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느낌 -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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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야설입니다. 진한 내용 없습니다.
여기에 이런 글 쓰면 욕 먹을라나요? ^^
끝도 내지 않은 글이지만...그냥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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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우당탕탕 난리를 치면서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뒷문으로 서로 빠져 나가려고 뛰어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세영은 웃음을 지었다.
청소당번이라서 하교하지 못하고 남은 학생들도 빨리 청소를 끝마치려는 듯 책상과 의자를 소란스럽게 밀고 당기고 했다.
세영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교무실로 향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보통때는 이렇게 종례를 마치고 나면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나른하고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오전수업으로 끝이나는 토요일에는 오히려 일요일보다 더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이미 챙겨 두었던 가방을 들고 학교를 나선다.
‘부르릉.’
세영이 키를 넣고 돌리자 엔진의 낮은 배기음이 세영의 퇴근을 축하하는 듯 했다.
세영의 차가 교문을 벗어나 언덕을 넘어서 내려가자 큰 길 또한 세영을 반기는 듯 했다.
직선으로 뻗은 큰 길은 운전대를 놓고 달려도 한참이나 가야 할 듯 곧고 길었다.
길 옆으로 시원하게 세영을 따라오는 강물들도 한층 마음을 더욱 상쾌하게 했다.
“어서 오세요. 혹시 예약하셨나요?”
“네...김준철이라고....”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수건을 팔에 두른 웨이터가 정중하게 세영을 안내했다.
세영이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서자 한 남자가 얼굴을 웃음을 함빡 머금은 채 세영을 반겼다.
“세영아,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네. 반가와.”
세영이 자리를 잡고 앉자 남자는 웨이터에게 주문을 했다.
“그런데, 웬 레스토랑? 점심부터 좀 거창한데?”
“오랫만에 만나는데 신경 좀 썼지.”
실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십여년만에 만나는 동창이었다.
중학교 때 세영은 반장이었지만 세영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부반장 준철 때문에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세영이 할 귀찮은 많은 일들을 자청해서 대신 다 해 주었기 때문이다.
준철은 세영을 보면서 잠시 예전 추억에 잠겼다.
처음에 세영과 같은 반이 되어 반장선거에서 떨어져 부반장이 된 후 세영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청초하고 공부도 잘하는 세영에게 끌리는 자신을 깨달았고 자신도 모르게 세영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으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 준철이 이사를 간 후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스테이크를 자르던 손을 멈춘 준철이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내가 너 무척 많이 좋아했던 거....”
“그랬나? 호호. 바보..말을 하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세영이 은근히 얄미운 준철이었다.
“지금 말하잖아.”
“오호라..지금 너 프로포즈 하는 거야?”
준철은 세영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깨질까봐 애써 생각한 끝에 내 뱉은 말이었는데 세영은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화났어? 미안..”
생긋 미소를 짓는 세영에게 준철은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휴..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쨌거나 너 혹시 애인 있어?”
“없어.”
입에 든 고기를 오물거리면서 세영이 말했다.
“음....”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준철의 주위에서만 맴도는 듯 했다.
세영쪽은 밝고 명랑했다.
준철은 십여년동안 기다려 온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榮?
세영을 만나러 나오기 전에 충분히 고민했고 여러가지 시나리오도 생각해 두었는데 막상 이렇게 앞에 두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준철이었다.
“너 내 여자친구가 되어 주지 않을래?”
“여자친구 맞잖아!”
준철은 또 말이 막혔다.
자신이 이야기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을 저렇게 받는 세영이가 얄미웠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거 말고 특별한...”
“애인이 되어달라는 거니?”
“응? 으응....”
자신없는 준철이었다.
“생각해 볼께.”
너무 쉽게 대답하는 세영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 오늘 뭐할거니?”
“나? 나야....뭐 할 일 없지.”
세영을 위해 통째로 하루를 비워놓았던 준철이었다.
“그럼 나랑 놀아 줄래?”
“으..응...”
이상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갔다.
오히려 세영에게 하려던 이야기가 세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식사를 마친 세영은 준철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갔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나플거리면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준철의 손에 들린 쇼핑백의 갯수가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세영을 따라다니는 것이 힘든 준철이었지만 매장에서 가서 옷을 입어볼때마다 쳐다보는 세영의 모습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구두를 살때 만져본 세영의 발은 보드라웠다.
