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달콤 씁쓸한 유혹 - 하편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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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새해 첫날
다음날 오전, 집 근처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제이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나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데,, 그녀가 조금 심정이 복잡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괜찮아?-
-뭐가..?-
-어제..우리..그냥 잤자나..-
제이는 조금 민망한 것 같아했고, 말꼬리도 살짝 흐렸지만, 예의 그 스타일대로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괜찮아..내가 안한건데 뭐..-
-그래도..-
-너도 나름 고생 많았어..그 상황에서 뻔뻔하게 잠도 자고..-
-하하..치..-
-그나저나..실력 발휘를 못한게 아쉽긴 하지..확실히 보여줬어야 하는데..하하-
수컷 특유의 허풍,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약간의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함 이었다. 물론, 그 동안 제이랑은 단 한번도 언급해보지 않은 부분에 대해, 한 단계 더 솔직하고 노골적인 대화를 이끌어 갈려고 했던 내 바램도 담겨져 있었다.
-치..오빠 잘하나봐? 많이 해봐서 그런가?-
아차 싶었다. "장난일까, 진심일까?" 제이 성격상 농담이라고만 받아들이기엔 말에 뼈가 실려 있었다. 젠장..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조금 뻔뻔한 웃음을 짓고 있던 나는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았고, 반면 제이의 얼굴엔 묘한 웃음이 서려있어 보였다. 이럴땐 웃음이 최고다.
-하하..-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우린 서로간에 그동안 말을 아꼈던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종종 언급을 하게 되었다. 벽을 하나 허문 것이었다. 물론 그 시작은 늘 나였지만..비록 증명할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제이가 성에 대해 얼마나 오픈 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꽤 민감한 부분이였기에..
내 상상속에 존재하는 제이와, 현실의 제이는 다소 차이가 있긴 했다. 허나, 제이의 반응은 나름 만족할만한 수준이였다. "남편이 원한다면 가능할 것 같아.." 하긴, 뭐 내가 통상적인 남녀간의 섹스 범주 안에서 질문을 던져서 그런건지, 그녀는 두명이서 즐기는 왠만한 형태의 플레이에 대해선, 별로 반감이 없는 듯 했다.
새해 첫번째 달, 1주, 2주,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제이와 나 사이는 다시 좋아지는 듯 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아직 없었다. 여전히 그녀가 바쁜탓에, 시간을 많이 내서 만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나 역시도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시로의 이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름 바뻤다.
그렇게 제이와의 사이가 잠시 정체되어있던 찰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을 했다. 내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12. 현재..그리고 와이프
9년후...2014년 12월 28일,
8시 정도나 되었을까? 와이프가 일찍부터 일어나서 보채기 시작했다.
-오빠..일어나봐..운동하로 가자..응?-
겨우 5시간 정도나 잤을까? 얘는 잠도 없는 것 같다. 순간 약간의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어제밤 얘를 그냥 재우지 말고 괴롭히고 재웠어야 하는데..
-휴가까지 와서 무슨 운동을 해..하고 싶으면 혼자 갔다와..-
-오빠..요새 바쁘다고 집에서도 운동 안하자나..시간이 있으니깐 해야지..응? -
하긴, 요새 배가 조금씩 나올려고 하는 것 같긴 하다. 총각때만 하더라도 75Kg를 넘은 적이 없었는데..언젠가부터 숫자가 슬금 슬금 올라가는 것 같더니..어느덧 80Kg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유? 글쎄..잔반 처리를 하다보니..원치 않게(?) 먹어댄거?..그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내가 원빈 형님도 아니고..세월엔 장사 없다는데, 어쩔수 없다. 순응할 건 순응해야지..조만간 진정한 아저씨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와이프가 그게 걱정되서 그러나? 따지고 보면 1차 책임자는 그녀인걸 모르는 모양이다.
