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모를 접수하다 - 3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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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어제 저녁에 환상적인 육체 파티를 하다 보니 공부를 못했다.
짬짬이 가정교사 형에게 질문메시지는 다 보냈지만, 예습, 복습은 전혀 하지 못했다.
아침에 미애와 함께 일어나 아침을 같이 먹었다.
돈 많이 벌어오겠다는 미애를 출근 시키고 서둘러 책상에 앉았다.
예습, 복습을 마치고 약간의 여유를 가지는데 가정교사 형이 30분 일찍 왔다.
“민호야. 배고프다. 라면 좀 끓여봐라.”
“아침 안 드셨어요? 밥 있는데 차려 드릴까요?”
가정교사 형이 처음에 나 보고 친 형처럼 생각하고 말을 놓으라고 했는데
나는 공부에 재미를 붙이면서 열정적인 형이 존경스러워 어느 날부터 존대를 하고 있었다.
가정교사 형도 굳이 말 놓으라고 강요는 하지 않아 존대로 굳어진 상태다.
“라면 없어? 없으면 말고.”
“있어요. 끓여 드릴게요. 몇 개나?”
“두 개만 끓여 봐. 어제 저녁에 술을 빨았더니 밥도 안 넘어가고 뜨뜻한 국물이나 마셔야겠다.”
나는 냄비에 물을 끓였다. 펄펄 끓는 물에 라면을 넣었다.
“민호야. 김치도 듬뿍 넣어라. 얼큰하게. 고춧가루도 넣고.”
라면을 끓였다. 아침을 먹은 나도 젓가락을 들고 덤볐다.
가정교사 형은 빈 그릇을 가져 오더니 라면만 건져서 나에게 넘겼다.
그리고 국물만 후루룩 소리 내며 마셨다.
그 때 현관문이 열리며 미애가 들어왔다.
얼굴이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또 잘렸구나. 나는 직감할 수 있었다.
미애는 휑하니 안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들어가 봐라. 무슨 안 좋은 일이 있나보다.”
공부를 시작해야 하는데 미애가 울면서 들어오니 형이 가보란다.
안방에 들어가니 미애가 침대에 엎드려 울고 있었다.
“왜 그래? 뭔 일 있어?”
나는 짐작하면서도 모르는 척 물었다.
미애는 내가 어깨를 흔드니 대답은 안 하고 더 큰소리로 울고 있었다.
나도 침대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 두 팔로 미애를 일으켜 껴안았다.
미애는 내 품에 안겨서 오열을 하고 있었다. 흐느끼고 있었다.
나는 손수건으로 미애 눈물을 닦았다. 손수건이 금방 질퍽해졌다.
세면장으로 달려가 수건을 가져왔다.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
“무슨 일이야? 말을 해야지. 누가 때렸어?”
“몰라. 몰라. 나 좀 내버려 둬어.”
미애는 나를 뿌리치며 통곡을 했다. 두 팔로 나를 밀어냈다.
나는 미애에게 떠밀려서 거실로 나왔다.
“왜 그래? 누가 죽었어?”
“모르겠어요. 말은 안 하고 울기만 하네요.”
나는 가정교사 형에게 시치미를 똑땄다. 짐작은 하면서도.
“공부 하자. 화 풀리면 물어 보고.”
오전 수업이 시작되었다.
미애가 왜 우는지 내가 알기에 별로 신경이 쓰이지 않았다.
미애는 앞으로 이모를 조련하는 한 네 번은 더 겪어야할 충격이었다.
이유도 모르고 일터에서 내 쫓겨야 할 운명이었다.
이모와 나 사이를 몰랐으면 좋으련만 알아 버린 것이 죄라면 죄였다.
오전 수업이 끝나갈 무렵 미애가 거실로 나왔다.
울음도 그치고 화장도 고치고 말끔한 얼굴로 나와서 라면 끓여먹은 냄비를 씻었다.
과일을 깎아놓고 기다리다가 공부가 끝나니 들고 왔다.
접시에는 배와 밀감이 담겨 있었다. 형이 배를 집어 들면서 미애에게 말했다.
“아니, 왜 우셨는지 여쭈어 봐도 되겠습니까?”
미애가 배시시 웃으며 아무 일도 아닌 듯이 대답했다.
“쇼핑몰에서 또 잘렸어요.”
그랬구나. 쇼핑몰 사장 지희가 주었던 일터를 앗아 갔구나. 내 짐작대로였다.
“저러언. 어저께도 잘렸다더니.... 요즘 운이 안 좋은가 봅니다.”
“그러게요. 요즘은 재수 없는 일만 생기네요.”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거죠. 좋은 날도 있을 겁니다.”
“그랬으면 좋겠는데 암울하네요. 영문도 모르겠고.”
미애는 밀감을 가서 내 입에 넣어주며 한 숨 지었다.
그리고 나를 보며 말했다.