그로 인해 간신히 세영의 뒤를 따라다니는 준철이었다.
“오늘 고마왔어, 잘가고 담에 보자.”
하루종일 준철을 부려 먹은 세영의 문이 살그머니 닫혔다.
준철은 문이 닫친 후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휴...’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손잡이를 놓고 천천히 엘레베이터를 향하는 준철이었다.
세영은 쇼핑백을 정리하면서 준철을 생각했다.
“짜식, 진작 연락하지...”
세영도 준철에게 느끼는 감정은 호감이었다.
비록 중학교 때 이후로 잊혀진 감정이었지만 다시 보니 새록새록 감정이 살아났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렸을 적 친구 이상의 감정은 아닌듯 했다.
괜히 놀려먹고, 말싸움 하면서 친숙하게 지내는 그런 친구의 느낌이었다.
이성이란 그 이상이어야 했다.
두근거리는 떨림과 짜릿함.....이 온 몸을 지배하는....그런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이 세영의 생각이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8시 반에 조회가 있으니 시청각실로 다 모여주세요.”
약간 여성스러운 교감의 음성이 교무실 안에 퍼졌다.
세영은 월요일 아침이면 찌뿌등한 몸을 기지개로 달래면서 시청각실로 걸어갔다.
“안선생님, 좋은 주말 보내셨어요?”
항상 몸에 붙는 티로 강조하는 우람한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체육 강선생이 세영에게 말을 건냈다.
“아..네.”
건성이지만 밝은 미소로 대답하는 세영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강선생을 앞질러 시청각실로 들어갔다.
일장연설 이어지는 교장의 잔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던 세영은 교무회의가 끝나자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안선생은 나 좀 잠깐 봐요.”
교감이 말했다.
“이번에 새로 안선생반에 전학 온 학생입니다. 부모님이 다 미국으로 가셔서 친척집에 있다고 하네요.”
“안녕하세요?”
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얀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한 여인과 고개를 숙인 채 책상위의 마주 잡은 손을 바라보고 있는 한 학생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 교감이 자리를 떴다.
여인이 밝은 미소로 세영에게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너도 인사해야지. 담임 선생님인데..”
“안녕하세요. 유민영라고 합니다.”
“그래, 우리 잘 지내보자.”
세영의 내민 손을 말 없이 잡는 민영은 듬직해 보였다.
“아무래도 제가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걱정이 많아요. 민영이 혼자 두고 가려니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네요.”
미국의 지사로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모든 가족들이 이민을 가야 했으나 민영은 끝까지 따라가기를 거부했다.
설득에 실패한 민영의 어머니는 그나마 친척들이 모여 있는 이곳으로 민영의 거처를 정해주었다.
“그렇네요.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조금 어른스럽긴 하지만 아직 어린데....”
걱정을 하는 어머니를 살짝 노려보는 민영으로 인해 말을 삼키는 민영 어머니의 아름다운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걱정마세요. 저 잘 할께요.”
세영은 귓가에 들리는 민영의 듬직한 목소리에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휴...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네,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안선생, 이거 장난 아닌데?”
전학을 맡고 있는 최선생이 세영에게 서류를 건네주면서 말을 했다.
“뭐가요?”
“그 반에 새로 전학온 학생 있지?”
“네, 대단한 녀석을 받았네.”
“대단한 녀석요? 뭐가요?”
“이거 생활기록부 좀 봐. 화려해.”
세영은 최선생으로부터 민영의 생활기록부를 받아들었다.
민영의 생활기록부는 말 그대로 화려했다.
화려한 수상경력, 우수한 머리, 그리고 좋은 성적에...
하나 더 한 다면 결석일수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았다.
전국과학경진대회 1등, 회장기배 쟁탈 전국 태권도 대회 미들급 1위 등등 여러방면으로 뛰어난 모양이었다.
특히 시상난을 제일 많이 장식하고 있는 것은 사진관련 상들이었다.
다른 상들이야 그 나이또래의 학생들과 겨루어 받은 상이었지만 사진부분 상들은 학생대상의 대회가 아니었다.
동아일보 주체 사진콘테스트 대상, 전국 사진협회에서 받은 특별상, 아름다운 금강만들기 사진전 일위...등등의 각종 사진대회에서 많은 상들을 받았다.
