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빨유]미니를 입으면 빨리 걷게 되는 이유 - 1부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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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ㅠ 코멘트도 해 주시고...
관심이 아예 없을 줄 알았거든요.
혼자 하는 심정으로 썼는데... 히힛^^

론군주님 감사합니다. 어설프게 느끼셨다면 제가 부족한 탓이라고 생각해요..
좀 더 노력해보겠습니다!!

Holtby님.. 소개글이 더 재밌으시면 안되는데...ㅠㅋㅋ

pb1234님 감사합니다. 뻔하지 않는 걸 뻔하지 않게 써보고 싶은데, 힘이 드네요ㅠㅠ








24.


12살이 되었을 무렵, 웬만한 대학교 언니오빠들 전공 이하 수준의 내용이 담긴 책은 다 읽게 되었다.

그 나이에 그 정도만 되어도 충분했을 것 같았지만 읽는 족족 내것으로 만드는 나의 모습을 보며 안경 아저씨는 순수한 선생의 마음으로 더 가르치고자 하셨던 것 같다.


그럴만한 능력도 있으셨고...


나 역시 나의 자존감을 세워주었던 그 재밌는 지식에 대해서 막연한 동경 같은게 있었던 것 같았다.
특별히 대학교 수준의 책을 읽기 시작하면 나의 육체적인 부족함에 대해 더 알 수 있을것 같았고 그런 지식을 많이 가진다면 내 몸이 꼭 치료될 것 같은 느낌 때문에 아저씨의 제안에 순순히 따랐다.


어느 날 읽고 있던 책 곳곳에 "실험을 통해 알아냈다"라는 구절들을 보고 안경 아저씨에게 왜 실험을 해야되냐는 내 나름의 고차원적인 질문을 했다는 것에 스스로 뿌듯함을 느낀 날이었다. 그런 나를 빙긋이 웃음을 지으며 바라보던 안경 아저씨는 내게 정말 재밌는 일이 생각난 듯이 말했다.

[수아야 책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재밌는 거 해볼래? 물고기도 있고, 미키마우스 친구인 흰 생쥐도 있고, 조그만 식물도 있어.]

[와! 진짜요? 재밌겠다아~~]

[이것저것 다 만져보고 같이 놀아봐. 그리고 키우고 싶은 거 있으면 아저씨랑 같이 키우자]

[진짜 키울 수 있어요? 그러면 나는 생쥐할래!]

그날 이후 나는 안경 아저씨네 실험실에 매일 놀러가서 생쥐와 놀고, 물고기에게 밥을 주고, 씨를 심고 물을 주면서 놀았다.







25.




[그래 수아야. 내가 했던 말 고민해보구, 마음이 변화가 있다거나 힘들면 언제든지 연락하렴~]

조 선생님과의 뭐 어쨌든 고맙지만 지루한 건 어쩔수 없는 상담이 끝난 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그 정도 수치의 호르몬의 안정이 지속된다면 이제 다시 병원에 가지 않아도 될지 몰라.../

난 반년 전부터, 안경 아저씨의 지속적인 상담과 도움으로 정신병원에서 퇴원하기로 결정됐다. 그 뒤에는 동시에 조 선생님의 강력한 주장이 있었기도 했다.


보통 사람과 같이 생활하는 게 회복에 도움이 된다고...
특별하게 취급하면 병이 나을지는 몰라도 절대 보통 사람처럼 살기 힘들어질 수 있다는 조 선생님의 생각...


다른 교수님들도 조 선생님의 강력한 주장에 손을 휘휘 내저었다던데...
그렇게 조 선생님의 지원이 있자 일반적인 사람들처럼 사람들 속에서 집을 얻는 모험을 해 보는 아이디어는 날개를 단 것처럼 진행되었고, 그래도 반년 가까이의 시간을 더 병원에서 보낸뒤, 보름 전부터 외부에서 살기 시작했다.

비록 나 혼자서 사는 것은 아직 무리라고 안경 아저씨가 염려를 늘어놓는 통에 조 선생님은 투룸을 얻어준 후, 어릴 적 내 친구에게 부탁을 해서 친구 한 명과 살기로 했다.
비록 내 자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심한 심리적 불안장애에서는 어느 정도 회복되었지만 여전히 거울은 커녕 내 모습이 살짝 비치는 유리조차도 볼 수 없는 상태는 쉽사리 호전되지 않아 혼자서 생활하는 것은 위험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다를까 나는 밖으로 나가는 첫 날, 난 다시 응급실에 실려 왔다.
그리고 난 뒤, 나는 가장 먼저 모자가 필요하다고 조 선생님에게 요청했다.

