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소개서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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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이 되고 거의 1 년여 만에 부모님과 아침식사를 같이 했다. 작년 수능을 망친 이후에는 거의 바로 재수를 시작해서 아침식사 한 번 제대로 하지 못했다. 뭔가 거북한 느낌을 떨쳐낼 수 없었지만, 아무렇지 않은 듯 웃으며 지난 수능시험에 대한 얘기를 했다.
사실 난 고 3때 친 수능시험도 꽤 상위권의 성적을 받았다. 부모님은 이만하면 웬만한 대학은 다 갈 수 있다고 하셨고 담임선생님도 재수를 만류하셨지만, 난 평소보다 떨어진 성적에 분해 재수를 선택했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들었다. 그러니 아침식사 분위기는 화목할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어제의 충격은 조금 잊고 즐겁게 식사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뤘기에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주말 저녁에 민아가 온대네요.”
“언니가?? 웬일로??”
“너 시험 잘 봤다니까 축배라도 같이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온대.”
“뭐야 거의 1년 동안 얼굴도 제대로 안 비춰놓고서는.”
“언니가 워낙 바빠야지.. 내일도 겨우겨우 시간 맞춰서 오는 거래.”
“나 시험 망쳤으면 또 1년은 못봤겠네!”
“얘는... 언니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잖아~”
“개뿔!”
말은 틱틱대기는 했지만 나는 언니를 굉장히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라는 존재는 항상 내게 있어서는 롤모델과 같았다. 나와는 다르게, 또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언니는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감정에 충실했고, 무엇이든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볼 때까지 몰두하는 성격이었다. 당시 나이로 26밖에 되지 않았지만 억대에 근접하는 연봉을 받는 프리랜서 통역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직선적이고 화끈한 성격 덕분이었다.
언니는 항상 내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라고 했다. 나는 그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상투적인 말이, 어제 그런 사건(?)을 겪은 이후에 곱씹어보니 정말 크게 와 닿았다. 어쨌든 언니는 내게 있어서 정말 멋진 사람이었고, 부모님 다음으로 올려다보는 사람이었다. “진짜 나”를 찾는 긴 여정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언니와의 만남은 또 다른 동기부여를 가져다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요일 아침이었고 부모님은 출근을 하셨기에 나는 집에 홀로 남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재수학원에 가서 점수대에 맞는 대학진학을 위해 상담을 받아야 했지만, 가채점 결과가 워낙 좋아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냥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
오랜만에 너무나도 편한 마음이었다.
지난 1년, 아니 2년간 매일매일 맘 졸이며 살아왔다. 불투명한 미래, 부모님의 믿음, 주변 사람들의 관심 등등 세상 그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 2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없다. 이제는 그런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지낼 수 있다. 겨우 그저께만 해도 나는 인생의 불공평함을 불평하며 신을 탓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6일간 세상을 짓고 7일째 안식을 취하던 신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텅 빈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공부와 스트레스에 치여 우리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까먹을 지경이었다.
나는 집안 곳곳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침 설거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주방부터, 없는 먼지까지 찾아내어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기분이 상쾌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안방을 들어가려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안방 문지방을 넘자마자, 묘한 흥분감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침대에 앉아 그 기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눈을 감았다.
소리로만 들었던 어젯밤 부모님의 광란의 섹스를 상상해봤다.
죄를 짓는 것 같았지만, 그 생각 역시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랫도리가 축축해짐을 느꼈다.
나는 본능에 따라 손을 내 보지위로 옮겨갔다.
축축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놀라 손을 떼었다가, 다시 천천히 보지 위를 어루만졌다.
“하응...”
사실 난 자위라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았다. 그저 친구들이 이러이러한 게 있다더라 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고, 왠지 거부감이 들었기에 시도해본 적도 없다.
나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다 벗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자위를 배워본 적도, 그렇다고 자위 동영상 같은 것들을 본 적도 없다. 왠지 자위를 제대로 하려면 옷을 다 벗어야 될 것 같아서 벗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입고 벗어본 옷가지이지만, 다른 때와는 다르게 엄청난 흥분이 내 몸을 감쌌다. 그저 옷을 벗기만 했을 뿐인데, 사타구니가 뜨거워지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응...”
나는 섹스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마치 첫날밤을 가지는 새색시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옷을 다 벗고 완전히 나체인 채로 전신거울 앞에 섰다.
