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무도회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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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고 어려울 때,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건 행운이었다. 비록 방금 전까지 민혁의 도움을 거절했던 선남이었지만, 그의 도움을 받아들이고서는 오히려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함께한다는 그러한 것이다. 아무리 불가능한 일이 눈앞에 닥쳐서 혼자서는 힘들어도 누군가가 옆에서 받쳐준다면 도전은 해볼 수 있는 것 아니던가.

“그럼 선남이 네가 지난번처럼 술에 취하기 전에 제대로 한 번 이야기 해보자.”

“풋. 좋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넌 강 이사라는 사람에게 언제 팽 당할지 모르는데, 문제는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신변의 위협이 온다는 것이겠지.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해고당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실... 신변의 위협을 넘어서 목숨까지 장담하진 못하지.”

“좋아. 그리고 선남이 넌 강 이사에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했고... 그것을 제수씨에게 말을 해야 하는데, 아니 대화는 물론 신뢰를 통해서 서로 똘똘 뭉쳐야 그 방법이 통한다는 뜻이잖아?”

“그렇지.”

“그런데 선남이 너는 아내가 바람을 피우고 있다고 추측하고 있고....”

“... 응.”

민혁은 선남에게 질문을 하면서 아주 간략하게 현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어렵고 힘든 문제들이 곳곳에 있었다. 한꺼번에 손을 대서 한 번에 해결을 하기란 힘든 법이었다. 문제의 매듭을 풀기 위해서는 하나씩 해결을 해야 했다.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지 않던가.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인데... 선남이 네 딸 말이야. 확신 해?”

민혁의 말에 선남의 표정이 어두워졌지만, 어차피 할 말은 해야 했다.

“확신은 못하겠지만... 내 딸은 아닌 것 같아.”

“선남이 네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터인데... 확실한 방법이 있지.”

“친자인지 유전자를 검사하는 방법 말이야?”

“응.”

선남이 그 방법을 선택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내인 지영의 뒷조사와는 달리 꺼리는 부분이 많았다. 만약에 정말로 보배가 선남의 친 자식이 아니라면, 그게 사실로 드러날 경우에 선남은 아직까지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물론, 친 자식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올 것 같아서 두렵기도 했다.

“생각을 안 해 본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두렵다.”

“음... 일단 이건은 뒤로 미루고... 강 이사 건부터 해결해 보자. 넌 분명히 방법이 있다고 했어... 안전하게 벗어날 방법...”

“그렇긴 한데... 아직까지는...”

선남이 강 이사로부터 벗어날 방법이 있다고 했지만, 아직까지는 확신이 서지는 않는 듯 했다. 그런 선남의 어두운 표정을 보고 민혁이 말을 이어갔다.

“내가 생각해 봤거든. 나라는 사람이 선남의 입장이라면... 어떨까?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안 나와. 그나마 가능성이 있는 건... 가족과 함께 해외 도피겠지? 안 그래?”

“... 민혁이 너란 녀석도 참... 대충 맞아. 난 가족과 해외로 나갈 생각이야.”

해외로 나간다고 해서 안전한 것은 아니었다. 강 이사는 해외까지 선남을 추적할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그렇지만 국내에 있는 것보다는 안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 선남이었다. 국내에는 더욱 더 도망갈 구석이 없었으니까.

“선남아 내 생각인데 말이지. 넌 강 이사 밑에서 여러 가지 일을 했단 말이야. 그만큼 강 이사를 잘 알고 있을 거야. 이것을 역으로 생각하면 강 이사에 타격을 줄 수 있는 자료를 가지고 있을 수도 있어. 안 그래?”

“... 놀랄 노자군.”

선남은 내심 민혁에게 감탄을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치 자신의 속내를 들어갔다 나온 것 같았다.

“내가 그만큼 선남이 네 입장에서 많은 생각을 했지. 나라면 어떤 행동을 할까... 뭐 이런...”

“민혁아 너 정말 대단하다.”

“칭찬은 됐고... 이어서 말해 볼게. 넌 가족과 해외 도피를 할 생각이야. 그리고 그 자료를 이용해서 강 이사의 두 발을 묶어버릴 생각이겠지? 가족과 안전하게 해외로 튄 상황에서... 선남이 네가 가지고 있는 자료가 언론이나 검찰에 넘어간다면... 강 이사는 발이 묶이는 건 물론 사회에 매장을 당할 수도 있겠지.”

“... 그래. 맞아. 난 가족들과 해외로 나갈 생각이야. 100% 안전한 건 아니겠지만... 그래도 그게 최선일 것 같아. 강 이사가 죽지 않는 이상, 설령 죽더라도 K 건설과 엮인 나는 대한민국 땅에서는 죽을 때까지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겠지. 그리고...”

