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테로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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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V야동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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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활한 연결을 위해 전편의 일부분을 같이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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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갑자기 알림음이 울렸다. 알림음은 카톡 메세지가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한 거였나보다.
안그래도 새로운 메세지가 왔다며 아이콘에 ① 표시가 떠있었다.
하서윤...? 누구지, 내 친구들 중에 이런 이름이 없었던거 같은데...
머리를 굴려봐도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낑낑대다 순간적으로 뭔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아..! 비소 실제 이름이 하서윤이였던거 같은데..
예전에 카페 채팅방에서 분명 추가했던 아이디의 이름이었다. 채팅방 들어오지말고 이제 무슨일 있으면
카톡으로 메세지 보내라고 쫑알대던 것까지도 기억나기 시작했고, 갑자기 무슨일인가 싶어 서둘러 메세지를
확인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쳐 갔다.
얘가 왠일로 먼저 메세지를 보냈지..? 혹시 무슨 일 생긴거 아냐??
갖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난무하고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조작법에 낑낑대며 겨우겨우 메세지를 확인했다.
[모두의 마블]
하서윤님이 클로버를 보냈어요!
한 판 고고고!!
@ 앱으로 연결
...하..?
부글대는 속을 잠시 미뤄두고는 바로 자판을 누른다.
[야, 너는 평소에 연락도 없더니 이렇게 광고 문자나 보내냐!!]
< 어.. 형 봤어? 헤헤 미안, 게임 할려니 클로버가 부족해서 호호.. >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왠만하면 연락 자주 좀 해, 이런거만 보내지 말고.]
< 에이, 너무 화내지 말구~ 자주 연락할께! 그래도 나같은 꽃소녀의 문자가 꽤 반갑지? >
[..너 스팸 등록한다 ㅡㅡ^ ]
< 워워워...!! 안그럴테니 진정해! >
< 와.. 형 군대 갔다오더니 엄청 까칠해졌다? 예전엔 그래도 좀 사근사근한 맛이 있었는데 쩝.. >
[그냥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아라 놀아. 어이구! 호탕하다고 해야할지 원... 암튼 이 오빠는 과제하러 가니까 방해말고 생산적인 활동을 해서 스스로 가꿔보는게 어떻겠니, 응?!?]
< 뭐야~~ 좀 놀아주나 싶었더니만, 치사하게!! 나 심심한데.. 뿌잉뿌잉 >ㅅ
하아... 이녀석도 변한게 하나도 없다. 발랄하고 낯가림 없는 성격은 당시 모임에서도 꽤 많은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했다. 나이가 어렸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니었다 확실히. 물론 그런게 큰 장점이긴 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따라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지나치게 마이페이스적인 행동들, 이건 충분히 눈살을 찌푸릴 수
있는 것들이다. 당시엔 오냐오냐 하는 형 누나들 덕분에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다 싶을땐
모임 사이에서 그나마 내가 가장 지적을 많이하고 땍땍거린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비소야, 형 화낸다 그럼.]
< 아.. 넵 형님. >
[그래, 게임 열심히 하고. 나중에 같이 놀자, 알았지?]
< 네,네엥... >
오랜만이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사람 본성이 안바뀌는 것처럼 포장한거 잘 까보면 속은 그대로였다.
그동안 비소는 2살을 더 먹어 이제 성인이 됐지만 그때와 다름없는 막내의 모습이고, 나 역시도 심지는
그대로일게 뻔하다. 비록 그게 시커멓게 타고 그을림이 잔뜩 묻은 형태라 하더라도, 타고난 역할까지 바뀌진
않을 것이다. 분명하다, 기껏해야 마음에 안들면 잘려나가는 정도가 최선의 처우이지 않을까.
난 성신설, 성악설 이런걸 믿진 않지만 (여기서 그런 거창한걸 언급할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사람 하나하나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한줌을 움켜쥐고 커온다고 믿고있다.
에이, 괜히 또 머리가 복잡해진다. 요샌 갈수록 더 한거 같다. 뭘 하지않고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생각이
멋대로 삐죽거린다. 잘드는 칼이 있다면 잔가지라도 쳐보겠는데, 당장 앞가림에도 헉헉대는 판이라
손을 써보지도 못했다. 뭐.. 일견 한편으로는 개소리라고 치부하면서도 완전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을지도.
남한테 강요하지않는 내 생각이고, 나 마저도 외면하면 누가 주워주겠나싶어서 일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PC방이나 가서 과제나 해야겠다. 모양이 좀 빠지지만 내가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는건데 누가 뭐라하겠어?
머리를 한차례 벅벅긁고는 발걸음을 빠르게 돌렸다.
학교를 빠져나가는동안 금새 과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차지했다. 모든게 능숙하게 잘 되는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떠듬떠듬 해나가는 부분이 아직까지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나름 재미란게 붙어가고 있었다.
완전히 도움될 거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아주 맹탕은 아니겠지싶어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인근 PC방에 금방 도착했다. 적당히 ID카드 하나 받고는 대충 아무 구석자리에
가방을 풀었다. 그러고보면 뭐가 참 많이 바뀌긴 했다는게 실감난다. 세상에 PC방이 금연구역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적어도 우리나라 흡연자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이 PC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댈텐데 이건 그냥 대놓고 검열을 하겠다는게 틀림없었다. 위쪽 정치권 하는 짓이 눈가리고 아웅이라,
서민들 위하는 척 하면서도 담배산업이 가져다주는 돈 때문에 이번에도 대충 넘어갈 줄 알았는데 한 건 제대로
하신다. 앞뒤 안가리는 여가부에서 부지깽이로 오질나게 쑤셔대기라도 했나보다. 그러지 않고서는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지금이었다.
그냥 눈 딱감고 이시간까지만 담배를 참자고 되새겼다. 사실 따지고보면 학교에서도 담배 피는게 여간 눈총
받는게 아니다. 흡연 자체가 이미 사회에서는 폭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니 나같은 개미가 외쳐봤자 통하기나
하겠나 싶기도하고, 정말 누누이 말했는데 이번엔 금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담배는 과제를 하고나서 나중에 집에 갈때 피자.
