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검마도지성전(色劍魔道至性傳) - 2부5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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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에... 그렇구나. 고생 많았네?]
살짝 웃어보이는 그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쏟아질 듯 가득 고여있다. 언니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때문일 것이다. 헤어진 지 17년만에 들은 너무도 친했고, 사랑했던 언니의 죽음이 그녀를 차마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헤헤헤... 아니...]
힘없이 고개를 젓느라 가득 고인 눈믈이 그만 눈꼬리를 타고 넘쳐흐른다. 작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작은 물방울이 짙은 색 뺨을 타고 길게 선을 그리며 흐른다. 마지막 맺혀 대롱거리는 턱밑으로 나머지 눈물이 흘러 눈물방울이 떨어질 듯 커진다.
툭--
이내 눈물이 떨어진다. 어둠속에 어디로 떨어지는가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고운 턱선의 끝에 매어달려 있던 그 작은 물방울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눈물이 떨어진 것을 알 뿐이다.
[슬퍼... 정말... 정말로 슬퍼...]
작은 목소리.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 그 짧은 말에 칸피니스는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그녀가 느끼는 그 슬픔을, 그녀와 같은 이유로 느낀 바 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도 잠시 잊고 있었을 뿐 그녀와 같이 슬퍼하고 있는 중이다.
[어... 언니는... 정말 죽은걸까?]
[아마도...]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너도 직접 본 건 아니잖아. 그냥 추측일 뿐인거잖아?]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칸피니스도 그러니까. 하지만 믿고 싶지 않더라도 분명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녀가 믿든 믿지 않든 그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수... 수파니... 라서?]
[응]
[그... 그... 그는...]
[프란츠?]
[그래. 프란츠는 언니를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그래서 살려서 데려간거고. 그런데 왜 죽도록 내버려두는거지? 사랑한다면서 왜 지켜주지 않는거야?]
수파니인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귀족이 말하는 사랑이 얼마나 더럽고 유치한 것인지 수파니인 그녀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수파니니까. 반쪽이나마 인간인 칸피니스와는 달리 완벽한 수파니이기에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서 그래.]
[인간?]
[별로 특별한 게 아냐. 인간 사회에서 이런 일은 그리 이해 못할 일도 아니라구. 특히 프란츠 같은 덜떨어진 쓰레기자식들에게는 더욱 그렇지.]
[고... 작... 그런 인간에게 당한거야? 언니는? 우리는 고작 그런 정도의 인간에게 그렇게 몰살당했던 거고?]
억울한 표정이다. 17년 전, 프란츠가 기사들을 이끌고 평화롭던 자신의 마을을 덮치던 그날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 처절한 죽음과 파괴의 기억이, 그 고통이, 그녀의 고독으로 매마른 가슴을 아프게 헤집는다. 그 절망어린 기억이 그토록 치졸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졌다 생각하니 고통은 차라리 증오가 되어 그녀의 눈물 속에서 절규한다.
[원래 그런 놈들일 수록 인간 사회에서는 큰 힘을 갖는 법이니까. 인간 사회에서 강하다고 하는 것을 얼머나 쓰레기같느냐 하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보면 돼.]
[그... 그런 게 인간인거야?]
[아마도. 대체로 프란츠만도 못한 것들이 높은 작위에 큰 권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
[인간을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보다 더욱 탐욕스럽고, 더욱 잔인하고, 더욱 저열하고, 더욱 교활해져야 해. 그렇지 못하면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어. 인간 스스로도 인간을 이길 수 없지.]
[그러지 못하면 지상의 모든 종족은 인간에게 멸망한다는 거야?]
[아마도... 아마 인간 또한 인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할거야.]
너무 어두운 얘기인 탓일까? 야미의 얼굴이 한껏 어두워진다. 어두운 숲속에서 표정까지 어두워지니 그녀의 맑은 눈동자마저도 어둠에 가려 빛을 잃는 듯 보인다. 혹시나 그녀가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급히 손을 내밀어보려다 갑작스레 들려온 장난스런 목소리 손을 움츠린다.
[훗... 그러니까 마치 뭐 같다.]
다시 밝아진 표정. 무리하는 것이 역력히 눈에 보인다. 아마도 지나치게 우울해지는 자신을 추스르려 억지로라도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리라. 이럴 때 그녀의 곁에 있어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고맙기만하다.
[현자 같다는 생각 들지 않아?]
[현자?]
아마도 수파니는 현자라는 말을 모를 것이다. 수파니 사회에는 현자라는 직업이 없으니까. 마법사니 기사니 하는 것도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인간들과 싸우면서 개념은 가지고 있는 반면, 현자는 직접 부딪히는 일이 없는 탓인지 아예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은 수파니들이 대부분이다. 야미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응. 굉장히 현명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 다른 사람에게 조언해주고, 지식을 가르쳐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런 것도 있는거야? 인간들에서는?]
[그래. 워낙에 머릿수가 많다보니, 할 짓 없는 사람들도 많거든.]
[헤헤헤...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인간같지 않아 보여, 칸피니스는.]
[반쪽은 수파니거든.]
[참, 그렇지! 네가 언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잠시 깜빡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나 밖에 없는 조카인데?]
[조카?]
실수다. 수파니에게는 조카라는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야미에게 잠시 자신을 잊었다고 뭐라 한 주제에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다.
남은 반쪽이 인간인데다 인간 사회에서 워낙에 오래 산 덕에 칸피니스의 생각이나 말의 대부분은 인간을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인간적인 사고방식이 말로,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안. 수파니에게는 조카라는 개념이 없었지?]
[조카... 라는 건 언니의 아들이라는 뜻인 거야?]
[언니나 오빠, 남동생이나 여동생 같은 형제의 아들이나 딸을 가리켜 조카라고 불러. 그리고 조카들은 부모의 형제를 이모나 고모, 삼촌등으로 부르지.]
[그럼 나는 너한테 어떻게 되는거야?]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 그렁하니 고인 눈물만 아니라면 슬픔따위는 보이지 않는 해맑은 표정이다. 여전한 슬픔 속에서도 작은 호기심을 놓치지 않고 집중하는 그 순수함이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야미의 이미지 그대로다.
[이모.]
[이모?]
[응. 어머니의 여자형제는 대개 이모라고 불러.]
[이모... 이모... 이모...]
신기한 지 몇 번이고 되뇌이는 모습이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와도 같아 정말 귀엽다. 나이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어려보이는 갸녀린 외모의 그녀가 그러고 있으니 더욱 귀여움이 더한다.
[한 번 이모라고 해봐.]
[에?]
[해봐, 이모라고.]
코앞까지 바싹 다가선 그녀의 검은 눈을 보고 있으니 왠지 가슴이 철렁하다. 눈을 살짝 아래로 떨구나 어둠 속에 짙은 빛의 입술이 보인다. 그 짙은 입술 사이로 보이는 하얀 이. 그 아래로 풍만한 유방이 가녀린 그녀의 알몸 아래에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가슴이 철렁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가슴의 모든 것이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사라지는 듯한 충격이다.
[이... 이모...]
[다시 한 번!]
[이모.]
[이름 넣어서.]
[야미 이모.]
[한 번 더.]
[야미 이모.]
그녀의 알몸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도 있고 해서, 그녀가 왜 자신을 이모라 부르게 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모라는 개념이 없는 수파니인 그녀가, 왜 굳이 자신의 이름까지 넣어 이모라 부르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모라 부를 때마다 기쁨으로 뿌연 습막이 어리는 그녀의 눈을 보고 있으니 어렴풋하게나마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간다. 아마도 가족이 그리운 것일 게다. 수파니에게 있어 가족이 아닌 칸피니스지만 인간의 개념을 빌어서라도 가족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가족이 절실하기에 굳이 이모라 부르게 하는 것이리라.
[다시 한 번.]
[야미 이모.]
[왜 불러, 조카?]
에렌프가 말하길 그녀의 동생인 야미는 죽을 때까지 7살 먹은 아이와도 같은 모습으로 살 것 같은 아이라고 했었다. 순수함과 천진함을 그대로 안고 성인이 되어 아이인 그대로 늙어죽을 것이라고,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자랑하듯 말했었다. 그 말의 의미를 칸피니스는 비로소 확인한다.
[훗... 어린애같애.]
[어린애?]
[응. 어린애처럼 귀여워.]
[헤... 언니랑 같은 말을 하네?]
