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 그리고...(Ep.Black, Ver.작가) - 단편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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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 그리고...(Ep.Black, Ver.작가)** 본 글은 "민서지몽 - 악마"에 이어지는 에필로그 단편 버전 중 배드엔딩에 해당하는 "블랙" 버전 입니다. 보기에 따라 거부감이 느껴질 수 있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
서늘하다 못해 춥다고 느껴지는 바람이 거리를 휩쓴다.
휘우웅-
소름 돋을 정도의 차가운 바람이 옷 사이로 파고들때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되는 늦가을의 어느 오후.
아침부터 컴컴하던 하늘은 기어코 물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두둑-
준비성 좋은 몇몇의 사람들은 우산을 꺼내들기 시작하고,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는 분주한 거리의 풍경.
그 거리에 가운, 흡사 노숙자 같은 차림의 남자가 서있다.
떨어지는 빗방울도, 몰아치는 삭풍도 모두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남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반복하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과 깡마른 얼굴, 먼지를 뒤집어 쓴 듯 부시시한 머리카락. 남자의 외모는 썩 호감을 일으키는 외모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그의 손을 피해간다.
"..이것 좀 받아주세요. 여기요...이것 좀..."
남자는 다리를 절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종이를 건넨다. 흰색, 붉은색, 노란색이 섞인 컬러풀한 코팅종이에는 환하게 미소짓는 여자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하지만 남자의 그런 노력도 모두 허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미간을 구기며 그를 피해 지나가고, 천성적으로 거절을 못 하는 성격 탓에 어쩔 수 없이 전단지를 받아든 일부의 사람들조차, 얼마 가지 않아 근처 쓰레기통에 종이를 쳐박아버린다. 덕분에 남자 주위 쓰레기통엔 구겨진 종이가 가득하다.
이윽고, 더욱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자 거리에 인적도 뜸해진다. 모두 카페로, 건물로, 어딘가로 몸을 피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종이뭉치를 끌어안고 비척 비척 거리를 걷는다.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것마냥, 혹시나 젖을새라 온 몸으로 종이뭉치를 덮고 그것도 모잘라 옷으로 끌어안은 모습이 필사적이다 못해 안쓰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남자는 남의 시선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고 있다. 절룩이는 다리를 끌며 거리에 떨어진 전단지를 줍는 것이다. 굉음을 내며 거리를 두들기는 늦가을의 빗방울도 그의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다.
남자가 허리를 굽혀 구겨진 전단지를 주워올린다. 반코팅된 용지 덕에, 종이는 바로 물에 젖지는 않았다. 대신, 구겨진 종이에 결을 따라 물방울이 모여든다. 또르르. 이윽고 굴러든 물방울이 모여드는 곳, 그곳에는 이제는 구겨진,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자는 한쪽 손으론 전단지 뭉치를 안고, 다른 손으론 방금 주운 종이를 주워들고 섰다. 그러고도 한참을 그 모습으로 종이를 바라본다.
잘은 알 수 없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알 수 있을만큼 확연하게 떨리는 그의 어깨를 보아하니,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얼굴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다. 아마도 가을 비보다 더욱 굵은 눈물이 그의 얼굴을 적시고 있지 않을까.
그때였다. 누군가 그에게 다가섰던 것은.
처음엔 커다란 우산에 가려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조금 후 드러난 모습은 약 마흔살 남짓의 여성이이었다. 마른 체형의 여성은 자신이 쓴 우산 외에, 하나의 우산을 더 펼쳐 남자의 몸을 가려줬다.덕분에 온 몸으로 가을비를 받아내던 남자의 몸은 우산 아래로 감춰진다.
남자가 입술을 달짝이며 웅얼거린다. 여전히 양쪽 손에 종이를 쥔 채였기에, 우산은 어깨에 가볍게 걸쳐진 모습이다.
"집에 가자."
여성이 입을 열었다. 따뜻한 어조였지만, 어투에서는 말할 수 없은 깊은 슬픔이 묻어나온다.
"...이거...전단지...돌려야 돼..."
남자는 여전히 구겨진 전단지에 눈을 고정한 채 입술을 달짝거렸다. 어딘가 맥 빠진 생기 없는 목소리. 초점 없는 눈동자와 닮은, 높낮이가 없는 건조한 목소리다. 흠뻑 젖은 머리카락에서 내려온 물방울이 홀쭉하게 들어간 볼을 지나 턱 아래로 사라진다. 꺼끌꺼끌한 수염은 코와 턱을 지나 목 부근까지 지저분하게 자라있다.
"그만 좀!!!!!"
입술을 사려물며 고통을 삼켜내던 여자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거세게 터져나온 고함은 금세 빗소리에 지워졌고, 그것과 비슷한 속도로 여자의 목소리도 냉정을 찾는다.
"...그만 좀 해, 진우야. 누나도 힘들어...그래도...그래도 몸은 챙겨야지. 응? 너 이런 모습...나중에 시현이가 보면 어떻게..."
"시현이"를 발음할때부터 떨리던 여자의 목소리는, 결국 말을 맺지 못하고 끊어진다.
잠시나마 빗소리를 뚫고 이어지던 대화가 중단되자, 다시금 빗소리가 세상을 채우기 시작한다. 두두두- 우산 위로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거세다.
남자의 눈은 여전히 구겨진 종이 위를 향하고 있다.
고여있던 물방울은 털어냈지만, 물에 젖은 종이는 어느새 짙은 회색으로 색깔을 바꾸고 있다.
코팅된 종이에 깨끗하게 인쇄된 두 장의 사진.
누가봐도 반할만큼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과 그 오른쪽에 위치한 흑백의 사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흑백의 사진 속에는, 마치 물건이라도 옮기듯 무언가를 질질 끌고가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이 찍혀있다. 다만, 남자의 몸으로 가려진 부분 밖으로 드러난 하얀 다리가 사람, 그것도 어떤 여성의 다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온다.
"찾아야 돼....시현이...찾아야 돼..."
남자는 다시금 걷기 시작한다.
불편한 다리를 내딛자 겨우 어깨에 걸쳐져있던 우산이 나동그라진다. 순식간에 우산의 속살로 가을비가 퍼부어진다. 비를 막기 위한 둥그런 우산의 안쪽으로 빗방울이 차오른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눈길 한 번 주지않고 다시금 걸어간다.
나동그라진 우산도,
애타게 그를 부르는 누나의 외침도,
피부를 뚫을 듯이 거세게 쏟아지는 가을비도,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거리 저 편으로 멀어져간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다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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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병신 새끼야!"
뺨을 연거푸 후려치더니, 폭력을 못 견디고 쓰러진 남자의 옆구리에 재차 발길질을 꽂아넣는다.
"죄..죄송...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
쓰러진 남자는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잔뜩 웅크려 애벌레 같은 모습을 취한 채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그러고도 몇 번이나 발길질을 날아든 뒤에야 겨우 움직임이 멈춘다.
"내가 계집애들 관리 똑바로 하라고 했지? 엉? 안그랬냐? 특히, 그 년은 조심하라고 했지? 이 개자식들아. 초등학생을 데리고 와서 시켜도 니들보다는 더 빠릿하게 일하겠다. 뭐해? 일어나, 이 새끼야. 언제까지 자빠져있을거야. 가서 찾아와. 만약 그 년 도망쳤으면 너희 새끼들 다 바닷속에 수장시켜버릴 줄 알아!!"
실컷 폭력을 휘두른 남자가 병 째로 술을 들고 들이켠다.
벌컥 벌컥-
격하게 넘어가는 술을 보면서, 쓰러진 남자와 그 옆에 선 남자는 저 병이 자신들에게 날아들지 않기를 남 몰래 속으로 기도한다.
"아야야..쓰벌, 진짜. 더러워서."
"괜찮으십니까, 형님..."
"괜찮겠냐? 괜찮겠냐고, 이 새끼야."
조금 전까지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발길질을 당했던 남자가 옆에 걷고 있는 남자의 복부를 후려찬다. 후려찬 쪽은 꺽다리처럼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고, 맞은 쪽은 보통 키에 선이 가느다란 남자다. 형님 이라는 호칭을 봤을때, 아무래도 꺽다리쪽의 계급이 더 높은 듯하다.
"빨리 앞장 서, 이 새끼야. 너 그 년이랑 친하잖아. 아오, 씨발...존나 아프네. 갈비 나간거 아냐..?"
꺽다리가 갈비뼈를 움켜쥐며 목을 꺽어 두두둑- 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이, 얻어맞은 남자는 지체없이 앞질러 나간다.
"택아, 야이, 새끼야! 확실한거지?"
"네, 네! 형님. 확실합니다. 그 년 있는 곳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냥 니가 가서 데려와라. 나 씨발, 옆구리가 쑤셔서 더는 못 가겠다. 거 삼거리 앞에 만화방으로 데려와. 거기서 쉬고 있을라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쉬고 계시면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그러고도 몇 마디 더 꺽다리의 푸념을 받아준 뒤 발걸음을 옮긴다.
블록이라고 할 것도 없는 몇 개의 건물을 지나고, 너저분하게 생선대가리라던가 하는 것들이 널부러진 항구 근처의 시장을 지나 모래사장으로 들어서자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간다.
싸구려 구두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의 느낌은 썩 좋은 것이 아니지만, 택이의 마음은 그것보다는 다른 것에 팔려 있다.
"아, 씨발 좀...."
남자는 자책하듯 자신의 머리를 두어번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얼마쯤 걸어갔을까. 모래가 언덕처럼 불룩하게 솟아있는 곳 언저리의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육지의 그것과는 성질이 많이 다르다. 짜지만 상쾌하고, 거칠며, 폭력적이다. 특히, 오늘같은 찌푸린 늦가을의 바닷바람은 무서울 정도로 매서운 법. 이런 날 해변에서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빨려들어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덜컥 겁이 나곤 한다.
"야!!!!"
택이가 소리 지르자, 언덕 근처의 여자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그 바람에 붉은 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춤을 춘다. 하지만 여자는 도망간다거나, 이쪽으로 달려온다거나 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심지어는 일어나지도 않은 채, 그저 그곳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약이 오른 택이가 무릎 높이까지 발을 들어올리며 성큼성큼 언덕으로 뛰어간다.
"야, 너 진짜 맞아볼래?!"
남자가 뛰어오는 내내 베시시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자는, 도착하자마자 때릴 듯 올라가는 그의 손을 보자 얼굴 앞으로 손을 모으며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아..진짜..이걸 때릴 수도 없고.."
움츠리는 여자의 모습을 본 택이의 손이 천천히 내려온다.
우유처럼 새하얀 피부와 와인색의 머리카락. 어딘지 슬픈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여우처럼 올라있는 눈초리. 어느샌가 미소를 지우고 무표정하게 바뀐 여자의 입술은 한 일자로 굳게 닫혀있지만, 앵두같은 붉은색만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전혀 관리를 하지 않은 듯, 입술의 이곳 저곳이 터서 일어나있다.
"야, 내가 나가지 말랬지? 약속했잖아. 너 자꾸 이러면 진짜 계속 가둬두는 수가 있어. 그러고 싶어? 예전처럼 저기 어두운 곳에 갇혀있을래?!"
숨을 고른 남자의 어투는 차분했지만, 여자의 어깨는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양 손으로 팔을 끌어안고, 다리를 모아서 둥글게 몸을 말은 채 정신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자의 격한 반응을 본 택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회색빛 하늘은 먹구름으로 뿌옇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으라고! 너 이제 돌아가면....진짜 내가 답답하다."
돌아가면 분명히 얻어맞겠지.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일거야.
택이가 잠시 그런 생각에 빠진 사이, 여자가 그의 바지춤을 잡아당긴다.
"왜?....이거 뭐. 가지라고?"
여자는 택이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하얀 손바닥 위에는 별 모양의 조개껍데기가 올려져있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퍽이나 신기해하지만, 이곳에서 자고 나란 그에게는 딱히 신기할 것도 없는 별조개.
오히려 택이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녀의 손과 손목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운 모래보다 더욱 곱고 하얀 그녀의 손. 그리고 그런 느낌을 그대로 가진 채 가늘게 뻗어나가는 팔. 단, 왼손의 팔목에는 정체불명의 손수건이 칭칭 감겨있다. 그 아래에 두껍게 말려있는 붕대를 감추듯이.
"됐어, 일어나. 빨리 가야돼. 형님 완전 빡쳤어. 너 시발, 말도 안하고 나오는 바람에 오야한테 존나 깨졌단 말이야."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택이는 벌써부터 겁을 덜컥 집어먹은 상태다. 동네에서 주먹 깨나 쓰고 깡 좀 있다며 으스댔던 그였지만, 폭력배들의 세계는 학생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름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안절부절하는 택이와는 달리, 붉은 머리의 그녀는 느긋하게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난다.어딘가 초탈해보이는 태도가 여유로워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바닥에 바닥까지 본 사람이 가지는 체념적인 태도.
그녀는 택이의 손에 이끌려 모래밭을 가로질러간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갖고 노는 헬륨풍선처럼, 택이가 이끄는 대로 저항없이 끌려간다.
바닷바람이 하얀 원피스와 붉은 머리카락을 세차게 펄럭였다.
"커..흣..."
남자의 주먹이 복부를 강타하자 시현이의 몸이 크게 꺽인다. 무릎이 꺽여 주저앉으려는 시현이를, 머리채를 잡아채며 재차 다시 일으킨다.
"이 씨발년이, 오냐 오냐 해주니까 아주 뵈는게 없나."
"형님!!"
꺽다리가 머리채를 붙잡고 뺨을 후려치려는 찰나, 택이가 몸을 던져 그의 손을 잡는다.
"형님, 이 년 얼굴에 기스라도 나면 저희 둘 다 죽어요, 정말."
형님 형님하며 폭력배 같은 말투를 쓰곤 있지만 어딘가 어설픈 그의 말투. 학교 선배인 꺽다리는 조직의 선배라기보다는 형 같이 느껴진다. 하긴, 조직이라기엔 너무나 작고 하는 일도 추잡한 양아치 짓의 불과한 이 그룹에서 선후배의 기강이 서긴 어렵기도 하다. 택이 역시 학교를 그만두고 이곳에 뛰어든지 이제 겨우 한달 여 남짓. 앞에 서있는 꺽다리에 소개로 이곳에 들어왔다.
"에이, 씨발."