마음을 정하고나니 좀 낫긴하다. 이제는 익숙한 사이트 주소를 쳐가며 빠르게 과제에 몰입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을거 같다. 다음번 모임까지는 이틀정도 남았지만, 사실상 내가 맡은 파트 부분에서는
큰 헛점은 없을거 같았다. 도중에 막혀서 골머리 싸매기도 했지만 역시 더 파고들다보면 대부분 해결되더라.
그래도 몇개 찝찝한 부분은 체크 해뒀으니 그건 조원들과 만나서 잘 맞춰보면 어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흠..
필요한건 다 마친 상황이지만 왠지 바로 자리를 뜨고싶진 않았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막상 나도
이렇게 앉아있으니 게임 생각이 슬쩍 났던 것이다. 딱 한판만..! 이라는 생각으로 바탕화면에 있는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리그오브레전드. 흔히 LOL, 롤이라고 불리는 게임. RPG나 RTS, FPS장르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AOS 게임인 이녀석은 한국시장에 진출함과 동시에 점유율 판도를 뒤짚어 엎어버렸다.
말 그대로 국민게임이 되버린 것이다. 나 역시도 군대에 있는 동안 선임이나 후임들과 외박을 나오면
간간히 해본 경험이 있었고, 생소하지만 확실히 재미가 있었던 기억에 지금 이렇게 접속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RPG를 해보라고 한들, 2년의 공백은 게임 시스템 마저도 바뀔만큼 큰 시간이고 FPS 는 군대에서
허구언날 총질을 했기때문에 멀리 치워버리고 싶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다.
그런게 뭐가 중요할까, 그냥 재밌는거 하면 되니까 이제 잡생각 하지말자. 빠르게 게임을 즐겨갔다.
많이 해본 편은 아니라 어색하기도하고 욕도 먹었지만 아주 감각이 없진 않아 판을 거듭할수록 점점 나아졌다.
마성의 게임이라고 하더니만 정말인가보다. 쉽게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으으, 조금만 더 해보면..!
"저어.."
"저... 저기요.."
솔직히 말하자면, 첫마디는 못들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냥 무시했다.
"저기...여보세요.."
세번째가 되서야 내 의자 옆에서 들리는 소리가 날 부른다는 걸 알았다.
"네, 네??"
이등별 시절, 총 사왔냐는 선임의 짖궂은 농담 이후로 그런 새된 소리는 이번이 처음이었을 거다.
"그 게임, 저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이게 뭔가 싶었다. 원래 PC방은 각자 와서 각자 즐기고 가는 마이플레이스가 아니던가.
의자에 몸을 그대로 삼켜져서는 한창 게임을 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의자 가까이
바짝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은 여자였다.
생각이 떠듬떠듬 끊긴다는게 이런걸 말하나 싶을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이거 혹시 헌팅?
말이 안된다. 여기가 클럽이면 모를까, PC방에서??
"...아... 네 뭐 안될건 없죠.."
너무 뜸들이는 것도 이상하게 볼까봐 일단 쉬운 것부터 대답해나갔다. 그리곤 슬쩍 고개를 돌려, 당차게
말을 건 사람이 누군지 훑어보기로 했다.
어라?
이렇게 말을 건 자신도 무안한지 고개를 푹 숙이곤 내 모니터만 쳐다보는 그녀, 시선이 확실히 어지럽다.
근데,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은채..씨?"
그녀는 다름 아닌 나은채였다. 나와 같이 조별과제를 하는, 공부도 곧잘하고 싹싹하며 덤으로 얼굴도 귀여운
그런 사람이 다짜고짜 게임을 가르쳐달라고 하다니.. 혹시 난줄 알고 말을 붙인걸까? 그런 생각이
번뜩 지나갔지만, 허둥대는 분위기를 봐서는 그런거 같진 않다. 애당초 지하에 있는 PC방이라 어둡기도하고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이 없다면, 가까이서 보지않는 한 사람을 식별하기도 어렵다구 여긴.
"아..?...아아앗!!! 앗!! 앗!!"
그녀도 그제야 내가 눈에 들어왔나보다. 아까 생각했던건 취소해야겠다. 오히려 자기가 아는 사람이란걸
알고는 훨씬 심하게 허둥대고 있는 그녀를 보고있자니 그럴 수 밖에 없을거 같았다.
"은채씨, 난줄 알았어요?"
"아뇨 아뇨! 아아아...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아니 뭘 그렇게 당황해요? 게임하면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으으..아으... 죄송해요 선배님..아우우..이게 왠일이람..."
오히려 더욱 저자세로 나오는 그녀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은채씨 저 정말 괜찮아요. 너무 그러시면 제가 오히려 미안해져요. 저 정말 괜찮으니까 진정하세요."
"아앗 네에..."
그러곤 얌전히 자리에 앉는다. 이제 보니 아까 내 뒤로 지나가던 사람이 그녀였나보다.
넓은 PC방에서 하필 구석진 자리를 찾아들어가길래 뭔가 싶었는데 말이다.
계속 이렇게 있다간 머쓱함만 쌓여갈거 같아 말을 붙이기로 하곤 입을 열었다.
"그러지말구 제 옆자리로 자리 옮기는게 어때요?"
"네, 넷!!?"
"이거 배우고 싶어서 말 붙인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내 모니터를 가리켰다.
"아..."
"그, 그럼 잠시만..."
그렇게 말하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 그녀는 곧 내 옆자리로 옮겨왔다.
"저.. 선배님 죄송해요."
"저 괜찮은데. 게임 알려주는게 뭐 대단하다고, 진짜 괜찮아요."
"아뇨 아뇨, 그것도 그거지만 그... 저 캐릭터 저 때문에 죽으..신거 같아서요..."
얼굴 한가득 미안한 표정을 담고는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녀를 보자니, 망친 게임에 대한건 전혀 생각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경쓰이게 한것만 같아서 이쪽에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으니 뭐.
"아아..~ 신경 안쓰셔도 되요. 어차피 잘 안풀려서 망한 판이었거든요."
"아..그러시면 저 좀 안심해도 되나요..?"