[아들이니까.]
[그렇구나...]
에렌프를 생각하니 격정이 치밀어오른 것일까? 야미는 불현듯 몸을 일으켜 칸피니스를 껴안아온다. 차갑게 식은 알몸이 옷 위로 뜨겁게 다가온다. 탄력있는 부드러운 알몸이, 그 유방이 얇지 않은 천 너머로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마치 현실인양 선명하게 느껴진다.
“웃...”
자극이 너무 심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자에 익숙할대로 익숙한 칸피니스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태연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여자의, 그만큼이나 더 아름다운 알몸이 이리도 가까이 밀착해있는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색마 이전에 남자도 아닐 거이다.
[왜?]
순수한 눈빛, 그 안에 일말의 불안함이 감돈다. 자극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자신에 대한 불편함이나 거부가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다. 오랜 고독의 슬픔과 절망이 느껴지는 듯한 너무도 애㉯?집착에 그만 울컥 눈물이 솟을 것 같다.
[이제... 껏... 혼자 살아온거야?]
[응?]
[그때 이후... 그러니까 마을이 불탄 이후... 주욱... 이모 혼자였었던 거냐구.]
[아아... 응...]
들리지도 않을 듯한 낮은 대답. 힘없이 늘어져 사라지는 그 목소리에 함뿍 습기가 배어있다. 쥐어짜면 주루룩 흐를 것만 같은 짠 물기가 말꼬리를 잡아 끄는 듯 어느새 그 대답은 축축한 새벽의 숲공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7년간 아무도 없었던거야?]
[아... 아니... 언니가... 엘디란이 있었어. 11년 전까지... 그때까지 언니가, 한 팔을 잃은 채로 내 곁에 함께 있었어.]
[11년 전까지?]
[그래. 아직 어렸던 나에게 수파니의 풍습과 사냥기술을 가르쳐주었지. 하지만 한 팔이 없어서... 흑암의 숲에서 한 팔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니?]
[아아... 대충은...]
[팔이 하나 없다는 건 달릴 때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는 뜻이야. 숲과 같이 빠르게 중심을 움직일 필요가 있는 곳에서 그건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지. 위험한 적을 만나도 제대로 도망조차 칠 수 없다는 의미니까.]
[그럼 엘디란은...?]
[오거에게 죽었어. 나와 함께 도망치다가 끝내 뒤쳐져서는... 아무리 수파니라도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여자아이가 오거와 일대일로 싸운다는 건 무리거든. 그래서 도망쳐야 하는데... 그 한 팔이... 앞을 가로막은 나무를 피하다가 중심이 흐트러녔을 때 한 팔 만으로 중심을 잡느라 끝내는...]
[아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알 듯하다. 한 팔이 없이 이런 수풀 속을 뛰어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도 잘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6년씩이나 그 몸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기적과도 같다. 아마도 야미의 슬픔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은 그러한 점을 그녀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그때부터 계속 혼자였던거야?]
[응.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때 마을에서 도망친 수파니가 더 있다는 얘기를 언니에게 듣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흠...]
[나... 지금 알몸인 거 흉하지?]
[에?]
뒤늦은 부끄러움인 것일까? 어둠 속이라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왠지 붉게 물들어 있을 것 같은 수줍은 목소리다.
[수파니도 옷...은 입어. 다만... 내가 옷을... 만들... 줄... 몰라서... 언니도 아직 어려서 그런 건 못배웠거든. 천이 있으면 옷을 만들 줄은 아는데 천을 짜는 방법을 몰랐어. 그래서...]
[아아...]
수파니에게 있어 알몸을 보이는 것은 특별히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 앞에 알몸을 보인다고 성적인 수치감따위 느끼지도 않는다. 수파니가 자신의 알몸을 부끄럽게 여길 때는 그 알몸이 성적인 의미를 지닐 때뿐이다.
[나랑 자고 싶은거야?]
[응?]
[어머니한테 그렇게 들었거든. 수파니가 자신의 알몸을 부끄럽게 여기는 건 오로지 자고 싶은 상대 앞에서 뿐이라고.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고 그렇게 들었거든.]
실제 에렌프는 프란츠와 17년간 무수한 섹스를 나누면서도 한 번도 자신의 알몸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해본 적 없다. 심지어 칸피니스와 섹스를 나눌 때도 그녀는 자신의 알몸을 아무런 부끄럼없이 내보였었다. 칸피니스가 에렌프와의 섹스를 섹스가 아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부끄러움이 없는 상대와의 섹스는 섹스가 아니라는 수파니의 방식대로라면 그것은 분명 섹스가 아니었다는 것이 칸피니스의 판단이다. 그에 대해 에렌프가 특별히 언급한 적은 없지만 아마도 칸피니스의 생각이 맞을 것이다.
[아아... 아마도... 아마도 그럴거야.]
그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몹시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다. 더듬거리며 긍정하는 것이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넌... 정말 멋져. 매력적이야. 예전에... 그러니까 우리 마을에 아직 아무일 없었을 때에도 너처럼 멋진 남자는 없었던 것 같아.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분명치는 않지만 확실히 너만한 남자는 없었어.]
[인간으로서? 아니면 수파니로서?]
아마도 인간과 수파니의 혼혈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떠올린 탓일 것이다. 칸피니스가 이리도 예민하게 반문해 오는 것은. 그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해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에 야미가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보인 채 살짝 고개를 저어보이는 것일테고.
[수파니는 수파니를 고집하지 않아.]
[응?]
[수파니는 모든 종족의 어머니야. 모든 종족은 수파니에게서 나왔지. 그렇기 때문에 수파니에게는 모든 종족이 같아. 수파니든, 인간이든, 엘프든 종족으로 상대를 구분하거나 판단하지 않지.]
[그렇다는 건...?]
[넌 내가 이제껏 보아온 최고의 수컷이야. 칸피니스.]
겉으로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의연한 모습이었지만, 칸피니스에게 있어서도 수파니인가, 인간인가 하는 정체성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수파니로서의 자신과 인간으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고민하고 혼란스러워 해야만 했었다. 그런 그에게 야미의 말은 마치 구원과도 같다.
“수파니도 인간도 아닌 최고의 수컷?”
[인간의 말? 뭐라고 한거야?]
흥분한 탓일까?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말로 떠든 모양이다. 알 수 없는 말에 그를 바라보는 야미의 눈빛이 당혹과 의심으로 물든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인간의 말이, 그 알 수 없는 내용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 모양이다.
[아... 미안... 그러니까 수파니로서나, 인간으로서 최고가 아니라, 수컷으로서 최고라는 거지?]
[응. 솔직히 말하면 수파니를 연상시키는 그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좋아. 수파니에게는 보기힘든 그 강인한 콧날이나 턱선도 아름답고. 어쩌면 수파니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너는 멋져.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흥분하게 만들지.]
[정말?]
[응. 정말 멋져. 지금 당장에라도 너를 안고 싶어. 알몸으로 껴안고 뒹굴고 싶어. 내 보지에 너의 자지를 넣고 마음껏 조이며 쾌락에 빠져들고 싶어. 그런 욕망을 느껴. 너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마저 느끼게 돼.]
[헤에... 노골적이네?]
[이상한거야?]
[아니. 인간은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거든. 빙빙 돌려서 드러나지 않게 얘기해야 예의를 갖추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래서 조금 생소한 느낌이야. 그렇게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얘기해오는 건.]
[흐응... 인간들은 참 복잡하게 사는구나.]
[글세... 복잡하다기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기 때문에 그래. 세상에 무수히 다양한 가능성과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특정한 틀에 고정시켜놓고서야 안심할 수 있는 거지.]
[복잡해.]
[하하하하... 사고가 복잡하고 다양하기로는 엘프나 수파니가 인간보다 나아. 역설적이게도 그 다양성과 관용 때문에 인간의 단순함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복잡해 보이는 것 뿐이야.]
[와아... 대단해. 뭔 말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설득력 있어.]
[하하하... 내가 좀 그렇지?]
[응.]
히리스나 칼레아나, 아니 다른 인간의 여자였으면 어떤 식으로든 태클이 날아왔을 것이다. 혼자 잘난 체 한다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비난과 함께 때때로 폭력도 동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파니는 다르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자신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왠지 좀 재미없다.]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뭔가 빠진 듯 심심한 건 역시 습관 때문일 것이다. 자화자찬에 빠져있을 때 곤란해하는 여자들의 표정이나, 그들의 짜증 섞인 방해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즐기는 수준에까지 와있고 보니 이토록 순순히 인정해주니 왠지 재미가 없다.
