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마검천황(色魔劍天荒) - 3부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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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 카캉--!! 캉---!! 캉--!!
“우웃---!!”
한 번 숨쉬는 사이에 십여차례 이상의 검격이 날아온다. 위로, 아래로, 정면에서, 옆에서, 심지어 뒤에서까지 정신없이 날아오는 검격을 막아내느라 반격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막아내지 못할 수준은 아니지만 쉴새없이 날아드니 순간적으로 느끼는 피로가 장난이 아니다.
캉--!! 카캉--!! 캉--!! 캉---!!“
“하앗--!!”
다시 한 번의 기합을 토하는 사이 이전보다 더 많은 검격을 받아야 했다. 검을 쥔 손으로 전해지는 쩌릿한 충격과 함께 검에 새겨지는 검날의 흔적이 시간이 갈수록 눈에 띄게 늘어난다.
‘비... 빌어먹을...!!!’
어처구니 없는 상황이다. 느닷없이 그를 납치해온 이상한 여자마법사는 그를 떨궈놓자마자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얼떨결에 혼자가 되어버린 칸피니스는 텔레포트의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검격을 막아내야 했다. 왜 자신이 공격당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본능적으로 검을 휘두르고 있는 것이다.
카카카캉--!! 캉--!! 캉---!! 카캉--!!
“하압--!!”
아마도 칸피니스가 아니었으면 아주 오래전에 시체가 되어 나뒹굴어버렸을 것이다. 그만큼 날아오는 검격은 예리하고 빨랐으며 강했다. 칸피니스의 힘으로도 때때로 손이 저릿저릿해오는 것이 느껴질 정도로 위협적인 검격이었다.
카캉--!! 캉--!! 카캉--!! 카캉--!! 카카카캉--!! 캉--!!
“타핫--!!”
반격을 하려 막아가던 검을 강하게 뿌려보지만 그것도 그때뿐이다. 한 사람을 뒤로 물리면 그 틈으로 다른 기사의 검이 날아든다. 그 검을 강하게 쳐내면 다른 기사가 다시 파고들고, 그 검격을 쳐내면 또 다른 기사가 달려드는 악순환의 연속이다. 아무래도 100여명의 실력있는 기사를 상대하는 것은 칸피니스로서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다.
카캉--!! 카카카캉--!! 캉--!! 캉--!! 캉--!!
“타하하--!! 타하하--!!”
근육의 힘을 모아 힘껏 쳐낸 기사의 검이 위로 크게 들려지는 틈을 타고 다시금 강한 검격을 퍼부으려 시도하지만 세 개의 검이 강한 검격을 위해 벌어진 사이로 파고들 뿐이다. 그 검을 막아가는 사이 힘으로 연 작은 틈은 금새 봉합된다.
카카앙--! 카앙--!! 캉--!! 카카카캉---!! 캉--!! 카앙--!!
“흐흡!! 흡!!”
한 번 무리한 결과는 바로 호흡의 흐트러짐으로 나타난다. 한 번의 호흡으로 십여차례의 검격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 이제 몇 차례의 검격만으로도 호흡이 가빠오는 것이 느껴진다. 힘껏 아랫배에 힘을 주고 호흡을 제어해보려 하지만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격은 그런 여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카앙--!! 캉---!! 캉--!! 카카캉---!! 카앙--!! 카앙--!!
“하합!! 합!!”
짧은 호흡으로 여러차례 빠르게 검을 뿌린다. 기세는 조금 전보다 약하지만 속도는 조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동작의 크기도 작아서 나아감과 물러남의 사이도 작다. 기세가 약하다 하는 것도 칸피니스를 기준으로 하는 것이지 일반 기사의 검격에 비해 월등히 강하다. 근육이 저려오도록 빠른 검격을 반복하는 사이 약간의 틈이 보인다.
“카이?--!!”
카캉--! 카앙--! 카캉--!! 카카캉--!!
