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널을 지배하는 자 - 1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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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경수엄마, 그리고 찌질중딩.
‘어쩌지?’
학교가 끝나자 민호는 고민에 잠겼다.
<반지상점>의 물건이 세상에 돌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반지의 존재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또 다른 반지가 존재한다고 해도 당장 그에게나 세상에 반드시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반지는 수없이 많은 요술 같은 기능에도 불구하고 그 쓰임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반지는 종족번식 아이템.
따라서 동성 간의 정신통제는 불가능했으며, 이성간의 정신간섭도 사랑이라는 제약을 만들어서 미래 산모가 될 이성의 정신붕괴를 미연에 차단했다.
하지만 상점의 물건은 다르다.
어쩐 일인지 상점에서는 금지된 물건조차 약간의 경고와 함께 사고파는 것이 가능했다. 비뚤어진 16세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지만, 민호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안다. 영화에서 보면 아무리 못된 악당이라고 하더라도 ‘우린 마약은 거래 안해.’ 이러면 졸라게 멋있어 보이지 않는가?
민호는 갑자기 중2병 스러운 정의감에 불탔다. 졸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자면 경수나 그나 도진깨진 변태 중딩새끼인 주제에 말이다.
‘경수한테서 우리 선생님을 지켜야 해.’
하지만 어떻게 선생님을 지켜야 할지는 막상 생각나지 않았다. 찌질이 주제에 앞으로 선생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훈계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랬다가는 경수 패거리에게 잡혀서 죽도록 두들겨 맞을 것이 뻔했다.
반지의 힘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반지는 어디까지나 종족번식을 위한 아이템.
똥구멍에 손가락을 쑤셔서 정신간섭을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임신이 가능한 이성뿐이다. 그것도 성적인 암시만 통했고, 그 와중에도 제약이 많아서 사랑이라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쾌락을 통해서 충족시켜야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 그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손님이 와 있었다. 40대 초반에 푸짐한 아줌마였는데 피부에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외모였다. 왠지 행동과 목소리에서 깊은 교양이 묻어났는데 한 눈에 봐도 무척 돈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민호구나.”
“아......”
민호는 어떨 결에 꾸벅 인사를 했다.
“아.......안녕하세요.”
“전에 학교에서 한번 본 것 같은데, 아줌마 누군지 모르겠니?”
“그게.......”
그가 말끝을 흐리자 소파 맞은편에서 앉아 여자에게 차를 대접하던 주희가 호호 웃었다.
“너 경수 알지?”
“겨.......경수요?”
“이분이 경수 엄마야. 서로 이야기 하다가 알게 됐는데 이런 우연도 있네. 너 학교에서 경수랑 친하니?”
“아.......”
그 새끼랑 친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보다도 경수엄마가 왜 손님으로 와 있는지 어리둥절해 졌다.
‘뭐지?’
“날씨가 덥네. 씻고 옷 갈아입어라.”
“네.”
민호는 다시 경수엄마에게 꾸벅 인사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잽싸게 반지를 활성화 시키고 <관음모드>로 전환했다.
곧바로 영상과 소리가 들려왔다.
경수엄마가 홀짝 테이블 위의 차를 들이켰다.
“아들이 듬직하게 생겼네요. 든든하겠어요.”
“의지가 되기는 해요. 처음 아빠가 죽고 많이 힘들었는데 요즘은 민호 보는 낙으로 살죠. 친엄마도 아닌데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이제는 민호 없으면 못살아요. 설마 이럴 날이 올 줄 알았나요. 호호.”
“아들이 대견한가 봐요.”
주희가 민망한지 홀짝 차로 입을 가셨다.
“내가 너무 주책을 부렸나? 호호. 왜 엄마들이 아들, 아들 거리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경수는 친 아들이니까 더 애틋하지 않나요?”
경수엄마가 씁쓸하게 웃었다.
