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ly Of The Valley(은방울꽃)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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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신전의 지하실 자신만의 아지트에서 항상 풍겼던 그 쾌쾌한 향기. 제론드는 그 익숙한 향취에 눈을 떴다.

"으, 으음…….으. 머리야…….여긴 어디지?"

주위는 쥐죽은 듯 조용했고 또 빛 한 점 없이 어두웠다. 아직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았는지 시야엔 아무런 정보도 들어오지 않았지만 이곳이 자신이 배정 받은 방이 아니라는 것은 확실했다.

"여보세요 거기 누구 없어요?!"

제론드는 서서히 자신을 잠식해가는 두려움에 엉금엉금 기어가 문이라고 생각되는 곳을 향해 소리쳤다. 하지만 대답소리는 그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았다. 이곳은 란브랜트 가의 지하 감옥이었던 것 이었다. 라이젠느를 빼앗기 위해 란브랜트가 꾸민 일임에 분명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제론드는 오히려 냉정해졌다. 아직 두려움은 남아있었지만 냉정히 어제의 일을 되짚어 보려 했다.

"내가 왜…….이곳에. 분명 어제……."

어제 제론드와 라이젠느는 란브랜트 자작의 극진한 대접을 받았다. 란브랜트 자작은 비록 자신이 원하던 바를 이루지 못했지만 전혀 내색하지 않고 친절했다.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저녁을 대접했고 디저트로 직접구운 쿠키와 진귀한 허브 잎으로 우려낸 차를 내어주었다.

"차를 마신 것 까진 기억나는데…….흠. 그 차 속에 뭘 탔던 거로군…….그나저나 라이젠느님이 걱정인데…….무슨 방법이 없을까?"

제론드는 감방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탈출할 방법을 모색했다. 감방은 한 치의 허술함도 없이 석벽으로 견고하게 만들어져 있었고 굳게 닫힌 문은 자신의 힘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을 철 문 이였다. 게다가 자신을 살려둘 생각이 없는 것인지 문 밖에서는 조금의 인기척도 들리지 않았다.

꼬르륵!!

"이런…….이놈의 배꼽시계는 너무 정확한 게 탈이야. 굶겨서 죽일 작정인가? 조금 남은 신성력으로 허기를 채울 수 있을까? 으으. 에라, 모르겠다! 여기서 죽는 게 헤르메스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따라드리지요!"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던 제론드는 모든 것을 체념한 듯 뒤로 벌러덩 드러누워 배고픔을 잊기 위해 잠을 청했다.

한편, 지하 감옥에서 제론드가 배고픔의 괴로움에 몸부림 치고 있는 그 시각 저택 란브랜트의 침실에서는 음흉한 란브랜트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큭큭큭. 멍청한 신관놈~ 노예 따위에게 사랑에 빠지다니 말이야…….이봐. 와잇트! 그 신관 놈은 잘 처박아 뒀겠지?”

“예~ 그러문입죠! 지하 감옥에 고이고이 모셔뒀음입죠~”

란브랜트는 와잇트의 대답에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들고 있던 와인 잔을 들어 입안으로 와인을 흘려 넣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서도 란브랜트의 눈은 실크와 보석들로 화려하게 치장된 자신의 침대 위를 벗어나지 않았다. 그 위에는 바로 앨프 라이젠느가 발가벗은 채 잠들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흐…고것 참…저 우유빛 살결하며 순결한 젖가슴…크크…게다가 저 보송보송한 음모 속의 어린…후후…이제 나의 것이군…크흐흐…잠시 후면…’

란브랜트는 침을 꼴깍 삼켰다. 그리고는 자신의 음탕한 생각을 숨기려는 듯 말했다.

“나중에 상황이 좀 괜찮아 지면 쥐도 새도 모르게 묻어버려야 되겠어…….물론 그때까지 아무것도 안 먹고 살 수 있다면 말이야. 크하하하하하…….”

하지만 와잇트는 그 주인의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안다는 듯이 간사하게 웃었다.

“헤헤헷. 그건 그렇고 앨프는 어떻게, 깨울깝쇼?”

“크흐흐. 아니다…….그대로 자게 놔더라. 흐흐. 깨어나면 다시 잠들기 쉽지 않을 테니까 말이야…….크흐흐…….”

다시금 행복한 상상에 돌입하는 란브랜트. 란브랜트는 공짜로 얻은 앨프 노예를 어떻게 길들일까 하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저절로 아랫도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그때였다. 요란스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기사 복을 차려입은 다급한 얼굴의 사내가 방으로 들어왔다.

“주, 주군!”

“무슨 일이냐? 무례하게 이방에 발을 들여놓다니~!”

마치 입속의 혀처럼 와잇트가 먼저 나서 침실로 들어온 사내를 나무랬다. 와잇트의 호통에 사내는 잠시 움찔했지만 정말로 급한 일인듯 말을 이었다.