슬그머니 손을 내린 꺽다리가 분을 못 이기고 가슴을 걷어찬 덕에, 시현이가 뒤로 벌러덩 나가떨어지고 만다.
"야, 담배 좀 줘봐."
싸구려 가죽쇼파 팔걸이에 걸터앉은채 담배를 꼬나물자, 좁은 실내 가득 연기가 들어찬다. 폐업한 만화가게를 아지트 삼아 사용하고 있다. 도시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상권이 죽어버린 항구 마을에서는 특이한 일도 아니다. 드문 드문 빈 집은 얼마든지 있다.
"야."
꺽다리의 부름에도 시현이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부답이다. 그저 어깨를 가늘게 떨며 바닥만 바라보고 있다.
"야 이, 씹...야! 대답 안해?"
꺽다리가 발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밀어내자, 그녀는 저항없이 밀렸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밀려나간 후에 다시 돌아오길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하얀 원피스의 가슴팍은 지저분한 먼지로 얼룩져간다. 동시에 헐렁한 원피스가 흐트러지며 그녀의 쇄골 아래 쪽을 살짝 드러내 보인다. 조금 전 벌러덩 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허벅지도 반 쯤 드러낸 모습이다.
꺽다리의 눈은 어느새 그런 그녀의 속살들을 훔쳐보고 있다. 짐짓 화난듯 으름장을 놓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시선은 끈적이하게 시현이의 이곳 저곳을 훑고 있다.
"안되겠네, 이 년. 야, 택아. 너 좀 나가 있어라."
"형님, 참으세요. 어디 생채기라도 나면 진짜..."
"아, 새끼. 알았으니까 나가있으라고. 내가 빠가인줄 알아? 나가. 임마. 야, 누구 오면 열어주지말고 일단 문 두드려라. 알지? 세 번 두드려라. 세 번."
눈을 홉 뜨고 윽박지르는 꺽다리에 성화에 못 이겨 계단을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니, 여전히 꺽다리는 쇼파 팔걸이에 걸터앉은 모습이고, 시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쾅-
낡은 철문을 닫고 그 앞에 쪼그려앉아 담배를 꼬나문다. 망을 봐야하기에 멀리 갈 수도 없다. 만약 오야가 이러고 있는 걸 본다면 허벅지가 터지도록 빠따질을 당할테다.
"후우....나 잘 들어온건가...쓰벌.."
지하에서 올라왔지만 밖이라고 딱히 따뜻하지는 않다. 오히려 바람이 불어 더 추운 듯 싶다. 지하 만화방은 습하고 텁텁하긴 하지만 그만큼 은은한 온기가 있었다.
"에씨...더럽게 춥네..퉤."
택이는 담배를 꼬나문 채 팔을 부비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디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촌스런 무늬의 여름 셔츠는 조금의 온기도 전달해주지 않는다. 온기를 전달하긴 커녕 가지고 있는 체온까지 뺏어가는 것 같다.
학교에서 일진 노릇을 할때는 제법 스타일에도 신경쓰던 그였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선배를 따라 이곳에 온 이후론 매일 같이 이런 옷만 입는다. 도통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선배의 올백머리를 피한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중이다. 젤을 잔뜩 발라 넘긴 저런 머리까지 해버리면 쪽팔려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 핸드폰을 만지고 있자니, 덜컹-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다. 아마도 2,30분쯤 지났을까.
"야, 씨바야. 담배 좀 줘봐라."
상기된 얼굴의 꺽다리가 입을 뻐끔거린다. 담배를 건네고 불을 붙였다. 바닷바람 탓에 라이터 불이 일렁거려 잠시 애먹긴 했지만, 곧 담배 끄트머리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아...이 맛이지. 그러니까 새끼야. 가오 안나는 그런 싸구려는 갖다 버리고 지포라이터 하나 사라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쓸데없이 지포라이터를 살 마음은 없지만 굳이 토를 달진 않는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없다. 오직 두 가닥의 연기만 피어오를 뿐이다.
우중충한 항구 마을에 도로는 한적하다. 아주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와 간간히 보이는 후줄그레한 차림의 사람들.
조용히 담배를 빨던 택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촌스런 셔츠가 바닷바람을 잔뜩 먹고 부풀어 오르던 참이다.
"형님....쟤 뭐에요?"
"쟤 뭐가?"
"쟤요...이런데서 구르기엔 존나 아깝잖아요. 저 정도 쌍판이면 룸에 넣어도 월수 몇 천은 나올 것 같은데...... 뭐 빚져서 팔려온거에요?"
꺽다리는 담배 맛을 음미하며 대답을 지체시켰다. 뿜어져 나온 연기가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새끼, 너도 고추라고..... 야, 그 년 팔뚝에 구멍난거 못 봤냐. 완전 약에 절은 년이야. 나도, 뭐 자세한 출신은 모르겠는데, 오야랑 박사장이랑 얘기하는거 들어보니 여기 저기 졸라 구른 년이더만. 지금도 박사장 그 새끼가 오야한테 맡겨둔거야. 우리 선수도 아니고...그냥 잠시 맡아서 굴리는 거라고 해야 되나. 회사에도 그런거 있잖아. 뭐냐. 그거...아 생각 안나네."
"파견 뭐 이런거요?"
"그래, 이 새끼야. 그거, 파견. 하여간 박사장 그 새낀 완전 미친 새끼라니까. 듣자하니 뭐 돈을 받아쳐먹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그냥 여기 저기 빌려주면서 막 굴리는 것 같더만. 뭐하는 새낀질 모르겠단 말야."
"근데...형님. 박사장이 누구에요?"
"삐리한 새끼. 아, 너 못 봤던가? 아닌데. 봤잖아, 이 새끼야. 너 처음 온 날, 저 년이랑 같이 있던 허연 돼지새끼. 눈깔 풀려가지고 덩치 이따만한 그 새끼. 기억 안나? 안경쓰고."
그제야 택이의 머리를 스쳐가는 사람이 있다. 처음 이곳에 입사(?)하던 날 봤던 남자. 징그러울 정도로 허옇던 물렁살 돼지새끼. 딱 봐도 눈빛이 정상이 아니다 싶은 놈이었다. 두꺼운 뿔테안경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음에도, 몸에서 온통 위험한 느낌을 풀풀 풍기던 남자. 사십 쯤 먹었을까.
"포주에요?"
"아니. 약쟁이야, 그 새끼. 개 악질 약쟁이."
"약쟁이요? 그럼 쟤는 뭐래요?"
"아, 그 새끼 더럽게 꼬치 꼬치 캐묻네. 몰라, 임마. 니가 물어보든가. 약값 못 낸 술집년이든가, 아니면 뭐 사채를 못 갚았든가 그러겠지. 아니면 씨발, 지 마누라든가. 세상에 별 새끼가 다 있으니까. 야, 다 폈으면 저 년 좀 추스려서 데리고 가라. 나 삼거리 카페에 들렀다 갈라니까. 거기 알바년도 조금만 더 공들이면 넘어올 것 같은데 말야. 어지간히 애를 태운단 말이지."
꺽다리가 옆머리를 빗어넘기며 몇 걸음 나가더니 다시금 뒤돌아본다.
"티 안나게 똑바로 추스려. 알지? 티 나면 너랑 나랑 다 맞아죽는거다. 들어가기 전에 꼭 전화하고."
"네, 형님. 살펴가셔요. 비 쏟아질 것 같은데요."
자신의 말을 마친 꺽다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한참을 그 모습을 보던 택이가 몸을 돌려 손잡이를 돌리자, 덜컹- 회색의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아가리를 벌린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쇼파 위에 널부러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 씨발.. 또...진짜.."
시현이는 2인용의 널찍한 쇼파 위에 널부러져 있다. 가랑이를 쫙 벌린 모습이지만 부끄러움도 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기대고 있다. 흰색의 싸구려 팬티는 그녀의 한쪽 다리에 걸쳐져 말려있고, 그녀의 보지 근처는 정액과 애액으로 지저분하게 번들거리고 있다. 가슴 주위가 붉게 올라온걸 보면 맞았거나 힘껏 쥐었거나 둘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택이가 옆에 앉았건만, 젖가슴과 보지를 모두 드러낸 그녀는 다리조차 오무리지 않는다.
"야, 넌 부끄러움도 모르냐."
"...아파.."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말이었기에, 갑자기 돌아온 그녀의 대답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고 만다.
흐리멍텅하게 생기 하나 없는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없이 흐려진 채다.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녀의 볼을 쥐게 된다. 말도 안되게 작은 얼굴.
"...어디가? 여기?"
택이가 손을 내려 아래쪽을 가리키자, 그녀의 고개가 힘없이 위아래로 끄덕거린다.
"...아파...닦아줘..."
"아이씨...더러운거면 니가 닦아야지 왜 날 시켜. 아, 진짜 형도 이럴꺼면 마무리는 알아서 좀 하지..."
잔뜩 인상 쓰며 투덜거리던 택이는, 말과는 달리 조심스럽게 그녀의 보지 근처로 티슈를 가져다댄다. 손이 닿자 시현이의 몸이 잠시 움찔하긴 했지만, 다 닦아낼때까지 별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했던 직후여서일까.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의 보지를 만지면서도 택이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팔뚝에 나있는 무수한 주사바늘. 물론, 그렇다고해서 남자로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선이야 어쨌든, 택이의 자지는 이미 불끈하게 솟아올라있다.
"....싫어..이거. 물로 닦고 싶어...."
"아, 진짜. 너, 내가 만만하게 보이냐?"
택이가 닦아낸 휴지를 내팽겨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둘 밖에 없는 지하실이라 목소리가 조금 울리는 느낌이 든다. 너무 소리를 질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정작 그 소리에 목표물이 된 시현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택이를 바라볼 뿐이다.
어딘가 슬픈듯, 그렇지만 묘한 색기를 품은 눈. 그 눈빛을 마주하자니 택이의 마음이 떨려온다. 처음 이곳에 들어오던 날, 처음 그녀를 봤을 때부터 쿵쾅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박사장-그 개새끼-의 옆에서 비 맞은 개처럼 벌벌 떨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봤을 때부터.
"..알았어. 일어나. 안쪽에서 씻자."
못 사는 동네의 상점이 흔히 그렇듯, 이 가게 구석 한 켠에도 작은 방이며, 화장실이며 하는 것들이 붙어있다. 가게는 폐점한지 꽤 됐지만, 수도세며 전기세며 잡다한 비용은 내고 있기에 여전히 물과 전기는 끊기지 않고 나온다.
하지만 시현이는 몸을 일으키는 대신 양손을 위로 쭉 뻗는다. 누가봐도 안아서 일으켜 달라는 표시다. 아무래도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눈치챈 듯, 얼마 전부터 이런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말도 못 걸더니.
이쯤되면 기분이 나쁠만도 하건만, 아니, 버릇을 잡는 차원에서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도 들건만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다.
택이는 한숨을 푹 내쉬곤, 시현이를 안아 일으켰다.
옷을 훌렁 벗어던진 시현이가 비누칠을 하며 몸을 닦아낸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열린 욕실 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물줄기를 맞는다. 형광초록색의 촌스런 고무호스가 물을 토해낸다. 계절도 계절이고,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꽤 차가운 물일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닦아낸다.
"안 추워?"
"...응."
"원래 약 하고 그러면 무감각해지는거야?"
무릎 위에 팔을 올리고, 그 팔로 턱을 괸 택이가 심드렁하게 물어본다. 한달 동안 그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평소의 시현이는 상당히 무감각하고 무기력하다. 약을 맞지 않을때의 그녀는 마치 쥐약 먹은 강아지처럼 늘어져 있다. 뭘 해도 별 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지금보다 더 오래 약을 안 맞으면 미친년처럼 날뛰게 된다는데, 아직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응..."
"몇 살이야?"
시현이를 돌보는 건 늘 막내인 택이의 임무였지만, 이렇게 완전하게 둘만 있어본 적은 없었기에 궁금했던 질문이 술술 나온다.
"...스물 여덟..."
"와, 아줌마네. 나보다 10살, 아니 11살이나 많네?"
"....."
몸을 씻고 나온 시현이가 툭툭 물을 털어낸다. 그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유방, 붉은색이 확연한 보지 부근에 수풀. 그 중에서도 가장 그의 눈을 사로잡는건 왼쪽 젖가슴 위에 새겨진 "P" 라는 커다란 알파벳 이니셜이다.
택이는 꺽다리의 말을 떠올렸다. "그 새끼 마누라일지도 모르지."
"그거 혹시....아니다. 박사장이랑은 무슨 관계야?"
박사장.
택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떨어지는 순간, 시현이의 눈이 불을 뿜을듯 그를 노려본다. 조금 전까지 시체처럼 흐느적 거리던 사람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살기 가득한 눈빛. 택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아, 물으면 안되는건가. 미안."
그러고도 옷을 모두 입고 지하실을 빠져나올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다. 이런 조직에 있는 몸이지만, 아직 때묻지 않은 택이는 저도 모르게 미안함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거칠긴 하지만, 그만큼 순진한 부분도 있는 바닷가 마을의 10대 소년이다.
밖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쳐온다. 하늘도 한층 더 짙은 색으로 바뀌는 바람에, 아직 낮인데도 밤처럼 캄캄하다.
원래대로라면 도망을 막기 위해, 시현이의 팔목을 잡고 끌어야겠지만, 겸연쩍은 마음에 조금 떨어져 걷던 택이의 팔뚝으로 시현이가 달라붙었다. 몰캉하게 뭉그러지는 여체가 팔 언저리에서 느껴진다.
"..추워.."
그녀의 하얀 원피스 자락이 바닷바람을 맞아 격하게 펄럭거린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반팔소매 탓에 밖으로 드러난 새하얀 팔뚝은 한층 더 가늘어 보인다.
잠시 자신의 팔에 들러붙은 시현이를 내려다보던 택이가 시현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시현이보다 머리 반개 정도 더 클 뿐인 탓에 완전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긴 힘들었지만, 그에 맞춰 그녀도 택이의 가슴에 안기며 허리를 감싸안았기에 별 다른 어려움없이 안을 수 있었다.
"이러면 됐지? 감기 걸리면 안된다. 너 감기 걸리면..."
말을 이으려던 택이는 그냥 삼켰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놈이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뱉고 싶진 않았다.