“예쁜 짓을 해야 애틋하죠. 그러고 보면 민호엄마 참 대단해요. 내 배 아파서 난 자식도 미울 때가 많은데 말이죠.”
“나은 정 보다 기른 정이라고, 내 새끼려니 하면서 기르다 보니까 친 자식보다 더 마음이 가네요. 호호. 뭐, 워낙 우리 민호가 잘하기도 하고.......”
‘어후.......씨발년, 저 쩌는 개가식.’
민호는 속으로 욕을 퍼 댔다.
반지가 없었다면 그는 아직까지 계모에서 학대받는 한 마리 안타까운 오리새끼가 아니겠는가?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제는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반지를 쓰다듬으며 실로 하늘도 무심하지 않음에 안도했다.
‘씨발, 하늘아 고맙다.’
그러나가 말거나 두 여자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여자들의 수다가 다 그렇듯 살아가는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민호가 관심가질 내용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다.
‘저 여자가 경수 그 새끼 엄마란 말이지.’
그때 경수엄마의 목소리가 무척 진지해졌다.
“실은 말이에요. 요즘 민호엄마, 학부모회에서 완전 스타 된 거 알죠?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젊어지고, 이렇게 예뻐졌는지 교양 없는 여자들이 뒤에서 얼마나 수군거리는지, 듣는 내가 다 거북하지 뭐겠어요?”
“아..........”
주희는 살짝 말문이 막혔다.
왜냐하면 그녀는 민호의 분명한 법적 엄마였지만, 실로 엄마노릇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진심으로 의붓아들의 장래를 걱정한 일도 없었으므로, 돈만 들고 시간만 빼앗기는 학부모회에 얼굴을 내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부모회 엄마들과는 서로 안면이 없었고, 관심대상도 아니었으므로 무슨 완전스타가 될 리도 없는 것이다.
경수엄마만 해도 사실 오늘 초면이었다.
퇴근 후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어떤 푸짐한 아줌마가 아는 척을 해 와서 어떻게 집까지 초대를 하게 되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여자가 민호의 학교친구 경수의 엄마였다는 사실과 집이 무척 부자고, 학부모회 회장이었다는 사실이 그녀가 아는 경수엄마에 대한 전부였다.
경수엄마가 말을 이었다.
“성형외가 솜씨는 아니에요. 요즘 의술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거든요. 어림도 없죠. 어디서 무식한 여자들이, 강남 어디 닥터의 솜씨라고 흉을 보는데, 제가 아주 단단히 혼을 내줬어요.”
“아........네.”
주희는 고개만 끄덕였다.
경수엄마가 은근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정말 이리도 고울까? 제가 학부모 회장이라서 애들 엄마들 얼굴은 다 알거든요. 뭐,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신상정보는 있어야 학교 진흥회를 꾸리는데 도움이 되니까. 근데 얼마 전 부터 누구 엄마가 갑자기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예뻐졌다는 소문이 돌지 않겠어요. 아........근데........오늘 보니까 사실이네요.”
주희는 겸손하게 웃었다.
“예쁘긴요. 경수엄마 피부도 곱고 누가 봐도 미인인걸요.”
이야기를 엿듣던 민호는 ‘우웩~’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토하는 시늉을 했다.
‘저 뚱뚱한 돼지년이 예쁘다고? 아줌마들이란.......어쩜 저렇게 얼굴에 티도 안내고 거짓말을 할까?’
그때 돼지 경수엄마가 호호 웃었다.
“너무 겸손하면, 사람들이 정말 흉봐요. 근데 민호엄마는 어디 뷰티샵 다니는데 없나 봐요. 조금만 관리 받으면 진짜 미용브랜드 피팅모델도 가능할 텐데........”
주희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호호. 괜히 바람 넣지 마세요. 어디 그런데 말단 공무원 월급으로 구경이나 할 수 있겠어요?”
“아니, 아니야. 민호엄마 같은 여자는 꼭 그런데서 관리 받아야 돼.”