틈이 보이지 않는다면 모를까 틈이 보인다면 지지 않기 위한 싸움을 필요없다. 지지않으려는 싸움의 끝은 패배뿐이다. 지금처럼 많은 적에게 둘러싸인 경우라면 더더욱 그렇다. 이기는 싸움을 해야한다. 힘들게 만들어놓은 빈틈을 뚫고 검을 박아넣어 적을 쓰러뜨려야 한다.
“크흡!! 합!! 타하하핫!! 카이?!! 타핫!!”
카캉--! 카앙--! 캉--!! 카카캉--! 캉--!!
불리한 상황을 승리로 바꾸기 위해서는 단순히 강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단번에 적의 공격과 방어를 모두 깨뜨릴 정도의 강함이 없다면 적의 방어나 공격 하나를 부수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포기해야 한다. 칸피니스가 강한 것은 포기해야 할 때 포기할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크흑!! 커헙!! 탑!! 타하합!! 타하핫!!”
카캉--! 캉--!! 카앙--!!
서걱--! 서걱--!! 스걱--!!“
“크흡! 키하합!!”
검을 쳐나가는 쇳소리 사이로 살점이 베어지는 소리가 조금씩 섞여든다. 허공을 휘젓는 검광 사이로 핏방울이 날기 시작한다. 핏방울 사이로 날아오르는 붉은 덩어리는 칸피니스의 살점이다.
“카학!! 타합!! 하얏! 타하얏!! 트라라랏!!”
카캉--!! 카앙--!! 캉---!! 카카캉-----!!
“크헉!!”
붉은색 코트의 베인 자국에서 붉은 피가 흘러 붉은 코트를 더욱 붉게 물들인다. 천조각과 함께 살점이 베어진 자리에서는 분수처럼 핏줄기가 치솟는다. 하지만 칸피니스는 고통 따위 느끼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모험의 결과로 크게 벌어지기 시작한 자신을 향해 내리쳐오는 기사들의 합격 사이의 틈 뿐이다. 그 틈에 자신의 검을 찔러넣을 잠시의 한 순간을 기다릴 뿐이다.
“타합!! 타핫!! 타햐햐!! 트핫!! 트리야앗!!”
카캉--!! 카앙--!! 카카캉--!! 캉캉--!! 캉--!!
“크학!!”
“커헉!!”
그 순간까지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한 순간 그의 검격을 견디지 못한 한 기사의 자세가 흐트러진 사이 자신을 향해 찔러오는 공격을 무시한 채 다음 공격을 준비하고 있던 기사의 손목을 베어버리고, 다시 뒤에서 공격해오는 기사의 목을 찔러가자 기계처럼 맞물려오던 합격의 틈이 그의 검이 들어가기에 충분할 정도로 벌어진다. 틈을 만들기 위해 무리한 공격이라 그가 공격한 손목이나 목 모두 충분한 데미지가 되지는 못했지만, 그들이 피하기 위해 움직인 공간은 칸피니스가 반격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주었다. 칸피니스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카합!! 캇!! 탓!! 흐흡!! 카히얍!!”
카캉--! 캉--!! 카앙--!!
서걱--!! 스걱--!!
카앙--!! 캉--!!
“아악!!”
“큭!”
“커헉!!”
검이 부딪히는 쇳소리는 조금전보다 줄어들었다. 대신 살이 갈라지는 소리와 함께 숨막히는 비명소리가 쇳소리를 그 자리를 메운다.
번뜩이는 검격 사이로 치솟는 핏줄기는 더 이상 칸피니스의 것만이 아니다. 칸피니스의 등과 어깨 여러곳에도 검상이 생기며 핏줄기가 솟기 시작했지만 그보다는 칸피니스의 검격에 목과 배, 눈을 움켜쥔 채 자세를 무너뜨리는 기사들의 피가 더 뜨겁고 강하게 살기가 오가는 허공을 수놓고 있다.
한 번의 연속공격으로 세 명의 적을 무력화시킨 칸피니스는 그로인해 더욱 벌어진 틈을 놓치지 않는다. 그의 근육이 부풀어오르면서 보다 크고 강한 검격이 그 빈 공간으로 다시 한 번 파고든다.
