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새벽 - 1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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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새벽33.
성렬과 은비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각각 모텔을 빠져 나왔다. 무엇이 불만인지 잔득 인상을 구기고 있는 모텔 주인에게, 둘 중 그 어떤 누구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조금 화가 난 듯한 창우에게, 성렬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모텔에서 뒹굴고 있었다.
“됐다. 서둘러.”
“야, 그런데.”
“뭐.”
“쟤네 진짜 죽여야 되냐?”
창우는 대답대신 물끄러미 성렬을 쳐다보기만 했다. 성렬은 고개를 돌려 은비를 훔쳐봤다가, 끝내 알았다고만 말했다.
“정신차려.”
“알았어. 이제 어디로 갈건데? 설마 여기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지.”
창우는 곁눈질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성렬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법 좋은 곳이 있더라고.”
“산? 아니 그보다, 연락은 해 주는 편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창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렬은 제법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곳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곤 갑작스레 무슨 생각이 들어 창우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저기 가서 죽이기 전에 쟤랑 한 번 더 해도 되냐?”
창우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젠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다.
34.
새가 날아 품안으로 들어온다. 여지껏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깃 털. 거친 손으로 그것을 어루만지러 했을 때, 갑자기 새가 부리로 그 손을 쪼아낸다. 화가 나서 그것을 잡아채려 했지만, 새는 또 다른 새와 함께 하늘 위로 사라져 갔다. 남자는 그것을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정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천천히 눈을 떴다. 꿈이라고 하기엔 더럽게 기분나쁜 꿈. 정신이 몽롱하다.
그리고 봉고차 창문 너머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어딘가 새롭게 느껴졌다.
“윽.”
자세를 고치려 했을 때, 아까 창우에게 가격당한 뒷머리에서 저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우는 머리를 매만지면서 고개를 슬쩍 돌렸다.
“헛.”
창우는 운전대에 팔을 괴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정우를 쳐다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손에 전화기가 들려 있다. 창우가 손을 슬쩍 들어 올렸을 때, 정우는 몸을 살짝 뒤로 피했다.
“애초에 난 그 쪽하고 거래같은 거 한 기억이 없수다. 뭐 꼬우면 신고라도 하시던지. 어. 몰라, 슬슬 시간이라. 그만 끊겠어.”
창우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분명 배터리가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통화를 하고 있는 창우의 모습을 보며, 정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너 이. 이런짓을 하고도.”
“겁도 참 많구먼.”
창우는 담배에 불을 지폈다. 잔득 겁을 집어 먹은 정우는 창우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슬쩍 뒤로 돌렸다. 그런데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은비와 성렬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잠깐 화장실 갔어.”
“여긴 어디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정우는 이 상황에서도 창우에게 말을 낮추지 않았다. 가만히 담배만 피고 있던 창우는 천천히 정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잖아.”
“.........”
“아무렴 어때. 상관없어.”
창우는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경직된 채 고개를 슬쩍 돌리던 정우는 창우가 하는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다. 바지춤에 찔러 넣었던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창우와 정우는 그것이 누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창우는 커다란 짐가방의 자크를 천천히 잡아 당겼다. 정우는 숨을 죽이고 그것을 지켜봤다.
창우에 의해 짐가방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절반을 넘어 완전하게 그것이 개봉되었을 때, 정우는 짐가방 안에 담긴 사람의 형상을 보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금은방 사장이야. 처음엔 살려두려고 했는데, 어찌나 그렇게 발악을 하던지. 짖어대는 소리가 짜증나서 죽여 버렸지. 뭐, 이렇게 되면.”
창우는 가방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가방을 잠시 뒤적이는가 싶더니 천천히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정우는 창우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식칼을 가만히 지켜봤다. 창우는 담배를 입에서 때어내곤 봉고차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정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죽어야 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35.
성렬은 정신없이 은비의 몸을 핥아댔다. 성렬의 혀와 결코 고르지 못한 치아가 은비의 몸을 스쳐 지나갈수록, 은비의 몸 이곳저곳에 잔인한 키스마크가 알알이 새겨져 갔다.
“버릇없는 똥강아지를 확실하게 길들여 주겠어.”