여튼, 운동을 할려고 휴가를 온건 아니다.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 편하게..조금 늘어지고 싶을 뿐이였다.
"쿵"
잠시후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게의치 않은 척을 하면서 다시 잠을 청해 보았다. 에이..씨..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속으로 궁시렁 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고 방을 나섰다.
어제밤, 여행지에 도착한 기념으로 술을 한잔씩 했다. 와이프는 바에서 제공하는 칵테일에 흠뻑 빠져버렸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결혼 전엔 술 한모금도 못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맥주를 한모금씩 홀짝 거리길 시작하더니..어제는 알코올이 제법 들어간 칵테일을 두잔씩이나 들이켜댔다.
방으로 올라와 3시쯤에야 잠이 들었었다. 자꾸 옆에서 얘기를 해달라고 보채는데, 결국 마지못해 한참 떠들기 시작했는데..정작 본인이 먼저 잠이 들어버렸다. 참나..어이가 없었다.
-오빠, 어제 했던 얘기 마저 해줘..-
운동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와이프가 물어왔다.
-무슨 얘기?-
-그..오빠가 뉴욕에서 알던 선배라는 사람 얘기..-
-아..그 얘기..어디까지 기억하는데?..나 너 언제 잠들었는지 몰라..-
-음..그 선배랑, 여자친구랑 거의 잘뻔 했던..거기까지 기억나..
연애할 때부터 였던 것 같다. 우연히 다른 누군가의 연애 스토리를 와이프에게 얘기해줬었는데, 그녀가 감정 이입을 잘하고 너무 몰입해서 듣는 통에, 그 이후로도 종종 비슷한 얘기를 해주곤 했다. 물론, 아는 지인들로 포장했던 그 다른 누군가는, 내 얘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어떤 목적 의식이 있거나 그랬던 건 아니였던 것 같다. 연애를 해보지 못한 그녀에게, 단지 간접 경험을 조금 시켜줄려고 했다고나 해야할까? 결과적으론,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해준 얘기들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긴 했다. 조금 더 그녀가 오픈 된 마음을 갖게끔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도..
-어..뭐 결론은, 둘이 잘안되서..얼마후에 헤어졌어..-
-아..갑자기 왜?-
-음..그 선배가 잠시 헛 눈을 팔았거든..다른 도시..아마, 필라델피아쪽에 아는 여자애가 있었던거 같은데..거기를 놀러갔다온 모양이야.. –
-그런데?-
-응..근데 거기서 만난 여자애랑 찍은 사진들..아니 동영상인가? 뭐 그런걸 컴퓨터에 모르고 두었다가..나중에 그 선배 여친한테 걸린거지..-
-진짜? 장난 아니다..그래서?-
-뭐..변명의 여지가 있나..선배는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여친은 화가 잔뜩 나고..결국 그참에 헤어지게 된거지..근데, 원래 종교 때문에 조금 마찰이 있긴 했었대. 자꾸 교회 다니자구 해서.. -
-그래서 그렇게 헤어진거야?-
-어..선배가 다른 도시로 가기전에..그렇게 헤어졌대-
와이프가 뭔가 말을 덧붙일려다가 가벼운 탄식을 뱉었다. 잠시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호기심이 아직 풀리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얼마후 그녀가 격분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배를 적당히 포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듣다보니 마음이 영..주제를 바꿔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았다.
-근데..그러고보면..그 선배 커플이랑..우리랑..왠지 어딘가 조금 비슷하지? 우리도 처음 잘때..네가 그랬자나..키키 -
-치..그래도 그 선배는 양심이 조금 있네..끝까지 여친 지켜줬으니깐..오빠는 뭐..-
-성적인 코드를 확인도 안하고 결혼을 어떻게 하냐..내가 너한테 그랬을때는, 이미 내 마음은 굳혔었어..너랑 무조건 결혼할거라고..-
-참나..뻔뻔하게 말은 잘해요..-
-응..사실 이니깐 뭐..-
-근데, 그 선배랑 여친이라는 사람은 지금 뭐해? 결혼들은 했어?-
아직까지 그녀가 감정 이입을 마치지 않은 것 같다. 어제밤, 한참 얘기하는 도중에도 그러더니만, 남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녀로써는,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 재미에 얘기를 해주는 거니깐..
