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섬 - 단편7장
작성자 정보
- AV야동 작성
- 작성일
컨텐츠 정보
- 7,003 조회
-
목록
본문
난 한번도 누군간의 여자였던 적이 없다. 모든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결혼 생활을 하고 있지만, 내가 남편의 여자였던 적이 없었다. 왜 내가 이런 삶을 살고 있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나를 아는 사람들을 나를 안다고 생각하지만, 누구도 내가 어떤 삶을 살고 있는 지는 모른다. 결혼 생활 4년 동안, 나는 한 번도 남편에게 안겨본 일이 없다. 내가 꿈꿨던 사랑과, 내가 살고 싶었던 결혼 생활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내 아버지는 교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님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목회자라는 사실을 언제나 자랑스러워 했다. 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자랑이 자신만의 것으로 머물러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버지는 목회자로서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 평생을 희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었지만, 나는 결국 엄마의 딸이었고, 아버지의 딸에 불과했다.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목사의 딸이 살아야하는 거룩한 삶이 결국은 내 삶이 되어야 했다.
남에게 존경받아야 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에게도 자신의 지위와 명성에 걸맞는 행동을 요구했었다.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나는 언제나 통금이 있었고, 남의 입에 오르내릴 일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여중, 여고만을 다녀야 했고, 대학도 여대를 가야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한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하라는 것만 했고, 아지 말라는 것을 하지 말아야 했다. 나도 사춘기가 있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일을 해보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결코 그런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들처럼 미팅을 해본 일도 없고, 소개팅을 해본 일도 없었다.
여고를 다니던 언젠가 학교를 마치고 나를 따라왔던 남학생 때문에 나는 며칠을 방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내가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기에, 길거리에서 남학생이 좇아 오는 일이 있냐며 학교와 집 외에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난 다음, 나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들이 있을 때면... 그 남자가 어떤 남자이건 간에 겁부터 났고, 피해야만 했다. 대학을 가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줄 알았지만, 아버지는 성인이 된 나에게 더 호되고 엄하게 구셨다. MT는 생각을 꿈도 꾸지 못했고, 학교 친구들과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금시간인 9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을 돌아와야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몇번 아버지 몰래 친구들과 미팅을 나간 일이 있었다. 엄한 가정 교육 때문에 한번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나도 젊고 어린, 마냥 예뻐야만 했던 대학 시절이 있었다. 내 마음 속에도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있었고,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연애를 하고 사랑을 받고 싶었다. 딱 한 번... 소개팅에서 내 마음 속의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한번도 남자를 제대로 만난 일이 없던 나는 속앓이만 하다가 그 남자의 파트너도 되지 못했고, 그저 다른 친구와 그 남자가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만 멀찍이서 전해들어야 했다. 마음 속에 그렇게 강한 갈구가 있었어도... 평생을 금기 속에서 살아야 했던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아닌 그저 아버지의 딸로 사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자식이라고는 오직 딸인 나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오빠가 하나 있었지만...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던 너무 어린 시절에 병을 얻어서 죽고 말았다. 아버지가 내게 보인 도를 넘어선 집착은 어려서 잃은 오빠 때문이기도 했다. 하나 남은 나를 통해서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마지막 완성을 보시려는 의지가 있으셨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야망의 희생물이 되어야만 했다. 내 삶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고, 내 의지는 그 정해진 것 앞에서는 언제나 무시당했다. 아버지의 야망은 할아버지때부터 이어온 최고의 목회자 집안을 완성하는 일이셨는데, 남은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딸이 목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훌륭한 목회자의 사모가 되게 하시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가르치셨고... 나는 그게 그냥 나의 삶이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저항이나 해방의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결국 내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일은... 결혼 말고는 없었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돌파구였기에...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누가 봐도 어엿한 결혼 상대자로 나를 가꾸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기도하고 기도했다. 결혼의 상대도 내가 원하는대로 택할 수 없었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살아야하는 운명이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길이라면...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내 미래의 남편만큼은...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으로 달라고...