"하하, 그럼요. 저 빚쟁이 같은거 아닌데~"
유들하게 넘어가는 내 모습에 안도를 했는지, 그녀가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씩씩한 모습을 찾는게 보였다.
"음~ 근데 전 솔직히 은채씨를 이런데서 만날거라곤 생각 못했는걸요, 게임 좋아하시나봐요?"
"아하하... 그게 참 말하자면 긴데 호호.."
"음..~ 제가 좀 재미 없나봐요. 몇명 말고는 과 동기들이랑도 어울리기 힘들고..
제가 성격은 우울한 편이 아닌데 접점이 너무 없어서 혹시 그런건 아닐까싶어서 그랬죠."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우리과가 여자들이 많잖아요?
그룹 비집고 들어갈려고해도 애들이 거의 다 명품 이런게 관심사라 저는 좀...
그나마 보니까 이 게임은 인기가 많더라구요. 저게 롤 맞나요? 암튼 강의 시작 전에 보면 남자들은 죄다
저 게임 얘기하고 여자애들도 간간히 하는거 같아서 한번 배워볼까 한거에요. 헤헤~"
확실히 좀 진정이 됐나보다. 처음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은 온대없고 평소 모습이 나오는듯 했다.
"저도 사실 깜짝 놀랐거든요, 이런데서 사실 누가 갑자기 말걸고 그러진 않아서
처음엔 절 부른다는 생각도 못했는걸요. 암튼 이왕 이렇게 된거 저랑 같이 해봐요, 이 게임."
"아.. 저 정말 처음이라... 타자는 중학생때 300타정도 나오긴 했는데... 별 필요 없겠죠...?"
"하하~ 타자라니, 은채씨 은근 재밌네요. 뭐 상대방 도발할땐 나쁘지 않겠는걸요?"
"음, 게임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저도 이게 두번째라 비슷하지 않을까요?"
"엑 정말요!!?"
"용기에 비해 너무 안좋은 선생님을 선택하셨는데 어떡하죠. 후후"
그녀와의 이런 작은 투닥거림이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았다.
혼자서만 떠들던 시간을 지나서 공통의 주제로 얘기를 한다는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대학에 오면서 가장 실망한 부분이고, 먼저 잃어버린게 사람 간의 정이었다.
뭔가 예전보다 훨씬 더 끈끈한걸 느낄 수 있지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는, 신입생 환영회와 함께 산산조각 났으니까.
술을 마실때만 친해진다, 그리곤 끝. 다음날 술이 깨고나면 다시 어색해진다.
차라리 왁자지껄 떠들지 않았었으면 할 정도로 애매한 그 관계는 내겐 부담스러웠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모임에는 꾸준히 참석하더라도 따분함이 가시지 않았던게. 차라리 혼자가 편했고 주변의
행동이 왠지 가식적으로 다가와서 한푼의 경멸마저 들었지만, 나라고 뭐라고 할 수가 없는게 그 장단을 스스로가
얼추 맞추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입안이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쓴물은 대충 삼키며 겉으로는 친한 척
헤헤 거리는게 사람 사귀는 법이요, 앞으로의 사회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할거라고 다들 얘기해왔으니까.
그러다보니 간간히 말 걸어주는 승호말고는 사적인 대화 자체를 피해왔다.
까놓고 걔도 뭐 친한건 아니지..
그런 방어선을 그녀는 쑥 들어왔다. 의외의 상황 덕분이었고, 술자리나 강의시간이었다면 이럴 일 없었겠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신기했고 약간의 두근거림도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런게 머쓱해서 괜찮은 척 게임설명에
몰중했다.
"조작은 이렇게 키보드랑 마우스로 나눠서 하시면 되구요, 우선 접속하셔서 캐릭터를 먼저 하나 고르셔야해요."
"아하.. 와, 이거 캐릭터가 엄청 많네요??"
"네, 많을 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특성도 있어서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해요."
"선배님 이거.. 한번 고르면 못바꾸고 그런건가요?"
"아뇨 아뇨, 그런건 아니라서 얼마든지 교체가능하니까 부담없이 선택해보세요."
은채는 낑낑대며 요리조리 마우스를 움직였고 나는 적어도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차근차근 기다려줬다.
답답하다고 옆에서 자꾸 간섭하면 오히려 더 주눅든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던터라 최대한 눈높이를 맞추기로
한 것이다. 조바심 내지않고 차분하게 대했다. 어차피 내가 생각을 조금만 유연하게 먹으면 조바심 낼 필요도
없었으니까 은채씨한텐 그게 더 편하게 느껴졌나보다. 처음엔 떠듬거리던게 시간이 갈수록 요리조리 물어보기
시작했다.
"선배님 이건 뭐에요?"
"어, 이건 이렇게 하면 되는거에요?"
"아까 조작법이 이렇다고 하신거 맞죠!?"
확실히 그녀의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은 크게 틀리지 않았나보다. 일단 배워보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조금이라도
헷갈리거나 궁금한건 쉬이 넘어가지않고 묻고 또 물어왔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게임을 배우는 입장이었으면
진작에 관두고는 일단 한판 때리고 있었을텐데, 어떤 의미에선 은채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음.. 이건 이렇게 하는거고.."
"네, 조작법은 그게 맞아요."
그렇게 하나둘씩 짚어주다보니, 그녀도 기본적인건 그럭저럭 습득한 듯 싶어 말을 이었다.
"대충 제가 아는건 다 알려드린거 같은데..."
"은채씨 그러지말고 저랑 같이 한판 해보죠."
"아, 괜찮을까요? 괜히 저때문에 선배님이 지기라도 하면.. 움..~"
"괜찮죠 당연히! 게임은 그냥 즐기라고 하는거에요. 지더라도 재밌게만 하면 되니까 걱정말고 해봐요 우리~"
은채씨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은근히 해보고싶은 눈치를 보였다. 살짝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은채 금새 자세를
잡고 게임을 준비하더니, 이제는 날 힐끔거리며 재촉하기까지 한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나 스스로도 이 상황이 낯설고 재밌게 느껴져서, 오히려 참을 수가 없었다.
빠르게 홈페이지 로그인을 하고 게임에 접속해갔다.
