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운명 - 6부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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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회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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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총장 신병으로 사임. 새 검찰총장은 검찰차장이 승계.”

신문 1면에 검찰총장이 바뀐 사실이 나왔다. 더불어 최 고검장은 사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가장 큰 적 하나는 사라진 셈이다.

그 동안 단우는 매일같이 엘링턴 호텔에 출근했고, 강준은 별채에서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었다. 단영은 강준과의 그날 밤 이후 되도록 그를 피했다.

단우는 호텔에 출근은 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근처의 서울중앙도서관에서 보냈다. 고시 합격자 출신이라 어려운 책을 읽기는 어렵지 않았고, 자신의 집안 내력에 대해서도 대충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저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시원한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러는 시점에서 그는 점점 더 여자 유령을 자주 보았다. 여기서 쓰러지면 끝이다. 아무에게도 말할 수 없는 그것이 자꾸 그의 목을 조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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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이너서클이란 게 좋기는 좋았다. 아버지의 사업도 많이 쉬워졌고, 그렇게 강혜의 집안을 무시하던 자들도 이젠 굽신거린다. 그게 힘이지.

인생은 돈과 권력을 갖고 태어난 자들의 것이다. 강혜도 바보는 아니었다. 아버지가 한푼도 없는 가운데 어떻게 그렇게 큰 재산을 만들었는지, 모르지 않았다.

결코 세상에는 자랑할 수 있는 방법은 아니었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돈과 명예만이 모든 것이다. 이 때 전화벨이 울렸다.

“저, 레온이란 사람이 전화인데요?”

“레온? … 알았어요.”

레온? 누군가?

“누구신지요? “
“나? 유민주의 보디가드인 레온이오.”
이 때 유민주가 나왔다. “이강혜, 결혼했다면서? 재미 좋던데?”

재수없게시리 또 유민주인가?
“살인자 주제에 아주 거물을 잡았네? 하씨종가 장손이라면서? “
“너 같은 년의 입에 오르 내릴 이름이 아니야.”
“내가 그 친구를 찾아가 네 과거를 말하면 어떤 표정을 지을까?”
강혜는 자신 있는 미소를 지으며 전화기에 대답했다.
“내 과거는 그 사람이 직접 확인했어. 너같이 낙태를 밥먹듯이 한 년하곤 차원이 다르거든?”
“차성진 씨 일에 대해 들으면 아마 달리 생각할 걸?”
“나는 법원에서 무죄판결을 받았어.”
“판사 매수해서 받은 무죄판결이지. 세상은 너를 살인자로 생각할 걸? 하단우가 그래도 너랑 같이 살까?”
“증거 있으면 내놔. “
“40억 주면 내놓지. 내일까지 40억을 내 구좌에 입금시키면 내 손 안의 증거를 태우는 동영상을 보내 주지.”
“구라 까고 자빠졌네. 너는 아무것도 없어. 나는 너 같은 년에게 휘두를 위치가 아니고. 다시 전화걸면 그 땐 지구상에서 사라질 줄 알아.”
강혜는 전화를 끊었다. 이제 일본으로 저주를 풀러 가야 하는데 별 좆같은 게 부정타게 만들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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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우의 집 건너편에 있는 빈 저택.

하은선과 차성진의 유령들은 단우의 집을 보기만 하면서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은선은 550년 전의 그 날을 생각하고 있었고, 성진도 자신이 죽던 날을 생각하고 있었다.

“댁은 언제 복수를 그만둘 생각이쇼?” 성진의 유령이 물었다.

“하씨 집안의 대가 끊길 때까지. 거의 다 왔는데 한 놈이 붙어 있어서 못 하고 있어.”

“이강혜가 놈인가요?” “아니야. 넌 몰라도 돼.”

“우린 동지 아니요. 나는 이강헤만 죽이면 되지만, 그래도 이것도 인연인데 댁이 하려는 일에 도움이 되고 싶은데.”

“닥쳐. 너는 저 자식들이 한 일을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지도 못해. 괜히 복수할 때 얼쩡거리다가 방해나 되지 마.”

“그래도 머릿수 하나라도 더 있는 게 유리할 거요. “

은선은 옆에 있는 성진을 바라본다. 유령계는 무조건 죽었을 시점의 나이로 계산한다. 성진이 어쨌든 그녀에게는 오빠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번 벌려 주쇼. 어차피 애가 생길 것도 아닌데 무슨…”

“이거 간다 간다 하니까 머리 위까지 올라가네. 닥쳐!”

성진은 언젠가는 은선을 먹고 말리라고 다짐했다. 유령도 어쨌든 달렸는데, 섹스는 하고 살아야 하는 게 아닌가?

“그 자식이 만들어 놓은 결계선을 뚫는 것이 중요해. 그 자식은 이강혜와 뭔가 관계가 있는데, 그래서 네가 필요한 거야. 네가 이강혜를 혼란시키는 동안 그 자식과 상대할 테니까.”

은선은 그 동안 하씨 집안에서 태어나는 사내들을 먹고 살아왔다. 하승관은 애당초 아들을 낳지 못했으므로 해당사항이 없고, 그 이전에 그녀가 해치운 하씨 집안 남자들의 수는 강당을 가득 채울 정도였다.

대대로 다산하던 하씨 집안이지만 은선이 더 빨랐다. 하지만 정작 하씨 집안이 마지막 몇 명으로 줄어든 지금, 해치우기가 힘들었다.

하중경. 그놈은 내가 상대했던 하씨 집안의 모든 수호령들 중 제일 센 놈이야. 그놈과 싸운 후 그녀도 20년 가까이 버로우해야 했다.