은비는 살짝 부풀어 오른 자신의 오른쪽 뺨을 매만졌다. 성렬의 진득한 혓바닥이 자신의 은밀한 곳을 자극하고, 그 꺼칠한 수염이 부드러운 클리토리스 위에서 미끄러져 갈수록 은비는 커다란 나무에 기대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직접 뭉툭한 자지를 넣고 흔드는 것 보단, 역시 이런게 좋은 거지? 내가 몰랐네. 그동안 내 욕심만 차려서. 확실하게 봉사해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애인은 푹 자고 있잖아? 이번엔 오래 즐겨 보자구.”
깊이 잠들어 있던 정우의 모습이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신을 낯선 남자에게 내맡기면 내맡길수록 정우에 대한 그림자는 은비의 머릿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성렬은 은비의 두 다리를 우악스럽게 벌려, 친히 자신의 혀로 은비의 그곳을 거칠게 애무해 나갔다. 성렬과 은비의 주변에 흩뿌려진 각자의 옷가지들이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은비의 브레지어와 핫팬츠, 그리고 신발자락. 성렬의 때가 늘러 붙은 옷가지들.
“밝은데서 보니까 몸매가 아주 죽여주네. 계속 어두운 데서만 했었잖아, 우리? 방금전 모텔에서의 그것 빼고 말이야.”
성렬이 간신히 은비의 그곳에서 입술을 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두 손은 은비의 엉덩이를 계속해서 주무르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중년 남자와 어린 여자의 나신이, 이름 모를 산속에서 조용히 흩뿌려지고 있었다.
“솔직히 애인이랑 빠굴뜨면서 제대로 느껴본 적 없지? 나랑 하는게 좋은 거지?”
“음.”
“대답해봐, 또 맞기 싫으면.”
성렬이 은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은비는 자신의 오른쪽 볼을 타고 느껴지는 얼얼한 감촉과 성렬의 날카로운 눈빛에 잔득 위축이 되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성렬이 자리에서 일어나 은비를 똑바로 쳐다봤다.
“알았어, 알았어. 안 때려. 아까는 하도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봐. 너도 그렇게 강한 척 하더니만, 결국 여자일 뿐이잖아. 그러니까 말해봐. 어차피 할 거, 서로 좋아야 하잖니? 여태까지 잘 즐겨 놓구, 이제 와서 애간장 태우지 말자. 응?”
성렬은 은비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말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유두의 감촉.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성렬은 애써 그 대답이 듣고 싶었다. 수컷으로써의 본능이 성렬의 육신을 지배해 나갔다.
“알았으니까, 빨리 해.”
“아이 썅. 또 반말이네? 넌 씨발 머리도 좋은 년이,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듣냐? 아까 내가 뭐라고 했어, 엉?”
성렬이 은비의 얼굴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은비가 질끈 눈을 감았다. 성렬은 손을 천천히 은비의 얼굴 쪽으로 가져다 댔다. 자신이 새겨 놓은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성렬은 다시 한 번 은비의 대답을 강요했다. 은비는 감은 눈을 뜨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았어요.”
“뭐?”
“당신이랑 하는게 좋았다구요.”
“그렇지?”
성렬은 은비의 두 볼을 붙잡고 사정없이 입술을 훔쳤다. 중년의 거친 혀와 젊은 여자의 촉촉한 혀가 뒤엉켜 낯선 소리를 만들어 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은비와 성렬은 천천히 몸을 밀착시켰다.
‘이런 재미로 기집년들 따는 거지.’
성렬은 게걸스럽게 은비의 입술을 훔쳤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두 손을 은비의 뒤 쪽으로 밀어 넣으며 천천히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그리곤 중지를 그 사이로 슬쩍 밀어 넣어, 은비의 어딘가를 슬쩍 매만졌다.
“음.”
“아직도 민감해? 아까 봉고차에서 계속 만져 줬잖아.”
“그래도.”
“그래도라니. 아까 봉고에서는 알았다고 했잖아? 사실 피임이니 뭐니, 기집애들 하는 꼴 보면 그렇게 웃긴 짓거리가 따로 없어. 제일 안전한 건 똥꼬로 하는 거거든.”
