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새벽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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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새벽25.
“적당히 하지?”
창우는 자동차 핸들을 꼭 쥔 채, 룸미러로 성렬을 훔쳐봤다. 성렬은, 팔짱을 낀 채 바깥을 훔쳐보고 있는 은비의 다리를 매만지며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은비는 성렬의 손을 애써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창우의 존재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날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어딘가 낯설다. 강간범과 그의 동료. 그리고 잠들어 버린 애인. 이런 상황에서도 어쩐지 겁은 나지 않았다. 겁이 나야 했다면 진즉에 났어야 했다.
은비는 가만히 숫자를 셌다. 하나, 둘, 그리고 둘 반. 그리고 셋.
자신의 다리를 매만지고,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는 남자와 나눈 세 번의 섹스. 하지만 은비는 끝내 강압과 강제라는 말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난 강간당한 게 아니야. 내가 선택했을 뿐이야.’
이상한 논리였다.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괴이한 논리.
정우와 다투고 지금까지 네 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성렬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육신은 끈적거리는 촉감으로 진득거리고 있었고, 성렬이 벗어준 낡은 잠바에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성렬에 의해 강제로 육신을 내맡겨 아픔을 느끼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아물 듯, 성렬이 건네준 아픔은 형언할 수 없는 흥분으로 전이되어 갔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 상황에서 겁을 먹은 것 같지도 않고.’
창우는 빨간 신호등에 맞춰 브레이크를 여러 번 나누어 밟았다. 낡은 엔진 소리가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창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룸미러로 자신의 시선을 내던졌다.
1초, 2초. 그리고 3초.
네모난 거울을 타고 묘령의 여인의 가느다란 눈빛이 춤을 추듯 일렁이고 있었다. 먼저 시선을 거둔 건 창우였다. 그리곤 보조석에 쥐죽은 듯 쓰러져있는 정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잠깐 멈춰서 모텔이라도 들어갈까, 우리? 그러면 나 진짜 실력 발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제대로 홍콩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구. 손장난 같은 거 말구 말이지.”
성렬의 조롱에 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성렬의 손에 의해 입고 있던 잠바가 다시 보기 좋게 벗겨져도, 하얀색 브레지어가 거칠게 내려가도, 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평소 자신이 고수하던 성격과는 꽤나 거리가 멀어보였다.
“결국 여자는 여자일 뿐이지. 사실은 너도 좋은 거지?”
대답은커녕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은비 때문에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여자다. 아니 묘한 여자다. 벌써 몇 번을 품었지만, 그래도 또 정복하고 싶어지는 대상이다. 성렬의 40년 인생을 통틀어 이런 여자는 처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런 년을 죽여야 하다니.’
창우의 눈치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성렬은 은비의 젖가슴을 입에 가져다 물었다. 그리곤 은비 몰래 창우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창우가 무서운 결단력을 가진 놈이라는 사실 쯤 잘 알고 있다. 어떤 예정, 혹은 예상과는 달리 ‘모두 죽여야 한다’라는 그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성렬은 더욱더 거칠게 은비의 육신을 잠식해 갔다.
“내 눈치 같은 거 보지 말아유.”
가볍게 스틱 기어를 매만지던 창우가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킨 채 소리쳤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은비가 그 말에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창우에 의한 게걸스러운 소리만이 뒷좌석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인 걱정도 하지 말아유. 깊이 잠들었으니까.”
은비는 가만히 창우를 쳐다봤다. 창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기분이 묘했다.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제 3자에 의해 순식간에 떨어진 허락과 용인. 은비는 그제야 자신의 가슴에서 성렬을 힘껏 밀쳐냈다.
“왜 이래? 한참 좋아질려고 했는데.”
“내가 너희한테 그런 허락 같은 걸 얻어야 돼? 지랄들 하지마. 착각들 하지 말라고. 야. 네가 날 강간한 게 아니라, 내가 널 그냥 허락 한 것 뿐이야. 그러니까 잘난 척 떠들지들 마.”