또한 머리도 뛰어난 듯 중학교와 고등학교 일학년 성적은 거의 상위권이었다.
고등학교 일학년 일학기 때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 때 결석일수도 상당한 것으로 봐서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듯 했다.
“범상치 않은 놈이네.”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세영의 어깨 너머로 생활기록부를 보고 있던 강선생이 한마디 했다.
“어머...깜짝이야.”
세영은 울퉁불퉁 몸의 강선생을 흡사 괴물이라도 보듯 째려보면서 교실로 올라갔다.
“선생님.”
점심을 먹고 난 후 온 식곤증과 싸우기 위해 눈을 부릅 뜨면서 앞에 놓인 컴퓨터의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던 세영은 민영이 말을 걸자 벌떡 일어났다.
“으응...민영이구나. 왜?”
졸던 사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깨자마자 딴 짓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 세영의 모습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목소리로 민영이 말을 했다.
“내일 사진 전시회가 있어요, 그래서..”
“으응? 사진 전시회? 그거 끝나고 가서 봐도 되잖아..”
민영이 말 대신 무엇인가를 세영에게 내밀었다.
사진 전시회 팜플렛이었다.
“나랑 같이 가자고? 난 사진 별로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세영을 보면서 민영이 팜플렛을 빼앗아 한 장을 넘겨 다시 내밀었다.
“음..이게 모야...오늘의 초대 작가 유민영과 함께라....유민영..너랑 이름이 같네?”
세영은 팜플렛 속의 사진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남자와 민영을 번갈아 보았다.
“이...이게 너야?”
민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에이, 거짓말, 이건 뭐 거의 대학교 졸업반은 되어 보이는데? 너 원래 이렇게 늙었니?”
“선! 생! 님!”
민영의 약점이었다.
사실 교복을 입고 있는 민영은 어딘가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세영의 말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사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최소한 고등학생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알았다..알았어. 그렇다고 얘는 소리를 지르니. 그러니까 네가 작가로 초대받아서 내일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세영의 멍한 모습에 불만이 가득한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떡이는 민영이었다.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하루종일 수업에 힘들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조회때보다 종례때가 더욱 활기에 차 있다.
물론 세영 역시 종례를 할때가 제일 행복하다.
교무실로 돌아온 세영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그러다가 문득 책상 가장자리에 놓인 팜플렛을 보았다.
첫장을 넘겼다.
‘푸웃.’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왠지 근엄해 보이는 얼굴로 옆쪽을 바라보는 듯한 민영의 모습이 교복을 입고 있는 민영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출세를 해도 가족한테는 인정받기 힘들다는 말이 떠올랐다.
옆쪽으로 돌린 탓에 왠지 강인해 보이는 민영의 턱선이 세영의 눈에 들어왔다.
‘짜식, 꽤 남자다운 인상인데?’
세영은 팜플렛을 가방에 쑤셔 넣듯이 집어 넣고 아직 일이 있는 듯 책상위의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교감의 눈치를 보면서 학교를 빠져 나왔다.
어느덧 해가 도시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붉고 붉은 노을이 회색 도시의 하늘을 뒤덮었다.
강변을 따라 운전하는 세영의 마음에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강물이 스며들어왔다.
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집으로 향하는 세영의 마음은 무거웠다.
분명 집안 어른들의 성화는 이번에도 계속 될 것이다.
32의 노처녀로 늙어가는 세영을 집안의 어른들은 항상 탐탁치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
교사라는 직업과 어느정도 괜찮은 세영의 외모에 많은 신랑감들을 소개했던 어른들은 세영이 계속 툇짜를 놓자 이젠 그마져도 뜸해졌지만 이렇게 친척들이 모일때면 항상 세영은 어른들의 타겟이었다.
세영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침대에 널부러졌다.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른 세영의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집안 어른들의 못마땅한 눈초리는 세영의 몸과 마음을 난자해 버렸고 애써 그 사이에서 억지 웃음을 지으려는 세영의 노력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조만간 똘똘뭉친 집안 어른들의 힘이 세영을 못살게 굴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뻐근했던 몸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몸이 풀어지니 마음도 함께 풀어진 세영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어푸, 어푸..“
욕조 안에서 깜빡 잠이 든 세영의 몸이 천천히 욕조안으로 미끄러져 얼굴이 잠겼고 그에 코와 입으로 흘러들어온 물에 의해 세영은 화들짝 잠이 깨서 허우적 거렸다.
