를 파괴했다.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는 채팅사이트 주소를 입력하고 익숙하게 로그인을 하고 채팅방을 둘러보았다.
<편한대화>, <잠못드는 새벽 대화방>. 나는 진부한 대화방들을 뒤로하고 <암캐년 들어와라>라는 방에 들어갔다.
[하얀눈: 안녕하세요]
그렇다. 나의 대화명은 "하얀눈"이었다. 왜 이 대화명을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채팅사이트를 접속한 그 날 밤에 하얀 눈이 펑펑내리고 있어서 이 대화명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화명이라는 생각이 늘 들었다.
[대물남: 어서오세요. 소개 좀 해 주세요]
[하얀눈: 30살 유부녀에요]
나는 유부녀가 아니었다. 난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부모님 집에 내려와 쉬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물론 30살도 아니었다. 아직 서른이 되려면 4년이나 더 필요했다.
몇마디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남자의 말투는 서서히 반말로 바뀌었고 자신을 19살 대학 신입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분위기를 띄우는 듯 자기 물건이 얼마나 큰지 자랑하고 자기가 박아주면 여자들이 모두 질질 싼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커다란 자기 물건의 사진을 보여줬다.
[대물남: 씨팔년.. 팬티벗어봐. 내꺼 보니깐 보지가 흥건하지?]
[하얀눈: ...]
[하얀눈: 직접 벗겨보시는건 어때요? 우리 만나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알고 있다.
기대하지도 않던 나의 당돌한 제안에 남자는 당황해하고 혹시 꽃뱀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아니면 그 사진이 자기것이 아닌것이 들통날까봐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얼마나 나를 비참하게 파괴해 줄 수 있느냐만이 나에게 중요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에 그가 다시 모니터에 나타났다.
[대물남: 어디 살어?]
[하얀눈: 멀진 않아요. 제가 찾아갈께요]
[대물남: 정말?]
[하얀눈: 네.. 정말요]
멀었다. 그가 있다는 곳은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반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가까운 곳은 두려웠다. 부모님이 계신 이 도시에서는 싫었다.
포커게임에서 눈을 보면서 상대를 읽어내듯이 우리는 그렇게 모니터 너머의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남자는 나의 제안이 뻥카인지를 알아내려고 필사적이었다. 나는 모니터 너머로 남자의 불안함을 느꼈고 사내의 반말속에서 낮설음을 느꼈다.
나는 손해 볼것이 없지 않냐며 그 남자를 유혹했다. 진열장속 빨간 불빛아래에서 나를 사달라고 하는 창녀처럼...
그렇게해서 그가 다닌다는 대학앞에서 정장차림으로 빨간 손수건을 핸드백 손잡이에 묶은 채 서 있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는 낮에 수업이 있다고 어쩌면 오늘은 만나기 어렵다고 했지만 남편이 출장중이라 늦게도 괜찮다는 거짓말로 그를 계속 유혹했다.
정장을 택한 것은 나의 생각이었다. 30살답게 보여야 했고, 그 남자가 수업을 마치고 나서 만난다면 오늘 집에 들어오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시계를 봤다. 오후 2시..
화장을 하고 회색 정장을 골라입고 나서 다시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지금 출발한다면 딱 맞게 도착할 거 같았다.
핸드백을 챙겨들고 그 속에 빨간 손수건을 곱게 넣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그 곳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단정하고 순수해보이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가 빛나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오로지 빨간 립스틱을 칠한 입술만이 오늘 일어날 일을 아는 거 같았다.
방문을 열려던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스타킹을 벗었다. 외출 준비를 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골랐던 팬티를 벗어 베게밑에 넣고는 다시 스타킹을 신고 방을 나왔다. 허전함과 동시에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차려입고 어디가냐는 엄마의 말에 갑자기 면접을 보러오란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오늘은 서울에 있는 희정이 집에서 자고 내일 면접을 보고 내려올거라고 말했다.