창우와 성렬은 나란히 은비를 쳐다봤다. 성렬은 은비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우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룸미러만 쳐다봤다.
“야, 너 돌았냐?”
“병신, 그래 보이냐?”
“이런 썅년이 진짜.”
“대가리가 안돌아가도 잘 기억해. 허락은 말이야, 너보다 나은 놈이 너 같은 하등한 인간들한테 선물로 주는 거야. 그러니까 너 따위가 나를 강제로 안은게 아니라, 내가 내 몸을 살짝 허락했을 뿐인 거라고. 알아들어?”
“대가리가 어떻게 됐네, 이 년.”
이 여자 보통 내기가 아니다. 창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곤 룸미러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살짝 입맛을 다셨다.
‘역시 죽여야겠어. 다.’
26.
봉고차가 덜컹 거리며 낯선 공간에 멈춰 섰다. 성렬은 은비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고, 은비는 이제 장소 따위 어떻게 되든 좋다는 생각으로 바깥을 보고 있었다.
날이 밝아올수록 공포는 가중되고 있었다. 물론 그 막연한 공포는 창우의 몫이었다. 서울까지 외곽을 따라 요령껏 달려왔다. 하지만 쓸데없는 시간이 늘어났다. 자신의 발밑에 놓인 두터운 망치를 살펴보다 이내 시선을 정우에게로 돌렸다.
“꺄아. 그래도 내 생각 해주는 건, 친구놈밖에 없구나. 야, 내려.”
“잠깐.”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차가 멈추어 선 곳은 공교롭게도 허름한 모텔 앞이라는 사실을. 서울엔 얼추 다 다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창우는 정우와 은비를 약속된 곳까지 데려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잠깐 담배 좀 피자.”
창우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성렬이 은비의 가슴을 한 번 더 세게 움켜쥐다 봉고차 문을 열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말은 그렇게 해도 역시 걱정 되는 거지?”
“그러게 갑자기 금은방은 왜 털어서.”
“허, 이 새끼 봐라. 지도 좋다고 같이 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냐?”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긴 하다만, 이제 돈 걱정은 없고. 그보다.”
“그냥 죽이고 싶어진 거야?”
성렬은 창우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창우는 머리를 굴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야 늘 그래왔듯, 또 어디로 도망치면 그만이잖아. 설마 약속이 마음에 걸리는거야?”
“아니. 그냥 이유는 모르겠는데, 저 새끼, 저거. 그냥 죽이고 싶어졌어.”
“그래서 어쩔 샘인데? 어차피 여기 서울이잖아. 나야 뭐 별다른 생각이랄게 있나. 그냥 저 년만 어떻게 한 번 더 먹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
“음.”
창우는 봉고차 뒷좌석을 노려봤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은비의 얼굴을 보며, 창우는 머리를 굴렸다. 깜빡이는 모텔 간판을 보며 안달이 나기 시작한 성렬이 무작정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빨리. 이럴 시간에 몇 번을 더 쑤실 수 있단 말이다. 길게 안 해. 모텔 들어가서 한번만 하고 나올게. 그러고 나서 목을 따든, 배를 가르든, 마음대로 하라구. 아 몰라, 몰라. 도망이야 또 가면 되는거지, 뭐.”
성렬은 창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봉고차로 뛰어갔다. 창우는 더 이상 성렬을 막아 세우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성렬을 막아 세우는 것은 무리다. 창우는 고개를 돌려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내려.”
발정난 개처럼 성렬은 봉고차 문을 열고 소리쳤다. 이미 정우의 존재 따윈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건 은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리라고. 아이 씨발, 진짜.”
“내가 하는 말 뭘로 들었어?”
급하다, 시간이 없다. 건방진 저 년을 후려갈길까? 그리고 머리채를 잡고 모텔까지 질질 끌고 갈까? 성렬은 좋지 않은 인상을 구기며 은비를 노려봤다.