"손님 못 받는다. =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너무도 비인간적이다.
하지만 양심과 도덕보다도 깊은 곳에서 무언가 마음을 자극해오는게 있었다. 마치 심장의 세포라도 찌르는 듯 콕콕 찌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말을 멈추고 어깨를 감싸안은 팔에 한층 더 힘을 줘 끌어당긴다. 시현이 역시 거부하지 않고 한층 더 택이에게 몸을 밀착시켜 온다. 날씨 탓인지 시현이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시끌벅적한 도심의 밤거리. 화려한 네온사인과 요란한 굉음.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길을 따라 온갖 유흥업소가 늘어서 있다.
그 조용한 항구 마을에서 겨우 30여분 남짓한 곳에 이런 도시가 있다는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 도시가 그렇듯, 이 도시 역시 일부만이 화려할뿐, 조금만 번화가를 벗어나면 촌스런 광경이 펼쳐진다. 외곽을 따라 움직이면 한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 발견할 수 있다. 그래봤자 어촌계의 배나 들락거리는 작은 규모의 항이지만.
그 시끄러운 도시의 어느 골목. 운전석에 앉은 택이는 자꾸 자꾸 핸드폰만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초조한듯, 짜증난듯, 별 용건도 없이 화면을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더러운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중이다.
부르르- 핸드폰이 몸을 떨었다. 액정에 뜬 꺽다리의 번호를 보며 큼큼-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네, 형님. 네, 좀 전에 들어갔습니다. 3명이요. 멀쩡한 새끼들이던데요. 정장도 입고. 네. 걱정 마세요. 거기 삼거리 여관쪽에 계실꺼죠? 네, 전화 드리고 가겠습니다. 갈때 연락 드릴게요. 네. 즐거운 보내십시오, 형님."
원대래로라면 같이 왔어야 한다. 오야는 둘이 같이 움직이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한참 작업녀에 빠진 꺽다리는 도중에 내려 다른 곳으로 샌 참이다.
전화를 끊은 택이가 고개를 들어 간판을 올려다본다. 선팅된 자동차의 앞 유리 너머로 번쩍이는 모텔 간판의 네온사인이 선명하다.
"아우, 씨발년 졸라 잘 빠는데?"
안경을 낀 뚱뚱한 남자는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땀을 비오듯이 쏟아내고 있다. 이런 날씨에 에어콘까지 켰음에도 땀이 멈출 줄 모른다. 시현이는 남자에게 머리채를 휘어잡힌 채 펠라치오를 강요당하고 있다. 붉은 입술이 남자의 자지 기둥을 몇 번이고 빨아댄다. 씻지 않은 남자의 자지에서는 시큼한 땀냄새와 정액냄새가 범벅이 되어 올라왔지만, 입에 문 자지를 뱉어낼 수는 없다.
"야, 김대리! 밑에서 니 불알 보는거 졸라 찝찝하다."
시현이의 아래에 깔린 남자가 낄낄거리며 그녀의 젖가슴을 농락한다. 작은 피어싱이 달린 그녀의 유두가 남자의 혓놀림에 따라 이리 저리 몸을 일그러트린다. 굳이 동료의 불알을 보는 이 포지션을 택한 이유는, 이 자리가 보지의 삽입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지는 시현이의 몸 속 깊은 곳으로 삽입되어 있다.
찔걱- 찔걱-
남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현이의 보지에서는 음란하고 축축한 물소리가 새어나온다. 길다란 자지가 보지 끝에 닿을때마다 그녀의 몸이 움찔 움찔하며 반응한다.
"거봐, 이 자리가 명당이라니까. 자세도 존나 편하잖아."
시현이의 엉덩이에 붙은 남자가 허리를 흔들며 말했다. 다른 남자들 모두가 그렇지만, 이 남자의 얼굴도 이미 시뻘겋게 상기된 상태다. 남자의 허리가 앞으로 내질러질때마다 시현이의 애널 깊숙히 자지가 파고든다. 개발될대로 개발된 시현이의 항문은 아무런 어려움없이 남자의 자지를 집어삼키며 꽉꽉 물어댄다.
"아우...씨..이 년, 후장 존나 조이네. 천천히 물어 이, 썅년아."
애널을 탐닉하는 남자가 시현이의 엉덩이를 후려치자 살갗이 발갛게 올라온다.
탱탱한 그녀의 몸은 남자들의 움직임에 따라 제각기 춤을 추고 있다. 벌렁이며 남자의 자지를 삼키는 보지, 꽉꽉 조여오는 애널, 그리고 목구멍까지 닿는 자지 탓에 꺽꺽거리며 필사적으로 핥아대는 입까지. 그녀의 모든 곳은 남자들의 쾌락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씨발, 진짜 젖소처럼 크네. 한 손에 안 잡혀, 이 년. 야이, 썅년아. 음메 해봐. 음메 해보라고."
아래에 누운 남자는 거칠게 젖을 쥐어짜며 "음메"를 요구했지만, 시현이는 그런 울음소리를 낼 수가 없다. 입에 자지를 물린 남자가 더욱 거칠게 머리채를 잡아끄는 탓이다. 대신 남자는, 허리를 들어 그녀의 가슴을 삼킬듯이 빨아댄다. 츄르릅-
"꺼헉...욱....아흑-! 아흐윽--!"
"야, 이거 존나 신기해. 보지에서 존나 니 자지가 느껴진다. 개 찝찝하네."
"병신 새끼. 찝찝하기는. 언제 이런걸 해본다고."
밑에서 보지에 박아대던 남자가 낄낄대자, 애널을 차지한 남자가 한층 더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골반에 손을 얹고 미친듯이 박아대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네명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던 침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삐걱 거린다.
"아학!!! 아하악!!"
애널의 들어오는 움직임이 거칠어지자, 자지를 입에 물고 있던 시현이가 고개를 휘저으며 몸부림친다. 그 바람에 펠라치오를 받던 남자는 자지를 파고드는 에어컨 바람을 느끼게 됐다.
"이 년, 또 발광하네. 야, 빨리 싸. 다음 후장은 나다."
입에 물리고 있던 남자가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며 물러서자, 시현이는 이제 온전히 자지와 애널의 느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히잇...힉!! 조...아앙....학학-! 아아아응!!"
시현이의 입에서는 믿을 수 없을만큼 음란한 신음이 터져나온다.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처럼 머리를 거세게 흔드는 바람에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풍차처럼 펼쳐진다. 다만, 예전처럼 긴 머리가 아닌 어깨 부근에 오는 단발머리기에 그리 화려하진 않다
"이 개같은 년, 존나 화냥년이네 씨발. 양쪽으로 박히면서 좋다고 허리 흔드는거 봐라."
"야이 씹년아, 더 세게 흔들어봐. 니 년 따먹으려고 얼마를 쓴 줄 알아? 씨발년아, 보지에 힘 꽉 안줘?"
보지에 박아넣던 남자가 시현이의 젖꼭지를 비틀어 당기자, 가뜩이나 커다란 유방이 평소보다 훨씬 더 길게 늘어난다.
"아학!!! 거기 좋아...거기 좋아...히엣-!"
두 남자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피스톤질을 함에도 불구하고, 시현이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얼굴에는 환희의 가득 찬 미소가 피어있다. 낮에 모습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음란한 모습이지만, 그녀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듯하다.
"야, 이 년 봐. 졸라. 침까지 질질 흘리네. 미친년 아냐, 이거?"
잠시 떨어져 세 남녀의 모습을 감상하며 담배를 꼬나문 돼지가 말했다. 남자의 말처럼 시현이의 입가에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쾌락의 극에 달한 시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꽉-! 움츠러들며 몸을 긴장시킨다.
"아으윽, 이년 존나 조여 못 참겠다 씨발.....아욱!!!"
"야, 야 나도...읏-!"
귀두 끝까지 찌릿해질 정도로 잔뜩 예민해진 자지를 보지와 항문이 거침없이 꽈악 물어오자, 참지 못한 남자들이 거의 동시에 그녀의 몸 속으로 정액을 토해낸다. 콘돔x, 질사(질내 사정)o 라는 광고 그대로 아무런 안전장치 없는 생(生) 정액이다.
"허억- 허억. 이 씨발 년 존나 명기네, 진짜. 엄청 조여."
"비켜봐. 이 년 눈 깔봐. 아직도 만족 못했나본데. 오빠가 오늘 아주 작살을 내주마."
두 남자가 빠져 나간 구멍에서는 허연 정액이 흘러나온다. 애널을 따라 흘러내린 정액이 보지에서 나온 만나 강을 이루며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 흘러내리려는 찰나, 그녀가 손을 뒤로 돌려 보지 부근에서 정액을 넓게 펴며 문지른다. 부럽게 보지 부근을 자극하던 가느다란 손가락이 곧이어 가장 자극적인 클리토리스 부분으로 미끄러져 문질러대자 아랫도리가 빳빳하게 긴장하며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돼지가 뒤로 돌아가 시현이의 엉덩이를 붙잡는다. 커다란 엉덩이. 예전보다 확실하게 거무스름해진 애널과 보지지만, 여전히 어떤 남자의 자지도 꼴리게 만들 수 있는 마력의 샘이다.
"완전 발정이 났구나, 이 암캐년. 세명이 박아줘도 만족을 못 하네. 오늘 아주 작살을 내줄테니까 기대해라잉."
"아하악....좋아...더...더..."
남자의 자지가 아직도 정액이 흘러나오는 보지를 파고든다.
"야이 씨발, 졸라 찝찝해. 니 정액 넘치는 거 봐라."
"병신 새끼, 당연하지. 꼬우면 콘돔끼든가."
"개소리 하네. 이 년 보지가 얼마짜리 보진데 콘돔을 껴?"
돼지는 허리를 밀어 자지를 쑤욱- 집어넣는다. 여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조금도 없다. 순식간에 굵은 자지가 끝까지 닿았다가 다시 빠져나온다.
하지만 시현이는 그런 움직임을 거부하지 않는다. 거부하긴 커녕 오히려 클리토리스를 더욱 격렬하게 비벼대기 시작했다.
"아앙...오-빠!!...더 세게..더 세게!! 아흣...학!"
돼지의 손가락 두개가 애널을 파고들자, 시현이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진다.
"꺼흑!"
"와, 씨발 진짜 개보지네, 이 년. 남자라면 환장을 하는구나."
"병신들아, 그만 쉬고 빨리 붙어. 시간 얼마 안남았다. 한 번 싸고 갈꺼냐?"
돼지의 닥달에, 보지를 담당하던 남자가 다가와 입에 자지를 물린다. 애널에 붙었던 남자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담배를 찾아물고 있다.
"이 년이 정기를 쪽 빨아갔나봐. 존나 힘드네. 야이 씹년아, 니 년 혀로 정성스럽게 닦아내봐. 그래, 그렇게. 아우...이 년 오랄스킬도 죽여주네."
시현이는 보지 가득 들어차는 충만함을 느끼며 바쁘게 혀를 놀린다. 입 안 가득 비릿하고 찝찔한 정액의 맛이 느껴지자, 다시금 아랫도리가 화끈거려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돼지의 자지가 격렬하게 보지벽을 마찰하자, 저도 모르게 온 몸을 떨며 오르가즘을 느끼고 말았다.
전쟁터.
섹스를 치르고 난 뒤 풍경을 보며 전쟁터를 떠올리는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언제나 이불이나 휴지 등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니까.
하지만 3 대 1의 섹스라면 그 풍경은 더욱 지독해진다. 온갖 것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고, 방 안에는 남녀 네 명분의 채취가 가득하다. 땀이며, 정액이며, 정체를 알기 힘든 시큼한 냄새까지.
그런 광경에 한 가운데, 침대 위에 널부러진 시현이는 정액 공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구멍으로 쉴 새 없이 정액을 토해내고 있다. 보지가 움찔거릴때마다 하얀 정액이 토해져 나온다. 뒷 동네 애널의 사정도 마찬가지. 얼굴이며 가슴이며 온갖 곳에 수컷의 정액이 범벅되어 있다.
시현이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뿐 숨을 따라 가슴 부근만 오르락 내리락한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택이가 뒷처리를 하기 위해 그녀의 몸을 잡았을 때였다.
"하아읏...!!"
흥분이 가라앉은 몸의 남자의 손이 닿자, 다시금 시현이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난다.
부르르.
보지에서 토해져나오던 정액의 속도가 빨라진다. 보지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 때문이리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택이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무겁고 더러운 기분이다.
"개새끼...애한테 약을 얼마나 쳐먹인거야..."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진 시현이를 부축해 욕실로 들어간다. 탈진한 시현이는 거의 걷지도 못하고 그의 어깨에 매달려 끌려간다.
가드레일에 붙은 노란 도로등이 번쩍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하지만 자동차가 지나가고 헤드라이트 빛이 사라지면 곧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점점이 켜진 가로등 길을 지나 한 대의 차량이 달려가고 있다. 늦은 밤의 도로에는 한 대의 차량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 양 옆에는 요란하게 우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 한 것이, 가을임을 알려준다.
택이는 힐끔 힐끔 옆에 앉은 시현이의 모습을 훔쳐본다. 17살, 봉고차를 끌만한 면허증이 있을리 없는 나이.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걱정해본 적도 없고, 제지당해 본 적도 없다. 경찰이라면 시내를 빠져나올때도 마주쳤다.
조수석에 앉은 시현이는 잔뜩 흐트러진 모습이다. 오늘 밤만 두 탕. 벌어들인 돈이 70만원. 하지만 그 중에 시현이의 몫으로 떨어지는 건 없다. 단 한 푼도.
그녀는 그저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약효가 사라지지 않았을테지만, 기진맥진한 몸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몇 해를 약에 쪄들어 제대로 된 관리조차 받지 못하며 굴리는 몸. 예전 같은 체력이 남아있을리 없다. 아니, 예전 수준의 체력이 남아있다하더라도, 정상적인 여자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한 섹스가 계속 되고 있으니 의미가 없으려나.
"...아픈덴 없어?"
택이가 말을 걸어봤지만, 시현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녀의 입 언저리에서 귀 쪽으로는 선명한 자국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입에 재갈을 물렸을때 생긴 자국인 듯 하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던 두번째 손님은 본디지와 SM 플레이를 즐겼다. 당연히, 선수-시현이- 보호 차원에서 상처가 남을만한 일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이런 자국까지는 어쩔 수 없다. 팔이며, 가슴이며, 사타구니까지, 보지 않아도 그런 자국이 가득할 것이라는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한참을 조용히 밖을 바라보던 시현이가 입을 열었다. 바깥 날씨처럼 차갑고 쓸쓸한 어조다.