"우리 딸 면접 잘보고 와~ 파이팅~~~"
엄마의 그 말에 보지에서 한줄기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내 몸 한곳을 만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온몸에 찌릿찌릿한 쾌감이 밀려왔고 현관문을 열고 집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보지에서는 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 허벅지 사이에 비벼져 점성이 더 짙어지고 있었다.
내 나이 12살 때..
사촌 오빠집에 놀러갔다가 오빠한테 강간을 당하고 온 날.. 울고 있던 나를 엄마는 꾸짖었다. 여자가 처신을 어찌 어떻게 했길래 그러냐고.. 넌 조용히 아무말 말라고.. 엄마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너는 입 다물고 잊으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입을 닫고 잊으려고 했고, 그 사촌 오빠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가 술을 먹고 사촌 오빠집에 가서 그 집을 박살내듯 난동을 한번 부린거 빼고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도 어쩌다 나중에야 알게 된거지만... 그랬었다. 그렇게 나의 처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채로 조용히 잊혀져갔다.
약속시간 10분정도 전에 그 대학앞에 도착했다. 고속버스를 타고오는 동안 치마뒤가 젖을까봐 보지에 깔아두었던 빨간 손수건을 핸드백 손잡이에 묶었다. 손수건 한 귀퉁이는 보짓물이 굳어서 얼룩져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학생들은 다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있었고 푸르렀다. 나에게도 저런 학생시절은 있었지만 난 늘 조용했고, 아무말이 없었고, 있는지 없는지 알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저기요.."
고개를 돌려 나를 부르는 그 사람을 봤을 때 나는 모니터 너머로 느껴졌던 불안감과 낮설음의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곳에는 뚱뚱하고 못생긴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19살이라고는 하기엔 어떤 푸르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더 큰.. 짜리몽땅했고 얼굴은 늦게 난 여드름으로 가득했고, 배는 툭 튀어나와 있었다.
정상적인 여자라면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거 같은 못생기고 뚱뚱한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정말 오셨네요..?"
수줍은 듯 신기한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는 오늘 새벽의 당당한 반말 대신에 존댓말로 감탄인지 질문인지 알수없는 뉘앙스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 나 스스로 여기 온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우리 둘을 힐끗쳐다보고 있었다. 왔냐는 말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대는 그에게 가자고 했다. 어디로 가자는지도 모른채로 그는 따라왔다. 나는 사람이 많은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멀리보이는 모텔 간판을 향해서 우리 둘은 붙은듯 떨어진듯 아무말없이 걸어가고 있을 때 내 뒤를 조용히 따라걷던 그가 말했다.
"어제 그 사진... 제 사진이 아니에요"
"알아요..."
그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평생 말한번 못 걸어봤을 법한 이쁘게 생긴 여자가 제 발로 찾아와서 같이 모텔로 걸어가고 있는 이 일련의 일들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그 남자는 내가 향하는 곳이 모텔인지 아닌지도 아직도 모를거 같았다.
나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도 나처럼 그렇게 지금까지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여자 손목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그에게 잊지못할 추억 하나쯤 만들어주는 것도 괜찮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텔 뒷문으로 들어가자 그 남자가 다가와 카운터 앞에 섰다. 그러고는 지갑도 아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지폐를 꺼내들고는 카운터를 보던 아주머니한테 물었다.
"얼마에요?"
"자고 갈거야?"
"자고 가는게... 음... 아뇨.."
"그럼 3만원"
아주머니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꼬깃꼬깃 접혔던 만원짜리 3장을 펴서 카운터 앞으로 내밀어 열쇠를 받아들고는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떠난 카운터 앞에서 난 지갑을 열어 2만원을 꺼내서 아주머니한테 주면서 말했다.