성렬은 은비의 주름진 무엇을 중지로 매만지며 은비에게 말했다. 은비는 다리를 천천히 꼬면서 성렬을 쳐다봤다. 성렬은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은비의 그곳에 자신의 남성을 밀어 넣고 싶었지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섹스를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이긴 아까운데.’
성렬은 창우가 명령조로 말했던 그 말을 떠올렸다. 화가 났을 때의 창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성렬이다. 괜히 그의 말을, 아니 명령을 어겨서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다. 그럼 분명 은비와 지금 나눌 섹스가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라면, 근사하게 마무리 짓는 편이 좋겠지?”
“네?”
성렬은 은비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곤 그녀를 힘껏 안아 그대로 바닥에 눕혔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36.
창우는 식칼을 손에 쥐고 정우의 가슴부터 천천히 쓸어 내렸다.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얇은 천조각을 타고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정우의 몸을 타고 느껴졌다.
“사람 죽여 본 적 없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에 굳이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우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전부였다.
“너무 당연한 질문인가? 나는 여태껏 두 명 죽여 봤어. 저기 가방에 누워있는 남자까지 합쳐서. 둘 다 남자였지. 그리고 또 공교롭게도 둘 다 여기다가 칼이 파악 하고 꽂혀서는.”
창우는 정우의 명치 쪽에 식칼의 뾰족한 부분을 가져다 긁기 시작했다. 정우는 눈을 껌벅이지도 못하며 숨만 죽였다. 창우의 입에선 더 이상 플랫한 음성의 사투리가 한 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내가 자주 하는 말 중에 그런 게 있어. 처음은 어렵지만, 그 다음부턴 모든 게 쉽다. 나랑 같이 다니는 놈한테도 그런 말을 하곤 하지. 후우. 사설이 길어졌나? 애초에 나 같은 놈을 고른게.... 후우. 아니다. 자 그럼.”
창우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어져 갔다. 정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오줌이 흘러나올 것 같이 오금이 저려왔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창우의 손이 천천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정우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여자친구 얼굴이라도 보고 죽게 해 줘.”
창우의 손이 공중에서 가볍게 멈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표정이 창우의 얼굴을 잠식해 나갔다. 정우는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창우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자친구?”
“화장실 갔다며. 돌아올 때 까지만.”
창우는 천천히 식칼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하지만 정우는 도저히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런 정우를 바라보던 창우가 다시 식칼을 들어 올려 자신의 관자놀이를 슬쩍 긁어댔다. 그 모습이 너무나 기괴해 정우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멍청한 건가? 아니면 살고 싶어서 일부러 모른 척 하는건가?”
“뭐?”
“정말 네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범죄자 새끼랑 같이 사라졌는데? 너 머리 좋잖아? 회사도 좋은데 다니고. 상황 파악이 되는 놈이라면, 그 정도 대가리는 돌아갈 거 아니야. 아니지. 이 새끼 이거. 애초에 이건 네가.”
“알았어. 알았다고.”
정우는 살고 싶었다. 그런 정우를 조금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창우가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가져다 물었다.
“생각보다 불쌍한 놈이네. 후우. 방금 전에 산으로 올라갔으니까, 내려오려면 한 참 걸릴 텐데. 워낙 돌쇠같은 놈이라, 한 번으로 끝내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하구도 또 하는 걸 보면 새끼도 참. 왜. 이제와 후회라도 돼? 애인한테 어떤 말이라도 해 둘걸, 하는 후회?”
정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창우는 그런 정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조금 흥미롭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비참한 표정은 하지마. 그나마 다행인건, 나는 건드리지 않았어. 네 여자친구 말이야. 그런데 내 보기엔 말이다. 네 여자친구도 마냥 당하는 것 같지만은 않던데? ‘어린게 제법이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꽤나 적극적이고 저돌적이던데.”
정우는 창우를 쳐다봤다. 창우가 하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보고 들은 것이 없었으니까. 창우는 자신이 한 모금 빨아들인 담배를 정우에게 건넸다. 정우는 움찔거리다가 천천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네가 기절하고 나서 룸미러로 지켜본 게 고작이긴 하지만. 전혀 당하는 여자의 몸부림이 아니었어.”