“오늘 있잖아. 심심타에 촬영하러 갔는데 다짜고짜 집에 가래는 거야.”
“이유가 뭐냐고 물어 보지?”
“이유 없데. 그냥 내가 필요 없데.”
“내가 가서 따져 볼까? 이유가 없는 게 어딨어?”
“따져봤자. 여러 사람이 하나 바보 만들어. 더러운 새끼들이야.”
“내 친구들 왕창 데려갈까? 숫자로 하면 질것 없잖아.”
“근데 쓰는 사람이 필요 없다는데 무슨 따지고 말고 할 게 있겠어?”
“하긴. 약한 자의 설움이다.”
“근데. 허탈하게 집에 오는데 폰에 문자가 오는 거야.”
“심심타 쇼핑몰에서?”
“피크 쇼핑몰에서.”
“피크? 거긴 내일 촬영이잖아.”
“이제 피크하고 나하고의 인연은 끝났으니 다시 보지 말제.”
“저런! 나쁜 사람들이군요. 필요할 땐 부르고 싫으면 팽하냐?”
가정교사 형이 거들고 나섰다. 내가 이해를 시켰다.
“원래 이쪽 일이 그래요. 오늘은 이사람 쓰다가 내일은 저사람 쓰고.”
미애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를 바라보며.
“피크의 문자를 보고나니 기운이 쏘옥 빠지는 게 눈물이 막 흘러 나왔어.”
“울면서 차타고 온 거야?”
“택시 기사 아저씨가 룸미러로 나를 계속 보데. 수상한 지.”
“누가 죽었나 했겠죠. 젊은 아가씨가 아침부터 우니까.”
미애는 가정교사 형을 향해 쌔액 웃었다. 화는 풀렸나 보다.
“피크는 일주일에 두 번씩 가는데. 세 번도 부르고.”
다시 미애의 눈에 눈물이 그렁거렸다. 피크는 정말 아까운 일터였나 보다.
미애가 눈에서 눈물을 찍어 내니까 가정교사 형이 서둘러 일어났다.
“아, 저는 약속이 있어서 이만. 민호 오후 수업 예습 해.”
미애에게 양해를 구하며 나에게 예습을 당부했다. 미애와 나도 같이 일어났다.
가정교사 형을 보내고 나는 소파에 앉은 미애의 어깨를 주물러 주었다.
일도 못하고 쫓겨 왔으니 피곤할 일은 없겠지만 마음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공부나 하셔어. 선생님 앞에 나만 나쁜 년 만들지 말고오.”
미애는 발딱 일어나 안방으로 가버렸다. 나에게 공부시간을 주기 위함일 게다.
가정교사 형이 오고 오후 수업이 시작되었지만 미애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자는지 우는지 기척이 없다. 목을 매지는 않았을 터. 들어가 볼 필요는 없었다.
오후 수업 1교시가 끝나는 시점에 시간 맞추어 초인종이 울었다.
인터폰에는 이모의 얼굴이 떠있었다. 문밖에 이모가 와 있었다.
나와 형이 동시에 일어났다. 우리보다 먼저 미애가 달려 나갔다.
문을 열고 미애는 화들짝 놀라고 있었다.
미애가 안방에선 인터폰이 안 보이니 이모인 줄 모르고 문을 열었다.
수요일 저녁도 아닌데 이모가 정장차림으로 선글라스까지 끼고 들어오니
미애는 영문을 몰라 인사도 못하고 뒤로 주춤 주춤 물러섰다.
가정교사 형이 재빨리 달려 나가 인사를 했다. 나도 따라 나갔다.
“이모님 오셨어요? 쉬는 시간에 맞추어 오셨네요.”
“예. 선생님. 공부에 방해될까봐 일부러 시간 맞추었어요.”
“시간 까먹으면 좀 더 연장하면 됩니다.”
“바쁘신 선생님 시간을 자꾸 뺏으면 되나요?”
이모가 앞장서고 우리는 뒤따라 우르르 거실로 들어왔다.
“미애 왔구나. 너 나 몰라? 인사 할 줄도 모르니?”
미애는 사태 파악을 못하고 어리둥절해 있었다.
암캐이모가 왔는데 선생님이 굽실거리니 미애는 마님으로 군림을 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모가 인사 안한다고 호통을 친다. 미애는 다급하게 인사를 했다.
“아~ 안녕하세요. 사장님.”
“그래. 요즘 일은 열심히 하고 있어?”
“예.”
예는 무슨 예냐? 다 잘렸는데. 이모도 다 알고 있을 텐데. 나는 속으로 웃었다.
“오늘은 일하러 안 나갔냐? 쉬는 날이냐?”
자기가 잘라놓고 이모는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예. 몸이 쫌 아파서.”
“그 나이에 골골하면 평생 남편 고생 시킨다. 운동 좀 해라. 다이어트 하지 말고.”
“예. 사장님.”
미애와 이모의 위치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아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이모가 나와 가정교사 형을 번갈아 보며 들고 온 쇼핑백을 내밀었다.