잠시 후 깨달은 세영이 천천히 욕조 안에서 걸어나왔다.
나른한 몸이 침대에 누이기만 해도 금방 잠에 떨어져 버릴것 같았다.
문득 욕조의 거울 옆을 지나가던 세영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거울을 쳐다보았다.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힌 세영의 몸은 적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그리고 고운 선으로 이어지는 엉덩이와 곧고 긴 다리로 키가 조금만 더 컷다면 몸매로는 모델을 해도 될만큼 잘 빠진 편이었다.
하지만 세영의 눈에는 왠지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얼굴보다는 살결이 좋고, 몸매가 잘 빠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살아온 세영은 왠지 가슴도 조금 처진 것 같았고 백만불짜리 엉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곳도 탱탱함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아랫배를 잡아보니 아직 그 두껍기가 아직은 양호했다.
하지만 탄력이 죽은 것 같은 느낌에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세영이 물기만 제거한 채 방으로 들어가 얇은 원피스형 잠옷을 걸치고는 침대에 누웠다.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던 세영의 손이 은근히 가슴쪽으로 갔다.
크진 않았지만 한손으로는 다 쥐긴 힘든 가슴을 은근히 더듬었다.
아무래도 마땅치 않았다.
아랫배로 내려간 손이 다시 배를 천천히 눌렀다.
맘에 안 든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눈커플이 쏟아질 듯 했는데 말똥말똥 잠이 안 온다.
한동안 그렇게 살들과 씨름하던 세영이 이블보를 박찼다.
그리고 반바지를 입고 긴 티 하나를 입고는 슬리퍼를 신었다.
현관을 나서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2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세영이 반층 더 위로 올라가 옥상으로 이어진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세영의 몸을 감쌌다.
시간이 늦은 탓인지 간혹가다 불을 켜 놓은 건물들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늘의 날씬한 달이 세영의 눈길을 끌었지만 괜히 날씬한 달에 질투가 난 세영이 달을 째려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달밤의 체조다.
세영은 연신 손을 뻗고 다리를 움직여 어렸을 적 수없이 시험으로 인해 연습했던 국민체조를 시도했다.
체조의 중간에 이르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역시 짜증이 났다.
몸 뿐이 아니라 기억력도 쇠퇴한다는 느낌이 들자 세영은 더욱 짜증이 밀려왔다.
옥상문을 쾅 닫은 세영이 발을 탁탁 구르면서 6층 아래의 집으로 돌아왔다.
여기에 이런 글 쓰면 욕 먹을라나요? ^^
끝도 내지 않은 글이지만...그냥 올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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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우당탕탕 난리를 치면서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뒷문으로 서로 빠져 나가려고 뛰어가는 학생들을 보면서 세영은 웃음을 지었다.
청소당번이라서 하교하지 못하고 남은 학생들도 빨리 청소를 끝마치려는 듯 책상과 의자를 소란스럽게 밀고 당기고 했다.
세영은 천천히 계단을 내려와 교무실로 향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네, 수고하셨습니다.”
보통때는 이렇게 종례를 마치고 나면 몸이 물에 젖은 솜처럼 나른하고 기운이 없었다.
하지만 오전수업으로 끝이나는 토요일에는 오히려 일요일보다 더 몸과 마음이 가뿐하다.
이미 챙겨 두었던 가방을 들고 학교를 나선다.
‘부르릉.’
세영이 키를 넣고 돌리자 엔진의 낮은 배기음이 세영의 퇴근을 축하하는 듯 했다.
세영의 차가 교문을 벗어나 언덕을 넘어서 내려가자 큰 길 또한 세영을 반기는 듯 했다.
직선으로 뻗은 큰 길은 운전대를 놓고 달려도 한참이나 가야 할 듯 곧고 길었다.
길 옆으로 시원하게 세영을 따라오는 강물들도 한층 마음을 더욱 상쾌하게 했다.
“어서 오세요. 혹시 예약하셨나요?”
“네...김준철이라고....”
“네, 이쪽으로 오십시오.”
수건을 팔에 두른 웨이터가 정중하게 세영을 안내했다.