정우는 플랫하던 창우의 목소리 톤이 천천히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뭐 아무튼, 녀석이 그 때 강제로 따 먹은 모양이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좀 이상한 거야. 성렬이 새끼 때문에 봉고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너랑 네 여자가 한 마디도 섞지 않는 꼴이며, 강간을 당한 여자의 태도치곤 어딘가 너무나 태연해 보였던 거지.”
정우는 창우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두 눈은 날카로워 보이는 식칼의 끝부분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한 노릇이다. 여자친구가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이 별로 놀라워하는 눈치도 아니고,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12부 end.
성렬과 은비는 약간의 간격을 두고 각각 모텔을 빠져 나왔다. 무엇이 불만인지 잔득 인상을 구기고 있는 모텔 주인에게, 둘 중 그 어떤 누구도 인사를 건네지 않았다.
“왜 이렇게 늦었어?”
조금 화가 난 듯한 창우에게, 성렬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고작 몇 분의 시간이 흘렀을 거라 생각했는데, 한 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모텔에서 뒹굴고 있었다.
“됐다. 서둘러.”
“야, 그런데.”
“뭐.”
“쟤네 진짜 죽여야 되냐?”
창우는 대답대신 물끄러미 성렬을 쳐다보기만 했다. 성렬은 고개를 돌려 은비를 훔쳐봤다가, 끝내 알았다고만 말했다.
“정신차려.”
“알았어. 이제 어디로 갈건데? 설마 여기서.”
“미치지 않고서야 그럴 수는 없지.”
창우는 곁눈질로 어딘가를 가리켰다. 성렬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법 좋은 곳이 있더라고.”
“산? 아니 그보다, 연락은 해 주는 편이.”
"그건 내가 알아서 할게."
창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성렬은 제법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곳을 멍한 표정으로 쳐다봤다. 그리곤 갑작스레 무슨 생각이 들어 창우를 보며 말했다.
“그럼, 저기 가서 죽이기 전에 쟤랑 한 번 더 해도 되냐?”
창우는 질렸다는 표정으로 아무런 대답 없이 고개를 돌렸다. 이젠 정말 지체할 시간이 없다.
34.
새가 날아 품안으로 들어온다. 여지껏 본 적 없는 아름다운 깃 털. 거친 손으로 그것을 어루만지러 했을 때, 갑자기 새가 부리로 그 손을 쪼아낸다. 화가 나서 그것을 잡아채려 했지만, 새는 또 다른 새와 함께 하늘 위로 사라져 갔다. 남자는 그것을 멍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었다.
정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매만지며 천천히 눈을 떴다. 꿈이라고 하기엔 더럽게 기분나쁜 꿈. 정신이 몽롱하다.
그리고 봉고차 창문 너머에서 쏟아지는 햇살이 어딘가 새롭게 느껴졌다.
“윽.”
자세를 고치려 했을 때, 아까 창우에게 가격당한 뒷머리에서 저릿한 고통이 느껴졌다. 정우는 머리를 매만지면서 고개를 슬쩍 돌렸다.
“헛.”
창우는 운전대에 팔을 괴고 얼굴을 찡그리고 있는 정우를 쳐다봤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손에 전화기가 들려 있다. 창우가 손을 슬쩍 들어 올렸을 때, 정우는 몸을 살짝 뒤로 피했다.
“애초에 난 그 쪽하고 거래같은 거 한 기억이 없수다. 뭐 꼬우면 신고라도 하시던지. 어. 몰라, 슬슬 시간이라. 그만 끊겠어.”
창우는 신경질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분명 배터리가 없다고 했었다. 그런데 통화를 하고 있는 창우의 모습을 보며, 정우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 너 이. 이런짓을 하고도.”
“겁도 참 많구먼.”
창우는 담배에 불을 지폈다. 잔득 겁을 집어 먹은 정우는 창우를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슬쩍 뒤로 돌렸다. 그런데 당연히 있을 줄 알았던 은비와 성렬의 얼굴이 보이질 않았다.
“잠깐 화장실 갔어.”
“여긴 어디야? 갑자기 왜 이러는 건데.”