[응?]
[아냐, 아무것도.]
[싱겁긴.]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거고, 역시 자신을 인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비록 스스로가 과장해 만든 허구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를 받아들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매우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다. 문득 조금전 그녀가 매달려 올 때의 흥분이 떠오른다. 그 짙은 빛 입술과 하얀 이, 말캉거리며 흔들리던 유방을 보며 느끼던 충동이 다시금 그의 혈관에서 끓어오른다.
[할래?]
[응?]
[나랑 섹스 하고 싶다며?]
[에?]
[그러니까 나랑 하자구. 나도 하고 싶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이모랑 섹스하고 싶다구.]
[정말?]
[응.]
[헤헤헤... 좋아.]
순순한 승낙. 에렌프에게 들은 것이 맞다면 17년 전 마을이 불탔을 때 야미의 나이는 고작 15살에 불과했다. 섹스에 솔직한 수파니라 하더라도 아직 첫경험을 하기에는 이른 나이. 이후 다른 수파니라고는 언니 엘디란 한 명만 보았을 뿐이니 분명 아직껏 처녀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적극적으로 섹스를 요구하는 것은 역시 인간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역시... 새롭다.]
[응?]
[이모... 처녀지?]
[처녀?]
그러고보니 수파니의 말에는 처녀라는 말도 없다. 처녀 비처녀 구분이 없으니 처녀라는 말이나 개념이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수파니인 야미가 처녀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아직 섹스 경험 없냐구?]
[아... 응. 아직 없어. 섹스할만한 상대를 못만났거든.]
섹스의 경험 따위에 특별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경험이 없다고 조바심내지도 않고, 경험이 있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유세하지도 않는다. 경험은 경험일 뿐이다. 섹스라는 행위의 지나온 흔적일 뿐인 것이다.
[운이 좋네? 첫섹스의 상대가 나라서?]
[운이 좋아?]
[그럼. 이래뵈도 내가 섹스 하나만큼은 정말 잘한다구. 힘이면 힘! 테크닉이면 테크닉! 모든 면에서 인간 가운데 최고라 할만하지. 어머니도 인정했다구. 어머니가 경험했던 수파니들 가운데서도 나만한 남자는 없었다구.]
[와아... 진짜?]
[응!]
[대단하다...]
저렇게 솔직한 표정을 지으며 칭찬해주니 콧등이 근질거리는 것이 콧날이 당장에라도 솟아올라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절로 가슴이 벌어지고 손이 허리에 올려진다. 어느새 일어선 자지가 다리의 중심에서 우뚝 선 채 앞으로 내밀어져 있다. 히리스가 그토록 싫어하던 ‘근거없는 자만심’ 자세.
[이모는 진짜 운이 좋은거라구. 나같은 멋진 남자랑 섹스를 할 수 있는데다, 거기에 첫섹스라니. 이렇게 운이 좋은 여자는 거의 없다구. 전세계를 통틀어봐도 23명밖에 안될걸?]
[그러니까 너와 첫섹스를 경험한 여자가 모두 23명이라는 거지?]
순간적으로 칸피니스의 말에 숨은 의미를 찾아낸다. 저리도 순진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결코 어리석지는 않다. 역시 수파니답다고 할 수 있다.
[수파니도 질투해?]
[응.]
[그럼 말 안할래.]
[하지만 거짓말 하는 건 더 싫어해. 사실을 숨기는 것도 그렇고.]
[꼭 얘기해야만 하는 해?]
[응. 그게 내 권리라 생각하는데?]
[맞아. 이모의 권리지.]
[그럼 얘기해줄 수 있겠지?]
진지한 표정. 조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호기심이 순수함 속에 빛나듯 그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칸피니스는 비로소 그녀를 이해한다. 아마도 그가 어떠한 말을 하든 그녀는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칸피니스 자신이지, 그가 경험한 여자들과의 관계가 아니니까.
[나와 섹스해본 상대가 모두 23명. 그 가운데 아직도 섹스를 계속 즐기는 상대가 22명. 1명은 아마도 오늘 죽은 것 같아. 됐어?]
[그럼 내가 24번째라는 거야?]
[응. 그리고 며칠 안에 25번째가 생길거야.]
[야아... 능력있구나.]
[그지?]
[응. 네가 말한대로 너와 첫 섹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 섹스에 미숙한 남자가 그렇게 많은 여자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을테니까.]
역시 그녀는 칸피니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의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질투하거나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칸피니스의 섹스 능력을 판단하는 지표로 삼는다. 솔직함이란 어쩌면 객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칸피니스는 잠시 해본다.
[흣... 내가 좀 그렇지. 그런데... 질투 안해?]
[질투 하고 있는 중이야.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섹스상대가 20명이 넘는다는 사실에 조금은 기분이 상했거든. 하지만 질투 때문에 네가 싫어지지는 않은 것 같아. 여전히 너와 섹스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더 강하거든.]
[하하하... 질투마저도 넘어선 사랑이라는건가?]
[사랑? 그게 사랑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너와 섹스하고 싶은 건 분명해. 너의 섹스파트너 가운데 한 명이 되더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상당히 뜨겁고 정열적인 말이건만 정작 말하는 야미는 더없이 침착하고 냉정하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일 것이다. 진심이기에 오히려 그 진실을 보고라도 하듯 저리 건조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칸피니스의 가슴이 마치 타오를 듯 뜨거워진다.
[아아... 이렇게 뜨거운 사랑고백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하자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응?]
[나는 네가 내 가족이었으면 좋겠어. 언니의... 에렌프 언니의 아들인 네가 내 가족이기를 바래. 외로웠거든. 무려 11년이야. 11년동안 나는 혼자서 이 흑암의 숲에서 살아왔다구. 그 고독이라는 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겨질 정도였어. 그런데 네가 나타난거야. 언니의 아들인 네가. 가족이 될 수 있는 네가, 남자로서 내 앞에 나타난거야.]
[가족이라면... 지금도 가족이잖아?]
[그건 인간의 가족이야. 수파니의 가족은 부모와 자식, 형제, 그리고 배우자 뿐이야.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남이지. 이모나 조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수파니 말에는 이모나 조카 같은 말이 없는 것이고.]
[그 말은... 섹스를 통해서라도 나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거야?]
[응. 배우자만이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섹스가 배우자의 필요요건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니까.]
[조금은 서운한데...?]
[왜? 너를 사랑해서 섹스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서?]
[솔직히 그래.]
[하지만 상관없지 않니?]
[뭐가?]
[인간의 사랑은 어떤지 모르지만 수파니의 사랑은 매우 다양해. 상대의 외모나 사냥실력, 힘, 섹스능력 등의 다양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지. 가족이 되고 싶다는 것도 그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결론은 섹스를 하고 싶어 미칠 정도의 충동을 느끼는 건 같으니까. 섹스를 통해 너를 소유하고 싶은 그 욕망은 결국 같은 것 아니겠니? 굳이 사랑이니 뭐니 구분해야 할 필요 있겠어?]
어린애같은 외모에 깜빡 속았다. 역시 야미는 칸피니스보다 연장자다. 나이에 걸맞는 깊은 생각이 그녀의 말 곳곳에서 묻어난다. 조숙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칸피니스조차도 미처 생각해본 적 없는 영역이다.
[그건 그렇네.]
[동의해?]
[인정.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예. 그럼 지금 할까?]
[벌써 해가 떠오고 있는데? 너 사람들에게 돌아가봐야 하는 거 아냐?]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없어지면 혼자 떨어져 있으면 몬스터들에게 잡아먹히겠거니 하고 기대하고 있을 걸? 조금 놀다 들어가도 상관없어.]
[참, 그렇다고 했지? 구박덩이라고.]
[응.]
재미있다는 듯 소리없이 웃던 야미의 얼굴이 다시 어둡게 가라앉는다. 이제는 사라졌다고 믿었던 습기가 사라져가는 어둠과 함께 그녀의 주위로 무겁게 내려앉는다.
[이제 괜찮아?]
[응?]
[에렌프 언니의 일...]
[아아...]
[그렇게 슬퍼했잖아? 그런데... 괜찮아?]
[괜찮지 않아. 전혀. 아파 죽겠어. 여기가... 여기가 아파서 숨도 못쉬겠어.]