목회자들 중에는 아버지말고도 자신이 걸어가는 그 길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아버지가 언제나 존경하고 동경했던, 자신도 충분히 교계에서 존경을 받고 목회자로서 더 올라갈 곳이 없을만큼 성공하신 분이셨는데 왜 그래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 오XX 목사님이 계셨는데... 이 분도 아버지와 사돈을 맺는 일로 자신의 집안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 집안으로 만드시려는 꿈을 가지고 계셨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나는 오 목사님의 장남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처음 소개받았다. 남편은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군목을 마치고, 신학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 남편을 봤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내 오랜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생각했다. 준수한 외모와 믿음을 주는 말투, 그리고 나를 배려해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이라면, 적어도 내가 아버지처럼 권위적인 목회자의 희생하는 사모가 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었다. 남편을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내게 프로포즈를 했었고... 사실 거절할 길도 없었던 나는 그렇게 남편의 약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3년을 한국에서 남편만을 기다리며, 존경받는 목사의 사모가 되는 준비를 하면서 지냈다. 떨어져 있는 동안, 남편은 1주일에 한 번씩은 내게 전화를 했고, 때때로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언제나 이야기와 편지에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바탕이었고...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잘 이루어나가자는 다짐을 했었다. 나는 그것이 남편과 내가 살아야하는 삶이고, 그게 우리 부부에게 계획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약혼을 하고 남편을 기다렸던 그 시절이 내 젊은 시절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내가 약혼을 하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나에게 그 무서운 권위를 부리시지 않으셨으니까. 이따금 만나는 여고와 여대의 친구들도 나를 부러워했다. 무엇보다도 성공한 목회자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촉망받는 미래의 유명한 목사의 아내가 될 나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목회자로 성공한만큼, 경제적으로도 풍요했던 것도 내가 친구들로부터 받은 부러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남편은 외모가 수려한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전까지 언제나 방어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내 마음도 그때 그 시절에 가장 열린 마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이 신학박사가 되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정말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예배를 올리고 남편과 부부가 되었다. 교계의 많은 목회자들이 아버지와 시아버님이 사돈을 맺은 것을 축복하고 부러워했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꿈의 마지막을 완성시키는 착한 딸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억눌려 살았던 내 슬픈 인생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또다른 감옥 같은 삶을 시작하는 것인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나는 많은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멋진 남자의 여자가 될 줄만 알았다... 남들은 함부로 받을 수도 없는 그 많은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갔었지만... 남편은 신혼여행 내내 나를 여자로 대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어떤 여자라도 그렇듯... 나도 아름다운 신혼의 첫날밤을 가슴 설레면서 기다렸지만... 남편은 신혼여행 내내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한번도 남자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것인가... 의아했지만... 오래 기다린 신부를 사랑해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했었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상황이 처음이기 때문에 숫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나와 남편의 결혼생활같지 않은 결혼생활은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계획되어 있었던 것임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참된 행복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내 결혼 생활이 무참하게 깨져버린 사건이...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차린 지 두 달도 되지 못해 터지고 말았다. 부부생활이 없는... 긴장감만이 쌓여가던 어느날 밤... 남편이 내게 고백을 했다... 자신은 여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 고백은... 고백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또다른 무서운 권위로 다가왔다. 나는 남편의 비밀을 보호하는 장치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목회자의 길을 걸어와야 했지만... 애정에 관한 자신만의 어쩔 수 없는 성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장치는... 여자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이라면서... 나에게 그렇게 살아줄 것을 요구했다...!
남편은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남편이 나를 택한 이유는 나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목회자가 목회자답게 살기 위해 숨기고 있는 또다른 이면의 추한 모습을 감춰주는 일에 평생을 봉사하는 그런 사람으로 내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편이 더 무서웠던 것은, 결혼으로 나를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놓았다는 생각을 하고 나면서부터, 노골적으로 나에게 그런 삶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 앞에서... 나는 남편의 그 무서운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나는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정말 남편이 나를 보고 판단한 그대로 그렇게 내 인생을 만들어 왔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남편을 결혼이라는 장치와 목회자의 아내라는 장치로 속에서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다름 아닌 나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에게 사육되었고, 이렇게 남편에게 팔리워 온... 몸종과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런 내 삶의 조건을 나는 도무지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남편과 4년을 살아야 했다.
교인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남편과 금슬이 좋은 참한 젊은 사모의 역할을 해야 했다. 내 얼굴에는 언제나 남편이 요구하고, 내 평생을 통해서 배운 거룩한 미소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 속을 알 도리가 없이, 내가 너무도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 부러워했다. 남편은... 무서우리만큼 위선적인 사람이었다. 교인들은 그가 보이는 선한 미소,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보듬어주는 거룩하고 모습으로 남편을 받아들였다. 시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성 속에서 나고 자란 천혜의 목회자... 대한민국의 교계를 이끌어갈 든든한 버팀목 같은 목사로... 남편은 그렇게 만들어져 갔고... 나도 그런 남편과 한 세트가 되어서... 내 아버지가 계획했던 내 삶 속에 나를 가두어 갔다.