“크랴핫!! 크랴랴랴랴랴앗!! 타랴앗!!”
카캉--!! 캉--!! 카앙--!!
서걱--!! 스학--!! 스각--!!
카앙--!! 텅--!!
“크아악--!!”
“크악--!!”
“커흑--!!”
힘을 모은 검격은 폭풍과도 같이 몰아치며 세 개의 목숨을 끊고 하나의 검을 그대로 부숴버렸다. 등에 세 개의 상처가 더 생겼지만 이 한 번의 공세는 결정적이다. 칸피니스의 행동공간을 좁히던 기사들의 압력이 한순간이지만 완전히 걷혀버린 것이다. 단 한 번의 공세로 칸피니스는 100여명의 실력있는 기사들의 압력을 모두 걷어내어버리고 행동의 자유를 얻었다.
“크하하하합!!”
이제 남은 것은 있는 실력을 다 발휘해 적을 쓰러뜨리는 것 뿐이다. 행동범위의 제약으로 인해 채 사용하지 못했던 힘과 기술을 끄집어내어 주위의 적을 몰아치고 몰아쳐 쓰러뜨리는 것 뿐이다. 주저할 것도 고민할 것도 없다. 주어진 상황 그대로, 그가 원하는 그대로를 망설임없이 행하면 그뿐이다.
휘리릭--!! 휘릭--!! 휙--!! 휘리리릭--!!
공간이 벌어지고 행동의 제약이 사라지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속도로 검이 허공을 가른다. 대기를 잔인할 정도로 예리하게 가르며 휘젓는 비명소리 사이로 흉폭한 힘을 담은 바스타드 소드가 탐학스럽게 사람의 생명을 쫓는다.
“크학--!!”
“크악--!!”
“아아악--!!”
“으악--!!”
더 이상 검을 부딪힐 일도 없다. 기사들의 검이 그를 따라오지 못하기 때문이다. 검과 검 사이로 파고드는 너무도 정확하고 예리한 검은, 기사들의 방어가 채 이르기도 전에 급소를 가르고 다시 다음 적을 찾아 빈공간을 가른다. 한 번의 검부딪히는 소리도 없이 그렇게 한 순간에 네 명의 목숨이 사라졌다.
“뭐... 뭐야?”
“이... 이건...? 이건...?”
“괴... 괴... 괴물...?”
“사... 사람인가...?”
“크흐흡...”
여유롭기만 하던 기사들의 입에서 비명과도 같은 탄성이 터져나온다. 믿을 수 없는 광경이기 때문이다. 100여명의 기사들이라면, 그것도 그들이라면 제국 최고의 기사라는 에르히 발트 슈베르티조차도 버티어낼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기사의 손에 이리도 어처구니 없이 몰리다니.
“크학--!!”
“크악!!”
“허헉--!!”
“으아악--!!”
그러나 칸피니스는 그들이 놀랄 틈조차 주지 않는다. 기사들의 손이 잠시 멈춘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짧은 시간동안 최대한 많은 기사들을 죽이기 위해 자신이 할 수 있는 최고의 공격을 퍼붓는다.
허리의 탄력을 이용해 위에서 아래로, 아래에서 위로 퍼붓던 공격은, 이내 몸의 회전을 이용한 수평공격으로 바뀐다.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다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하체를 움직여 몸을 수평으로 크게 돌리는 그 힘이 응축된 팔은 때로는 크게, 때로는 작게 움직이며 주위의 적을 청소하듯 쓸어간다. 방어하는 적을 위해서는 대각선 공격이 유효하다. 피하며 틈을 노리는 적에게는 베기에 이은 찌르와 찌르기에 이은 베기의 연속공격을 퍼붓는다.
칸피니스의 검격은 조금의 끊김도 없다. 시작할 때의 그 기세에 검격의 기세를 더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무한의 곡선인양, 영겁으로 흐르는 유성인 양 빠르고 유연한 검격은 메테오의 파괴력을 담은 채 기사들의 속을 헤엄치듯 휘저어버린다.
“크아악--!!”
“크악--!”
“으악--!!”