칸피니스가 손가락을 들어 심장부위를 가리키자 야미가 다가와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차갑게 식은 따뜻한 체온이 거친 그녀의 손바닥을 통해 그의 손등으로 뜨겁게 전해진다. 심장이 더욱 급격히 고동친다.
[아파?]
[응.]
[그런데 해도 괜찮은거야?]
자신을 바라보는 야미의 걱정어린 눈빛에 약간의 비난이 서려있음을 칸피니스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아직도 슬픔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섹스를 한다는 건 수파니에게도 역시 드문 일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칸피니스에게도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절실한 이유가 있다. 야미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이유가.
[나도 하고 싶으니까. 이모랑... 이모랑 나도 가족이 되고 싶어. 어머니 대신...]
[에렌프 대신?]
[대신이라 싫어?]
[훗... 그럴 것 같아?]
나름대로 심각하게 얘기하는 칸피니스와는 달리 야미의 표정은 어느새 여유로운 그것으로 돌아와 있다. 조카를 놀리는 이모의 표정이라기보다는, 철없는 애인을 나무라는 여자의 그것을 닮은 눈빛과 입매가 그를 장난스럽게 올려다본다.
[아냐?]
[이유야 뭐든 상관없잖니? 중요한 건 서로 안고 싶다는 것. 서로를 소유하고 같이 있고 싶다는 것. 그 솔직한 충동이 중요한 것 아니겠니? 왜 그 이유따위에 그리 집착하지?]
수파니의 사고방식은 바보같을 정도로 단순하다.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있는 존재나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고민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있는 사실을 어떻게든 다른 사실에 끼워 맞추려 하다 보니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제거하면 모든 일은 고민 자체가 바보스러워질 정도로 쉽고 단순해진다.
[아아... 정말 바보같네?]
[훗... 알겠니?]
[응. 바보같았어. 정말.]
역시 칸피니스도 인간이었다. 아버지 쪽의 반쪽이 인간이라서 인간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이에서 자라면서 인간과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기에 인간이 갖고 있는 단점까지 모두 갖게 되었고, 그것이 그가 인간이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어때? 지금 할거야?]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야미가 은근슬쩍 그에게 섹스를 재촉해온다. 슬쩍 밝아오기 시작한 하늘의 빛을 받아 붉게 상기된 얼굴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가 기대했던대로 귀엽고 유혹적인 모습이다. 새삼 불끈 솟아오르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이 느껴진다.
[그건 내가 물었던 말이라고.]
[그렇네?]
[여기서 할까?]
이번에는 칸피니스가 서두른다. 어스름한 빛을 받아 빛나는 야미의 모습에 치밀어오른 욕망이 그로 하여금 조바심내게 하는 것이다.
[여긴 좀 그렇다. 저쪽으로 가면 좋은 곳이 있어.]
[야미 이모의 집?]
[집이라기보다는... 그냥 사냥할 때 잠시 머무는 곳이야.]
[그래?]
[갈래?]
[응]
[서두르자.]
[그렇게 급해?]
서두르는 야미의 모습에 칸피니스는 평소 히리스에게 하던대로 너무 밝히는 게 아니냐며 은근슬쩍 놀려보려 시도해본다. 야미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때문이다.
[응.]
하지만 역시 야미는 수파니다. 인간일 수밖에 없는 히리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놀려먹으려 해도 상대가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어해야 가능한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솔직해지면 괜히 놀려먹으려던 사람만 무안해진다.
[쳇! 재미없어.]
[응?]
[아냐. 어서 가자.]
[그래.]
그래도 있으면 즐겁다. 그림자 하나 없는 순수한 밝은 웃음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같이 웃게 된다. 천진스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녀를 웃게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도 행복해하는 자신을 느낀다.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더 밝아진 숲속에 하얗게 드러나는 그녀의 짙은색 알몸이 뒤따라가는 그의 눈 가득 들어차온다. 순수한 욕망과 천진한 행복감, 그 절실한 희구와 함께 밝아오는 그녀의 알몸처럼 그의 마음이 그녀에 대한 감정으로 가득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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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 글에도 등수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등수놀이라 하는 것은 오로지 인기있는 글에서만 하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는 글에서 등수놀이를 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 글을 관심있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증거인 듯 해서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등수놀이한 글의 조회수가 무려 닷새동안 4천을 못넘더군요. 왠지 글 쓸 의욕을 떨어뜨리는, 바로 아랫 글과도 크게 비교되는 조회수에 한숨만 나왔습니다. 등수놀이보다는 조회수가 좋은데...
제 글을 가만 보고 있으면 시트콤처럼 각 회별로 단락지어져 있습니다. 각 회가 하나로 연결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독자적인 구조를 가지고 그 안에서 완결되어집니다. 아마도 그날그날 연재분을 바로 써서 올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속적으로 글을 쓰고 그 일부를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분량만 그때그때 쓰기 때문에 그 안에서 완결된 구조가 나오는 것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꽤 마음에 듭니다.
연재주기가 갑자기 길어진 이유는 요즘 슬럼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슬럼프입니다. 취직을 못하다보니 자다가도 불안감에 벌떡벌떡 깨어나곤 하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거든요. 글을 쓸 때도 불안해서 집중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불안감과 공포 때문에 항상 좌불안석입니다. 그래서 그 불안감을 분출하는 방편으로 야설 하나를 더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제 카페에서만 연재합니다. 연재주기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카페 가입해주신 분들께 대한 일종의 서비스 측면도 있구요.
다음회 예고>> 다음회 본편의 내용은 다음회 예고와 전혀 상관없이 진행될 겁니다. 언제는 안그랬나요? 예고와 본편은 다르다.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식입니다.
살짝 웃어보이는 그 눈에 그렁그렁 눈물이 쏟아질 듯 가득 고여있다. 언니가 죽었을 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은 때문일 것이다. 헤어진 지 17년만에 들은 너무도 친했고, 사랑했던 언니의 죽음이 그녀를 차마 견딜 수 없는 슬픔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괜찮아?]
[헤헤헤... 아니...]
힘없이 고개를 젓느라 가득 고인 눈믈이 그만 눈꼬리를 타고 넘쳐흐른다. 작은 빛을 받아 반짝이며 작은 물방울이 짙은 색 뺨을 타고 길게 선을 그리며 흐른다. 마지막 맺혀 대롱거리는 턱밑으로 나머지 눈물이 흘러 눈물방울이 떨어질 듯 커진다.
툭--
이내 눈물이 떨어진다. 어둠속에 어디로 떨어지는가는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고운 턱선의 끝에 매어달려 있던 그 작은 물방울이 보이지 않는 것으로 눈물이 떨어진 것을 알 뿐이다.
[슬퍼... 정말... 정말로 슬퍼...]
작은 목소리. 귀기울여 듣지 않으면 들리지도 않을 것 같은 그 짧은 말에 칸피니스는 가슴이 찢기는 듯한 아픔을 느낀다. 그녀가 느끼는 그 슬픔을, 그녀와 같은 이유로 느낀 바 있기 때문이다. 아니 지금도 잠시 잊고 있었을 뿐 그녀와 같이 슬퍼하고 있는 중이다.
[어... 언니는... 정말 죽은걸까?]
[아마도...]
[살아있을 가능성은 없을까? 너도 직접 본 건 아니잖아. 그냥 추측일 뿐인거잖아?]
[나도 그렇게 믿고 싶어.]
믿고 싶지 않을 것이다. 칸피니스도 그러니까. 하지만 믿고 싶지 않더라도 분명 존재하는 사실이다. 그녀가 믿든 믿지 않든 그 사실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수... 수파니... 라서?]
[응]
[그... 그... 그는...]
[프란츠?]
[그래. 프란츠는 언니를 사랑한다고 말했잖아. 그래서 살려서 데려간거고. 그런데 왜 죽도록 내버려두는거지? 사랑한다면서 왜 지켜주지 않는거야?]
수파니인 그녀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인간이 말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특히 귀족이 말하는 사랑이 얼마나 더럽고 유치한 것인지 수파니인 그녀는 영원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그녀는 수파니니까. 반쪽이나마 인간인 칸피니스와는 달리 완벽한 수파니이기에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이라서 그래.]
[인간?]
[별로 특별한 게 아냐. 인간 사회에서 이런 일은 그리 이해 못할 일도 아니라구. 특히 프란츠 같은 덜떨어진 쓰레기자식들에게는 더욱 그렇지.]