"...택아."
"야, 이제 너까지 택이냐. 나 아주 동네북됐구만.....왜?"
"...나 언제까지 이래야 될까?"
짐짓 짜증을 내던 택이가, 음울한 목소리에 이끌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시현이는 여전히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기에 얼굴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밤의 차창에 비친 눈물을 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교차하며 그녀의 얼굴을 밝히고 있다.
여전히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약국에 다녀온 택이는 갑작스레 쏟아져내리는 빗방울을 피해 잽싼 동작으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자, 일어나봐."
택이가 시현이의 몸을 조심스레 일으킨다. 가녀린 어깨와 팔을 잡고 움직임을 도왔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이거부터 먹고...빨리 삼켜. 그래, 그리고 이거."
알약을 먹게 한 뒤 뜨끈한 쌍화탕을 건넸지만, 그녀는 손을 내밀어 받는 대신 가만히 쌍화탕을 바라보고만 있다.
답답한 마음에 화를 낼까 어쩔까 잠시 망설이던 택이가 조심스레 그녀의 입가로 병을 가져다댄다. 따끈한 쌍화탕 병의 온기가 시현이의 입술에 와닿았다.
꿀꺽- 꿀꺽-
그녀가 조용히 쌍화탕을 받아마신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행동은 남자를 테스트하는 여자의 본능적 행동이다.
흘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병을 기울이던 택이는, 병이 빈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손을 거뒀다.
"무슨...애기 키우는 기분이네, 이거. 옛날엔 많이 했었는데."
"....동생...있어?"
시현이가 고개를 돌려 택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남자. 아직 어려서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탓일까. 지난 3년간 이 곳 저 곳을 떠돌며 겪었던 남자들 중 유일하게 자신을 사람 취급해준 남자다. 애인 대행플레이를 제외하고.
하지만 남자를 볼때마다 시현이의 마음 한 켠은 도려내듯 아파온다. 기억속의 누군가와 많이 닮았기에. 외모적인 모습이 아닌, 마음 씀씀이가 말이다.
"없어.........죽었어. 교통사고로."
택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여전히 불덩이처럼 뜨겁다. 바짝하게 마른 입술, 펄펄 끓는 열.
과격한 섹스 뒤에는 항상 이렇게 힘들어한다. 특히, 이번엔 환절기 탓인지 평소보다 몸살 기운이 심각하다.
물끄러미 택이를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불안을 애써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묻어나온다.
"오...늘도 나가야 돼? 나?"
"아니, 아니 없어. 아까 봤는데 예약 손님 없었어."
택이가 약봉지며 빈 병을 정리하고 있다. 무심한 듯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장부를 확인한 참이다. 자꾸 시현이가 눈에 밟히는 탓에 평소 하지 않는 부지런을 떨었다.
그녀의 몸값은 비싸다.
셀 수 없이 많은 남자가 거쳐간 몸이지만, 아직도 비싼 화대를 받고 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인조미도 없다. 거기에 온갖 하드한 플레이도 OK. 쓰리섬, 포썸, SM, 야외플레이 등. 덕분에 매니악한 인간들이 자주 그녀를 찾는다. 워낙 출중한 외모 덕에 평범한 애인 플레이나 섹스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보다는 하드 플레이의 화대가 높기 때문에 오야는 항상 하드 플레이어들을 환영한다.
"돈에 환장한 개새끼."
시현이에게 약을 주는 날은 손님을 받을 때 뿐이다. 바꿔 말하면, 손님을 받지 않으면 약을 주지 않는다는 말. 덕분에 시현이는 좋든 싫든 손님을 받아야 한다. 자력으로 버텨내기엔 시현이의 약물 중독증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추워."
들려오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시현이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건강한 택이의 입장에서는 숨 막힐 정도로 후끈하게 데워진 방이었지만, 그녀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다. 철 이른 솜이불까지 꺼내 두르고 있음에도.
"옷 꺼내줄까? 겨울 옷?"
"..아니.."
택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온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그녀.
창백할 정도로 하얗고 고운 피부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깊은 피로와 공포, 절망감이 묻어나온다. 약을 맞을때는 화색이 돌고 힘이 넘치기에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손님들은 알 수 없지만, 곁에서 그녀를 수발(?)하는 택이로서는 이런 무기력하고 지친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된다.
눈가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만들어내는 어두움일까. 예전의 그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문득 그녀에게 예전 이야기를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현이의 작은 말소리에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한 번만....나 한 번만...안아줄래..."
그녀가 목소리는 힘 없이 떨리고 있다.
"안는다."
택이의 심장이 다시금 쿵쾅 쿵쾅 고동치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격하게 뛰고 있던 심장의 소리를 이제야 눈치챈 것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튼 상대방에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커다란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더..럽지...?"
망설이는 그를 보며 시현이가 고개를 떨군다. 그 바람에 사르륵 쏟아지는 붉은 머리가 택이의 눈을 자극했다.
아니다.
더럽다고 생각해서 망설이는게 아니다. 지금도 너무나 큰 심장소리가, 만약 안게 되면 어디까지 들리게 될 지 걱정 됐을 뿐이다.
"그딴 소리 하지마. 난 징징 거리는 계집애들이 제일 싫더라."
괜히 마음에도 없는 차가운 말투로, 하지만 슬며시 다가가 그녀의 등을 끌어안는다. 신장은 그리 차이 나지 않았지만, 워낙 마른 시현이의 몸은 어렵지 않게 그의 가슴에 품어진다. 철진이에게 끌려다니게 된 이후로 시현이의 몸은 눈에 띄게 말랐다. 약의 부작용인지, 마음 고생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현이가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어깨 위에 두른다. 이제 택이는 그녀를 뒤에서 완전한게 끌어안은 모습이 됐다.
"...따뜻하다. 잠깐만.... 이러고 있어줄래.."
서서히 그녀의 몸에서 떨림이 잦아든다. 추위 때문이었을까,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다.
잠시 그러고 있자니, 조용한 대기를 뚫고 아스라히 멀리서 바닷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항구 마을에서도 조금 더 외곽에 떨어진, 주인 없는 옛 집과 비닐 하우스, 그리고 컨테이너 몇 개가 이 조직이 가진 재산의 전부다. 덕분에 바닷소리가 마을에서보다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시현이의 마음 속으로 무거운 감정이 내려앉는다.
언젠가 들었던 바닷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었더랬다. 따뜻하고 넓은, 사랑하는 누군가의 품. 흡사 그때와 같은 따뜻함과 말도 안되게 뒤집어진 자신의 지난 몇 년간을 떠올리자니 왈칵-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오른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기운은 기어코 그녀의 눈을 통해 투명한 물방울이 되어 흘러 내린다.
"울어? 야.."
갑작스런 눈물에, 택이가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린다. 당황해서 급히 빠져나가려는 그의 손을 제지하며 입술을 팔에 묻고 울음을 삼켜낸다.
"..미안....신경쓰지마. 그냥 이러고 있어줘. 잠깐만....잠깐만..."
그 사람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진우, 선미 언니, 막냇 동생의 얼굴, 원장 선생님과 보육원 아이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입술을 그러물고 그리움을 참아내던 날들과 참아내야 하는 날들.
참다 참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날에는 왼손 팔목에 또 하나의 상처가 생겨난다. 붕대로 감춰진 팔목.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갑작스레 택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컬러링이 없는 기본음이지만 누구의 핸드폰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 시현이에게는 핸드폰도, 전화도, 아무 것도 없으니까.
시현이를 감싸안은 채 통화하던 택이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냉큼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자 그 틈으로 차가운 냉기가 파고든다.
길어지는가 싶던 통화는 의외로 빨리 끝났다. 하지만 들어오는 택이의 표정은 침통하게 일그러져 있다. 주저하며 말을 꺼내지 못하던 택이가 어렵게 입술을 뗀다.
"이따....손님 있대."
지친 표정의 시현이는 하지만, 예상했다는 듯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처피 선택권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가을 바다를 닮은 서글픈 모습이다.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버티지 말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매일 같이 그런 생각을 하는 나날들. 하지만 인간의 몸은 그리 쉽게 죽어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죽고 싶다는 마음과는 상반되는 또 다른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
그리고, 보고 싶다. 한 번만 더. 나의 사람들."
시현이는 아득해져가는 정신 한 켠에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정신 차려. 야."
꺽다리가 시현이의 볼을 찰싹 찰싹 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이의 눈은 여전히 초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금 몸을 비틀거리는 같았기에, 택이는 저도 모르게 슬쩍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지탱해줬다. 꺽다리의 시선을 끌지 않을만큼 조심스런 동작이다.
"내일이지?"
"네, 형님."
택이가 힐끔 시현이의 얼굴을 훔쳐본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에선 불안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일."
박사장의 방문 예정일.
들어온지 한달 남짓 된 택이는 이야기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지만, 꺽다리에 이야기대로라면 박사장은 한달 혹은 두달의 한번씩 이곳을 찾아온다고 했다. 약도 공급하고, "맡겨둔" 그녀의 상태점검을 위한 행보.
그 탓일까. 시현이의 모습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인다.
"택아, 저 년 감시 잘해라. 박사장 올때쯤만 되면 늘 저렇게 상태가 안 좋아. 지랄발광을 할지도 모르니까, 어디 데리고 나가지말고 방 안에 가둬놔라. 오야가 돈줄이라고 애지중지하는거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형님."
"그래, 저 년 없어지면 너도, 나도, 오야도 다 끝나는거야. 박사장 그 새끼,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이라더라. 그 새끼 약을 위쪽에서 떼온다는 소문도 있어. 수틀리면 저 년 대신 우리 장기를 다 털어갈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소름 돋지 않냐?"
꺽다리가 손을 배 앞에다가 대고 터는 시늉을 한다.
내장이 털린다니.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두 손으로 배를 감싸쥐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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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드렸던대로, 애초부터 계획했던 "민서지몽 - 악마"의 다중엔딩 중 "블랙" 과 "화이트"의 엔딩을 에필로그 단편 형식으로 다시 다듬어서 업로드 합니다.
처음 계획은 블랙의 모든 편과, 화이트의 모든 편을 일시에 올릴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한 쪽으로만 관심이 쏠려지는 느낌이 들어 나눠서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Ver. 작가라고 달린 이유는, 개인적으로 민서지몽 - 악마
서늘하다 못해 춥다고 느껴지는 바람이 거리를 휩쓴다.
휘우웅-
소름 돋을 정도의 차가운 바람이 옷 사이로 파고들때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츠리게 되는 늦가을의 어느 오후.
아침부터 컴컴하던 하늘은 기어코 물방울을 떨구기 시작했다. 후두둑- 후두둑-
준비성 좋은 몇몇의 사람들은 우산을 꺼내들기 시작하고, 미처 대비하지 못한 사람들은 발걸음을 재촉하는 분주한 거리의 풍경.
그 거리에 가운, 흡사 노숙자 같은 차림의 남자가 서있다.
떨어지는 빗방울도, 몰아치는 삭풍도 모두 자기와는 상관없다는 듯, 남자는 묵묵히 자신의 일을 반복하고 있다. 덥수룩한 수염과 깡마른 얼굴, 먼지를 뒤집어 쓴 듯 부시시한 머리카락. 남자의 외모는 썩 호감을 일으키는 외모가 아니었기에, 사람들은 저마다 얼굴을 찡그리며 그의 손을 피해간다.
"..이것 좀 받아주세요. 여기요...이것 좀..."
남자는 다리를 절며 사람들에게 다가가 종이를 건넨다. 흰색, 붉은색, 노란색이 섞인 컬러풀한 코팅종이에는 환하게 미소짓는 여자의 얼굴이 인쇄되어 있다.
하지만 남자의 그런 노력도 모두 허사.
대부분의 사람들은 못 볼 것이라도 본 듯 미간을 구기며 그를 피해 지나가고, 천성적으로 거절을 못 하는 성격 탓에 어쩔 수 없이 전단지를 받아든 일부의 사람들조차, 얼마 가지 않아 근처 쓰레기통에 종이를 쳐박아버린다. 덕분에 남자 주위 쓰레기통엔 구겨진 종이가 가득하다.
이윽고, 더욱 빗줄기가 굵어지기 시작하자 거리에 인적도 뜸해진다. 모두 카페로, 건물로, 어딘가로 몸을 피해버린 것이다.
하지만 남자는 종이뭉치를 끌어안고 비척 비척 거리를 걷는다.
소중한 것이라도 되는 것마냥, 혹시나 젖을새라 온 몸으로 종이뭉치를 덮고 그것도 모잘라 옷으로 끌어안은 모습이 필사적이다 못해 안쓰러운 느낌을 자아낸다.
그러나 남자는 남의 시선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묵묵히 자신의 할 일을 해나가고 있다. 절룩이는 다리를 끌며 거리에 떨어진 전단지를 줍는 것이다. 굉음을 내며 거리를 두들기는 늦가을의 빗방울도 그의 움직임을 멈추지 못했다.
남자가 허리를 굽혀 구겨진 전단지를 주워올린다. 반코팅된 용지 덕에, 종이는 바로 물에 젖지는 않았다. 대신, 구겨진 종이에 결을 따라 물방울이 모여든다. 또르르. 이윽고 굴러든 물방울이 모여드는 곳, 그곳에는 이제는 구겨진, 하지만 여전히 아름다운 외모의 여자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남자는 한쪽 손으론 전단지 뭉치를 안고, 다른 손으론 방금 주운 종이를 주워들고 섰다. 그러고도 한참을 그 모습으로 종이를 바라본다.
잘은 알 수 없지만, 조금 떨어진 곳에서도 알 수 있을만큼 확연하게 떨리는 그의 어깨를 보아하니, 눈물을 흘리는 남자의 얼굴이 눈에 보이듯 선명하다. 아마도 가을 비보다 더욱 굵은 눈물이 그의 얼굴을 적시고 있지 않을까.
그때였다. 누군가 그에게 다가섰던 것은.