항상 헐렁한 티셔츠와 무릎 늘어난 트레이닝 바지만 입고 다녔고, 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내 몸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했다.
조금 튀어나온 뱃살과 옆으로 축 쳐진 옆구리살, 뚱뚱한지 통통한지 기준이 애매모호한 다리, 지방인지 유방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볼륨감 있는 가슴, 볼록 튀어나온 골반라인까지...
2년간 운동은커녕 2시간 이상 걸어본 기억도 없는 것 치고는 꽤 괜찮았지만, 아쉬웠다. 내 몸이 너무 아쉬웠다. 아직 첫 경험도 가져보지 못한 여자의 몸이 이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이 화가나기도 했다.
첫경험.. 첫경험...?
갑자기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첫경험..
언젠가는 해야 되는 일이다. 내가 다짐한 나 자신의 진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그 모든 것이 두려웠다. 내 알몸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도, 내 순결을 내주는 것도, 누군가의 살결을 내 살결에 닿게 하는 것도, 누군가 앞에서 신음소리를 내는 것도, 상대방의 알몸을 보는 것도, 그 사람과 한 침대에 눕는 것도, 내 민낯을 보여주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이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한 순간에 바뀔 수 없다. 물론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을 수는 있다. 바로 어제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모범적이고 꽤 고리타분한 삶을 살아왔기에, 한 순간 충격을 받고 마음가짐을 고쳐먹는다고 해서 내 이성적 판단과 경험적 반응들이 다 바뀔 수는 없다.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난 내가 알몸인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자위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옷을 다시 입기는 싫었다. 난 내 옷가지들을 챙겨 안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들어가 알몸인채로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나도 무슨 꿈인지 모를만큼 혼란스러운 꿈을 꿨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고 내게 기대려 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무릎을 꿇은 사람도 있고,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를 안으려는 사람도, 키스하려는 사람도, 욕하는 사람도, 칭송하는 사람도, 내가하는 행동들을 모두 따라하는 사람도, 나를 보며 웃는 사람도, 화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내 바로 앞에는 큰 거울이 있다. 분명 거울은 선명한데 내 모습은 너무나도 흐릿하다.
그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무릎 꿇은 사람에게는 냉정하게, 고개를 치켜든 사람에게는 겸손하게, 안으려는 사람에게는 포옹을, 키스하려는 사람에게는 키스를, 욕하는 사람에게는 무관심을, 칭송하는 사람에게는 미소를, 나를 따라하는 사람에게는 멸시를, 나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에게는 감사를, 화내는 사람에게는 사과를 건내준다.
그러자 거울 속 내 모습이 선명해진다.
아름다운지 혐오스러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고 새롭다.
분명 내 모습인데 새롭다.
이 꿈에서 벗어나기 싫다.
한창 그렇게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때리는 바람에 잠에서 화들짝 깨고 말았다.
찰싹!
“아..!!!으으.. 뭐야..”
“야 박정아 빨가벗고 뭐하냐?”
언니인 박민아였다.
“아.. 샤워하려다가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었나봐. 그나저나 언니는 오랜만에 본 동생을 보자마자 때려??”
“엉덩이가 너무 탐스러워서 그랬다.”
“뭐야 징그럽게... 그나저나 언니 더 예뻐졌다? 수술했냐?”
“뭐래 이 년이. 언니한테 말하는 본새보소. 그리고 니 언니는 원래 예뻤어 이 년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 말대로 언니는 항상 예뻤다. 가족행사를 가든 어디를 가든 항상 언니는 관심의 중심이었고, 그걸 즐기는듯했다. 드라마나 영화같은 것을 보면 자매가 이렇게 차이가 나면 다른 한 명이 질투심을 가지고 미워한다는 내용이 많은데, 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언니는 언제나 나의 자랑 중 하나였고,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부모님처럼 완벽하게 깔끔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늘 필요한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야 너 수능 잘 봤다며? 역시 내 동생이야. 우쭈쭈 귀여운 년”
언니는 늘 나를 이렇게 귀여워했다. 난 그런 언니가 좋았다. 저렇게 예쁘고 당당한 신여성이 나를 신경써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좋았다.
“언니 밥은 먹었어?”
“아니. 이따 엄마 아버지 오시면 나가서 먹자. 오늘은 내가 쏘기로 했다.”