‘저게 어딜 봐서, 강간당한 년의 태도냐?’
성렬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은비의 그런 태도는 확실히 성렬을 다른 쪽으로 흥분하게 만들었다. 머릿속엔 온통 모텔 시트를 짓이기며 울부짖는 은비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욕망을 분출하고 싶다. 다시 간절한 욕구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성렬은 자신의 물건을 손으로 만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력 발휘 할 기회 좀 주라. 그래. 허락 좀 해 주라. 너 따 먹는 거. 미안하지만, 내가 왜 미안해해야 하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다. 그러니까 좀 나오지 그래?”
성렬의 쉰 목소리가 플랫하게 공중에서 뿌려졌다. 자신의 인내력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었다. 눈앞의 암컷이 또 무엇이라 지껄인다면, 금은방 주인의 시체가 들어 있는 큰 짐가방을 열고 그 날카로운 식칼을 꺼내들 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7.
“길게는 못 기다린다.”
“알고 있어. 한 번만 진득하게 싸고 나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아 참 그리고.”
더 이상 거친 방언을 쏟아내지 않고 있던 창우가, 잔득 안달이 난 성렬을 막아 세웠다. 엉덩이를 씰룩이며 모텔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은비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성렬이 창우를 쳐다봤다.
“저 여자는 네가 처리해라. 원래부터 네 몫이었으니까.”
성렬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창우의 손을 뿌리치며 서둘러 은비를 따라갔다. 어떻게 되든 좋았다. 죽일 땐 죽이더라도, 재미를 보고 싶다. 창우는 성렬의 손에 이끌려 모텔로 끌려 들어가는 은비를 지켜보다, 정우가 기절해 있는 봉고차에 다시 올라 탔다.
“쉬다 가실 건가요, 아니면.”
“아무거나 줘요, 아무거나. 한 번만 따먹고 바로 나올거니까.”
성렬은 이제 거칠게 없었다. 이미 수많은 커플을 받아내었을 모텔 주인은 상기된 얼굴의 남자와, 어쩐지 그런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어려 보이는 여자를 번갈아가며 살펴봤다.
“왜, 씨발 뭐 잘못 된거라도 있어?”
은비는 팔짱을 끼고 주인 여자를 쏘아봤다. 그러자 주인 여자는 아무런 내색 없이 키 하나를 꺼내 성렬에게 던지듯 내밀었다. 성렬이 살짝 인상을 썼지만, 고작 이런 것에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었다. 숫자를 확인하지도 않고는 은비의 손을 잡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디서 값싼 다방 레지라도 불러 온 건가? 끼리끼리 잘 어울리네. 에휴.”
모텔 주인은 한동안 은비의 뒷태를 쳐다봤다. 핫팬츠 차림으로 요란하게 흔들리는 엉덩이를 보며, 주인은 자신의 생각을 더욱더 공고히 했다.
28.
“아, 아파.”
“후우.”
성렬은 문을 열자마자, 은비를 침대에 내던졌다. 은비가 붉게 물든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며 소리쳤지만, 성렬은 그런 은비의 몸 위로 파고들었다. 싸구려 매트릭스가 요동치면서 듣기 싫은 삐걱거림이 계속 됐지만, 성렬은 정신없이 은비의 옷들을 벗겨 나갔다.
“잠깐.”
성렬에 의해 잠바와 브레지어가 순식간에 벗겨진 은비가 성렬을 제지하며 말했다. 하지만 성렬은 은비의 젖가슴을 입에 물고 은비의 핫팬츠 단추를 정신없이 더듬고 있었다.
“잠깐만이라니까.”
“입 닥치고 있어.”
“아, 잠깐.”
“아이 씨발, 진짜.”
성렬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은비를 노려봤다. 뺨을 후려칠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싸구려 침대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할 새도 없이, 은비는 또렷하게 성렬을 올려다봤다.