처음엔 커다란 우산에 가려져 알아보기 힘들었지만, 조금 후 드러난 모습은 약 마흔살 남짓의 여성이이었다. 마른 체형의 여성은 자신이 쓴 우산 외에, 하나의 우산을 더 펼쳐 남자의 몸을 가려줬다.덕분에 온 몸으로 가을비를 받아내던 남자의 몸은 우산 아래로 감춰진다.
남자가 입술을 달짝이며 웅얼거린다. 여전히 양쪽 손에 종이를 쥔 채였기에, 우산은 어깨에 가볍게 걸쳐진 모습이다.
"집에 가자."
여성이 입을 열었다. 따뜻한 어조였지만, 어투에서는 말할 수 없은 깊은 슬픔이 묻어나온다.
"...이거...전단지...돌려야 돼..."
남자는 여전히 구겨진 전단지에 눈을 고정한 채 입술을 달짝거렸다. 어딘가 맥 빠진 생기 없는 목소리. 초점 없는 눈동자와 닮은, 높낮이가 없는 건조한 목소리다. 흠뻑 젖은 머리카락에서 내려온 물방울이 홀쭉하게 들어간 볼을 지나 턱 아래로 사라진다. 꺼끌꺼끌한 수염은 코와 턱을 지나 목 부근까지 지저분하게 자라있다.
"그만 좀!!!!!"
입술을 사려물며 고통을 삼켜내던 여자의 입에서 고함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거세게 터져나온 고함은 금세 빗소리에 지워졌고, 그것과 비슷한 속도로 여자의 목소리도 냉정을 찾는다.
"...그만 좀 해, 진우야. 누나도 힘들어...그래도...그래도 몸은 챙겨야지. 응? 너 이런 모습...나중에 시현이가 보면 어떻게..."
"시현이"를 발음할때부터 떨리던 여자의 목소리는, 결국 말을 맺지 못하고 끊어진다.
잠시나마 빗소리를 뚫고 이어지던 대화가 중단되자, 다시금 빗소리가 세상을 채우기 시작한다. 두두두- 우산 위로 부딪히는 빗방울 소리가 거세다.
남자의 눈은 여전히 구겨진 종이 위를 향하고 있다.
고여있던 물방울은 털어냈지만, 물에 젖은 종이는 어느새 짙은 회색으로 색깔을 바꾸고 있다.
코팅된 종이에 깨끗하게 인쇄된 두 장의 사진.
누가봐도 반할만큼 아름다운 여성의 얼굴과 그 오른쪽에 위치한 흑백의 사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어두운 흑백의 사진 속에는, 마치 물건이라도 옮기듯 무언가를 질질 끌고가는 덩치 큰 남자의 모습이 찍혀있다. 다만, 남자의 몸으로 가려진 부분 밖으로 드러난 하얀 다리가 사람, 그것도 어떤 여성의 다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불러온다.
"찾아야 돼....시현이...찾아야 돼..."
남자는 다시금 걷기 시작한다.
불편한 다리를 내딛자 겨우 어깨에 걸쳐져있던 우산이 나동그라진다. 순식간에 우산의 속살로 가을비가 퍼부어진다. 비를 막기 위한 둥그런 우산의 안쪽으로 빗방울이 차오른다.
하지만 남자는 그런것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것 같다. 눈길 한 번 주지않고 다시금 걸어간다.
나동그라진 우산도,
애타게 그를 부르는 누나의 외침도,
피부를 뚫을 듯이 거세게 쏟아지는 가을비도,
그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듯이 거리 저 편으로 멀어져간다.
모든 것을 잃은 사람다운 모습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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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이, 병신 새끼야!"
뺨을 연거푸 후려치더니, 폭력을 못 견디고 쓰러진 남자의 옆구리에 재차 발길질을 꽂아넣는다.
"죄..죄송...잘못했습니다..잘못했습니다.."
쓰러진 남자는 머리를 감싸쥐고 몸을 잔뜩 웅크려 애벌레 같은 모습을 취한 채 필사적으로 용서를 구한다. 하지만 그러고도 몇 번이나 발길질을 날아든 뒤에야 겨우 움직임이 멈춘다.
"내가 계집애들 관리 똑바로 하라고 했지? 엉? 안그랬냐? 특히, 그 년은 조심하라고 했지? 이 개자식들아. 초등학생을 데리고 와서 시켜도 니들보다는 더 빠릿하게 일하겠다. 뭐해? 일어나, 이 새끼야. 언제까지 자빠져있을거야. 가서 찾아와. 만약 그 년 도망쳤으면 너희 새끼들 다 바닷속에 수장시켜버릴 줄 알아!!"
실컷 폭력을 휘두른 남자가 병 째로 술을 들고 들이켠다.
벌컥 벌컥-
격하게 넘어가는 술을 보면서, 쓰러진 남자와 그 옆에 선 남자는 저 병이 자신들에게 날아들지 않기를 남 몰래 속으로 기도한다.
"아야야..쓰벌, 진짜. 더러워서."
"괜찮으십니까, 형님..."
"괜찮겠냐? 괜찮겠냐고, 이 새끼야."
조금 전까지 애벌레처럼 몸을 웅크리고 발길질을 당했던 남자가 옆에 걷고 있는 남자의 복부를 후려찬다. 후려찬 쪽은 꺽다리처럼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이고, 맞은 쪽은 보통 키에 선이 가느다란 남자다. 형님 이라는 호칭을 봤을때, 아무래도 꺽다리쪽의 계급이 더 높은 듯하다.
"빨리 앞장 서, 이 새끼야. 너 그 년이랑 친하잖아. 아오, 씨발...존나 아프네. 갈비 나간거 아냐..?"
꺽다리가 갈비뼈를 움켜쥐며 목을 꺽어 두두둑- 하는 소리를 만들어내는 사이, 얻어맞은 남자는 지체없이 앞질러 나간다.
"택아, 야이, 새끼야! 확실한거지?"
"네, 네! 형님. 확실합니다. 그 년 있는 곳 확실히 알고 있습니다."
"그럼 그냥 니가 가서 데려와라. 나 씨발, 옆구리가 쑤셔서 더는 못 가겠다. 거 삼거리 앞에 만화방으로 데려와. 거기서 쉬고 있을라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쉬고 계시면 제가 데려오겠습니다."
그러고도 몇 마디 더 꺽다리의 푸념을 받아준 뒤 발걸음을 옮긴다.
블록이라고 할 것도 없는 몇 개의 건물을 지나고, 너저분하게 생선대가리라던가 하는 것들이 널부러진 항구 근처의 시장을 지나 모래사장으로 들어서자 발이 푹푹 빠져 들어간다.
싸구려 구두 사이사이로 파고드는 모래의 느낌은 썩 좋은 것이 아니지만, 택이의 마음은 그것보다는 다른 것에 팔려 있다.
"아, 씨발 좀...."
남자는 자책하듯 자신의 머리를 두어번 손바닥으로 내리친다. 얼마쯤 걸어갔을까. 모래가 언덕처럼 불룩하게 솟아있는 곳 언저리의 여자의 모습이 보였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육지의 그것과는 성질이 많이 다르다. 짜지만 상쾌하고, 거칠며, 폭력적이다. 특히, 오늘같은 찌푸린 늦가을의 바닷바람은 무서울 정도로 매서운 법. 이런 날 해변에서 바다를 보고 있노라면 빨려들어 갈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덜컥 겁이 나곤 한다.
"야!!!!"
택이가 소리 지르자, 언덕 근처의 여자가 고개를 돌려 이쪽을 바라봤다. 그 바람에 붉은 색의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리며 춤을 춘다. 하지만 여자는 도망간다거나, 이쪽으로 달려온다거나 하는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진 않았다. 심지어는 일어나지도 않은 채, 그저 그곳에 무릎을 모으고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약이 오른 택이가 무릎 높이까지 발을 들어올리며 성큼성큼 언덕으로 뛰어간다.
"야, 너 진짜 맞아볼래?!"
남자가 뛰어오는 내내 베시시 웃으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여자는, 도착하자마자 때릴 듯 올라가는 그의 손을 보자 얼굴 앞으로 손을 모으며 어깨를 잔뜩 움츠린다.
"아..진짜..이걸 때릴 수도 없고.."
움츠리는 여자의 모습을 본 택이의 손이 천천히 내려온다.
우유처럼 새하얀 피부와 와인색의 머리카락. 어딘지 슬픈듯한 느낌을 주면서도 여우처럼 올라있는 눈초리. 어느샌가 미소를 지우고 무표정하게 바뀐 여자의 입술은 한 일자로 굳게 닫혀있지만, 앵두같은 붉은색만은 여전히 매력적이다. 하지만 전혀 관리를 하지 않은 듯, 입술의 이곳 저곳이 터서 일어나있다.
"야, 내가 나가지 말랬지? 약속했잖아. 너 자꾸 이러면 진짜 계속 가둬두는 수가 있어. 그러고 싶어? 예전처럼 저기 어두운 곳에 갇혀있을래?!"
숨을 고른 남자의 어투는 차분했지만, 여자의 어깨는 부들부들 떨려오기 시작했다. 양 손으로 팔을 끌어안고, 다리를 모아서 둥글게 몸을 말은 채 정신없이 고개를 가로젓는다.
여자의 격한 반응을 본 택이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회색빛 하늘은 먹구름으로 뿌옇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내 말 좀 들으라고! 너 이제 돌아가면....진짜 내가 답답하다."
돌아가면 분명히 얻어맞겠지. 아니, 그 정도면 다행일거야.
택이가 잠시 그런 생각에 빠진 사이, 여자가 그의 바지춤을 잡아당긴다.
"왜?....이거 뭐. 가지라고?"
여자는 택이의 눈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의 하얀 손바닥 위에는 별 모양의 조개껍데기가 올려져있다. 도시에서 온 사람들은 퍽이나 신기해하지만, 이곳에서 자고 나란 그에게는 딱히 신기할 것도 없는 별조개.
오히려 택이의 눈을 사로잡는 것은 그녀의 손과 손목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운 모래보다 더욱 곱고 하얀 그녀의 손. 그리고 그런 느낌을 그대로 가진 채 가늘게 뻗어나가는 팔. 단, 왼손의 팔목에는 정체불명의 손수건이 칭칭 감겨있다. 그 아래에 두껍게 말려있는 붕대를 감추듯이.
"됐어, 일어나. 빨리 가야돼. 형님 완전 빡쳤어. 너 시발, 말도 안하고 나오는 바람에 오야한테 존나 깨졌단 말이야."
아직 소년티를 벗지 못한 택이는 벌써부터 겁을 덜컥 집어먹은 상태다. 동네에서 주먹 깨나 쓰고 깡 좀 있다며 으스댔던 그였지만, 폭력배들의 세계는 학생들의 그것과는 완전히 다름을 절실히 느끼고 있다.
하지만 안절부절하는 택이와는 달리, 붉은 머리의 그녀는 느긋하게 엉덩이를 툭툭 털며 일어난다.어딘가 초탈해보이는 태도가 여유로워보이기까지 하지만,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여유와는 거리가 멀다. 이미 바닥에 바닥까지 본 사람이 가지는 체념적인 태도.
그녀는 택이의 손에 이끌려 모래밭을 가로질러간다. 마치 놀이공원에서 갖고 노는 헬륨풍선처럼, 택이가 이끄는 대로 저항없이 끌려간다.
바닷바람이 하얀 원피스와 붉은 머리카락을 세차게 펄럭였다.
"커..흣..."
남자의 주먹이 복부를 강타하자 시현이의 몸이 크게 꺽인다. 무릎이 꺽여 주저앉으려는 시현이를, 머리채를 잡아채며 재차 다시 일으킨다.
"이 씨발년이, 오냐 오냐 해주니까 아주 뵈는게 없나."
"형님!!"
꺽다리가 머리채를 붙잡고 뺨을 후려치려는 찰나, 택이가 몸을 던져 그의 손을 잡는다.
"형님, 이 년 얼굴에 기스라도 나면 저희 둘 다 죽어요, 정말."
형님 형님하며 폭력배 같은 말투를 쓰곤 있지만 어딘가 어설픈 그의 말투. 학교 선배인 꺽다리는 조직의 선배라기보다는 형 같이 느껴진다. 하긴, 조직이라기엔 너무나 작고 하는 일도 추잡한 양아치 짓의 불과한 이 그룹에서 선후배의 기강이 서긴 어렵기도 하다. 택이 역시 학교를 그만두고 이곳에 뛰어든지 이제 겨우 한달 여 남짓. 앞에 서있는 꺽다리에 소개로 이곳에 들어왔다.
"에이, 씨발."
슬그머니 손을 내린 꺽다리가 분을 못 이기고 가슴을 걷어찬 덕에, 시현이가 뒤로 벌러덩 나가떨어지고 만다.
"야, 담배 좀 줘봐."
싸구려 가죽쇼파 팔걸이에 걸터앉은채 담배를 꼬나물자, 좁은 실내 가득 연기가 들어찬다. 폐업한 만화가게를 아지트 삼아 사용하고 있다. 도시에서라면 상상도 못할 일이지만, 상권이 죽어버린 항구 마을에서는 특이한 일도 아니다. 드문 드문 빈 집은 얼마든지 있다.
"야."
꺽다리의 부름에도 시현이는 고개를 숙이고 묵묵부답이다. 그저 어깨를 가늘게 떨며 바닥만 바라보고 있다.
"야 이, 씹...야! 대답 안해?"
꺽다리가 발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툭툭 밀어내자, 그녀는 저항없이 밀렸다가 다시 돌아오고, 또 밀려나간 후에 다시 돌아오길 반복한다. 그러는 사이 그녀의 하얀 원피스의 가슴팍은 지저분한 먼지로 얼룩져간다. 동시에 헐렁한 원피스가 흐트러지며 그녀의 쇄골 아래 쪽을 살짝 드러내 보인다. 조금 전 벌러덩 나가 떨어지는 바람에 허벅지도 반 쯤 드러낸 모습이다.
꺽다리의 눈은 어느새 그런 그녀의 속살들을 훔쳐보고 있다. 짐짓 화난듯 으름장을 놓는 모습과는 달리 그의 시선은 끈적이하게 시현이의 이곳 저곳을 훑고 있다.
"안되겠네, 이 년. 야, 택아. 너 좀 나가 있어라."
"형님, 참으세요. 어디 생채기라도 나면 진짜..."