세영이 웨이터의 안내를 받아 방으로 들어서자 한 남자가 얼굴을 웃음을 함빡 머금은 채 세영을 반겼다.
“세영아, 오랜만이야.”
“그래, 오랜만이네. 반가와.”
세영이 자리를 잡고 앉자 남자는 웨이터에게 주문을 했다.
“그런데, 웬 레스토랑? 점심부터 좀 거창한데?”
“오랫만에 만나는데 신경 좀 썼지.”
실로 중학교를 졸업하고 십여년만에 만나는 동창이었다.
중학교 때 세영은 반장이었지만 세영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부반장 준철 때문에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었다.
세영이 할 귀찮은 많은 일들을 자청해서 대신 다 해 주었기 때문이다.
준철은 세영을 보면서 잠시 예전 추억에 잠겼다.
처음에 세영과 같은 반이 되어 반장선거에서 떨어져 부반장이 된 후 세영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못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가면 갈수록 청초하고 공부도 잘하는 세영에게 끌리는 자신을 깨달았고 자신도 모르게 세영의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섰다.
하지만 중학교를 졸업한 후 부산으로 발령난 아버지를 따라 준철이 이사를 간 후 연락이 끊어진 상태였다.
스테이크를 자르던 손을 멈춘 준철이 말했다.
“너, 그거 알아? 내가 너 무척 많이 좋아했던 거....”
“그랬나? 호호. 바보..말을 하지.”
손으로 입을 가리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말하는 세영이 은근히 얄미운 준철이었다.
“지금 말하잖아.”
“오호라..지금 너 프로포즈 하는 거야?”
준철은 세영의 말에 잠시 할 말을 잃었다.
자신은 나름대로 진지하게 이야기하면 분위기가 깨질까봐 애써 생각한 끝에 내 뱉은 말이었는데 세영은 너무 쉽게 받아들인다.
“화났어? 미안..”
생긋 미소를 짓는 세영에게 준철은 더 이상 화를 낼 수 없었다.
“휴..내가 말을 말아야지. 어쨌거나 너 혹시 애인 있어?”
“없어.”
입에 든 고기를 오물거리면서 세영이 말했다.
“음....”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 침묵은 준철의 주위에서만 맴도는 듯 했다.
세영쪽은 밝고 명랑했다.
준철은 십여년동안 기다려 온 이야기를 어떻게 전개해 나가야 할지 고민이 榮?
세영을 만나러 나오기 전에 충분히 고민했고 여러가지 시나리오도 생각해 두었는데 막상 이렇게 앞에 두니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준철이었다.
“너 내 여자친구가 되어 주지 않을래?”
“여자친구 맞잖아!”
준철은 또 말이 막혔다.
자신이 이야기하는 바를 알지 못하는 것도 아닐텐데 말을 저렇게 받는 세영이가 얄미웠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자신이었다.
“그런거 말고 특별한...”
“애인이 되어달라는 거니?”
“응? 으응....”
자신없는 준철이었다.
“생각해 볼께.”
너무 쉽게 대답하는 세영이었다.
“그건 그렇고 너 오늘 뭐할거니?”
“나? 나야....뭐 할 일 없지.”
세영을 위해 통째로 하루를 비워놓았던 준철이었다.
“그럼 나랑 놀아 줄래?”
“으..응...”
이상하게 이야기가 전개되어 갔다.
오히려 세영에게 하려던 이야기가 세영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식사를 마친 세영은 준철을 데리고 백화점으로 갔다.
그리고 이곳저곳을 나플거리면서 쇼핑을 하기 시작했다.
준철의 손에 들린 쇼핑백의 갯수가 하나 둘씩 늘어나기 시작했다.
세영을 따라다니는 것이 힘든 준철이었지만 매장에서 가서 옷을 입어볼때마다 쳐다보는 세영의 모습이 가슴을 울렁거리게 했다.
구두를 살때 만져본 세영의 발은 보드라웠다.
그로 인해 간신히 세영의 뒤를 따라다니는 준철이었다.
“오늘 고마왔어, 잘가고 담에 보자.”
하루종일 준철을 부려 먹은 세영의 문이 살그머니 닫혔다.
준철은 문이 닫친 후 손잡이를 잡았다. 그러나 ‘휴...’하는 한숨소리와 함께 손잡이를 놓고 천천히 엘레베이터를 향하는 준철이었다.