그런 삶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쩌면 그냥 그대로 살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적어도 남편이 나에게 요구한 희생처럼... 자신도 그런 희생을 감내하면서 살았더라면... 나는 남편을 그렇게 증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은 내게 요구한 희생을 자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혼 생활이 1년을 넘어가고, 내가 남편의 위선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보같은 여자라는 것을 확인했을 무렵부터... 남편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숨은 애정 행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옆에 있어도 내가 그것에 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만하는... 조각상처럼... 나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애정 행각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혼생활이 2년차에 접어들었던 어느 월요일... 나와 남편을 위해 마련된 나만의 공간에서, 남편이 교회 청년부의 어느 남학생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내가 교회일로 집을 비운 사이... 벌어졌던 일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남편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내 평생 처음으로 본 남자의 성기가 그렇게 악하고 추한 것이어서는 안되었다. 남편이 나를 아내로 생각했다면... 적어도 내가 머무는 나의 공간에서 그런 일을 벌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두 남자가 벌겋게 달아오른 성기를 서로 미친 듯이 탐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그 남자 중의 하나를 남편으로 둔 여자에게는... 사망선고와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차라리 남편이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그런 일을 했더라면, 그 순간과 그때까지의 내 삶이 그렇게 저주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여자를 사랑하지 못했지만, 남자를 탐닉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나는 남편을 위선자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젊은 아이들은... 기회가 되는대로 탐했다. 거룩한 미소 뒤로... 자신의 성욕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다니는 것이 남편이었다. 여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남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남편은 오히려 자신의 위선이 드러나지 않는 안전망 속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마치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스스럼 없이 자신 연애를 하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는 경우가 잦았다. 다른 사람들은 존경받고 촉망받는 목회자가 동성과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신앙 상담과 성경 공부라는 미명아래... 교회의 미소년들을 자기 마음껏 탐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사람이 아닌 한 인간의 성공과 위선을 가리는 도구로 전락한 삶을 살았다. 나는 내가 산 삶을 저주하면서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고, 가슴을 뜯어야 했다.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고, 매일의 삶이 지옥과도 같았다. 나의 그 저주받은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죽고 싶었지만,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죽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더 무서웠던 것은... 나도 그렇게 남편의 위선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거룩한 생을 살아가는 목회자의 사모로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내 기도 속에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나를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만약에 선한 하나님이 계신다면... 절대 나를 이런 악에 영원히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만은 놓지 않았다...
어느날 지현이가 우리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았고... 지현이가 자신의 남편을 내게 소개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사람은 대학 시절 단 한 번 아쉬움에 마음 아팠던... 미팅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고... 양쪽이 수가 많았던 미팅이었기 때문에...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대번에 그가 그때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현이를 따라 교회를 나오는 것 같았지만... 아직 신앙심이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지현이도 내가 교회의 부목사 사모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나와 자주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간접적으로 지현이가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지현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면서도, 나는 내 삶에 전혀 없는 거짓 행복을 지현이에게 들려줘야만 했다. 지현이는 나처럼 신앙이 깊은 집안의 목회자와 함께 사는 것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지현이가 부러웠고... 지현이가 부러울 때마다... 지현이의 부탁에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교회를 기꺼이 나와주는 그의 남편이 부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도 솔직했던 지현이에게 듣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삶의 순간순간이 다 잘못 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지현이의 남편을 봤던 여대 초년생 시절... 내가 조금이라도 용기가 있었더라면... 지현이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 내가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못된 생각까지 이어지고는 했으니까....