"아, 새끼. 알았으니까 나가있으라고. 내가 빠가인줄 알아? 나가. 임마. 야, 누구 오면 열어주지말고 일단 문 두드려라. 알지? 세 번 두드려라. 세 번."
눈을 홉 뜨고 윽박지르는 꺽다리에 성화에 못 이겨 계단을 올라간다. 올라가면서 뒤돌아보니, 여전히 꺽다리는 쇼파 팔걸이에 걸터앉은 모습이고, 시현이는 고개를 숙이고 있다.
쾅-
낡은 철문을 닫고 그 앞에 쪼그려앉아 담배를 꼬나문다. 망을 봐야하기에 멀리 갈 수도 없다. 만약 오야가 이러고 있는 걸 본다면 허벅지가 터지도록 빠따질을 당할테다.
"후우....나 잘 들어온건가...쓰벌.."
지하에서 올라왔지만 밖이라고 딱히 따뜻하지는 않다. 오히려 바람이 불어 더 추운 듯 싶다. 지하 만화방은 습하고 텁텁하긴 하지만 그만큼 은은한 온기가 있었다.
"에씨...더럽게 춥네..퉤."
택이는 담배를 꼬나문 채 팔을 부비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디 시장통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촌스런 무늬의 여름 셔츠는 조금의 온기도 전달해주지 않는다. 온기를 전달하긴 커녕 가지고 있는 체온까지 뺏어가는 것 같다.
학교에서 일진 노릇을 할때는 제법 스타일에도 신경쓰던 그였지만, 학교를 그만두고 선배를 따라 이곳에 온 이후론 매일 같이 이런 옷만 입는다. 도통 마음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선배의 올백머리를 피한 것만으로도 만족하는 중이다. 젤을 잔뜩 발라 넘긴 저런 머리까지 해버리면 쪽팔려서 죽어버릴지도 모른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한참 핸드폰을 만지고 있자니, 덜컹- 소리를 내며 철문이 열렸다. 아마도 2,30분쯤 지났을까.
"야, 씨바야. 담배 좀 줘봐라."
상기된 얼굴의 꺽다리가 입을 뻐끔거린다. 담배를 건네고 불을 붙였다. 바닷바람 탓에 라이터 불이 일렁거려 잠시 애먹긴 했지만, 곧 담배 끄트머리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하아...이 맛이지. 그러니까 새끼야. 가오 안나는 그런 싸구려는 갖다 버리고 지포라이터 하나 사라니까."
"알겠습니다, 형님."
쓸데없이 지포라이터를 살 마음은 없지만 굳이 토를 달진 않는다. 잠시 두 사람 사이에 말이 없다. 오직 두 가닥의 연기만 피어오를 뿐이다.
우중충한 항구 마을에 도로는 한적하다. 아주 가끔씩 지나가는 자동차와 간간히 보이는 후줄그레한 차림의 사람들.
조용히 담배를 빨던 택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촌스런 셔츠가 바닷바람을 잔뜩 먹고 부풀어 오르던 참이다.
"형님....쟤 뭐에요?"
"쟤 뭐가?"
"쟤요...이런데서 구르기엔 존나 아깝잖아요. 저 정도 쌍판이면 룸에 넣어도 월수 몇 천은 나올 것 같은데...... 뭐 빚져서 팔려온거에요?"
꺽다리는 담배 맛을 음미하며 대답을 지체시켰다. 뿜어져 나온 연기가 바람을 타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새끼, 너도 고추라고..... 야, 그 년 팔뚝에 구멍난거 못 봤냐. 완전 약에 절은 년이야. 나도, 뭐 자세한 출신은 모르겠는데, 오야랑 박사장이랑 얘기하는거 들어보니 여기 저기 졸라 구른 년이더만. 지금도 박사장 그 새끼가 오야한테 맡겨둔거야. 우리 선수도 아니고...그냥 잠시 맡아서 굴리는 거라고 해야 되나. 회사에도 그런거 있잖아. 뭐냐. 그거...아 생각 안나네."
"파견 뭐 이런거요?"
"그래, 이 새끼야. 그거, 파견. 하여간 박사장 그 새낀 완전 미친 새끼라니까. 듣자하니 뭐 돈을 받아쳐먹는 것도 아닌 것 같던데 그냥 여기 저기 빌려주면서 막 굴리는 것 같더만. 뭐하는 새낀질 모르겠단 말야."
"근데...형님. 박사장이 누구에요?"
"삐리한 새끼. 아, 너 못 봤던가? 아닌데. 봤잖아, 이 새끼야. 너 처음 온 날, 저 년이랑 같이 있던 허연 돼지새끼. 눈깔 풀려가지고 덩치 이따만한 그 새끼. 기억 안나? 안경쓰고."
그제야 택이의 머리를 스쳐가는 사람이 있다. 처음 이곳에 입사(?)하던 날 봤던 남자. 징그러울 정도로 허옇던 물렁살 돼지새끼. 딱 봐도 눈빛이 정상이 아니다 싶은 놈이었다. 두꺼운 뿔테안경으로 눈을 가리고 있었음에도, 몸에서 온통 위험한 느낌을 풀풀 풍기던 남자. 사십 쯤 먹었을까.
"포주에요?"
"아니. 약쟁이야, 그 새끼. 개 악질 약쟁이."
"약쟁이요? 그럼 쟤는 뭐래요?"
"아, 그 새끼 더럽게 꼬치 꼬치 캐묻네. 몰라, 임마. 니가 물어보든가. 약값 못 낸 술집년이든가, 아니면 뭐 사채를 못 갚았든가 그러겠지. 아니면 씨발, 지 마누라든가. 세상에 별 새끼가 다 있으니까. 야, 다 폈으면 저 년 좀 추스려서 데리고 가라. 나 삼거리 카페에 들렀다 갈라니까. 거기 알바년도 조금만 더 공들이면 넘어올 것 같은데 말야. 어지간히 애를 태운단 말이지."
꺽다리가 옆머리를 빗어넘기며 몇 걸음 나가더니 다시금 뒤돌아본다.
"티 안나게 똑바로 추스려. 알지? 티 나면 너랑 나랑 다 맞아죽는거다. 들어가기 전에 꼭 전화하고."
"네, 형님. 살펴가셔요. 비 쏟아질 것 같은데요."
자신의 말을 마친 꺽다리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흔들며 멀어져 간다.
한참을 그 모습을 보던 택이가 몸을 돌려 손잡이를 돌리자, 덜컹- 회색의 철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아가리를 벌린다.
가파르고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쇼파 위에 널부러진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 씨발.. 또...진짜.."
시현이는 2인용의 널찍한 쇼파 위에 널부러져 있다. 가랑이를 쫙 벌린 모습이지만 부끄러움도 잊은 듯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살짝 기대고 있다. 흰색의 싸구려 팬티는 그녀의 한쪽 다리에 걸쳐져 말려있고, 그녀의 보지 근처는 정액과 애액으로 지저분하게 번들거리고 있다. 가슴 주위가 붉게 올라온걸 보면 맞았거나 힘껏 쥐었거나 둘 중에 하나 일 것이다.
택이가 옆에 앉았건만, 젖가슴과 보지를 모두 드러낸 그녀는 다리조차 오무리지 않는다.
"야, 넌 부끄러움도 모르냐."
"...아파.."
대답을 기대하지 않은 말이었기에, 갑자기 돌아온 그녀의 대답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하고 만다.
흐리멍텅하게 생기 하나 없는 그녀의 눈동자는 여전히 초점없이 흐려진 채다. 가만히 그녀의 얼굴을 보다가 저도 모르게 손을 올려 그녀의 볼을 쥐게 된다. 말도 안되게 작은 얼굴.
"...어디가? 여기?"
택이가 손을 내려 아래쪽을 가리키자, 그녀의 고개가 힘없이 위아래로 끄덕거린다.
"...아파...닦아줘..."
"아이씨...더러운거면 니가 닦아야지 왜 날 시켜. 아, 진짜 형도 이럴꺼면 마무리는 알아서 좀 하지..."
잔뜩 인상 쓰며 투덜거리던 택이는, 말과는 달리 조심스럽게 그녀의 보지 근처로 티슈를 가져다댄다. 손이 닿자 시현이의 몸이 잠시 움찔하긴 했지만, 다 닦아낼때까지 별 다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했던 직후여서일까.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의 보지를 만지면서도 택이의 눈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팔뚝에 나있는 무수한 주사바늘. 물론, 그렇다고해서 남자로서 반응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시선이야 어쨌든, 택이의 자지는 이미 불끈하게 솟아올라있다.
"....싫어..이거. 물로 닦고 싶어...."
"아, 진짜. 너, 내가 만만하게 보이냐?"
택이가 닦아낸 휴지를 내팽겨치며 벌떡 몸을 일으켰다. 둘 밖에 없는 지하실이라 목소리가 조금 울리는 느낌이 든다. 너무 소리를 질렀나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하지만 정작 그 소리에 목표물이 된 시현이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물끄러미 고개를 들어 택이를 바라볼 뿐이다.
어딘가 슬픈듯, 그렇지만 묘한 색기를 품은 눈. 그 눈빛을 마주하자니 택이의 마음이 떨려온다. 처음 이곳에 들어오던 날, 처음 그녀를 봤을 때부터 쿵쾅거리는 심장을 느꼈다. 박사장-그 개새끼-의 옆에서 비 맞은 개처럼 벌벌 떨고 있던 그녀의 모습을 봤을 때부터.
"..알았어. 일어나. 안쪽에서 씻자."
못 사는 동네의 상점이 흔히 그렇듯, 이 가게 구석 한 켠에도 작은 방이며, 화장실이며 하는 것들이 붙어있다. 가게는 폐점한지 꽤 됐지만, 수도세며 전기세며 잡다한 비용은 내고 있기에 여전히 물과 전기는 끊기지 않고 나온다.
하지만 시현이는 몸을 일으키는 대신 양손을 위로 쭉 뻗는다. 누가봐도 안아서 일으켜 달라는 표시다. 아무래도 흔들리는 그의 마음을 눈치챈 듯, 얼마 전부터 이런 행동이 계속되고 있다. 처음에는 무서워서 말도 못 걸더니.
이쯤되면 기분이 나쁠만도 하건만, 아니, 버릇을 잡는 차원에서 화를 내야겠다는 생각도 들건만 도저히 화를 낼 수가 없다.
택이는 한숨을 푹 내쉬곤, 시현이를 안아 일으켰다.
옷을 훌렁 벗어던진 시현이가 비누칠을 하며 몸을 닦아낸다. 누가 보든 말든 상관없다는 듯, 열린 욕실 문 따위는 신경도 쓰지 않고 물줄기를 맞는다. 형광초록색의 촌스런 고무호스가 물을 토해낸다. 계절도 계절이고,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꽤 차가운 물일텐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닦아낸다.
"안 추워?"
"...응."
"원래 약 하고 그러면 무감각해지는거야?"
무릎 위에 팔을 올리고, 그 팔로 턱을 괸 택이가 심드렁하게 물어본다. 한달 동안 그가 지켜본 바에 따르면, 평소의 시현이는 상당히 무감각하고 무기력하다. 약을 맞지 않을때의 그녀는 마치 쥐약 먹은 강아지처럼 늘어져 있다. 뭘 해도 별 다른 감흥을 보이지 않는다. 선배의 말에 따르면 지금보다 더 오래 약을 안 맞으면 미친년처럼 날뛰게 된다는데, 아직 그런 모습은 본 적이 없다.
"...응..."
"몇 살이야?"
시현이를 돌보는 건 늘 막내인 택이의 임무였지만, 이렇게 완전하게 둘만 있어본 적은 없었기에 궁금했던 질문이 술술 나온다.
"...스물 여덟..."
"와, 아줌마네. 나보다 10살, 아니 11살이나 많네?"
"....."
몸을 씻고 나온 시현이가 툭툭 물을 털어낸다. 그 움직임에 따라 출렁이는 유방, 붉은색이 확연한 보지 부근에 수풀. 그 중에서도 가장 그의 눈을 사로잡는건 왼쪽 젖가슴 위에 새겨진 "P" 라는 커다란 알파벳 이니셜이다.
택이는 꺽다리의 말을 떠올렸다. "그 새끼 마누라일지도 모르지."
"그거 혹시....아니다. 박사장이랑은 무슨 관계야?"
박사장.
택이의 입에서 그 이름이 떨어지는 순간, 시현이의 눈이 불을 뿜을듯 그를 노려본다. 조금 전까지 시체처럼 흐느적 거리던 사람이라곤 믿기 힘들 정도로 살기 가득한 눈빛. 택이는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했다.
"아, 물으면 안되는건가. 미안."
그러고도 옷을 모두 입고 지하실을 빠져나올때까지 두 사람 사이에는 말이 없다. 이런 조직에 있는 몸이지만, 아직 때묻지 않은 택이는 저도 모르게 미안함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고 있다. 거칠긴 하지만, 그만큼 순진한 부분도 있는 바닷가 마을의 10대 소년이다.
밖으로 나오자 찬 바람이 사방에서 몰아쳐온다. 하늘도 한층 더 짙은 색으로 바뀌는 바람에, 아직 낮인데도 밤처럼 캄캄하다.
원래대로라면 도망을 막기 위해, 시현이의 팔목을 잡고 끌어야겠지만, 겸연쩍은 마음에 조금 떨어져 걷던 택이의 팔뚝으로 시현이가 달라붙었다. 몰캉하게 뭉그러지는 여체가 팔 언저리에서 느껴진다.
"..추워.."
그녀의 하얀 원피스 자락이 바닷바람을 맞아 격하게 펄럭거린다. 계절과 어울리지 않는 반팔소매 탓에 밖으로 드러난 새하얀 팔뚝은 한층 더 가늘어 보인다.
잠시 자신의 팔에 들러붙은 시현이를 내려다보던 택이가 시현이의 어깨를 감싸안았다. 시현이보다 머리 반개 정도 더 클 뿐인 탓에 완전히 그녀의 어깨를 감싸안긴 힘들었지만, 그에 맞춰 그녀도 택이의 가슴에 안기며 허리를 감싸안았기에 별 다른 어려움없이 안을 수 있었다.
"이러면 됐지? 감기 걸리면 안된다. 너 감기 걸리면..."
말을 이으려던 택이는 그냥 삼켰다.
이런 일을 하고 있는 놈이지만,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뱉고 싶진 않았다.
