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운명 - 9부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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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혜는 하단우가 침대에 쓰러져 잠이 들자, 간단히 이불을 덮어 준 후 문을 나섰다. 그리고 차를 몰고 강남의 아버지 집으로 갔다.
집에는 그 동안 못 보던 경호원들이 여럿 서 있었다. 이만국이 부른 것이다.
집에는 이만국과 변호사 몇 명, 그리고 조국일보의 라이벌인 동화일보의 주필까지 와 있었다. 동화일보 주필은 티비에서 몇 번 봐서 얼굴을 안다.
주필이 말했다. “상황이 의외로 좋지 않습니다. 대왕일보에서도 기획기사를 터뜨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이만국이 말했다. “그러면 은하그룹에서도 우릴 노린다는 건가?”
이 때 변호사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회장님이 은하그룹 부회장 한재우에게 말했잖아요. 돈 가지고 너무 잘난척하지 말라고. 한재우가 뿔난 것 같더군요.”
“떽!” 이만국은 화를 내려고 ?다.
이강혜가 말했다. “우선 제가 조국일보 반 이사를 만나 볼께요.”
“네 남편은 아내가 이렇게 됐는데 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지? 그러라고 거기다 시집보낸 거 아니냐?”
밤새도록 논의는 계속되었지만 아무런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마치 무슨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모든 것이 진행되어가는 느낌이었다.
..
전기형은 티비를 보고 있다. 유민주와 레온은 어디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전기형의 캔버스에는 유민주의 초상화가 그려지고 있었다.
유민주. 망해서 사라진 성완그룹 딸이라고 하던데, 어쩐지 이 세상 사람 같아 보이지 않는 뭔가 이상한 면이 있다.
그는 최대한 정신을 집중하다 잠시 쉬고 있는 중이었다.
“재계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던 이 모씨가 법조계에 다방면으로 로비를 한 정황이 포착되어 검찰에서 수사에 들어갔습니다.”
이 모씨라. 누구지? 그는 의아해했다.
“재산 형성과정이 확실하지 않은 이 모씨 관련 의혹들이 퍼지고 있는 가운데, 이 모씨가 권력계의 실세와 가깝다는 설이 증권가에 나돌고 있습니다…”
--
서울 어느 비밀요정.
어른의 동생이자 권력의 핵심인 윤호석 의원과, 단우의 고모부인 정 의원이 대화중이었다.
“자네 질부의 집안에 문제가 있더군.” 이강혜를 말하는 것이다.
“예. 하지만 의원님도 그 집안과 친하게 지내셨지 않습니까?” 이놈. 나를 갖고 놀자는 거냐?
“무슨 소리. 그 집안에서 먼저 들이댄 거고, 그자가 당에 바친 돈은 모두 반납할 걸세, 어흠.”
반납은 무슨.
“저를 부르신 이유는요?”
“자네도 그 집안과 가까이 하지 않는 게 좋겠어서 말이야. 냄새가 나면 안 되잖아?”
“그러면 손을 떼시는 겁니까?”
“당의 이미지 관리도 해야 하지 않나?”
윤호석은 천연덕스럽게 입을 씻었다. 정 의원도 아내의 말을 듣기는 했지만, 이 일과 연관되어 좋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자네 처가가 대한민국을 좌지우지하는 집안 중 하나이지만, 거기 격에 맞지 않는 인물이 들어왔어. 이제 정리할 때가 된 거지.”
윤호석은 껄껄 웃었다. 윤호석 의원의 차남이 유학중인데 정 의원은 그의 딸을 한번 짝맞출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하단우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났다. 이강혜가 보이지 않는다. 옆에는 쪽지 하나만 놓여 있었다. “송화수 교수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
하단우는 휴대폰이 없고, 전화벨 소리가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역시 조상님의 말씀대로 선영에 좀 내려가 있어야 할 것 같았다.
그는 전화기에 가서 이강혜에게 전화를 했지만 통화중이다 . 하는 수 없이 송 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송화수 교수님은 세미나 관계로 일주일간 체코 프라하로 출장 가셨습니다” 라는 메시지만 나왔다.
무슨 일이지? 그는 일단 선영으로 가서 나중에 연락을 취하기로 했다.
===
그 후 며칠 동안 폭풍이 이어졌다.
이만국이 일본의 거부 아카호시 코테츠의 살인범이라는 설, 이강혜가 호스트바의 1등 호스트 차성진을 죽였다는 설은 물론, 최상류층 출신의 하단우가 이강혜 일가의 배후라는 설까지 가득했다.