우리는 그렇게 몇 판의 게임을 즐겼고, 아쉽게도 초심자의 행운을 겪기엔 실력이 너무 일천한 덕분에
매 판마다 처참하게 박살나기를 거듭해갔다. 처음엔 소극적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누르던 그녀도,
어느 순간부터는 승부욕이 동했는지 모니터에만 눈을 고정시키곤 적극적으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으..으읏..!"
"아우~! 조금만 더 하면!!"
"아..아아아!!?"
"으으으...이게 뭐람, 하아..~"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는데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와 그에 버금가는 미숙자가
머리를 맞대봤자 도찐개찐이라고, 비록 파이팅이 넘친다 하여도 한판 이겨보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두개 있었는데, 하나는 생각보다 내가 이 게임을 엄청 못한다는 거였고
다른건 은채씨의 승부욕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었다. 얼마나 분했으면 마우스로 책상을 팡팡 쳐댔을까.
"어후~~~ 너무 분해요!! 지금 쟤가 우리 못한하고 놀리는거 보셨어요??"
"에고, 잘 안되네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저도 생각보다 이 게임 잘 못하네요 킁..."
솔직히 그렇게 말하는 순간은 부끄럽기까지했다. 다분히 립서비스적인 의도로 시작했지만 못하는건 사실이니까..
"아,아니에요 선배님.. 그렇게 따지면 제가 그.. 전 완전 초보에 성질이나 부리고.."
"으.. 부끄러워... 죄송해요 선배님."
이리저리 바뀌는게 어찌 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잘 인정하고 잘 화내고, 그것도 나름의 장점이 아닐까.
왠지 그녀의 그런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전 문제없어요. 기분 나쁜 것도 없고, 그것보다..."
"잘 못하긴 했지만 게임 자체는 나쁘지 않았죠?"
"이렇게 깨지고 재밌기도 쉽지 않은데, 솔직히 전 너무 재밌었어요."
이건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비록 게임 내용은 좋지않았지만 둘이서 완전 몰입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중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방금전 세판의 게임은 근 몇년동안 최고로 흥분했다고 꼽을만 했다.
그런거 있지않나? 여자애랑 같이 게임하니까 신기하고 의외로 재밌기도 하고... 모르겠다 나만 그런가.
"뭐, 욕은 좀 먹었지만 그정도는 괜찮죠?"
"물론이죠! 저 강철멘탈이라 그정도론 기스도 안가요 선배님."
그냥 하는 얘기는 아닌지, 자기 가슴까지 팡팡 치면서 옹골차게 대답하는 그녀가 거북스럽지 않았다.
"푸하하~! 하하!!"
"콜록 콜록, 켁켁.. 에구구 은채씨 생각보다... 콜록"
갑자기 터져나온 웃음을 참느라 순간적으로 사레가 들렸지만, 곧 진정하고는 하고싶던 말을 마저 이었다.
"하하~ 되게 재밌네요. 괜찮으면 간간히 같이 게임 해봐요."
빤히 바라보는 내가 부담스러웠을까. 그녀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당황함이 곱게 물들었지만,
여전히 빙글빙글 웃는 내 모습을 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잘 못하는데...그래도 괜찮으시다면...감사합니다 선배님..!"
고맙긴, 내가 더 고맙죠.
차마 그 말까진 할 수 없어서 속으로 꾹 삼켰지만, 아마 내 표정에 많이 드러났을게 분명하다. 은채씨 표정이
한결 편해보이더니 금새 헤실헤실 웃음이 번져갔다. 웃음도 전염된다는 말이 맞다면, 지금 나도 웃고 있는게
틀림 없을 것이다. 왠지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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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보다는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전 조회수 500정도를 예상했거든요.
소라에 올리는만큼 수위는 분명히 있지만 비야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상, 개연성을 제외한 섹스씬은 어느정도 조절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은이도 그런 의미에서는 어느정도 역할을 다했다고 보고 있구요. 나중에 다른 어떤 형태로든 등장하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은채와 서윤, 그리고 나중에 나올 또 다른 인물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갈 겁니다.
(술탄칼리프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나요?)
물론 모든 이야기의 구심점이 되는건 주인공이니까 설기도 빠뜨리고 갈 순 없겠죠~
강제적인 몰입력을 위해 1인칭으로 시점을 잡았는데 정말 어렵긴 어렵네요. 알듯 모를듯한 느낌을 살리면서 글은 진행하자니 필력이 점점 쫄깃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머리에 내리는 쥐가 반가우면서도 막막하네요.
눈치 채셨겠지만 워낙 글 쓰는 속도가 느려서 저도 걱정입니다. 그동안은 조금씩 써둔 비축분을 조절하면서 올렸는데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꾸준히 글은 쓰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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띵동!
갑자기 알림음이 울렸다. 알림음은 카톡 메세지가 왔다는 걸 알리기 위한 거였나보다.
안그래도 새로운 메세지가 왔다며 아이콘에 ① 표시가 떠있었다.
하서윤...? 누구지, 내 친구들 중에 이런 이름이 없었던거 같은데...
머리를 굴려봐도 쉽게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한참을 낑낑대다 순간적으로 뭔가 번뜩이며 지나갔다.
아..! 비소 실제 이름이 하서윤이였던거 같은데..
예전에 카페 채팅방에서 분명 추가했던 아이디의 이름이었다. 채팅방 들어오지말고 이제 무슨일 있으면
카톡으로 메세지 보내라고 쫑알대던 것까지도 기억나기 시작했고, 갑자기 무슨일인가 싶어 서둘러 메세지를
확인하기 위해 비밀번호를 쳐 갔다.
얘가 왠일로 먼저 메세지를 보냈지..? 혹시 무슨 일 생긴거 아냐??
갖가지 추측이 머릿속을 난무하고 있었고 익숙하지 않은 조작법에 낑낑대며 겨우겨우 메세지를 확인했다.
[모두의 마블]
하서윤님이 클로버를 보냈어요!
한 판 고고고!!
@ 앱으로 연결
...하..?
부글대는 속을 잠시 미뤄두고는 바로 자판을 누른다.
[야, 너는 평소에 연락도 없더니 이렇게 광고 문자나 보내냐!!]
