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담배-정민 - 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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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의 어느날
아침부터 비인지 눈인지 정체모를 것이 내린다.
나뭇가지와 비탈진 언덕길엔 눈이 내렸고, 거리와 사람들이 걷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얼굴에 떨어지는 것은 비고, 어깨에 떨어지는 것은 눈이다.
춘천의 봄은 화려하다. 그중에 공지천의 봄은 마치 첫날밤의 선남선녀들과 같다.
오죽하면 봄의 개천이라는 뜻일까.
긴 겨울의 끝자락은 아직이지만, 눈도아니고 비도아닌 것이 공지천에 내리면 곧 꽃들이 만발하여 봄도 겨울도 아니다가 봄인듯하면 여름이 되는 것이다.
김정민이 처음 후배로 입학한 박인숙을 보았을때, 그가 본것은 봄이었다.
자주색 롱코트를 입고 차분하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목련을 생각했다.
1학년 신입생 답지 않게 설레이는 것도 없이,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 것이었다. 복잡하기만 한 대학의 수업스케쥴을 짤때도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혼자해냈고, 써클 가입을 권유하는 선배들의 등살을 희미한 미소로 대하여 오히려 선배들이 머쓱하기도 하였다.
김정민. 서울의 대학을 쓸 성적이 못되어 춘천으로 오게된 김정민은 그나마 국립이라 학비를 절약하게 되었다고 부모님께 자랑아닌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다만, 대학에 가면 꼭 신촌과 이대입구를 누비며 청춘을 불태우마고 했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주말이면 서울집으로 갔는데, 나중에는 제발 주말에 집에 오지말고 춘천에 있으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때로 인숙은 겨울이 되었다.
호감이라도 살 요량으로 1학년때의 필기노트를 인숙에게 주며 환심을 사고자 했지만, 인숙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나지막한 고사였다.
그래도 어찌 사나이기 물러나랴하는 심정으로 갖은 방법으로 접근을 했지만, 어느날 차가운 인숙의 말
“여자의 환심을 사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런 억지뿐인가요”
너무나 싸늘한 인숙에게서 정민이 느낀것은 무거운 두려움이었다. 이 작은 아가씨의 몸에서 큰 바위가 느껴졌다.
그날이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김정민이 고민하다,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매번 신촌에서 허탕을 치며 무심을 배운것일지도.
먼발치서, 때론 두세걸음 떨어져서, 쳐다보든 안보든 굳이 눈에 띄려 노력하지 않고.
아무리 무심히 있어도 봄은 오듯이, 눈이 녹고 싹이 피고 꽃이 피듯이.
그렇게 여름이 가까이 오며, 모두들 짧은팔에 핫팬츠로 자신의 뜨거움을 맘껏 발휘할 때, 인숙은 여전히 긴바지와 긴소매옷으로 몸을 꽁꽁 감싸고 있다.
어느날은 절룩거리며 걷기도 하고, 어느날은 짙게 화장을 하고 오기도 했다.
어떤날엔 느닷없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음 수업을 빼먹고 어디론가 급히가선, 몇일을 학교에 나오지 않기도 하였다.
친구들이 왜 안나왔냐고 물으면.
희미한 표정으로 “월남에 갔다 왔다”고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천연덕 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계절을 보는 것은 내 주변의 무엇인가가 변화된 것을 발견했을때이다.
앙상한 가지가 푸르스름하게 변한것을 문득 느낀다든지,
그 가지에 잎이 무성하여 가지가 늘어진 것을 본때. 그 잎이 소나기에 씻겨 묵은 먼지를 걷어내어선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시켰다가, 어느날은 노랗게 잎이 변하였다가, 땅에 떨어진다.
그런데 인숙은 1년내내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모습, 같은 표정.
그녀는 봄인듯, 여름이고, 여름인듯 가을이었다가, 겨울이었다. 계절이 그녀를 비켜가는 듯하다. 어느 계절도 그녀를 이기지 못했고, 아무도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딱한번 그녀가 변한 모습을 본것은 그녀보다 훨씬 더 어여쁜 동생이 학교에 찾아왔을 때였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 분한지 울그락불그락 하는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더니, 동생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리곤 다음날 아무일 없었다는듯한 표정의 그녀를 지켜보며 김정민은 웬지 그녀가 애처로와 보였다.
그리 슬피울고난 다음날이 여느날의 표정과 다름없다는 것은 그녀의 여느날이 어쩌면 다 어제와 같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어떤 슬픈 사연을 감추고 사는, 그리고 그런 일들을 견디어 내며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대학1학년의 어린 여자가 아닌 누나와 같은 듬직함도 느껴졌다.