유민주와 마사히토는 각각 한국과 일본 언론에 있는 대로 다 떠들어댔고 이만국 부녀는 모든 혐의를 부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병원에 있는 이강준에까지 기자들이 찾아왔고, 강준은 한국말을 못하는 가오리에게 그들을 상대하도록 했다.
이만국 ,이강혜는 당장 자기 앞가림하기도 급해서 이강준까지 신경쓸 정신은 없었기 때문이다.
만국과 강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면서 해명하기에 바빴지만, 조국일보와 대왕일보의 공격은 거셌다. 윤호석 의원은 그들을 만나 주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만국은 이 정도로 무너지지 않는다. 그는 돈의 힘을 사용하기로 결정하였다.
같은 시간, 이강혜는 용한 무당과 점장이들을 여럿 만나고 있었다.
동운 거사는 현 대통령도 도지사 시절에 친분이 있던 인물로서 상류층들만 만난다고 소문난 사람이었다. 이강혜는 그를 만나기 위해 10억이라는 현금을 그냥 돌아보지도 않고 가방 두 개에 싣고 왔다.
“음. 10억이 맞군.” 동운거사는 2만 장의 신사임당을 제자들에게 하나씩 다 세게 한 후에 말했다.
강혜는 그 때 유민주가 30억을 달라고 했을 때 줄 것을 후회하였다. 하지만 하단우에게 직접 털어놓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 마음 속에서는 그녀는 그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바쁜 사람이예요. 빈말을 하면 돈 다시 가져가요.”
“어허! 그런 심뽀니까 이런 환을 당하지.”
동운거사는 부채를 편 채 강혜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고 내뱉었다.
“어떻게 이 난리를 벗어날 수 있나요?”
“큰 난리는 큰 수단으로 풀어야지. “
“무얼로 푸는데요?”
“이 모든 건 다 자네 집안이 하씨 종가를 사들였기 때문에 하씨 가문의 저주가 옮겨 붙어서 생긴 것이야.”
이제야 좀 말이 되네. 10억을 처먹었으면 10억짜리 충고를 해야지.
“해결방법은요?”
“첫째로, 하씨종가를 원래 주인에게 돌려주고 인연을 끊게.”
“그 다음에 하나가 더 있나요?”
“그렇지. 저주로 인해 생긴 혼란은 저주의 원천을 끊어야 해. 모든 것은 단종 귀신으로 인해 생긴 것이니, 영월의 장릉을 폭파하게.”
벌써 몇 명에게서 똑같은 충고를 듣는 것인가?
“하지만 명색이 왕릉인데…”
‘자네 가문은 그렇게 안 하면 망하지. 단종 귀신이 저주를 내리고 있으니까, 그걸 해결하려면 그 수밖에 없어.”
동운선생의 몸 속에 들어가 있는 하위지는 이강혜에게 장릉을 폭파하라고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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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엘링턴호텔 정문 앞.
하단우는 선영에서 기도를 드리다가 서울에 올라왔다. 송화수와도 연락이 닫지 않고, 강혜는 전화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호텔 정문에서 마침 강혜와 마주쳤다.
“강혜 씨. 왜 연락도 안 되고 송화수 씨도 연락이 안 되는 거지?”
“그 사람이 어디 있는데? “ “체코에 갔다고만 했는데 돌아올 시간이 되었어도 연락이 없어.”
“변호사를 좀 만나자. “ “왜?”
“이혼해야겠어.”
“뭐? 갑자기 무슨 이혼?”
“너는 병자야. 내가 뭐에 홀려서 너와 결혼했지만, 이제는 너와 인연을 끊어야겠어.”
하단우는 주먹을 쥐었다. “병자인 걸 다 알고 결혼했잖아? “
“하단우. 너의 저주 때문에 우리 집안에도 피해가 매우 커. 더우기 저주를 풀기도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왜 내가 너 때문에 당해야 하지? “
“난 이혼 못해줘. 절대로.” 하단우는 말했다.
“위자료로 네가 사는 그 집 소유권은 돌려주지. 이제 다시 나를 찾지 마. 그 집 돌려 주는 걸로 계산 끝낼 테니까. 선산은 못 돌려 줘. “
이강혜는 경호원들에게 둘러싸여져 안으로 들어갔다. 하단우는 그녀를 잡으려고 일어섰지만, 경호원들이 그를 눌렀고, 힘이 없어 그냥 주저 앉고 말았다.
--
하단우의 집.