“그리고?”

“민혁이 너에게 말을 하지 않았지만... 강 이사의 형이 나에게 얼마 전에 제안을 했어.”

“강 이사의 형? 제안?”

“강 이사의 형은 K 건설의 회장이야. 그 둘은 배 다른 형제이고 어릴 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아. 오히려 지금은 더욱 악화가 되었다고 봐야겠지. 나는 모르지만 강 이사는 무언가 계획을 세우고 있어. 그리고 그 계획에 대해 강 회장은 많은 우려를 하고 있지.”

새로운 이야기에 민혁은 귀를 기울였다. 하나라도 놓쳐서는 안 되었다. 사실 관계가 완벽해야 자신이 세운 계획을 더욱 더 치밀하게 세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계속 해 봐.”

“강 회장은 강 이사를 의심하고 있었고, 뒤에서 많은 조사를 했나 봐. 그리고 강 이사가 꾸미고 있는 계획을 눈치 챘지. 그래서 강 이사를 사회에 매장 시키고 싶어 해.”

“자신의 동생을?”

“응. 다시 말하지만 둘의 사이는 좋지 않아.”

“그러면 강 회장의 등장이 선남이 너에게는 그다지 불이익이 없겠네. 아마도 그가 제안한 것은 내가 말한 것과 비슷하겠지? 강 이사를 매장 시킬 자료를 넘겨라는...”

“민혁이 네 추측이 맞아. 강 회장은 그 자료를 넘겨주면 나에게 적잖은 돈을 준다고 했어. 그리고 가족과 해외에 나갈 수 있도록 도와준다고 하기도 했지.”

“괜찮은 조건이기는 한데...”

민혁의 생각에도 선남에게 제안을 한 강 회장의 조건은 상당히 흥미로웠다. 신변의 안전을 보장하고 해외에서 살아갈 수 있는 얼마의 돈까지 준다면, 이보다 좋은 조건은 없었다.

“선남이 네 대답은?”

“3개월의 시간을 달라고 했지.”

“선남이 네 판단에는 강 회장도 믿을 수 없다는 뜻이 숨겨져 있는 것 같은데?”

“맞아. 강 회장과 강 이사, 결국 둘은 형제야.”

선남의 말은 단호했고, 민혁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선남에게 파격 조건을 한 강 회장, 그는 자신의 동생마저 없애려고 하고 있었는데, 과연 피 한 방울 섞이지 않고 강 이사 밑에서 10년 간이나 일한 선남은 그냥 내버려둘까? 민혁은 아무리 생각에도 이 가정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민혁의 판단에고 강 회장은 믿을 사람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왜 하필 3개월이야?”

“나도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잖아. 그렇다고 짧으면 내가 조급할 것이고... 길게 잡기에는 내 입지가 불안하고... 강 회장 그 사람은 지금 내가 필요하겠지만... 짧으면 몇 개월, 길어도 1년 안에는 내가 불필요할지도 몰라. 그 역시 뒤에서 계속 강 이사를 조사하고 다닐테니...”

“... 젠장. 강 회장의 등장이 오히려 너에게 이롭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아니었군.”

“맞아. 차라리 강 회장이 등장하면서 난 시간이 많이 부족해. 내가 아무리 부족하다고 하더라도 강 이사는 사람을 쉽게 믿지 않아. 또 다른 사냥개가 있는 게 분명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았어. 강 이사가 신뢰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지. 그런데 강 회장의 등장이 나에게 시간을 빼앗아 갔어. 길어봐야 1년일 것 같은데...”

민혁의 생각에도 선남은 시간이 별로 없어 보였다. 길어봐야 1년? 이 경우도 선남이 최대한 긍정적으로 생각해서 낸 시간이었다. 강 회장이 당장 내일 아침에 강 이사를 사회에 매장 시킬 방법을 찾아낸다면 그 길로 선남 역시 강 이사와 운명을 같이해야 했다.

“그렇게까지 긴 시간이 남은 것 같지는 않고...”

“맞아. 몇 개월 안에... 죽든 살든 결판을 내야겠지.”

선남과 민혁은 대화를 할수록 상황이 어렵다는 것을 몸소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힘을 내야 했다. 포기하면 모든 것이 그 순간 끝이지 아니한가.

“아참... 그리고...”

“말해 봐. 선남아.”

“우리가 조심해야 할 부분은... 아까 민혁이 너의 도움을 거절했던 이유 중 하나인데... 사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에도 감시를 당하고 있을지 몰라.”