< 어.. 형 봤어? 헤헤 미안, 게임 할려니 클로버가 부족해서 호호.. >
[난 또 무슨 일 있는 줄 알았잖아. 왠만하면 연락 자주 좀 해, 이런거만 보내지 말고.]
< 에이, 너무 화내지 말구~ 자주 연락할께! 그래도 나같은 꽃소녀의 문자가 꽤 반갑지? >
[..너 스팸 등록한다 ㅡㅡ^ ]
< 워워워...!! 안그럴테니 진정해! >
< 와.. 형 군대 갔다오더니 엄청 까칠해졌다? 예전엔 그래도 좀 사근사근한 맛이 있었는데 쩝.. >
[그냥 내 머리 꼭대기 위에서 놀아라 놀아. 어이구! 호탕하다고 해야할지 원... 암튼 이 오빠는 과제하러 가니까 방해말고 생산적인 활동을 해서 스스로 가꿔보는게 어떻겠니, 응?!?]
< 뭐야~~ 좀 놀아주나 싶었더니만, 치사하게!! 나 심심한데.. 뿌잉뿌잉 >ㅅ
하아... 이녀석도 변한게 하나도 없다. 발랄하고 낯가림 없는 성격은 당시 모임에서도 꽤 많은 귀여움을
독차지하곤 했다. 나이가 어렸다는 이유 하나만은 아니었다 확실히. 물론 그런게 큰 장점이긴 하지만 때로는
상황에 따라 단점으로 다가오기도 했다. 지나치게 마이페이스적인 행동들, 이건 충분히 눈살을 찌푸릴 수
있는 것들이다. 당시엔 오냐오냐 하는 형 누나들 덕분에 별 탈 없이 넘어갔지만, 이건 도가 지나치다 싶을땐
모임 사이에서 그나마 내가 가장 지적을 많이하고 땍땍거린게 아직도 기억에 남아있다.
[비소야, 형 화낸다 그럼.]
< 아.. 넵 형님. >
[그래, 게임 열심히 하고. 나중에 같이 놀자, 알았지?]
< 네,네엥... >
오랜만이라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사람 본성이 안바뀌는 것처럼 포장한거 잘 까보면 속은 그대로였다.
그동안 비소는 2살을 더 먹어 이제 성인이 됐지만 그때와 다름없는 막내의 모습이고, 나 역시도 심지는
그대로일게 뻔하다. 비록 그게 시커멓게 타고 그을림이 잔뜩 묻은 형태라 하더라도, 타고난 역할까지 바뀌진
않을 것이다. 분명하다, 기껏해야 마음에 안들면 잘려나가는 정도가 최선의 처우이지 않을까.
난 성신설, 성악설 이런걸 믿진 않지만 (여기서 그런 거창한걸 언급할 만큼 대단한 일도 아니지만.)
태어나면서부터 사람 하나하나가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한줌을 움켜쥐고 커온다고 믿고있다.
에이, 괜히 또 머리가 복잡해진다. 요샌 갈수록 더 한거 같다. 뭘 하지않고 가만히 있으면 자꾸만 생각이
멋대로 삐죽거린다. 잘드는 칼이 있다면 잔가지라도 쳐보겠는데, 당장 앞가림에도 헉헉대는 판이라
손을 써보지도 못했다. 뭐.. 일견 한편으로는 개소리라고 치부하면서도 완전 틀렸다고 생각하진 않을지도.
남한테 강요하지않는 내 생각이고, 나 마저도 외면하면 누가 주워주겠나싶어서 일 것이다.
에라, 모르겠다.
PC방이나 가서 과제나 해야겠다. 모양이 좀 빠지지만 내가 필요한 용도로 사용하는건데 누가 뭐라하겠어?
머리를 한차례 벅벅긁고는 발걸음을 빠르게 돌렸다.
학교를 빠져나가는동안 금새 과제 생각이 머릿속을 꽉 차지했다. 모든게 능숙하게 잘 되는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가 떠듬떠듬 해나가는 부분이 아직까지 있다는게 신기하기도 하고, 나름 재미란게 붙어가고 있었다.
완전히 도움될 거라는 생각은 아니지만 아주 맹탕은 아니겠지싶어 한편으론 뿌듯하기도 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인근 PC방에 금방 도착했다. 적당히 ID카드 하나 받고는 대충 아무 구석자리에
가방을 풀었다. 그러고보면 뭐가 참 많이 바뀌긴 했다는게 실감난다. 세상에 PC방이 금연구역이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적어도 우리나라 흡연자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사람이 PC방에서 담배를
뻑뻑 피워댈텐데 이건 그냥 대놓고 검열을 하겠다는게 틀림없었다. 위쪽 정치권 하는 짓이 눈가리고 아웅이라,
서민들 위하는 척 하면서도 담배산업이 가져다주는 돈 때문에 이번에도 대충 넘어갈 줄 알았는데 한 건 제대로
하신다. 앞뒤 안가리는 여가부에서 부지깽이로 오질나게 쑤셔대기라도 했나보다. 그러지 않고서는 쉬이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이 지금이었다.
그냥 눈 딱감고 이시간까지만 담배를 참자고 되새겼다. 사실 따지고보면 학교에서도 담배 피는게 여간 눈총
받는게 아니다. 흡연 자체가 이미 사회에서는 폭력으로 자리잡아가고 있으니 나같은 개미가 외쳐봤자 통하기나
하겠나 싶기도하고, 정말 누누이 말했는데 이번엔 금연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담배는 과제를 하고나서 나중에 집에 갈때 피자.
마음을 정하고나니 좀 낫긴하다. 이제는 익숙한 사이트 주소를 쳐가며 빠르게 과제에 몰입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을거 같다. 다음번 모임까지는 이틀정도 남았지만, 사실상 내가 맡은 파트 부분에서는
큰 헛점은 없을거 같았다. 도중에 막혀서 골머리 싸매기도 했지만 역시 더 파고들다보면 대부분 해결되더라.
그래도 몇개 찝찝한 부분은 체크 해뒀으니 그건 조원들과 만나서 잘 맞춰보면 어찌 되지 않을까 싶었다.