“왜.”
“나 씻고 싶어.”
“야, 이 미친년아.”
절로 욕이 나왔다. 이 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걸까? 성렬은 은비를 쳐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성렬은 그런 은비의 말을 무시하며 서둘러 자신의 바지 자크를 내렸다.
“내 말 못 들었어? 나 샤워하고 싶다고.”
“그럴 시간 없어, 씨발년아.”
“그럼 비켜.”
성렬은 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의 옷을 벗어 옆으로 내던졌다. 발기한 물건이 바지춤에서 튕겨져 나왔고, 성렬은 은비의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은비의 분홍색 천조각을 발목 아래까지 그대로 당겨 내렸다. 그리곤 적당히 땀이 베인 은비의 젖가슴을 입에 물고 자신의 물건을 은비의 몸에 밀착 시켰다.
9부 end. 내일 10부로.
“적당히 하지?”
창우는 자동차 핸들을 꼭 쥔 채, 룸미러로 성렬을 훔쳐봤다. 성렬은, 팔짱을 낀 채 바깥을 훔쳐보고 있는 은비의 다리를 매만지며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 말했다. 은비는 성렬의 손을 애써 거부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젠 창우의 존재 또한 신경 쓰지 않았다.
세상이 빠르게 변화하며 지나가고 있었다. 날은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고, 유리창에 비친 자신의 얼굴은 어딘가 낯설다. 강간범과 그의 동료. 그리고 잠들어 버린 애인. 이런 상황에서도 어쩐지 겁은 나지 않았다. 겁이 나야 했다면 진즉에 났어야 했다.
은비는 가만히 숫자를 셌다. 하나, 둘, 그리고 둘 반. 그리고 셋.
자신의 다리를 매만지고, 자신의 목덜미를 쓰다듬고 있는 남자와 나눈 세 번의 섹스. 하지만 은비는 끝내 강압과 강제라는 말을 떠올릴 수 없었다.
‘난 강간당한 게 아니야. 내가 선택했을 뿐이야.’
이상한 논리였다. 자신조차 납득할 수 없는 괴이한 논리.
정우와 다투고 지금까지 네 시간 가까운 시간이 흘러가고 있었다. 성렬의 타액으로 범벅이 된 자신의 육신은 끈적거리는 촉감으로 진득거리고 있었고, 성렬이 벗어준 낡은 잠바에는 이제 완전히 익숙해지고 있었다. 성렬에 의해 강제로 육신을 내맡겨 아픔을 느끼면서도, 시간이 흐르면 상처가 아물 듯, 성렬이 건네준 아픔은 형언할 수 없는 흥분으로 전이되어 갔다.
‘도대체 정체가 뭐야? 이 상황에서 겁을 먹은 것 같지도 않고.’
창우는 빨간 신호등에 맞춰 브레이크를 여러 번 나누어 밟았다. 낡은 엔진 소리가 브레이크 소리와 함께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창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고 룸미러로 자신의 시선을 내던졌다.
1초, 2초. 그리고 3초.
네모난 거울을 타고 묘령의 여인의 가느다란 눈빛이 춤을 추듯 일렁이고 있었다. 먼저 시선을 거둔 건 창우였다. 그리곤 보조석에 쥐죽은 듯 쓰러져있는 정우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잠깐 멈춰서 모텔이라도 들어갈까, 우리? 그러면 나 진짜 실력 발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 제대로 홍콩 보낼 수 있을 것 같다구. 손장난 같은 거 말구 말이지.”
성렬의 조롱에 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성렬의 손에 의해 입고 있던 잠바가 다시 보기 좋게 벗겨져도, 하얀색 브레지어가 거칠게 내려가도, 은비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모르긴 몰라도 평소 자신이 고수하던 성격과는 꽤나 거리가 멀어보였다.
“결국 여자는 여자일 뿐이지. 사실은 너도 좋은 거지?”