그녀는 하얀 목련이다.
4학년이 되던해. 김정민이 군대를 가겠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군대가”
“이제 대학생활을 시작하려는데 군대가시는군요” 3학년이 된 인숙에게서 겨울인듯 봄이아닌, 봄이 찾아왔음을 느낀다.
“1주일 후야”
“그정도면 많은 시간이네요”
“...........”
“놀러가요. 공지천의 벚꽃이 보고싶어요”
첫휴가를 나왔을때, 키스를 했다.
“키스는 처음이야” 무슨 당연한 말을 하나 싶다. 별 부끄럼도 없이 이렇게 차분하게 말하는 것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듯.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그 입술에 묻은 하얀 크림이 녹기전에 키스를 했던것일까? 그녀의 입술은 시원했다. 마치 냉장고에서 막꺼낸 콜라를 먹는 맛처럼.
“너가 반팔티 입은거 처음봐”
“미니스커트 입은거 처음 봤다는 말은 않고”
“눈부셔서 미쳐 못보았다”
휴가 마지막날 섹스를 할수 있었다.
휴가 마지막날의 뻔뻔함이었을거다.
“가슴을 만져보고 싶어”
“가슴만?”
잠시 할말을 잃고 있는데,
“날 2년 동안 지켜본 결론이 모였는지 궁금해”
“내가...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었니?”
희미하게 그녀가 웃었다.
“여자는 뒤에 눈이 달려있어서, 때론 앞을 못봐. 대신에 뒤에선 늘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지”
“지켜봐 줘서 고마워. 오빠 덕분에 난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어. 늘 같은곳에 늘 같은 모습으로 지켜봐줘서 나도 늘 같은 모습을 지킬수 있었던 거지”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가슴으론 만족 못하자나. 가”
어디? 라고 정민이 묻지 못한건, 그녀가 이미 모텔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침부터 비인지 눈인지 정체모를 것이 내린다.
나뭇가지와 비탈진 언덕길엔 눈이 내렸고, 거리와 사람들이 걷는 길에는 비가 내린다.
얼굴에 떨어지는 것은 비고, 어깨에 떨어지는 것은 눈이다.
춘천의 봄은 화려하다. 그중에 공지천의 봄은 마치 첫날밤의 선남선녀들과 같다.
오죽하면 봄의 개천이라는 뜻일까.
긴 겨울의 끝자락은 아직이지만, 눈도아니고 비도아닌 것이 공지천에 내리면 곧 꽃들이 만발하여 봄도 겨울도 아니다가 봄인듯하면 여름이 되는 것이다.
김정민이 처음 후배로 입학한 박인숙을 보았을때, 그가 본것은 봄이었다.
자주색 롱코트를 입고 차분하게 말하는 그녀에게서 목련을 생각했다.
1학년 신입생 답지 않게 설레이는 것도 없이, 묵묵히 자기일을 하는 것이었다. 복잡하기만 한 대학의 수업스케쥴을 짤때도 아무에게도 묻지 않고 혼자해냈고, 써클 가입을 권유하는 선배들의 등살을 희미한 미소로 대하여 오히려 선배들이 머쓱하기도 하였다.
김정민. 서울의 대학을 쓸 성적이 못되어 춘천으로 오게된 김정민은 그나마 국립이라 학비를 절약하게 되었다고 부모님께 자랑아닌 자랑을 늘어놓았었다.
다만, 대학에 가면 꼭 신촌과 이대입구를 누비며 청춘을 불태우마고 했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았다. 주말이면 서울집으로 갔는데, 나중에는 제발 주말에 집에 오지말고 춘천에 있으라는 핀잔을 들어야 했다.
때로 인숙은 겨울이 되었다.
호감이라도 살 요량으로 1학년때의 필기노트를 인숙에게 주며 환심을 사고자 했지만, 인숙에게서 돌아오는 것은 나지막한 고사였다.
그래도 어찌 사나이기 물러나랴하는 심정으로 갖은 방법으로 접근을 했지만, 어느날 차가운 인숙의 말
“여자의 환심을 사는 방법으로 생각하는 것이 이런 억지뿐인가요”
너무나 싸늘한 인숙에게서 정민이 느낀것은 무거운 두려움이었다. 이 작은 아가씨의 몸에서 큰 바위가 느껴졌다.
그날이후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김정민이 고민하다,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매번 신촌에서 허탕을 치며 무심을 배운것일지도.
먼발치서, 때론 두세걸음 떨어져서, 쳐다보든 안보든 굳이 눈에 띄려 노력하지 않고.