“무... 뭐야?”

이것만큼은 민혁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선남의 말을 듣고서 빠르게 머리 회전을 한 민혁은 선남은 물론 자신마저 감시를 당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에 납득을 해야 했다. 만약에 자신이 강 회장이나 강 이사라도 그렇게 했을 테니까.

“두 군데서 감시당할 수도 있겠군.”

“민혁이 네 말이 맞아. 강 회장은 나를 한 때 감시했다고 솔직하게 말을 하기도 했지. 그렇다고 지금 안하리란 법은 없을 것이고... 강 이사는 또 다른 사냥개를 시켜 나를 지켜보게 할 수도 있겠지.”

“참 어렵다... 어려워... 여긴 안전하겠지?”

민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 막걸리 집에는 별달리 이상해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대화를 하는 게 더 꺼려지기도 해. 누군가 감시하고 있을 터인데... 나는 아직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 같지만... 아내와 대화를 해서 해외 도피가 결정이 되어도... 그것을 먼저 티내면... 모든 계획이 수포가 될 수도 있겠지.”

“그럴 수도 있겠네. 그건 그렇고... 선남아.”

“말해 봐.”

“나도 가자.”

“너도?”

“야... 이제 나도 위험해졌으니... 나도 해외로 가야지.”

선남은 민혁이 자신을 따라 해외로 나갈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도 못했다. 그러나 민혁의 표정은 사뭇 진지했다. 아니, 진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목숨까지 내놓으면서 농담할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말이야. 나도 해외로 갈 생각을 했어. 요 며칠간 선남이 네 생각을 하면서... 네가 해외로 갈 확률이 높다고 판단했지. 그리고 어차피 도움 주는 거, 끝까지 함께하자라는 생각도 했고 말이야. 또 마지막으로 너 돈 필요할 것 아니야. 사람 하나 늘었어도... 커피숍이라도 처분하면 4억 정도는 더 마련할 수 있을 거야.”

민혁의 말에 선남은 가슴속에서 무언가 울컥하는 게 있었다. 민혁은 인생까지 바쳐가며 자신을 도와주려고 하고 있었다.

“왜 임마? 어차피 너에게 도움 받은 것도 많고... 돈도 못 갚았고... 그리고 선남이 너도 그렇고... 또 나도 그렇고 피붙이도 없잖아. 내가 딸린 가족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해외로 나가면 이런저런 고생이 많을 터인데... 남자 하나라도 더 있는 게 낫지 않겠어?”

민혁의 말을 들은 선남은 순간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릴 뻔 했고, 그것을 민혁에게 들키기 싫어서 잠시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본 민혁이 선남에게 말을 했다.

“고맙다고 절이라도 하냐? 됐고... 정신 차려. 다음 이야기 계속 해야지.”

민혁의 말을 들은 선남은 마음을 다 잡았다. 어쩌면 지금 민혁과 대화를 하는 이 시간이 자신들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시간일 수도 있었다. 시간을 그냥 버려서는 안 되었다.

“선남아. 내 이야기 들어 봐.”

“그래.”

“내가 지금 생각하기에는 역시 해외 도피가 가장 최선이라고 본다. 일단 해외로 도망을 가는 방법을 준비하자. 그리고 우리가 출국 후에 강 이사는 사회에 매장당할 수 있도록 하면 되겠지? 참 간단한 방법이지만... 중요한 건 들키지 않는 것 일 테야.”

“그렇겠지.”

“강 회장의 제안은 받되, 돈은 받지 마. 물론, 강 회장에게 직접 자료를 건네서도 안 돼. 그러는 순간 우린 다 죽는 거야. 우리가 직접 강 이사를 매장 시킬 수 있도록 하자.”

“... 좋아.”

민혁은 차분히 정리를 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선남은 이에 동조했다.

“선남이 너는 제 1의 타겟이잖아. 감시 대상일 터이니... 그냥 평소처럼 일을 해. 대신해서 내가 준비하면 될 것 같으니까.”

“괜찮겠어?”

“괜찮지 않으면 어쩌려고... 나라도 대신 움직여야... 해외로 도망을 가든 말든 할 것 아니야. 무언가 해야 할 일이 있으면 나를 시켜.”

“그래.. 알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최대한 빨리 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지? 그런데... 역시 큰 문제는...”

“내 가족이겠지.”

그러했다. 어떻게 보면 강 회장과 강 이사의 눈만 피해서 해외로 일단 도망을 가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선남에게 있어서는 자신의 목숨과 같은 가족이 있었다. 아내 지영과 딸 보배가 그들이었다.

“일단 제수씨가 바람을 피는 지, 피지 않는 지, 그 문제보다는...”