“말이라도 고마워요. 그래도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죠. 이렇게 살아도 꼭 불편한 것도 없고.........”
그때 경수엄마가 백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강남 뷰티샵 1년 자유 이용권이에요. 여긴 매니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관리해줘요. 머리, 피부, 네일, 메이크업까지 다 각기 전문 매니저가 따로 있고요.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가도 이용 가능해요.”
순간 주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이걸........”
“나랑 같이 다녀요.”
“저........전 이걸 구입할 돈이.........”
“그냥 드리는 거예요. 민호엄마 질투 나게 너무 예뻐서, 나이도 나보다 두 살 밖에 어리지 않는데, 어쩌면 정말 이십대 같아.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요.”
주희는 이정도 레벨의 뷰티샵이라면 1년 이용료가 보통은 억대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늘 갑자기 만나서 이런 고가의 선물을 준다?
주희는 마흔이 넘었다.
불혹이란 소리다.
어수룩해 보이는 아줌마라고 해도 최하 눈치 9단이었다. 현찰이나 다름없는 고급 뷰티샵 이용권을 단지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준다는 사실을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때 경수엄마가 입을 열었다.
“비법만 가르쳐 주면 되요.”
“비법이요?”
“뛰어난 현대의학으로도 40대 아줌마가 30대가 될 수는 없거든요. 게다가 실리콘도 없고, 플라스틱도 없고 보톡스도 없어요.”
그제야 주희는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여자의 로망은 젊어지고 예뻐지는 것이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영혼이라도 파는 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여자다. 하물며 돈 많은 사모님이라면 1억 따위야 돈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주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그게........딱히 무슨 비법이 있는 건 아니고요. 경수엄마 말처럼 어디서 수술 받은 것도 아니에요. 저는 그냥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기.......기도요?”
“네........기도요. 제가 믿는 산신령님이 신통력이 아주 방통 하셔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불혹 40대 아줌마라고 해도, 본래 여자란 혹세무민에 취약한 동물이다. 차가운 이성은 분명 개소리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본질보다는 현상에 집착하는 아줌마답게 경수엄마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주희의 이야기 속으로 홀릭당하고 있었다.
“하아........산신령님이 만들어 주셨다고요?”
“네.”
“골격이 아예 바뀌었죠. 한평생 산신령님을 믿어 왔지만, 그런 제가 봐도 너무 신기했어요. 그런데 요즘 제가 정성이 모자랐던지, 점점 옛날 모습을 되돌아가요. 아무래도 고사라도 지내야 할까 봐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요?”
“네.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다시 천천히 변하더라고요. 산신령님이 시키신 일이 있는데, 제가 이행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크게 노하셨나 봐요.”
“뭘 시키셨는데요?”
“휴우.........그건..........”
주희는 차마 대답을 못했다.
실제로 그날 산신령님이 그랬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요즘 그녀는 임신을 하고 싶어서 아주 미칠 것 같았다. 폐경기가 가까운 아줌마가 그것도 의붓아들의 씨를 받고 싶다는 것이 이미 미친 생각이었지만, 왠지 <임신>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사타구니가 발정난 개처럼 부어오르고 줄줄 물이 흘러내렸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민호가 히쭉 웃었다.
“개년, 또 하고 싶어서 미치겠네. 난 이 나이에 애 아빠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그러면서 그는 작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나저나, 어쩌지. 노예 신체개조는 영구적인 줄 알았는데, 겨우 30일짜리잖아. 2차 개조부터는 포인트 엄청 날아가는데, 무작정 투자할 수도 없고.........젠장. 쓸 것이면 왕창 쓰지 제한도 졸라 많고, 난이도 너무 높아. 씨발. 어디 싸구려 아이템으로 해결할 방법 없을까?’
그 와중에 두 아줌마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고사는 언제 지낼 거죠?”