"손님 못 받는다. = 상품가치가 떨어진다."
너무도 비인간적이다.
하지만 양심과 도덕보다도 깊은 곳에서 무언가 마음을 자극해오는게 있었다. 마치 심장의 세포라도 찌르는 듯 콕콕 찌르는 무언가가 느껴진다.
말을 멈추고 어깨를 감싸안은 팔에 한층 더 힘을 줘 끌어당긴다. 시현이 역시 거부하지 않고 한층 더 택이에게 몸을 밀착시켜 온다. 날씨 탓인지 시현이의 몸이 파르르 떨리고 있다.
시끌벅적한 도심의 밤거리. 화려한 네온사인과 요란한 굉음. 동서남북으로 갈라진 길을 따라 온갖 유흥업소가 늘어서 있다.
그 조용한 항구 마을에서 겨우 30여분 남짓한 곳에 이런 도시가 있다는건 놀라운 일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지방 도시가 그렇듯, 이 도시 역시 일부만이 화려할뿐, 조금만 번화가를 벗어나면 촌스런 광경이 펼쳐진다. 외곽을 따라 움직이면 한쪽에 위치한 작은 항구도 발견할 수 있다. 그래봤자 어촌계의 배나 들락거리는 작은 규모의 항이지만.
그 시끄러운 도시의 어느 골목. 운전석에 앉은 택이는 자꾸 자꾸 핸드폰만을 만지작 거리고 있다. 초조한듯, 짜증난듯, 별 용건도 없이 화면을 켰다 껐다를 반복한다. 스스로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더러운 기분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중이다.
부르르- 핸드폰이 몸을 떨었다. 액정에 뜬 꺽다리의 번호를 보며 큼큼-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네, 형님. 네, 좀 전에 들어갔습니다. 3명이요. 멀쩡한 새끼들이던데요. 정장도 입고. 네. 걱정 마세요. 거기 삼거리 여관쪽에 계실꺼죠? 네, 전화 드리고 가겠습니다. 갈때 연락 드릴게요. 네. 즐거운 보내십시오, 형님."
원대래로라면 같이 왔어야 한다. 오야는 둘이 같이 움직이는 줄 알고 있다. 하지만 한참 작업녀에 빠진 꺽다리는 도중에 내려 다른 곳으로 샌 참이다.
전화를 끊은 택이가 고개를 들어 간판을 올려다본다. 선팅된 자동차의 앞 유리 너머로 번쩍이는 모텔 간판의 네온사인이 선명하다.
"아우, 씨발년 졸라 잘 빠는데?"
안경을 낀 뚱뚱한 남자는 침대 위에 무릎을 꿇고 앉은 채 땀을 비오듯이 쏟아내고 있다. 이런 날씨에 에어콘까지 켰음에도 땀이 멈출 줄 모른다. 시현이는 남자에게 머리채를 휘어잡힌 채 펠라치오를 강요당하고 있다. 붉은 입술이 남자의 자지 기둥을 몇 번이고 빨아댄다. 씻지 않은 남자의 자지에서는 시큼한 땀냄새와 정액냄새가 범벅이 되어 올라왔지만, 입에 문 자지를 뱉어낼 수는 없다.
"야, 김대리! 밑에서 니 불알 보는거 졸라 찝찝하다."
시현이의 아래에 깔린 남자가 낄낄거리며 그녀의 젖가슴을 농락한다. 작은 피어싱이 달린 그녀의 유두가 남자의 혓놀림에 따라 이리 저리 몸을 일그러트린다. 굳이 동료의 불알을 보는 이 포지션을 택한 이유는, 이 자리가 보지의 삽입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의 자지는 시현이의 몸 속 깊은 곳으로 삽입되어 있다.
찔걱- 찔걱-
남자의 움직임에 따라 시현이의 보지에서는 음란하고 축축한 물소리가 새어나온다. 길다란 자지가 보지 끝에 닿을때마다 그녀의 몸이 움찔 움찔하며 반응한다.
"거봐, 이 자리가 명당이라니까. 자세도 존나 편하잖아."
시현이의 엉덩이에 붙은 남자가 허리를 흔들며 말했다. 다른 남자들 모두가 그렇지만, 이 남자의 얼굴도 이미 시뻘겋게 상기된 상태다. 남자의 허리가 앞으로 내질러질때마다 시현이의 애널 깊숙히 자지가 파고든다. 개발될대로 개발된 시현이의 항문은 아무런 어려움없이 남자의 자지를 집어삼키며 꽉꽉 물어댄다.
"아우...씨..이 년, 후장 존나 조이네. 천천히 물어 이, 썅년아."
애널을 탐닉하는 남자가 시현이의 엉덩이를 후려치자 살갗이 발갛게 올라온다.
탱탱한 그녀의 몸은 남자들의 움직임에 따라 제각기 춤을 추고 있다. 벌렁이며 남자의 자지를 삼키는 보지, 꽉꽉 조여오는 애널, 그리고 목구멍까지 닿는 자지 탓에 꺽꺽거리며 필사적으로 핥아대는 입까지. 그녀의 모든 곳은 남자들의 쾌락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씨발, 진짜 젖소처럼 크네. 한 손에 안 잡혀, 이 년. 야이, 썅년아. 음메 해봐. 음메 해보라고."
아래에 누운 남자는 거칠게 젖을 쥐어짜며 "음메"를 요구했지만, 시현이는 그런 울음소리를 낼 수가 없다. 입에 자지를 물린 남자가 더욱 거칠게 머리채를 잡아끄는 탓이다. 대신 남자는, 허리를 들어 그녀의 가슴을 삼킬듯이 빨아댄다. 츄르릅-
"꺼헉...욱....아흑-! 아흐윽--!"
"야, 이거 존나 신기해. 보지에서 존나 니 자지가 느껴진다. 개 찝찝하네."
"병신 새끼. 찝찝하기는. 언제 이런걸 해본다고."
밑에서 보지에 박아대던 남자가 낄낄대자, 애널을 차지한 남자가 한층 더 힘을 내기 시작했다. 그녀의 골반에 손을 얹고 미친듯이 박아대기 시작한다. 가뜩이나 네명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던 침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삐걱 거린다.
"아학!!! 아하악!!"
애널의 들어오는 움직임이 거칠어지자, 자지를 입에 물고 있던 시현이가 고개를 휘저으며 몸부림친다. 그 바람에 펠라치오를 받던 남자는 자지를 파고드는 에어컨 바람을 느끼게 됐다.
"이 년, 또 발광하네. 야, 빨리 싸. 다음 후장은 나다."
입에 물리고 있던 남자가 아쉬운듯 입맛을 다시며 물러서자, 시현이는 이제 온전히 자지와 애널의 느낌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히잇...힉!! 조...아앙....학학-! 아아아응!!"
시현이의 입에서는 믿을 수 없을만큼 음란한 신음이 터져나온다. 금방이라도 미쳐버릴 것처럼 머리를 거세게 흔드는 바람에 붉은색의 머리카락이 풍차처럼 펼쳐진다. 다만, 예전처럼 긴 머리가 아닌 어깨 부근에 오는 단발머리기에 그리 화려하진 않다
"이 개같은 년, 존나 화냥년이네 씨발. 양쪽으로 박히면서 좋다고 허리 흔드는거 봐라."
"야이 씹년아, 더 세게 흔들어봐. 니 년 따먹으려고 얼마를 쓴 줄 알아? 씨발년아, 보지에 힘 꽉 안줘?"
보지에 박아넣던 남자가 시현이의 젖꼭지를 비틀어 당기자, 가뜩이나 커다란 유방이 평소보다 훨씬 더 길게 늘어난다.
"아학!!! 거기 좋아...거기 좋아...히엣-!"
두 남자가 얼굴을 시뻘겋게 물들이며 피스톤질을 함에도 불구하고, 시현이는 얼굴 한 번 찡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녀의 얼굴에는 환희의 가득 찬 미소가 피어있다. 낮에 모습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을만큼 음란한 모습이지만, 그녀는 그런 것 따위는 상관하지 않는 듯하다.
"야, 이 년 봐. 졸라. 침까지 질질 흘리네. 미친년 아냐, 이거?"
잠시 떨어져 세 남녀의 모습을 감상하며 담배를 꼬나문 돼지가 말했다. 남자의 말처럼 시현이의 입가에는 투명한 액체가 흘러내린다.
쾌락의 극에 달한 시현이의 손가락과 발가락이 꽉-! 움츠러들며 몸을 긴장시킨다.
"아으윽, 이년 존나 조여 못 참겠다 씨발.....아욱!!!"
"야, 야 나도...읏-!"
귀두 끝까지 찌릿해질 정도로 잔뜩 예민해진 자지를 보지와 항문이 거침없이 꽈악 물어오자, 참지 못한 남자들이 거의 동시에 그녀의 몸 속으로 정액을 토해낸다. 콘돔x, 질사(질내 사정)o 라는 광고 그대로 아무런 안전장치 없는 생(生) 정액이다.
"허억- 허억. 이 씨발 년 존나 명기네, 진짜. 엄청 조여."
"비켜봐. 이 년 눈 깔봐. 아직도 만족 못했나본데. 오빠가 오늘 아주 작살을 내주마."
두 남자가 빠져 나간 구멍에서는 허연 정액이 흘러나온다. 애널을 따라 흘러내린 정액이 보지에서 나온 만나 강을 이루며 그녀의 허벅지를 따라 흘러내리려는 찰나, 그녀가 손을 뒤로 돌려 보지 부근에서 정액을 넓게 펴며 문지른다. 부럽게 보지 부근을 자극하던 가느다란 손가락이 곧이어 가장 자극적인 클리토리스 부분으로 미끄러져 문질러대자 아랫도리가 빳빳하게 긴장하며 움찔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돼지가 뒤로 돌아가 시현이의 엉덩이를 붙잡는다. 커다란 엉덩이. 예전보다 확실하게 거무스름해진 애널과 보지지만, 여전히 어떤 남자의 자지도 꼴리게 만들 수 있는 마력의 샘이다.
"완전 발정이 났구나, 이 암캐년. 세명이 박아줘도 만족을 못 하네. 오늘 아주 작살을 내줄테니까 기대해라잉."
"아하악....좋아...더...더..."
남자의 자지가 아직도 정액이 흘러나오는 보지를 파고든다.
"야이 씨발, 졸라 찝찝해. 니 정액 넘치는 거 봐라."
"병신 새끼, 당연하지. 꼬우면 콘돔끼든가."
"개소리 하네. 이 년 보지가 얼마짜리 보진데 콘돔을 껴?"
돼지는 허리를 밀어 자지를 쑤욱- 집어넣는다. 여자에 대한 배려 따위는 조금도 없다. 순식간에 굵은 자지가 끝까지 닿았다가 다시 빠져나온다.
하지만 시현이는 그런 움직임을 거부하지 않는다. 거부하긴 커녕 오히려 클리토리스를 더욱 격렬하게 비벼대기 시작했다.
"아앙...오-빠!!...더 세게..더 세게!! 아흣...학!"
돼지의 손가락 두개가 애널을 파고들자, 시현이의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진다.
"꺼흑!"
"와, 씨발 진짜 개보지네, 이 년. 남자라면 환장을 하는구나."
"병신들아, 그만 쉬고 빨리 붙어. 시간 얼마 안남았다. 한 번 싸고 갈꺼냐?"
돼지의 닥달에, 보지를 담당하던 남자가 다가와 입에 자지를 물린다. 애널에 붙었던 남자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담배를 찾아물고 있다.
"이 년이 정기를 쪽 빨아갔나봐. 존나 힘드네. 야이 씹년아, 니 년 혀로 정성스럽게 닦아내봐. 그래, 그렇게. 아우...이 년 오랄스킬도 죽여주네."
시현이는 보지 가득 들어차는 충만함을 느끼며 바쁘게 혀를 놀린다. 입 안 가득 비릿하고 찝찔한 정액의 맛이 느껴지자, 다시금 아랫도리가 화끈거려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돼지의 자지가 격렬하게 보지벽을 마찰하자, 저도 모르게 온 몸을 떨며 오르가즘을 느끼고 말았다.
전쟁터.
섹스를 치르고 난 뒤 풍경을 보며 전쟁터를 떠올리는건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언제나 이불이나 휴지 등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니까.
하지만 3 대 1의 섹스라면 그 풍경은 더욱 지독해진다. 온갖 것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고, 방 안에는 남녀 네 명분의 채취가 가득하다. 땀이며, 정액이며, 정체를 알기 힘든 시큼한 냄새까지.
그런 광경에 한 가운데, 침대 위에 널부러진 시현이는 정액 공장이라도 되는 것처럼 두 구멍으로 쉴 새 없이 정액을 토해내고 있다. 보지가 움찔거릴때마다 하얀 정액이 토해져 나온다. 뒷 동네 애널의 사정도 마찬가지. 얼굴이며 가슴이며 온갖 곳에 수컷의 정액이 범벅되어 있다.
시현이는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듯 미동도 하지 않는다. 그저 가뿐 숨을 따라 가슴 부근만 오르락 내리락한다.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쉰 택이가 뒷처리를 하기 위해 그녀의 몸을 잡았을 때였다.
"하아읏...!!"
흥분이 가라앉은 몸의 남자의 손이 닿자, 다시금 시현이의 몸에서 경련이 일어난다.
부르르.
보지에서 토해져나오던 정액의 속도가 빨라진다. 보지에서 뿜어져 나온 물줄기 때문이리라.
그 모습을 지켜보는 택이의 마음은 왠지 모르게 무겁고 더러운 기분이다.
"개새끼...애한테 약을 얼마나 쳐먹인거야..."
물 먹은 솜처럼 축 쳐진 시현이를 부축해 욕실로 들어간다. 탈진한 시현이는 거의 걷지도 못하고 그의 어깨에 매달려 끌려간다.
가드레일에 붙은 노란 도로등이 번쩍이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 하지만 자동차가 지나가고 헤드라이트 빛이 사라지면 곧 다시 어둠 속으로 모습을 감춘다.
점점이 켜진 가로등 길을 지나 한 대의 차량이 달려가고 있다. 늦은 밤의 도로에는 한 대의 차량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도로 양 옆에는 요란하게 우는 풀벌레 소리가 가득 한 것이, 가을임을 알려준다.