대답은커녕 반응조차 보이지 않는 은비 때문에 안달이 나기 시작했다. 이상한 여자다. 아니 묘한 여자다. 벌써 몇 번을 품었지만, 그래도 또 정복하고 싶어지는 대상이다. 성렬의 40년 인생을 통틀어 이런 여자는 처음이라고 해도 좋았다.
‘이런 년을 죽여야 하다니.’
창우의 눈치 따윈 아랑곳하지 않고, 성렬은 은비의 젖가슴을 입에 가져다 물었다. 그리곤 은비 몰래 창우와 나누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어리숙해 보이지만, 창우가 무서운 결단력을 가진 놈이라는 사실 쯤 잘 알고 있다. 어떤 예정, 혹은 예상과는 달리 ‘모두 죽여야 한다’라는 그의 말을 거부할 수는 없다. 그럴수록 성렬은 더욱더 거칠게 은비의 육신을 잠식해 갔다.
“내 눈치 같은 거 보지 말아유.”
가볍게 스틱 기어를 매만지던 창우가 시선을 앞으로 고정시킨 채 소리쳤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던 은비가 그 말에는 슬쩍 고개를 옆으로 틀었다. 창우에 의한 게걸스러운 소리만이 뒷좌석에서 순환하고 있었다.
“그리고 애인 걱정도 하지 말아유. 깊이 잠들었으니까.”
은비는 가만히 창우를 쳐다봤다. 창우는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기분이 묘했다. 허락을 구하지도 않았는데, 제 3자에 의해 순식간에 떨어진 허락과 용인. 은비는 그제야 자신의 가슴에서 성렬을 힘껏 밀쳐냈다.
“왜 이래? 한참 좋아질려고 했는데.”
“내가 너희한테 그런 허락 같은 걸 얻어야 돼? 지랄들 하지마. 착각들 하지 말라고. 야. 네가 날 강간한 게 아니라, 내가 널 그냥 허락 한 것 뿐이야. 그러니까 잘난 척 떠들지들 마.”
창우와 성렬은 나란히 은비를 쳐다봤다. 성렬은 은비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창우는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못하고 룸미러만 쳐다봤다.
“야, 너 돌았냐?”
“병신, 그래 보이냐?”
“이런 썅년이 진짜.”
“대가리가 안돌아가도 잘 기억해. 허락은 말이야, 너보다 나은 놈이 너 같은 하등한 인간들한테 선물로 주는 거야. 그러니까 너 따위가 나를 강제로 안은게 아니라, 내가 내 몸을 살짝 허락했을 뿐인 거라고. 알아들어?”
“대가리가 어떻게 됐네, 이 년.”
이 여자 보통 내기가 아니다. 창우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곤 룸미러에 시선을 고정시킨 채 살짝 입맛을 다셨다.
‘역시 죽여야겠어. 다.’
26.
봉고차가 덜컹 거리며 낯선 공간에 멈춰 섰다. 성렬은 은비의 가슴을 주무르고 있었고, 은비는 이제 장소 따위 어떻게 되든 좋다는 생각으로 바깥을 보고 있었다.
날이 밝아올수록 공포는 가중되고 있었다. 물론 그 막연한 공포는 창우의 몫이었다. 서울까지 외곽을 따라 요령껏 달려왔다. 하지만 쓸데없는 시간이 늘어났다. 자신의 발밑에 놓인 두터운 망치를 살펴보다 이내 시선을 정우에게로 돌렸다.
“꺄아. 그래도 내 생각 해주는 건, 친구놈밖에 없구나. 야, 내려.”
“잠깐.”
이제야 알 수 있었다. 차가 멈추어 선 곳은 공교롭게도 허름한 모텔 앞이라는 사실을. 서울엔 얼추 다 다다른 것 같았다. 하지만 당연하게도 창우는 정우와 은비를 약속된 곳까지 데려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왜?”