“글쎄요. 그냥 생각만 하고 있던 거라........”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정성을 드리면 안 될 까요? 저야 민호엄마처럼 산신령님을 오래 모시지 않았으니까, 그런 신통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세상일이란 건 모르는 거니까.”
주희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침 오늘 딸이 집을 비워서 조용하기는 한데........”
경수엄마가 급히 대답했다.
“고사상은 제가 준비할게요. 혹시라도 좋은 일이 생기면 민호엄마 섭섭지 않게 해 줄 테니까, 꼭 좀 부탁해요. 까놓고 말해서, 민호엄마처럼 젊어질 수만 있다면 십년 안 씻은 노숙자 좆밥도 긁어 먹을 수 있.......”
일순간 주희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경수엄마는 너무 흥분해서 순간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교양 없는 창녀처럼 천한 말을 쓰다니.
거실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
너무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어요.
아버지, 뻑판, 애널 다 완결을 내야 하는데.
독자님들에게 그냥 미안하네요.
그래도 가끔 올리겠습니다.
‘어쩌지?’
학교가 끝나자 민호는 고민에 잠겼다.
<반지상점>의 물건이 세상에 돌고 있다는 것은 또 다른 반지의 존재를 암시했기 때문이다. 사실 또 다른 반지가 존재한다고 해도 당장 그에게나 세상에 반드시 위협이 되지는 않았다. 반지는 수없이 많은 요술 같은 기능에도 불구하고 그 쓰임에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반지는 종족번식 아이템.
따라서 동성 간의 정신통제는 불가능했으며, 이성간의 정신간섭도 사랑이라는 제약을 만들어서 미래 산모가 될 이성의 정신붕괴를 미연에 차단했다.
하지만 상점의 물건은 다르다.
어쩐 일인지 상점에서는 금지된 물건조차 약간의 경고와 함께 사고파는 것이 가능했다. 비뚤어진 16세 호기심 많은 소년이었지만, 민호는 중독성이 있는 마약이 얼마나 무서운 건지 잘 안다. 영화에서 보면 아무리 못된 악당이라고 하더라도 ‘우린 마약은 거래 안해.’ 이러면 졸라게 멋있어 보이지 않는가?
민호는 갑자기 중2병 스러운 정의감에 불탔다. 졸라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보자면 경수나 그나 도진깨진 변태 중딩새끼인 주제에 말이다.
‘경수한테서 우리 선생님을 지켜야 해.’
하지만 어떻게 선생님을 지켜야 할지는 막상 생각나지 않았다. 찌질이 주제에 앞으로 선생님을 괴롭히지 말라고 훈계를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그랬다가는 경수 패거리에게 잡혀서 죽도록 두들겨 맞을 것이 뻔했다.
반지의 힘을 이용할 수도 없었다.
반지는 어디까지나 종족번식을 위한 아이템.
똥구멍에 손가락을 쑤셔서 정신간섭을 할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임신이 가능한 이성뿐이다. 그것도 성적인 암시만 통했고, 그 와중에도 제약이 많아서 사랑이라는 인간의 복잡한 감정을 쾌락을 통해서 충족시켜야 부작용이 생기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결국 그는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집에 손님이 와 있었다. 40대 초반에 푸짐한 아줌마였는데 피부에 기름기가 좌르르 흐르는 외모였다. 왠지 행동과 목소리에서 깊은 교양이 묻어났는데 한 눈에 봐도 무척 돈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민호구나.”
“아......”
민호는 어떨 결에 꾸벅 인사를 했다.
“아.......안녕하세요.”
“전에 학교에서 한번 본 것 같은데, 아줌마 누군지 모르겠니?”
“그게.......”
그가 말끝을 흐리자 소파 맞은편에서 앉아 여자에게 차를 대접하던 주희가 호호 웃었다.
“너 경수 알지?”
“겨.......경수요?”