세영은 쇼핑백을 정리하면서 준철을 생각했다.
“짜식, 진작 연락하지...”
세영도 준철에게 느끼는 감정은 호감이었다.
비록 중학교 때 이후로 잊혀진 감정이었지만 다시 보니 새록새록 감정이 살아났다.
하지만 그 감정은 어렸을 적 친구 이상의 감정은 아닌듯 했다.
괜히 놀려먹고, 말싸움 하면서 친숙하게 지내는 그런 친구의 느낌이었다.
이성이란 그 이상이어야 했다.
두근거리는 떨림과 짜릿함.....이 온 몸을 지배하는....그런 느낌이어야 한다는 것이 세영의 생각이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8시 반에 조회가 있으니 시청각실로 다 모여주세요.”
약간 여성스러운 교감의 음성이 교무실 안에 퍼졌다.
세영은 월요일 아침이면 찌뿌등한 몸을 기지개로 달래면서 시청각실로 걸어갔다.
“안선생님, 좋은 주말 보내셨어요?”
항상 몸에 붙는 티로 강조하는 우람한 몸과는 어울리지 않는 목소리로 체육 강선생이 세영에게 말을 건냈다.
“아..네.”
건성이지만 밝은 미소로 대답하는 세영을 황홀하게 바라보는 강선생을 앞질러 시청각실로 들어갔다.
일장연설 이어지는 교장의 잔소리를 귓전으로 흘리던 세영은 교무회의가 끝나자 한숨과 함께 몸을 일으켰다.
“안선생은 나 좀 잠깐 봐요.”
교감이 말했다.
“이번에 새로 안선생반에 전학 온 학생입니다. 부모님이 다 미국으로 가셔서 친척집에 있다고 하네요.”
“안녕하세요?”
참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하얀 원피스를 곱게 차려입은 한 여인과 고개를 숙인 채 책상위의 마주 잡은 손을 바라보고 있는 한 학생이 있는 곳으로 데리고 간 교감이 자리를 떴다.
여인이 밝은 미소로 세영에게 인사를 했다.
“네, 안녕하세요.”
“너도 인사해야지. 담임 선생님인데..”
“안녕하세요. 유민영라고 합니다.”
“그래, 우리 잘 지내보자.”
세영의 내민 손을 말 없이 잡는 민영은 듬직해 보였다.
“아무래도 제가 남편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할 것 같아서 걱정이 많아요. 민영이 혼자 두고 가려니 이것저것 걸리는 것이 많네요.”
미국의 지사로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모든 가족들이 이민을 가야 했으나 민영은 끝까지 따라가기를 거부했다.
설득에 실패한 민영의 어머니는 그나마 친척들이 모여 있는 이곳으로 민영의 거처를 정해주었다.
“그렇네요.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조금 어른스럽긴 하지만 아직 어린데....”
걱정을 하는 어머니를 살짝 노려보는 민영으로 인해 말을 삼키는 민영 어머니의 아름다운 표정이 살짝 찡그려졌다.
“걱정마세요. 저 잘 할께요.”
세영은 귓가에 들리는 민영의 듬직한 목소리에 왠지 마음이 편해졌다.
“휴... 아무쪼록 부탁드립니다.”
“네,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
“안선생, 이거 장난 아닌데?”
전학을 맡고 있는 최선생이 세영에게 서류를 건네주면서 말을 했다.
“뭐가요?”
“그 반에 새로 전학온 학생 있지?”
“네, 대단한 녀석을 받았네.”
“대단한 녀석요? 뭐가요?”
“이거 생활기록부 좀 봐. 화려해.”
세영은 최선생으로부터 민영의 생활기록부를 받아들었다.
민영의 생활기록부는 말 그대로 화려했다.
화려한 수상경력, 우수한 머리, 그리고 좋은 성적에...
하나 더 한 다면 결석일수도 그에 못지 않게 많았다.
전국과학경진대회 1등, 회장기배 쟁탈 전국 태권도 대회 미들급 1위 등등 여러방면으로 뛰어난 모양이었다.
특히 시상난을 제일 많이 장식하고 있는 것은 사진관련 상들이었다.
다른 상들이야 그 나이또래의 학생들과 겨루어 받은 상이었지만 사진부분 상들은 학생대상의 대회가 아니었다.