모자를 쓰면 어쩌다 버스나 차들의 차창에 비치는 내모습을 피할 수 있었고, 나의 손을 제외한 쇼 윈도에 아무 것도 비치지 않는 증상을 조금이나마 덜 마주칠 수 있을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효과는 어느 정도 나타났다.
보름동안 밖을 돌아 다니며 첫날의 충격에 이어 받았던 여러 번의 해프닝은 내 감각을 조금씩 무뎌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비록 가끔 깜짝깜짝 놀라긴 하지만 다행히 응급실에 실려오지 않고 심박수가 올라가는 걸 느끼며 참아낼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조 선생님과 헤어지고 집에 가는 길에 어김없이 또다시 엄습해오는 두통의 답답함.


참아보려다 참지 못하고 오늘도 늘 들리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을 사기로 한다.


[어서오세... 아! 안녕하세요!]

집 앞의 편의점에서 일하는 이 남자는 계속 내게 살갑게 군다.
나는 눈으로만 살짝 끄덕이며 출입구에서 대각선 맞은편에 있는 냉장고로 아무 일 없는 듯 걸어가보려 하지만 역시 유리에 비친 익숙해질 수 없는 "그 느낌"을 또 느끼며 흠칫한다. 머뭇거리던 손을 얼른 뻗어 냉장고를 열고 상표명처럼 먹으면 태초로 돌아갈 것만 같은, 알칼리 환원수로 만들어서 숙취가 덜하고 흔들수록 더 맛있다는 소주 한 병을 꺼낸다.



카운터로 간다.

[저기 신분증 좀 보여주세요]

/저기.. 나 지금껏 여기서 산 소주만 해도 열 번은 넘을 것 같거든요?/

잠깐 뚫어져라 그 남자를 쳐다보다가 주민등록증을 건네준다.

[신수아씨, 팔오공육공구 이삼... 네 나이 확인되셨습니다.]

뭔가 미소를 지었지만 친절함과는 거리가 멀고 오히려 약간 음흉한 느낌이 드는 웃음기가 잠깐 이 남자 얼굴에 나타난 것 같았지만 금새 어디서 자주 보는 드라마 장면 같이 행동하는 사람이다.

[오늘도 소주만 사세요? 안주는요? 최근에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안주거리 되게 많이 나왔는데...]

계속 되는 질문 공세에 당황한 나는 오늘 헤어지기 전에 들었던 조 선생님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수아야 넌 아직 사람들과의 관계가 어색할거야.../

그 말을 끊고 한동안 조 선생님의 침묵이 이어졌다.

/지금까지의 사람들이 너에게 했던 행동, 너에게 했던 얘기들... 이제부터 예전의 그것과 다르게 네게 다가오고 얘기해올거야. 그때마다 어색하겠지... 하지만 그 어색함이 자연스러운 거라고 생각하렴. 그리고 그 순간순간의 경험을 소중히 생각한다면 수아 네가 혼자 일어날 수 있을거야/


조 선생님 말처럼 이럴 때의 대처방법은 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순간 좋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냥, 계산하는거야!/

나는 아무 말 없이 오천원짜리 한장을 내민다.
그러자 오히려 그런 내 반응을 예상했다는 듯이 남자는 자연스레 돈을 받더니 거스름돈을 내준다.
당황한 쪽은 내 쪽이었다.

[천원입니다. 거스름돈 사천원 여기있습니다.]

나는 거스름돈과 소주병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넣어버리고 돌아서서 나가려고 하는 순간 등 뒤에서의 남자의 거친 말로 인해 멈춰서버렸다.

[아.. 사람 존내 무시하네...]

흠칫 놀랐다가 다시 문을 향해 한 걸음 내딛는 순간,

[저...저기! 야!! 너 잠깐 거기 있어봐봐...아 ㅆ..도도한 척 쩐다 너.. 하여간 지가 예쁜거 아는 년들은 꼭 저래요!]




/도...도도하다고? 예쁘다고?/




지금까지 내가 알고 있던 세.상.에서는 한번도 들어본 적 없는 나를 향한 묘사어구.