* * * * * * * * * *
하나님은 너무도 무서운 방식으로 내 기도를 들어 주셨다. 왜 하필이면... 윤 선생님과 효미마니 살아남았을까...? 비행기 사고와 섬의 표류... 이 모든 것이 다 나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괴로웠지만... 그와 동시에...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해주신... 새로운 삶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내가 두렵다. 이제 언제 이 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순간이 이렇게 그냥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섬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한번도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섬이 내게는 지옥같았던 생활에서 얻은 구원 같은 천국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죽은 지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게도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전에 없던 해방이고 행복인 것만 같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 중에, 특별히 살아남은 남자가... 윤 선생님이라는 것은... 다행을 넘어서... 내가 받은 축복인 것만 같다. 비록 한 번도 누구에겐가 여자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도 버릴 수 없는 목사의 사모로서의 내 삶의 방식 때문에...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그가 함께 살아준 것이 너무 감사하고... 그가 효미와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주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정말 어떻게든... 이렇게 함께 살아주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비록 효미는 그에게 여자가 될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이 괴롭지만... 아니, 내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럴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표류의 처음때 보여주던 폭력과 분노를 잊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효미와 나누는 사랑이 그에게 안정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너무 감사할 일이다... 위선적이던 남편 옆에서 무시당하면서 살던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적어도 윤 선생님은 나에게 조심해주니까...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니까...
* * * * * * * * * *
- 저 사모님을 원합니다.
- 윤 선생님...
- 저 사모님을 원한다구요...!
- 아... 우리 이러면 안되는 거 아시잖아요...
- 아뇨, 모릅니다.
윤 선생님의 손을 도무지 뿌리칠 수가 없다... 뿌리치고 싶지가 않다.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죽은 줄만 알았던 내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것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아버지와 남편이 내 마음 속에 단단히 박아 놓았던 위선의 대못을... 이 사람이 뽑아내려는 것만 같다...!
아... 어떡하면 좋을까...
<계속>
자, 이제 클라이막스로 달려갑니다.
앞으로 3편?
1년 넘게 버려두다가 이야기를 다시 잇다보니,
앞부분의 맥락이 가물가물하실 수도 있습니다.
애초 중편 분량으로 기획했던 것이라,
몇 편 되지 않으니 다시 한 번 보시면
이번 편 이야기가 왜 이러고 마나...
조금 이해해 주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제가 좀 무성의한 작가인 점 사과 드립니다.
내 아버지는 교계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사님이다. 아버지는 자신이 목회자라는 사실을 언제나 자랑스러워 했다. 아버지는 그런 자신의 자랑이 자신만의 것으로 머물러 있는 것을 원치 않았다. 아버지는 목회자로서 야망이 큰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 평생을 희생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절대 엄마처럼 살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하고 다짐했었지만, 나는 결국 엄마의 딸이었고, 아버지의 딸에 불과했다. 어려서부터 듣고 자란 목사의 딸이 살아야하는 거룩한 삶이 결국은 내 삶이 되어야 했다.
남에게 존경받아야 하는 아버지는, 자신의 가족에게도 자신의 지위와 명성에 걸맞는 행동을 요구했었다. 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나는 언제나 통금이 있었고, 남의 입에 오르내릴 일은 결코 용납되지 않았다. 아버지 때문에 여중, 여고만을 다녀야 했고, 대학도 여대를 가야했다. 왜 그랬을까? 나는 한번도 아버지의 뜻을 거역하는 일을 해본 적이 없다. 아버지가 하라는 것만 했고, 아지 말라는 것을 하지 말아야 했다. 나도 사춘기가 있었고, 다른 아이들처럼 대학을 다니면서 많은 일을 해보고 싶었지만, 아버지는 결코 그런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들처럼 미팅을 해본 일도 없고, 소개팅을 해본 일도 없었다.
여고를 다니던 언젠가 학교를 마치고 나를 따라왔던 남학생 때문에 나는 며칠을 방 안에 갇혀 있어야만 했다. 아버지는 내가 행실을 어떻게 하고 다니기에, 길거리에서 남학생이 좇아 오는 일이 있냐며 학교와 집 외에는 아무데도 가지 못하게 했었다. 그런 일이 몇 번 있고 난 다음, 나는 나에게 호감을 보이는 남자들이 있을 때면... 그 남자가 어떤 남자이건 간에 겁부터 났고, 피해야만 했다. 대학을 가면 조금이라도 나아질 줄 알았지만, 아버지는 성인이 된 나에게 더 호되고 엄하게 구셨다. MT는 생각을 꿈도 꾸지 못했고, 학교 친구들과 아무리 재미있는 일이 있다고 하더라도 통금시간인 9시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집을 돌아와야 했다.
