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여자 - 4, 독서실 - 상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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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하고 말없는 나에게도 친구가 한 명 있다. 그 친구의 이름은 희정이다.

나와 희정이는 고등학교 2학년부터 3학년까지 줄곧 같은 반이었다.

말없는 나에게 먼저 말을 붙여주고 대답도 잘하지 않는 나를 보면서도 왜 그러냐고 따져 묻지도 않았다. 나는 "응", "아니" 이 두가지 대답으로만으로도 희정이와 한 시간 넘게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희정이는 끊임없이 이야기했고 나는 대부분 말없이 듣기만 했다. 그런 나를 포기할만도 했지만 희정이는 끝까지 나에게 말을 걸었다.

말이 많다고 입이 가벼운 것은 아니었다. 대학 2학년이 끝나갈 즈음에 나는 내 비밀들을 희정이에게 말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다른 사람을 통해 내가 희정이에게 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그리고 오지랍 넓게 이건 좋고 저건 나쁘다니 안된다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희정이는 있는 그래도 나를 이해하려고 했다.

내가 SM을 한다고 이야기를 했을때도 그녀는 이렇게 되물었다.


"네가 때리는거야? 아니면 맞는거?"
"맞는거..."


물론 SM이 때리고 맞는 게 전부는 아니겠지만 희정이는 자신이 아는 범위에서 그렇게 물었고 내가 맞는거라고 했을 때 차라리 내가 때리는거라면 자기 맘이 편할거라고 말했다. SM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어떤 평가도 하지 않는 대신에 내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만 했다.

희정이는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다. 사실은 먼저 글을 써보라고 한 것도 희정이였다. 처음에 그녀의 이름이 등장하는 곳에 "희정"이 아닌 다른 가명을 썼지만 희정이는 그냥 본명을 써도 된다고 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면서 나는 공부에 집중했다.

공부를 잘 해서 좋은 대학을 가고 나중에 성공해야지 하는 생각보다는 그냥 집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그 때 내가 집을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가는 것 뿐이었다. 다른 지방대로 간다고 하면 그냥 집 근처에 있는 대학에 가라고 하실게 분명했기 때문이다.


나는 희정이를 따라 주말이면 독서실에 다녔다. 희정이가 다니는 독서실은 집에서 버스를 타고 몇 정거장이나 가야하는 거리였지만 나는 주말이면 꼬박꼬박 가방을 챙겨들고 희정이에게 갔다. 독서실은 중앙에 길다란 복도가 나 있었고 양 옆으로 여러 방들이 나눠져있었다. 방에는 6-8개의 자리가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는 그런 곳이었다. 각 자리는 키보다 높은 칸막이와 문이 달려있었다.


독서실 입구의 카운터에 가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그는 평소에는 카운터를 비워두고 복도 오른쪽 맨 앞방의 첫번째 열람실에서 공부를 했지만, 가끔 카운터를 보기도 하고 휴게실이나 화장실 청소를 하기도 했다.

나중에 알게 된거지만 그는 28살이며 대학을 졸업하고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었으며, 독서실 주인의 아들이었다. 그는 독서실이 있는 건물의 맨 윗층에 부모님과 함께 살고 있었다.



4월의 어느 일요일...

그 날도 희정이와 독서실에 갔다. 희정이는 한달치 독서실비를 미리 다 내고 다녔지만, 주말에만 가는 나는 갈 때마다 독서실비를 따로 내야했다.

그 날은 카운터가 비어었었다. 나는 그가 있는 자리로 가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자리에 아무도 없는 것 같았지만 나는 살짝 문을 열어서 안을 확인을 했다. 책상위에는 책들이 몇 개 세워져 놓여있었고 책상 중앙에 노트북이 하나 놓여있었다. 그리고 노트북 화면에는 음란한 말들로 가득찬 소설이 띄워져 있었다.



"왜?"

그가 갑자기 내 뒤에 나타나 물었다.

나는 뭔가 몰래 훔쳐보다가 들킨 아이처럼 화들짝 놀라며 독서실비를 내려고 왔다고 말하고는 그에게 돈을 주고 도망치 듯 나왔다.

자리에 돌아와 앉아서 소설속의 그 장면을 떠 올렸다. 얼핏 본 것이지만 그 소설은 뜨겁게 남녀가 사랑을 나누는 이야기가 아니었다. 내가 본 것은 여자가 발가벗긴 채로 엉덩이를 맞으며 신음하는 그런 장면이었다.

얼마지나지 않아 그가 내 자리로 찾아와 나를 불러냈다.