“잠깐 담배 좀 피자.”
창우가 먼저 문을 열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자 성렬이 은비의 가슴을 한 번 더 세게 움켜쥐다 봉고차 문을 열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어.”
“말은 그렇게 해도 역시 걱정 되는 거지?”
“그러게 갑자기 금은방은 왜 털어서.”
“허, 이 새끼 봐라. 지도 좋다고 같이 털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딴소리냐?”
“돈 때문에 시작한 일이긴 하다만, 이제 돈 걱정은 없고. 그보다.”
“그냥 죽이고 싶어진 거야?”
성렬은 창우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창우는 머리를 굴리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야 늘 그래왔듯, 또 어디로 도망치면 그만이잖아. 설마 약속이 마음에 걸리는거야?”
“아니. 그냥 이유는 모르겠는데, 저 새끼, 저거. 그냥 죽이고 싶어졌어.”
“그래서 어쩔 샘인데? 어차피 여기 서울이잖아. 나야 뭐 별다른 생각이랄게 있나. 그냥 저 년만 어떻게 한 번 더 먹을 수만 있으면 좋겠다.”
“음.”
창우는 봉고차 뒷좌석을 노려봤다.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은비의 얼굴을 보며, 창우는 머리를 굴렸다. 깜빡이는 모텔 간판을 보며 안달이 나기 시작한 성렬이 무작정 다시 입을 열었다.
“아 빨리. 이럴 시간에 몇 번을 더 쑤실 수 있단 말이다. 길게 안 해. 모텔 들어가서 한번만 하고 나올게. 그러고 나서 목을 따든, 배를 가르든, 마음대로 하라구. 아 몰라, 몰라. 도망이야 또 가면 되는거지, 뭐.”
성렬은 창우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봉고차로 뛰어갔다. 창우는 더 이상 성렬을 막아 세우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발목을 잡히고 싶지 않았지만, 더 이상 성렬을 막아 세우는 것은 무리다. 창우는 고개를 돌려 담배 연기를 내뿜었다.
“내려.”
발정난 개처럼 성렬은 봉고차 문을 열고 소리쳤다. 이미 정우의 존재 따윈 까맣게 잊은 것 같았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건 은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내리라고. 아이 씨발, 진짜.”
“내가 하는 말 뭘로 들었어?”
급하다, 시간이 없다. 건방진 저 년을 후려갈길까? 그리고 머리채를 잡고 모텔까지 질질 끌고 갈까? 성렬은 좋지 않은 인상을 구기며 은비를 노려봤다.
‘저게 어딜 봐서, 강간당한 년의 태도냐?’
성렬은 혀를 내둘렀다. 하지만 은비의 그런 태도는 확실히 성렬을 다른 쪽으로 흥분하게 만들었다. 머릿속엔 온통 모텔 시트를 짓이기며 울부짖는 은비의 모습만이 가득했다. 욕망을 분출하고 싶다. 다시 간절한 욕구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성렬은 자신의 물건을 손으로 만지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실력 발휘 할 기회 좀 주라. 그래. 허락 좀 해 주라. 너 따 먹는 거. 미안하지만, 내가 왜 미안해해야 하는지도 솔직히 모르겠지만,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마지막 말이다. 그러니까 좀 나오지 그래?”
성렬의 쉰 목소리가 플랫하게 공중에서 뿌려졌다. 자신의 인내력은 이미 임계점을 넘어가고 있었다. 눈앞의 암컷이 또 무엇이라 지껄인다면, 금은방 주인의 시체가 들어 있는 큰 짐가방을 열고 그 날카로운 식칼을 꺼내들 참이었다.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7.
“길게는 못 기다린다.”
“알고 있어. 한 번만 진득하게 싸고 나올 테니까, 잠깐만 기다려.”
“아 참 그리고.”