대학을 다니면서 몇번 아버지 몰래 친구들과 미팅을 나간 일이 있었다. 엄한 가정 교육 때문에 한번도 드러내지는 못했지만... 나도 젊고 어린, 마냥 예뻐야만 했던 대학 시절이 있었다. 내 마음 속에도 사랑에 대한 갈구가 있었고, 나도 다른 아이들처럼 연애를 하고 사랑을 받고 싶었다. 딱 한 번... 소개팅에서 내 마음 속의 남자를 만난 적이 있었지만... 한번도 남자를 제대로 만난 일이 없던 나는 속앓이만 하다가 그 남자의 파트너도 되지 못했고, 그저 다른 친구와 그 남자가 만나고 있다는 이야기만 멀찍이서 전해들어야 했다. 마음 속에 그렇게 강한 갈구가 있었어도... 평생을 금기 속에서 살아야 했던 나는 어느 순간 내가 아닌 그저 아버지의 딸로 사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던 것 같다.
아버지에게 자식이라고는 오직 딸인 나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나보다 세 살이 많은 오빠가 하나 있었지만... 내가 기억도 하지 못하던 너무 어린 시절에 병을 얻어서 죽고 말았다. 아버지가 내게 보인 도를 넘어선 집착은 어려서 잃은 오빠 때문이기도 했다. 하나 남은 나를 통해서 아버지는 자신이 살아온 삶의 마지막 완성을 보시려는 의지가 있으셨고, 나는 그런 아버지의 야망의 희생물이 되어야만 했다. 내 삶은 모든 것이 정해져 있었고, 내 의지는 그 정해진 것 앞에서는 언제나 무시당했다. 아버지의 야망은 할아버지때부터 이어온 최고의 목회자 집안을 완성하는 일이셨는데, 남은 자식이라고는 딸 하나 밖에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딸이 목사가 되지 못하더라도, 훌륭한 목회자의 사모가 되게 하시는 것으로 계획을 세워놓고 계셨다. 아버지는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나는 그렇게 되어야한다고 가르치셨고... 나는 그게 그냥 나의 삶이라고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그 어떤 저항이나 해방의 가능성은 없었으니까...
결국 내가 아버지에게서 벗어나는 일은... 결혼 말고는 없었다. 그것만이 나의 유일한 돌파구였기에... 나는 아버지가 원하는대로 누가 봐도 어엿한 결혼 상대자로 나를 가꾸는 일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기도하고 기도했다. 결혼의 상대도 내가 원하는대로 택할 수 없었기에, 이렇게 사는 것이 내가 살아야하는 운명이고, 아버지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길이라면... 나를 위해 예비해 놓으신 내 미래의 남편만큼은... 나를 정말 사랑해주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으로 달라고...
목회자들 중에는 아버지말고도 자신이 걸어가는 그 길에서 모든 것을 완성하고 싶어하는 다른 사람들이 있었다. 그 중에는 아버지가 언제나 존경하고 동경했던, 자신도 충분히 교계에서 존경을 받고 목회자로서 더 올라갈 곳이 없을만큼 성공하신 분이셨는데 왜 그래야 하셨는지 모르겠지만... , 오XX 목사님이 계셨는데... 이 분도 아버지와 사돈을 맺는 일로 자신의 집안을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목회자 집안으로 만드시려는 꿈을 가지고 계셨다. 대학을 졸업할 때 즈음, 나는 오 목사님의 장남이었던, 지금의 남편을 처음 소개받았다. 남편은 나보다 다섯 살이 많은 사람이었는데... 군목을 마치고, 신학 유학을 준비하고 있었다.
처음 남편을 봤을 때... 나는 하나님께서 내 오랜 기도를 응답하셨다고 생각했다. 준수한 외모와 믿음을 주는 말투, 그리고 나를 배려해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가 있었다. 나는 이 사람이라면, 적어도 내가 아버지처럼 권위적인 목회자의 희생하는 사모가 되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기대가 생겼었다. 남편을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남편이 내게 프로포즈를 했었고... 사실 거절할 길도 없었던 나는 그렇게 남편의 약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남편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3년을 한국에서 남편만을 기다리며, 존경받는 목사의 사모가 되는 준비를 하면서 지냈다. 떨어져 있는 동안, 남편은 1주일에 한 번씩은 내게 전화를 했고, 때때로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는데... 언제나 이야기와 편지에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가 바탕이었고... 함께 하나님께서 주신 비전을 잘 이루어나가자는 다짐을 했었다. 나는 그것이 남편과 내가 살아야하는 삶이고, 그게 우리 부부에게 계획된 사랑이라고 생각했다.