정우는 이 상황에서도 창우에게 말을 낮추지 않았다. 가만히 담배만 피고 있던 창우는 천천히 정우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잖아.”
“.........”
“아무렴 어때. 상관없어.”
창우는 뒤쪽으로 손을 뻗었다. 경직된 채 고개를 슬쩍 돌리던 정우는 창우가 하는 행동을 면밀히 관찰했다. 바지춤에 찔러 넣었던 전화기가 시끄럽게 울리고 있었다. 창우와 정우는 그것이 누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인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창우는 커다란 짐가방의 자크를 천천히 잡아 당겼다. 정우는 숨을 죽이고 그것을 지켜봤다.
창우에 의해 짐가방이 천천히 열리고 있었다. 절반을 넘어 완전하게 그것이 개봉되었을 때, 정우는 짐가방 안에 담긴 사람의 형상을 보고 말문이 막혀 버렸다.
“금은방 사장이야. 처음엔 살려두려고 했는데, 어찌나 그렇게 발악을 하던지. 짖어대는 소리가 짜증나서 죽여 버렸지. 뭐, 이렇게 되면.”
창우는 가방 속으로 손을 밀어 넣었다. 그리고 가방을 잠시 뒤적이는가 싶더니 천천히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정우는 창우의 손에 들린 날카로운 식칼을 가만히 지켜봤다. 창우는 담배를 입에서 때어내곤 봉고차 밖으로 내던졌다. 그리고 정우를 쳐다보며 말했다.
“죽어야 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네?”
35.
성렬은 정신없이 은비의 몸을 핥아댔다. 성렬의 혀와 결코 고르지 못한 치아가 은비의 몸을 스쳐 지나갈수록, 은비의 몸 이곳저곳에 잔인한 키스마크가 알알이 새겨져 갔다.
“버릇없는 똥강아지를 확실하게 길들여 주겠어.”
은비는 살짝 부풀어 오른 자신의 오른쪽 뺨을 매만졌다. 성렬의 진득한 혓바닥이 자신의 은밀한 곳을 자극하고, 그 꺼칠한 수염이 부드러운 클리토리스 위에서 미끄러져 갈수록 은비는 커다란 나무에 기대 몸을 이리저리 흔들었다.
“직접 뭉툭한 자지를 넣고 흔드는 것 보단, 역시 이런게 좋은 거지? 내가 몰랐네. 그동안 내 욕심만 차려서. 확실하게 봉사해 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라. 어차피 애인은 푹 자고 있잖아? 이번엔 오래 즐겨 보자구.”
깊이 잠들어 있던 정우의 모습이 신경 쓰이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신의 육신을 낯선 남자에게 내맡기면 내맡길수록 정우에 대한 그림자는 은비의 머릿속에서 조금씩 사라져 갔다.
성렬은 은비의 두 다리를 우악스럽게 벌려, 친히 자신의 혀로 은비의 그곳을 거칠게 애무해 나갔다. 성렬과 은비의 주변에 흩뿌려진 각자의 옷가지들이 선선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은비의 브레지어와 핫팬츠, 그리고 신발자락. 성렬의 때가 늘러 붙은 옷가지들.
“밝은데서 보니까 몸매가 아주 죽여주네. 계속 어두운 데서만 했었잖아, 우리? 방금전 모텔에서의 그것 빼고 말이야.”
성렬이 간신히 은비의 그곳에서 입술을 떼며 말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두 손은 은비의 엉덩이를 계속해서 주무르고 있었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중년 남자와 어린 여자의 나신이, 이름 모를 산속에서 조용히 흩뿌려지고 있었다.
“솔직히 애인이랑 빠굴뜨면서 제대로 느껴본 적 없지? 나랑 하는게 좋은 거지?”
“음.”
“대답해봐, 또 맞기 싫으면.”
성렬이 은비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은비는 자신의 오른쪽 볼을 타고 느껴지는 얼얼한 감촉과 성렬의 날카로운 눈빛에 잔득 위축이 되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했다. 그러자 성렬이 자리에서 일어나 은비를 똑바로 쳐다봤다.