-음..그렇지..둘다 했어..각자 자기랑 맞는 사람이랑 잘했어..그 선배 여친은 신앙심이 아주 좋고 건실한 사람이랑 했고..또 선배는 선배대로 아주 괜찮은 여자랑 했어..-
-그래? 그럼 둘다 미국에 아직 있어?-
-음..선배 여친은 뉴욕에 그대로 있을거구..선배는..글쎄..아마 한국으로 돌아갔을껄? 나도 연락 안한지 오래되서..사실 잘 몰라..-
순간 아차 할뻔 했다. 대답을 한박자 살짝 놓쳤다. 와이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왔다. 이젠 그만 했으면 싶은데..
-근데 어제 오빠가 그랬자나..그 선배 여친이랑 나랑 조금 닮았다구..어디가 그래?-
-아..그거..음..글쎄..여러모로 비슷해보이긴 해..-
-어떤게? 뭐가 비슷한건데?-
-외모도 얼핏보면 비슷한거 같고..분위기? 성격이랑 성향도 조금 비슷한 것 같고..안질려고 하는거?하하..아..결정적으로 둘다 성적으로 병적인거..키키-
-참나..내가 오빠 그 얘기 할줄 알았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와이프가 품에 안겨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을때, ‘내가 아는 누군 이렇게도 해봤대~’라고 얘기를 하면, 그녀는 늘 한결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오빠가 아는 사람들은 다 변태같어..-
말해서 본전도 못찾는거 같긴해도,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언젠가는 와이프가 도발을 해서, 내 모든 상상을 다 이루어 줄꺼라는..물론, 자기는 지금이 가장 솔직한거란다. 젠장..여튼, 현재로써는 딱히 불만은 없다. 허나, 혹시나 사람 일은 모르는거니..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밑밥은(?) 깔아놓고 있는 중이다.
잠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곧이어 입에 발린 칭찬을 날리기 시작했다.
-근데 다른점도 많아..-
-뭐가?-
-응..우리 와이프가 조금 더 성격이 좋지..싹싹하고..생각도 훨씬 투명하고..하하 –
-그말 좋은 말 아니잖아..단순하다는 말 아냐?-
-그게 얼마나 좋은건데..다른 의도를 두고 말하는게 없자나..키키-
그녀가 살짝 눈을 흘기며 나를 쳐다봤다. 내 웃음이 너무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을 눈치 챈 듯 싶었다. 쩝..분위기가 나쁜건 아니였다. 여전히 그녀는, 얇은 웃음을 띄우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얘기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13. 에필로그
몇년전, 제이의 결혼 소식을 지인에게서 들었다. 교회를 같이 다니는 건실한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이젠 추억속에 그녀였지만, 나는 소식을 듣고선, 날짜에 맞춰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축하카드를 보냈다. 봉투 안에는 제법 비싼 브랜드의 상품권을 함께 넣고선..
그 시절, 꼭 한번쯤은 선물을 해보고 싶었었다.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릴것 같은 옷을 사주고 싶었지만, 언젠가 은근슬쩍 제안을 했다가 쫑크만 먹은 기억이 있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제이도 그렇고, 민아도 그런 것 같고..민아랑은 연락이 끊긴건 5-6년 정도 된 것 같다. 결국, 그녀는 유학을 오지 않고, 한국에서 대학원을 진학했었다. 이후, 한동안 메신저에서 인사를 하긴 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소홀해지고, 자연스럽게 멀어졌었다.
그리고 나는..
보시다시피 이렇게 살고 있다. 노총각에서도 벗어났다.