"자고 갈거에요"
아주머니는 스치듯 내 얼굴을 ?어보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어울릴거 같지 않은 두 사람이라 생각했을게 분명했다. 어쩌면 돈을 주고 산 창녀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돈을 주고 산 창녀쯤으로 생각해 준다면 괜찮을거 같았다. 그 아주머니에게 난 공짜에다가 2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제 발로 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엘레베이터 안에서도 우리 둘은 아무말이 없었다. 모텔 문을 열던 그 남자의 손이 떨리는게 보였지만 나는 모른척 했다. 모텔문이 닫히고서도 우리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왜 이래요?"
그가 갑자기 물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런건 묻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저번처럼 반말로 해주세요"
"네... 알았어"
그의 말은 참 묘했다. 반말인지 존대인지 알 수 없는 그 말.
"이름은?"
"정숙이에요"
물론 내 이름은 정숙이가 아니다. 어느 때는 진희였다가 어느 때는 민아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엄마 이름이 튀어나와버렸다.
"씻을래?"
"아뇨. 씻고 나왔어요"
그보다 그에게 범벅이 된 내 보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이 그에게 큰 용기가 될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벗어봐"
그는 모텔방 구석에 놓여진 소파에 앉았고 나는 그 앞에 서서 천천히 옷을 벗었다.
자켓과 블라우스를 벗고 하얀색 레이스의 브라까지 벗자 가슴이 덜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를 쳐다봤다. 그는 침을 삼키면서 다 벗으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벌써 헐떡거림이 느껴졌다.
치마를 벗자 그가 탄성을 질렀다.
"정말 암캐년들이 있다고 하던니만..."
커피색 스타킹 밑에 존재해야 할 팬티는 없고 거뭇거뭇 보지털이 보이자 그가 그렇게 말했다. 다 하지 않은 그의 말 뒤에는 그게 나라고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다 벗어.. 씨팔년"
그의 "씨팔년"이란 욕은 어색했지만 어쨌든 그는 채팅속에서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사내로 다시 나타났다. 스타킹 앞은 흘러내린 보짓물로 다른 부위보다 찐하게 물들어 있었고 스타킹을 벗을 때 몇가닥 털이 같이 뽑혀졌다. 내 옆에는 벗어놓은 옷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그 위에 스타킹을 올려놓았다.
어느 순간 가파른 산길이 평지로 바뀌고 거기엔 커다란 나무 한그루와 판자집이 서 있다. 판자집으로 숨기 위해 나는 달린다. 하늘에서는 여전히 하얀 포탄이 떨어지고 포탄이 떨어진 자리에는 피빛으로 물든다. 누군가 포탄에 죽은 것도 아니었지만 그 자리는 그렇게 빨갛게 물들어간다.
판자집 안으로 몸을 숨겨 그 속에서 나는 떨고 있다. 창문 사이로 비치던 햇볕은 천천히 사리지고 시커먼 그림자로 드리워진다. 주위가 갑자기 고요하고 적막하다. 갑자기 문이 덜컹거리기 시작하고 문이 곧 부서질 듯 흔들거린다.]
비명을 지르며 잠에서 깼다. 잊을만 하면 나타나는 악몽..
언제부터인가 잠이 들면 꿈속에는 괴물이 등장했다. 어느때는 커다란 뱀으로, 어느때는 시커먼 털괴물로, 어떤때는 얼굴이 없는 어린아이로 나타나기도 했다. 어린아이는 갑자기 쑥쑥 자라고 빨갛게 변해 나를 쫓아왔다.
이런 꿈을 꿀 때면 이상하게 나를 죽여버리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갈기갈기 찢겨져서 하늘에 뿌려져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나를 죽이지 못했고, 대신 나를 파괴했다.
컴퓨터를 켰다.
그리고는 채팅사이트 주소를 입력하고 익숙하게 로그인을 하고 채팅방을 둘러보았다.
<편한대화>, <잠못드는 새벽 대화방>. 나는 진부한 대화방들을 뒤로하고 <암캐년 들어와라>라는 방에 들어갔다.