“크흐흐흑--!!”
비명이라도 지를 수 있는 기사들은 운이 좋은 편이다. 대부분의 기사들은 비명조차도 지르지 못한 채 몸에 큰 칼자국을 남긴 채 시체가 되어 쓰러져버렸으니까.
어느새 땅은 시체로 뒤덮여버렸다. 여름의 태양에 말라버렸던 누런 관도의 바닥은 붉은 빗물에 젖어 검어보이기까지 하다. 질척거리며 잡아끄는 끈적한 핏물을 발으며, 채 굳지 않은 따뜻한 시체를 발로 뭉개뜨리며 앞으로 나아가는 칸피니스의 발걸음마다 그 시체와 피는 더욱 늘어만 간다.
고작 두 시간. 고작 두 시간만에 1대 100의 싸움은 100의 절반 이상이 시체로 눕는 것으로 결말지어지고 있다. 이제 남은 것은 칸피니스의 무위에 질려버린 40여명의 기사들 뿐. 그들조차도 한 시간 이상을 견딜 수는 없을 것이다. 아니 이미 기세에서 눌려버렸으니 몇 십분 안에 땅위에 뒹구는 시체들과 같은 신세가 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으으...”
“으아아아아...”
“아... 악마다...”
“자... 잔인한...”
기사들의 입에서 나오기에는 너무 나약한 소리다. 더구나 그들은 제국에서도 엘리트로 이름높은 기사들이다. 제국 어디를 가든 그 실력으로 인해 자작 이상의 대우를 받는 기사들이다. 그런 기사들의 입에서 울음과도 같은 비명이 터져나온다는 것은 그 자체로 수치임에도 기사들은 그런 사실조차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듯 하다.
“하하합--!!”
칸피니스는 이제 그만 마무리짓기로 마음먹었다. 더 이상 저들의 추태를 보아넘길 수 없기 때문이다. 귀족이기 전에 기사인 칸피니스에게 저들은 더 이상 기사가 아니다. 기사인 자가 기사가 아니게 된다면 그것은 기사로서의 죽음을 의미한다. 칸피니스는 기사로서 그들의 기사로서의 죽음을 확실한 죽음으로 만들어줄 의무가 있다. 그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라 할지라도 그것이 기사도다. 칸피니스는 기사도를 위해 기꺼이 그들에게 죽음을 내려주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큭--!!”
“컥--!”
“크윽--!”
“억--!”
“윽--!!”
짧은 단말마의 비명이 연달아 이어진다. 무력하게 서서 죽음을 기다리는 모습이 마치 나무토막을 베는 기분이다. 저항하지 않는 적을 죽이는 것은 언제나 입맛이 쓴 일이다. 하지만 이미 그들은 적이었고, 자신을 죽이려 한 자들이었다. 또한 기사로서 기사가 아니게 되어버린 자들이었다. 그들을 죽이는 것은 이미 그의 권리이고 의무다. 하고 싶지 않더라도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인 것이다.
카캉--!!
“흐읍!”
무감동하게 의미없는 칼질을 하던 칸피니스의 손에 갑자기 다가는 충격은 오히려 즐거움이다. 저항없는 살아있는 시체들을 더 이상 베지 않아도 된다는 구원이다. 자신의 검을 강하게 쳐내는 검격에 칸피니스의 얼굴이 밝게 펴지며, 그의 눈이 자신을 막아선 기사를 향한다.
“나는 콘벨른 백작가에 봉사하는 기사 드베인 토르 마린도르프요. 콘벨른 백작가의 기사단 레드플레임의 단장을 맡고 있소.”
있는 힘을 다해 쳐낸 검격의 반동에 손을 다친 것인지 검을 쥔 손을 주무르며 갈색머리의 중년 기사가 칸피니스에게 말을 걸어온다. 정중히 인사하는 그의 표정에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대한 불신과 자신의 부하들을 무참히 죽여버린 칸피니스에 대한 증오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인사를 해온 이상 인사를 받아주는 것이 예의다. 죽일 때 죽이더라도 기사로서의 예의를 지켜주는 것이 기사의 도리다. 칸피니스는 드베인의 인사를 받아 자신을 소개한다.