“음?”

“보배 건부터 해결하자. 선남이 네 딸이 아닌 것 같다면서?”

“음... 어렵네. 맞아. 그렇게 생각하긴 하는데... 사실 내 딸이 아니어도 괜찮아. 아니, 지금은 내 딸이잖아. 사실 내 친딸이 아니라는 결과가 나오면 무서울 것 같아.”

역시 민혁의 예상대로였다. 선남은 보배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어도 상관이 없다는 생각을 했다. 비록 가정에 충실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선남은 딸인 보배를 위해서라도 피와 땀을 다해 노력하지 않았던가.

“그냥 한국에 산다면... 큰 문제는 없겠지. 그런데 지금은 특수 상황이란 말이야. 권력이 있는 자들에게 쫓겨 해외로 나가야 하는데... 선남이 네가 아내를 설득 시키는 건 필수야. 그런데 만약 정말 보배가 친딸이 아니라면... 상황이 변하지 않을까?”

“................”

“네 말대로 제수씨에게 먼저 말을 해서 티가 나면 우린 다 죽는 거야. 그러기 전에 확실히 할 건 다 해놔야 해. 보밴 건도 피할 수 없고 말이야.”

“그러니까 민혁이 네 말은...”

“친자 검사를 하자.”

민혁의 제안을 듣고 선남은 올 것이 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것만큼은 피하고 싶었지만, 선남이 생각하기에도 민혁의 말에는 설득력이 충분했다. 만약 보배가 자신의 친딸이 아니고, 대한민국 어딘가에 생부가 살아있다면, 자신의 아내인 지영이 한국을 떠나려고 할까? 자신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먼저 아내인 지영에게 이 사정을 말할 수도 없었다.

“선남이 네 마음은 알겠어. 하지만, 여러 문제를 한 번에 풀 수는 없어. 더구나 우리의 적은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어. 우리는 아주 사소한 트러블이라도 만들어서 안 돼.”

“... 그래. 그렇게 하자.”

“이런 말 하는 게 참 친구로서 미안하다. 하지만, 어차피 서로 다 살자고 하는 짓이잖아. 사실 제수씨의 바람 문제도 그렇고 나름 생각한 게 많아. 그렇지만 하나씩 풀어가야 하고... 보배 건이 그 첫 번째야. 그 결과가 나오고 나서 다시 한 번 선남이 네 가정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아야겠지.”

“... 그래.”

선남은 기운이 없었고, 민혁은 자신의 생각대로 그를 설득해 나갔다.

“선남아.”

“응.”

“택배로 우리 커피숍에 보배와 너의 머리카락 샘플을 몇 가닥씩 봉인해서 보내줘. 다시 말하지만, 내가 대신해서 움직여줄 테니까. 넌 강 이사와 강 회장의 감시를 받고 있잖아. 그들에게 집중하는 게 더 나을 거야.”

“알았다.”

민혁의 말에는 막힘이 없었다. 그리고 선남은 그의 말을 따랐다.

“보배와 너의 친자 검사 결과가 나온 후... 다시 이야기를 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동안 서로 티내지 않고 평소대로 행동하면 될 것 같고...”

“여러모로 신경써줘서 고맙다.”

“고맙긴... 이제 우리는 한 팀인데...”

대화를 마친 선남과 민혁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서로의 손을 잡고 함께 가자는 약속, 그 결과는 어떻게 될지, 아무도 알 수 없었지만, 분명한 것은 서로를 믿고 기대야 하는 팀이라는 사실이었다.

***

선남과 민혁이 함께 하기로 약속한 후, 며칠이 지났다.

그 사이 선남은 민혁의 요구대로 자신과 보배의 머리카락 몇 가닥을 뽑아서 민혁의 커피숍에 택배를 보냈고, 민혁으로부터 잘 받았다는 문자와 더불어 검사 결과는 일주일 정도 걸린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선남은 유전자 친자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초조한 마음을 숨겨가며, 평소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이 과장.”

“네. 이사님.”

언제나처럼 차를 운전하고 있는 선남을 뒷좌석에서 창밖을 바라보던 강 이사가 불렀다.

“이 과장. 요새 무슨 일 있나?”

“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낯빛이 어둡지?”

강 이사의 말을 들은 선남은 뜨끔한 마음에 백미러를 통해서 강 이사의 얼굴을 힐끔 보았다. 강 이사는 선남을 얼굴을 볼 수 없었지만, 뜻을 알 수 없는 묘한 표정을 지으며 운전을 하고 있는 선남의 옆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습니까? 어제 잠을 잘 못 잤는지...”