동아일보 주체 사진콘테스트 대상, 전국 사진협회에서 받은 특별상, 아름다운 금강만들기 사진전 일위...등등의 각종 사진대회에서 많은 상들을 받았다.
또한 머리도 뛰어난 듯 중학교와 고등학교 일학년 성적은 거의 상위권이었다.
고등학교 일학년 일학기 때는 성적이 그리 좋지 않았지만 그 때 결석일수도 상당한 것으로 봐서 나름대로 이유가 있는 듯 했다.
“범상치 않은 놈이네.”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세영의 어깨 너머로 생활기록부를 보고 있던 강선생이 한마디 했다.
“어머...깜짝이야.”
세영은 울퉁불퉁 몸의 강선생을 흡사 괴물이라도 보듯 째려보면서 교실로 올라갔다.
“선생님.”
점심을 먹고 난 후 온 식곤증과 싸우기 위해 눈을 부릅 뜨면서 앞에 놓인 컴퓨터의 모니터와 눈싸움을 하던 세영은 민영이 말을 걸자 벌떡 일어났다.
“으응...민영이구나. 왜?”
졸던 사람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깨자마자 딴 짓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 세영의 모습에도 전혀 동요하지 않는 목소리로 민영이 말을 했다.
“내일 사진 전시회가 있어요, 그래서..”
“으응? 사진 전시회? 그거 끝나고 가서 봐도 되잖아..”
민영이 말 대신 무엇인가를 세영에게 내밀었다.
사진 전시회 팜플렛이었다.
“나랑 같이 가자고? 난 사진 별로야.”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는 세영을 보면서 민영이 팜플렛을 빼앗아 한 장을 넘겨 다시 내밀었다.
“음..이게 모야...오늘의 초대 작가 유민영과 함께라....유민영..너랑 이름이 같네?”
세영은 팜플렛 속의 사진에서 근엄한 표정을 짓고 있는 한 남자와 민영을 번갈아 보았다.
“이...이게 너야?”
민영이 말없이 고개를 끄떡였다.
“에이, 거짓말, 이건 뭐 거의 대학교 졸업반은 되어 보이는데? 너 원래 이렇게 늙었니?”
“선! 생! 님!”
민영의 약점이었다.
사실 교복을 입고 있는 민영은 어딘가 조금 부자연스러웠다. 세영의 말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지만 지금이라도 사복을 입고 거리에 나서면 최소한 고등학생이라는 소리는 듣지 않을 정도는 되었다.
“알았다..알았어. 그렇다고 얘는 소리를 지르니. 그러니까 네가 작가로 초대받아서 내일 거기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지?”
세영의 멍한 모습에 불만이 가득한 입을 굳게 다문 채 고개를 끄떡이는 민영이었다.
“차렷, 경례!”
“감사합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하루종일 수업에 힘들었을텐데도 불구하고 조회때보다 종례때가 더욱 활기에 차 있다.
물론 세영 역시 종례를 할때가 제일 행복하다.
교무실로 돌아온 세영은 주섬주섬 가방을 챙겼다.
그러다가 문득 책상 가장자리에 놓인 팜플렛을 보았다.
첫장을 넘겼다.
‘푸웃.’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왠지 근엄해 보이는 얼굴로 옆쪽을 바라보는 듯한 민영의 모습이 교복을 입고 있는 민영의 모습과 오버랩 되면서 웃기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출세를 해도 가족한테는 인정받기 힘들다는 말이 떠올랐다.
옆쪽으로 돌린 탓에 왠지 강인해 보이는 민영의 턱선이 세영의 눈에 들어왔다.
‘짜식, 꽤 남자다운 인상인데?’
세영은 팜플렛을 가방에 쑤셔 넣듯이 집어 넣고 아직 일이 있는 듯 책상위의 컴퓨터를 만지고 있는 교감의 눈치를 보면서 학교를 빠져 나왔다.
어느덧 해가 도시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붉고 붉은 노을이 회색 도시의 하늘을 뒤덮었다.
강변을 따라 운전하는 세영의 마음에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 강물이 스며들어왔다.
아버지의 제사를 위해 집으로 향하는 세영의 마음은 무거웠다.
분명 집안 어른들의 성화는 이번에도 계속 될 것이다.