“오.. 여전히 돈 많은가봐? 그럼 앞으로 내 용돈 좀 챙겨줘. 나도 곧 대학생 될텐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하고, 넌 옷이나 좀 입어라. ”
언니와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알몸인 것도 깜빡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데 언니가 내게 한 말이 나를 괜시리 자극했다.
“야.. 너 근데 좀.... 쪘다..?”
“뭐?? 아 그럼 재수생이 살이 찌지 빠지냐?”
“뭐래. 왜이리 과민반응이야. 야 니 언니는 짜샤 고 3때도 이 몸매였어.”
“그건 언니고! 나 살 빼는 거 도와줄 거 아니면 닥쳐. 내 알아서 할테니까”
“쬐끄만게 자꾸 말대답이네. 언니가 좀 도와줘?”
“됐어... 어떻게 도와줄 건데?”
사실 언니가 내 운동을 도와준 다는 것은 나에게 꽤 큰 행복이었다. 언니의 몸은 말 그대로 완벽 그 자체였고,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운동을 해왔기에 웬만한 트레이너보다 지식이 많았다.
“언니 아마 몇 달정도는 집에서 지낼 거 같은데... 언니 아침마다 운동하는 거 같이 할래?”
“진짜로,,?”
“응. 대신 중간에 그만둘 거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마.”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몸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예뻐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으로서의 발전을 뜻한다. 또한 내가 앞으로 떠날 여정의 큰 밑거름이 돼줄 것이다. 그러니 난 2년간 공부에 사용한 지독함을 입학하기 전 몇 개월간 운동에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 날 저녁은 정말 재밌었다. 언니는 프리랜서이기에 여기저기 외국도 많이 다니고 경험도 많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또다시 언니에게 반할 거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걸크러쉬’라는 말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을 언니와 나누어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그 뒤 몇 개월은 정말 지옥이었다. 하루아침에 식단을 바꾸고 아침마다 운동을 하려니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언니의 각종 욕설과 비하발언을 듣는 건 적응이 됐지만, 죽일 놈의 닭가슴살과 고구마는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되는 나를 꿈꿨다. 나도 모르는 새로운 세상에 당당하게 들어가 적응하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나를 상상했다. 그러면 아무리 힘든 시간도 참아졌다. 또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날이 갈수록 내 몸매는 나도 어색할 만큼 달라졌다.
뿌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수능성적이 나오고 굳이 수시를 칠 필요가 없었던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 영어교육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2월 말, 본격적인 대학생활이 시작되러 할 때, 난 이미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
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지금까지 별다른 야한 장면들도 없고, 내용도 너무 질질 끄는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필수적인 배경설명이니, 기대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게시판에 글을 쓰시는 모든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저는 관심을 받으면 힘을 얻습니다.
댓글이나 추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용관련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이 이야기는 정말 순수한 한 여자가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꼭 성적인 부분만 아니라, 여러가지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기 전 첫 모티브는 "만화"(드라마가 아닌) 치즈 인 더 트랩이었습니다.
전체적인 배경이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여러가지 인간관계 속에서 변하는 자신을 찾는다는 내용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사실 난 고 3때 친 수능시험도 꽤 상위권의 성적을 받았다. 부모님은 이만하면 웬만한 대학은 다 갈 수 있다고 하셨고 담임선생님도 재수를 만류하셨지만, 난 평소보다 떨어진 성적에 분해 재수를 선택했고 거의 만점에 가까운 성적을 받아들었다. 그러니 아침식사 분위기는 화목할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어제의 충격은 조금 잊고 즐겁게 식사했다. 어찌 되었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바를 이뤘기에 내 자신이 너무 자랑스러웠다.
“주말 저녁에 민아가 온대네요.”
“언니가?? 웬일로??”
“너 시험 잘 봤다니까 축배라도 같이 해야 되는 거 아니냐면서 온대.”
“뭐야 거의 1년 동안 얼굴도 제대로 안 비춰놓고서는.”
“언니가 워낙 바빠야지.. 내일도 겨우겨우 시간 맞춰서 오는 거래.”
“나 시험 망쳤으면 또 1년은 못봤겠네!”
“얘는... 언니가 너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잖아~”
“개뿔!”
말은 틱틱대기는 했지만 나는 언니를 굉장히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언니라는 존재는 항상 내게 있어서는 롤모델과 같았다. 나와는 다르게, 또 우리 부모님과는 다르게 언니는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 일과 감정에 충실했고, 무엇이든 한번 꽂히면 끝장을 볼 때까지 몰두하는 성격이었다. 당시 나이로 26밖에 되지 않았지만 억대에 근접하는 연봉을 받는 프리랜서 통역관이 될 수 있었던 이유도 바로 그런 직선적이고 화끈한 성격 덕분이었다.