1년 간의 연애, 그리고 결혼 생활, 36이면 놀만큼도 놀았고..주변 상황도 그렇고..혼자 지내는 것도 여간 눈치보이는 법, 결정적으로,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우연히도 제이와 내가 겪었던 똑같은 문제와 상황을, 와이프하고도 맞딱트리게 되면서, 나는 물러서지 않고 과감히 돌파를 했다. 물론 내 머릿속엔 그 끝의 그림이 모두 그려져 있었고, 그녀와 내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다짐을 했었다.
여튼, 이제 불과 몇 개월째의 결혼 생활이지만, 착실하게는 살고 있다.
아직까진 그렇다..
머릿속에 크게 딴 생각 안하고..사실, 그런 기회도 별로 없다.
둘만 의지해야 하고..주변 환경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물론 여전히,
가끔씩 그런 상상은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는..?
어쩌면 이건..병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치료 할수 없는 병 같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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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다음날 오전, 집 근처 식당에서 같이 밥을 먹는데, 제이가 내 눈치를 살피는 것 같았다. 나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데,, 그녀가 조금 심정이 복잡했는지도 모르겠다.
-오빠..괜찮아?-
-뭐가..?-
-어제..우리..그냥 잤자나..-
제이는 조금 민망한 것 같아했고, 말꼬리도 살짝 흐렸지만, 예의 그 스타일대로 단도직입적으로 치고 들어왔다.
-괜찮아..내가 안한건데 뭐..-
-그래도..-
-너도 나름 고생 많았어..그 상황에서 뻔뻔하게 잠도 자고..-
-하하..치..-
-그나저나..실력 발휘를 못한게 아쉽긴 하지..확실히 보여줬어야 하는데..하하-
수컷 특유의 허풍, 근거없는 자신감으로 약간의 어색함을 무마하기 위함 이었다. 물론, 그 동안 제이랑은 단 한번도 언급해보지 않은 부분에 대해, 한 단계 더 솔직하고 노골적인 대화를 이끌어 갈려고 했던 내 바램도 담겨져 있었다.
-치..오빠 잘하나봐? 많이 해봐서 그런가?-
아차 싶었다. "장난일까, 진심일까?" 제이 성격상 농담이라고만 받아들이기엔 말에 뼈가 실려 있었다. 젠장..순식간에 상황이 역전되었다. 조금 뻔뻔한 웃음을 짓고 있던 나는 표정 관리가 쉽지 않았고, 반면 제이의 얼굴엔 묘한 웃음이 서려있어 보였다. 이럴땐 웃음이 최고다.
-하하..-
그날을 기점으로 해서 우린 서로간에 그동안 말을 아꼈던 성적인 부분에 대해서도 종종 언급을 하게 되었다. 벽을 하나 허문 것이었다. 물론 그 시작은 늘 나였지만..비록 증명할 기회를 놓치긴 했지만, 제이가 성에 대해 얼마나 오픈 된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었다. 어찌되었든, 나에게는 꽤 민감한 부분이였기에..
내 상상속에 존재하는 제이와, 현실의 제이는 다소 차이가 있긴 했다. 허나, 제이의 반응은 나름 만족할만한 수준이였다. "남편이 원한다면 가능할 것 같아.." 하긴, 뭐 내가 통상적인 남녀간의 섹스 범주 안에서 질문을 던져서 그런건지, 그녀는 두명이서 즐기는 왠만한 형태의 플레이에 대해선, 별로 반감이 없는 듯 했다.
새해 첫번째 달, 1주, 2주, 시간은 그렇게 흘러갔다. 제이와 나 사이는 다시 좋아지는 듯 했지만 눈에 띄는 변화는 아직 없었다. 여전히 그녀가 바쁜탓에, 시간을 많이 내서 만나지 못한 것도 있지만, 나 역시도 뉴욕 생활을 정리하고 새로운 도시로의 이주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나름 바뻤다.
