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소리 - 2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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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소리-

제 21 부 : 춤추는 가로등

윤택의 번개같은 솜씨에 놀라는 것에, 시간을 빼앗기고 있을 사이가 없었다. 다른 세 녀석은 벌써 눈과 목이 벌겋게 부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윤택아, 저 시키들 저러다 디지는 거 아니냐?’

‘진검사, 세상에 이쑤시게 맞아서 디졌다는 말, 들어 본 역사가 없다. 알으? 성자씨? 어디 다목적실 같은데 가서 빨래줄 쫌 갖다주소. 얼릉요?’

‘왜?’

‘디질 것 같다메? 이쑤시게 뽑기 무섭게, 정신 차릴 꺼거덩, 이 쉐이들? 그러니, 묶어 놓을 밖에….아휴, 살림을 그새 꿰차고 있네 그랴. 어찌 이렇게 빨리도 갖고 온데?’

윤택은 녀석들의 눈과 목에 벌집이 되어 있는 이쑤시게를 제거하기 무섭게, 번개같은 솜씨로 포승을 엮어 버렸다. 보기에는 금방 풀릴 것 처럼 보여도, 진검사는 그 포승의 매듭이 왠간해서는 풀리지 않는 것임을 익히 알고 있었다.

‘하이고, 기자질만 헐 쭐 알았드만, 제법이네…..’

‘야, 요즘 세상에 지 마누라, 홀로 아리랑에다, 똥배짱 만으로 지킬 수 있다디? 그러니 , 이렇게 도우미에, 십자군이 동시패숑으로 나서줘야 제격이쥐, 안 그래여? 성자씨? 나 물 쫌 줘 보지?’

‘너 이시키, 남의 여자 앞에서 은근슬쩍 쌍소리 섞을래? 주시지도 모자라, 줘보지?’

‘하여간 뭐 눈엔 뭐만 보이고, 뭔 귀에는 뭐만 들어박힌다고, 들리는 단어가 그것씩?없쥐? 누구 헌테 대한민국 검사라고 했다가는 내가 세끼 굶고 나서서 아니라고 헐테니, 알아서 해…..’

‘근데, 그 자식 대가리는 어째 그렇게 붙들고 있냐?’

아까부터 목을 밟고 있는 녀석에게는 정권 세례만 먹였지, 이쑤시게를 날리지 않았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진검사 였다. 이미 그 자는 윤택에게 기혈을 제압 당한듯, 온 몸에 힘이 쪽 빠진 채로, 팔다리를 가누질 못하고 있었다.

‘진검사, 집에 침입한 쉐이들은 총 세명인거야, 알아들었쥐? 이 쉐이는 빼라 말이야.’

‘그건 왜?’

‘보면 알쥐.’

윤택은 정신을 잃고 신음허는 그 녀석의 고개를 틀어서는, 귓구녕을 핥듯이, 입을 가까이 하고는 징징대는 소리를 내며, 무슨 소리인가를 계속 주절댔다.

‘속경술?’

‘거럼…..이 쉐이는 내가 업고 나간다. 암만 느려 터진 민주 경찰 이락두, 이쯤이면 올때 다 됐다. 성자씨 담뻔에 오면, 한상 든든히 부탁혀요. 글구…대강대강 허쇼. 저 눔, 다리 풀려서 출근 못허는 거, 보고 자픈거 아닌담에야…..히히히…진검사….내가 낼 아침 연락허께. 전화기 꼭 켜 놔라…..’

‘근데, 왜 그 자식은 붙들고?’

‘아니, 이것들이 이렇게 안방까지 쳐들어 오는데, 우리라고 가만 있으란 법 있다디? 요 쉐이, 깨고나면, 내가 핸폰만 때리자 마자, 그동안 있었던 일, 나한테 좔좔 불어 댈꺼야. 그리고는 오장창 까먹는 거쥐. 나중에 거짓말 탐지기니 뭐니 써도, 흔적도 없어여. 알으? 시간 없다 야, 이 자슥 품에 들어가 있는 핸폰 번호도 따려면…..’

‘너, 아직도 구라까는 거쥐?’