흠..
필요한건 다 마친 상황이지만 왠지 바로 자리를 뜨고싶진 않았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막상 나도
이렇게 앉아있으니 게임 생각이 슬쩍 났던 것이다. 딱 한판만..! 이라는 생각으로 바탕화면에 있는 아이콘을
더블클릭했다.
리그오브레전드. 흔히 LOL, 롤이라고 불리는 게임. RPG나 RTS, FPS장르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AOS 게임인 이녀석은 한국시장에 진출함과 동시에 점유율 판도를 뒤짚어 엎어버렸다.
말 그대로 국민게임이 되버린 것이다. 나 역시도 군대에 있는 동안 선임이나 후임들과 외박을 나오면
간간히 해본 경험이 있었고, 생소하지만 확실히 재미가 있었던 기억에 지금 이렇게 접속하고 있었다.
이제와서 RPG를 해보라고 한들, 2년의 공백은 게임 시스템 마저도 바뀔만큼 큰 시간이고 FPS 는 군대에서
허구언날 총질을 했기때문에 멀리 치워버리고 싶었으니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볼 수도 있었겠다.
그런게 뭐가 중요할까, 그냥 재밌는거 하면 되니까 이제 잡생각 하지말자. 빠르게 게임을 즐겨갔다.
많이 해본 편은 아니라 어색하기도하고 욕도 먹었지만 아주 감각이 없진 않아 판을 거듭할수록 점점 나아졌다.
마성의 게임이라고 하더니만 정말인가보다. 쉽게 손을 뗄 수가 없었다.
으으, 조금만 더 해보면..!
"저어.."
"저... 저기요.."
솔직히 말하자면, 첫마디는 못들었다. 그리고 두번째는 그냥 무시했다.
"저기...여보세요.."
세번째가 되서야 내 의자 옆에서 들리는 소리가 날 부른다는 걸 알았다.
"네, 네??"
이등별 시절, 총 사왔냐는 선임의 짖궂은 농담 이후로 그런 새된 소리는 이번이 처음이었을 거다.
"그 게임, 저 좀 알려주시면 안될까요..?"
이게 뭔가 싶었다. 원래 PC방은 각자 와서 각자 즐기고 가는 마이플레이스가 아니던가.
의자에 몸을 그대로 삼켜져서는 한창 게임을 하는 나에게는 너무나도 생소한 상황이었다. 게다가 의자 가까이
바짝 다가와서 말을 거는 사람은 여자였다.
생각이 떠듬떠듬 끊긴다는게 이런걸 말하나 싶을 정도로 부자연스러웠다.
이거 혹시 헌팅?
말이 안된다. 여기가 클럽이면 모를까, PC방에서??
"...아... 네 뭐 안될건 없죠.."
너무 뜸들이는 것도 이상하게 볼까봐 일단 쉬운 것부터 대답해나갔다. 그리곤 슬쩍 고개를 돌려, 당차게
말을 건 사람이 누군지 훑어보기로 했다.
어라?
이렇게 말을 건 자신도 무안한지 고개를 푹 숙이곤 내 모니터만 쳐다보는 그녀, 시선이 확실히 어지럽다.
근데, 내가 아는 사람이었다.
"은채..씨?"
그녀는 다름 아닌 나은채였다. 나와 같이 조별과제를 하는, 공부도 곧잘하고 싹싹하며 덤으로 얼굴도 귀여운
그런 사람이 다짜고짜 게임을 가르쳐달라고 하다니.. 혹시 난줄 알고 말을 붙인걸까? 그런 생각이
번뜩 지나갔지만, 허둥대는 분위기를 봐서는 그런거 같진 않다. 애당초 지하에 있는 PC방이라 어둡기도하고
모니터에서 나오는 불빛이 없다면, 가까이서 보지않는 한 사람을 식별하기도 어렵다구 여긴.
"아..?...아아앗!!! 앗!! 앗!!"
그녀도 그제야 내가 눈에 들어왔나보다. 아까 생각했던건 취소해야겠다. 오히려 자기가 아는 사람이란걸
알고는 훨씬 심하게 허둥대고 있는 그녀를 보고있자니 그럴 수 밖에 없을거 같았다.
"은채씨, 난줄 알았어요?"
"아뇨 아뇨! 아아아...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아니 뭘 그렇게 당황해요? 게임하면 누가 잡아가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으으..아으... 죄송해요 선배님..아우우..이게 왠일이람..."
오히려 더욱 저자세로 나오는 그녀가 안쓰러울 지경이다.
"은채씨 저 정말 괜찮아요. 너무 그러시면 제가 오히려 미안해져요. 저 정말 괜찮으니까 진정하세요."
"아앗 네에..."
그러곤 얌전히 자리에 앉는다. 이제 보니 아까 내 뒤로 지나가던 사람이 그녀였나보다.
넓은 PC방에서 하필 구석진 자리를 찾아들어가길래 뭔가 싶었는데 말이다.
계속 이렇게 있다간 머쓱함만 쌓여갈거 같아 말을 붙이기로 하곤 입을 열었다.
"그러지말구 제 옆자리로 자리 옮기는게 어때요?"
"네, 넷!!?"
"이거 배우고 싶어서 말 붙인거 아니에요?"
그렇게 말하며 손가락으로 내 모니터를 가리켰다.
"아..."
"그, 그럼 잠시만..."
그렇게 말하곤 주섬주섬 가방을 챙긴 그녀는 곧 내 옆자리로 옮겨왔다.
"저.. 선배님 죄송해요."
"저 괜찮은데. 게임 알려주는게 뭐 대단하다고, 진짜 괜찮아요."
"아뇨 아뇨, 그것도 그거지만 그... 저 캐릭터 저 때문에 죽으..신거 같아서요..."
얼굴 한가득 미안한 표정을 담고는 조심스럽게 말하는 그녀를 보자니, 망친 게임에 대한건 전혀 생각나지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신경쓰이게 한것만 같아서 이쪽에서 미안한 마음까지 들 정도였으니 뭐.
"아아..~ 신경 안쓰셔도 되요. 어차피 잘 안풀려서 망한 판이었거든요."