그렇게 제이와의 사이가 잠시 정체되어있던 찰나,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을 했다. 내가 어처구니 없는 실수를(?) 저지른 것이었다.
12. 현재..그리고 와이프
9년후...2014년 12월 28일,
8시 정도나 되었을까? 와이프가 일찍부터 일어나서 보채기 시작했다.
-오빠..일어나봐..운동하로 가자..응?-
겨우 5시간 정도나 잤을까? 얘는 잠도 없는 것 같다. 순간 약간의 후회감이 밀려들었다. 어제밤 얘를 그냥 재우지 말고 괴롭히고 재웠어야 하는데..
-휴가까지 와서 무슨 운동을 해..하고 싶으면 혼자 갔다와..-
-오빠..요새 바쁘다고 집에서도 운동 안하자나..시간이 있으니깐 해야지..응? -
하긴, 요새 배가 조금씩 나올려고 하는 것 같긴 하다. 총각때만 하더라도 75Kg를 넘은 적이 없었는데..언젠가부터 숫자가 슬금 슬금 올라가는 것 같더니..어느덧 80Kg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이유? 글쎄..잔반 처리를 하다보니..원치 않게(?) 먹어댄거?..그게 이유라면 이유였다.
내가 원빈 형님도 아니고..세월엔 장사 없다는데, 어쩔수 없다. 순응할 건 순응해야지..조만간 진정한 아저씨의 길을 걸을지도 모르겠다. 혹시 와이프가 그게 걱정되서 그러나? 따지고 보면 1차 책임자는 그녀인걸 모르는 모양이다.
여튼, 운동을 할려고 휴가를 온건 아니다. 그냥 놔뒀으면 좋겠다. 편하게..조금 늘어지고 싶을 뿐이였다.
"쿵"
잠시후 문 닫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게의치 않은 척을 하면서 다시 잠을 청해 보았다. 에이..씨..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속으로 궁시렁 거리기 시작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옷을 챙겨입었다. 그리고 방을 나섰다.
어제밤, 여행지에 도착한 기념으로 술을 한잔씩 했다. 와이프는 바에서 제공하는 칵테일에 흠뻑 빠져버렸다. 늦게 배운 도둑질이 무섭다더니..결혼 전엔 술 한모금도 못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맥주를 한모금씩 홀짝 거리길 시작하더니..어제는 알코올이 제법 들어간 칵테일을 두잔씩이나 들이켜댔다.
방으로 올라와 3시쯤에야 잠이 들었었다. 자꾸 옆에서 얘기를 해달라고 보채는데, 결국 마지못해 한참 떠들기 시작했는데..정작 본인이 먼저 잠이 들어버렸다. 참나..어이가 없었다.
-오빠, 어제 했던 얘기 마저 해줘..-
운동을 마치고 아침 식사를 하는 동안 와이프가 물어왔다.
-무슨 얘기?-
-그..오빠가 뉴욕에서 알던 선배라는 사람 얘기..-
-아..그 얘기..어디까지 기억하는데?..나 너 언제 잠들었는지 몰라..-
-음..그 선배랑, 여자친구랑 거의 잘뻔 했던..거기까지 기억나..
연애할 때부터 였던 것 같다. 우연히 다른 누군가의 연애 스토리를 와이프에게 얘기해줬었는데, 그녀가 감정 이입을 잘하고 너무 몰입해서 듣는 통에, 그 이후로도 종종 비슷한 얘기를 해주곤 했다. 물론, 아는 지인들로 포장했던 그 다른 누군가는, 내 얘기가 대부분이었지만..
생각해보면, 어떤 목적 의식이 있거나 그랬던 건 아니였던 것 같다. 연애를 해보지 못한 그녀에게, 단지 간접 경험을 조금 시켜줄려고 했다고나 해야할까? 결과적으론, 그녀와 데이트를 하는데 있어서, 내가 해준 얘기들은 여러모로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긴 했다. 조금 더 그녀가 오픈 된 마음을 갖게끔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도..