그가 어떻게 택시를 잡아타고 집에 왔는지 잘 생각도 나지 않는다.
택시기사와의 이야기로 대충 이씨 집안에 생긴 일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렇다 해도 하단우에게 한 마디도 하지 않은 건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때 하중경이 나타났다.
“종손. 잘 있었나?”
“도대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어요. 일본에 다녀오기 전까지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나의 계산 미스다.” “네?”
“나는 너를 이씨 가문이 돌봐 줄 줄 알았다. 그래서 그 가문을 형통하게 해 준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그를 버리지 못하도록 족쇄까지 채워 놓았다는 이야기는 해 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자신들이 조금 어렵다고 네게 이럴 줄은 몰랐다.”
“이제 어떡하지요? 저는 이제 몸을 가누기도 힘이 듭니다.”
중경도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조상님께 기도를 드려라.”
“네? 조상님 문에 생긴 병인데 어떻게… “
“이 방에서 죽을 힘을 다해 기도를 드려라. 다른 방법은 없다. 시조 할아버지께서 너를 불쌍히 여겨 나타나 주실 지도 모르잖니?”
…
이만국과 이강혜는 검찰소환을 무시하고 호텔에서 머무르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검찰이 그들을 체포하러 올 것이다. 그러기 전에 승부를 내야만 했다.
“강혜야. 작전은 다 세워 놓았니?”
“예.”
이강혜는 호텔에서 일하는 파키스탄인이 현지 갱들과 관련이 있음을 알아냈다.
그래서 그들에게 돈을 주어, 직접 손댈 필요 없이 그들로 하여금 영월 장릉을 폭파하도록 했다.
폭파비용과 도피자금 등 모두 6억원 정도가 들 것이다.
“그걸 폭파하면 어떻게 된다고 하더냐?”
“단종 귀신이 살아나서 원수를 갚지만, 우리에게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갚는다고 했어요.”
“좋다. 날짜는?”
“보름달이 뜨는 오늘 밤이예요.”
“그래…”
이만국은 바깥을 보았다. 아버지가 어머니와 자신을 버리고 일본으로 도망가고, 집은 성난 조선 사람들이 와서 다 털어 갔을 때 아무것도 없는 집 바닥에 누워서 보던 달도 저렇게 휘영청 떴었지.
“내 욕심이 컸다. 이번 일이 끝나면 너와 나, 강준이, 모두 다 외국에 나가서 살자.”
“네.”
이강혜의 머릿 속에 하단우는 없었다. 하단우, 하중경, 모두 영원히 잊고 싶다.
==
한밤중. 영월 장릉 근처, 동강 건너편.
마샤프와 자르딜은 관광객으로 가장하고 이날 저녁 장릉을 관광했다.
파키스탄인이 조선 왕릉을 관광하러 이런 시골까지 왔다는 걸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별로 관심들은 갖지 않았다.
증거를 남기는 건 좋지 않다. 압바스가 좋은 게 있다고 그들을 포섭할 때 광산에서 폭파기술자로 일했던 마샤프와 폭약을 조합하던 쟈르딜은 쉽게 받아들였다.
한번만 일해 주면 평생 먹고 살 돈이 나온다. 이걸 누가 안 하겠는가?
밤이 되었고 , 장릉을 경비하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경내가 크고 훔쳐갈 물건도 없기 때문에 별로 걱정할 것이 없다.
쟈르딜은 옛날 반란군으로 있을 때에 배운 소형폭약을 장릉의 곳곳에 던져 놓았고, 마샤프는 알카에다 출신의 친척에게서 구한 기폭장치들을 거기 섞어 놓았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원격조정으로 폭탄을 폭발시키는 것이다.
누가 무식하게 장릉에 직접 들어가서 폭파할까? 지금은 첨단시대다. 테러도 첨단화되어야지.
마샤프가 말했다. “이제 우린 어떻게 될까?”
쟈르딜이 대답했다. “어떻게 되긴. 내일 당장 홍콩행 비행기 타고 거기 은행에서 돈 찾으면 되지.”
마샤프는 원격조정기를 눌렀다.
그들은 강 건너에서 불꽃이 솟는 것을 볼 필요가 없었다. 원격조정기를 동강에 던져버린 후, 그들은 산길을 내려와 대기하고 있던 압바스의 차에 올라탔다.
한국의 문화재 관리가 너무 허술하여, 옛 사찰이 불에 타는 일이 비일비재하지요.
하물며 영월 산골에 있는 장릉 같은 곳은 더욱 더 위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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