게다가 저런 말투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었다.
어색함이 도도함으로 비춰질 수 있다는 건 이해가 가는데 내가 예쁘다는 말은 지금껏 병원에서 내게 했던 말이 전부였었다.
상담하시는 선생님들이 몇 년째 내게 줄곧 했던 말.

/수아야~ 너 참 예뻐...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란다.../

처음에는 그런 말조차 들려오지 않았던 나였지만 그 말들이 시간이 지나며 내 마음을 조금씩 열었었고 그것은 나 스스로에 대한 극도의 혐오감에서 조금씩 벗어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어쩌면 내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몰랐지만, 거의 십 년간 충실하게 상담 의사들은 나의 자존감을 세워줬었다.

하지만 지금은 달랐다.
예전에 나를 짓누르던 그 "무형의 아우라"를 지닌 비속어와 욕설에다 어울리지 않는, 오히려 어색하게 나에게 도도를 논하고 미를 말했다.




그렇게 나는 순식간에 공포에 사로잡혔고, 의식의 일각에서는 한 문장이 떠올랐다.


/지금까지의 간호사 언니들이나 조 선생님이 했던 말이 상담 혹은 치료목적이 아니었을수도 있을까?/




하지만 찰나의 생각마저 금새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그 공포에 사로잡혔고 내 머리속은 십 년간 한 켠에 고이 접어둔 공포로 가득찼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오르는 게 느껴지자 고개를 떨구고 내 손에 남아 있는 조그만한 혹을 만지작거렸다.
그 순간 내 머리를 꽉 누르고 있던 두통 속에서 큰 낫과 같은 거대한 무형의 물체로 척추를 꿰뚫는 듯한 강렬한 고통과 함께 눈 앞의 모든 것이 순식간에 깜깜하게 바뀌었다.


털썩.







26.



[한 선생님, 여러가지 검사를 수행한 결과... 수아의 병명은 코타르 증후군과 비슷한 심리장애인 것 같습...니다...]






27.




[수아야~ 밥 먹자!]

나는 온 몸이 경직되는 공포가 시작되었다.

[야! 신수아, 대답 안 할래? 너 부른거 못들었니?]

[빨리 이리로 안 오니?]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일으켰다.

[밥 먹자고 했잖아~ 대답 안해?]

[요 걸레년아, 우리가 너 키 크게 해줄려고 밥을 만들어왔댔잖아~]

[먹고 무럭무럭 자라야지 안그래? 그러니까 이거 3분 안에 다 먹어!]

[하하하하하]

[빨리 처먹어. 무럭무럭 자라야 니가 좋아하는 재민이랑 사귀지 안그래?]

[깔깔깔깔]

[재민이가 좀 잘해줬다고 지가 재민이 깔인줄 아나봐]

[얘가 재민이랑 잤댄다 아놔...]

여러 명이서 단지 한 마디씩만 거들었지만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말투와 욕설이었다.
나는 부들부들 떨면서 또다시 야속한 눈물이 뚝 떨어졌다.

[또 우냐? 미치겠다 씨바]

[좆나 짜증나 썅년]

무엇이 섞여있는지도 모르는 잡탕같은 쓰레기 같은 밥인데 이걸 만들어 강제로 먹이는 학교 친구들에 둘러싸여 울면서 억지로 먹는다. 어떤 날은 컵라면 플라스틱이 섞여있기도 하고 어떤 날은 담배꽁초가 들어있을 때도 있었다.

항상 나긋나긋하게 나에게 "밥 먹자"고 다가오는 그 과거는 진짜 생각하고 싶지 않은데도 정말 교묘하게 내 생각의 방어막을 뚫고 불쑥불쑥 떠오르는 나의 가장 끔찍한 기억 중에 하나였다.




28.



[콩그레츄레이션! 나인틴나이티세븐 더 인터네셔널 올림피아드 어워드. 바이올로지 파트 더 브론즈 메달 위너 이즈... 미스 수아 신! 더 실버 메달 위너 이즈...]

열렬한 박수가 터져나오며 나의 참가에 보호자겸 선생님으로 따라와주었던 안경 아저씨와 함께 앞에 나가서 동메달을 목에 걸고 상장을 받았다. 동시에 찰칵찰칵 플래시가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이후 나에게 수상소감을 말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정상적이지 않은 저의 몸 상태가 생물에 대한 더 큰 애착으로 바뀌어 이런 결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음 날, 일간지에서는 "키는 꼴찌지만 생물에 대해서는 최고가 될거예요"라는 엉뚱한 제목과 함께 키 작은 내 모습이 담긴 신문이 전국에 나갔다.