‘믿거나 말거나……성자씨, 저 새끼 아직 밥도 안 먹었수, 밥이나 챙겨 먹이슈.’

윤택은 힘을 잃고 쓰러진 녀석이 무겁지도 않은지, 번쩍 어깨에 쳐들어 메고, 집을 나섰다. 그로 부터, 윤택의 말처럼 몇 분도 채 안되어서 경찰들이 몰려들어, 죄송하다는 인사와 더불어, 허리가 90도나 꺾어지도록 절을 했건만, 진검사의 굳어진 얼굴은 펴질 쭐을 몰랐다. 진검사는 경찰들이 돌아가고, 그 자들의 신원을 확인해서 알려달라고는 했지만, 별로 기대는 하고 있질 않았다. 어차피 그 자들을 조져 봐야 나올 것도 없을 것이고, 물불 안가리고, 앞 뒤 안보고 달겨들 총알받이들을 고용했을 것이 분명했으며, 구지 그들을 다구쳐 봐야, 그 윗선을 알아내기도 전에 지칠 것은 뻔하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오빠, 제가 여기 온게…… 잘 못 됐나여?’

‘아니다. 어여 밥 먹자.’

‘난 아까 먹었는뎅….’

‘그게 밥이냐? 돼지 꿀꿀이 죽이지. 너 이제부텀 내가 꼭꼭 아침에 밥 먹고 나가고, 저녁에 무슨 일이 있어도 들어 와서 밥 먹을 테니, 그렇게 차리고 먹었다간 예전처럼 혼꾸녕 날 쭐 알아, 알았지? 내 집에 들어온 이상, 옛날처럼 살지마라. 볼 수록 가슴 아프다. 여기가 아프다구, 알아?’

진검사는 자신의 가슴을 쓰다듬으며, 늦은 밥상을 받았다. 그 밥을 다 먹는 동안,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밥보다 더 큰 덩어리가 꾸역꾸역 넘어가느라, 그 저녁식사는 길고 길게 이어졌다. 앞에 앉아 울고 있는 그녀의 흐느낌과 더불어…..


‘형, 그럼, 찾았어두 이리로 데불고 오지 마란 말이우?’

‘그런 말이 아니잖냐?’

삼슈가 일슈의 말에 발끈 하면서 일어났다.

‘아무리 상황이 그렇긴 해도, 누님을 우리가 먼저 알았지, 저 강선생 사모님을 먼저 알았냐? 누님 눈에 눈물 빼면서까지, 맞딱뜨리게 해서야 되겠냐 이 말이야. 쫌 시간을 두었으면 좋으련만, 그럴 여유도 없고…..’

난감한 삼슈가 다시 한숨을 푹 내 쉬며, 자리에 앉았다.

‘삼슈, 너무 애쓰지 마. 난 괜찮다. 너그들 목숨 내걸고, 이 짓 허는거 내가 다 아는데, 그깟 존심이야, 멀리 이민 보냈다 셈 치지 뭐.’

‘괜시리 나 때문에…..’

민기나, 희진이나, 삼슈나 간에 모두 미안한 사람들 뿐이었다.

‘띨띨띨……’

‘왔나부다.’

삼슈가 고개를 팩 돌리며, 일슈를 쳐다본다.

‘응…나다….그래? 시간을 끌어…..글구, 나랑 형들이랑 가께…응 다른 애들 불러다 그 쪽으로 밀어 줄테니, 버틸수는 있겠냐? 오케바리…..’

전화를 받으면서도 일슈는 집게 손가락 하나를 하늘로 들어, 빙글빙글 돌리는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전화 내용과 상관 없이, 이슈는 밖으로 튀어 나가고, 삼슈는 지하실로 달려 내려 갔다. 갑작스러운 부산함에 희진이 전화를 방금 끊은 일슈에게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왜 그래?’