[하얀눈: 안녕하세요]
그렇다. 나의 대화명은 "하얀눈"이었다. 왜 이 대화명을 사용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처음 채팅사이트를 접속한 그 날 밤에 하얀 눈이 펑펑내리고 있어서 이 대화명을 만들었는지는 모르지만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 대화명이라는 생각이 늘 들었다.
[대물남: 어서오세요. 소개 좀 해 주세요]
[하얀눈: 30살 유부녀에요]
나는 유부녀가 아니었다. 난 직장을 그만두고 고향 부모님 집에 내려와 쉬면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물론 30살도 아니었다. 아직 서른이 되려면 4년이나 더 필요했다.
몇마디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남자의 말투는 서서히 반말로 바뀌었고 자신을 19살 대학 신입생이라고 소개했다. 그리고는 분위기를 띄우는 듯 자기 물건이 얼마나 큰지 자랑하고 자기가 박아주면 여자들이 모두 질질 싼다고 말했다. 그리고는 커다란 자기 물건의 사진을 보여줬다.
[대물남: 씨팔년.. 팬티벗어봐. 내꺼 보니깐 보지가 흥건하지?]
[하얀눈: ...]
[하얀눈: 직접 벗겨보시는건 어때요? 우리 만나요]
한동안 정적이 흘렀다. 알고 있다.
기대하지도 않던 나의 당돌한 제안에 남자는 당황해하고 혹시 꽃뱀이 아닐까 걱정하고 있다는 걸.. 아니면 그 사진이 자기것이 아닌것이 들통날까봐 당황하고 있다는 것을.. 사이즈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보다 얼마나 나를 비참하게 파괴해 줄 수 있느냐만이 나에게 중요했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에 그가 다시 모니터에 나타났다.
[대물남: 어디 살어?]
[하얀눈: 멀진 않아요. 제가 찾아갈께요]
[대물남: 정말?]
[하얀눈: 네.. 정말요]
멀었다. 그가 있다는 곳은 고속버스를 타고 1시간 반정도 떨어진 곳이었다. 가까운 곳은 두려웠다. 부모님이 계신 이 도시에서는 싫었다.
포커게임에서 눈을 보면서 상대를 읽어내듯이 우리는 그렇게 모니터 너머의 서로를 탐색하고 있었다. 남자는 나의 제안이 뻥카인지를 알아내려고 필사적이었다. 나는 모니터 너머로 남자의 불안함을 느꼈고 사내의 반말속에서 낮설음을 느꼈다.
나는 손해 볼것이 없지 않냐며 그 남자를 유혹했다. 진열장속 빨간 불빛아래에서 나를 사달라고 하는 창녀처럼...
그렇게해서 그가 다닌다는 대학앞에서 정장차림으로 빨간 손수건을 핸드백 손잡이에 묶은 채 서 있겠다는 약속을 했다. 그는 낮에 수업이 있다고 어쩌면 오늘은 만나기 어렵다고 했지만 남편이 출장중이라 늦게도 괜찮다는 거짓말로 그를 계속 유혹했다.
정장을 택한 것은 나의 생각이었다. 30살답게 보여야 했고, 그 남자가 수업을 마치고 나서 만난다면 오늘 집에 들어오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샤워를 하고 나와서 시계를 봤다. 오후 2시..
화장을 하고 회색 정장을 골라입고 나서 다시 시계를 봤다. 오후 3시.. 지금 출발한다면 딱 맞게 도착할 거 같았다.
핸드백을 챙겨들고 그 속에 빨간 손수건을 곱게 넣었다. 그리고 거울 앞에 섰다.
그 곳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단정하고 순수해보이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찰랑거리는 단발머리에 하얀 피부가 빛나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오로지 빨간 립스틱을 칠한 입술만이 오늘 일어날 일을 아는 거 같았다.