29.


[헉! 휴.... 후....]

벌떡 일어나 앉아 머리에 손을 가져다 댔다.
머리에는 식은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 멍하니 있다가 주머니 속을 뒤적여 핸드폰을 찾아 시계를 보니 새벽 4시였다.






또 옛날 꿈을 꾸었다.
가장 기억하기 싫은 것 중 두 가지...





[어! 일어났어?]

/누구...?/

[갑자기 그렇게 쓰러져서 얼마나 놀랬다고!]

고개를 왼쪽으로 조금 갸웃거리며 상황판단을 하려고 노력했다.

/아... 내가 편의점에서 쓰러졌었지.../

[음... 근데 원래 그렇게 말이 없어?]

나에게 상체를 기울여 내 눈을 빤히 바라보며 말을 건네오는 남자 때문에 또 흠칫 놀라는 나였다.

[미치겠네... 놀라는 거 보니 완전히 귀머거리는 아닌 것 같고...뭐 알겠어요... 평소에 그쪽 이름이랑 나이랑 대충 알고 있으니까 병원와서 응급실 접수하긴 했는데... 어떻게 허물어지듯이 쓰러지냐? 드라마 말고 진짜 내눈으로 첨 보는 광경이었어! 그쪽이 키도 좀 크냐? 쓰러지는데 비쩍 마른 나무가 하나 쓰러지는 줄 알았다니까?]

/아까 전에는 욕을 하던데... 지금은 또 왜 나긋나긋하게 말하는거야?/
놀라며 코 까지 가렸던 이불을 가슴에까지 슬며시 내려놓았다.

이 남자의 이야기는 계속 되었다.

[참참.. 간호사 누나랑 의사선생님도 다 나보고 묻더라구. 진짜 스물일곱살 맞냐고... 나도 묻고 싶었거등...흐흐.. 실례일 것 같아서 못 물어봤는데... 진짜 그쪽 완전 동안이다. 고딩같이 생겼는데 나이 완전 많더라?]

나는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아직도 몸에 배여있는 버릇이다.

/성격이 좋은건가? 어떤게 진짜 이 남자 성격이지?/

두통은 아직 가시지 않았는데 옆에서는 계속 말을 거니 다시 쓰러 지고 싶은 마음이었다.

[처음 소주사러 왔을 때 어떤 미친 고딩년이 당당하게 술을 사냐고 생각하고 민증 보여 달라고 했는데 팔오년 생이라 놀랬었거든...어차피 너 같이 꼴릿한 애면 그냥 팔았겠지만...뭐, 그 다음에 사러 왔을 때는 위조한 게 아닌가 해서 보여달라고 했었고, 그 다음에는 한 번 더 확인차하려고 보여달라고 했고, 그 이후에는 말 걸때 마다 당황하는 그쪽이 재밌어서 보여달라고 했어. 그 때 꼼꼼히 잘 봐둬서 다행이지.. 안 그랬으...]

[텅!]
[긴급환자 호출이에요 선생님!]
[김 간호사 바이탈 체크!!]
갑자기 응급실에 교통사고 환자가 들이닥쳤다.
내 침대 바로 옆에서 피가 왈칵왈칵 스며나와 침상을 적시고 있던 아저씨는 한 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해보였다.
곧바로 간호사 한 명이 커튼을 쳐 버리는 바람에 귀로만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취객으로 갑자기 도로를 건너려다 교통사고가 나서 흉부충격으로 인해 갈비뼈가 폐를 관통하고 심장을 건드린 듯 보입니다.]

119 구조대로 보이는 아저씨가 커튼 안으로 뛰어 들면서 설명했다.

[출혈을 막지 못하면 저혈압 쇼크가 올거야! 그러면 심방세동이 올거고 그러면 갈비뼈 때문에 응급처치도 못할 거야 빨리 수술 준비해!]

그 순간 삐 소리가 들리더니 어느 드라마에 나왔었던 것 같은 상황을 듣게 되었다.

[심장 충격기 준비해 얼른!!]

그 후 몇 분의 시간이 지났을까 다친 아저씨는 몇 번의 파닥거림이 있은 후 심정지 판정을 받았다.
[..사망시각...]


난 그와 동시에 구토 증상을 느끼고는 병원 바닥에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아무 것도 먹지 않은 나의 빈 속에서는 어이없다는 듯이 신물만 조금씩 내뿜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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