“그 자식이 죽어도 하씨 집안에서 대를 이어 계속 갈 지 모르는데요?”

“그렇다면 그 아이도 죽여야지. 하성연의 자손이 지구상에서 사라지는 그날까지 나의 복수도 계속될 거야.”

“그 다음엔요?”

“그 다음엔 나도 명계로 들어갈 수 있겠지.”

“난 어차피 명계에 가도 별볼일 없어요. 당신은 양반집 딸이니 좋은 데 가겠지만 오갈 데 없이 몸뚱이 하나만 갖고 먹고 산 나는 거기 가 봐야 옥탑방 신세겠죠. 나는 이렇게 유령으로 사는 게 좋아요.”

“…”

차성진은 모두가 평등한 유령세계가 좋았다. 가끔씩 혼자 사는 여자들을 덮칠 수도 있고, 그래도 증거도 하나 남지 않는다. 그녀들도 어차피 내가 고맙지 않은가?

이강혜. 돈에다 권력까지 얻었겠다.

세상은 너 같은 사람을 위해 존재하지. 업보란 없다. 너는 영원히 잘 먹고 잘 살겠지.

그러나 나도 이젠 나 혼자가 아니야. 사육신 중 두 명이나 내 편이다. 어디 두고 봐라. 네가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번 해 보자 이거야.

하지만 그러기 전에 은선은 한번 먹고 싶었다. 이런 기회가 아니면 언제 양반집 처자를 먹어 보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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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중경의 유령은 멀리서 그 모습을 쳐다보고 있었다.

우리 집안에는 별아별 피가 다 섞여 있다. 족보에는 없다. 하지만 하씨 집안의 피를 잇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인 줄 알았는가?

단우는 영원히 몰라야 할 것들이 많았다. 저주와 싸워 나가면서 대를 이어 온 하씨 집안 사람들의 희생에 대해서 그가 알아 봐야 좋을 것 없다.

집 안에서 곱게만 자란 요조숙녀나, 외제차 타고 다니면서 돈 쓰는 것밖에 모르는 요새 여자애들은 절대 유령을 이길 수 없다.

강혜가 무죄라는 것은 그가 더 잘 안다. 차성진을 죽이고 혁대를 목에 감은 것은 바로 하중경 자신이었으니까. 그 때 그녀는 자신이 하는 일을 알지 못했다. 유령은 필요하면 숙주의 정신을 지배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단우가 이해해 줄 리는 없을 것이다. 그 애는 의외로 융통성이 없어서, 가문을 어떻게 지켜 왔는지 그 고충을 이해할 리가 없다.

피를 묻히지 않고는 가문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단우가 이해해야 할 텐데.


저녁, 김포공항.

단우와 강혜, 강준은 전세기 편으로 일본으로 떠났다. 강혜가 비행기를 전세내서 다른 승객은 없다. 이것이 힘이지.

일단 제국호텔에서 하룻밤을 자고 내일 일찍 야나기다 구니오의 묘가 있는 가와사키로 간다.

하네다 공항에서 택시를 탄 그들은 도쿄 중심가 유락초에 있는 제국호텔에 입성했다.

은하그룹 은형기 회장과 그 아버지 은채복 창업주는 제국호텔에 자주 머물곤 했다. 지금은 은 회장이 일본에 가면 도쿄에 있는 개인 저택에 머문다지만, 그 방은 그냥 있었다.

이런 오래 된 호텔은 호화스러움보다는 기품이다. 강준은 말했다. “누나. 이 호텔은 너무 따분해.”

“알아. 하지만 여기만큼 좋은 곳도 없으니, 서투르게 굴지 마. 여기는 VIP들만 오는 곳이니 VIP답게 행동해.”

강준의 일본어에 의지해야 하는 지금이니 어쩔 수 없다. 강준은 일본에 오니 한국에서보다 확실히 많이 활발해 보였다.

하단우는 걸음걸이에 빈틈이 보이고 있었다. 근무력증이 본격적으로 진행되려면 아직 4개월 정도 남았지만, 진행되고 나면 이미 늦다.

일단 포터들이 집을 스위트룸에 풀었다. 룸은 의외로 간단했다. 다만 침대와 수건의 메이커들은 모두 영국과 유럽의 사치품 제조 업체였다.

단우는 한번 보고 그것들의 제조사를 알아 맞췄다. 역시 상류층의 자제는 다르다고 강혜는 생각했다.

이 때 만국에게서 전화가 왔다.

“강혜야. 일본에 얼마나 있다 올 테냐?”
“일주일 정도 있을 거예요. 상황에 따라서 며칠 더 있을 수도 있지요.”
“너무 오래 있지 마라. 도쿄 말고 딴 데는 안 가니?”
“아마도 도쿄 교외만 들렀다 올 거예요.”
“알았다. 되도록이면 빨리 돌아와라.”

아버지가 빨리 돌아오라고 할 사람이 아닌데, 이상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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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편에는 야한 장면이 없지만, 조연들을 정리하고 앞으로의 스토리를 잡는 데에는 필요한 장면이라 넣었습니다.

이 소설에는 착한 사람은 덜 떨어진 강준 한 명 뿐입니다. 그런 강준도 처음 보는 사돈을 덮쳤지요.

어찌 보면 허무주의적인 야설입니다. 단우 집안의 저주 풀기가 해결할 수 없을 정도의 상황으로 가는 과정이 후반부의 줄기가 됩니다. 결말은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것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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