방문을 열려던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스타킹을 벗었다. 외출 준비를 할 때 가장 많은 시간을 들여 골랐던 팬티를 벗어 베게밑에 넣고는 다시 스타킹을 신고 방을 나왔다. 허전함과 동시에 자유로움이 느껴졌다.
그렇게 차려입고 어디가냐는 엄마의 말에 갑자기 면접을 보러오란다고 둘러댔다. 그리고 오늘은 서울에 있는 희정이 집에서 자고 내일 면접을 보고 내려올거라고 말했다.
"우리 딸 면접 잘보고 와~ 파이팅~~~"
엄마의 그 말에 보지에서 한줄기 물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어느 내 몸 한곳을 만지지 않았지만 벌써부터 온몸에 찌릿찌릿한 쾌감이 밀려왔고 현관문을 열고 집을 떠나는 그 순간부터 보지에서는 물은 멈추지 않고 흘러내려 허벅지 사이에 비벼져 점성이 더 짙어지고 있었다.
내 나이 12살 때..
사촌 오빠집에 놀러갔다가 오빠한테 강간을 당하고 온 날.. 울고 있던 나를 엄마는 꾸짖었다. 여자가 처신을 어찌 어떻게 했길래 그러냐고.. 넌 조용히 아무말 말라고.. 엄마가 알아서 처리할테니 너는 입 다물고 잊으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입을 닫고 잊으려고 했고, 그 사촌 오빠에게는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빠가 술을 먹고 사촌 오빠집에 가서 그 집을 박살내듯 난동을 한번 부린거 빼고는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사실도 어쩌다 나중에야 알게 된거지만... 그랬었다. 그렇게 나의 처녀는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다문채로 조용히 잊혀져갔다.
약속시간 10분정도 전에 그 대학앞에 도착했다. 고속버스를 타고오는 동안 치마뒤가 젖을까봐 보지에 깔아두었던 빨간 손수건을 핸드백 손잡이에 묶었다. 손수건 한 귀퉁이는 보짓물이 굳어서 얼룩져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학생들은 다들 뭐가 그리 즐거운지 웃고있었고 푸르렀다. 나에게도 저런 학생시절은 있었지만 난 늘 조용했고, 아무말이 없었고, 있는지 없는지 알수 없는 그런 존재였다.
"저기요.."
고개를 돌려 나를 부르는 그 사람을 봤을 때 나는 모니터 너머로 느껴졌던 불안감과 낮설음의 이유를 바로 알 수 있었다. 그 곳에는 뚱뚱하고 못생긴 어떤 남자가 서 있었다. 19살이라고는 하기엔 어떤 푸르름도 찾아볼 수 없었다. 키는 나보다 조금 더 큰.. 짜리몽땅했고 얼굴은 늦게 난 여드름으로 가득했고, 배는 툭 튀어나와 있었다.
정상적인 여자라면 어느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거 같은 못생기고 뚱뚱한 남자가 거기 서 있었다.
"정말 오셨네요..?"
수줍은 듯 신기한 듯..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그는 오늘 새벽의 당당한 반말 대신에 존댓말로 감탄인지 질문인지 알수없는 뉘앙스로 나에게 말을 걸었다.
"네.."
나는 대답했다. 그렇다. 나 스스로 여기 온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듯한 우리 둘을 힐끗쳐다보고 있었다. 왔냐는 말 다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물대는 그에게 가자고 했다. 어디로 가자는지도 모른채로 그는 따라왔다. 나는 사람이 많은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멀리보이는 모텔 간판을 향해서 우리 둘은 붙은듯 떨어진듯 아무말없이 걸어가고 있을 때 내 뒤를 조용히 따라걷던 그가 말했다.
"어제 그 사진... 제 사진이 아니에요"
"알아요..."
그 남자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평생 말한번 못 걸어봤을 법한 이쁘게 생긴 여자가 제 발로 찾아와서 같이 모텔로 걸어가고 있는 이 일련의 일들이 믿어지지 않는 눈치였다. 아니.. 그 남자는 내가 향하는 곳이 모텔인지 아닌지도 아직도 모를거 같았다.