“델킨피에르의 자작 칸피니스 포르니르 델킨피에르. 제국기사단 넘버 23을 부여받은 이름이다.”
“델킨피에르?”
칸피니스의 이름을 들은 드베인의 표정이 흠칫 굳는다.
“귀하가 델킨피에르 자작이란 말이오?”
“그렇다.”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여겼는데 아무래도 사실이었던 모양입니다.”
“...?”
“일주일 전 몰론성을 없앤 사람이 혹시 델킨피에르 자작이십니까?”
“그렇소.”
어느정도 확신이 섰기에 질문하는 것이면서도 드베인의 표정은 여전히 불신으로 굳어있다. 자신의 추측이 맞을 것이라 여기면서도 추측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칸피니스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보며 피식 웃어보이고는 솔직히 사실을 이야기한다. 어차피 살려줄 생각이 없으니 어차피 죽을 사람이다. 곧 죽을 사람에게 비밀 따위 지켜 무엇하겠는가? 죽기 전에 의혹이나 풀라는 마음으로 칸피니스는 드베인의 질문에 시원스럽게 대답해주기로 마음먹었다.
“정말 몰론성을 자작께서 무너뜨렸습니까?”
“내가 직접 한 일은 아니지만 내가 지시한 일은 맞다.”
“성에 있던 사람들도...?”
“모두 죽여버렸지. 저항하던 사람들이나 저항하지 않던 사람들이나 모두.”
“모... 모두...?”
“당신이 궁금하게 여기는 디포르챠 콘벨른도 죽었지. 내 명령에 의해서.”
“디... 디포르챠 도련님도...?”
칸피니스가 고개를 끄덕여보이자 드베인의 얼굴이 참혹하게 일그러진다. 믿을 수 없는 추측이 사실로 드러난 것만으로도 충격일텐데, 그곳에서 있었던 참혹한 일까지 듣게되자 상당한 충격을 받은 듯 하다. 특히 주군인 콘벨른 백작의 아들인 디포르챠가 죽었다는 사실이 그를 격동시킨다.
“왜... 왜...?”
“디포르챠가 내 여자를 납치했으니까.”
“여... 여자를 납치...? 고... 고작 그것 때문에...?”
“당신들에겐 고작이지만 내게는 감히니까. 고작 내 여자를 납치한 게 아니라 감히 내 여자를 납치한 거다. 그러니 당연한 결과라 하겠지.”
“그... 그렇군... 델킨피에르 자작에게는 힘이 있으니까. 힘이 있는 이상 감히라 할 자격이 충분하지. 감히 저지른 일에 대한 응징으로 몰론성을 무너뜨리고 사람을 몰살한 일 또한 힘이 있는 이상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을테고...”
“납득하는건가?”
“나도 콘벨른가의 기사단장을 맡고 있는 몸입니다. 동남제후령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백작가 가운데 하나인 콘벨른가의 무력을 책임지는 위치에 있었습니다. 충분히 다른 이의 ‘고작’을 ‘감히’로 여길만한 충분한 힘을 가진 자리였었죠. 힘을 가진 자리에서 내가 했던 일을 부정할만큼 나는 뻔뻔한 사람이 아닙니다.”
“호오...”
“분하지만 힘이 없는 이상 델킨피에르 자작님의 행동에 복수하거나 징계할 수 없습니다. 기사씩이나 되는 이가 실천에 옮길 수 없는 비난을 입에 올리는 것처럼 치졸한 것도 없습니다. 비록 부패하고 실력없는 기사지만 최소한 치졸한 자는 되고 싶지 않습니다.”
“푸하하하하... 자네는 재미있는 사람이로군. 충분히 콘벨른가의 레드플레임을 맡을만 해.”
“칭찬이라면 고맙게 받겠습니다.”
“칭찬이야. 칭찬. 진심어린 칭찬이라구. 이거 죽이는 맛이 정말 각별할 것 같은데?”