언니는 항상 내게 자신의 감정에 솔직해지고, 세상을 넓게 바라보라고 했다. 나는 그저 누구나 할 수 있을 것 같았던 그 상투적인 말이, 어제 그런 사건(?)을 겪은 이후에 곱씹어보니 정말 크게 와 닿았다. 어쨌든 언니는 내게 있어서 정말 멋진 사람이었고, 부모님 다음으로 올려다보는 사람이었다. “진짜 나”를 찾는 긴 여정을 앞두고 있는 나에게, 언니와의 만남은 또 다른 동기부여를 가져다 올 수 있을 것 같았다.
금요일 아침이었고 부모님은 출근을 하셨기에 나는 집에 홀로 남게 되었다. 원래대로라면 재수학원에 가서 점수대에 맞는 대학진학을 위해 상담을 받아야 했지만, 가채점 결과가 워낙 좋아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것이라고 생각이 들어 그냥 집에 남아있기로 했다.
오랜만에 너무나도 편한 마음이었다.
지난 1년, 아니 2년간 매일매일 맘 졸이며 살아왔다. 불투명한 미래, 부모님의 믿음, 주변 사람들의 관심 등등 세상 그 모든 것이 부담으로 다가온 2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없다. 이제는 그런 무거운 짐들을 내려놓고,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공부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지낼 수 있다. 겨우 그저께만 해도 나는 인생의 불공평함을 불평하며 신을 탓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마치 6일간 세상을 짓고 7일째 안식을 취하던 신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
나는 텅 빈 집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지난 2년간 공부와 스트레스에 치여 우리 집이 어떻게 생겼는지 까먹을 지경이었다.
나는 집안 곳곳을 청소하기 시작했다.
아침 설거지가 그대로 남아있는 주방부터, 없는 먼지까지 찾아내어 집안 구석구석을 쓸고 닦았다.
기분이 상쾌했다.
그러다가 마지막 안방을 들어가려는데, 묘한 느낌이 들었다. 안방 문지방을 넘자마자, 묘한 흥분감이 내 몸을 감싸 안았다.
침대에 앉아 그 기분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눈을 감았다.
소리로만 들었던 어젯밤 부모님의 광란의 섹스를 상상해봤다.
죄를 짓는 것 같았지만, 그 생각 역시 그대로 받아들였다.
아랫도리가 축축해짐을 느꼈다.
나는 본능에 따라 손을 내 보지위로 옮겨갔다.
축축한 느낌이었다.
나도 모르게 놀라 손을 떼었다가, 다시 천천히 보지 위를 어루만졌다.
“하응...”
사실 난 자위라는 게 뭔지 모르고 살았다. 그저 친구들이 이러이러한 게 있다더라 라는 말만 들었을 뿐이고, 왠지 거부감이 들었기에 시도해본 적도 없다.
나는 지금 입고 있는 옷을 다 벗기 시작했다.
누군가에게 자위를 배워본 적도, 그렇다고 자위 동영상 같은 것들을 본 적도 없다. 왠지 자위를 제대로 하려면 옷을 다 벗어야 될 것 같아서 벗기 시작했다. 수도 없이 입고 벗어본 옷가지이지만, 다른 때와는 다르게 엄청난 흥분이 내 몸을 감쌌다. 그저 옷을 벗기만 했을 뿐인데, 사타구니가 뜨거워지고 얼굴이 빨개졌다.
“하응...”
나는 섹스를 해보지도 않았는데, 마치 첫날밤을 가지는 새색시처럼 심장이 두근두근 뛰기 시작했다.
옷을 다 벗고 완전히 나체인 채로 전신거울 앞에 섰다.
항상 헐렁한 티셔츠와 무릎 늘어난 트레이닝 바지만 입고 다녔고, 몸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내 몸을 마주하는 것이 어색했다.
조금 튀어나온 뱃살과 옆으로 축 쳐진 옆구리살, 뚱뚱한지 통통한지 기준이 애매모호한 다리, 지방인지 유방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볼륨감 있는 가슴, 볼록 튀어나온 골반라인까지...