택이는 힐끔 힐끔 옆에 앉은 시현이의 모습을 훔쳐본다. 17살, 봉고차를 끌만한 면허증이 있을리 없는 나이. 하지만 그들의 세계에서는 그런 것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다. 걱정해본 적도 없고, 제지당해 본 적도 없다. 경찰이라면 시내를 빠져나올때도 마주쳤다.
조수석에 앉은 시현이는 잔뜩 흐트러진 모습이다. 오늘 밤만 두 탕. 벌어들인 돈이 70만원. 하지만 그 중에 시현이의 몫으로 떨어지는 건 없다. 단 한 푼도.
그녀는 그저 창문에 머리를 기댄 채 멍하니 앞을 바라보고 있다.
아직 약효가 사라지지 않았을테지만, 기진맥진한 몸은 어쩔 수 없는 것이다. 몇 해를 약에 쪄들어 제대로 된 관리조차 받지 못하며 굴리는 몸. 예전 같은 체력이 남아있을리 없다. 아니, 예전 수준의 체력이 남아있다하더라도, 정상적인 여자라면 견디기 힘들 정도로 강한 섹스가 계속 되고 있으니 의미가 없으려나.
"...아픈덴 없어?"
택이가 말을 걸어봤지만, 시현이는 여전히 묵묵부답이다. 그녀의 입 언저리에서 귀 쪽으로는 선명한 자국이 새겨져 있다. 아마도 입에 재갈을 물렸을때 생긴 자국인 듯 하다. 40대 중반 정도로 보였던 두번째 손님은 본디지와 SM 플레이를 즐겼다. 당연히, 선수-시현이- 보호 차원에서 상처가 남을만한 일은 허락되지 않았지만, 이런 자국까지는 어쩔 수 없다. 팔이며, 가슴이며, 사타구니까지, 보지 않아도 그런 자국이 가득할 것이라는건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한참을 조용히 밖을 바라보던 시현이가 입을 열었다. 바깥 날씨처럼 차갑고 쓸쓸한 어조다.
"...택아."
"야, 이제 너까지 택이냐. 나 아주 동네북됐구만.....왜?"
"...나 언제까지 이래야 될까?"
짐짓 짜증을 내던 택이가, 음울한 목소리에 이끌려 그녀의 모습을 바라본다.
시현이는 여전히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있었기에 얼굴이 보이진 않는다.
하지만 밤의 차창에 비친 눈물을 보는 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노란 가로등 불빛이 교차하며 그녀의 얼굴을 밝히고 있다.
여전히 우중충한 날씨가 계속되고 있다.
약국에 다녀온 택이는 갑작스레 쏟아져내리는 빗방울을 피해 잽싼 동작으로 방 안으로 들어섰다.
"자, 일어나봐."
택이가 시현이의 몸을 조심스레 일으킨다. 가녀린 어깨와 팔을 잡고 움직임을 도왔지만, 그녀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이거부터 먹고...빨리 삼켜. 그래, 그리고 이거."
알약을 먹게 한 뒤 뜨끈한 쌍화탕을 건넸지만, 그녀는 손을 내밀어 받는 대신 가만히 쌍화탕을 바라보고만 있다.
답답한 마음에 화를 낼까 어쩔까 잠시 망설이던 택이가 조심스레 그녀의 입가로 병을 가져다댄다. 따끈한 쌍화탕 병의 온기가 시현이의 입술에 와닿았다.
꿀꺽- 꿀꺽-
그녀가 조용히 쌍화탕을 받아마신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행동은 남자를 테스트하는 여자의 본능적 행동이다.
흘리지 않도록 조심스레 병을 기울이던 택이는, 병이 빈 것을 확인하고 조심스레 손을 거뒀다.
"무슨...애기 키우는 기분이네, 이거. 옛날엔 많이 했었는데."
"....동생...있어?"
시현이가 고개를 돌려 택이의 얼굴을 바라본다. 자신에게 따뜻하게 대해주는 남자. 아직 어려서 세상의 때가 덜 묻은 탓일까. 지난 3년간 이 곳 저 곳을 떠돌며 겪었던 남자들 중 유일하게 자신을 사람 취급해준 남자다. 애인 대행플레이를 제외하고.
하지만 남자를 볼때마다 시현이의 마음 한 켠은 도려내듯 아파온다. 기억속의 누군가와 많이 닮았기에. 외모적인 모습이 아닌, 마음 씀씀이가 말이다.
"없어.........죽었어. 교통사고로."
택이는 아무렇지 않다는 듯 그녀의 이마를 짚으며 말했다. 여전히 불덩이처럼 뜨겁다. 바짝하게 마른 입술, 펄펄 끓는 열.
과격한 섹스 뒤에는 항상 이렇게 힘들어한다. 특히, 이번엔 환절기 탓인지 평소보다 몸살 기운이 심각하다.
물끄러미 택이를 바라보던 그녀가 입을 열었다. 불안을 애써 억누르는 듯한 목소리가 묻어나온다.
"오...늘도 나가야 돼? 나?"
"아니, 아니 없어. 아까 봤는데 예약 손님 없었어."
택이가 약봉지며 빈 병을 정리하고 있다. 무심한 듯 하지만, 아침 일찍부터 장부를 확인한 참이다. 자꾸 시현이가 눈에 밟히는 탓에 평소 하지 않는 부지런을 떨었다.
그녀의 몸값은 비싸다.
셀 수 없이 많은 남자가 거쳐간 몸이지만, 아직도 비싼 화대를 받고 있다. TV에서나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얼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금의 인조미도 없다. 거기에 온갖 하드한 플레이도 OK. 쓰리섬, 포썸, SM, 야외플레이 등. 덕분에 매니악한 인간들이 자주 그녀를 찾는다. 워낙 출중한 외모 덕에 평범한 애인 플레이나 섹스를 원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보다는 하드 플레이의 화대가 높기 때문에 오야는 항상 하드 플레이어들을 환영한다.
"돈에 환장한 개새끼."
시현이에게 약을 주는 날은 손님을 받을 때 뿐이다. 바꿔 말하면, 손님을 받지 않으면 약을 주지 않는다는 말. 덕분에 시현이는 좋든 싫든 손님을 받아야 한다. 자력으로 버텨내기엔 시현이의 약물 중독증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러 있다.
"..추워."
들려오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시현이가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건강한 택이의 입장에서는 숨 막힐 정도로 후끈하게 데워진 방이었지만, 그녀는 사시나무 떨 듯 떨고 있다. 철 이른 솜이불까지 꺼내 두르고 있음에도.
"옷 꺼내줄까? 겨울 옷?"
"..아니.."
택이는 그녀의 얼굴을 바라봤다. 온 몸을 덜덜 떨고 있는 그녀.
창백할 정도로 하얗고 고운 피부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그녀의 얼굴에서는 깊은 피로와 공포, 절망감이 묻어나온다. 약을 맞을때는 화색이 돌고 힘이 넘치기에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아 손님들은 알 수 없지만, 곁에서 그녀를 수발(?)하는 택이로서는 이런 무기력하고 지친 모습을 더 자주 보게 된다.
눈가에 내려앉은 다크서클이 만들어내는 어두움일까. 예전의 그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문득 그녀에게 예전 이야기를 묻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시현이의 작은 말소리에 타이밍을 놓치고 만다.
"...한 번만....나 한 번만...안아줄래..."
그녀가 목소리는 힘 없이 떨리고 있다.
"안는다."
택이의 심장이 다시금 쿵쾅 쿵쾅 고동치기 시작한다. 벌써부터 격하게 뛰고 있던 심장의 소리를 이제야 눈치챈 것에 지나지 않지만, 아무튼 상대방에게 들리지 않을까 걱정이 될 만큼 커다란 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더..럽지...?"
망설이는 그를 보며 시현이가 고개를 떨군다. 그 바람에 사르륵 쏟아지는 붉은 머리가 택이의 눈을 자극했다.
아니다.
더럽다고 생각해서 망설이는게 아니다. 지금도 너무나 큰 심장소리가, 만약 안게 되면 어디까지 들리게 될 지 걱정 됐을 뿐이다.
"그딴 소리 하지마. 난 징징 거리는 계집애들이 제일 싫더라."
괜히 마음에도 없는 차가운 말투로, 하지만 슬며시 다가가 그녀의 등을 끌어안는다. 신장은 그리 차이 나지 않았지만, 워낙 마른 시현이의 몸은 어렵지 않게 그의 가슴에 품어진다. 철진이에게 끌려다니게 된 이후로 시현이의 몸은 눈에 띄게 말랐다. 약의 부작용인지, 마음 고생 탓인지는 알 수 없지만.
시현이가 그의 손을 잡아 자신의 어깨 위에 두른다. 이제 택이는 그녀를 뒤에서 완전한게 끌어안은 모습이 됐다.
"...따뜻하다. 잠깐만.... 이러고 있어줄래.."
서서히 그녀의 몸에서 떨림이 잦아든다. 추위 때문이었을까,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이유는 알 수 없다.
잠시 그러고 있자니, 조용한 대기를 뚫고 아스라히 멀리서 바닷소리가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항구 마을에서도 조금 더 외곽에 떨어진, 주인 없는 옛 집과 비닐 하우스, 그리고 컨테이너 몇 개가 이 조직이 가진 재산의 전부다. 덕분에 바닷소리가 마을에서보다 더욱 선명하게 들려온다.
시현이의 마음 속으로 무거운 감정이 내려앉는다.
언젠가 들었던 바닷소리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때도 누군가의 품에 안겨있었더랬다. 따뜻하고 넓은, 사랑하는 누군가의 품. 흡사 그때와 같은 따뜻함과 말도 안되게 뒤집어진 자신의 지난 몇 년간을 떠올리자니 왈칵- 마음 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기운이 솟구쳐 오른다. 심장에서 뿜어져 나온 뜨거운 기운은 기어코 그녀의 눈을 통해 투명한 물방울이 되어 흘러 내린다.
"울어? 야.."
갑작스런 눈물에, 택이가 어쩔 줄 몰라 허둥거린다. 당황해서 급히 빠져나가려는 그의 손을 제지하며 입술을 팔에 묻고 울음을 삼켜낸다.
"..미안....신경쓰지마. 그냥 이러고 있어줘. 잠깐만....잠깐만..."
그 사람은 아직도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까.
진우, 선미 언니, 막냇 동생의 얼굴, 원장 선생님과 보육원 아이들.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떠오르는 그리운 사람들의 얼굴. 입술을 그러물고 그리움을 참아내던 날들과 참아내야 하는 날들.
참다 참다 더 이상 견디지 못할 것 같은 날에는 왼손 팔목에 또 하나의 상처가 생겨난다. 붕대로 감춰진 팔목.
그렇게 얼마나 앉아있었을까. 갑작스레 택이의 핸드폰이 울린다. 컬러링이 없는 기본음이지만 누구의 핸드폰인지는 고민할 필요도 없다. 시현이에게는 핸드폰도, 전화도, 아무 것도 없으니까.
시현이를 감싸안은 채 통화하던 택이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냉큼 일어나서 밖으로 나간다. 사람의 온기가 사라지자 그 틈으로 차가운 냉기가 파고든다.
길어지는가 싶던 통화는 의외로 빨리 끝났다. 하지만 들어오는 택이의 표정은 침통하게 일그러져 있다. 주저하며 말을 꺼내지 못하던 택이가 어렵게 입술을 뗀다.
"이따....손님 있대."
지친 표정의 시현이는 하지만, 예상했다는 듯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어처피 선택권이 없는 일이다.
하지만 그녀의 얼굴은 어딘가 가을 바다를 닮은 서글픈 모습이다.
"죽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버티지 말고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매일 같이 그런 생각을 하는 나날들. 하지만 인간의 몸은 그리 쉽게 죽어주지도 않는다.
무엇보다도, 죽고 싶다는 마음과는 상반되는 또 다른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살고 싶다.
그리고, 보고 싶다. 한 번만 더. 나의 사람들."
시현이는 아득해져가는 정신 한 켠에서 그런 생각을 떠올렸다.
"정신 차려. 야."
꺽다리가 시현이의 볼을 찰싹 찰싹 때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현이의 눈은 여전히 초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조금 몸을 비틀거리는 같았기에, 택이는 저도 모르게 슬쩍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지탱해줬다. 꺽다리의 시선을 끌지 않을만큼 조심스런 동작이다.
"내일이지?"
"네, 형님."
택이가 힐끔 시현이의 얼굴을 훔쳐본다. 하얗게 질린 그녀의 얼굴에선 불안감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내일."
박사장의 방문 예정일.
들어온지 한달 남짓 된 택이는 이야기만 들어서 알고 있을 뿐이지만, 꺽다리에 이야기대로라면 박사장은 한달 혹은 두달의 한번씩 이곳을 찾아온다고 했다. 약도 공급하고, "맡겨둔" 그녀의 상태점검을 위한 행보.
그 탓일까. 시현이의 모습은 눈에 띄게 불안해 보인다.
"택아, 저 년 감시 잘해라. 박사장 올때쯤만 되면 늘 저렇게 상태가 안 좋아. 지랄발광을 할지도 모르니까, 어디 데리고 나가지말고 방 안에 가둬놔라. 오야가 돈줄이라고 애지중지하는거 알고 있지?"
"알고 있습니다, 형님."
"그래, 저 년 없어지면 너도, 나도, 오야도 다 끝나는거야. 박사장 그 새끼, 인간 같지도 않은 놈이라더라. 그 새끼 약을 위쪽에서 떼온다는 소문도 있어. 수틀리면 저 년 대신 우리 장기를 다 털어갈지도 모른다. 생각만 해도 소름 돋지 않냐?"
꺽다리가 손을 배 앞에다가 대고 터는 시늉을 한다.
내장이 털린다니. 저도 모르게 슬그머니 두 손으로 배를 감싸쥐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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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드렸던대로, 애초부터 계획했던 "민서지몽 - 악마"의 다중엔딩 중 "블랙" 과 "화이트"의 엔딩을 에필로그 단편 형식으로 다시 다듬어서 업로드 합니다.
처음 계획은 블랙의 모든 편과, 화이트의 모든 편을 일시에 올릴 생각이었지만,
그렇게 되면 한 쪽으로만 관심이 쏠려지는 느낌이 들어 나눠서 업로드 할 예정입니다.
Ver. 작가라고 달린 이유는, 개인적으로 민서지몽 - 악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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