[고... 작... 그런 인간에게 당한거야? 언니는? 우리는 고작 그런 정도의 인간에게 그렇게 몰살당했던 거고?]
억울한 표정이다. 17년 전, 프란츠가 기사들을 이끌고 평화롭던 자신의 마을을 덮치던 그날이 떠오른 모양이다. 그 처절한 죽음과 파괴의 기억이, 그 고통이, 그녀의 고독으로 매마른 가슴을 아프게 헤집는다. 그 절망어린 기억이 그토록 치졸한 인간에 의해 저질러졌다 생각하니 고통은 차라리 증오가 되어 그녀의 눈물 속에서 절규한다.
[원래 그런 놈들일 수록 인간 사회에서는 큰 힘을 갖는 법이니까. 인간 사회에서 강하다고 하는 것을 얼머나 쓰레기같느냐 하는 것과 같은 뜻이라고 보면 돼.]
[그... 그런 게 인간인거야?]
[아마도. 대체로 프란츠만도 못한 것들이 높은 작위에 큰 권력을 지니고 있는 경우가 많으니까.]
[그래...]
[인간을 이기기 위해서는 인간보다 더욱 탐욕스럽고, 더욱 잔인하고, 더욱 저열하고, 더욱 교활해져야 해. 그렇지 못하면 결코 인간을 이길 수 없어. 인간 스스로도 인간을 이길 수 없지.]
[그러지 못하면 지상의 모든 종족은 인간에게 멸망한다는 거야?]
[아마도... 아마 인간 또한 인간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는 못할거야.]
너무 어두운 얘기인 탓일까? 야미의 얼굴이 한껏 어두워진다. 어두운 숲속에서 표정까지 어두워지니 그녀의 맑은 눈동자마저도 어둠에 가려 빛을 잃는 듯 보인다. 혹시나 그녀가 사라지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급히 손을 내밀어보려다 갑작스레 들려온 장난스런 목소리 손을 움츠린다.
[훗... 그러니까 마치 뭐 같다.]
다시 밝아진 표정. 무리하는 것이 역력히 눈에 보인다. 아마도 지나치게 우울해지는 자신을 추스르려 억지로라도 밝은 표정을 지어보이는 것이리라. 이럴 때 그녀의 곁에 있어줄 수 있다는 것이 너무도 고맙기만하다.
[현자 같다는 생각 들지 않아?]
[현자?]
아마도 수파니는 현자라는 말을 모를 것이다. 수파니 사회에는 현자라는 직업이 없으니까. 마법사니 기사니 하는 것도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나마 인간들과 싸우면서 개념은 가지고 있는 반면, 현자는 직접 부딪히는 일이 없는 탓인지 아예 개념조차 잡혀있지 않은 수파니들이 대부분이다. 야미도 예외는 아닌 모양이다.
[응. 굉장히 현명하고 아는 게 많은 사람. 다른 사람에게 조언해주고, 지식을 가르쳐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야.]
[그런 것도 있는거야? 인간들에서는?]
[그래. 워낙에 머릿수가 많다보니, 할 짓 없는 사람들도 많거든.]
[헤헤헤... 그렇게 말하고 있으니 인간같지 않아 보여, 칸피니스는.]
[반쪽은 수파니거든.]
[참, 그렇지! 네가 언니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잠시 깜빡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하나 밖에 없는 조카인데?]
[조카?]
실수다. 수파니에게는 조카라는 개념이 없다는 사실을 잠시 잊었다. 야미에게 잠시 자신을 잊었다고 뭐라 한 주제에 실수도 이런 실수가 없다.
남은 반쪽이 인간인데다 인간 사회에서 워낙에 오래 산 덕에 칸피니스의 생각이나 말의 대부분은 인간을 기준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무의식적으로 인간적인 사고방식이 말로, 행동으로 그대로 드러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미안. 수파니에게는 조카라는 개념이 없었지?]
[조카... 라는 건 언니의 아들이라는 뜻인 거야?]
[언니나 오빠, 남동생이나 여동생 같은 형제의 아들이나 딸을 가리켜 조카라고 불러. 그리고 조카들은 부모의 형제를 이모나 고모, 삼촌등으로 부르지.]
[그럼 나는 너한테 어떻게 되는거야?]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눈. 그렁하니 고인 눈물만 아니라면 슬픔따위는 보이지 않는 해맑은 표정이다. 여전한 슬픔 속에서도 작은 호기심을 놓치지 않고 집중하는 그 순수함이 어머니에게서 들었던 야미의 이미지 그대로다.
[이모.]
[이모?]
[응. 어머니의 여자형제는 대개 이모라고 불러.]
[이모... 이모... 이모...]
신기한 지 몇 번이고 되뇌이는 모습이 처음 말을 배우는 아이와도 같아 정말 귀엽다. 나이에 비해 지나칠 정도로 어려보이는 갸녀린 외모의 그녀가 그러고 있으니 더욱 귀여움이 더한다.
[한 번 이모라고 해봐.]
[에?]
[해봐, 이모라고.]
코앞까지 바싹 다가선 그녀의 검은 눈을 보고 있으니 왠지 가슴이 철렁하다. 눈을 살짝 아래로 떨구나 어둠 속에 짙은 빛의 입술이 보인다. 그 짙은 입술 사이로 보이는 하얀 이. 그 아래로 풍만한 유방이 가녀린 그녀의 알몸 아래에서 이리저리 흔들린다. 가슴이 철렁하는 정도가 아니라 심장이, 가슴의 모든 것이 그대로 아래로 떨어져 사라지는 듯한 충격이다.
[이... 이모...]
[다시 한 번!]
[이모.]
[이름 넣어서.]
[야미 이모.]
[한 번 더.]
[야미 이모.]
그녀의 알몸에 정신이 혼미해진 것도 있고 해서, 그녀가 왜 자신을 이모라 부르게 하는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이모라는 개념이 없는 수파니인 그녀가, 왜 굳이 자신의 이름까지 넣어 이모라 부르게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모라 부를 때마다 기쁨으로 뿌연 습막이 어리는 그녀의 눈을 보고 있으니 어렴풋하게나마 왜 이러는지 이해가 간다. 아마도 가족이 그리운 것일 게다. 수파니에게 있어 가족이 아닌 칸피니스지만 인간의 개념을 빌어서라도 가족으로 만들고 싶을 정도로 가족이 절실하기에 굳이 이모라 부르게 하는 것이리라.
[다시 한 번.]
[야미 이모.]
[왜 불러, 조카?]
에렌프가 말하길 그녀의 동생인 야미는 죽을 때까지 7살 먹은 아이와도 같은 모습으로 살 것 같은 아이라고 했었다. 순수함과 천진함을 그대로 안고 성인이 되어 아이인 그대로 늙어죽을 것이라고, 그래서 더욱 사랑스러운 아이라고 자랑하듯 말했었다. 그 말의 의미를 칸피니스는 비로소 확인한다.
[훗... 어린애같애.]
[어린애?]
[응. 어린애처럼 귀여워.]
[헤... 언니랑 같은 말을 하네?]
[아들이니까.]
[그렇구나...]
에렌프를 생각하니 격정이 치밀어오른 것일까? 야미는 불현듯 몸을 일으켜 칸피니스를 껴안아온다. 차갑게 식은 알몸이 옷 위로 뜨겁게 다가온다. 탄력있는 부드러운 알몸이, 그 유방이 얇지 않은 천 너머로 마치 아무것도 없는 듯 마치 현실인양 선명하게 느껴진다.
“웃...”
자극이 너무 심하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여자에 익숙할대로 익숙한 칸피니스지만 이런 상황에서조차 태연할 수는 없다. 아름다운 여자의, 그만큼이나 더 아름다운 알몸이 이리도 가까이 밀착해있는 상황에서 아무렇지 않다면 그건 색마 이전에 남자도 아닐 거이다.
[왜?]
순수한 눈빛, 그 안에 일말의 불안함이 감돈다. 자극에 대한 민감한 반응이 자신에 대한 불편함이나 거부가 아닌가 의심하는 눈초리다. 오랜 고독의 슬픔과 절망이 느껴지는 듯한 너무도 애㉯?집착에 그만 울컥 눈물이 솟을 것 같다.
[이제... 껏... 혼자 살아온거야?]
[응?]