약혼을 하고 남편을 기다렸던 그 시절이 내 젊은 시절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던 것 같다. 아버지도... 내가 약혼을 하고 난 다음에는, 더 이상 나에게 그 무서운 권위를 부리시지 않으셨으니까. 이따금 만나는 여고와 여대의 친구들도 나를 부러워했다. 무엇보다도 성공한 목회자 집안의 며느리가 되고, 촉망받는 미래의 유명한 목사의 아내가 될 나는 친구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목회자로 성공한만큼, 경제적으로도 풍요했던 것도 내가 친구들로부터 받은 부러움이기도 했고... 무엇보다도 남편은 외모가 수려한 그런 사람이었으니까. 그전까지 언제나 방어적으로 살아야만 했던 내 마음도 그때 그 시절에 가장 열린 마음으로 살 수 있었던 것 같다.
남편이 신학박사가 되어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 정말 화려하고 성대한 결혼예배를 올리고 남편과 부부가 되었다. 교계의 많은 목회자들이 아버지와 시아버님이 사돈을 맺은 것을 축복하고 부러워했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의 꿈의 마지막을 완성시키는 착한 딸이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억눌려 살았던 내 슬픈 인생에 마지막 인사를 고하는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것이 또다른 감옥 같은 삶을 시작하는 것인줄은... 꿈에도 알지 못했다.
나는 많은 여자들이 부러워하는 멋진 남자의 여자가 될 줄만 알았다... 남들은 함부로 받을 수도 없는 그 많은 축복 속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갔었지만... 남편은 신혼여행 내내 나를 여자로 대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어떤 여자라도 그렇듯... 나도 아름다운 신혼의 첫날밤을 가슴 설레면서 기다렸지만... 남편은 신혼여행 내내 나를 안아주지 않았다. 한번도 남자를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나는 그것이 그냥 그럴 수도 있는 것인가... 의아했지만... 오래 기다린 신부를 사랑해주지 않는 남편이 야속했었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그런 상황이 처음이기 때문에 숫기가 없어서 그런 것이라고 생각했었지만... 나와 남편의 결혼생활같지 않은 결혼생활은 그렇게 그런 방식으로 계획되어 있었던 것임을 시간이 지나면서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의 참된 행복의 완성이라고 생각했던 내 결혼 생활이 무참하게 깨져버린 사건이... 결혼을 하고 신혼집을 차린 지 두 달도 되지 못해 터지고 말았다. 부부생활이 없는... 긴장감만이 쌓여가던 어느날 밤... 남편이 내게 고백을 했다... 자신은 여자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그러나 그 고백은... 고백이라기 보다는... 나에게 또다른 무서운 권위로 다가왔다. 나는 남편의 비밀을 보호하는 장치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남편도 나와 마찬가지로,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목회자의 길을 걸어와야 했지만... 애정에 관한 자신만의 어쩔 수 없는 성정을 숨길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장치는... 여자와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리고 사는 것이라면서... 나에게 그렇게 살아줄 것을 요구했다...!
남편은 아버지보다 더 무서운 사람이었다. 남편이 나를 택한 이유는 나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목회자의 집안에서 나고 자라서, 목회자가 목회자답게 살기 위해 숨기고 있는 또다른 이면의 추한 모습을 감춰주는 일에 평생을 봉사하는 그런 사람으로 내가 적격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남편이 더 무서웠던 것은, 결혼으로 나를 자신의 테두리 안에 가두어 놓았다는 생각을 하고 나면서부터, 노골적으로 나에게 그런 삶을 요구했기 때문이다. 그런 남편 앞에서... 나는 남편의 그 무서운 요구를 거부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나는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는 정말 남편이 나를 보고 판단한 그대로 그렇게 내 인생을 만들어 왔던 것이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나를 사랑해주지 않는 남편을 결혼이라는 장치와 목회자의 아내라는 장치로 속에서 거부하지 못하는 것이... 다름 아닌 나였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아버지에게 사육되었고, 이렇게 남편에게 팔리워 온... 몸종과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지만... 그런 내 삶의 조건을 나는 도무지 거부할 용기가 없었다... 나는 그렇게 남편과 4년을 살아야 했다.