“나를 죽일겁니까?”
“내가 자네에게 이렇게 솔직히 모든 것을 털어놓는 이유가 무엇이라 생각하나?”
“다른 이들도 전부...?”
“아아... 저들?”
드베인의 주위에는 아직 10여명의 기사들이 죽지 않고 남아있다. 두려움으로 온몸을 떨며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형편없는 모습이지만 최소한 아직은 죽지 않고 있다. 실력 때문이 아닌 대열의 뒤에 있어 죽는 순번이 뒤로 밀린 것 뿐인 재수좋은 경우이지만 그래도 아직 그들은 살아있다.
하지만 칸피니스가 죽이겠다 말한 이상 저들도 곧 죽을 것이다. 살고자 저리 눈물콧물 흘려가며, 오줌과 똥을 지려가며 몸을 떨고 있지만, 그 두려움마저도 칸피니스에 의해 그들이 두려워하던 죽음 속으로 묻혀버릴 것이다.
“내가 저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은... 아마도 없을 겁니다. 맞습니까?”
“물론. 모두 죽일거야. 나는 내게 칼을 들이댄 사람을 한 번도 살려보낸 적 없으니까.”
“후우... 마음같아서는 주군의 명령대로 당신을 죽이고 부하들을 구해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만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네는 정말 현명하군. 출세할 타입이야.”
“부하들이 고통없이 죽을 수 있도록 해주시겠습니까?”
“나는 쓸데없는 고통을 강요할 정도로 부지런한 성격이 못된다네. 될 수 있으면 한 번에 죽여버리지.”
“그만한 실력이 있음을 보았으니 믿겠습니다.”
드베인은 담담히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였다. 칸피니스의 말처럼 그가 출세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이같은 성격때문이었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순응함으로써 상급자의 눈밖에 나지 않을 수 있었기에 지금에 이른 것이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는 저항함으로써 고통을 연장하기보다는 저항을 포기하고 칸피니스에 의해 죽는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임으로써 고통없는 죽음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죽이기 전에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군.”
“무슨...?”
“자네들은 무슨 일로 나를 공격한건가? 보아하니 나인 줄도 모르고 공격했던 것 같은데.”
“그... 그건...”
“혹시 나이 어려 보이는 여자 마법사 때문인가?”
“예...? 그... 그걸... 마... 맞습니다.”
드베인의 체념한 표정 위로 분노가 떠오른다. 아마도 그 여자 마법사 때문인 듯 하다.
“대단하군. 죽음에 순응하는 사람마저도 흥분하게 만들다니. 도대체 어찌 된 일인가?”
“그건...”
콰아아아아앙---!!!
드베인의 말은 채 시작도 하기 전에 폭발음 속에 묻혀버렸다. 드베인 뿐만 아니라 주위에 아직 살아남아있던 사람들이 모두 거대한 화염이 만들어낸 폭발에 휘말려 한줌 재로 변해버렸다.
주위에서 살아남은 것이 마법시동을 눈치채고 미리 몸을 뺀 칸피니스 뿐이었다.
“훗! 이제 나타난건가?”
칸피니스는 드베인에게로 날아온 거대한 화염덩어리를 피해 몸을 뒤로 물리며 마법이 날아온 방향을 쏘아보며 코웃음친다. 그의 눈에 싸움이 벌어지던 관도 옆 숲에 숨어있는 마법사의 로브가 보인 것이다.
“어이! 숨어있지 말고 나오지 그래? 거기 있는 거 다 알고 있으니까 더 이상 숨어있어봐야 의미가 없다고. 오기 싫으면 내가 갈까?”
칸피니스의 경고는 바로 여자마법사의 대답으로 돌아온다.
“다아아아아아~~~~~~~~알링~~!!!”
그것은 칸피니스가 이곳으로 납치되어오기 전 받았던 강력한 보디체크다. 칸피니스는 자신을 날아오는 익숙한 그림자에 그때 그 충격을 다시 떠올리며 몸을 한껏 긴장시킨다.
“크합---!!”