[그때 이후... 그러니까 마을이 불탄 이후... 주욱... 이모 혼자였었던 거냐구.]
[아아... 응...]
들리지도 않을 듯한 낮은 대답. 힘없이 늘어져 사라지는 그 목소리에 함뿍 습기가 배어있다. 쥐어짜면 주루룩 흐를 것만 같은 짠 물기가 말꼬리를 잡아 끄는 듯 어느새 그 대답은 축축한 새벽의 숲공기 속으로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17년간 아무도 없었던거야?]
[아... 아니... 언니가... 엘디란이 있었어. 11년 전까지... 그때까지 언니가, 한 팔을 잃은 채로 내 곁에 함께 있었어.]
[11년 전까지?]
[그래. 아직 어렸던 나에게 수파니의 풍습과 사냥기술을 가르쳐주었지. 하지만 한 팔이 없어서... 흑암의 숲에서 한 팔이 없이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아니?]
[아아... 대충은...]
[팔이 하나 없다는 건 달릴 때 중심을 제대로 잡을 수 없다는 뜻이야. 숲과 같이 빠르게 중심을 움직일 필요가 있는 곳에서 그건 정말 치명적인 약점이지. 위험한 적을 만나도 제대로 도망조차 칠 수 없다는 의미니까.]
[그럼 엘디란은...?]
[오거에게 죽었어. 나와 함께 도망치다가 끝내 뒤쳐져서는... 아무리 수파니라도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여자아이가 오거와 일대일로 싸운다는 건 무리거든. 그래서 도망쳐야 하는데... 그 한 팔이... 앞을 가로막은 나무를 피하다가 중심이 흐트러녔을 때 한 팔 만으로 중심을 잡느라 끝내는...]
[아아...]
더 이상 듣지 않아도 알 듯하다. 한 팔이 없이 이런 수풀 속을 뛰어다닌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그도 잘 알고 있으니까. 오히려 6년씩이나 그 몸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기적과도 같다. 아마도 야미의 슬픔이 그리 크지 않은 것은 그러한 점을 그녀 스스로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럼 그때부터 계속 혼자였던거야?]
[응. 아무도 없었으니까. 그때 마을에서 도망친 수파니가 더 있다는 얘기를 언니에게 듣기는 했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흠...]
[나... 지금 알몸인 거 흉하지?]
[에?]
뒤늦은 부끄러움인 것일까? 어둠 속이라 확인하지는 못하지만 그녀의 얼굴이 왠지 붉게 물들어 있을 것 같은 수줍은 목소리다.
[수파니도 옷...은 입어. 다만... 내가 옷을... 만들... 줄... 몰라서... 언니도 아직 어려서 그런 건 못배웠거든. 천이 있으면 옷을 만들 줄은 아는데 천을 짜는 방법을 몰랐어. 그래서...]
[아아...]
수파니에게 있어 알몸을 보이는 것은 특별히 부끄러운 것이 아니다. 다른 사람 앞에 알몸을 보인다고 성적인 수치감따위 느끼지도 않는다. 수파니가 자신의 알몸을 부끄럽게 여길 때는 그 알몸이 성적인 의미를 지닐 때뿐이다.
[나랑 자고 싶은거야?]
[응?]
[어머니한테 그렇게 들었거든. 수파니가 자신의 알몸을 부끄럽게 여기는 건 오로지 자고 싶은 상대 앞에서 뿐이라고. 자신의 몸이 다른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 스스로를 부끄럽게 여기게 된다고 그렇게 들었거든.]
실제 에렌프는 프란츠와 17년간 무수한 섹스를 나누면서도 한 번도 자신의 알몸을 보이는 것을 부끄러워해본 적 없다. 심지어 칸피니스와 섹스를 나눌 때도 그녀는 자신의 알몸을 아무런 부끄럼없이 내보였었다. 칸피니스가 에렌프와의 섹스를 섹스가 아닌 다른 의미로 받아들이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부끄러움이 없는 상대와의 섹스는 섹스가 아니라는 수파니의 방식대로라면 그것은 분명 섹스가 아니었다는 것이 칸피니스의 판단이다. 그에 대해 에렌프가 특별히 언급한 적은 없지만 아마도 칸피니스의 생각이 맞을 것이다.
[아아... 아마도... 아마도 그럴거야.]
그녀 자신도 미처 깨닫지 못했는지 몹시 놀라고 당황한 표정이다. 더듬거리며 긍정하는 것이 이런 상황을 전혀 예상치 못했다는 것을 역력히 보여준다.
[넌... 정말 멋져. 매력적이야. 예전에... 그러니까 우리 마을에 아직 아무일 없었을 때에도 너처럼 멋진 남자는 없었던 것 같아. 워낙 오래된 기억이라 분명치는 않지만 확실히 너만한 남자는 없었어.]
[인간으로서? 아니면 수파니로서?]
아마도 인간과 수파니의 혼혈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떠올린 탓일 것이다. 칸피니스가 이리도 예민하게 반문해 오는 것은. 그 마음을 다 알지는 못해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기에 야미가 괜찮다는 미소를 지어보인 채 살짝 고개를 저어보이는 것일테고.
[수파니는 수파니를 고집하지 않아.]
[응?]
[수파니는 모든 종족의 어머니야. 모든 종족은 수파니에게서 나왔지. 그렇기 때문에 수파니에게는 모든 종족이 같아. 수파니든, 인간이든, 엘프든 종족으로 상대를 구분하거나 판단하지 않지.]
[그렇다는 건...?]
[넌 내가 이제껏 보아온 최고의 수컷이야. 칸피니스.]
겉으로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의연한 모습이었지만, 칸피니스에게 있어서도 수파니인가, 인간인가 하는 정체성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었다. 그래서 항상 수파니로서의 자신과 인간으로서의 자신 사이에서 고민하고 혼란스러워 해야만 했었다. 그런 그에게 야미의 말은 마치 구원과도 같다.
“수파니도 인간도 아닌 최고의 수컷?”
[인간의 말? 뭐라고 한거야?]
흥분한 탓일까? 자신도 모르게 인간의 말로 떠든 모양이다. 알 수 없는 말에 그를 바라보는 야미의 눈빛이 당혹과 의심으로 물든다. 느닷없이 튀어나온 인간의 말이, 그 알 수 없는 내용이 그녀를 불안하게 만든 모양이다.
[아... 미안... 그러니까 수파니로서나, 인간으로서 최고가 아니라, 수컷으로서 최고라는 거지?]
[응. 솔직히 말하면 수파니를 연상시키는 그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가 좋아. 수파니에게는 보기힘든 그 강인한 콧날이나 턱선도 아름답고. 어쩌면 수파니이기 때문에 좋은 것이고, 인간이기 때문에 아름다운 것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쨌든 너는 멋져. 보는 것만으로도 나를 흥분하게 만들지.]
[정말?]
[응. 정말 멋져. 지금 당장에라도 너를 안고 싶어. 알몸으로 껴안고 뒹굴고 싶어. 내 보지에 너의 자지를 넣고 마음껏 조이며 쾌락에 빠져들고 싶어. 그런 욕망을 느껴. 너를 보고 있으면, 그렇게 해야만 한다는 의무감마저 느끼게 돼.]
[헤에... 노골적이네?]
[이상한거야?]
[아니. 인간은 그렇게 솔직하게 얘기하지 않거든. 빙빙 돌려서 드러나지 않게 얘기해야 예의를 갖추는 거라고 생각하고 있지. 그래서 조금 생소한 느낌이야. 그렇게 직설적으로 솔직하게 얘기해오는 건.]
[흐응... 인간들은 참 복잡하게 사는구나.]
[글세... 복잡하다기보다는 지나칠 정도로 단순하기 때문에 그래. 세상에 무수히 다양한 가능성과 가치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특정한 틀에 고정시켜놓고서야 안심할 수 있는 거지.]
[복잡해.]
[하하하하... 사고가 복잡하고 다양하기로는 엘프나 수파니가 인간보다 나아. 역설적이게도 그 다양성과 관용 때문에 인간의 단순함을 이해하는 것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복잡해 보이는 것 뿐이야.]
[와아... 대단해. 뭔 말인지는 모르지만 굉장히 설득력 있어.]
[하하하... 내가 좀 그렇지?]
[응.]