“이분이 경수 엄마야. 서로 이야기 하다가 알게 됐는데 이런 우연도 있네. 너 학교에서 경수랑 친하니?”
“아.......”
그 새끼랑 친할 리가 없지 않은가?
그것보다도 경수엄마가 왜 손님으로 와 있는지 어리둥절해 졌다.
‘뭐지?’
“날씨가 덥네. 씻고 옷 갈아입어라.”
“네.”
민호는 다시 경수엄마에게 꾸벅 인사하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잽싸게 반지를 활성화 시키고 <관음모드>로 전환했다.
곧바로 영상과 소리가 들려왔다.
경수엄마가 홀짝 테이블 위의 차를 들이켰다.
“아들이 듬직하게 생겼네요. 든든하겠어요.”
“의지가 되기는 해요. 처음 아빠가 죽고 많이 힘들었는데 요즘은 민호 보는 낙으로 살죠. 친엄마도 아닌데 나한테 얼마나 잘하는지, 이제는 민호 없으면 못살아요. 설마 이럴 날이 올 줄 알았나요. 호호.”
“아들이 대견한가 봐요.”
주희가 민망한지 홀짝 차로 입을 가셨다.
“내가 너무 주책을 부렸나? 호호. 왜 엄마들이 아들, 아들 거리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아요. 경수는 친 아들이니까 더 애틋하지 않나요?”
경수엄마가 씁쓸하게 웃었다.
“예쁜 짓을 해야 애틋하죠. 그러고 보면 민호엄마 참 대단해요. 내 배 아파서 난 자식도 미울 때가 많은데 말이죠.”
“나은 정 보다 기른 정이라고, 내 새끼려니 하면서 기르다 보니까 친 자식보다 더 마음이 가네요. 호호. 뭐, 워낙 우리 민호가 잘하기도 하고.......”
‘어후.......씨발년, 저 쩌는 개가식.’
민호는 속으로 욕을 퍼 댔다.
반지가 없었다면 그는 아직까지 계모에서 학대받는 한 마리 안타까운 오리새끼가 아니겠는가? 민호는 자신도 모르게 이제는 몸의 일부가 되어버린 반지를 쓰다듬으며 실로 하늘도 무심하지 않음에 안도했다.
‘씨발, 하늘아 고맙다.’
그러나가 말거나 두 여자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여자들의 수다가 다 그렇듯 살아가는 신변잡기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민호가 관심가질 내용은 없었다.
그렇다고 해도 놀라운 일이다.
‘저 여자가 경수 그 새끼 엄마란 말이지.’
그때 경수엄마의 목소리가 무척 진지해졌다.
“실은 말이에요. 요즘 민호엄마, 학부모회에서 완전 스타 된 거 알죠? 어떻게 갑자기 그렇게 젊어지고, 이렇게 예뻐졌는지 교양 없는 여자들이 뒤에서 얼마나 수군거리는지, 듣는 내가 다 거북하지 뭐겠어요?”
“아..........”
주희는 살짝 말문이 막혔다.
왜냐하면 그녀는 민호의 분명한 법적 엄마였지만, 실로 엄마노릇을 단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진심으로 의붓아들의 장래를 걱정한 일도 없었으므로, 돈만 들고 시간만 빼앗기는 학부모회에 얼굴을 내민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학부모회 엄마들과는 서로 안면이 없었고, 관심대상도 아니었으므로 무슨 완전스타가 될 리도 없는 것이다.
경수엄마만 해도 사실 오늘 초면이었다.
퇴근 후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어떤 푸짐한 아줌마가 아는 척을 해 와서 어떻게 집까지 초대를 하게 되었지만, 공교롭게도 그 여자가 민호의 학교친구 경수의 엄마였다는 사실과 집이 무척 부자고, 학부모회 회장이었다는 사실이 그녀가 아는 경수엄마에 대한 전부였다.
경수엄마가 말을 이었다.