2년간 운동은커녕 2시간 이상 걸어본 기억도 없는 것 치고는 꽤 괜찮았지만, 아쉬웠다. 내 몸이 너무 아쉬웠다. 아직 첫 경험도 가져보지 못한 여자의 몸이 이정도 밖에 안 된다는 것이 화가나기도 했다.
첫경험.. 첫경험...?
갑자기 여러 가지 감정들이 한꺼번에 몰려오기 시작했다.
첫경험..
언젠가는 해야 되는 일이다. 내가 다짐한 나 자신의 진모습을 찾기 위해서는 필수불가결한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두려웠다. 그 모든 것이 두려웠다. 내 알몸을 누군가에게 보여준다는 것도, 내 순결을 내주는 것도, 누군가의 살결을 내 살결에 닿게 하는 것도, 누군가 앞에서 신음소리를 내는 것도, 상대방의 알몸을 보는 것도, 그 사람과 한 침대에 눕는 것도, 내 민낯을 보여주는 것까지.. 그 모든 것이 두렵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람은 한 순간에 바뀔 수 없다. 물론 마음가짐을 다르게 먹을 수는 있다. 바로 어제의 나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는 평생을 모범적이고 꽤 고리타분한 삶을 살아왔기에, 한 순간 충격을 받고 마음가짐을 고쳐먹는다고 해서 내 이성적 판단과 경험적 반응들이 다 바뀔 수는 없다.
그렇게 멍을 때리고 있다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난 내가 알몸인 사실을 뒤늦게야 깨달았다.
자위를 할 기분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옷을 다시 입기는 싫었다. 난 내 옷가지들을 챙겨 안방에서 나와 내 방으로 들어가 알몸인채로 잠에 들었다.
꿈을 꿨다.
나도 무슨 꿈인지 모를만큼 혼란스러운 꿈을 꿨다.
많은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걸고 내게 기대려 했다.
남자도 있고 여자도 있다.
무릎을 꿇은 사람도 있고, 당당하게 고개를 치켜들고 있는 사람도 있다.
나를 안으려는 사람도, 키스하려는 사람도, 욕하는 사람도, 칭송하는 사람도, 내가하는 행동들을 모두 따라하는 사람도, 나를 보며 웃는 사람도, 화내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내 바로 앞에는 큰 거울이 있다. 분명 거울은 선명한데 내 모습은 너무나도 흐릿하다.
그 사람들에게 다가간다. 무릎 꿇은 사람에게는 냉정하게, 고개를 치켜든 사람에게는 겸손하게, 안으려는 사람에게는 포옹을, 키스하려는 사람에게는 키스를, 욕하는 사람에게는 무관심을, 칭송하는 사람에게는 미소를, 나를 따라하는 사람에게는 멸시를, 나를 보며 웃어주는 사람에게는 감사를, 화내는 사람에게는 사과를 건내준다.
그러자 거울 속 내 모습이 선명해진다.
아름다운지 혐오스러운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너무나도 선명하고 새롭다.
분명 내 모습인데 새롭다.
이 꿈에서 벗어나기 싫다.
한창 그렇게 자고 있는데, 누군가가 내 엉덩이를 때리는 바람에 잠에서 화들짝 깨고 말았다.
찰싹!
“아..!!!으으.. 뭐야..”
“야 박정아 빨가벗고 뭐하냐?”
언니인 박민아였다.
“아.. 샤워하려다가 피곤해서 그대로 잠들었나봐. 그나저나 언니는 오랜만에 본 동생을 보자마자 때려??”
“엉덩이가 너무 탐스러워서 그랬다.”
“뭐야 징그럽게... 그나저나 언니 더 예뻐졌다? 수술했냐?”
“뭐래 이 년이. 언니한테 말하는 본새보소. 그리고 니 언니는 원래 예뻤어 이 년아.”
할 말이 없었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언니 말대로 언니는 항상 예뻤다. 가족행사를 가든 어디를 가든 항상 언니는 관심의 중심이었고, 그걸 즐기는듯했다. 드라마나 영화같은 것을 보면 자매가 이렇게 차이가 나면 다른 한 명이 질투심을 가지고 미워한다는 내용이 많은데, 나는 그런 것이 전혀 없었다. 언니는 언제나 나의 자랑 중 하나였고, 내가 가지지 못한 면을 채워주는 사람이었다. 언니는 부모님처럼 완벽하게 깔끔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늘 필요한 이상을 보여주는 사람이었다.