‘그럴 쭐 알았쪄. 꼬리를 밟힌 모냥 이에여. 지금 두 사람을 데불고, 튀고 있는데, 놈쉐이들이 떼거지로 몰켜오고 있데여. 우리가 안 가면, 큰 일 나겠어여. 누님, 저 바쁘거덩여? 이따 와서 볼께여. 잘 되면, 이 밤이 가기전에 네 사람, 눈치기, 쌈치기 허는 거고, 안되면 개죽음이고……’

지하에서 올라온 삼슈는 팔목과 허리와 등짝이 두툼한 채 였다.

‘어쩌려구?’

‘누님, 한 발자욱도 여기서 나가지 마쇼. 그리고, 우리가 왔다손 치더라도 문 열어줄 생각 말고, 우리가 올때는 절대 초인종 누르지 않고, 그냥 들어 올테니, 초인종 소리가 나면, 여기 적힌대로, 알았져…..강선생, 우리 없는 동안 누님을…..’

이슈의 뒤를 따라, 마저 두 사람이 자리를 비우고 사라지고 난 후에도 희진과 민기는 거실에 앉아서 콩콩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도망간 새가 언젠데 벌써 추적이 붙었다는 얘기하며, 심상찮은 얼굴로 집을 나서는 슈 형제들의 굳어진 표정 모두가, 아무런 방어할 힘도, 기술도 없는 두 사람만을 달랑 남겨 놓은 것에다 그 불안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희진아, 괜찮을까?’

‘잘 되겠지. 쟤들 보통은 넘어. 하지만, 우리도 빠져 나오기 무섭게 그 쪽을 따라 붙었다는 얘기는 쫌 놀랍네.’

그런 얘기가 채 끝나기도 전에, 슈형제를 태운 차는 벌써 대로변을 튀어 나가고 있었다.

‘일슈야, 연락은 때렸냐?’

‘거럼여. 걱정 붙들어 매슈. 우리가 갈 동안, 뺏기지는 않도록 근처의 아그들 죄다 콜 해 놓았으니….근데, 어떻게 그렇게 빨리 잡았다지여?’

‘그 놈들도 우리랑 비슷한 수준이야. 아마도 전철역의 CCTV 모니터를 감시하고 있었을 게다. 척 보면 도망가는 두 사람, 못 찾는 놈이 쪼다지…..곳곳에 갸들 터럭이 짱 박혀 있질 않은 곳이 없으니….참…너 몇 군데나 불렀냐?’

‘그건 왜여? 일곱군데….’

‘전화 받질 않는 녀석들은 이미 상록수 단물 빨고 있는 쉐이들이야. 이젠 우리 도우미들이 아니란 야그지. 오늘 마주칠지도 모르니까, 잘 구분해야돼.’

‘그것도 그렇네. 두 녀석이 전화 씹었거덩여? 내 예전부터 그럴 녀석들 같더라니. 팔뚝이랑, 곰쇠, 아시져? 갸들 떨거지……기어이 전화 씹네. 씹 쉐이들…..하여간 평소 입 속에 혀처럼 노는 쇄끼들은 다 그렇다니깐여?’

‘갸들 욕할 꺼 없다. 돈을 욕해야쥐. 갸들도 지그들 식구 입에 풀칠이락두 허고 살려면 어쩔 수 없지 않겠니? 그런 철없는 애들 갖고 노는 시키들이 쥑일 넘들이지, 안그러냐, 이슈야?’

‘네, 셩…..나 성 내려노쿠 어디 이쓰까?’

‘거기가 어디라고 했지?’

‘돌치네 구역, 먹거리 판 있잖수?’

‘알았어. 이슈야, 차 갈고, 30분 있다가 일슈랑 같이, 그 극장 꺾어지는 대로변에서 기둘리고 있어. 만일 30분이 지나도 내가 강선생 사모님 일행이랑 나타나질 않으면, 허던대로 너그들만 튀어. 알았쥐? 그동안 일슈는 차에서 상록수 아그들, 무전이나 핸폰 긁어 봐라. 분명히 그 자리에 올게야. 팔뚝이랑, 곰쇠, 이 쇄끼들, 무식해서리 지 전화기에 대고, 상록수에다 대고 졸나게 아부깔 쇄끼들이니, 뭔가 건질 게 있을게다.’

‘형 혼자 괜찮겠수?’