“알았어, 알았어. 안 때려. 아까는 하도 화가 나서 나도 모르게. 봐. 너도 그렇게 강한 척 하더니만, 결국 여자일 뿐이잖아. 그러니까 말해봐. 어차피 할 거, 서로 좋아야 하잖니? 여태까지 잘 즐겨 놓구, 이제 와서 애간장 태우지 말자. 응?”
성렬은 은비의 젖가슴을 주무르며 말했다. 손바닥에서 느껴지는 딱딱한 유두의 감촉. 어차피 대답은 정해져 있었지만, 성렬은 애써 그 대답이 듣고 싶었다. 수컷으로써의 본능이 성렬의 육신을 지배해 나갔다.
“알았으니까, 빨리 해.”
“아이 썅. 또 반말이네? 넌 씨발 머리도 좋은 년이, 왜 이렇게 말귀를 못 알아 듣냐? 아까 내가 뭐라고 했어, 엉?”
성렬이 은비의 얼굴 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은비가 질끈 눈을 감았다. 성렬은 손을 천천히 은비의 얼굴 쪽으로 가져다 댔다. 자신이 새겨 놓은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성렬은 다시 한 번 은비의 대답을 강요했다. 은비는 감은 눈을 뜨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
“좋았어요.”
“뭐?”
“당신이랑 하는게 좋았다구요.”
“그렇지?”
성렬은 은비의 두 볼을 붙잡고 사정없이 입술을 훔쳤다. 중년의 거친 혀와 젊은 여자의 촉촉한 혀가 뒤엉켜 낯선 소리를 만들어 냈다. 아무도 없는 공간에서 은비와 성렬은 천천히 몸을 밀착시켰다.
‘이런 재미로 기집년들 따는 거지.’
성렬은 게걸스럽게 은비의 입술을 훔쳤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두 손을 은비의 뒤 쪽으로 밀어 넣으며 천천히 엉덩이를 잡아 벌렸다. 그리곤 중지를 그 사이로 슬쩍 밀어 넣어, 은비의 어딘가를 슬쩍 매만졌다.
“음.”
“아직도 민감해? 아까 봉고차에서 계속 만져 줬잖아.”
“그래도.”
“그래도라니. 아까 봉고에서는 알았다고 했잖아? 사실 피임이니 뭐니, 기집애들 하는 꼴 보면 그렇게 웃긴 짓거리가 따로 없어. 제일 안전한 건 똥꼬로 하는 거거든.”
성렬은 은비의 주름진 무엇을 중지로 매만지며 은비에게 말했다. 은비는 다리를 천천히 꼬면서 성렬을 쳐다봤다. 성렬은 이미 결심이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은비의 그곳에 자신의 남성을 밀어 넣고 싶었지만,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를 섹스를 그런 식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죽이긴 아까운데.’
성렬은 창우가 명령조로 말했던 그 말을 떠올렸다. 화가 났을 때의 창우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성렬이다. 괜히 그의 말을, 아니 명령을 어겨서 자신에게 좋을 것이 없다. 그럼 분명 은비와 지금 나눌 섹스가 마지막이다.
“마지막이라면, 근사하게 마무리 짓는 편이 좋겠지?”
“네?”
성렬은 은비의 몸을 감싸 안았다. 그리곤 그녀를 힘껏 안아 그대로 바닥에 눕혔다.
“어차피 시간은 많으니까.”
36.
창우는 식칼을 손에 쥐고 정우의 가슴부터 천천히 쓸어 내렸다. 옷을 입고 있었지만, 얇은 천조각을 타고 느껴지는 차가운 금속의 느낌이 정우의 몸을 타고 느껴졌다.
“사람 죽여 본 적 없지?”
답이 정해져 있는 질문에 굳이 대답할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정우가 할 수 있는 것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일이 전부였다.
“너무 당연한 질문인가? 나는 여태껏 두 명 죽여 봤어. 저기 가방에 누워있는 남자까지 합쳐서. 둘 다 남자였지. 그리고 또 공교롭게도 둘 다 여기다가 칼이 파악 하고 꽂혀서는.”
창우는 정우의 명치 쪽에 식칼의 뾰족한 부분을 가져다 긁기 시작했다. 정우는 눈을 껌벅이지도 못하며 숨만 죽였다. 창우의 입에선 더 이상 플랫한 음성의 사투리가 한 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았다.