“저, 적입니다! 병사들이 도륙 당하고 있습니다!”

쨍그랑!!

“뭐, 뭣? 적이라니! 무슨 소리냐?”

느긋하게 와인을 마시며 와잇트의 하는 양을 바라보던 란브랜트가 사내의 말에 놀라 와인 잔을 떨어트리며 물었다.

“규모는 어느 정도냐? 아니 아니 적의 정체는? 라파엘 왕잔가, 신전 기사단인가?”

“그, 그게. 아직…….”

“아직 이라니! 병사들이 당하고 있다함은 이미 적이 성으로 잠입했다는 말인데 적의 정체조차 파악하지 못하다니! 적의 규모는 어떠하더냐?”

란브랜트는 머뭇머뭇 거리는 사내의 모습에 답답해하며 대답을 재촉했다. 그에 사내는 죽을죄를 지었다는 듯 무릎을 꿇었다.

“저, 적은 단 한명인 듯 하옵니다 크윽…….”
“뭐, 뭣?!”

++++++++++++++++++++++

챙! 챙! 챙!

"거기 서라~!"

"저놈을 잡아라~!"

얼마나 잤을까? 재론드는 어렴풋이 들리는 밖의 소란스러움에 잠에서 깼다.

"으음, 이게 무슨 소리지?"

"제론드~! 제론드~! 어디 있나~!"

분명 자신을 부르는 소리였다. 그 목소리만으로도 누군지 짐작이 가는 친숙한 목소리였고 힘이 되는 목소리였다.

"하하, 헤르메스님께서 아직 날 데려가긴 싫어하시는 듯 하군.여기예요! 여기 있어요!"

제론드는 자신의 위치를 알리기 위해 목소리가 들리는 쪽을 향해 마지막 힘을 짜내며 힘껏 소리쳤다.

철커덩~!!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리는가 하더니 둔탁한 소리를 내며 감방의 철문이 열렸다.

"제론드! 여기 있느냐?"

"아, 아저씨! 와아, 정말 반갑네요! 왜 이렇게 늦었어요?"

"허, 이 자식 아직 입이 산 거보니 아직 힘이 남아있구나! 자, 어서 나가자!"

"론 아저씨, 몸에 왜 피가 이렇게 많아요? 이젠 늙으셨나?"

"훗, 이건 내피가 아니다……."

어두운 지하 감옥을 빠져나온 제론드는 론이라 불린 사내의 의복을 적시고 있는 피를 보며 얼굴을 굳혔다. 론 하워드. 그것이 이 사내의 정체였다. 그는 헤르메스 신전의 기사단의 총수이자 고위급 신관을 비밀리에 보호하는 쉐도우 가디언의 일인 이였다.

"자, 어서 여길 빠져 나가자."

"잠깐요, 아저씨! 구해야 할 사람이 더 있어요!"

"뭐라고?!"

제론드를 자신의 옆에 바싹 붙이고 연신 몰려드는 적들을 베어 넘기며 탈출을 모색하던 론 하워드는 제론드의 말에 정신이 아찔해 지는 것을 느꼈다.

"구, 구할 사람이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이냐?"

"구해야 해요. 신전의 미래와 직결 될 수도 있는 분이예요. 꼭 구해야 해요! 아저씨, 저택 안으로 가요!"

"끙…….그게. 말처럼……."

신전의 운명과 관련 된 사람. 론 하워드는 순간 망설여졌다. 지금 이 순간 제론드를 데리고 이곳을 탈출 하는 것도 벅찬 일이다. 물론 이곳에는 자신보다 강한 이는 존재하지 않았지만 자신이 신이 아닌 이상 사방에서 날아오는 검을 언제까지나 막을 수도 없는 일이였기 때문이었다. 이제 적들도 론의 실력을 알았는지 무모한 공격대신 여러 명이 합동 공격을 하고 있었다.

"에잇 모르겠다! 제론드! 내 등에 업혀라~ 에잇~!"

촤아악~~!!

꾸역꾸역 몰려드는 적들을 보다 못한 론은 제론드를 등에 업은 채 우렁찬 기합소리와 함께 검을 원형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론이 휘두른 투박한 모양의 철검에서 찢어질 듯 한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푸른 빛무리의 무수한 검기가 퍼져나가 수많은 적들을 한꺼번에 양단 하였다.

-으아아악~~!!!-
- 소, 소드 마스터다!!! -

"헉, 헉…….이제 좀 살 것 같군.제론드."

수많은 적 들이 한번의 칼부림으로 쓰러짐과 동시에 살아남은 적들의 비명소리와 바닥에 널부러진 시체들로 인해 주위가 공포로 술렁이기 시작하자 론은 자신의 등에 업혀있는 제론드를 낮게 불렀다.

"예?"

"무겁다. 내려와라……."