‘걱정없다. 한동안 몸도 찌뿌드드 했는데, 운동 삼아 달밤에 체조 쫌 해보지 뭐. 정확히 30분, 알았지? 내가 안나타나도 미련 갖질 말고….안 그럼 누님이 다친다, 난 걱정 마라. 나잇살이나 처먹고, 집도 못 찾아 갈라구?’

일슈는 무언가 말을 하려다가 관두고 말았다. 이 자리에서 누님 어쩌고 비토를 걸었다가는 초장에 재숫대가리 없다는 소리나, 삼슈형으로부터 들을 것 같았기 때문 이었다. 삼슈형은 쌈질 하러 가기전에, 뭐라고 토를 다는 걸 제일루 재수없어 하는 사람 임을 잘 알고 있기에…

‘형, 그럼 이따가 정확히 30분….몸 조심 허우.’

일슈가 불안한 눈빛으로 삼슈를 내려놓은 곳을 계속해서 바라다 보는 사이, 이슈는 일슈를 태우고, 바람같이 자리를 떴다. 삼슈는 그 자리에서 조금씩 걸음을 빨리 하기 시작했다. 사람의 인적이 뜸한 저 멀리 구석에서 번쩍 거리는 빛들이 혼란 스러운 것으로 보아 벌써들 들러 붙은 모양 이었다. 삼슈의 걸음은 빠른 경보가 아니라, 온 호흡을 다한 단거리 선수와도 같았다. 호흡을 정지한 채로 그렇게나 빨리 내달리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해 보였지만, 삼슈는 역시나 실력이 녹슬지는 않았군 하는 자뻑에 잠겨, 무리들 앞에서 공중으로 몸을 휭하니 날렸다.

‘파팟…..하이야!’

어느새 공중에서는 양 쪽 손목에서 꺼낸 중단봉이 번뜩이면서 손 끝에서 돌고 있었다. 자리에 내려 서면서 양쪽을 훑는데…..

‘삼슈형님…..어떻게?’

‘너 이쇄끼, 곰쇠….벌써 차 바꿔 탔냐? 팔뚝이, 이 씨버럴 쇄끼도 여기 왔쥐?’

‘화이고…성님….뭐 먹을 꺼이 있다고 이리도 얼릉 오셨대?’

쌈질이 벌어진 와중에도 어딘가 전화를 때리는 팔뚝이란 녀석은 저 멀리에서 쌈을 어디론가 중계방송 하다가 다가오고 있는 모습 이었다.

‘저 뒤에 짱 박혀 있는 저 물건은 이미 우리가 점찍어, 침 발라 부렀응께, 어여 길이나 터 주쇼, 잉?’

‘그래? 결혼식 은 딴딴딴딴 끝나봐야 알고, 기집은 후장까지 쑤셔봐야 끝인 거 너도 알겠쥐! 그 물건, 내 뒤에 있으니, 아직 니 것은 아니지 싶은데….’

‘허어 삼슈 성님, 밥그릇 쌈 그만 헙시다. 일손 놓으신지, 수월찮게 되신 줄 아는데, 연세를 생각허셔야쥐, 안 그렇소? 형제덜 끼리 그 섬나라 가설라무네, 똥꾸녕 골라 먹어가며, 탱자탱자 사실라만, 예서 이리 징허니 절딴내서는 예의가 아니지라, 안 그르냐, 아그들아?’

보기에도, 팔뚝은 상록수의 설탕물을 먹어도 톡톡히 먹은 것처럼 보이고 있었다. 삼슈는 잠시 뒤를 돌아다 보며, 윤서와 선우팀장을 에워싸고 있는 도우미들에게 뒤로 조금 물러 서라는 눈짓을 보냈다.

‘내가 마지막으로 경고 한마디 허마, 예서 조용히 물러가면 내 가만히 있지만, 내 앞에 한치라도 가까이 오겠다는 자슥들 있스믄,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마.’

