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르티잔, 아내의 또 다른 이름 -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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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몸을 흔드는 느낌에 눈을 떠보니 같은 방을 쓰는 후배였다.
“형님, 부서별로 업무 추진 현황 정리해야 하는데요. 어서 가시죠”
멍한 두 눈으로 잠시 방안을 둘러보다가 노트북을 챙겨 후배 뒤를 쫓았다. 세미나룸 앞에서 아내를 만났지만 서로 어색한 웃음만 교환하고 자리에 앉았다. 윤이사는 자신의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 나와 아내의 등장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다들 워터파크에서 힘을 빼 버려서인지 꾸벅꾸벅 조는 사람과 멍하게 빔프로젝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포인트의 화면만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와는 반대로 난 아내의 움직임과 윤이사의 눈길을 쫓느라 의식이 점점 더 선명해져만 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에서 특별한 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윤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 보더니 앞쪽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과 워크샵을 오니 많이들 지루한 모양이네요. 더구나 오랫동안 함께 하신 민이사님 대신 저 혼자만 와서 그런지 저도 좀 어색하네요. 그럼 어색한 분위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나머지는 회사로 돌아가 합시다. 제가 찬조금을 전달할 테니 너무 많이는 마시지 마시고 기분 좀 내다가 잠자리에 들도록 하세요”
직원들 입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난 얼떨결에 앞으로 불려나가 아내 부서의 하팀장과 함께 찬조금을 전달 받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적지 않은 돈이 들어있었다. 하팀장은 입이 귀에 까지 걸렸다.
“이야 박팀, 이 정도면 우리 오늘 뽀지게 먹겠는데”
하팀장은 내 어깨를 툭툭치며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하팀장. 입사 동기이자 아내의 팀장 승진을 가로막는 녀석들 중 하나. 어쩌면 아내의 최대 라이벌일 수 있는 녀석이었지만 나와는 팀장 승진도 함께한 사회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친구이기도 했다. 난 최대한 즐겁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질 않았다. 직원들은 벌써부터 조를 짜느라 부산을 떨었다. 특히 아내 부서 사람들은 아내를 가운데 두고 어느 조가 아내를 영입할 것인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오늘 워터파크에서 아내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남자 직원들이 열을 올릴 만도 했다.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크게 웃으며 직원들과 가위바위보로 조를 나누고 있었다. 난 가만히 복도로 빠져 나와 아내에게 문자를 남겼다.
‘오늘 하루는 나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놀아’
문자를 보내면서도 가슴은 쿵쾅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것도 확신 할 수 없고 또 의심이 간다해도 다른 직원들이 있기에 섣불리 행동하거나 말할 수 없었다. 답답했다.
“박팀장, 미안한데 이것 좀 내 방에 갖다 놔 주겠나? 하팀장 이 친구가 안보여서 말이야. 그래도
다른 직원들보다는 팀장인 자네에게 맡기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 난 이 친구들하고 먼저 내려가서 한 잔 하고 들어가겠네. 이럴 때 친해져야지.”
어느 틈엔가 윤이사가 옆으로 와 자신의 노트북과 방 열쇠를 내밀었다. 난 윤이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체 얼떨결에 노트북과 열쇠를 받아 들었다. 윤이사는 여직원들의 손에 이끌려 세미나룸 밖으로 거의 끌려 나가다시피 했다. 여직원들 입장에서도 이럴 때 윤이사에게 점수를 따 놓는 것이 회사 생활할 때 유리할 것이었다. 난 복도로 나와 하팀장을 찾아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번개처럼 지하에 있는 술집에 자리를 잡으러 갔을 것이었다. 술과 여자라면 죽고 못사는 하팀장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직원들을 모두 챙겨 밑으로 내려 보내고는 윤이사 방으로 올라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흐트러져 있던 침대도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고 욕실의 면도 거품도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안도감과 실망감이 교차되어 지나갔다. 윤이사 방을 나오면서 문득 한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난 콘도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확인 못하면 영원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랐다. 담배를 끄고 서둘러 지하 술집으로 향했다.
겉으로는 호프집이었지만 내부는 단란주점과 다를 바 없었다. 중앙에 자리한 큰 홀을 빼면 복도 안쪽으로 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푹신한 쇼파와 큰 테이블 그리고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홀에는 콘도에 묶고 있는 다른 손님들이 몇몇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두리 번 거리자 주인인 듯한 여자가 다가와 회사 직원들이 있다는 룸으로 안내했다.