교인들 앞에서 나는 언제나 남편과 금슬이 좋은 참한 젊은 사모의 역할을 해야 했다. 내 얼굴에는 언제나 남편이 요구하고, 내 평생을 통해서 배운 거룩한 미소가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내 속을 알 도리가 없이, 내가 너무도 완벽하고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이라고 믿었고 부러워했다. 남편은... 무서우리만큼 위선적인 사람이었다. 교인들은 그가 보이는 선한 미소, 사람들 앞에서 한없이 자신의 아내를 사랑하고 보듬어주는 거룩하고 모습으로 남편을 받아들였다. 시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성 속에서 나고 자란 천혜의 목회자... 대한민국의 교계를 이끌어갈 든든한 버팀목 같은 목사로... 남편은 그렇게 만들어져 갔고... 나도 그런 남편과 한 세트가 되어서... 내 아버지가 계획했던 내 삶 속에 나를 가두어 갔다.
그런 삶이었다고 하더라도, 나는 어쩌면 그냥 그대로 살 수 있었는 지도 모른다. 적어도 남편이 나에게 요구한 희생처럼... 자신도 그런 희생을 감내하면서 살았더라면... 나는 남편을 그렇게 증오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남편은 내게 요구한 희생을 자신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혼 생활이 1년을 넘어가고, 내가 남편의 위선의 틀 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바보같은 여자라는 것을 확인했을 무렵부터... 남편은 노골적으로 자신의 숨은 애정 행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마치 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옆에 있어도 내가 그것에 관해 아무런 대응도 하지 못하고 받아들여야만하는... 조각상처럼... 나를 무시하면서 자신의 애정 행각을 스스럼 없이 드러내기 시작했다.
결혼생활이 2년차에 접어들었던 어느 월요일... 나와 남편을 위해 마련된 나만의 공간에서, 남편이 교회 청년부의 어느 남학생과 애정행각을 벌이는 것을 목격하고 말았다. 내가 교회일로 집을 비운 사이... 벌어졌던 일이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남편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았다. 지금도 그때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 내 평생 처음으로 본 남자의 성기가 그렇게 악하고 추한 것이어서는 안되었다. 남편이 나를 아내로 생각했다면... 적어도 내가 머무는 나의 공간에서 그런 일을 벌여서는 안되는 것이었다. 두 남자가 벌겋게 달아오른 성기를 서로 미친 듯이 탐하는 모습을 본다는 것이... 그 남자 중의 하나를 남편으로 둔 여자에게는... 사망선고와도 같은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차라리 남편이 내가 아닌 다른 여자와 그런 일을 했더라면, 그 순간과 그때까지의 내 삶이 그렇게 저주스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여자를 사랑하지 못했지만, 남자를 탐닉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한 남자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면, 적어도 나는 남편을 위선자로 여기지 않았을 것이다. 남편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서... 젊은 아이들은... 기회가 되는대로 탐했다. 거룩한 미소 뒤로... 자신의 성욕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다니는 것이 남편이었다. 여자를 대상으로 한 것이 아니라, 남자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남편은 오히려 자신의 위선이 드러나지 않는 안전망 속에 사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지날수록... 남편은 마치 나의 존재를 완전히 잊어버리기라도 한 듯... 스스럼 없이 자신 연애를 하는 남자아이를 데리고 집에 오는 경우가 잦았다. 다른 사람들은 존경받고 촉망받는 목회자가 동성과 그런 일을 벌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기 때문에, 신앙 상담과 성경 공부라는 미명아래... 교회의 미소년들을 자기 마음껏 탐했던 것이다.
나는 그렇게 사람이 아닌 한 인간의 성공과 위선을 가리는 도구로 전락한 삶을 살았다. 나는 내가 산 삶을 저주하면서 너무도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고, 가슴을 뜯어야 했다. 살아도 산 것 같지가 않았고, 매일의 삶이 지옥과도 같았다. 나의 그 저주받은 삶을 벗어나지 못하는 내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죽고 싶었지만, 타인의 시선이 두려워서 죽지 못하는 내가 원망스러웠다. 더 무서웠던 것은... 나도 그렇게 남편의 위선을 닮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하고... 거룩한 생을 살아가는 목회자의 사모로 살아야 했으니까... 그렇지만... 나는 내 기도 속에 이 지옥 같은 삶에서 나를 구원해달라는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만약에 선한 하나님이 계신다면... 절대 나를 이런 악에 영원히 내버려두시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만은 놓지 않았다...