더 이상 거친 방언을 쏟아내지 않고 있던 창우가, 잔득 안달이 난 성렬을 막아 세웠다. 엉덩이를 씰룩이며 모텔 앞으로 걸어가고 있는 은비에게서 시선을 거두며 성렬이 창우를 쳐다봤다.
“저 여자는 네가 처리해라. 원래부터 네 몫이었으니까.”
성렬은 머뭇거리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창우의 손을 뿌리치며 서둘러 은비를 따라갔다. 어떻게 되든 좋았다. 죽일 땐 죽이더라도, 재미를 보고 싶다. 창우는 성렬의 손에 이끌려 모텔로 끌려 들어가는 은비를 지켜보다, 정우가 기절해 있는 봉고차에 다시 올라 탔다.
“쉬다 가실 건가요, 아니면.”
“아무거나 줘요, 아무거나. 한 번만 따먹고 바로 나올거니까.”
성렬은 이제 거칠게 없었다. 이미 수많은 커플을 받아내었을 모텔 주인은 상기된 얼굴의 남자와, 어쩐지 그런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많이 어려 보이는 여자를 번갈아가며 살펴봤다.
“왜, 씨발 뭐 잘못 된거라도 있어?”
은비는 팔짱을 끼고 주인 여자를 쏘아봤다. 그러자 주인 여자는 아무런 내색 없이 키 하나를 꺼내 성렬에게 던지듯 내밀었다. 성렬이 살짝 인상을 썼지만, 고작 이런 것에 시간을 낭비할 겨를이 없었다. 숫자를 확인하지도 않고는 은비의 손을 잡고 앞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어디서 값싼 다방 레지라도 불러 온 건가? 끼리끼리 잘 어울리네. 에휴.”
모텔 주인은 한동안 은비의 뒷태를 쳐다봤다. 핫팬츠 차림으로 요란하게 흔들리는 엉덩이를 보며, 주인은 자신의 생각을 더욱더 공고히 했다.
28.
“아, 아파.”
“후우.”
성렬은 문을 열자마자, 은비를 침대에 내던졌다. 은비가 붉게 물든 자신의 손목을 매만지며 소리쳤지만, 성렬은 그런 은비의 몸 위로 파고들었다. 싸구려 매트릭스가 요동치면서 듣기 싫은 삐걱거림이 계속 됐지만, 성렬은 정신없이 은비의 옷들을 벗겨 나갔다.
“잠깐.”
성렬에 의해 잠바와 브레지어가 순식간에 벗겨진 은비가 성렬을 제지하며 말했다. 하지만 성렬은 은비의 젖가슴을 입에 물고 은비의 핫팬츠 단추를 정신없이 더듬고 있었다.
“잠깐만이라니까.”
“입 닥치고 있어.”
“아, 잠깐.”
“아이 씨발, 진짜.”
성렬이 붉게 충혈된 눈으로 은비를 노려봤다. 뺨을 후려칠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았다. 싸구려 침대 위에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할 새도 없이, 은비는 또렷하게 성렬을 올려다봤다.
“왜.”
“나 씻고 싶어.”
“야, 이 미친년아.”
절로 욕이 나왔다. 이 년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제대로 알고나 있는 걸까? 성렬은 은비를 쳐다보며 그렇게 생각했다. 성렬은 그런 은비의 말을 무시하며 서둘러 자신의 바지 자크를 내렸다.
“내 말 못 들었어? 나 샤워하고 싶다고.”
“그럴 시간 없어, 씨발년아.”
“그럼 비켜.”
성렬은 대꾸도 하지 않고 자신의 옷을 벗어 옆으로 내던졌다. 발기한 물건이 바지춤에서 튕겨져 나왔고, 성렬은 은비의 허리에 손을 올린 채, 은비의 분홍색 천조각을 발목 아래까지 그대로 당겨 내렸다. 그리곤 적당히 땀이 베인 은비의 젖가슴을 입에 물고 자신의 물건을 은비의 몸에 밀착 시켰다.
9부 end. 내일 10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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