직원들은 몇 개의 룸을 잡고 술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복도로 나있는 창문으로 아내가 있는 룸을 찾았다. 안쪽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장 크게 떠드는 룸을 들여다보니 윤이사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아내는 그 앞쪽에 앉아있었다. 하팀장과 남자직원들은 윤이사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으로 박자를 맞춰주고 여직원들은 윤이사의 양팔에 달라 붙어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직원들은 간만의 유흥에 흥이 난 듯 나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난 빠른 걸음으로 로비에 위치한 프론트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윤이사 옆방의 호수를 대며 혹시 투숙객이 있는지 아니면 예약이 되어 있는지를 물었다.
“아니요. 안 계시고 예약도 없습니다. 방을 내드릴까요?”
내 신용카드로 하루치를 결재하고 열쇠를 받아 품에 넣은 후 술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윤이사와 아내가 있는 룸으로 들어가 윤이사에게 열쇠를 전해 주었다. 윤이사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모습을 아내가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었지만 난 모르는 척 다른 직원 옆쪽으로 옮겨 앉아 노래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맥주를 마셨다. 아내는 날 바라보지 않은 척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순간 하팀장이 아내를 룸 앞쪽으로 끌어냈다.
“자~ 지금부터 이미란 대리의 섹시 웨이브가 있겠습니다~”
하팀장은 아내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며 자신이 먼저 선곡해 놓은 음악을 틀었다. 아내는 무척 창피한 듯 연신 머리를 쓸어 넘기며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막상 신나는 댄스 음악이 나오자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자 직원들과 여자 직원들 모두 손에 캔맥주를 들고 룸 앞쪽으로 나와 댄스 파티를 벌이기 시작했다. 난 조용히 룸을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프론트에서 받은 옆 방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베란다로 나갔다. 윤이사가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면 베란다쪽 문은 잠겨있지 않을 것이었다. 난 가슴이 너무 떨려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둡고 깊은 산속을 거닐다가 올무에 두 다리가 묶여 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발을 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건너가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저 안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만 했다. 난 휴대전화를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꿨다. 차가운 바람에 두 눈이 시려왔다. 이제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최대한 멀리 뛰었다.
쿠쿵….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두 다리가 전기에 감전된 듯 저려왔다. 긴장 때문이었다. 베란다 문을 살짝건드려 보았다. 잠겨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신발을 벗고 조용히 거실로 들어섰다. 베란다 문을 닫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랜턴만큼 밝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방안에서는 꽤 쓸만했다.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모든 것이 깨끗해서 인지 내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방 한쪽에 마련된 붙박이 장을 열어 보았다. 윤이사의 커다란 스포츠백이 들어있었다. 여행용 캐리어였으면 잠금장치가 되어있었을 텐데 이 스포츠백은 그런 장치 따위는 없어 보였다. 조용히 백을 뒤지자 가죽으로 된 고급 다이어리와 컴팩트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갈아입을 옷가지들이 나타났다. 다이어리를 펼쳐 보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어 보였다.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가족들의 사진 몇 장이 꽂혀있었다. 다이어리를 집어 넣고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전원을 켜 보았다. 순간 눈 앞에 눈부신 나신의 여인이 등장했다.
얼굴은 찍히지 않은 체 여자의 나신이 찍힌 사진이 수 십장 들어 있었다. 난 떨리는 손으로 날짜를 확인해 보았다. 오늘이었다. 설마, 아닐 꺼야 라는 간절한 바람은 날짜와 같이 찍혀 있던 시간을 보는 순간 내 눈앞을 하얗게 만들며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핸드폰에서 아내와 통화한 시간을 살펴보았다. 손이 너무 떨려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만은 두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워터파크로 내려오지 않던 그 시간…
바로 그 시간에 찍힌 사진들….