"봤어?"
"뭘요?"
"아까 내 자리에서.."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못 봤으면 됐어."

그렇게 말하고는 그는 가 버렸다.




집에 돌아와 다시 소설속의 장면을 떠 올렸다.

그 여자 대신에 그런 모습의 나를 상상해봤지만 어떤 느낌인지 알 수가 없었다. 어릴적 아빠에게 한 번 회초리를 맞은 적은 있지만, 오래전 일이라 그 느낌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 이후로는 누구에게 맞아본 적이 없었다.

어떤 느낌일까 궁금해 손바닥으로 내 엉덩이를 때려보았다. 약간 따끔할 뿐 소설에서처럼 보짓물을 질질 흘린다거나 하진 않았다. 손바닥으로 때려서 그런가 싶어 자를 꺼내 때려보기도 했지만 마찬가지였다. 별다른 느낌이 없었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맞는다면 어떤 느낌일까 생각해보았다.

남자의 정액을 받아내는게 시궁창에 쳐박아 나를 더럽히는 것이라면, 맞는다는 것은 왠지 나를 벌해 그 더러움을 씻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다음 주에 독서실에서 다시 그를 만났다.

그는 나를 알아보고는 애써 무시하려는 듯 독서실비를 받고는 내 눈길을 피했다. 다른 사람에게 맞으면 어떤 느낌일까라는 호기심과 나를 무시하는 듯한 그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에 그에게 물었다.


"그런거 보면 재미있어요?"

그는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뭘?"
"..."

나는 뭐라고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다 안다는 듯 살짝 웃었다. 그는 내 기대와는 전혀 다른 대답을 했다.

"재미있어야 할텐데.."


그리고는 그는 나를 독서실 근처의 있는 조그마한 공원으로 데려갔다.



그의 어릴적 꿈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고 했다. 대학은 자신의 꿈과 전혀 상관없는 경영학부로 가게되었고 작년에 이미 회계사 시험에 한번 떨어졌다고 했다. 지금 하고있는 회계사 시험 공부에 큰 흥미를 못 느끼고 있다고 했다. 그냥 배운게 그것뿐이라 하는거고 공부하기가 지겨울 때 취미삼아 쓰는 소설같은거라고 말했다.

그의 상황은 이해가 되었지만, 한가지 이해가 안 되는 것이 있었다.


"그런데 왜 그런 소설을 써요?"

그는 나에게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듯 대답을 하지 않았고, 대답 대신에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쓰신 소설 보여주시면요."

희정이는 가끔 나의 매력은 똘끼라고 한다. 그 날 그렇게 나는 그에게 똘끼를 부렸다.





그에게서 메모리 스틱을 하나 받았다.

그의 소설(이라고 쓰고 야설이라고 읽는다.)은 절대 문학적이지 않았다. 어린 내가 보기에는 작가가 되기에 소질이 없어보였다. 하지만, 남녀 성기에 대한 적나라한 표현들과 끈적한 이야기는 나를 흥분시키에 충분했다. 메모리 스틱안에는 2개의 소설이 있었는데 다른 이야기였지만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있었다.


"체벌"



또 한주가 지났고 나는 그에게 메모리 스틱을 돌려줬다.

그는 자기 소설에 대한 평가를 은근슬쩍 물어봤는데 나는 재미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는 호기심에 궁금한 것을 물었다.


"때려본 적 있어요?"
"군대에서.."
"그런거 말고 여자요."
"아니.."

그가 반격하듯 물었다.

"그런건 왜 물어?"
"그런 소설을 쓰시길래 해보신 줄 알았죠."
"그냥 상상이지.."
"변태같애요"

나의 카운트펀치였다. 그는 내 펀치에 정신이 나간 듯 웃었다.

"해보고 싶어요?"
"..."

그는 대답을 하지 않았지만 나는 이미 소설에서 그의 욕망을 읽었다.

"때려 보실래요?"
"...누굴?"
"저요..."

나는 정신을 잃고 코너에 몰린 그를 KO 시켰다.



내가 가장 잘하는 것이 가랭이 벌리는 것과 거짓말이라면 내가 가장 못하는 것은 수학이다.

나는 수학점수를 올려야 된다는 어줍짢은 이유을 붙였고 우리는 몇가지 합의를 했다. 수학에 한해서 틀린 점수만큼 맞는다는 것과 회초리를 쓴다는 것, 그리고 옷은 벗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는 5월 중간고사 성적표를 받아들고 일요일에 그에게 갔다. 나는 42대를 맞아야했다.