“이번에 신상이 나왔는데 민호하고 선생님께 제일 먼저 입히고 싶어서 달려 왔어요.”
내가 쇼핑백을 받아 들었다. 가정교사 형이 양 손을 마주 비비며 굽실 거렸다.
“아이구. 이렇게 자구 신세만 져서 어떡하죠? 민호가 열심히 해야 할 텐데.”
가정교사 형은 황송해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미애는 어안이 벙벙할 것이다.
“미애도 있는 줄 알았으면 한 벌 더 가져 올 걸 그랬네.”
가식이 쩐다. 어제 저녁에 고통을 당했으면서 다른 사람처럼 딴청을 부리는 이모다.
이모의 돌연한 태도에 미애는 어떻게 처신해야 할 지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미애는 뒤바뀐 상황에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이모에게 준 수모도 있으니까.
당당한 이모와 안절부절 못하는 미애를 버려두고 나는 형과 안방으로 들어왔다.
신상 캐주얼이었다. 이모가 우리 사이즈를 정확히 알고 있는 듯 입어보니 맞춤이었다.
우리는 입고 있던 옷을 안방에 벗어두고 신상을 입고 거실로 나왔다.
“어머나! 옷걸이가 좋으니까 옷이 훨씬 빛나네.”
이모의 얼굴에 함박웃음이 피었다. 스스로 만족해했다.
“와! 멋지네요. 이 옷 입고 애인 만나러 가야겠어요. 홀딱 반하겠는데요.”
내 마음에도 쏘옥 드는 멋진 신상이었다. 대박날 것 같았다.
하지만 가정교사 형은 지나치게 이모에게 아부하고 있었다.
“선생님. 애인 있으세요? 뒤도 옆도 안보고 학문만 하셨다 들었는데.”
이모의 말에 가정교사 형이 뒤통수를 쓸면서 대답했다.
“하하. 없습니다. 요즘 여자들이 눈이 높아서 저 같은 건 쳐다보지도 않네요.”
“세상 여자들 눈이 삐었지. 선생님 같은 보석을 못 보고.”
“하하. 그러게 말입니다. 이모님이 다리 좀 놔 주세요.”
“그럴까요? 선생님께 맞추려면 시시한 애들은 안 될 텐데.”
“아닙니다. 눈 코 입, 제자리에 붙어있고 살림만 잘하면 오케이입니다.”
가정교사 형은 이모에게 정말 애인 하나 구해 달라는 듯 저자세를 취했다.
이모는 옷을 전해주고 공부에 방해 되면 안 된다고 바로 가버렸다.
이모는 어쩌면 미애의 상태도 보고 함부로 할 수 없는 위엄도 보여주고
겸사겸사 신상도 나왔고 하니 선물 하려고 온 것 같았다.
미애가 짐 싸들고 와서 동거를 하게 됐다고 내가 분명히 말해 주었는데,
이모는 시치미를 떼고 동거를 인정 안 하는 듯 미애에게 말했다.
“너무 늦기 전에 집에 가거라. 민호 공부하는데 방해 하지 말고.”
그 말에는 이모 특유의 고양이 같은 앙칼짐이 묻어 있었다.
미애는 고양이 앞에 생쥐처럼 얼굴을 붉히며 대답도 못했다.
이모가 가고 오후수업이 끝나고 가정교사 형은
입고 왔던 옷은 쇼핑백에 담고 신상을 입은 채 갔다.
미애와 나와 둘이 남았다.
나는 복습을 한다고 컴퓨터 책상에 앉았다.
미애는 안방에 틀어박혀 나오지 않았다.
일터에서 짤리고 낮에 이모가 왔는데 상황이 이상하고 심경이 복잡 할 것이다.
내 공부에 방해 주지 않으려고 조용히 있는 것일 수도 있었다.
강수 형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폰을 들고 복도로 나왔다.
안방에 있던 미애가 급히 따라 나왔다.
담배를 물고 통화를 하는 내 옆에 미애가 바짝 붙어 있었다.
통화를 하지 않고 미애 들어가라고 아무리 눈짓을 해도 먼 산만 쳐다보며 옆에 있었다.
강수 형이 안경과 뚱뚱이의 뒷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했다.
나는 지금 통화를 하기 힘드니까 저녁에 만나자고 말했다.
강수 형이 저녁에 만나서 자료를 넘겨주마고 통화를 끝냈다.
저녁을 먹고 강수 형과 만날 시간이 다가왔지만 나는 나가지 못했다.
미애가 내 옆에 착 달라붙어서 떨어지지 않았다.
미애는 약속 장소에도 같이 나가겠다고 고집을 피웠다.
나보고 숨기는 게 너무 많아 믿을 수 없다고 의심의 눈초리를 보냈다.
나는 결국, 강수 형에게 오늘 약속은 취소하고 다음에 만나자고 문자를 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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