디지털카메라의 사진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전라의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사진과 하얀색 원피스 수영복과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진들.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쇼파에 앉아 다리를 ‘M’자로 벌리고 있는 모습은 사타구니 사이로 삐쳐 나온 풍성한 음모 때문에 더욱 음란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풍성한 음모는 비키니 수영복에서는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적나라하게 갈라진 틈새는 굳이 수영복을 벗기지 않아도 그 속살의 모양새를 알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누르자 욕실 속에 들어가 있는 여자의 모습이 나왔다. 욕실 속의 여자는 욕조를 두 손으로 잡고 허리를 크게 앞으로 구부린 체 엉덩이를 내밀고 있었다. 풍성한 음모와 함께 여자의 은밀한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풍성한 음모에 면도크림이 발라지며 한 남자의 손이 그 음모를 깎아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음모를 깎으며 디지털카메라로 여자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부분들을 클로즈업해서 찍었다. 풍성한 음모를 모두 깎아 버린 앞모습은 가늘고 긴 한 줄의 음모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갈라진 틈을 가려주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음모를 모두 잃어 버린 풍만한 뒷모습은 음탕한 애액으로 젖어버린 꽃잎과 항문을 너무나 음란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일었다.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눈물이 나오지도 화가 나지도 가슴이 뛰지도 않았다. 그저 하얗게 변해버린 눈 앞 만이 내가 볼 수 있는 전부였다.
난 윤이사의 짐을 정리한 후에 옆방으로 건너왔다.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두 다리는 채찍이라도 맞은 듯 휘청거렸다.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원래 방으로 돌아갔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른 방들도 조용한 것을 보니 다들 술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썼다. 헐떡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두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그리고 곧바로 불이 켜졌다.
“어...히히히.... 형님.... 꺼억.... 먼저 오셨네요??? 이야...아.... 오늘이요.... 얼마나 재미있...히히히 재미있었는데요.히히히....”
후배 녀석은 많이 취했는지 내가 듣건 말건 술집에서 있었던 아내의 섹시 댄스와 워터파크에서 보았던 비키니 몸매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요즘 들어 자주 입고 출근하는 미니스커트 정장 덕분에 남자직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녀석은 아내와 같은 여자를 만나는 것이 남자로서는 가장 큰 행복일 것이라며 나를 치켜세웠지만 귀로만 들릴 뿐 머릿속은 온통 하얀색 그 자체였다.
“아후.... 다들 너무 많이.... 마셔서 큰 일... 입니다. 여직원들은 거의... 히히히.... 전멸이에요 전멸. 내일 아침에 살아남을 사람이.... 꺼억.... 몇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저도 아까... 오바이트를 두 번이나 했어요.히히히히”
녀석은 그렇게 술주정을 이어가더니 욕실로 들어가 변기를 붙잡고 오바이트를 한 번 더 하고는 쇼파 위에서 널 부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를 든 손이 너무 떨려서 불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눈물 따위는 나지 않았다. 다만 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 아내의 모습을 본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반가운 표정을 지어야 할까. 화난 표정을 지어야 할까. 회사 사람들 앞에서 난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 자리에 주저 앉은 체 얼굴을 무릎에 파 묻었다. 베란다로 들이치는 바람 소리가 악마의 웃음 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형님, 부서별로 업무 추진 현황 정리해야 하는데요. 어서 가시죠”
멍한 두 눈으로 잠시 방안을 둘러보다가 노트북을 챙겨 후배 뒤를 쫓았다. 세미나룸 앞에서 아내를 만났지만 서로 어색한 웃음만 교환하고 자리에 앉았다. 윤이사는 자신의 노트북을 들여다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 나와 아내의 등장에는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듯 했다.
다들 워터파크에서 힘을 빼 버려서인지 꾸벅꾸벅 조는 사람과 멍하게 빔프로젝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파워포인트의 화면만을 응시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와는 반대로 난 아내의 움직임과 윤이사의 눈길을 쫓느라 의식이 점점 더 선명해져만 갔다. 하지만 두 사람의 모습에서 특별한 점은 찾아 볼 수 없었다. 잠시 후 윤이사가 자리에서 일어나 주변을 둘러 보더니 앞쪽으로 나가 마이크를 잡았다.
“발령 받은 지 얼마 안 되는 사람과 워크샵을 오니 많이들 지루한 모양이네요. 더구나 오랫동안 함께 하신 민이사님 대신 저 혼자만 와서 그런지 저도 좀 어색하네요. 그럼 어색한 분위기는 이쯤에서 마치고 나머지는 회사로 돌아가 합시다. 제가 찬조금을 전달할 테니 너무 많이는 마시지 마시고 기분 좀 내다가 잠자리에 들도록 하세요”
직원들 입에서 일제히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난 얼떨결에 앞으로 불려나가 아내 부서의 하팀장과 함께 찬조금을 전달 받았다. 봉투를 열어보니 적지 않은 돈이 들어있었다. 하팀장은 입이 귀에 까지 걸렸다.