내가 성적표를 들고 나타나자 그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우리에게는 2가지 어려움이 있었다. 나에게는 희정이 눈을 피해야 한다는 것이었고 그에게는 마땅한 장소를 구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수요일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그의 집은 수요일 저녁에 부모님이 예배를 가서 빈다고 했고 나는 야간 자율학습을 빼먹기로 했다.




그와 만나기로 한 전날밤에 꿈을 꿨다.

[수학점수를 100점을 받고 나는 신나서 엄마한테 자랑을 한다. 엄마는 내 성적표를 보더니 100점이니깐 100대를 맞아야겠다며 내 종아리를 올린다. 엄마의 손가락이 갑자기 마녀처럼 길어지더니 그게 회초리가 되어 나를 때린다. 엄마는 종아리를 때리면서도 웃었고 "너같은 더러운 년이 100점 맞으면 뭐해!"라며 야단을 친다.

엄마는 엎드려 울고 있는 나의 팬티를 벗기고는 내 보지에서 흘러내린 물을 보면서 웃어댄다.]





선생님께 아프다는 핑계를 대고 수업을 마치고는 그에게로 갔다.

그는 상기된 표정으로 카운터에 앉아있었고 나보고 잠시 빈자리에 앉아서 공부하고 있으라고 했다. 아마도 아직 그의 부모님이 수요예배에 가지 않은 듯 했다.

나는 책을 폈지만 두근거리는 마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뭔가 알 수 없는 두려움과 긴장감이 나를 자극했고 내 보지는 촉촉히 젖어갔다.

30분 정도가 지나서 그가 내 자리로 왔고 우리는 같이 4층에 있는 그의 집으로 올라갔다.




그의 방에서는 퀴퀴한 담배냄새가 났다. 옷장 하나, 책상 하나 그리고 침대 하나뿐인 단촐한 방이었다.

내가 방을 두리번거리며 서 있을 때 그는 침대 메트리스를 들고 그 안에서 뭔가를 꺼내들었다. 그것은 잘 다듬어진 회초리였다. 그의 말로는 나와 약속을 하고 난 후, 산에 가서 직접 잘라 만든 등나무 케인이라고 했다. 케인.. 그의 소설에서 본 단어였다.

새끼 손가락 굵기정도에 약 1미터정도 되어보이는 회초리였다.


"어디 맞을래?"
"엉덩이...요"
"그럼 엎드려"


나는 책상 모서리를 잡고 엎드렸다.


묘한 굴욕감이 느껴졌다. 그것은 남자앞에서 가랭이를 벌리거나 엎드려 엉덩이를 치켜들 때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하지만 흥분되는 것은 똑같았다. 내 심장이 조여오고 있었다. 자연스레 엉덩이에 힘이 들어가고 두 다리가 모아졌다.



그가 긴 심호흡을 하고 케인을 휘둘렀다.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엉덩이가 찌릿하게 아려왔다. 그는 강도가 적당한지 나에게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댓수가 많아질수록 나는 아까 괜찮다고 한 것을 후회했다. 10대 정도를 맞았을 때 나는 그에게 "잠깐만요"라고 소리치고 엉덩이를 문질러야했다. 고통이 가해진 그 자리에 또 다른 고통이 가해져 고통은 2배가 되어 내 감각속으로 전해졌다.

찌릿하게 전해오는 통증과 마찰의 열기로 내 이마에는 땀이 나기 시작했다.

20대 정도를 맞았을 때 나는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케인을 내려놓았다. 그런 그에게 계속 해 달라고 부탁했다.



12살 이후에 2번째 남자를 만난 날을 제외하고는 울어 본 적이 없었다. 그 때의 울음이 상실에 대한 절망의 울음이었다면 지금의 울음은 그 동안 내 속에 가두어 놓았던 응어리가 터져나오는 것 같은 해방의 울음이었다. 엉덩이에 하나씩 아픔이 더해질 때마다 내 마음은 점점 가벼워지고 있었다.

얼마나 맞았는지 얼마나 울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는 때리기를 멈췄고 울고 있는 나를 꼭 안아주었다. 한참을 그에게 안겨서 속시원하게 펑펑 울었다.




버스를 타고 오면서 나는 의자사이에 손을 넣어 화끈거리는 내 엉덩이를 만져보았다. 도돌도돌 느껴지는 케인자국이 왠지 싫지 않았다. 집에 와서 빨갛게 줄이 그어진 내 엉덩이를 보고 예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나는 고통과 친해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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