삼슈의 등장으로 얼어붙은 주변의 살기에 더하여, 양 손에 들려진 번뜩이는 중단봉을 팔꿈치에 대면서, 툭 하면서 푸는데 주변으로 번뜩이는 검기가 흘러들었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 내가 이 바닥에서 단 한번도 피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을…..오늘, 원한다면 아예 니 놈 살들, 하나같이 포를 떠주마. 이 검…들어서 알게다. 뼈도, 쇠도 자른다는 그 검 말이다. 너그들 같이 무식한 쇄이들에게 이름이야 알려줘서 소용도 없고, 니 놈들 속살이 어떻게 생겼는지 알고 싶은 놈들부텀 앞에 나서라.’

두 패거리가 각구목과, 쇠파이프, 휭휭 돌아가는 체인과 진검들을 들고 있어, 섣불리 누가 누구에게 선방을 때리질 못하는 일촉즉발의 긴장감이 돌고 있었기에, 삼슈의 출현은 그 기선을 제압하는 무엇인가가 있었다. 삼슈는 양 팔꿈치를 받쳐 올려 흡사, 절을 하는 폼으로 앞발을 지그시 즈려 밟고 있었다. 올려진 팔은 그들을 노려보고 잇는 삼슈의 시선을 가리고 있었고, 가뜩이나 겁을 먹은 조무래기들은 전설과도 같은 삼슈의 무예를 알고 있는지라, 서로의 눈치만을 보고 있는 것이었다.

‘캬, 성님, 자세 좋고….아그들아 뭐허냐? 시방 준비된 사수부텀 때리질 않코서……너그들 그리혀서 일땅 받겄냐? 너그들 뒤엔 병드신 부모에다, 지금도 한푼이락두 더 벌려고설랑 좇나게 가랭이 벌려대는 여동생들 있잖여? 갸들 생각혀면 그렇게 똥싸는 폼으로 죽 때리면 섭하질 않컸냐? 얼릉? 어여 쫑내고, 목 축이러 가야 안 쓰겄냐, 아그들아?’

팔뚝의 부추킴에 조금씩, 조금씩 삼슈를 향해 포위망이 좁혀 온다. 삼슈는 호흡을 깊게 말아버린다. 100미터 육상선수가 기록을 위해 숨을 참은 채로 테이프를 끊는 것처럼 그는 조용한 침묵의 자세로 호흡을 끊어갔다.

‘아이야!’

옆의 눈치도 보지 않고서, 삼슈의 눈 앞에서 붕붕 거리며, 체인을 휘두르던 녀석이 먼저 몸을 날려 왔다. 제일 바보같은 짓을 삼슈는 기합 이라고 생각해 왔다. 자신을 짓누르는 공포를 면해보고자, 내지르는 그 함성으로 자신이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기까지 얼마나 많은 싸움 속에서 다쳐야 하는가를 모르는 철없는 아그들의 손장난….걸리기만 해라라는 심정으로 삼슈에게 내두른 눈먼 체인이, 그의 팔에 감길 이유는 없었다. 삼슈가 살고 있는 시간의 간격은 주변에 둘러서 있는 초짜들의 시간 개념과 다른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서 내지른 선방임을 그들은 아직도 실감하질 못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가장 빠른 손질로 체인을 날렸다고 생각한 순간, 그 녀석의 옆에는 빙긋 웃으며, 녀석의 얼굴을 힐끔대다 자신의 자리로 다시 돌아가 버린 삼슈의 일렁이는 그림자가 왔다갔을 뿐이었다. 삼슈에 비친 그들의 공격은 이미 삼슈의 눈에는 느려터진 슬로우 비디오 였지만, 그들의 눈에는 그 됫모습 조차 따라 잡을 수 없는 흔적 뿐인 그림자의 일렁임 이었다.