“이야 박팀, 이 정도면 우리 오늘 뽀지게 먹겠는데”
하팀장은 내 어깨를 툭툭치며 기분 좋은 웃음을 보였다. 하팀장. 입사 동기이자 아내의 팀장 승진을 가로막는 녀석들 중 하나. 어쩌면 아내의 최대 라이벌일 수 있는 녀석이었지만 나와는 팀장 승진도 함께한 사회에서 만난 몇 안 되는 친구이기도 했다. 난 최대한 즐겁게 보이려고 노력했지만 입꼬리가 올라가질 않았다. 직원들은 벌써부터 조를 짜느라 부산을 떨었다. 특히 아내 부서 사람들은 아내를 가운데 두고 어느 조가 아내를 영입할 것인지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오늘 워터파크에서 아내가 보여준 모습을 보면 남자 직원들이 열을 올릴 만도 했다. 아내도 기분이 좋은지 연신 크게 웃으며 직원들과 가위바위보로 조를 나누고 있었다. 난 가만히 복도로 빠져 나와 아내에게 문자를 남겼다.
‘오늘 하루는 나 신경 쓰지 말고 즐겁게 놀아’
문자를 보내면서도 가슴은 쿵쾅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 것도 확신 할 수 없고 또 의심이 간다해도 다른 직원들이 있기에 섣불리 행동하거나 말할 수 없었다. 답답했다.
“박팀장, 미안한데 이것 좀 내 방에 갖다 놔 주겠나? 하팀장 이 친구가 안보여서 말이야. 그래도
다른 직원들보다는 팀장인 자네에게 맡기는 것이 안전할 것 같아. 난 이 친구들하고 먼저 내려가서 한 잔 하고 들어가겠네. 이럴 때 친해져야지.”
어느 틈엔가 윤이사가 옆으로 와 자신의 노트북과 방 열쇠를 내밀었다. 난 윤이사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한 체 얼떨결에 노트북과 열쇠를 받아 들었다. 윤이사는 여직원들의 손에 이끌려 세미나룸 밖으로 거의 끌려 나가다시피 했다. 여직원들 입장에서도 이럴 때 윤이사에게 점수를 따 놓는 것이 회사 생활할 때 유리할 것이었다. 난 복도로 나와 하팀장을 찾아 봤지만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번개처럼 지하에 있는 술집에 자리를 잡으러 갔을 것이었다. 술과 여자라면 죽고 못사는 하팀장이 이런 기회를 놓칠 리가 없었다.
직원들을 모두 챙겨 밑으로 내려 보내고는 윤이사 방으로 올라왔다. 아까와는 다르게 깨끗하게 정돈된 모습이었다. 흐트러져 있던 침대도 가지런히 정리가 되어 있었고 욕실의 면도 거품도 깨끗하게 사라져 있었다. 내 가슴속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안도감과 실망감이 교차되어 지나갔다. 윤이사 방을 나오면서 문득 한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난 콘도 밖으로 나가 담배를 한대 피워 물었다. 그리고 잠시 생각을 정리했다. 어쩌면 지금 이 순간 확인 못하면 영원히 알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몰랐다. 담배를 끄고 서둘러 지하 술집으로 향했다.
겉으로는 호프집이었지만 내부는 단란주점과 다를 바 없었다. 중앙에 자리한 큰 홀을 빼면 복도 안쪽으로 룸이 마련되어 있었고 그 안에는 푹신한 쇼파와 큰 테이블 그리고 노래방 기계가 있었다. 홀에는 콘도에 묶고 있는 다른 손님들이 몇몇 앉아 있었다. 주위를 두리 번 거리자 주인인 듯한 여자가 다가와 회사 직원들이 있다는 룸으로 안내했다.
직원들은 몇 개의 룸을 잡고 술과 함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난 바로 들어가지 않고 복도로 나있는 창문으로 아내가 있는 룸을 찾았다. 안쪽이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지만 가장 크게 떠드는 룸을 들여다보니 윤이사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고 아내는 그 앞쪽에 앉아있었다. 하팀장과 남자직원들은 윤이사의 노래에 맞춰 탬버린으로 박자를 맞춰주고 여직원들은 윤이사의 양팔에 달라 붙어 아양을 부리고 있었다. 직원들은 간만의 유흥에 흥이 난 듯 나에 대해서는 별 신경을 쓰지 않고 있었다.