나는 그에게서 왠지 모를 동질감을 느꼈다. 그도 나처럼 그렇게 지금까지 있는 듯 없는 듯한 존재였을 것이다. 어쩌면 아직 여자 손목 한번 제대로 잡아보지 못했을 것이고 그런 그에게 잊지못할 추억 하나쯤 만들어주는 것도 괜찮을거란 생각이 들었다.
모텔 뒷문으로 들어가자 그 남자가 다가와 카운터 앞에 섰다. 그러고는 지갑도 아닌 주머니에서 꼬깃꼬깃 접어둔 지폐를 꺼내들고는 카운터를 보던 아주머니한테 물었다.
"얼마에요?"
"자고 갈거야?"
"자고 가는게... 음... 아뇨.."
"그럼 3만원"
아주머니는 건조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꼬깃꼬깃 접혔던 만원짜리 3장을 펴서 카운터 앞으로 내밀어 열쇠를 받아들고는 엘레베이터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떠난 카운터 앞에서 난 지갑을 열어 2만원을 꺼내서 아주머니한테 주면서 말했다.
"자고 갈거에요"
아주머니는 스치듯 내 얼굴을 ?어보면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전혀 어울릴거 같지 않은 두 사람이라 생각했을게 분명했다. 어쩌면 돈을 주고 산 창녀쯤으로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돈을 주고 산 창녀쯤으로 생각해 준다면 괜찮을거 같았다. 그 아주머니에게 난 공짜에다가 2시간이나 되는 거리를 제 발로 왔다고 말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말하지 않았다.
엘레베이터 안에서도 우리 둘은 아무말이 없었다. 모텔 문을 열던 그 남자의 손이 떨리는게 보였지만 나는 모른척 했다. 모텔문이 닫히고서도 우리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왜 이래요?"
그가 갑자기 물었다. 내가 왜 이런 짓을 하는지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그런건 묻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저번처럼 반말로 해주세요"
"네... 알았어"
그의 말은 참 묘했다. 반말인지 존대인지 알 수 없는 그 말.
"이름은?"
"정숙이에요"
물론 내 이름은 정숙이가 아니다. 어느 때는 진희였다가 어느 때는 민아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늘은 갑자기 엄마 이름이 튀어나와버렸다.
"씻을래?"
"아뇨. 씻고 나왔어요"
그보다 그에게 범벅이 된 내 보지를 보여주고 싶었다. 그런 내 모습이 그에게 큰 용기가 될거란 생각이 문득 들었다.
"벗어봐"
그는 모텔방 구석에 놓여진 소파에 앉았고 나는 그 앞에 서서 천천히 옷을 벗었다.
자켓과 블라우스를 벗고 하얀색 레이스의 브라까지 벗자 가슴이 덜렁거리며 나타났다. 그를 쳐다봤다. 그는 침을 삼키면서 다 벗으라고 말했다. 그의 목소리에 벌써 헐떡거림이 느껴졌다.
치마를 벗자 그가 탄성을 질렀다.
"정말 암캐년들이 있다고 하던니만..."
커피색 스타킹 밑에 존재해야 할 팬티는 없고 거뭇거뭇 보지털이 보이자 그가 그렇게 말했다. 다 하지 않은 그의 말 뒤에는 그게 나라고 말하는 걸 알 수 있었다.
"다 벗어.. 씨팔년"
그의 "씨팔년"이란 욕은 어색했지만 어쨌든 그는 채팅속에서처럼 자신감이 넘치는 사내로 다시 나타났다. 스타킹 앞은 흘러내린 보짓물로 다른 부위보다 찐하게 물들어 있었고 스타킹을 벗을 때 몇가닥 털이 같이 뽑혀졌다. 내 옆에는 벗어놓은 옷이 수북히 쌓여있었고 그 위에 스타킹을 올려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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