‘파파..팟팟…파파..팟팟팟….파파파’

둘러선 포위망은 이미 포위망으로 불리우기에도 어려웠다. 체인을 후둘르며, 달겨든 녀석은 이미 손목을 움켜쥐고, 자신의 팔에 너덜거리며, 살쩜 끝에 겨우 달려 댕그렁 대는 손모가지를 바라보고 있었고, 소리도 없이, 기합도 없이, 숨소리나 인기척도 없이 왔다가 뒤로 물러서는 삼슈를 비웃으며, 걸음을 내 딛다가 이미 날카로운 각도로 잘려나간 자신의 발목이 스르륵 앞으로 쏠리면서 중심을 잃는다는 것 조차 모르고 있었다. 순간적으로 공중을 번뜩였던 삼슈의 양손에 들린 중단봉에는 핏방울 조차 묻어 있질 않았다. 살도 놀라서일까? 그 무섭도록 빠른 검의 휘돌림으로 인해, 피가 솟구치는 것이 놀라는 것도 잠깐, 너덜거리는 발목이 바닥을 지탱하고 있던 발과 떨어져 나가는 것과 동시에 바닥은 피로 번지기 시작하면서 삼슈의 앞에서 기선을 제압하려던 선방조가 푸석하면서 무너져 버렸다.

‘휴…’

하면서 호흡을 내뿜는 삼슈…..

‘자, 내 경고는 여기까지다.’

‘흡’

호흡을 거머쥐는가 싶더니만, 파죽지세로 몸을 들이대며, 칼춤을 추어대는 삼슈…..멀리서 겁에 질려 벌벌 떨고 잇는 현석의 눈에도 시퍼런 가로등불 밑에서 번뜩이는 삼슈의 칼끝에서 반사되는 빛은 이루 형용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살아 숨쉬고 있다는 생각을 들게 했다. 피가 튀면서도, 그 호흡의 끈을 놓질 않는 삼슈의 반격은 어느 한 곳을 집중적으로 뚫어갔다. 둘러싼 무리들의 한 쪽이 뚫리면, 그곳으로 와 하며 몰리고, 몸을 날려 다른 쪽의 녀석들 발목을 끊어치기 시작하면, 비명과 함께 거꾸러지는 무리들, 채로 밀가루를 걸러내듯이, 삼슈의 주변에서 그를 향해 달겨들던, 각구목과, 쇠파이프, 검들이 금속음을 내면서 바닥으로 구르고, 포위망은 점차 일렬로 변해, 퇴로에 갈급한 형태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누가 누굴 의지하며, 덤벼들 때는 언제고, 이제는 바닥에 피를 뭉글뭉글 토해내며, 동료들의 이미 자지러져 돌아간 흰자위가 어둠 속에서도 선명하게 비쳐지는 가로등 밑의 혈투는 이미 승산이 결정되었다고 보는 편이 옳았다. 그 많던 녀석들이 바닥에 구르고 있었고, 삼슈의 온 얼굴에는 녀석들의 살거죽을 뚫고 터져나온 선지와 핏자욱으로 얼룩져 있었다.

‘퓨휴…’

삼슈의 다섯번째 호흡….이미 흘러내리고 있는 핏줄기가 내뿜는 호흡에 떨려, 삼슈의 얼굴을 흘러내리던 핏줄기는 긴 내쉼을 타고, 공중으로 이슬처럼 핏방울이 된 채, 튀어 흩어지고…..

‘팔뚝! 어여 애들 데리고, 꺼져라. 지나온 옛정을 생각해서 너와 곰쇠의 발목은 끊고 싶은 맘 없다. 너희들이야, 뭔 죄가 있겠냐? 먹고 살자고 받아 쥔 돈푼 때문에 평생 저 어린 새끼들처럼 겁없이 덤빈 죄값을 치루기엔, 너그들 너무 오래 살았지 않니? 가라! 다신 얼굴 보는 일 없도록…..’

마지막까지 경계를 풀지 않고, 양 팔을 내리질 않는 삼슈의 눈치를 보며, 바닥에 나동그라진, 발목과 손목 더미도 챙기지 못한 채, 무리들이 슬금슬금 빠져나가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가로등의 불빛을 받아 파랗게 빛나는 삼슈의 시계는 정확히 2분여가 남아 있었다. 삼슈가 도망치는 녀석들의 무리를 노려 보면서, 공중으로 주먹을 쥐어 세번 흔들었다. 그러자, 윤서와 현석을 에워싸고 있던 무리들이 삼슈쪽으로 다가왔다.