“야 너 수능 잘 봤다며? 역시 내 동생이야. 우쭈쭈 귀여운 년”
언니는 늘 나를 이렇게 귀여워했다. 난 그런 언니가 좋았다. 저렇게 예쁘고 당당한 신여성이 나를 신경써주고 사랑해주는 것이 좋았다.
“언니 밥은 먹었어?”
“아니. 이따 엄마 아버지 오시면 나가서 먹자. 오늘은 내가 쏘기로 했다.”
“오.. 여전히 돈 많은가봐? 그럼 앞으로 내 용돈 좀 챙겨줘. 나도 곧 대학생 될텐데.”
“그건 내가 알아서 하고, 넌 옷이나 좀 입어라. ”
언니와 얘기를 하다보니 내가 알몸인 것도 깜빡했다. 주섬주섬 옷을 챙겨 입는데 언니가 내게 한 말이 나를 괜시리 자극했다.
“야.. 너 근데 좀.... 쪘다..?”
“뭐?? 아 그럼 재수생이 살이 찌지 빠지냐?”
“뭐래. 왜이리 과민반응이야. 야 니 언니는 짜샤 고 3때도 이 몸매였어.”
“그건 언니고! 나 살 빼는 거 도와줄 거 아니면 닥쳐. 내 알아서 할테니까”
“쬐끄만게 자꾸 말대답이네. 언니가 좀 도와줘?”
“됐어... 어떻게 도와줄 건데?”
사실 언니가 내 운동을 도와준 다는 것은 나에게 꽤 큰 행복이었다. 언니의 몸은 말 그대로 완벽 그 자체였고,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운동을 해왔기에 웬만한 트레이너보다 지식이 많았다.
“언니 아마 몇 달정도는 집에서 지낼 거 같은데... 언니 아침마다 운동하는 거 같이 할래?”
“진짜로,,?”
“응. 대신 중간에 그만둘 거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마.”
난 이 기회를 놓치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몸을 만든다는 것은 단순히 예뻐지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사람으로서의 발전을 뜻한다. 또한 내가 앞으로 떠날 여정의 큰 밑거름이 돼줄 것이다. 그러니 난 2년간 공부에 사용한 지독함을 입학하기 전 몇 개월간 운동에 사용하기로 결심했다.
그 날 저녁은 정말 재밌었다. 언니는 프리랜서이기에 여기저기 외국도 많이 다니고 경험도 많다.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만날 때마다 매번 새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또다시 언니에게 반할 거 같았다. 요즘 유행하는 ‘걸크러쉬’라는 말이 완벽하게 적용되는 사람이었다.
어쩌면,,, 어쩌면...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고민을 언니와 나누어도 이해해 줄 것 같았다.
그 뒤 몇 개월은 정말 지옥이었다. 하루아침에 식단을 바꾸고 아침마다 운동을 하려니 정말 죽을 것 같았다. 언니의 각종 욕설과 비하발언을 듣는 건 적응이 됐지만, 죽일 놈의 닭가슴살과 고구마는 적응이 되지를 않았다.
정말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탈바꿈되는 나를 꿈꿨다. 나도 모르는 새로운 세상에 당당하게 들어가 적응하고 주도적으로 살아가는 나를 상상했다. 그러면 아무리 힘든 시간도 참아졌다. 또 처음에는 잘 몰랐지만, 날이 갈수록 내 몸매는 나도 어색할 만큼 달라졌다.
뿌듯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수능성적이 나오고 굳이 수시를 칠 필요가 없었던 나는 내가 원하는 대학 영어교육과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리고 2월 말, 본격적인 대학생활이 시작되러 할 때, 난 이미 새로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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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작가입니다.
지금까지 별다른 야한 장면들도 없고, 내용도 너무 질질 끄는 감이 있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 필수적인 배경설명이니, 기대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사실 이 게시판에 글을 쓰시는 모든 분들이 그러하시겠지만, 저는 관심을 받으면 힘을 얻습니다.
댓글이나 추천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내용관련 얘기를 조금 해보자면, 이 이야기는 정말 순수한 한 여자가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꼭 성적인 부분만 아니라, 여러가지 인간관계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이야기입니다.
글을 쓰기 전 첫 모티브는 "만화"(드라마가 아닌) 치즈 인 더 트랩이었습니다.
전체적인 배경이나 내용은 완전히 다르지만, 여러가지 인간관계 속에서 변하는 자신을 찾는다는 내용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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