칸피니스의 검격이 날아오는 마법사를 향해 강하고 빠르게 내리쳐온다. 조금전 기사들과 싸울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의 위력이다. 하지만 그의 검격은 마법사의 마법에 의해 차단된다.
퍼펑--!!
“크흡!!”
“꺄앗--!!”
순간적으로 발사한 플레임봄버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위력이다. 기합을 담아 검으로 쳐냈음에도 폭발의 여파에 자신의 몸이 뒤로 밀려나는 느낌에 칸피니스는 더욱 긴장을 다진다.
‘강하다.’
클라이안이 9서클일지도 모른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이정도라면 그냥 9서클이 아니다. 9서클의 마법사와 싸워본 경험으로 알 수 있다. 이정도 마법력과 주문이라면 텔로시급이다. 다크엘프인 텔로시급의 인간마법사라니. 등줄기를 타고 짜릿한 긴장이 흐른다.
“다알링~~~~~~!!!”
폭발의 여파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예의 그 하이소프라노 소리가 들리며 무언가 날아오는 것이 느껴진다.
‘훼이크?’
마나의 느낌으로 알 수 있다. 날아오는 것은 마나로 만든 더미다.
‘진짜는...? 어디...?’
마나로 만든 가짜에는 신경쓸 필요 없다. 설사 대단한 위력이 숨겨진 마법이라 할지라도 칸피니스라면 충분히 견뎌낼 수 없다. 굳이 그러지 않더라도 여자마법사를 쓰러뜨리면 사라질 것이다. 그러니 여자마법사만 잡으면 된다. 칸피니스의 모든 신경이 여자마법사에게로 집중된다.
“훗!! 왼쪽이로군! 타핫!!”
말과는 달리 그의 몸은 왼쪽이 아닌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왼쪽을 향하는 듯 내딛던 발을 축으로 강하게 오른쪽으로 향한 그의 몸 정면으로 바스타드 소드가 강하게 내리쳐진다.
콰아아앙---!!
콰앙--!!
“우웃!! 흑--!!”
“꺄아아아아앗--!! 다아아아아링~~!!”
하나는 플레임버스터, 하나는 마나봄버다. 두 개의 마법을 한순간에 펼치다니. 더구나 위력도 일반 플레임버스타나 마나봄버에 비해 두 배 이상 강한 듯하다. 기합을 담아 뿌려낸 검이 마법의 여파를 이기지 못하고 크게 휘어지며 223센티미터의 거구가 뒤로 주욱 밀려난다. 예상한대로 보통 9서클 마법사가 아니다. 인간의 경지를 넘어선 마법사다.
상대의 실력을 어느정도 알게 되자 칸피니스는 더욱 긴장을 다잡으며 마법의 폭발여파로 뒤로 날아가고 있는 여자마법사를 쫓는다. 내상을 입은 듯 핏물이 목 바로 아래까지 차올랐지만 무시한 채 자세가 흐트러진 기회를 놓치지 旁?위해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마법사를 쫓는다. 그의 검에는 어느새 필살의 살기가 맺힌다.
“다아아아아링~~!! 나를 쫓아와주시는군요. 나는... 나는... 나 시안은... 달링의 사랑에 정말... 정말 감동했어요~~!!”
다시 날아오는 보디체크. 조금전에 비해 몇 배나 빠른 속도다. 칸피니스는 급히 몸을 피하며 검을 수평으로 휘두른다.
“응? 블링크??”
분명히 검에 걸려야 할 무언가의 느낌이 없다. 칸피니스는 급히 몸을 뒤로 빼며 다시 한 번 허공으로 검을 휘두른다.
서걱--!!
“꺄앗~~~!!”
무언가 검끝에 걸리는 느낌과 함께 여자마법사의 비명이 들려온다. 허공으로 치솟는 건 분명 피다. 칸피니스의 피가 아닌 다른 누군가의 피.
“타핫!!”
“꺄앗~~!!”
퍼펑--!! 펑--!!