"아..그러시면 저 좀 안심해도 되나요..?"
"하하, 그럼요. 저 빚쟁이 같은거 아닌데~"
유들하게 넘어가는 내 모습에 안도를 했는지, 그녀가 가볍게 호흡을 가다듬고는
다시 씩씩한 모습을 찾는게 보였다.
"음~ 근데 전 솔직히 은채씨를 이런데서 만날거라곤 생각 못했는걸요, 게임 좋아하시나봐요?"
"아하하... 그게 참 말하자면 긴데 호호.."
"음..~ 제가 좀 재미 없나봐요. 몇명 말고는 과 동기들이랑도 어울리기 힘들고..
제가 성격은 우울한 편이 아닌데 접점이 너무 없어서 혹시 그런건 아닐까싶어서 그랬죠."
"선배님도 아시다시피 우리과가 여자들이 많잖아요?
그룹 비집고 들어갈려고해도 애들이 거의 다 명품 이런게 관심사라 저는 좀...
그나마 보니까 이 게임은 인기가 많더라구요. 저게 롤 맞나요? 암튼 강의 시작 전에 보면 남자들은 죄다
저 게임 얘기하고 여자애들도 간간히 하는거 같아서 한번 배워볼까 한거에요. 헤헤~"
확실히 좀 진정이 됐나보다. 처음에 화들짝 놀라는 모습은 온대없고 평소 모습이 나오는듯 했다.
"저도 사실 깜짝 놀랐거든요, 이런데서 사실 누가 갑자기 말걸고 그러진 않아서
처음엔 절 부른다는 생각도 못했는걸요. 암튼 이왕 이렇게 된거 저랑 같이 해봐요, 이 게임."
"아.. 저 정말 처음이라... 타자는 중학생때 300타정도 나오긴 했는데... 별 필요 없겠죠...?"
"하하~ 타자라니, 은채씨 은근 재밌네요. 뭐 상대방 도발할땐 나쁘지 않겠는걸요?"
"음, 게임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사실.. 저도 이게 두번째라 비슷하지 않을까요?"
"엑 정말요!!?"
"용기에 비해 너무 안좋은 선생님을 선택하셨는데 어떡하죠. 후후"
그녀와의 이런 작은 투닥거림이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좋았다.
혼자서만 떠들던 시간을 지나서 공통의 주제로 얘기를 한다는게 반갑지 않을 수 있을까.
대학에 오면서 가장 실망한 부분이고, 먼저 잃어버린게 사람 간의 정이었다.
뭔가 예전보다 훨씬 더 끈끈한걸 느낄 수 있지않겠냐는 막연한 기대는, 신입생 환영회와 함께 산산조각 났으니까.
술을 마실때만 친해진다, 그리곤 끝. 다음날 술이 깨고나면 다시 어색해진다.
차라리 왁자지껄 떠들지 않았었으면 할 정도로 애매한 그 관계는 내겐 부담스러웠다.
그때부터일 것이다. 모임에는 꾸준히 참석하더라도 따분함이 가시지 않았던게. 차라리 혼자가 편했고 주변의
행동이 왠지 가식적으로 다가와서 한푼의 경멸마저 들었지만, 나라고 뭐라고 할 수가 없는게 그 장단을 스스로가
얼추 맞추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입안이 껄끄러웠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쓴물은 대충 삼키며 겉으로는 친한 척
헤헤 거리는게 사람 사귀는 법이요, 앞으로의 사회생활의 큰 부분을 차지할거라고 다들 얘기해왔으니까.
그러다보니 간간히 말 걸어주는 승호말고는 사적인 대화 자체를 피해왔다.
까놓고 걔도 뭐 친한건 아니지..
그런 방어선을 그녀는 쑥 들어왔다. 의외의 상황 덕분이었고, 술자리나 강의시간이었다면 이럴 일 없었겠지만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신기했고 약간의 두근거림도 있었다. 왠지 모르게 그런게 머쓱해서 괜찮은 척 게임설명에
몰중했다.
"조작은 이렇게 키보드랑 마우스로 나눠서 하시면 되구요, 우선 접속하셔서 캐릭터를 먼저 하나 고르셔야해요."
"아하.. 와, 이거 캐릭터가 엄청 많네요??"
"네, 많을 뿐만이 아니라 각각의 특성도 있어서 그게 장점이자 단점이기도 해요."
"선배님 이거.. 한번 고르면 못바꾸고 그런건가요?"
"아뇨 아뇨, 그런건 아니라서 얼마든지 교체가능하니까 부담없이 선택해보세요."
은채는 낑낑대며 요리조리 마우스를 움직였고 나는 적어도 그녀가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차근차근 기다려줬다.
답답하다고 옆에서 자꾸 간섭하면 오히려 더 주눅든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던터라 최대한 눈높이를 맞추기로
한 것이다. 조바심 내지않고 차분하게 대했다. 어차피 내가 생각을 조금만 유연하게 먹으면 조바심 낼 필요도
없었으니까 은채씨한텐 그게 더 편하게 느껴졌나보다. 처음엔 떠듬거리던게 시간이 갈수록 요리조리 물어보기
시작했다.
"선배님 이건 뭐에요?"
"어, 이건 이렇게 하면 되는거에요?"
"아까 조작법이 이렇다고 하신거 맞죠!?"
확실히 그녀의 성적이 우수하다는 것은 크게 틀리지 않았나보다. 일단 배워보겠다고 마음을 먹으니 조금이라도
헷갈리거나 궁금한건 쉬이 넘어가지않고 묻고 또 물어왔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게임을 배우는 입장이었으면
진작에 관두고는 일단 한판 때리고 있었을텐데, 어떤 의미에선 은채씨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음.. 이건 이렇게 하는거고.."
"네, 조작법은 그게 맞아요."
그렇게 하나둘씩 짚어주다보니, 그녀도 기본적인건 그럭저럭 습득한 듯 싶어 말을 이었다.
"대충 제가 아는건 다 알려드린거 같은데..."
"은채씨 그러지말고 저랑 같이 한판 해보죠."