32의 노처녀로 늙어가는 세영을 집안의 어른들은 항상 탐탁치 않은 눈으로 쳐다본다.
교사라는 직업과 어느정도 괜찮은 세영의 외모에 많은 신랑감들을 소개했던 어른들은 세영이 계속 툇짜를 놓자 이젠 그마져도 뜸해졌지만 이렇게 친척들이 모일때면 항상 세영은 어른들의 타겟이었다.
세영은 집으로 돌아오자 마자 침대에 널부러졌다.
한 차례의 전쟁을 치른 세영의 몸과 마음은 파김치가 되어버렸다.
이번에도 예외 없이 집안 어른들의 못마땅한 눈초리는 세영의 몸과 마음을 난자해 버렸고 애써 그 사이에서 억지 웃음을 지으려는 세영의 노력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 말았다.
조만간 똘똘뭉친 집안 어른들의 힘이 세영을 못살게 굴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니 뻐근했던 몸이 풀어지는 것 같았다.
몸이 풀어지니 마음도 함께 풀어진 세영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어푸, 어푸..“
욕조 안에서 깜빡 잠이 든 세영의 몸이 천천히 욕조안으로 미끄러져 얼굴이 잠겼고 그에 코와 입으로 흘러들어온 물에 의해 세영은 화들짝 잠이 깨서 허우적 거렸다.
잠시 후 깨달은 세영이 천천히 욕조 안에서 걸어나왔다.
나른한 몸이 침대에 누이기만 해도 금방 잠에 떨어져 버릴것 같았다.
문득 욕조의 거울 옆을 지나가던 세영이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거울을 쳐다보았다.
물방울이 방울방울 맺힌 세영의 몸은 적당한 가슴, 잘록한 허리, 그리고 고운 선으로 이어지는 엉덩이와 곧고 긴 다리로 키가 조금만 더 컷다면 몸매로는 모델을 해도 될만큼 잘 빠진 편이었다.
하지만 세영의 눈에는 왠지 나이가 들어 보였다.
얼굴보다는 살결이 좋고, 몸매가 잘 빠졌다는 소리를 많이 들으면서 살아온 세영은 왠지 가슴도 조금 처진 것 같았고 백만불짜리 엉덩이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곳도 탱탱함을 잃어가는 것 같았다.
아랫배를 잡아보니 아직 그 두껍기가 아직은 양호했다.
하지만 탄력이 죽은 것 같은 느낌에 한숨이 나왔다.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던 세영이 물기만 제거한 채 방으로 들어가 얇은 원피스형 잠옷을 걸치고는 침대에 누웠다.
잠시 눈을 감고 잠을 청해보던 세영의 손이 은근히 가슴쪽으로 갔다.
크진 않았지만 한손으로는 다 쥐긴 힘든 가슴을 은근히 더듬었다.
아무래도 마땅치 않았다.
아랫배로 내려간 손이 다시 배를 천천히 눌렀다.
맘에 안 든다는 듯 입맛을 다셨다.
눈커플이 쏟아질 듯 했는데 말똥말똥 잠이 안 온다.
한동안 그렇게 살들과 씨름하던 세영이 이블보를 박찼다.
그리고 반바지를 입고 긴 티 하나를 입고는 슬리퍼를 신었다.
현관을 나서고 엘리베이터의 버튼을 눌렀다.
24층에 도착한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리고 세영이 반층 더 위로 올라가 옥상으로 이어진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문을 열자 시원한 바람이 세영의 몸을 감쌌다.
시간이 늦은 탓인지 간혹가다 불을 켜 놓은 건물들만 반짝거리고 있었다.
하늘의 날씬한 달이 세영의 눈길을 끌었지만 괜히 날씬한 달에 질투가 난 세영이 달을 째려 보았다.
“하나, 둘, 셋, 넷.”
달밤의 체조다.
세영은 연신 손을 뻗고 다리를 움직여 어렸을 적 수없이 시험으로 인해 연습했던 국민체조를 시도했다.
체조의 중간에 이르자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역시 짜증이 났다.
몸 뿐이 아니라 기억력도 쇠퇴한다는 느낌이 들자 세영은 더욱 짜증이 밀려왔다.
옥상문을 쾅 닫은 세영이 발을 탁탁 구르면서 6층 아래의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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