히리스나 칼레아나, 아니 다른 인간의 여자였으면 어떤 식으로든 태클이 날아왔을 것이다. 혼자 잘난 체 한다고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 비난과 함께 때때로 폭력도 동반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파니는 다르다.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는 것은 자신의 사랑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만큼이나 그들에게는 자연스러운 일이다.
[왠지 좀 재미없다.]
기분이 좋기는 하지만 뭔가 빠진 듯 심심한 건 역시 습관 때문일 것이다. 자화자찬에 빠져있을 때 곤란해하는 여자들의 표정이나, 그들의 짜증 섞인 방해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즐기는 수준에까지 와있고 보니 이토록 순순히 인정해주니 왠지 재미가 없다.
[응?]
[아냐, 아무것도.]
[싱겁긴.]
재미없는 건 재미없는 거고, 역시 자신을 인정해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비록 스스로가 과장해 만든 허구의 것이라 할지라도 그 자체를 받아들여주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매우 즐겁고 행복한 경험이다. 문득 조금전 그녀가 매달려 올 때의 흥분이 떠오른다. 그 짙은 빛 입술과 하얀 이, 말캉거리며 흔들리던 유방을 보며 느끼던 충동이 다시금 그의 혈관에서 끓어오른다.
[할래?]
[응?]
[나랑 섹스 하고 싶다며?]
[에?]
[그러니까 나랑 하자구. 나도 하고 싶어. 지금 당장. 이 자리에서 이모랑 섹스하고 싶다구.]
[정말?]
[응.]
[헤헤헤... 좋아.]
순순한 승낙. 에렌프에게 들은 것이 맞다면 17년 전 마을이 불탔을 때 야미의 나이는 고작 15살에 불과했다. 섹스에 솔직한 수파니라 하더라도 아직 첫경험을 하기에는 이른 나이. 이후 다른 수파니라고는 언니 엘디란 한 명만 보았을 뿐이니 분명 아직껏 처녀일 것이다. 그럼에도 이토록 적극적으로 섹스를 요구하는 것은 역시 인간에게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역시... 새롭다.]
[응?]
[이모... 처녀지?]
[처녀?]
그러고보니 수파니의 말에는 처녀라는 말도 없다. 처녀 비처녀 구분이 없으니 처녀라는 말이나 개념이 있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수파니인 야미가 처녀라는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도 당연할 것이다.
[아직 섹스 경험 없냐구?]
[아... 응. 아직 없어. 섹스할만한 상대를 못만났거든.]
섹스의 경험 따위에 특별한 의미도 부여하지 않는다. 경험이 없다고 조바심내지도 않고, 경험이 있다고 부끄러워하거나 유세하지도 않는다. 경험은 경험일 뿐이다. 섹스라는 행위의 지나온 흔적일 뿐인 것이다.
[운이 좋네? 첫섹스의 상대가 나라서?]
[운이 좋아?]
[그럼. 이래뵈도 내가 섹스 하나만큼은 정말 잘한다구. 힘이면 힘! 테크닉이면 테크닉! 모든 면에서 인간 가운데 최고라 할만하지. 어머니도 인정했다구. 어머니가 경험했던 수파니들 가운데서도 나만한 남자는 없었다구.]
[와아... 진짜?]
[응!]
[대단하다...]
저렇게 솔직한 표정을 지으며 칭찬해주니 콧등이 근질거리는 것이 콧날이 당장에라도 솟아올라 하늘을 꿰뚫을 것 같은 느낌이다. 절로 가슴이 벌어지고 손이 허리에 올려진다. 어느새 일어선 자지가 다리의 중심에서 우뚝 선 채 앞으로 내밀어져 있다. 히리스가 그토록 싫어하던 ‘근거없는 자만심’ 자세.
[이모는 진짜 운이 좋은거라구. 나같은 멋진 남자랑 섹스를 할 수 있는데다, 거기에 첫섹스라니. 이렇게 운이 좋은 여자는 거의 없다구. 전세계를 통틀어봐도 23명밖에 안될걸?]
[그러니까 너와 첫섹스를 경험한 여자가 모두 23명이라는 거지?]
순간적으로 칸피니스의 말에 숨은 의미를 찾아낸다. 저리도 순진한 표정을 짓고는 있지만 결코 어리석지는 않다. 역시 수파니답다고 할 수 있다.
[수파니도 질투해?]
[응.]
[그럼 말 안할래.]
[하지만 거짓말 하는 건 더 싫어해. 사실을 숨기는 것도 그렇고.]
[꼭 얘기해야만 하는 해?]
[응. 그게 내 권리라 생각하는데?]
[맞아. 이모의 권리지.]
[그럼 얘기해줄 수 있겠지?]
진지한 표정. 조금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 호기심이 순수함 속에 빛나듯 그를 응시하고 있다. 그녀의 눈빛을 보면서 칸피니스는 비로소 그녀를 이해한다. 아마도 그가 어떠한 말을 하든 그녀는 동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녀가 원하는 것은 칸피니스 자신이지, 그가 경험한 여자들과의 관계가 아니니까.
[나와 섹스해본 상대가 모두 23명. 그 가운데 아직도 섹스를 계속 즐기는 상대가 22명. 1명은 아마도 오늘 죽은 것 같아. 됐어?]
[그럼 내가 24번째라는 거야?]
[응. 그리고 며칠 안에 25번째가 생길거야.]
[야아... 능력있구나.]
[그지?]
[응. 네가 말한대로 너와 첫 섹스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게 운이 좋은 것일 수도 있겠다. 섹스에 미숙한 남자가 그렇게 많은 여자와 계속해서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리 없을테니까.]
역시 그녀는 칸피니스의 기대를 배신하지 않는다. 그의 여자관계가 복잡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질투하거나 거부하기보다는 오히려 칸피니스의 섹스 능력을 판단하는 지표로 삼는다. 솔직함이란 어쩌면 객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칸피니스는 잠시 해본다.
[흣... 내가 좀 그렇지. 그런데... 질투 안해?]
[질투 하고 있는 중이야. 지금껏 유지하고 있는 섹스상대가 20명이 넘는다는 사실에 조금은 기분이 상했거든. 하지만 질투 때문에 네가 싫어지지는 않은 것 같아. 여전히 너와 섹스를 하고 싶다는 충동이 더 강하거든.]
[하하하... 질투마저도 넘어선 사랑이라는건가?]
[사랑? 그게 사랑인지는 모르겠어. 하지만 너와 섹스하고 싶은 건 분명해. 너의 섹스파트너 가운데 한 명이 되더라도 그럴 수만 있다면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있어.]
상당히 뜨겁고 정열적인 말이건만 정작 말하는 야미는 더없이 침착하고 냉정하다. 그만큼 진심이라는 뜻일 것이다. 진심이기에 오히려 그 진실을 보고라도 하듯 저리 건조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이리라. 그러한 사실을 알기에 칸피니스의 가슴이 마치 타오를 듯 뜨거워진다.
[아아... 이렇게 뜨거운 사랑고백은 들어본 적이 없는 것 같아.]
[솔직히 말하자면 사랑이 아닐지도 몰라.]
[응?]
[나는 네가 내 가족이었으면 좋겠어. 언니의... 에렌프 언니의 아들인 네가 내 가족이기를 바래. 외로웠거든. 무려 11년이야. 11년동안 나는 혼자서 이 흑암의 숲에서 살아왔다구. 그 고독이라는 건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여겨질 정도였어. 그런데 네가 나타난거야. 언니의 아들인 네가. 가족이 될 수 있는 네가, 남자로서 내 앞에 나타난거야.]
[가족이라면... 지금도 가족이잖아?]
[그건 인간의 가족이야. 수파니의 가족은 부모와 자식, 형제, 그리고 배우자 뿐이야. 그 외의 사람들은 모두 남이지. 이모나 조카라 할지라도 마찬가지야. 그래서 수파니 말에는 이모나 조카 같은 말이 없는 것이고.]
[그 말은... 섹스를 통해서라도 나와 가족이 되고 싶다는 거야?]
[응. 배우자만이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 섹스가 배우자의 필요요건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하니까.]
[조금은 서운한데...?]
[왜? 너를 사랑해서 섹스하고 싶어하는 게 아니라서?]
[솔직히 그래.]
[하지만 상관없지 않니?]
[뭐가?]