"헛. 예에……."

론의 무뚝뚝한 말에 땀을 삐질 흘리며 순순히 론의 등에서 내려오는 제론드. 속으론 론을 무지 씹었다는 후문이다.

"자, 저기 누가 오는군…….누군지 알겠나?"

론의 무위에 성의 병사들은 공격을 멈췄고 그런지 얼마 후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한 사람이 나타났다.

"란브랜트 자작……."

"이게 무슨 짓이오! 남의 성에 무단으로 침입하고 내 병사들을 도륙 내다니~!"

란브랜트의 목소리는 많은 기사들의 호위를 받고 있음에도 두려움에 미미하게 떨렸다.

"흥, 헤르메스의 신전의 하이 프리스트를 감금하고 살해하려 한 주제에 시끄럽군……."

"하, 하이 프리스트!!!"

이제야 제론드의 정체를 알게 된 란브랜트 자작의 얼굴에는 당혹감이 서렸다. 하이 프리스트라면 자신이 어찌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이 일로 인해 헤르메스 신전 전체를 상대로 싸워야 하는지도 모를 일 이였다. 비록 나중에라도 한번은 신전과 한판 전쟁을 치러야 하겠지만 지금은 시기상조였다. 게다가 소드 마스터라니…

‘아직은 헤르메스의 신전과 트러블이 있어선 안 될 일인데…….자칫 잘못하다가 이 일로 대업이 다 수포로 돌아 갈수도 있다…….으. 어쩌다 내신세가. 어쩌면 좋지…….’

"하하.하.무, 무슨 말도 안 되는…….하, 하이 프리스트가 왜…….?"

"수련 중이었지요.하하."

상황은 제론드의 정체가 밝혀지자 급반전 되었다.란브랜트 자작은 이 난관을 어떻게 넘길지 걱정이었다.

"이를 어쩐다…….저 어벙한 신관은 그렇다 쳐도…….핫. 저 머리색은…….으…….이런 멍청한…….이제야 알아차리다니. 꼴을 보니 조용히 넘어갈 것 같지 않은데……."

"뭐, 라이젠느님만 무사히 내 준다면 이번 일은 문제 삼지 않겠어요."

"아, 그것이 정말이시요?"

제론드의 말에 반색하며 반기는 란브랜트 자작 이였다. 하지만 론 하워드의 생각은 다른 듯 보였다.

"제론드! 이번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네!"

"하지만 론 아저씨. 지금 전 이런 일로 신경 쓸 여유가 없다고요~ 그리고 전 멀쩡하고 또 이미 아저씨의 검에 많은 사람이 죽어 그 대가는 이미 다 치렀다고 생각해요……."

"지금 내 살생을 나무라는 것이냐?"

제론드의 말에 자신의 살생을 탓하는 듯한 말이 들어있자 론 하워드는 제론드를 노려보며 낮게 중얼거렸다.

"아휴. 그게 아니고요. 이번은 그냥 넘어가자고요. 시간도 없고 임무도 있으니까……."

"흠……."

"제론드 씨……."

제론드와 론의 대화에 많은 사람들의 표정이 뒤바뀌었다. 그러던 중 언제 데려온 건지 하이 앨프 라이젠느가 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모습을 나타냈다.

"자, 내 실수로 신관님께 무례를 범했으나 앨프에겐 아무런 해도 끼치지 않았소. 이쯤에서 이번 일을 마무리 짖는 게 어떻겠소? 이런 일로 시끄러워 져 봤자 피차 좋을 것이 없다고 보는데?"

"저 앨프가 니가 말한 그 사람이냐?"

"예. 좋습니다! 라이젠느님을 이리로 보내시고 우리가 이곳에서 나갈 수 있게 길을 내어 주십시오~!"

라이젠느의 안전을 확인한 제론드는 이 사건을 이쯤에서 마무리 지으려 했다.

"물론이요. 하지만 이대로 여길 빠져나가 신전에 이일을 알리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신관님께서는 무언가 보장이 될 만한 것을 내 놓으십시오."

"흠."

슈아악~~!!

란브랜트의 요구에 잠시 고민하던 제론드는 오른손을 하늘위로 들어 올려 마지막 남은 신성력 덩어리를 빼내 란브랜트 자작에게 던졌다.

"헛?! 이, 이게 무슨 짓이요~!"

제론드의 손에서 빠져나온 푸른빛의 빛무리가 자신의 몸속으로 스며들자 화들짝 놀란 란브랜트 자작이 품에서 검을 뽑으며 소리쳤다.

"그것이 내 징표입니다. 지금 쏘아 보낸 신성력으로 헤르메스의 신전의 어떠한 공격에서도 당신은 안전할 것입니다. 신전 기사단의 오러 블레이드도 당신에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힘은 제가 죽을 때 까지 지속될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길을 열어주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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