난 빠른 걸음으로 로비에 위치한 프론트로 걸어갔다. 그리고는 윤이사 옆방의 호수를 대며 혹시 투숙객이 있는지 아니면 예약이 되어 있는지를 물었다.
“아니요. 안 계시고 예약도 없습니다. 방을 내드릴까요?”
내 신용카드로 하루치를 결재하고 열쇠를 받아 품에 넣은 후 술집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윤이사와 아내가 있는 룸으로 들어가 윤이사에게 열쇠를 전해 주었다. 윤이사에게 열쇠를 건네주는 모습을 아내가 곁눈질로 훔쳐보고 있었지만 난 모르는 척 다른 직원 옆쪽으로 옮겨 앉아 노래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맥주를 마셨다. 아내는 날 바라보지 않은 척 애써 외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순간 하팀장이 아내를 룸 앞쪽으로 끌어냈다.
“자~ 지금부터 이미란 대리의 섹시 웨이브가 있겠습니다~”
하팀장은 아내에게 마이크를 쥐어주며 자신이 먼저 선곡해 놓은 음악을 틀었다. 아내는 무척 창피한 듯 연신 머리를 쓸어 넘기며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막상 신나는 댄스 음악이 나오자 엉덩이를 흔들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남자 직원들과 여자 직원들 모두 손에 캔맥주를 들고 룸 앞쪽으로 나와 댄스 파티를 벌이기 시작했다. 난 조용히 룸을 빠져 나와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프론트에서 받은 옆 방 열쇠로 방문을 열고 들어가 베란다로 나갔다. 윤이사가 특별히 신경쓰지 않았다면 베란다쪽 문은 잠겨있지 않을 것이었다. 난 가슴이 너무 떨려 담배를 피워 물었다. 어둡고 깊은 산속을 거닐다가 올무에 두 다리가 묶여 버린 그런 기분이었다. 발을 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건너가야 했다. 어떻게 해서든 저 안을 다시 한 번 확인해야만 했다. 난 휴대전화를 벨소리를 무음으로 바꿨다. 차가운 바람에 두 눈이 시려왔다. 이제 더 이상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두 다리에 힘을 주어 최대한 멀리 뛰었다.
쿠쿵….
천천히 몸을 일으키자 두 다리가 전기에 감전된 듯 저려왔다. 긴장 때문이었다. 베란다 문을 살짝건드려 보았다. 잠겨있지 않았다. 다행이었다. 신발을 벗고 조용히 거실로 들어섰다. 베란다 문을 닫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랜턴만큼 밝지는 않았지만 어두운 방안에서는 꽤 쓸만했다. 천천히 방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아까와는 달리 모든 것이 깨끗해서 인지 내 호기심을 자극할 만한 것은 없어 보였다. 방 한쪽에 마련된 붙박이 장을 열어 보았다. 윤이사의 커다란 스포츠백이 들어있었다. 여행용 캐리어였으면 잠금장치가 되어있었을 텐데 이 스포츠백은 그런 장치 따위는 없어 보였다. 조용히 백을 뒤지자 가죽으로 된 고급 다이어리와 컴팩트 디지털카메라 그리고 갈아입을 옷가지들이 나타났다. 다이어리를 펼쳐 보았지만 별다른 것은 없어 보였다. 미국에서 머물고 있는 가족들의 사진 몇 장이 꽂혀있었다. 다이어리를 집어 넣고 디지털카메라를 꺼내 전원을 켜 보았다. 순간 눈 앞에 눈부신 나신의 여인이 등장했다.
얼굴은 찍히지 않은 체 여자의 나신이 찍힌 사진이 수 십장 들어 있었다. 난 떨리는 손으로 날짜를 확인해 보았다. 오늘이었다. 설마, 아닐 꺼야 라는 간절한 바람은 날짜와 같이 찍혀 있던 시간을 보는 순간 내 눈앞을 하얗게 만들며 산산이 부서져 버렸다. 핸드폰에서 아내와 통화한 시간을 살펴보았다. 손이 너무 떨려 화면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그 시간만은 두 눈에 선명하게 들어왔다.
워터파크로 내려오지 않던 그 시간…
바로 그 시간에 찍힌 사진들….