[인간의 사랑은 어떤지 모르지만 수파니의 사랑은 매우 다양해. 상대의 외모나 사냥실력, 힘, 섹스능력 등의 다양한 이유로 사랑에 빠지지. 가족이 되고 싶다는 것도 그 수많은 이유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이유야 어찌되었든 결론은 섹스를 하고 싶어 미칠 정도의 충동을 느끼는 건 같으니까. 섹스를 통해 너를 소유하고 싶은 그 욕망은 결국 같은 것 아니겠니? 굳이 사랑이니 뭐니 구분해야 할 필요 있겠어?]
어린애같은 외모에 깜빡 속았다. 역시 야미는 칸피니스보다 연장자다. 나이에 걸맞는 깊은 생각이 그녀의 말 곳곳에서 묻어난다. 조숙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칸피니스조차도 미처 생각해본 적 없는 영역이다.
[그건 그렇네.]
[동의해?]
[인정. 조금 특이하기는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렇지?]
[예. 그럼 지금 할까?]
[벌써 해가 떠오고 있는데? 너 사람들에게 돌아가봐야 하는 거 아냐?]
[상관없어. 어차피 내가 없어지면 혼자 떨어져 있으면 몬스터들에게 잡아먹히겠거니 하고 기대하고 있을 걸? 조금 놀다 들어가도 상관없어.]
[참, 그렇다고 했지? 구박덩이라고.]
[응.]
재미있다는 듯 소리없이 웃던 야미의 얼굴이 다시 어둡게 가라앉는다. 이제는 사라졌다고 믿었던 습기가 사라져가는 어둠과 함께 그녀의 주위로 무겁게 내려앉는다.
[이제 괜찮아?]
[응?]
[에렌프 언니의 일...]
[아아...]
[그렇게 슬퍼했잖아? 그런데... 괜찮아?]
[괜찮지 않아. 전혀. 아파 죽겠어. 여기가... 여기가 아파서 숨도 못쉬겠어.]
칸피니스가 손가락을 들어 심장부위를 가리키자 야미가 다가와 그의 손 위에 자신의 손을 얹는다. 차갑게 식은 따뜻한 체온이 거친 그녀의 손바닥을 통해 그의 손등으로 뜨겁게 전해진다. 심장이 더욱 급격히 고동친다.
[아파?]
[응.]
[그런데 해도 괜찮은거야?]
자신을 바라보는 야미의 걱정어린 눈빛에 약간의 비난이 서려있음을 칸피니스는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아직도 슬픔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섹스를 한다는 건 수파니에게도 역시 드문 일인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칸피니스에게도 그러지 않으면 안되는 절실한 이유가 있다. 야미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은 이유가.
[나도 하고 싶으니까. 이모랑... 이모랑 나도 가족이 되고 싶어. 어머니 대신...]
[에렌프 대신?]
[대신이라 싫어?]
[훗... 그럴 것 같아?]
나름대로 심각하게 얘기하는 칸피니스와는 달리 야미의 표정은 어느새 여유로운 그것으로 돌아와 있다. 조카를 놀리는 이모의 표정이라기보다는, 철없는 애인을 나무라는 여자의 그것을 닮은 눈빛과 입매가 그를 장난스럽게 올려다본다.
[아냐?]
[이유야 뭐든 상관없잖니? 중요한 건 서로 안고 싶다는 것. 서로를 소유하고 같이 있고 싶다는 것. 그 솔직한 충동이 중요한 것 아니겠니? 왜 그 이유따위에 그리 집착하지?]
수파니의 사고방식은 바보같을 정도로 단순하다. 고민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있는 존재나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고민할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있는 사실을 어떻게든 다른 사실에 끼워 맞추려 하다 보니 고민을 하는 것이다. 그런 쓸데없는 고민을 제거하면 모든 일은 고민 자체가 바보스러워질 정도로 쉽고 단순해진다.
[아아... 정말 바보같네?]
[훗... 알겠니?]
[응. 바보같았어. 정말.]
역시 칸피니스도 인간이었다. 아버지 쪽의 반쪽이 인간이라서 인간이라 하는 것이 아니다. 인간 사이에서 자라면서 인간과 유사한 사고방식을 가지게 되었기에 인간이 갖고 있는 단점까지 모두 갖게 되었고, 그것이 그가 인간이라 하는 이유인 것이다.
[어때? 지금 할거야?]
상황이 정리되었다고 생각한 것인지 야미가 은근슬쩍 그에게 섹스를 재촉해온다. 슬쩍 밝아오기 시작한 하늘의 빛을 받아 붉게 상기된 얼굴이 어렴풋이 보인다. 그가 기대했던대로 귀엽고 유혹적인 모습이다. 새삼 불끈 솟아오르는 참을 수 없는 욕망이 느껴진다.
[그건 내가 물었던 말이라고.]
[그렇네?]
[여기서 할까?]
이번에는 칸피니스가 서두른다. 어스름한 빛을 받아 빛나는 야미의 모습에 치밀어오른 욕망이 그로 하여금 조바심내게 하는 것이다.
[여긴 좀 그렇다. 저쪽으로 가면 좋은 곳이 있어.]
[야미 이모의 집?]
[집이라기보다는... 그냥 사냥할 때 잠시 머무는 곳이야.]
[그래?]
[갈래?]
[응]
[서두르자.]
[그렇게 급해?]
서두르는 야미의 모습에 칸피니스는 평소 히리스에게 하던대로 너무 밝히는 게 아니냐며 은근슬쩍 놀려보려 시도해본다. 야미의 당황해하는 모습을 보고 싶은 때문이다.
[응.]
하지만 역시 야미는 수파니다. 인간일 수밖에 없는 히리스와는 완전히 다르다. 놀려먹으려 해도 상대가 부끄러워하거나 수줍어해야 가능한데, 이렇게 노골적으로 솔직해지면 괜히 놀려먹으려던 사람만 무안해진다.
[쳇! 재미없어.]
[응?]
[아냐. 어서 가자.]
[그래.]
그래도 있으면 즐겁다. 그림자 하나 없는 순수한 밝은 웃음을 보고 있으면 자신도 모르게 같이 웃게 된다. 천진스레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으면 그녀를 웃게 하는 것만으로도 스스로도 행복해하는 자신을 느낀다.
[아직 멀었어?]
[조금만 더 가면 돼.]
조금더 밝아진 숲속에 하얗게 드러나는 그녀의 짙은색 알몸이 뒤따라가는 그의 눈 가득 들어차온다. 순수한 욕망과 천진한 행복감, 그 절실한 희구와 함께 밝아오는 그녀의 알몸처럼 그의 마음이 그녀에 대한 감정으로 가득 밝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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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제 글에도 등수놀이가 시작되었습니다. 등수놀이라 하는 것은 오로지 인기있는 글에서만 하는 것입니다. 관심도 없는 글에서 등수놀이를 하는 사람은 아마도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제 글을 관심있게 읽어주시는 분들이 많다는 증거인 듯 해서 매우 기분이 좋습니다. 다만 등수놀이한 글의 조회수가 무려 닷새동안 4천을 못넘더군요. 왠지 글 쓸 의욕을 떨어뜨리는, 바로 아랫 글과도 크게 비교되는 조회수에 한숨만 나왔습니다. 등수놀이보다는 조회수가 좋은데...
제 글을 가만 보고 있으면 시트콤처럼 각 회별로 단락지어져 있습니다. 각 회가 하나로 연결지어지는 것이 아니라 각자 독자적인 구조를 가지고 그 안에서 완결되어집니다. 아마도 그날그날 연재분을 바로 써서 올리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연속적으로 글을 쓰고 그 일부를 연재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한 분량만 그때그때 쓰기 때문에 그 안에서 완결된 구조가 나오는 것입니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로는 꽤 마음에 듭니다.
연재주기가 갑자기 길어진 이유는 요즘 슬럼프가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슬럼프입니다. 취직을 못하다보니 자다가도 불안감에 벌떡벌떡 깨어나곤 하는 나날이 지속되고 있거든요. 글을 쓸 때도 불안해서 집중하지 못합니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하는 불안감과 공포 때문에 항상 좌불안석입니다. 그래서 그 불안감을 분출하는 방편으로 야설 하나를 더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제 카페에서만 연재합니다. 연재주기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카페 가입해주신 분들께 대한 일종의 서비스 측면도 있구요.
다음회 예고>> 다음회 본편의 내용은 다음회 예고와 전혀 상관없이 진행될 겁니다. 언제는 안그랬나요? 예고와 본편은 다르다. 그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상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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