"아, 괜찮을까요? 괜히 저때문에 선배님이 지기라도 하면.. 움..~"
"괜찮죠 당연히! 게임은 그냥 즐기라고 하는거에요. 지더라도 재밌게만 하면 되니까 걱정말고 해봐요 우리~"
은채씨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은근히 해보고싶은 눈치를 보였다. 살짝 들뜬 기분을 숨기지 않은채 금새 자세를
잡고 게임을 준비하더니, 이제는 날 힐끔거리며 재촉하기까지 한다.
비실비실 웃음이 새어나왔지만 나 스스로도 이 상황이 낯설고 재밌게 느껴져서, 오히려 참을 수가 없었다.
빠르게 홈페이지 로그인을 하고 게임에 접속해갔다.
우리는 그렇게 몇 판의 게임을 즐겼고, 아쉽게도 초심자의 행운을 겪기엔 실력이 너무 일천한 덕분에
매 판마다 처참하게 박살나기를 거듭해갔다. 처음엔 소극적으로 키보드와 마우스를 누르던 그녀도,
어느 순간부터는 승부욕이 동했는지 모니터에만 눈을 고정시키곤 적극적으로 손을 놀리기 시작했다.
"으..으읏..!"
"아우~! 조금만 더 하면!!"
"아..아아아!!?"
"으으으...이게 뭐람, 하아..~"
첫술에 배부를 수 없다고 하는데 지금이 딱 그 상황이다. 이제 막 시작한 초보자와 그에 버금가는 미숙자가
머리를 맞대봤자 도찐개찐이라고, 비록 파이팅이 넘친다 하여도 한판 이겨보기가 어려웠다.
덕분에 새로 알게 된 사실이 두개 있었는데, 하나는 생각보다 내가 이 게임을 엄청 못한다는 거였고
다른건 은채씨의 승부욕이 상상 이상이라는 점이었다. 얼마나 분했으면 마우스로 책상을 팡팡 쳐댔을까.
"어후~~~ 너무 분해요!! 지금 쟤가 우리 못한하고 놀리는거 보셨어요??"
"에고, 잘 안되네요 이거. 미안해서 어쩌죠? 저도 생각보다 이 게임 잘 못하네요 킁..."
솔직히 그렇게 말하는 순간은 부끄럽기까지했다. 다분히 립서비스적인 의도로 시작했지만 못하는건 사실이니까..
"아,아니에요 선배님.. 그렇게 따지면 제가 그.. 전 완전 초보에 성질이나 부리고.."
"으.. 부끄러워... 죄송해요 선배님."
이리저리 바뀌는게 어찌 산만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잘 인정하고 잘 화내고, 그것도 나름의 장점이 아닐까.
왠지 그녀의 그런 모습이 나쁘게 보이지 않았다.
"전 문제없어요. 기분 나쁜 것도 없고, 그것보다..."
"잘 못하긴 했지만 게임 자체는 나쁘지 않았죠?"
"이렇게 깨지고 재밌기도 쉽지 않은데, 솔직히 전 너무 재밌었어요."
이건 립서비스가 아니었다. 비록 게임 내용은 좋지않았지만 둘이서 완전 몰입해서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열중했으니까, 솔직히 말하자면 방금전 세판의 게임은 근 몇년동안 최고로 흥분했다고 꼽을만 했다.
그런거 있지않나? 여자애랑 같이 게임하니까 신기하고 의외로 재밌기도 하고... 모르겠다 나만 그런가.
"뭐, 욕은 좀 먹었지만 그정도는 괜찮죠?"
"물론이죠! 저 강철멘탈이라 그정도론 기스도 안가요 선배님."
그냥 하는 얘기는 아닌지, 자기 가슴까지 팡팡 치면서 옹골차게 대답하는 그녀가 거북스럽지 않았다.
"푸하하~! 하하!!"
"콜록 콜록, 켁켁.. 에구구 은채씨 생각보다... 콜록"
갑자기 터져나온 웃음을 참느라 순간적으로 사레가 들렸지만, 곧 진정하고는 하고싶던 말을 마저 이었다.
"하하~ 되게 재밌네요. 괜찮으면 간간히 같이 게임 해봐요."
빤히 바라보는 내가 부담스러웠을까. 그녀의 얼굴에 부끄러움과 당황함이 곱게 물들었지만,
여전히 빙글빙글 웃는 내 모습을 보더니 이윽고 입을 열기 시작했다.
"...저 잘 못하는데...그래도 괜찮으시다면...감사합니다 선배님..!"
고맙긴, 내가 더 고맙죠.
차마 그 말까진 할 수 없어서 속으로 꾹 삼켰지만, 아마 내 표정에 많이 드러났을게 분명하다. 은채씨 표정이
한결 편해보이더니 금새 헤실헤실 웃음이 번져갔다. 웃음도 전염된다는 말이 맞다면, 지금 나도 웃고 있는게
틀림 없을 것이다. 왠지 그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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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생각보다는 봐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놀랐어요. 감사합니다, 전 조회수 500정도를 예상했거든요.
소라에 올리는만큼 수위는 분명히 있지만 비야설이라는 장르를 선택한 이상, 개연성을 제외한 섹스씬은 어느정도 조절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소은이도 그런 의미에서는 어느정도 역할을 다했다고 보고 있구요. 나중에 다른 어떤 형태로든 등장하게 되겠지만 당분간은 은채와 서윤, 그리고 나중에 나올 또 다른 인물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갈 겁니다.
(술탄칼리프님, 질문에 대한 답이 되었나요?)
물론 모든 이야기의 구심점이 되는건 주인공이니까 설기도 빠뜨리고 갈 순 없겠죠~
강제적인 몰입력을 위해 1인칭으로 시점을 잡았는데 정말 어렵긴 어렵네요. 알듯 모를듯한 느낌을 살리면서 글은 진행하자니 필력이 점점 쫄깃해지는 것을 느낍니다.
머리에 내리는 쥐가 반가우면서도 막막하네요.
눈치 채셨겠지만 워낙 글 쓰는 속도가 느려서 저도 걱정입니다. 그동안은 조금씩 써둔 비축분을 조절하면서 올렸는데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네요. 그래도 꾸준히 글은 쓰고 있으니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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