“내가 자주 하는 말 중에 그런 게 있어. 처음은 어렵지만, 그 다음부턴 모든 게 쉽다. 나랑 같이 다니는 놈한테도 그런 말을 하곤 하지. 후우. 사설이 길어졌나? 애초에 나 같은 놈을 고른게.... 후우. 아니다. 자 그럼.”
창우의 눈빛이 묘하게 바뀌어져 갔다. 정우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했다. 하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금방이라도 오줌이 흘러나올 것 같이 오금이 저려왔고, 다리가 후들거렸다. 창우의 손이 천천히 공중으로 올라갔다. 그러자 정우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여자친구 얼굴이라도 보고 죽게 해 줘.”
창우의 손이 공중에서 가볍게 멈췄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표정이 창우의 얼굴을 잠식해 나갔다. 정우는 사시나무 떨 듯 떨면서 창우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자친구?”
“화장실 갔다며. 돌아올 때 까지만.”
창우는 천천히 식칼을 아래로 내려놓았다. 하지만 정우는 도저히 안심이 되질 않았다. 그런 정우를 바라보던 창우가 다시 식칼을 들어 올려 자신의 관자놀이를 슬쩍 긁어댔다. 그 모습이 너무나 기괴해 정우는 슬쩍 시선을 돌렸다.
“멍청한 건가? 아니면 살고 싶어서 일부러 모른 척 하는건가?”
“뭐?”
“정말 네 여자친구가 화장실에 갔다고 생각하는 거야? 범죄자 새끼랑 같이 사라졌는데? 너 머리 좋잖아? 회사도 좋은데 다니고. 상황 파악이 되는 놈이라면, 그 정도 대가리는 돌아갈 거 아니야. 아니지. 이 새끼 이거. 애초에 이건 네가.”
“알았어. 알았다고.”
정우는 살고 싶었다. 그런 정우를 조금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보던 창우가 담배를 하나 꺼내 입에 가져다 물었다.
“생각보다 불쌍한 놈이네. 후우. 방금 전에 산으로 올라갔으니까, 내려오려면 한 참 걸릴 텐데. 워낙 돌쇠같은 놈이라, 한 번으로 끝내진 않을 테니까. 그렇게 하구도 또 하는 걸 보면 새끼도 참. 왜. 이제와 후회라도 돼? 애인한테 어떤 말이라도 해 둘걸, 하는 후회?”
정우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창우는 그런 정우를 똑바로 쳐다봤다. 그리고 조금 흥미롭다는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너무 비참한 표정은 하지마. 그나마 다행인건, 나는 건드리지 않았어. 네 여자친구 말이야. 그런데 내 보기엔 말이다. 네 여자친구도 마냥 당하는 것 같지만은 않던데? ‘어린게 제법이다‘라는 생각이 들만큼 꽤나 적극적이고 저돌적이던데.”
정우는 창우를 쳐다봤다. 창우가 하는 말을 쉽게 이해할 수 없었다. 당연했다. 보고 들은 것이 없었으니까. 창우는 자신이 한 모금 빨아들인 담배를 정우에게 건넸다. 정우는 움찔거리다가 천천히 그것을 받아들었다.
“네가 기절하고 나서 룸미러로 지켜본 게 고작이긴 하지만. 전혀 당하는 여자의 몸부림이 아니었어.”
정우는 플랫하던 창우의 목소리 톤이 천천히 변해가고 있다는 것을 감지했다.
“뭐 아무튼, 녀석이 그 때 강제로 따 먹은 모양이야.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좀 이상한 거야. 성렬이 새끼 때문에 봉고차 안에서 가만히 앉아 있는데 너랑 네 여자가 한 마디도 섞지 않는 꼴이며, 강간을 당한 여자의 태도치곤 어딘가 너무나 태연해 보였던 거지.”
정우는 창우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듣기만 했다. 그리고 두 눈은 날카로워 보이는 식칼의 끝부분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상한 노릇이다. 여자친구가 강간을 당했다는 사실이 별로 놀라워하는 눈치도 아니고, 화가 난 것 같지도 않았다.
12부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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