“성형외가 솜씨는 아니에요. 요즘 의술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지만, 이 정도는 아니거든요. 어림도 없죠. 어디서 무식한 여자들이, 강남 어디 닥터의 솜씨라고 흉을 보는데, 제가 아주 단단히 혼을 내줬어요.”
“아........네.”
주희는 고개만 끄덕였다.
경수엄마가 은근히 입을 열었다.
“어쩌면 정말 이리도 고울까? 제가 학부모 회장이라서 애들 엄마들 얼굴은 다 알거든요. 뭐, 꼭 알아야 하는 건 아니지만, 어느 정도 신상정보는 있어야 학교 진흥회를 꾸리는데 도움이 되니까. 근데 얼마 전 부터 누구 엄마가 갑자기 딴 사람이 된 것처럼 예뻐졌다는 소문이 돌지 않겠어요. 아........근데........오늘 보니까 사실이네요.”
주희는 겸손하게 웃었다.
“예쁘긴요. 경수엄마 피부도 곱고 누가 봐도 미인인걸요.”
이야기를 엿듣던 민호는 ‘우웩~’하며 손으로 입을 가리며 토하는 시늉을 했다.
‘저 뚱뚱한 돼지년이 예쁘다고? 아줌마들이란.......어쩜 저렇게 얼굴에 티도 안내고 거짓말을 할까?’
그때 돼지 경수엄마가 호호 웃었다.
“너무 겸손하면, 사람들이 정말 흉봐요. 근데 민호엄마는 어디 뷰티샵 다니는데 없나 봐요. 조금만 관리 받으면 진짜 미용브랜드 피팅모델도 가능할 텐데........”
주희가 웃으며 손을 저었다.
“호호. 괜히 바람 넣지 마세요. 어디 그런데 말단 공무원 월급으로 구경이나 할 수 있겠어요?”
“아니, 아니야. 민호엄마 같은 여자는 꼭 그런데서 관리 받아야 돼.”
“말이라도 고마워요. 그래도 사람은 분수에 맞게 살아야죠. 이렇게 살아도 꼭 불편한 것도 없고.........”
그때 경수엄마가 백에서 뭔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강남 뷰티샵 1년 자유 이용권이에요. 여긴 매니저가 머리부터 발끝까지 전부 관리해줘요. 머리, 피부, 네일, 메이크업까지 다 각기 전문 매니저가 따로 있고요. 원하는 시간에 아무 때나 가도 이용 가능해요.”
순간 주희의 입이 쩍 벌어졌다.
“이........이걸........”
“나랑 같이 다녀요.”
“저........전 이걸 구입할 돈이.........”
“그냥 드리는 거예요. 민호엄마 질투 나게 너무 예뻐서, 나이도 나보다 두 살 밖에 어리지 않는데, 어쩌면 정말 이십대 같아. 친해지고 싶어서 그래요.”
주희는 이정도 레벨의 뷰티샵이라면 1년 이용료가 보통은 억대가 넘어간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늘 갑자기 만나서 이런 고가의 선물을 준다?
주희는 마흔이 넘었다.
불혹이란 소리다.
어수룩해 보이는 아줌마라고 해도 최하 눈치 9단이었다. 현찰이나 다름없는 고급 뷰티샵 이용권을 단지 그냥 친해지고 싶어서 준다는 사실을 당연히 믿을 수 없었다.
분명 원하는 것이 있을 것이다.
그때 경수엄마가 입을 열었다.
“비법만 가르쳐 주면 되요.”
“비법이요?”
“뛰어난 현대의학으로도 40대 아줌마가 30대가 될 수는 없거든요. 게다가 실리콘도 없고, 플라스틱도 없고 보톡스도 없어요.”
그제야 주희는 그녀의 의도를 알 수 있었다.
모든 여자의 로망은 젊어지고 예뻐지는 것이다. 그것만 가능하다면 영혼이라도 파는 것이 가능한 것이 바로 여자다. 하물며 돈 많은 사모님이라면 1억 따위야 돈처럼 보이지도 않을 것이다.