어느날 지현이가 우리 교회에 다닌다는 것을 알았고... 지현이가 자신의 남편을 내게 소개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 사람은 대학 시절 단 한 번 아쉬움에 마음 아팠던... 미팅에서 만났던 그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너무도 짧은 만남이었고... 양쪽이 수가 많았던 미팅이었기 때문에... 그는 나를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나는 대번에 그가 그때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현이를 따라 교회를 나오는 것 같았지만... 아직 신앙심이 있는 사람 같지 않았다. 지현이도 내가 교회의 부목사 사모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 나와 자주 만남을 가지게 되었고... 나는 간접적으로 지현이가 사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을 수가 있었다... 지현이의 솔직한 이야기를 들어면서도, 나는 내 삶에 전혀 없는 거짓 행복을 지현이에게 들려줘야만 했다. 지현이는 나처럼 신앙이 깊은 집안의 목회자와 함께 사는 것을 부러워했지만... 나는 지현이가 부러웠고... 지현이가 부러울 때마다... 지현이의 부탁에 이기지 못하고, 좋아하지도 않는 교회를 기꺼이 나와주는 그의 남편이 부러웠다. 어린 시절부터 누구보다도 솔직했던 지현이에게 듣는 이야기는... 내가 살아온 삶의 순간순간이 다 잘못 산 것이었다는 생각이 들게 했고... 지현이의 남편을 봤던 여대 초년생 시절... 내가 조금이라도 용기가 있었더라면... 지현이가 살고 있는 삶의 자리에 내가 서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못된 생각까지 이어지고는 했으니까....
* * * * * * * * * *
하나님은 너무도 무서운 방식으로 내 기도를 들어 주셨다. 왜 하필이면... 윤 선생님과 효미마니 살아남았을까...? 비행기 사고와 섬의 표류... 이 모든 것이 다 나때문이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어서 괴로웠지만... 그와 동시에... 이것이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해주신... 새로운 삶의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내가 두렵다. 이제 언제 이 섬에 들어오게 되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그렇지만... 이 순간이 이렇게 그냥 영원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쩔 수 없다. 섬에 들어오고 나서... 나는 한번도 이전의 삶을 그리워하지 않은 것 같다... 이 섬이 내게는 지옥같았던 생활에서 얻은 구원 같은 천국이란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죽은 지현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또 다른 사람들이게도 미안하지만... 나는 여기 이렇게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것이 전에 없던 해방이고 행복인 것만 같다... 그리고... 살아남은 사람 중에, 특별히 살아남은 남자가... 윤 선생님이라는 것은... 다행을 넘어서... 내가 받은 축복인 것만 같다. 비록 한 번도 누구에겐가 여자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직도 버릴 수 없는 목사의 사모로서의 내 삶의 방식 때문에... 그에게 다가가지 못하지만... 그가 함께 살아준 것이 너무 감사하고... 그가 효미와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아주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정말 어떻게든... 이렇게 함께 살아주는 것이 너무 감사하다... 비록 효미는 그에게 여자가 될 수 있는데, 내가 그렇게 되지 못하는 것이 괴롭지만... 아니, 내가 원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럴 수가 없겠지만... 그래도 나는 그가 표류의 처음때 보여주던 폭력과 분노를 잊어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다... 효미와 나누는 사랑이 그에게 안정을 주는 것이라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너무 감사할 일이다... 위선적이던 남편 옆에서 무시당하면서 살던 것보다는... 훨씬 나으니까... 적어도 윤 선생님은 나에게 조심해주니까... 나를 사람으로 대해주니까...
* * * * * * * * * *
- 저 사모님을 원합니다.
- 윤 선생님...
- 저 사모님을 원한다구요...!
- 아... 우리 이러면 안되는 거 아시잖아요...
- 아뇨, 모릅니다.
윤 선생님의 손을 도무지 뿌리칠 수가 없다... 뿌리치고 싶지가 않다. 어떡하면 좋을까...?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죽은 줄만 알았던 내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것이 다시 뛰기 시작하는 것만 같다...! 아버지와 남편이 내 마음 속에 단단히 박아 놓았던 위선의 대못을... 이 사람이 뽑아내려는 것만 같다...!
아... 어떡하면 좋을까...
<계속>
자, 이제 클라이막스로 달려갑니다.
앞으로 3편?
1년 넘게 버려두다가 이야기를 다시 잇다보니,
앞부분의 맥락이 가물가물하실 수도 있습니다.
애초 중편 분량으로 기획했던 것이라,
몇 편 되지 않으니 다시 한 번 보시면
이번 편 이야기가 왜 이러고 마나...
조금 이해해 주실 수 있으리라 봅니다.
제가 좀 무성의한 작가인 점 사과 드립니다.
관련자료
댓글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