아무리 무심히 있어도 봄은 오듯이, 눈이 녹고 싹이 피고 꽃이 피듯이.
그렇게 여름이 가까이 오며, 모두들 짧은팔에 핫팬츠로 자신의 뜨거움을 맘껏 발휘할 때, 인숙은 여전히 긴바지와 긴소매옷으로 몸을 꽁꽁 감싸고 있다.
어느날은 절룩거리며 걷기도 하고, 어느날은 짙게 화장을 하고 오기도 했다.
어떤날엔 느닷없이 수업이 끝나자마자 다음 수업을 빼먹고 어디론가 급히가선, 몇일을 학교에 나오지 않기도 하였다.
친구들이 왜 안나왔냐고 물으면.
희미한 표정으로 “월남에 갔다 왔다”고 얼굴색 하나 안변하고 천연덕 스럽게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계절을 보는 것은 내 주변의 무엇인가가 변화된 것을 발견했을때이다.
앙상한 가지가 푸르스름하게 변한것을 문득 느낀다든지,
그 가지에 잎이 무성하여 가지가 늘어진 것을 본때. 그 잎이 소나기에 씻겨 묵은 먼지를 걷어내어선 햇빛을 눈부시게 반사시켰다가, 어느날은 노랗게 잎이 변하였다가, 땅에 떨어진다.
그런데 인숙은 1년내내 변하지 않았다. 언제나 같은 모습, 같은 표정.
그녀는 봄인듯, 여름이고, 여름인듯 가을이었다가, 겨울이었다. 계절이 그녀를 비켜가는 듯하다. 어느 계절도 그녀를 이기지 못했고, 아무도 그녀에게 접근하지 못했다.
딱한번 그녀가 변한 모습을 본것은 그녀보다 훨씬 더 어여쁜 동생이 학교에 찾아왔을 때였다.
그녀는 무엇이 그리 분한지 울그락불그락 하는 얼굴로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더니, 동생을 붙잡고 엉엉 울었다.
그리곤 다음날 아무일 없었다는듯한 표정의 그녀를 지켜보며 김정민은 웬지 그녀가 애처로와 보였다.
그리 슬피울고난 다음날이 여느날의 표정과 다름없다는 것은 그녀의 여느날이 어쩌면 다 어제와 같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것이다. 어떤 슬픈 사연을 감추고 사는, 그리고 그런 일들을 견디어 내며 살아가는 그녀에게서 대학1학년의 어린 여자가 아닌 누나와 같은 듬직함도 느껴졌다.
그녀는 하얀 목련이다.
4학년이 되던해. 김정민이 군대를 가겠다고 그녀에게 말했다.
“군대가”
“이제 대학생활을 시작하려는데 군대가시는군요” 3학년이 된 인숙에게서 겨울인듯 봄이아닌, 봄이 찾아왔음을 느낀다.
“1주일 후야”
“그정도면 많은 시간이네요”
“...........”
“놀러가요. 공지천의 벚꽃이 보고싶어요”
첫휴가를 나왔을때, 키스를 했다.
“키스는 처음이야” 무슨 당연한 말을 하나 싶다. 별 부끄럼도 없이 이렇게 차분하게 말하는 것은 조금 어울리지 않는듯.
시원한 아이스크림을 나눠먹고, 그 입술에 묻은 하얀 크림이 녹기전에 키스를 했던것일까? 그녀의 입술은 시원했다. 마치 냉장고에서 막꺼낸 콜라를 먹는 맛처럼.
“너가 반팔티 입은거 처음봐”
“미니스커트 입은거 처음 봤다는 말은 않고”
“눈부셔서 미쳐 못보았다”
휴가 마지막날 섹스를 할수 있었다.
휴가 마지막날의 뻔뻔함이었을거다.
“가슴을 만져보고 싶어”
“가슴만?”
잠시 할말을 잃고 있는데,
“날 2년 동안 지켜본 결론이 모였는지 궁금해”
“내가... 지켜보는 것을 알고 있었니?”
희미하게 그녀가 웃었다.
“여자는 뒤에 눈이 달려있어서, 때론 앞을 못봐. 대신에 뒤에선 늘 어떤일이 일어나는지 잘 알고 있지”
“지켜봐 줘서 고마워. 오빠 덕분에 난 평정심을 잃지 않을 수 있었어. 늘 같은곳에 늘 같은 모습으로 지켜봐줘서 나도 늘 같은 모습을 지킬수 있었던 거지”
수수께끼 같은 말이다.
“가슴으론 만족 못하자나. 가”
어디? 라고 정민이 묻지 못한건, 그녀가 이미 모텔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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