‘다들 수고했다. 앞으로 얼마간 못 보지 싶다. 자. 여기…’

삼슈는 품속과 옷 안 곳곳에서 무언가를 꺼내서 둘러선 도우미들에게 던지기 시작했다. 그것은 금덩어리였다. 그들에게 현찰이나, 보석, 수표보다 더 나은 선물임을 삼슈는 예전부터 알고 있었다. 둘러선 도우미들은 그렇게나 무겁고, 많은 금괴를 몸 안에 지니고서도 살인적인 스피드로 덮쳐오는 녀석들의 손목과 발목을 끊어댔던 삼슈의 무공에 몸서리를 치기도 했다.

‘형님, 삼슈 형님, 어서 피하시져. 싸이렌 소리 뜨는 걸 보니, 짭새들 올 모양입니다요.’

‘그래, 고맙다…… 언제고 의리는 주먹을 울게 한다는 말……. 잊지마라.’

‘형니임….지금 가시면….’

둘러선 도우미들의 양손에 들고 있던 금덩어리들 보다 더 굵은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어서 너그들도 떠라…..자, 가시져. 뛰어야 합니다. 저 앞에 차가 기둘리고 있습니다.’

현석과 윤서는 그 자리의 몸서리치는 혈투의 흔적도 흔적 이었으려니와, 삼슈 같은 든든한 사람의 곁에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인지, 애써 기운을 짜내어 삼슈의 뒤를 쫓아가고 있었다.

‘헉헉헉…헉헉…쪼끔만…쪼끔만 천천히…윤서가 못 따라와서….’

현석도 달리기라면 자신 있었지만, 삼슈같이 성큼성큼 내닫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자니, 자연히 윤서가 뒤쳐지는 것은 당연했다.

‘그럼, 제 앞에 앞서 가십시오. 제가 뒤에서 따라 가겠습니다. 저 앞의 극장 있는 꺾어진 대로변에 차가 와 있을 겁니다. 어서 빨리……’

삼슈는 앞서가던 방향을 틀어 우선 숨차하는 윤서와 현석을 앞세워 차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아직 차가 보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일행이 나타나는 것을 어디에선가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우우웅….끼…이……익’

그건 영화속에서나 볼 수 있는 스턴트의 한장면과도 같았다. 약속했던 대로변을 반대방향에서 달려오던 이슈의 차는 순식간에 타이어에서 연기를 풀풀 내면서, 기가막힌 180도 턴을 하면서, 바로 앞에 숨이 턱에 까지 찬 채로 달려 와 있는 삼슈 일행의 앞에 정확히 멎는 것이었다.

‘어서 타시져. 시간이 없습니다. 수고들 했다. 시간 맞춰 오느라…..’

‘성…일슈가 빨랑 타라는뎅….’

두 사람이 올라타고, 마지막으로 타려는 삼슈가 앞 좌석의 일슈에게 물었다.

‘왜?’

‘저…저…..형! 어디선가 추적 신호가 따라오는 것 같아서……’

‘퍽!’

‘형!….삼슈형!.....삼슈형!’

‘악!...어서 빨리 몰아….어서…으으윽……’

삼슈가 차 안으로 쏟아져 쓰러지면서, 차문이 덜렁거리긴 했어도, 이슈의 자동차는 바람처럼 그 자리를 빠져 나갔다. 윤서와 현석의 무릎 위에는 등에 작은 단도가 깊숙히 박힌채로 신음하는 삼슈로 인해, 옴짝달싹을 할 수 조차 없었다.

‘으으…으으…어떤 놈인지…어떤 놈인지….’

‘형….형..말하지마….말하면 출혈이 심해져. 그냥…그대루 있어…그냥 그대루….’

‘칼 뽑지 마라..으으….어디로 더 깊이 박혔는지, 내 눈으로 보기전엔…..어떤 놈 인지, 그 먼거리에서 정확하게 견갑골 사이를 겨누다니….몸 안에서 금덩어리를…….. 꺼낸 것도 알고 있는 놈이야……보통 놈이…... 우후후훅…뼈를 ….뼈를 건드린 거 같은데….’

삼슈는 그 말과 함께 정신을 잃고 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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