승기를 잡은 이상 거칠것이 없다. 갑작스런 칸피니스의 공격에 부상을 입은 시안이라는 이름의 여자마법사는 잇따라 휘둘러치는 칸피니스의 검격을 막기 위해 마법을 연사하며 뒤로 물러나기 시작한다. 마법과 검이 충돌하는 충격파가 강하게 몸을 때려오지만 칸피니스는 내상을 각오한 채 충격파를 무시하고 여자마법사의 뒤를 쫓는다.
“타핫!! 각오해라!!”
조금전 공격으로 어깨가 잘린 듯 텅비어버린 어깨를 움켜쥔 채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는 시안의 모습이 크게 다가온다. 눈에 서린 것은 공포. 팔이 잘리면서 많은 피를 흘린 것이 치명적이었는지 더 이상 마법공격을 할 생각도 못한 채 입술만 부들부들 떨고 있다. 단 한 번의 검격만으로도 죽일 수 있을 듯 하다.
하지만 그의 검격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한다. 시안의 최후의 필살절초가 그의 공격의지를 여지없이 부숴버린 때문이다.
“사... 살려줘요~~!!! 살려줘요~~!! 앙앙~~!! 아아앙~~~!! 엉엉~~!!”
색마의 모범이라 불리우는 칸피니스는 우는 여자에게 무척 약하다. 남자는 여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 태어난다고 굳게 믿고 있는 칸피니스다. 자신의 존재의미도 여자를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라 진리처럼 믿고 있는 칸피니스다. 그의 색마행도 여자들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존재인 자신의 주위에 있게 함으로서 조금이라도 많은 여자들이 행복해질 수 있기를 바라는 종교와도 같은 신념에서다. 그런 그가 어찌 우는 여자를 공격할 수 있을까?
칸피니스는 공격하던 기세를 억지로 멈추며 멍하니 검을 늘어뜨린 채 시안을 바라본다. 엉엉 소리내어 우느라 눈물로 범벅이 된 그녀의 앳띠고 아람다운 얼굴을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고 있으니,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이 치밀어오르며 온몸의 상처가 쑤셔오는 것을 느낀다.
‘제... 젠장... 내가 뭘 어쨌다고 우는거야? 도대체 날 보고 뭘 어쩌라고?’
자신의 앞에서 어린애처럼 우는 여자를 어찌 처리해야할까 고민해보지만 답이 없다.
“클라이안~~!!!”
끝내 칸피니스는 클라이안을 부르고 만다. 어딘가에서 지금의 모습을 보며 깔깔거리고 있을 클라이안만이 유일한 의지처다. 도저히 인정할 수 없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우울하기만 한 현실이다.
“흑... 프리챌시...”
왠지 오늘따라 프리챌시가 그리워진다. 앞으로 말 잘들어야겠다는 다짐과 함께 칸피니스는 자신의 조강지처(?) 프리챌시를 되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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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라 접속이 안되는 바람에 써놓고도 이제야 올립니다. 오늘 하루종일 소라 서버상태가 안좋았네요. 쩝...
3부 제목이 황도인데 아직 황도에 가지도 못했습니다. 결국 3부는 황도에 도착할 때까지의 이야기가 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황도 안에서의 이야기까지 담으려면 아무래도 3부의 길이가 2부 못지않게 길어질 듯 하니... 에효효효...
이번화는 야설보다는 액션이 주가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액션 장면을 단순하게 처리하려 했는데 그러자니 저의 작가정신(?)이 너무 걸려서... 그래서 야설장면을 뒤로 물리고 액션에 주력했습니다. 다음회에는 진한 야설 장면을 넣을 것이니 기대해주시길...
다음회예고>> 괜한 칼질로 여자의 생명인 팔을 자른 칸피니스. 그로이내 완전히 코꿰게 되는데... 한 여자에게 붙들려 코꿰이게 된 칸피니스의 미래는...? 과연 색마검천황이라는 제목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공처가검천황, 혹은 유부검천황으로 제목을 바꾸어야 할 위기에 처한 색마검천황을 구하기 위해 칸피니스는 결단을 내리게 되는데....
다음회에는 예고편과 본편이 맞아떨어질거래요. 아님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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