디지털카메라의 사진들을 넘기기 시작했다. 전라의 모습으로 침대에 누워있는 사진과 하얀색 원피스 수영복과 비키니 수영복을 입고 있는 사진들. 원피스 수영복을 입고 쇼파에 앉아 다리를 ‘M’자로 벌리고 있는 모습은 사타구니 사이로 삐쳐 나온 풍성한 음모 때문에 더욱 음란하게 보였다. 하지만 그 풍성한 음모는 비키니 수영복에서는 깨끗하게 사라지고 없었다. 대신 적나라하게 갈라진 틈새는 굳이 수영복을 벗기지 않아도 그 속살의 모양새를 알 수 있을 만큼 선명하게 보였다. 떨리는 손으로 버튼을 누르자 욕실 속에 들어가 있는 여자의 모습이 나왔다. 욕실 속의 여자는 욕조를 두 손으로 잡고 허리를 크게 앞으로 구부린 체 엉덩이를 내밀고 있었다. 풍성한 음모와 함께 여자의 은밀한 모든 것이 드러나 있었다. 그리고 그 풍성한 음모에 면도크림이 발라지며 한 남자의 손이 그 음모를 깎아 내리고 있었다. 남자는 음모를 깎으며 디지털카메라로 여자의 은밀하고 비밀스러운 부분들을 클로즈업해서 찍었다. 풍성한 음모를 모두 깎아 버린 앞모습은 가늘고 긴 한 줄의 음모가 자리하고 있었지만 갈라진 틈을 가려주기에는 힘들어 보였다. 그리고 음모를 모두 잃어 버린 풍만한 뒷모습은 음탕한 애액으로 젖어버린 꽃잎과 항문을 너무나 음란한 모습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머리가 핑 돌며 현기증이 일었다.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눈물이 나오지도 화가 나지도 가슴이 뛰지도 않았다. 그저 하얗게 변해버린 눈 앞 만이 내가 볼 수 있는 전부였다.
난 윤이사의 짐을 정리한 후에 옆방으로 건너왔다. 두 손은 부들부들 떨리고 두 다리는 채찍이라도 맞은 듯 휘청거렸다. 애써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며 원래 방으로 돌아갔다.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다른 방들도 조용한 것을 보니 다들 술집에 있는 모양이었다. 난 침대 속으로 들어가 이불을 뒤집어 썼다. 헐떡이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두 눈을 감았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아마도 한참의 시간이 흘렀던 것 같다. 방문이 열리며 누군가 들어왔다.그리고 곧바로 불이 켜졌다.
“어...히히히.... 형님.... 꺼억.... 먼저 오셨네요??? 이야...아.... 오늘이요.... 얼마나 재미있...히히히 재미있었는데요.히히히....”
후배 녀석은 많이 취했는지 내가 듣건 말건 술집에서 있었던 아내의 섹시 댄스와 워터파크에서 보았던 비키니 몸매에 대해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특히 요즘 들어 자주 입고 출근하는 미니스커트 정장 덕분에 남자직원들의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는 얘기도 곁들였다. 녀석은 아내와 같은 여자를 만나는 것이 남자로서는 가장 큰 행복일 것이라며 나를 치켜세웠지만 귀로만 들릴 뿐 머릿속은 온통 하얀색 그 자체였다.
“아후.... 다들 너무 많이.... 마셔서 큰 일... 입니다. 여직원들은 거의... 히히히.... 전멸이에요 전멸. 내일 아침에 살아남을 사람이.... 꺼억.... 몇이나 될지 모르겠네요.... 저도 아까... 오바이트를 두 번이나 했어요.히히히히”
녀석은 그렇게 술주정을 이어가더니 욕실로 들어가 변기를 붙잡고 오바이트를 한 번 더 하고는 쇼파 위에서 널 부러져 잠이 들어 버렸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 비틀거리며 베란다로 나갔다. 담배를 든 손이 너무 떨려서 불을 붙이기도 어려웠다. 눈물 따위는 나지 않았다. 다만 왜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 아내의 모습을 본다면 난 어떻게 해야 할까. 반가운 표정을 지어야 할까. 화난 표정을 지어야 할까. 회사 사람들 앞에서 난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 자리에 주저 앉은 체 얼굴을 무릎에 파 묻었다. 베란다로 들이치는 바람 소리가 악마의 웃음 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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