-어..뭐 결론은, 둘이 잘안되서..얼마후에 헤어졌어..-
-아..갑자기 왜?-
-음..그 선배가 잠시 헛 눈을 팔았거든..다른 도시..아마, 필라델피아쪽에 아는 여자애가 있었던거 같은데..거기를 놀러갔다온 모양이야.. –
-그런데?-
-응..근데 거기서 만난 여자애랑 찍은 사진들..아니 동영상인가? 뭐 그런걸 컴퓨터에 모르고 두었다가..나중에 그 선배 여친한테 걸린거지..-
-진짜? 장난 아니다..그래서?-
-뭐..변명의 여지가 있나..선배는 그냥 미안하다고 하고..여친은 화가 잔뜩 나고..결국 그참에 헤어지게 된거지..근데, 원래 종교 때문에 조금 마찰이 있긴 했었대. 자꾸 교회 다니자구 해서.. -
-그래서 그렇게 헤어진거야?-
-어..선배가 다른 도시로 가기전에..그렇게 헤어졌대-
와이프가 뭔가 말을 덧붙일려다가 가벼운 탄식을 뱉었다. 잠시 뭔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호기심이 아직 풀리지 않은 듯한 표정이었다. 역시 얼마후 그녀가 격분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배를 적당히 포장했음에도 불구하고, 너무 몰아세우는 것 같았다. 듣다보니 마음이 영..주제를 바꿔야 할 타이밍인 것 같았다.
-근데..그러고보면..그 선배 커플이랑..우리랑..왠지 어딘가 조금 비슷하지? 우리도 처음 잘때..네가 그랬자나..키키 -
-치..그래도 그 선배는 양심이 조금 있네..끝까지 여친 지켜줬으니깐..오빠는 뭐..-
-성적인 코드를 확인도 안하고 결혼을 어떻게 하냐..내가 너한테 그랬을때는, 이미 내 마음은 굳혔었어..너랑 무조건 결혼할거라고..-
-참나..뻔뻔하게 말은 잘해요..-
-응..사실 이니깐 뭐..-
-근데, 그 선배랑 여친이라는 사람은 지금 뭐해? 결혼들은 했어?-
아직까지 그녀가 감정 이입을 마치지 않은 것 같다. 어제밤, 한참 얘기하는 도중에도 그러더니만, 남의 얘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고 공감하는 능력이 뛰어난 그녀로써는,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 재미에 얘기를 해주는 거니깐..
-음..그렇지..둘다 했어..각자 자기랑 맞는 사람이랑 잘했어..그 선배 여친은 신앙심이 아주 좋고 건실한 사람이랑 했고..또 선배는 선배대로 아주 괜찮은 여자랑 했어..-
-그래? 그럼 둘다 미국에 아직 있어?-
-음..선배 여친은 뉴욕에 그대로 있을거구..선배는..글쎄..아마 한국으로 돌아갔을껄? 나도 연락 안한지 오래되서..사실 잘 몰라..-
순간 아차 할뻔 했다. 대답을 한박자 살짝 놓쳤다. 와이프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왔다. 이젠 그만 했으면 싶은데..
-근데 어제 오빠가 그랬자나..그 선배 여친이랑 나랑 조금 닮았다구..어디가 그래?-
-아..그거..음..글쎄..여러모로 비슷해보이긴 해..-
-어떤게? 뭐가 비슷한건데?-
-외모도 얼핏보면 비슷한거 같고..분위기? 성격이랑 성향도 조금 비슷한 것 같고..안질려고 하는거?하하..아..결정적으로 둘다 성적으로 병적인거..키키-
-참나..내가 오빠 그 얘기 할줄 알았다-
가끔씩, 아주 가끔씩.. 와이프가 품에 안겨 기분 좋은 표정을 짓고 있을때, ‘내가 아는 누군 이렇게도 해봤대~’라고 얘기를 하면, 그녀는 늘 한결 같은 반응을 보였다.