주희가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저.......그게........딱히 무슨 비법이 있는 건 아니고요. 경수엄마 말처럼 어디서 수술 받은 것도 아니에요. 저는 그냥 기도를 열심히 했더니.........”
“기.......기도요?”
“네........기도요. 제가 믿는 산신령님이 신통력이 아주 방통 하셔서.........”
어떤 유혹에도 흔들림이 없는 불혹 40대 아줌마라고 해도, 본래 여자란 혹세무민에 취약한 동물이다. 차가운 이성은 분명 개소리라고 외치고 있었지만, 본질보다는 현상에 집착하는 아줌마답게 경수엄마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주희의 이야기 속으로 홀릭당하고 있었다.
“하아........산신령님이 만들어 주셨다고요?”
“네.”
“골격이 아예 바뀌었죠. 한평생 산신령님을 믿어 왔지만, 그런 제가 봐도 너무 신기했어요. 그런데 요즘 제가 정성이 모자랐던지, 점점 옛날 모습을 되돌아가요. 아무래도 고사라도 지내야 할까 봐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다고요?”
“네. 한 달 정도 지나니까 다시 천천히 변하더라고요. 산신령님이 시키신 일이 있는데, 제가 이행을 못했거든요. 그래서 아마도 크게 노하셨나 봐요.”
“뭘 시키셨는데요?”
“휴우.........그건..........”
주희는 차마 대답을 못했다.
실제로 그날 산신령님이 그랬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했지만, 요즘 그녀는 임신을 하고 싶어서 아주 미칠 것 같았다. 폐경기가 가까운 아줌마가 그것도 의붓아들의 씨를 받고 싶다는 것이 이미 미친 생각이었지만, 왠지 <임신>이라는 단어만 떠올리면 사타구니가 발정난 개처럼 부어오르고 줄줄 물이 흘러내렸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민호가 히쭉 웃었다.
“개년, 또 하고 싶어서 미치겠네. 난 이 나이에 애 아빠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거든.”
그러면서 그는 작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그나저나, 어쩌지. 노예 신체개조는 영구적인 줄 알았는데, 겨우 30일짜리잖아. 2차 개조부터는 포인트 엄청 날아가는데, 무작정 투자할 수도 없고.........젠장. 쓸 것이면 왕창 쓰지 제한도 졸라 많고, 난이도 너무 높아. 씨발. 어디 싸구려 아이템으로 해결할 방법 없을까?’
그 와중에 두 아줌마의 대화는 계속 이어졌다.
“고사는 언제 지낼 거죠?”
“글쎄요. 그냥 생각만 하고 있던 거라........”
“그러지 말고 저랑 같이 정성을 드리면 안 될 까요? 저야 민호엄마처럼 산신령님을 오래 모시지 않았으니까, 그런 신통한 일이 벌어지지는 않겠지만, 세상일이란 건 모르는 거니까.”
주희는 선뜻 대답을 못했다.
그러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마침 오늘 딸이 집을 비워서 조용하기는 한데........”
경수엄마가 급히 대답했다.
“고사상은 제가 준비할게요. 혹시라도 좋은 일이 생기면 민호엄마 섭섭지 않게 해 줄 테니까, 꼭 좀 부탁해요. 까놓고 말해서, 민호엄마처럼 젊어질 수만 있다면 십년 안 씻은 노숙자 좆밥도 긁어 먹을 수 있.......”
일순간 주희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
경수엄마는 너무 흥분해서 순간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급히 손으로 입을 막았다.
교양 없는 창녀처럼 천한 말을 쓰다니.
거실에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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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바빠서 글 쓸 시간이 없어요.
아버지, 뻑판, 애널 다 완결을 내야 하는데.
독자님들에게 그냥 미안하네요.
그래도 가끔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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