“걱정거리 있으면 말하게. 내가 다 도와줄 테니.”

“없습니다. 이사님.”

선남은 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강 이사의 이런 친절함은 이제껏 단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었다.

“그래? 걱정거리가 있어서 잠을 못 잔 게 아닌가?”

“아... 아닙니다. 사실 어제 술이 좀 과해서....”

“크하하하. 내가 불혹의 나이 때는 소주 30병씩 먹고도 거뜬했는데... 이 과장 체력이 말이 아닌 걸. 내가 보약이라도 한 재 해줘야 겠구만.”

“말만으로도 고맙습니다. 이사님.”

“그런가? 이 과장이 피곤해 보이니, 내 마음이 다 불편하구만. 언제든지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게.”

“다시 한 번 신경 써주셔서 고맙습니다.”

강 이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는 선남은 마음이 불안했다. 도대체 왜 저 인간이 자신에게 이토록 과한 관심을 보이는지, 그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아참... 이 과장.”

“네. 이사님.”

“저 사거리 지나서 차를 정차하게.”

선남은 불안한 마음을 잠시 접고, 평소대로 강 이사가 지시한 일에 대해 즉각 대답을 하며 행동에 옮겼다. 사거리를 지나서 길가에 차를 정차한 선남은 강 이사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이 과장. 사실 말이야.”

“네. 이사님.”

“내가 오늘 친히 갈 데가 있단 말이지. 더구나 이 과장이 피곤하다니... 이만 퇴근하게.”

“아... 아닙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아니, 아니야. 어차피 나 혼자 갈 수 있는 곳이라네.”

강 이사가 어디로 가는지는 선나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알 필요도 없었다. 강 이사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선남은 운전석에서 내려 차의 오른쪽 뒤편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차 문을 열며 강 이사가 내리는 것을 도왔다.

“고맙네. 아참... 이거 받게.”

강 이사는 차에서 내린 후 지갑에서 꺼낸 수표 몇 장을 선남에게 건넸다. 선남은 90도 인사를 하면서 강 이사가 건네 준 수표를 두 손으로 공손히 받았다.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가서 보약이라도 사먹던지... 아니면 술이라도 먹던지... 몸이 그렇게 부실해서야 원... 암튼 오늘 잘 쉬도록 하게나.”

“네. 이사님.”

강 이사가 선남의 어깨를 몇 번 치고 그의 곁을 지나갔다. 그리고 차의 왼쪽 앞으로 걸어가서 운전석에 앉았고, 선남을 그대로 둔 후, 강 이사는 직접 운전을 했다. 강 이사가 운전한 차가 선남의 시야에서 사라졌고, 선남은 자신이 들고 있는 수표의 개수를 세어 보았다.

“오백만원이라니...”

백만 원짜리 수표 다섯 장, 매우 큰돈임에는 분명했지만, 선남은 지난번처럼 과감하게 수표 다섯 장을 갈기갈기 찢어서 바닥에 던져버렸다. 그리고 택시를 잡기 위해 길거리를 걷기 시작했다.

“오후 1시라니... 오랜만에 좀 쉬겠군. 그런데... 갈 곳이 없네.”

오후 1시에 선남은 자유의 몸이 되었지만, 막상 갈 곳이 없었다. 집에 가기에는 아내인 지영과의 부딪힘이 아직 부담스러웠고, 그렇다고 민혁의 커피숍을 찾을 수는 없었다.

“시간이 있어도... 갈 곳이 없구나. 쳇.”

그런데 그 순간 뜻밖의 사람으로부터 선남을 찾는 연락이 왔다. 품속에서 진동하는 휴대전화를 꺼낸 선남은 액정에 찍힌 발신번호가 낯설었다.

“누구지?”

알 수 없는 번호였지만, 피할 이유도 없었기에 전화를 받은 선남이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곤혹스러운 상황에 빠져야 했다.

“여보세요.”

- 이 과장?

“누구시죠?”

- 이 과장 맞군요. 나 연 교수예요.




... 계속


선남, 민혁, 지영(딸 보배), 태영, 강 이사, 강 회장, 미연, 연 교수, 제트(훈), 수진(사망).
이들의 과거는 어떠했고, 또 미래는 어떻게 될까요? ㅎ

날림으로 쓰지만, 참 글을 쓰는 건 녹록치 않아요.
판은 벌어졌고, 이제 벌려놓은 일들을 집어서 잘 조합을 해야 할 터인데...

캐릭터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또 그 캐릭터들의 생각을 퍼즐처럼 맞춰가며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게 쉽지는 않네요.

대충 반환점은 돈 것 같은데.. 크 -_-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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