-오빠가 아는 사람들은 다 변태같어..-
말해서 본전도 못찾는거 같긴해도, 나는 여전히 꿈을 꾼다. 언젠가는 와이프가 도발을 해서, 내 모든 상상을 다 이루어 줄꺼라는..물론, 자기는 지금이 가장 솔직한거란다. 젠장..여튼, 현재로써는 딱히 불만은 없다. 허나, 혹시나 사람 일은 모르는거니..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밑밥은(?) 깔아놓고 있는 중이다.
잠시 그녀의 눈치를 살폈다. 그리고 곧이어 입에 발린 칭찬을 날리기 시작했다.
-근데 다른점도 많아..-
-뭐가?-
-응..우리 와이프가 조금 더 성격이 좋지..싹싹하고..생각도 훨씬 투명하고..하하 –
-그말 좋은 말 아니잖아..단순하다는 말 아냐?-
-그게 얼마나 좋은건데..다른 의도를 두고 말하는게 없자나..키키-
그녀가 살짝 눈을 흘기며 나를 쳐다봤다. 내 웃음이 너무 진정성이 있어 보인다는 것을 눈치 챈 듯 싶었다. 쩝..분위기가 나쁜건 아니였다. 여전히 그녀는, 얇은 웃음을 띄우며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날의 얘기는 그렇게 마무리가 되었다.
13. 에필로그
몇년전, 제이의 결혼 소식을 지인에게서 들었다. 교회를 같이 다니는 건실한 남자를 만났다고 했다. 이젠 추억속에 그녀였지만, 나는 소식을 듣고선, 날짜에 맞춰 그녀가 일하는 곳으로 축하카드를 보냈다. 봉투 안에는 제법 비싼 브랜드의 상품권을 함께 넣고선..
그 시절, 꼭 한번쯤은 선물을 해보고 싶었었다. 그녀에게 정말 잘 어울릴것 같은 옷을 사주고 싶었지만, 언젠가 은근슬쩍 제안을 했다가 쫑크만 먹은 기억이 있다.
다들 잘 살고 있는 것 같다. 제이도 그렇고, 민아도 그런 것 같고..민아랑은 연락이 끊긴건 5-6년 정도 된 것 같다. 결국, 그녀는 유학을 오지 않고, 한국에서 대학원을 진학했었다. 이후, 한동안 메신저에서 인사를 하긴 했지만,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소홀해지고, 자연스럽게 멀어졌었다.
그리고 나는..
보시다시피 이렇게 살고 있다. 노총각에서도 벗어났다.
1년 간의 연애, 그리고 결혼 생활, 36이면 놀만큼도 놀았고..주변 상황도 그렇고..혼자 지내는 것도 여간 눈치보이는 법, 결정적으로, 약속을 꼭 지키고 싶었다.
우연히도 제이와 내가 겪었던 똑같은 문제와 상황을, 와이프하고도 맞딱트리게 되면서, 나는 물러서지 않고 과감히 돌파를 했다. 물론 내 머릿속엔 그 끝의 그림이 모두 그려져 있었고, 그녀와 내 스스로에게도 그렇게 다짐을 했었다.
여튼, 이제 불과 몇 개월째의 결혼 생활이지만, 착실하게는 살고 있다.
아직까진 그렇다..
머릿속에 크게 딴 생각 안하고..사실, 그런 기회도 별로 없다.
둘만 의지해야 하고..주변 환경이 그렇게 생겨 먹었다.
물론 여전히,
가끔씩 그런 상상은 한다.
일상에서 벗어나 일탈을 꿈꾸는..?
어쩌면 이건..병일지도 모르겠다..
영원히 치료 할수 없는 병 같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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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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